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에서 침략성·지배성을 제거하는 노사과연의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2 – 무엇이 채만수 소장을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의 옹호자로 되게 했는가?

노사과연의 이론적 중심에 있는 채만수 소장 역시 그리스공산당의 이러한 반레닌주의적인 황당한 이론의 파수꾼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확인한 것처럼,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고의 단계”, 즉 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제국주의론》을 집필 · 발표할 당시(1916∼1917)에는 ‘독점자본주의’가 분명 ‘한 줌도’ 안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아직도 한 줌도 안 된다?…
다른 나라들은 다 그만두고, 한국을 보자.
―한국은 신식민지 국가, 종속된 국가인가, 아닌가? ―분명 신식민지 국가, 종속된 국가이다!
―그러면, 한국은 제국주의인가, 아닌가?
―한국은 과연 제국주의가 아닐까? ―한국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그리고 미국 등에도 엄청난 자본을 수출하고 있는 것은, 혹시 착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국가의 노동자·인민들과의 호혜·평등을 위해서?(채만수, “현대제국주의와 소위 ‘다극체제’의 세계상(世界像)에 대하여”, 2023년 7월 20일)

채만수 소장은 그리스공산당의 입장을 따라 레닌 시절은 제국주의가 한 줌도 안 되는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었음에 반해, 현대자본주의 국가는 독점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대다수 국가가 제국주의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채만수 소장은 한국은 여전히 “신식민지 국가, 종속된 국가”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제 한국은 신식민지 제국주의가 되었다. 전대미문의 사회성격론이다.

채만수 소장이 한국의 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환시기를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로 인식하고 있으니 지금 논리를 그대로 대입하면 한국이 그 시기에 제국주의가 된 것인가? 아니면 그때는 독점자본주의로 전환되었으나 “엄청난 자본을 수출”하는 시기가 아니니 제국주의는 아니라는 말인가?(이 부분은 뒤에서 레닌의 제국주의 표지논쟁에서 다시 다룬다.)
채만수 소장은 한국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그리고 미국 등에도 엄청난 자본을 수출하고 있”으니 동남아와 중국이나 미국에 대해서도 제국주의로서 식민지배를 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인가? 그런데 채만수 소장이 그리스공산당의 피라미드론을 적극 옹호하고 있음을 볼 때, 동남아시아 대다수 나라들도 독점자본주의 나라들이니 동남아, 중국, 미국과 제국주의 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로 될 것이다.
채만수 소장은 이들 나라들에 대해서 “착취를 위해서”라고 하고 있는데, 각각의 자본주의 나라들이 자국의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과 레닌처럼 대외관계에서 “극소수 ‘선진제국’에 의한 지구상 인구의 압도적 다수의 식민지적 억압과 금융적 교살의 세계적 체제”로 제국주의를 다루고 있는 점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처럼, 채만수 소장에게는 다른 나라, 민족에 대한 “지배와 종속”의 의미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자본수출론’에 대한 경제주의적 이해와 왜곡

 
채만수 소장은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의 자본수출 등을 근거로 드는데,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자본주의가 아니라 시장이 지배적일 때 자본주의인 것처럼, 먼저 자본수출의 존재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현저한 자본수출(채만수 소장에 의하면 “엄청난 자본수출”)을 해야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가 될 수 있다. 더욱이 그 자본수출을 통한 초과이윤의 수치와 원료자원의 독점, 또 이를 매개로 한 상품수출의 촉진, 저임금 노동력 초과착취, 경제적 지배와 이권, 정치적 특권의 차지와 내정간섭, 쿠데타, 레짐체인지, 문화적 지배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게 레닌의 자본수출론을 통해 제국주의를 끌어내는 것이다.(채만수 소장은 뒤에서 다시 말하겠지만, 이 점에서 레닌적 의미의 자본수출과 ‘자본투자’를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뒤섞고 있다.)
