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민테른 여성해방론과 정체성 ‘정치’

* 이 글은 지난 7월 8일 노동전선 《현장과 광장》 편집위원회 주최 강연 발표문을 보충한 것입니다.

 

코민테른 여성해방론에서는 오늘날 유행하는 정체성 ‘정치’, 상호교차성 페미니즘이니 젠더, PC(정치적 올바름)… 이런 논의들이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첨예한 사회문제, 여성문제를 전혀 해명하지 못하는 옛날 고리타분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신 코민테른 여성해방론은 여성억압이 자본주의 제국주의 착취질서 억압질서에 있기 때문에 여성을 혁명의 주체, 기간대오로 조직해 혁명투사들이 혁명해야 한다는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행하는 정체성 정치의 근본한계를 지적하는 비판들도 결국 이러한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1. 정체성 ‘정치’

 

* 정체성 정치(나무 위키)

1. 개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란 종교, 인종, 성별, 성 정체성, 성 지향성, 생물다양성[1] 등의 정파(政派)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치세력을 구성하고, 해당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이익과 관점을 집중적으로 대변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2. 기준정체성 정치를 하는 집단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이 대변하는 집단이 사회적 약자로서 구조적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구조적 차별, 억압을 없애기 위해서는 차별받는 해당 정체성에 의거한 정치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편적인 인권 확산 주장’과 ‘정치적 의견 대변’이 혼재하는 경우가 많기에 정치적 의견을 대변하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을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정체성 정치와 그게 아닌 정치를 나누는 첩경은 “네가 속해 있는 집단이 무엇인가?”를 정치철학의 핵심으로 하는 정치를 말한다. 민족주의 단체, 조직화된 종교 단체, 페미니즘 등이 정체성 정치에 해당한다.

반면 “니가 속해있는 집단이 무엇인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없는 정치이념은 그렇지 않다. 물론 사회 전체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집단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특정 정체성을 내재화할 필요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다. 개인주의적이며 따라서 그 해석이 개인마다[2] 자유로운 개념이 된다. 정치나 종교적인 목적의 사상이라도 생태주의, 계몽주의, 채식주의, 자유주의, 이신론, 무신론 등은 정체성 정치에 해당하지 않는다.

3. 정체성 정치의 출현과 출현 원인

정체성 정치의 기원은 한 두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지만, 매사추세츠 대학 애머스트 캠퍼스의 명예교수인 Howard J. Wiarda에 따르면 적어도 70년대, 심지어 60년대까지도 소급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3] 일어난 68운동에 의해 촉발된 신좌파 세력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신좌파 특유의 정치 행태를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선, 1960년대에 세계 곳곳의 공산주의 국가에서 정책 실패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 또는 공산당에 의한 대량학살에 관한 소식들이 서유럽과 북미에 속속히 전해지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서방 세계의 좌파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차도 공산주의,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가 실패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기 시작하면서[4] 기존의 억압자피억압자라는 서사는 유지한 채, 자본가와 노동자의 자리에 각 정체성을 넣은 것(강조는 인용자)이라고 분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정체성 정치는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개인숭배’ 비판과 ‘중공업 우선 정책’ 비판, ‘대숙청’ 등 악마화 이후 쏘비에트 체제와 그 체제를 낳은 맑스주의가 더 이상 인류의 진보적 대안이 아니라는 회의주의, 청산주의로 인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좌파’는 ‘구좌파’의 대립물인데 이들은 기존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노동자 민중에 대한 억압기구이자 탄압기구로 보고 이 권력을 타도하고 자본을 몰수하여 노동자 인민이 정치권력과 생산수단을 장악하여 사회적으로 운영하는 운동이 ‘구좌파’, 즉 맑스레닌주의의 원칙과 방식이 더 이상 대안이 아니라고 봤던 것입니다. 신좌파의 정체성 정치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대립, 계급적대 대신에 여성과 남성을 억압자-피억압자라는 구도로 대체해서 이 사회구조와 모순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자본과의 투쟁 보다는 주로 여성의 남성에 대한 투쟁이 정체성 ‘정치’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한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은이는 “인종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했던 과거의 해방적인 대중운동과 다인종적 엘리트의 정치에 결부된 현대의 정체성 이데올로기 사이에 경계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정체성 정치는 1977년 미국 보스턴에서 결성된 흑인 레즈비언 단체 컴바히강공동체에 의해 처음 정치 담론으로 도입됐다. 이들은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에서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의 억압에 가로막힌 흑인 여성들의 정치적 실천을 위해 ‘우리는 가장 심오하며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 정치가 다른 누군가의 억압을 끝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정체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지은이가 볼 때 이들의 주장과 오늘날 이데올로기가 된 정체성 정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컴바히강공동체는 결코 “정치가 정치와 연관된 개인들의 구체적 정체성들로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들이 무엇보다 집중했던 것은 고정된 정체성에서 비롯하는 권리가 아니라 “정치적 이론과 실천을 구축하고 정의할 권리”였으며, 그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연대’였다. “인종주의 없는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고 한 맬컴 엑스, 혁명적 민족주의와 반동적 민족주의 사이를 구분했던 휴이 뉴턴 역시 억압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중의 정치적 실천을 핵심 과제로 삼았다.”(최원형 기자, 현실 속 억압들 직시하며 ‘정체성 정치’ 극복하기, 한겨레신문, 2021년 11월 12일)

