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랄카르(LALKAR)*
2023년 9월/10월
역자: 남노혁(학생)
* 랄카르(LALKAR)는 영국에서 발행되는 격월간지 반제국주의 신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과 사회적 해방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 그리고 피억압 인민의 반제투쟁,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현재 사건들과 노동사에 대한 뉴스와 분석을 담고 있다.
세계 시장으로부터의 강제적 분리는 국유화와 계획의 후퇴를 촉진시켰다. 1956년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배신적인 ‘비밀’ 연설 이래로, 소련 사회주의 건설의 혁명적 시기(이오시프 스탈린의 인물로 대표된)의 명성은 사회주의를 건설했던 후대들에게―처음에는 수정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그 다음에는 구소련 전역에서 그들의 공공연한 자본주의 후예들에 의해―일상적으로 희화화되고 중상모략 당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조차도 그의 저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에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정주의 지도자들은 스탈린 시기의 업적 위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소련이 반혁명적 붕괴기에 접어들었을 때(1989-91년), 당과 국가의 지도부가 스탈린과 혁명 시기의 모든 위대한 업적을 매장시키려 했던 노골적인 반공주의 지도자들에 의해 지배될 정도로 퇴보했다.
약탈과 제국주의 지배로 파괴된 선진 경제
계획경제가 파괴되면서 1990년대에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빈곤이 대규모로 나타났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최근 말했듯이 전쟁과 비슷한 파괴적인 영향이 나타났다.
그것은 실로 전쟁으로, 러시아 매판(comprador) 부르주아지에 의해 촉발된 잔혹한 계급전쟁이었다. 그 시기에 사회주의 시기의 많은 성취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그리고 미국과 동맹을 맺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다른 모든 보루들의 확고한 후견 하에서 보리스 옐친 정권에 의해 제정된 ‘시장 개혁’에 의해 파괴되었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11월 발다이 클럽 연설에서 외국 자본의 무제한적인 유입이 러시아 산업에 미친 영향을 회고했다.
“오늘의 상황은 어떠한가? 서방이 다른 나라에 의약품이나 곡물 종자를 판매하려고 시도하면 그 나라에게 자국의 제약 산업과 선택을 죽이라고 요구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서방의 공작 기계 및 장비 공급이 국내 공학 산업을 파괴하는 사태를 초래한다.”
“나는 총리로 재직할 때 이 사실을 깨달았다. 특정 제품 그룹에 시장을 개방하면 국내 제조업체가 즉시 파산하고(goes belly up) 다시 살아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이 그들이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해서 시장과 자원을 장악하게 되고, 나라는 기술적, 과학적 잠재력을 잃게 된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다. 이것은 노예화이며 경제를 원시적 수준으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이는 실제로 매판 옐친 정권 시절 러시아에 일어났던 일이다. 러시아의 수많은 유구한 선진 산업은 매판 자본가와 미국 주인들의 악행에 의해 파괴되었다.
고(故)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러시아에 대해 한 말은 제국주의가 피해국에 접근하는 방식을 요약한다. 매케인이 러시아를 “독재자가 운영하는 주유소”라 불렀을 때, 이것은 푸틴 시대의 러시아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 블록이 러시아가 어떤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정확한 묘사였다.
푸틴 대통령이 말했듯이 소련 인민의 부를 무한 약탈하는 동안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투자’의 결과는 러시아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수십 년 후퇴시키는 것이었다.
국가 주권의 점진적 회복
푸틴 시대의 역사는 경제와 국가가 느리고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시기였으며, 미제국주의자들은 푸틴이 러시아 내에서 미제의 이익이나 그 꼭두각시들의 이익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할 때마다 그를 ‘독재자’라고 불렀다. 푸틴 시대는 옐친 시대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며, 국가 경제에 대한 러시아 국가 권력의 개입을 다시금 확보하는 과정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1930년대, 40년대, 1950년대 초의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산업화의 위대한 시기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러시아 지배층의 움직임을 이해해야 한다.