한국이 동남아 등지에서 제국주의자 같은 행세를 하고 있고 심지어 미국에도 자본수출을 하고 있지만, 한국이 국제적 수준에서 자본수출을 통해 세계를 분할하고 침략하고 지배하는 제국주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다. 한국의 침략상과 호전성이 있다면 그것은 제국주의라서가 아니라 미제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그 이해에 노예적으로 굴종하는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채만수 소장은 중국의 일대일로를 자본수출의 근거로 보고 이것이 중국의 제국주의 면모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의 관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수출은 제국주의의 대외 침략, 즉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경제적 기초이다…힐퍼딩은…자본수출을 독점 및 금융자본을 기축으로 한 대외 지배체제의 일환으로 성격지우고 있지 않다…자본수출은 다양한 형태를 취하면서도 총체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지배·종속관계를 촉진시켰다. 선진국의 독점체는 후진국·식민지의 원료시장, 판매시장, 저임금노동력을 독점적으로 확보하여 경제적, 정치적으로 완전한 지배를 기도했다.
이렇게 제국주의 형성기의 자본수출은 선진국의 지배자본에 의한 후진국 주민의 착취·수탈관계를 촉진하는 경제적 기초가 되었다. 동시에 그것은 선진국과 후진국의 지배·종속관계를 심화시키는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후진국·종속국에서의 민족독립운동을 현재화 시켰다.(《제국주의론》, 本間要一郞, 한울)

채만수 소장은 우리가 카우츠키처럼 제국주의를 경제적 기초와 분리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채소장이야말로 제국주의를 군사적, 정치적 면모와 분리시켜 경제주의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힐퍼딩처럼 자본수출을 “대외 지배체제의 일환으로 성격지우고 있지 않다.”
카우츠키는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정책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필연성을 인식하지 않았고, 독점체들이 초독점체로 발전해서 제국주의 간 대립과 충돌이 아니라 평화가 올 수 있다고 인식함으로써 제국주의를 미화하고 변호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야말로 경제적 독점과 군사, 정치적 침략성이 통합된 진짜 제국주의 자본의 반동적인 면모가 아닌가. 도대체 제국주의를 경제적 독점만으로 바라보지 말고 그 독점체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민족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정치적 성격을 같이 보아야 한다는 것과 제국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한 줌도 안 되는 나라들이 압도적 다수의 나라와 민족, 인민을 압살하고 지배하고 침략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제국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 어떻게 카우츠키주의일 수가 있는가? 도대체 이론적 차이를 넘어 어디까지 종파주의에 사로잡혀 분별력을 잃어야 그러한 터무니없는 인식에 이를 수 있는가?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제국주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인 동시에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회피, 혼란케 하는 기회주의와의 투쟁이기도 하다. 과연 현대제국주의 역시 레닌 시절과 마찬가지로 미제와 나토 제국주의, 일본 제국주의 같은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나라가 압도적 다수의 약소국, 약소민족, 수십억 인류를 침략, 지배하고 경제적으로 교살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국주의를 타도해야 한다는 것과 중국, 러시아도 제국주의고, 콩고 등 아프리카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 한국, 대만, 인도,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태국, 인도네시아, 남아공, 멕시코, 그리스 등 대다수 자본주의 나라가 제국주의라는 이론 중 무엇이 비과학적이자 기회주의적 이론인가?
레닌은 《제국주의론》 서문에서 “이 소책자는 짜리즘의 검열을 의식하면서 쓰인 것이”고 “이 때문에 나는 작업을 단지 이론적인, 특히 경제적인 사실분석으로 엄격히 제한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측면에 대해 언급할 경우에도 극히 신중하게” “암시나 비유적인”, “노예의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레닌은 전쟁을 통해 나타난 제국주의 성격을 “침략적·강도적·약탈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레닌의 규정을 통해서도 그렇고, 오늘날 미제국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보이는 야만적 모습들을 볼 때도 독점이라는 경제적 기초만으로 제국주의라고 규정하면서도 제국주의에서 침략성·지배성을 제거하는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아니다. 더욱이 이는 진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혼란케 하고 투쟁을 교란시킨다.