 

오인된 정체성

아사드 하이더 (Asad Haider) (지은이)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대표적인 미국 흑인운동가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온건하게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한 마틴 루터 킹을 집중 선전하고 있지만,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장 비천한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 급진적인 흑인 혁명가로 변신한 말콤 엑스 역시도 여전히 많은 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말콤 엑스의 “인종주의 없는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결국 인종주의는 순전히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착취와 억압제도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 맑스가 말한 바처럼,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다.”(《임노동과 자본》)고 할 수 있습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역사적으로 이른바 ‘상업무역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자본주의 시대에도 계속된 흑인노예 사냥과 강제이주, 학살, 착취와 억압이라는 현실에서 파생된 의식이었습니다. 태초에 차별과 억압이 있고 그 반영으로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생겨났습니다. 더불어 인종차별 이데올로기는 흑인 차별과 억압을 더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말콤엑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인종주의는 필연적이며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목표를 가지고 인종주의 반대투쟁을 해야 한다는 정치적 결론에 도달했던 것입니다. 결국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맞선 투쟁은 “억압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대중의 정치적 실천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쿠바 혁명 지도자 카스트로와 만난 말콤 엑스

그런데 위 정체성 정치 비판글은 다음과 같이 기존 맑스주의 한계를 비판합니다.

‘계급이 우선’이라며 인종, 젠더, 장애, 연령, 국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모순들을 경제적 모순의 뒤로 미뤄놓는 좌파 일각의 태도 역시 정체성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는 불충분해 보인다.

그런데 맑스주의(레닌주의)가 과연 그렇게 배타적이고 환원적이고 경제주의적인가요? 이는 기계적 유물론이지 변증법적 유물론이 아닙니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만 봐도 노동자들은 인민의 호민관이 되고 사회전체의 문제, 심지어 다른 계급의 문제에 대해서도 유물론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 정체성 정치의 배경

 

유럽에서 흐르시초프 수정주의 책동 이후 반쏘 반스탈린 공세가 일어나고 공산주의 운동이 유로꼬뮤니즘으로 타락한 이래 등장한 68혁명 당시 등장한 상상력에게 권력을 내세운 운동은 반자본주의 운동이었지만 정치적 전망을 가지지 못한 무정부주의 운동이었습니다. 1970년대의 흑인, 여성들의 민권운동, 인권운동은 진보성이 있었지만 이후 계급분열정치, 몰계급 정치, 무정부주의 정치와 뒤섞여 버리고 심지어는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이 이를 수렴한 이후 일부는 계급착취, 제국주의 지배를 은폐, 정당화하는 반동정치로 전락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 1968년 5~6월의 봉기 이후 이어진 사회운동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68혁명은 바로 이런 차이들을 대상으로 한 포스트-근대적인 혁명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장악해 평등자유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비정치적으로 간주되곤 했던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새롭게 폭로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1970년대에 미국 쪽에서 형성된 페미니즘의 유명한 구호는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였다. 일상의 정치화를 주장한 이 구호는 프랑스의 페미니즘, 더 나아가 68혁명 자체가 공유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드골의 복귀로 종결된 ‘표면적 실패’ 뒤에도 68혁명이 다양한 사회운동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사회 전체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내게 된 것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최원 철학자, 글로벌이슈 | 프랑스 68혁명 50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표면적 실패’ 뒤에도 혁명은 계속됐다, 신동아, 2018-06-13)