올해 6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의 일환으로 크렘린궁에서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에는 푸틴 행정부 고위 인사들과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수반 대행을 비롯한 지역 주지사들이 참석했다. 이 회의는 알렉산드르 갈루쉬카(Aleksandr Galushka)가 쓴 ‘크리스탈 성장(Crystal growth) – 러시아 경제 기적에 관한 책’에 대한 논의에 초점을 맞췄다. 크렘린 웹사이트에서 읽은 이 회의의 의미는 수십 년 동안 반스탈린 선전 이후 소련 혁명 시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주목할 만했다.
“오늘날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서방의 제재에 직면했음에도 외부 자금 조달 없이 소련 경제는 14배 성장했고, 유럽에서 1위, 세계 2위의 경제가 되었다. 전쟁 4년을 제외하면 연평균 성장률은 13.8%였다. 동시에 기대 수명은 26년 증가했고, 인구는 4600만 명 증가했는데, 이는 이 급속한 성장기의 한가운데에 대조국전쟁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증가한 것이다.” [전쟁의 엄청난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 엄청난 인구 증가를 잘 주목하라!]
이 보고서는 또한 변화하는 국제 정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중요한 관찰을 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오늘날 러시아가 새로운 세계 질서 형성의 진원지에 있으며, 경제 성장의 새로운 모델을 형성하기 위해 다루어져야 할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1929-55년 우리 경제의 경이로운 성장기와 관련된 역사적 자료를 분석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랄카르 저자의 강조)
이것은 1990년대의 히스테리적 반공주의로부터 중요한 일보를 내디뎠음을 의미하는데, 반공주의는 그 이후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러시아 부르주아지-자유주의 서클에 상당부분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2014년 이후 더 큰 제재를 가함으로써 러시아 경제를 죽이려는 시도에 직면한 러시아 경제의 생존의 뿌리이다. 이는 러시아 경제를 특히 유럽 시장과 단절시킴으로써 러시아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러시아 경제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러시아연방에 대해 벌인 제재 조치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이제 제국주의 언론의 보도도 인정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특별군사작전을 개시하자 “루블화를 폐허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곧바로 실패했다.
제국주의자들이 2014년 이래로 줄곧 추구했던 전략은 (크림반도가 키예프에서 서방이 부과한 파시스트 정권의 명령에 복종하기보다는 러시아연방에 재가입하기로 투표했을 때) 러시아 경제의 균형을 깨뜨리고 붕괴를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러시아 경제는 꾸준히 실적을 개선하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러시아에 가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또한 자본주의 과잉생산이라는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러시아 중앙은행은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약 2%로 예측하고 있다.
매판 자본 계급의 통치 종식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한 가지 해답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 인도, 중앙아시아로 무역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 정부는 유럽 연합 국가들과 구축한 이전에 수익성이 높았던 에너지 무역에 가해진 제재로 인한 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피할 수 있었다.
러시아 경제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한 몇 안 되는 논문 중 하나를 쓴 부르주아 학자인 버밍엄 대학의 리처드 코널리(Richard Connolly)의 연구에 따르면, 2014년 이후 도입된 제재 체제는 러시아 경제의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촉발했고, 이는 러시아 경제의 수입과 외국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훨씬 낮췄다. 이로 인해 러시아 국가는 경제 계획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다. 러시아 정부 각료들(그리고 푸틴 대통령 자신)은 여전히 자본주의 찬가를 부르지만, 그들의 행동의 현실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복귀는 극단적인 기생성으로 정의되었다. 새로운 매판 지배계급의 동조자들(도적들과 마피아들 모두)은 그들의 제국주의 주인들을 위해 자산을 약탈하고 생산을 중단시키면서 경제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다. 1990년대에 유일하게 상당한 투자가 이뤄진 분야는 에너지 산업이었는데, 영국과 미국에 기반을 둔 독점기업들이 주요 업체가 되어 국가 자산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
이 고삐 풀린 갱스터리즘의 시대는 1998년에 끝나기 시작했는데, 경제 붕괴로 인해 루블화의 평가 절하와 러시아의 외채 채무 불이행이 촉발되었다. 그 즈음 옐친 정권의 남은 권위는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러시아 의회(두마)는 옐친에게 전 외무부 장관 예브게니 프리마코프가 이끄는 연립 정부를 임명하도록 강요했으며 여기에는 유리 마슬류코프(재무 장관)와 겐나디 호드레예프(반독점 장관)라는 두 명의 공산주의자가 포함되었다.