채만수 소장은 독점만 가지고 제국주의라는 인식의 연장선에서 자본수출을 “제국주의의 대외 침략, 즉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경제적 기초”이자, “총체적으로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지배·종속관계를 촉진시”키고, “선진국의 지배자본에 의한 후진국 주민의 착취·수탈관계를 촉진하는 경제적 기초가 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본투자 일반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독점체는 자본수출을 세계의 경제적 분할 수단으로서만 아니라, 경제블록과 군사블록내의 보다 약한 상대국의 국내·국외정책에 압력을 가하는 무기로 여기고 있다…
자본수출은 이제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제국주의의 경제적 확장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사적 자본 수출보다도 국가 자본수출 쪽이 보다 우세한 것은, 전후 저개발국으로의 자본수출에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이다…제국주의열강에 의한 국가차관과 보조금 공여의 목적은, 개발도상국이 당면한 곤란으로부터의 출구를 보다 철저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길에서 구하지 않게 하고, 그 국가들이 자립적 대외무역 정책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는 데 있다.(현대제국주의 정치경제학, 미래사)

자본수출 중에는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원조와 외채지원이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는 반공주의 전초기지를 마련하고 원조를 대가로 특혜와 이권을 얻고 정치적 지배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운영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국제 금융수탈 기구다. IMF구제금융 대가로 깡드시가 ‘점령군’ 역할을 하며 내정에 개입하여 긴축과 고금리, 정리해고, 노동유연화, 노동법 개악을 강요한 것이 자본수출의 전형이다. 레닌은 이를 금융교살이라고 했다. 금융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여 죽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라틴아메리카를 자신의 앞마당으로 삼아 “신식민지주의”를 관철해나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로 눈을 돌려보면,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훨씬 이전부터 어떠한 민족의 독립의 요구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들에 대한 지배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인식하여 왔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미국은 일련의 라틴아메리카 국가에 대해 자국의 군사기지와 이들 국가의 군대에 펜타곤의 고문 교관 다수를 파견하여 이들 국가의 경제에 대한 북미자본의 지배를 보강시켰던 것이다.(《현대제국주의 정치경제학》, 편집부 편역, 미래사)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대다수 나라와 기업들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군사독재자들을 배후조종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하고 민중에 대한 대량학살과 암살과 고문을 자행하도록 하였다. 칠레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극우 반동세력들을 내세워 진보정치 세력들을 진압하였다. 사회주의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와 침략 말살기도, 진보적인 베네수엘라 정부 전복 기도 등 남미에서 벌어진 모든 반동적인 정치적 사건들 중 미국이 관련되지 않은 사건이 없을 정도다.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신식민주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민중의 투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신식민지주의는 우월한 군사력과 강압정책을 다양하게 구사함으로써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위성국가화하려 했다. 또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정책을 보면, 식민지주의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지배권을 상실해가는 와중에서도 제국주의적 서방측과의 동맹을 지지하는 정부를 신흥국가의 권좌에 머무르게 하려고 노력하였다…예를 들면 베트남으로부터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남베트남에 그들의 대리인인 바오다이-미국의 대리인인 고 딘 디엠에 의해 경질되었다.-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영국도 그의 구식민지 이라크에 형식상으로는 모든 주권을 반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자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이처럼 제3세계에 있어서 대리정권의 육성과 가장 극우적인 반민중세력에 대한 지지는 신식민주의 전략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간접지배’로 무장하면서도 구래의 ‘고전적’ 식민주의의 전통적 방법을 폐기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가능하기만 하면 어디에서나 식민지적 통치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다.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탄압이라는 이러한 방침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알제리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가치 아시아,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과 지역에서 유혈의 식민지 전쟁과 토벌작전을 강행하였다.(같은 책)

제국주의의 침략성과 반동적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현상적으로 달라진 점은 주로 식민지 직접 지배를 하던 것에 비해, 러시아 혁명과 민족해방투쟁의 성과, 영국 제국주의 패권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패권 전환 등으로 인해 제국주의는 직접 지배를 배제하지 않으나 현지 대리 정권을 내세워 간접지배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제국주의도 마찬가지다. 프랑스는 과거처럼 아프리카 일부 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식민지배를 하지 않고 있으나 여전히 군대를 주둔시키고 기업과 원료 지배, 금융지배 등으로 신식민지배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민족해방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졌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나 노사과연의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에는 이러한 신식민주의의 특징과 그에 맞서는 피억압 민족의 해방투쟁의 면모가 고스란히 빠져 있다. 노사과연은 이와 관련해 “러시아 철도는 북한의 철도 인프라 현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마두로 정부에 대한 지원은 값싼 석유를 위한 투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미국 폴리트슈투름(Politsturm)의 글을 번역하여 이를 러시아의 제국주의 근거로 삼고 있다. 우방국으로서 시리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기도를 막는 것도 제국주의 행태라고 하고 있다.