“정치권력을 장악해 평등자유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 모든 운동, 투쟁은 대안 없는 무정부주의 운동이고 실제로는 ‘비정치적인’ 운동입니다. 기존 부르주아 정치권력, 제국주의 질서와 투쟁하지 않는 이러한 ‘투쟁’, ‘운동’은 체제 내에 포섭된 ‘운동’입니다. 이러한 운동은 “정치권력을 장악해 평등자유를 선포하는 방식”과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를 대립시키는 운동입니다. 결국 이런 식이라면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 인간이고, 집단적 인간이고 정치적 인간이고 계급적 인간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 배경과 분리된 개인은 어디든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계급적 소속, 이해관계, 세계관과 분리된 초월적, 중립적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유럽과 쏘비에트권의 해체 이후 ‘청산주의’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유럽에서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탄핵(반맑스레닌주의 수정주의) 이후 대두된 반스탈린 반쏘비에트 노선과 공산주의 운동의 유로꼬뮤니즘으로의 타락 이후 이러한 흐름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미동맹 반대투쟁으로 격렬한 투쟁이 일어났으나 이미 1950년대 중반 이후 후르시초프 수정주의 등장과 스탈린 탄핵 이후 벌어진 중소 간 분쟁으로 혼란을 겪고 나서 1960년대부터 공산주의 운동은 우경적으로 변모하였습니다. 마침내 일본공산주의 운동은 천황제를 인정하고 일본 제국주의 타도를 부정하는 의회주의 정당으로 타락해버렸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트로츠키주의를 비롯한 신좌익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대중운동 내에서는 신좌파 운동이 대세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유럽과 일본의 상황과 시대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일제로부터 조선의 해방 이후 조선은 인민위원회의 전국적 건설로 해방 열기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주지하듯.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점령군’으로 등장하여 이 대중적 혁명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백만 이상의 혁명적 활동가, 대중들이 백색테러로 학살당하고 한국전쟁 이후로 대중적 혁명운동은 명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4.19로 학살 진상규명, 자주통일 운동이 일어났으나 이승만의 하야 이후 미국이 내세운 박정희 정권은 군사파쇼 백색테러로 이남을 반공주의 요새로 만들었습니다.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1960년대 혁명운동이 대혼란에 빠져 들고 청산주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대신 무정부주의 신좌파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면 한국에서는 세계사적 조류와 다르게 1980년 5월 광주학살 이후 다시 대중적인 투쟁이 거세게 일어나고 혁명운동이 부활했습니다. 1980년대 미제와 신군부의 광주학살 이후 반미반제, 통일운동, 민주주의 투쟁과 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위정당 운동 등 ‘불의 시대’, 즉 혁명의 시대라 불리는 시대로 부활했습니다. 이 때에는 사회모순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사회성격논쟁, 사회구성체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때에는 혁명의 방법, 순서, 집중점은 달라도 전부 이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기반을 두고 이 사회를 전면 개조하려는 논의와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권의 해체 이후 청산주의가 대두하면서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상조류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와서 이러한 사상조류는 ‘지배적’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거대담론, 혁명, 계급해방, 착취철폐, 민족해방, 여성해방을 버린 정체성 정치가 일부 진보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보편성을 상실하면 배타적이거나 협소하거나 더 나아가 일부 반동적으로 되기조차 합니다.

아프간에서 젠더는 미제의 지배 학살을 은폐하고 정당화는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미제의 철군 이후 국내외 언론 대다수도 탈레반의 봉건적 반동성, 여성억압을 집중 부각시키며 미제의 학살과 약탈상을 은폐,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성적, 민족적, 장애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건 각성의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이것이 보편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혁명성과 결합하지 못하면 배타성 폐쇄성에 갇혀 버려 지배계급의 분열하여 통치한다는 계급지배 논리에 이용될 수 있습니다.(이는 노동조합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욱이 각각의 정체성도 또다시 수없이 많은 정체성으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기본성 말고도 논바이너리처럼 수많은 성별 정체성으로 나눠진다고 보는 경우도 있는데, 심지어 이 가운데는 ‘젠더플럭스’라고 하여 성별 정체성의 강도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여성 내부의 단일한 정체성도 사실 무조건적으로 단일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여성 자본가계급과 여성 노동자계급은 같은 성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세계관, 사고, 경제적 위치 등이 전혀 상반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중들의 불평등,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해결 열망이 ‘공정성’의 요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정성은 객관적 기준이 모호합니다. 나의 공정성이 너의 불공정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본가들에게 공정성은 자유로운 계약이라는 미명 하에 국가의 비호를 받으며 마음껏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일 것입니다. 반대로 노동자의 공정성은 권리를 인정받고 안정된 조건에서 안정된 임금을 받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부르주아의 공정성은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는 걸 가로막습니다. 청년과 중장년, 실업자와 취업자를 분리, 분열시켜 계급통치에 이용해먹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의 계급분열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청년 일부, 그것도 혜택 받은 일부 청년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가로막으로 자본의 구사대로 활동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도 지난한 계급투쟁, 노조가 투쟁으로 성취한 권리를 누리고 있습니다.