공산당원들이 정부 요직에 재임명된 후 제국주의자들이 8개월 동안만이라도 당황한 반응을 보였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내각은 1998년 9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지속되었지만, 옐친에게 치명타를 가했고, 경제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고, 매판 자본가의 파벌을 부유하게 만들었던 자유무역을 종식시키고, 자본 통제와 같은 조치를 부과함으로써 향후 닥칠 많은 일들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러시아에서 중요한 발전이었다.
프리마코프 내각은 대외 관계에 대한 접근 방식의 변화에서도 중요했다. 소련 붕괴 후 미국의 행동에 반대한 러시아의 첫 번째 정부로서, 프리마코프는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나토의 폭격 작전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옐친은 1999년 5월 프리마코프를 해임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자신은 6개월 후 대통령직에서 쫓겨났다. 1998년 이후 국가 통제의 요소들로의 회귀는 코놀리(Connolly)의 분석에서 언급되었다.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과정은 1990년대 후반부터 불균등했고 역전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경쟁과 강력한 소유권에 기초하여 기능하는 시장경제가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 대신, 정치경제학의 혼합 체제가 등장했는데, 그 체제에서는 상대적 자유와 경쟁 지대가 시장 지향적인 경제 변화가 다루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난 경제의 큰 부분과 함께 공존했다.” (강조는 LALKAR)
푸틴 시대는 근본적으로 프리마코프 내각이 이미 시작한 일을 이어갔고, 러시아 국가는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와 같은 가장 지독한 매판 자본가들을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제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리처드 사콰(Richard Sakwa) 교수는 그의 저서 ‘푸틴의 역설(The Putin paradox)’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푸틴은 구식 올리가르히(신흥재벌)들을 크렘린궁에서 몰아냈고, 2000년 7월 재계와 국가 대표들 간의 유명한 원탁회의에서 관계의 새로운 균형을 강요했다. 여기에는 국가에 의한 ‘사업 장악’의 요소가 수반되었는데, 기업은 자신의 전략을 국가 전략과 일치시키는 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2020, 강조는 랄카르)
국익을 위한 국가 통제 강화
이 시기에 등장한 모델은 에너지와 같은 주요 경제 부문에서 국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모델이다. 이 분야에서는 가즈프롬, 로사톰, 로스네프트와 같은 국영 기업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개인 소유 기업도 국가의 지시를 따를 의무가 있었다. 코널리에 따르면, 정부는 가즈프롬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붕괴 직전까지 몰락한 중요한 산업 부문의 성장을 촉진하는 데 사용해왔다. 예를 들어, 기계설비 부문은 2008년 세계 경제 붕괴 이후 러시아 정부가 보다 보호주의적인 노선을 취함에 따라 매출이 증가했다.
이는 2013년 우크라이나 위기가 시작된 후 더욱 발전했다. 사콰(Sakwa)에 따르면, “이것은 완전한 국유화는 아니었지만, 민영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의 실행을 확실히 방해했다. 이는 서방과의 대결을 예상하고 러시아가 2014년부터 제재를 견뎌낼 수 있도록 한 준전시 경제였다”고 말했다.