이쯤 되면 구제불능의 경제주의이자 최소한의 논리도 없는 막무가내식 인식이다. 미제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제재에 맞서 러시아가 조선의 철도 건설에 참여하고, 마두로 정부를 지원하는 것이 어떻게 제국주의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조선은 이로써 러시아 제국주의에 경제적으로 종속당하게 되었는가? 러시아가 제국주의에 맞서 마두로 정부와 조선에 대해 경제투자를 하는 것은 각 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태도다. 레닌이 자본수출의 기생성을 말한 것에 비춰, 러시아의 조선에 대한 자본투자와 마두로 정부 지원은 기생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채만수 소장은 이와 관련, “러시아와 중국이, 예컨대,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 엄청난 자본을 수출하고 있지만, 거기에는 ‘상호 존중과 호혜’만이 존재할 뿐이지, ‘제국주의적 수탈과 지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와 중국은 ‘상호 존중과 호혜’를 위해서 자본을 수출하고 있는 것이지, 잉여노동·잉여가치를 착취하기 위해, 초과이윤을 획득하기 위해서 자본을 수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고마운, 착취 없는 자본주의가 있다니!”라고 우리의 글을 일부 인용하여 비판한다.
채만수 소장은 독점이라는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만 가지고 제국주의로 규정하듯, 자본투자 일반을 모두 제국주의로 보고 있다. “착취 없는 자본주의” 운운할 때, 국가 간 착취와 수탈, 지배와 종속, 대외침략과 국가 간 호혜와 평등, 자주성 존중, 양 나라의 상호이익에 바탕을 둔 대외관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국주의 국가의 독점자본은 자국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성장하고 이를 통해 우월한 생산력과 그 배후의 침략적 국가를 등에 업고 다른 나라와 민족, 인민들을 착취, 수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주의 관계의 형성의 밑바탕에는 이른바 국제적 등가교환(실제로는 부등가 교환)이 있다. 가령 여기에서는 생산력이 발전한 부국의 하루 노동이 저발전한 빈국의 3일 노동과 등치될 수 있다. 이 “국제 등가교환하에서 부국의 빈국 착취, 즉 1노동일과 3노동일의 교환이 행해진다.”(경제학 사전, 조용범·박현채 감수, 풀빛) 제국주의 국가들은 우월한 생산력과 물리적 힘으로 (신)식민지 국가와 그 나라의 인민들로부터 더 많은 초과이윤을 얻어내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국내에서 생산에서 집적과 집중을 통해 독점을 형성하고 이것이 제국주의를 형성하는 국내의 경제적 기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국내의 착취적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적 독점을 바탕으로 세계적 수준에서의 독점체의 지위를 가지고 다른 나라 시장을 지배하고 원료를 강탈하고 다른 나라 노동자들로부터 초과이윤을 거둬들이고 경제전반을 종속시켜 약탈하고, 지배와 침략상을 보일 때 제국주의라 성격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채만수 소장은 여기서도 자본수출을 통해 경제적 교살은 물론이고 “대외 침략, 즉 다른 민족에 대한 억압과 착취”로 나아가는 군사적, 정치적 면모, 제국주의와 식민지 간의 “착취와 수탈”, “지배·종속관계”로 나아가는 구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현대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통해 실천적으로는 ‘민족해방투쟁’으로 가는 방향이 없다. 채만수 소장이 “우리민족끼리 반미자주”하자는 주장을 ‘노자협조’, 심지어 ‘범죄’라고 인식하는 것도 독점자본의 성장과 세계적 지배를 통해 다른 나라, 민족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침략하는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생긴 종파주의적 사고이다. 그리스공산당의 종파주의적이고 비과학적인 주장을 무조건 추종하면서 반제 ‘민족해방투쟁’의 인식을 점점 더 상실하면서 이 종파주의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자기부정과 실천적 귀결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시대착오적 이론으로 규정하고 배격하는 흐름도 있지만, 이를 제대로, 통일적으로,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특히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부의 분열 역시 제국주의론의 전개 방식이나 방법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도 비롯된다.

