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혁명 선봉에 선 니제르 쿠데타

출처:
http://www.lalkar.org/article/4247/nigerien-coup-spearheads-a-popular-revolution?fbclid=IwAR2cnyTiqpp6hfOsQTGK3k10_ij9OvXGGaXAihF7h0nO_2nCJ6iApe3xe7c
2023년 10월/11월 

역자: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사헬(Sahel)*에 위치한 또 다른 매판 정권이 애국적인 군 장교가 지도하는 민중봉기에 의해 무너져버렸다. 이와 같은 민중봉기는 마치 전염병처럼 확산될 수밖에 없다.

* 사하라 사막 남쪽 대서양으로부터 세네갈 북부, 모리타니 남부, 말리에 있는 나이저 강의 대만곡부(大彎曲部), 부르키나파소(옛 이름은 오트볼타), 니제르(Niger) 남부, 나이지리아 북동부, 차드 중남부와 수단 공화국까지 걸쳐 있다.(역주, 다음백과)

2023년 7월 26일 니제르 대통령이 통솔하던 경비대가 대통령 무함메드 바줌을 체포하는 일이 발생했다. 경비대는 오호모두 모하마두(Ouhoumodou Mohamadou)가 이끄는 정권을 해체하고, 대통령 경비대장인 압두라함 치아니(Abdourahamne Tchiani) 장군이 ‘조국 수호를 위한 국가협의회’라는 이름의 새 정부 지도자임을 선포했다.

압두라함 치아니(Abdourahamne Tchiani) 장군(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군부 지도자들

이번에 발생한 쿠데타는 단순히 니제르 지배계급 사이의 경쟁이나 파벌들 간의 권력쟁투가 아니라는 것이 곧 명백해졌다. 거리 시위는 쿠데타 지도자들이 니제르 대중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러한 지지는 단순히 니제르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사헬 지역을 아우르고 있다.
첫 공식 성명에서 신생 정부는 축출된 바줌 대통령이 “수많은 죽음과, 추방, 굴욕, 좌절이라는 가혹한 현실 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만사가 잘되고 있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오늘날 그들의 방식은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가져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바줌 대통령이 경제 위기 관련 대책이 부족했고, 안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도 비난했다.
이번 쿠데타는 니제르가 수십 년간 고통받아왔던 산적한 문제를 부각시켰으며, 이 모든 문제 뒤의 총체적인 원인은 프랑스 제국주의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이는 니제르뿐만 아니라 전후 반식민지 혁명의 결과 프랑스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을 쟁취한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의 사례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취한 반프랑스적인 조치에 대한 대중들의 진심어린 지지는 니제르 대중이 자국의 문제, 즉 막대한 철광석, 금, 우라늄 및 석유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문제의 결정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니제르 인민들은 월 평균 소득이 51달러에 불과한 빈곤의 수렁에 빠져 있다. 니제르는 프랑스 원자력 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데 사용되는 막대한 우라늄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니제르인 7명 중 1명만이 전력 혜택을 보고 있다. 또한 니제르 인구의 1/5 미만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여전히 원시적인 자급 농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런 저개발 국가의 열악한 발전상은 지독히 낮은 수준의 문해력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니제르인 인구 중 오직 37%만이 글을 읽을 줄 안다.
한편 니제르 우라늄의 산업 추출은 안전하지 않은 추출 관행으로 인해 생태파괴와 더불어 광산 인근지대에서의 암 발병이 실제로 전염병 수준으로 확산되게 만들었다.
이 모든 문제는 항상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이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 국가들에게 승인했던 의도적으로 불완전한 독립 형태로부터 생겼다. 그것은 항상 이 나라들에 대한 식민 지배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경제적, 정치적인 발전을 질식시키도록 고안되어 있고, 따라서 아프리카 자원에서 최대 이윤을 뽑아내는 식민 지배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