국방 부문의 최근 변화는 상당한 기반을 가지고 시작되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소비에트 시대부터 우랄바곤자보드(Uralvagonzavod)의 거대한 탱크 생산 공장과 같은 시설이 여전히 존재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부분적 민영화와 대대적인 감산(그 과정에서 3백만 명의 노동자 해고)을 단행했지만, 1990년대 후반에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고 푸틴 시대에는 완전히 역전됐다. 현재 국방 부문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는 여러 거대 기업 산하로 조직되어 있다. 코놀리에 따르면, 재무장 결정은 2008년 미하일 사카슈빌리 미국 괴뢰 정권이 일으킨 조지아와의 전쟁 이후 모스크바에서 내려졌다. 그 이후로 러시아의 방위 산업은 예산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측면에서 꾸준히 성장했다.
“수입 품목에 대한 산업계의 의존도를 줄이고, 방위 산업 생산 수단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적인 소유권(보통 국가)을 유지함으로써, 광범위한 군사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독립적인 능력을 보존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 유지되었다.”(리처드 코널리, 앞의 책.)
이는 러시아가 18개월(현재까지)의 특별군사작전 기간 동안 전쟁 물자 생산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방력을 강화하기로 결정한 러시아 지도자들은 소련의 막대한 유산을 활용하여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군수산업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필요에 따라 생산을 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러시아 군수산업 능력은 또한 미 제국주의 블록 전체에 존재하는 것보다 훨씬 우월한 산업 역량을 말하며, 이는 소비에트 경제 계획 모델의 직접적인 유산이다.
한편 러시아 정부는 식량 산업에서 수입 대체를 장려하여 러시아 농업을 재건하고 소비에트 시대에 이루어진 막대한 투자의 유산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 정부는 유럽과 미국 수입품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따라서 제국주의적 협박과 강압의 많은 도구로부터 국민을 해방시킬 수 있었다. 2022년 2월 이후 미국이 이끄는 제국주의 블록이 러시아에 대해 가한 더욱 가혹한 제재는 실패했다. 러시아 정부가 ‘시장’은 사실 한 나라의 자주적 생존에 정말 중요한 모든 분야에서 아주 비천한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거의 10년 동안 에너지와 식량 생산과 같은 핵심 분야에서 자립을 구축하고 특정 핵심 경제 부문을 지도하기 위한 국가 계획 시스템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중앙 계획의 강력한 힘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이 제국주의 세계 전체의 반대를 뚫고 성공했던 시기, 그리고 제국주의 세계가 오늘날보다 훨씬 더 강력했던 시기로부터 배우기 위해 정부 서클 내에서조차 더 큰 개방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여기에 더해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협력 강화는 모든 중요한 전선에서 급속한 발전과 세계 최대 제조업 경제로서의 새로운 입지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이 러시아를 포위 상태로 몰아넣기 위해 10년 간 시도한 것을 생각하면, (제국주의 경제 공세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전쟁체를 분쇄했던) 소련이 강력하고 탄력적인 산업화된 경제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것에 대해 면모를 일신한 러시아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이 시기의 성공을 회고하면서, 러시아 공산당 지도자 겐나디 주가노프(Gennady Zyuganov)는 최근 그의 당(러시아연방공산당CPRF)의 강령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의 잔혹한 타격 속에서도 소련의 농업은 자신 있게 살아남았다. 동부 지역에서는 전쟁 중에도 면적이 64만 헥타르 증가했다. 농업 과학은 차가운 곡물에 더 잘 견디는 새로운 작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시베리아의 겨울 작물은 64퍼센트, 카자흐스탄과 중앙아시아는 44퍼센트 증가했다. 67만 마차의 화물이 이 지역에서 전선과 후방의 다른 지역으로 운송되었다.”
독일 제국주의 세력이 독일에 끔찍한 피해를 입힌 후에도 계획경제는 기록적인 시간 내에 피해 지역의 복구를 할 수 있었다. 주가노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치에 의해 파괴된 고정 자산의 3분의 1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복구되었다. 산업 생산은 1948년에, 농업 생산은 1950년에 이미 전쟁 전 수준에 도달했다. 1950년의 1인당 실질 소득은 1940년보다 40퍼센트 높았다. 1946년부터 1955년까지 2억 100만 평방미터의 주택이 가동되었는데, 이는 전쟁 전 5개년 계획을 모두 합친 것과 거의 맞먹는 양이다.”