민족적 정체성, 민족의 자주와 자결의 권리도 제국주의의 민족억압과 자배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습니다. 여성의 억압도 자본의 착취와 억압, 이러한 물질적 차별을 가능하게 하는 정신적 차별 및 억압, 이데올로기와 싸우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처절한 투쟁에서 보듯, 이들 장애인들의 억압과 권리도 국가권력과 싸워야 하고 이들이 조장하는 반장애인 이데올로기와 부단히 싸워야 합니다.

인종주의, 이 일종인 오리엔탈리즘도 제국주의와 무관한 이데올로기, 차별이 아닙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자본제적 차별과 억압, 사업장 이동의 자유 제한 같은 봉건제적 억압 같은 중첩된 차별과 억압도 자본이 지배하는 착취사회의 모순들입니다.

결국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계급처럼 생산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단일한 계급적 위치를 부여하는 계급이론이 가장 보편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계급적 출신이 계급의식의 무조건적 보증은 아닙니다.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뛰어넘는 유산계급 출신 혁명가도 있을 수 있고, 프롤레타리아로서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배반하여 지배계급의 세계관을 가지는 경우도 있고 지식인들의 경우는 누구에게 봉사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계급적 역할이 서로 다르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결국 계급과 계급적 이해를 기준점으로 나눠지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다원주의는 소부르주아정치이자 이로써 그 계급적 성격상 노동계급성 혁명성과 결합하지 못하면 부르주아 제국주의 정치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의 폭력이나 차별에 맞서는 ‘인권’은 유럽이나, 선진국이나, 문명국과 같은 한정된 특수성의 세계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에 대한 방호적이고 치유적인 일정한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보편적 인권’이 ‘문명과 야만’이라는 구조적 폭력 위에 안주하면서 ‘인권’의 수호자인 양 고상한 양 설교를 한다면 오만한 위선일 뿐만 아니라, ‘인도에 대한 범죄(Crime against Humanity)’의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언뜻 반패권적이고, 반권력적으로 보이는 평화, 민주, 인권이라는 가치들도 서구에서 태어나 서구의 안경을 쓰고 세계를 노려보고 있으니, 결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직시하며 인권의 근본문제를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서승, “동아시아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한다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경향신문, 초판 1쇄 2019년 12월 23일, 초판 2쇄 2020년 4월 1일)

신좌파 다원주의 사상은 결국 개인인권과 차별도 해결하지 못하고 분열 해체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서방 제국주의 인권과 인도주의 담론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3. 페미니즘 인식의 배경

 

오늘날 한국에서 유행하는 페미니즘이 어떠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소개되고, 확산됐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현대의 여성해방론은 억압과 해방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통찰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전통적인 이론의 보편주의와 총체성을 거부하고 탈중심화된 개체성과 기준들 자체가 복수적인(plural) 사유체계들, 이론들, 현존하는 패러다임들, 생활양식, 사회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인 것일 대 여러 대안적인 패러다임들의 서로 경쟁하는 진리 주장을 일괄해서 평가하고 판단하게 하는 어떤 실질적인 광범위한 하나의 틀이란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포스트 모더니즘은 전통적인 이론이 추구한 ‘큰 이야기’(grand narrative)가 배제해온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이다.(태혜숙 효성여대 교수, 영문학, 포스트 모던 여성해방론의 현황과 과제, 1993년)