 
독립과 신식민주의

 
니제르는 이전 프랑스령 서아프리카로 알려진 프랑스의 광대한 식민지의 일부였다가 1960년이 되어서야 프랑스로부터 공식적으로 독립했다. 니제르의 독립은 모든 유럽 식민지 세력에 대한 일련의 전쟁과 혁명 그리고 봉기 덕분에 가능했다. 이는 러시아 10월 혁명과 네덜란드 지배자를 인도네시아에서 몰아낸 반식민주의 혁명, 그리고 인도차이나 전쟁에서의 프랑스의 패배와 영국에 맞선 인도의 독립 쟁취에 큰 영향을 받았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일시적인 좌절과 패배를 포함해 이 혁명은 순탄하지 않았으나 식민지 지배 세력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엇다. 프랑스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제국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은 알제리 독립 전쟁에서의 패전이었다. 10년도 더 되는 잔혹한 전쟁 끝에 프랑스 제4공화국은 1958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의 영웅 샤를 드골 장군이 다시 권력을 잡게 되는 군사 쿠데타로 무너지면서 사실상 붕괴됐다.
샤를 드골은 식민지 독립을 막기 위한 대규모 전쟁의 지속은 너무 위험하다고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가 식민지 국가의 공식적인 독립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입장으로 전환했다. 이와 같은 드골의 입장전환은 프랑스 내의 극우 반동 성향의 장교단 내에서의 대규모 반란을 초래했고, 장교단은 전쟁 종식과 알제리 독립을 위한 협상에 반하여 실제로 드골의 암살을 시도했다.
니제르의 독립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1960년 니제르는 프랑스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니제르의 독립의 승인되기 전부터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니제르에 대한 지속적인 착취를 위협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탄압하고 있었다. 1957년 아프리카 사회주의 운동은 지보 바카리(Djibo Bakary)를 정부수반으로 선출했지만, 1958년 프랑스 제국주의에 의해 전복되었고 지도자는 추방당했다. 그 이후 사회주의 및 범아프리카주의 운동은 프랑스가 직접 낙점한지도자들이 이끄는 친불정권에 의해 탄압 당했다. 진정한 독립을 실현하려는 민중의 시도가 끊임없이 좌절된 결과, 니제르는 최근에 발생한 쿠데타를 포함해 격동의 역사 속에서 겪은 6번의 쿠데타와 함께 정치 및 경제적 불안정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프랑스 제국주의는 한 세기가 넘도록 아무런 제한 없이 누려온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경제적으로 매우 유익한 착취를 포기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프랑스 전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과 자크 시라크가 말한 바와 같이 아프리카 국가의 부와 자원을 이용할 수 없다면 프랑스의 지배계급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식민지 국가들을 상대로 직접적인 점령과 통치를 중단해야만 했던 모든 제국주의 국가들 또한 프랑스와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지 국가의 노동자와 자원을 과도하게 착취하여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체계와 방법이 필요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저서 『제국주의, 자본주의 최고의 단계(제국주의론)』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제국주의 체제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상품보다는 자본 수출에 압도적으로 종사하는 것이다. 반식민주의 혁명 물결이 지나간 이후에도 이러한 방식이 유지되었지만, 제국주의자들이 전 세계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있는 혁명적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은 수정이 필요했다.
제국주의 열강은 새로 독립한 국가들의 경제에 대한 종속적인 지배력을 이용해 이들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제국주의가 니제르, 케냐, 말리, 부르키나파소 같은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이들 국가가 계속해서 자원 채취의 장소로만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간다 대통령(공산주의자가 아님) 요웨리 무세베니가 최근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제국주의 열강은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원자재와 농산물을 가져와 다른 곳에서 시장성 있는 상품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원자재에 설정된 가격이나 과잉 착취된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임금 등에서 매우 적은 대가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세베니 대통령이 연설에서 말한 요점은 이러한 체계가 아프리카를 저개발 상태로 유지시켜 강력한 산업 기반을 구축할 수 없게 함으로써 아프리카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무세베니 대통령이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간에 가이아나의 위대한 맑스주의 역사가 월터 로드니(Walter Rodney)의 저서 『유럽은 어떻게 아프리카를 저개발 국가로 만들었는가?(How Europe underdeveloped Africa)』(1972)에서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의 발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본주의 유럽의 발전을 위한 아프리카 식민 착취 강화’를 냉소적으로 줄여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식민주의가 극심했던 시기뿐만 아니라 현대 신식민주의 시대에도 변형된 형태로서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신식민주의라는 이론적 개념은 반제국주의자이자 범아프리카 지도자이자 영국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통해 가나의 초대 대통령이 된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에 의해 정교화 됐다. 은크루마는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신생국가들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이전 식민지 지배자들이 신생 독립 국가들을 착취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메커니즘을 책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적으로는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제 경제 체제와 정치 및 정책적으로는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신식민주의, 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 1965)