자본주의 독점단계 혹은 독점자본주의단계라고 할 때의 ‘독점’이란 세계 자본주의 국제관계에서의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제국의 ‘독점적 지위’와 그의 실질적 기초가 되고 동시에 세계지배의 주체가 되는 ‘독점체’의 형성_소위 국내체제’와 ‘세계체제’-을 통일시켜 파악할 수 있는 총괄적인 단계 원리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독점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고, 새로운 단계의 ‘특수성’을 그의 기본적 경제적 측면에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완전한 내용으로 규정할 경우에는 그 ‘정치적 특성’을 이루는 ‘금융과두제의 억압과 자유경쟁의 배제에 관련하는 모든 면에서의 반동과 민족적 억압’ 또한 경제과정의 국가적 총괄을 매개로 하여 전개되는 자본주의 열강간의 국제적 대항, 총괄하여 경제적 제모순과 그것의 ‘해결’이 ‘정치’를 매개로 전개되고 실현된다는 제 관계를 포함해야 한다.(《제국주의론》, 本間要一郞, 한울)

위와 달리 경제주의적 제국주의론자들은 제국주의를 기본적인 경제적 측면에서만 규정할 뿐, 경제적 측면에서 출발하여 “모든 면에서의 반동과 민족적 억압”으로 나아가는 “완전한 내용으로 규정”하지 못한다.
제국주의를 경제적 본질로만 규정하는 것은 제국주의적 완전한 내용이 되지 못한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을 독점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독점자본을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 지배하고 원료와 시장을 장악하려고 하는 제국주의의 성격을 규정하려고 했다. 제국주의는 경제적 하부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그 위에 선 정치적 상부구조, 바로 국가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독점을 부각시키면서도 정작 그 상부구조로서의 제국주의, 즉 국가의 반동적 성격을 말하지 않는 것은 바로 경제주의의 전형이다.
채만수 소장은 지금 한국사회를 종속된 제국주의라 규정한다. 그리되면 과거 자신이 주장했던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중심적인 논리적 근거를 스스로 다 허물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한국이 더 발전했다 손치더라도 그때에도 국가독점자본주의니 그때나 지금이나 다 제국주의가 된다. 그런데 이 주장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지배와 반동이라고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는 독점이지만 이것만으로 제국주의가 되는 게 아니다. 이는 제국주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독점을 기초로 하지 않는 제국주의는 없지만, 그렇다고 독점만 가지고 제국주의라 할 수는 없다.
주지하듯, 당시 레닌은 제국주의의 5가지 기본적 특징(표지)으로 1) 생산의 집적과 집중으로 독점체의 형성, 2)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으로 금융과두제 형성,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의 특별한 중요성 4) 국제적 독점자본가 단체 형성 5) 자본주의 거대열강에 의한 전 세계의 영토적 분할의 완료이다. 이를 근거로 국내에서는 표지분해 논쟁이 있었다. 이는 한국이 레닌의 제국주의 특징 중 생산의 집적과 독점의 형성, 금융과두제의 형성이 있지만 그 나머지 특징이 충분치 않아 국가독점자본주의임에도 제국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는 발전도상국에서 과연 ‘독점자본주의 단계’가 성립 가능한가라는 이론적 문제에 관해 잠시 살펴보자.
