[맑스주의와 현대제국주의: 추천사1] 왜 지금 현대제국주의인가?(김정호)

김정호 북경대 박사/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자문위원/현 울산함성 발행인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 두 가지이다. 지금 시기 왜 제국주의인가? 현대제국주의란 무엇인가?

1.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이것은 현 시기 국제관계의 ‘주요모순’과 관련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본서 첫 장에서 ‘제국주의’가 지금 시기 다시금 화두로 등장하게 된 과정을 서술한다.

한때 사람들이 거대 담론을 기피하던 시기가 있었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와 더불어 제국주의에 대한 관념 역시 잠시 우리 머리에서 사라진 듯 보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 2007년 조정환 씨의 ‘제국’ 개념이다. 1980년대 말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와 함께 노동해방문학 활동을 했던 조정환 씨는 “미국을 단일하게 행동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이해하기보다 여러 종속국 혹은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제국”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본문 중에서)

2000년대 들어서 중국의 굴기가 두드러지고 기존 유일 패권국가인 미국과의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때 나온 것은 ‘G2 경쟁’이다. 하지만 이 개념 또한 기존 패권국가와 잠재적 패권국가 간의 경쟁이란 시각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2022년 2월 드디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그리고 이 전쟁이 소규모 국지전이 아닌 서방 대다수 국가 및 중국을 포함한 전 세계 개도국들을 직간접적으로 영향권에 두는 중차대한 국제적 사건이 되면서, ‘제국주의’ 개념이 전면 부활하였다. 이제 국내외 진보세력은 이 전쟁에 대한 태도를 어떤 형식으로든 표명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때문에 이 전쟁의 성격 규명은 각국 좌파에게 있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2. 현대제국주의를 올바로 규정하는 작업은 지금 시기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만약 우크라이나 전쟁을 제국주의 간의 전쟁으로 규정하면 자연히 ‘양비론’의 입에 서게 된다. 이에 반해 미국과 서구 동맹국으로 구성된 현대제국주의 세력의 확장에 맞선 ‘방어전’으로 보는 시각에선 러시아를 옹호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입장 차이로 인해 지난 2022년 10월 쿠바에서 개최된 22차 국제공산당 및 노동당 대회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결의문이 채택되었다. 그 대회를 계기로 국제공산주의운동은 그리스공산당(KKE)을 축으로 한 세력과 ‘세계반제국주의 플랫폼’으로 집결한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마치 1차 세계대전을 앞둔 시점에서 제2 인터내셔널이 붕괴되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국내 진보진영 역시도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기존 분열의 골이 한층 깊어지는 느낌이다.

3. 이제 현대제국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보다 제대로 그것을 인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즉 현대제국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이 지금은 초점이다. 따라서 이 책 대부분은 이 주제를 둘러싸고 전개되며, 저자는 그간 다른 정파와 벌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현대제국주의를 제대로 정의하는 문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소급하면 중미 간 ‘G2 대결’의 성격과도 관련된다. 국내외의 많은 좌파 활동가들은 ‘G2 대결’을 여전히 단순히 ‘패권 경쟁’이란 시각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애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체제 간의 경쟁이라는 더욱 본질적인 측면을 무시하려 한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 핵심은 중국이 사회주의인지 아닌지 그 사회 성격에 대한 판단이다.(저자 역시 이 주제와 관련하여 본문 중에 별도의 장을 할애한다). 하지만 현대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중국을 자본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거론한 ‘5가지 지표’를 들어, 그중 ‘자본수출’ 항목을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전략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킨다. 이처럼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매우 중요한 시대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4. 이런 시점에 나온 맑스주의와 현대제국주의는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본서에서 레닌의 제국주의 규정과 관련한 ‘5가지 지표’에 대해 각각의 단편적 해석을 지양하고 통일적 해석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독점은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이지만 독점이 곧 제국주의는 아니다.”라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인식하면서 “독점체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차지하는 독점체의 규모, 위상을 살펴봐야 하고 자본수출에 있어서도 ‘현저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본다. 그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독점체가 성장해서 금융적으로 세계를 약탈하고 지배하는지” 여부라며 문제의 핵심을 짚는다.

이 같은 현대제국주의 개념 규정에 입각하면 러시아나 중국은 자연히 제국주의가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우선 러시아의 경우를 보면, 미국과 서유럽 동맹국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를 자신들이 주도하는 국제결제시스템(SWIFT)에서 추방했기 때문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 보더라도 러시아는 지금의 국제금융체계에서 수혜자가 아닌 다른 개도국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에 불과하다. 중국 역시도 사정은 비슷하며, 그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브릭스 국가들은 개발도상국을 대표하여 IMF를 비롯한 현 국제금융체계에 대한 개혁을 핵심 요구로 제출한다.

5. 이상의 이론적 측면 외에도, 저자는 상당한 지면을 빌려 그간 우크라이나 정세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처럼 이론과 역사적 고찰을 병행하는 전통 맑스주의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에 대한 명쾌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다.

오늘날 ‘제국주의’ 논쟁이 다시 재등장한 현실은 다름 아닌 현대제국주의가 국제관계의 주요모순이라는 사실을 뜻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반제의 요체는 반미”라는 간략한 행동강령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금 이보다 더 정곡을 찌르는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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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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