콰메 은크루마의 신식민주의 정의는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천연자원이 매매되고 지속적으로 통제되는 니제르와 같은 수많은 국가들에 확실하게 적용된다. 그렇다면 니제르의 우라늄 광업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도록 하자.
현재 니제르의 우라늄 광산 지분의 63%는 오라노 회사(Orano corporation)가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니제르 국영 광산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오라노의 최대 주주국은 주식의 45.2%를 소유하고 있으며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충분히 좌우할 수 있는 프랑스다. 세계원자력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오라노는 세계 3대 우라늄 생산업체 중 하나다. 오라노 회사의 가장 최근의 수익 보고서를 보면, 42억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고, 2023년 올해는 최소 43억 유로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따라서 우라늄 채굴 사업은 프랑스에게 국가적으로 매우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며, 니제르는 이 사업의 아주 중요한 핵심요소다.

프랑스의 국영에너지 기업인 EDF(Electricite de France)도 원자로 원료로 니제르 우라늄에 의존하고 있으며, 매년 사용하는 우라늄의 20%가 니제르 광산에서 생산된다.
독립한지 60년이 지난 이후에도 거의 전적으로 구 식민지 세력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수익성 강한 사업은 콰메 은크루마 동지가 신식민주의 체제 권력에 대해 얼마나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지를 다음과 같은 말이 입증한다.

“아프리카의 다양한 자원이 아프리카의 발전에 무궁무진하게 사용된다면 아프리카는 현대화된 세계 대륙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자원은 외세국가의 이익과 그들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 왔고, 현재도 마찬가지다.”(같은 책)

사실 니제르의 독립(그리고 수많은 옛 프랑스 식민지의 독립) 또한 CFA* 프랑 부과로 인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가 부과한 통화는 1945년 프랑스의 프랑이 달러환율에 고정되었다가 평가 절하된 후에 나온 것이다. 본질적으로 CFA 프랑을 사용하게 되면 프랑스 상품은 이전 프랑스 식민지로 그 어떠한 무역장비도 없이 수출할 수 있게 되고, 원자재(예를 들어 우라늄)는 프랑스로 다시 보낼 수 있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 Communauté Financière d’Afrique(아프리카 금융기구: 역주)

또한 프랑스 정부는 통화를 통제함으로써 이전 식민지의 통화정책을 통제할 수 있었다. 1999년 유럽에서 유로화가 출범하면서 이러한 통제권은 니제르 국민들의 영향력에서 더욱 멀리 떨어진 유럽 중앙은행으로 넘어갔다.
CFA 프랑을 사용하는 국가에 부과되는 또 다른 조건은 해외 자산의 50%를 프랑스 재무부에 예치해야함을 의미한다. 이런 악랄한 체계는 독립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정부가 사실상 프랑스의 자본과 상품이 니제르로 쉽게 유입되고, 자원이 쉽게 프랑스로 수출될 수 있는 상황에 갇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통화 정책에 대한 프랑스의 지속적인 통제가 더해져 강력한 신식민지 통제 시스템이 니제르를 가난하고 저개발 상태로 유지해 왔으며, 이는 니제르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전 세계에 퍼진 신식민주의 체제의 또 다른 측면은 부채의 무기화다. 국제통화기금(IMF)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니제르 정부의 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51.3%인 49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온다. 제국주의자들에게 니제르와 같이 가난하고 저개발 국가의 부채는 정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마치 아프리카의 혁명가 토마스 상카라가 1987년 살해되기 직전에 행한 연설에서 “제국주의에 의해 통제되고 지배되는 현재의 상황에서 부채는 외세가 형성한 규칙을 통해 아프리카 성장과 발전을 정복하기 위해 능숙히 관리되는 정복이다”(‘부채에 대항하는 연합 전선’, 1987년 7월 29일)라고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신식민주의의 또 다른 중요한 기둥은 제국주의자들이 전 식민지에서 상대적으로 대규모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헬 지역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부르키나파소, 말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니제르에서 등장한 지하디스트 단체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전개한다는 명분 하에 상당수의 프랑스의 군대가 재투입됐다.
2011년 미국, 프랑스, 영국에 의해 리비아가 잔인하고 참혹하게 파괴된 이후 니제르에서의 지하디스트의 공격은 훨씬 더 심각한 문제가 됐다. 이 지역은 옛 리비아 군대의 비축 무기에서 탈취한 무기와 제국주의자들이 대리 세력에 제공한 무기가 넘쳐났다. 미국은 또한 알카에다 및(혹은) 이슬람국가(Isis)와의 전쟁을 구실로 니제르에 최소 1,000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공중 드론 함대기지 건설을 허용하도록 강요했다. 이 모든 것이 ‘극단주의와의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진행됐지만, 제국주의 국가의 부르주아 언론이 쏟아내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군대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반란을 악화 시켰다. 1,000명의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니제르에서는 지하디 공격이 계속되고 있으며, 주로 군인이나 경찰이 100명에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니제르 대중은 미군과 프랑스 군대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주인의 경제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니제르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명백히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집권한 이후 프랑스 기지 밖에서의 대규모 반 서방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반란의 점진적인 성장과 러시아의 역할