먼저 이를 부정하는 논자들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에 근거하여 독점자본주의는 제국주의에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독점자본주의이면 곧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론자들은 이러한 견해가 레닌의 제국주의의 5개 표지간의 연관과 구별에 대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레닌이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독점단계이다”(제 7장),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은 독점자본주의이다”(10장)라고 정식화 했을 때, 그것은 양자를 동일시 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본질’ 규정으로서의 독점자본주의를 말하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뒤집어 말하면 제국주의는 독점자본주의의 ‘현상’이며 위의 5표지는 모든 독점자본주의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이다.(동일한 본질이 다양한 현상형태를 갖는다는 것은 변증법의 기초이다.) 이리하여 위의 표지 중 독점자본주의를 근거 짓는 전반 2표지는 발전도상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으며, 제국주의의 현상으로서의 3표지는 제국주의에 종속되어 있는 발전도상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이른바 표지분해론)(정원호, 《라틴 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 –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중심으로》)

이것이 과거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성립되는 중요한 논거였다. 이것이 없으면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스공산당의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에 대한 동의 여부는 인식의 문제이자 철저하게 실천의 문제이다. 그리스공산당은 과거 제국주의의 패권이 영국 제국주의에서 미국 제국주의로 옮겨 왔듯이, 현대제국주의는 미국 패권에서 중국 패권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시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의 인식을 그대로 따르면, 미일한 동맹과 조중러 동맹은 다 제국주의 동맹이다. 전자는 미일한 제국주의고 후자는 중러 제국주의와 그 제국주의와 결탁한 조선의 동맹이다. 이러한 인식대로라면 양자 중에 진보성이 있는 것은 없다. 둘 다를 배격해야 하는 양비론을 취해야 한다. 실제 그리스공산당은 중국과 대만의 분쟁을 중국 제국주의와 미제국주의 간 분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트로츠키주의처럼 인민전선을 계급협조라 부정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트로츠키주의가 그런 것처럼, 현실사회주의를 다 부정하거나 비방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중국은 제국주의로, 쿠바는 시장사회주의로, 조선은 3대 세습 족벌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진보성을 부정하고 반동 정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류의 진보적 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배격하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와 무정부주의의 정치적 특성인데, 그리스공산당이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리의 치열한 논쟁은 현학적인 것이 아니다. 심각한 인식상의 문제도 그렇지만 도대체 노사과연은 무엇을 위해, 어떠한 실천적 과제를 끌어내기 위해 그리스공산당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변호하고 나서고 있는 것인가?
역사적으로도 학살과 침략, 수탈, 전쟁으로 점철됐지만, 이스라엘의 야수와 같은 학살을 배후에서 지지, 지원하는 미제와 서방제국주의가 바로 제국주의의 적나라한 실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근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이집트 나세르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진보적 군인들이 프랑스 제국주의에 종속, 결탁되어 있는 ‘매판’정권을 쿠데타로 전복하고 권력을 잡았다. 니제르 인민들은 이 쿠데타를 계기로 프랑스 제국주의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대대적인 투쟁을 전개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이 프랑스 제국주의의 군사개입 기도를 반대하고 나서 이를 좌절시켰다.
프랑스 제국주의가 알제리에서 보여준 끔찍한 학살을 비롯해서 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 지배와 수탈의 역사, 그리고 최근 여기에 맞서서 니제르에서 프랑스 철수 요구는 바로 제국주의에 맞서는 아프리카 인민들의 반제자주 투쟁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 중국이 ‘기본적으로’ 조선, 쿠바, 베네수엘라, 팔레스타인, 이란, 시리아 등 억압 받는 나라, 민족의 주권을 존중하고 국가 간에 호혜와 우애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이와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는 이 땅의 학살, 점령자, 침략자 미제국주의의 반동성과 야수성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군국주의 일제에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과연 중국, 러시아가 제국주의라면 도대체 한국에서 이들 나라들에 대한 반제의 과제를 무엇에서 찾을 수 있는가? 미일한 ‘동맹’이 한반도(조선반도)와 동북아에서 조중러 동맹을 포위, 고립, 말살시키기 위해 ‘가치동맹’을 형성하고 있고 윤석열 정권이 여기에 참가하여 전쟁책동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과연 중국, 러시아가 제국주의라는 인식으로 어떻게 이러한 제국주의 ‘가치동맹’의 반동성과 침략성, 반동성을 제대로 폭로하고 진보적인 실천적 과제를 내올 수 있는가?
한국만이 아니다. 쿠바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미제의 뒷마당으로 불리는 남미 국가들이 미제의 간섭과 횡포에 맞서 자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하는데 온 힘을 집중하는 대신 이들 나라들에 우호적인 중국과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돌리고 투쟁해야 하는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또 어떤가?
제국주의자들의 파렴치한 이중잣대와 프로파간다를 전격 폭로하고 침략, 전쟁 책동, 제재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시점에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중국조차 제국주의라 규정하고 이를 입증하는데 혈안이 되어 미제와 서방제국주의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 자들, 세력들이 과연 트로츠키주의자들에 이어 제국주의의 신 벗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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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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