이러한 놀라운 성취는 계획경제가 자본주의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원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의해, 그리고 또한 계획 과정에 대한 대중의 높은 수준의 참여 덕분에 가능했다. 스탈린 시대 소련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지배자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스탈린은 1933년 제1차 5개년 계획의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5개년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당의 확신과 노동계급 세력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당은 이 어려운 과업을 5년차에 완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5개년 계획이지만 4년 후, 엄밀히 말해 특별분기를 더해 4년 3개월 후에 완수했다. 그래서 ‘4년 안에 5개년 계획’이라는 유명한 슬로건이 탄생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 후의 사실들은 그 당이 옳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계급 세력에 대한 이러한 대담함과 자신감이 없었다면, 당은 우리가 지금 그토록 정당하게 자랑스러워하는 승리를 성취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1933)
당시 소련공산당 지도부가 이해한 것은 계획경제가 관료적 과정이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에서 대중의 직접적인 역할의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훨씬 더 후진적인 다른 사회의 업적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알바니아는 매우 낮은 기반에서 출발하여 산업화, 식량 생산의 자급자족, 1950년대 중반까지 문맹을 퇴치할 수 있었다. 이것은 계획경제의 틀 안에서 대중의 혁명적 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알바니아의 이러한 발전에 대해 영국의 공산주의자 윌리엄 애쉬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회주의 경제 계획은 알바니아 생활의 다른 모든 측면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중앙집권주의, 대중 노선의 동일한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대중의 최대 참여를 기반으로 한다.”
“1970년에 끝난 제4차 5개년 계획에 대한 노동 집단 회의는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제안된 것보다 더 큰 증가로 끝났으며, 174,000건의 토론이 있었고 141,000건의 제안이 제시되었다. 경제 및 문화 발전을 위한 국가 계획이 ‘인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계획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음을 보증한다.”
인민경제계획의 건설에 대중의 직접적 참여가 보장되는 과정,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진정으로 지배계급이 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과정은 물론 수정주의자들과 부르주아 학계 모두에 의해 끝없는 거짓말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가 제국주의자들의 무제한적인 지배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지금, 러시아에서 진화하는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묻혀 있던 역사의 많은 부분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단 1929-55년 시기의 문제가 배움의 정신으로 다시 열리면, 대중의 중심적 역할은 무시될 수 없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건설의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관철하는데서 인민의 혁명적 에너지와 창조성이 수행한 결정적인 역할은 인민들의 성공의 핵심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최근 연설에서 알 수 있듯이 러시아 정부에서는 매판 세력을 통해 자국에 부과한 모델이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러시아 대중은 언제나 흐루쇼프, 고르바초프, 옐친과 같은 사람들이 원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혁명 시기와 스탈린을 기억해왔다.
따라서 계획경제의 요소들의 복귀는 러시아 내에서 매우 중요한 발전을 의미하며, 제국주의자들이 푸틴 대통령이 20여 년 전에 권력을 잡은 이래 매년 그에 대한 적대감을 증가시켜 온 중대한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푸틴의 느리지만 꾸준한 러시아 주권 회복, 그의 정부가 서서히 동맹국들을 밀어내는 것, 그리고 러시아가 보다 국가 주도적인 경제로 나아가는 것이 제국주의자들, 특히 미국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전 세계적으로, 세계 제국주의 체제에 의한 숨 막히는 장기 지배는 자본의 집중이 점점 더 터무니없는 비율에 도달함에 따라 격변적인―그리고 잠재적으로 최종적인―폭발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세계의 빈곤 대중은 사회주의와 계획 없이는 죽음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도록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러시아의 경제적 변화는 모두 이 과정의 일부다. 미국 제국주의 통제가 계속 붕괴되고 세계 제국주의 체제의 심화되는 위기와 그것의 가속화되고 자기 파괴적인 전쟁 추진력에 의해 새로운 혁명적 물결이 촉발됨에 따라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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