 

니제르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부르키나파소, 말리, 기니에서도 비슷한 쿠데타가 발생하여 민족주의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하는 형태로 확산됐다. 이들 국가 모두 니제르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프랑스의 신식민지 지배 하에서 문제와 갈등을 겪어온 역사가 있다. 세 나라 정부 모두 나이지리아 정부가 니제르를 침공해 축출된 바줌 정권을 복귀시켜야 한다는 제안에 격렬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알제리도 이에 동참했는데, 알제리는 민간 정부의 복원을 촉구하면서도 군사 개입에 대해서도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지금까지 서아프리카 국가경제 공통체(Economic Community of West African States)의 나라들은 군사 개입 가능성을 놓고 분열되어 왔으나, 분명히 이들 국가 중 더 반식민지적인 정부들이 니제르에 대한 확고한 지지에 영향을 받았다. 에코와스(Ecowas)는 과거 프랑스, 영국,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국가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경제 및 군사력을 주도하는 국가는 나이지리아다.
나이지리아 대통령 볼라 티누부(Bola Tinubu)는 에코와스의 개입에 가장 열정적이지만, 최근 나이지리아 상원이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는 등 정부 내에서도 극심한 분열에 직면해있다. 이 글을 집필하는 와중에 아프리카 연합 또한 니제르에 대한 군사 행동에 반대하기로 투표했다. 아프리카 정부들 사이의 이러한 분열은 제국주의의 약화뿐만 아니라 반제국주의 대의를 더 많은 대중들이 공감하는 것에 대한 매판 정권의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의 경우, 이브라힘 트라오레(Ibrahim Traore) 신임 대통령은 위대한 토마스 상카라의 미완의 혁명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 최근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에서 트라오레 대통령은 부르키나베 정부가 제국주의자들과 반동 지하디스트 세력으로부터 혁명을 수호하기 새로운 인민 의용대를 조직했다고 언급했다.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한 대중동원은 니제르와 다른 곳에서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마오쩌둥이 중국 혁명에서 농민 대중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듯 말이다.

“중국의 혁명적인 농민들은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쇠사슬과 족쇄를 부수고 해방의 길로 가열차게 돌진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모든 제국주의자, 군벌, 부패한 관리, 지방 폭군, 사악한 상류 계급을 무덤 속으로 쓸어버릴 것이다.”(‘후난 농민 운동 조사 보고서’, 1927년 3월)

현재 니제르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은 단순한 군사 폭동으로 절대 볼 수 없다. 아프리카의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대중들이 다시 봉기하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인해 그들의 진보에 가해진 크나큰 역사적 좌절이 다시 역전되기 시작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에 의한 나토 제국주의 주도 세력의 임박한 패배는 전 세계 수백 수천만의 노동자와 농민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고 있으며, 특히나 아프리카에서 그렇다. 만약 니제르가 프랑스 식민주의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는 투쟁에서 성공을 쟁취한다면, 새로운 혁명 물결이 확산되어 케냐와 같은 곳에서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적 지배를 위협할 것이며, 유럽에서의 군사적 보증인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에 크나큰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성공적인 아프리카 해방투쟁과 민족해방전쟁은 이미 약화되어 가고 있는 그리고 식민지 지배에 기생하고 있는 유럽과 영국 제국주의 세력에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의 노동자들은 제국주의 지배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니제르 민중의 정당하고 올바른 투쟁에 전폭적이고 전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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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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