포스트 모던 여성해방론은 이성애중심 사회구조의 일면성과 획일성을 어느 여성해방론 흐름에서보다도 강력하게 비판한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던 여성해방론에서는 그 사항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갖고 체계화하고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nal is political)라는 포스트모던 여성해방론의 핵심 주장과 이어진다. 이 주장은 바로 일상 삶의 정치(politics of everyday life)와 국지적 정치(politics of local)와 같은 포스트모던 정치의 입장을 근거로 함으로써 정치적으로도 책임지는 태도를 취하려고 하며 나아가 정치의 의미도 바꾼다. 이런 정치적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처럼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질적 변화와 같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기 보다는 일상 삶의 주변에 널려 있는 일면 사소해 보이는 문제부터 구체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것이다.(같은 글)

아직 이 시기는 청산주의 시대가 열렸으나 1980년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시기이므로 ‘포스트모던’하기는 하지만 페미니즘 대신에 ‘여성해방론’이라는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포스트모던’한 ‘여성해방론’은 맑스주의 여성해방론일 수 없다는 것이 인식 출발과 전체에서 보입니다.

맑스주의의 “보편주의와 총체성을 거부하고”, 계급과 노동 중심성을 부정 내지 경시하고 탈중심화된 개인들을 내세우는 운동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와 맞서 싸우는 ‘여성해방론’이 될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이러한 논의들은 ‘큰 이야기(grand narrative)’와 사유의 총체성을 부정하고 ‘상대적’이고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논의들을 부각시켰다. 큰 이야기, 계급이니 착취니 민족이니 분단과 통일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거대담론을 부정하는 논리가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를 넘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질적 변화와 같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기 보다는 “일상 삶의 주변에 널려 있는 일면 사소해 보이는 문제부터 구체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이러한 다원주의는 객관진리는 인식할 수 없다는 비변증법적 불가지론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해서 진리는 우리 앞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상의 허물을 통해 그 진리를 편편(片片)이 볼 수 있을 뿐이다.”

<장미의 이름> 프롤로그에 나오는 말이다. 신약성서 고린도전서를 인용해 쓴 구절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인가 여럿인가. 분명한 것인가 모호한 것인가. <장미의 이름>을 통해 에코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하는 이성의 한계를 주목하고 사유의 복수성을 옹호한다.

에코에게 진리란 여럿이며, 그러기에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다. 이렇듯 <장미의 이름>은 에코의 다원주의 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변동과 밀접히 관련돼 있었다. 소득 향상에 따른 소비계층의 확대와 소비양식의 세계화는 여가활동·영상·레저 등을 새로운 대량 소비품목으로 등장시켰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소비 취향이 다양해지고 내적 스타일 분화가 증가한 셈이었다. 이러한 현상을 망라하는 개념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널리 통용됐다.([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 (22)진리는 하나가 아니다..소설로 포스트모더니즘 대중화에 기여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6. 8. 16.)

포스트 모더니즘은 이처럼 거대담론, 총체적 인식을 부정하고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고 이를 인식할 수 없다고 합니다. 과거 이념과 혁명을 강조하고 이성과 합리성, 과학적 세계관을 내세우는 주의, 주장들은 모더니즘의 세계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 됩니다. 진리가 “여럿이며, 그러기에 애매하고 불확실한 것”이라는 주장은 바로 포스트모던한 다원주의적 세계관과 인식을 말한다. 이에 따라 노동자중심성, 계급과 민족 대신에 적녹보라 같은 다원주의 사상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다원주의 사상은 “소득 향상에 따른 소비계층의 확대와 소비양식의 세계화는 여가활동·영상·레저 등을 새로운 대량 소비품목으로 등장시켰다.”며 착취와 억압 대신에 변화되고 다양하게 현실이 변화했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는 신좌파 이데올로기입니다.

오늘날 정의당 녹색당이 바로 그 신좌파 노선의 당적 현실태입니다. 인권 녹색을 내세우며 부르주아 인권담론 반핵담론에 포섭되어 반북 반북핵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반중, 반러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한겨레의 반창간 정신도 이런 소부르주아 정치에서 비롯됩니다.

진보당도 상당부분 이 노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진보당 내 청년들이 오늘날 유행하는 신좌파 사조의 영향을 받아 그렇습니다. 이를 진보당이 당적 사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방치, 조장, 영합하면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4. 코민테른 여성해방론

 

이제 ‘모더니즘’적인, 그것도 고색창연한 코민테른(국제공산당)의 여성해방론에 대해 본격적으로 소개,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맑스주의가 공상적 사회주의가 하나의 정치적 뿌리이기 때문에 푸리에의 “자유를 향한 여성의 진보와 비례하며, 여성해방이 이루어진 정도가 인간의 보편적 해방을 측정하는 자연적 척도”라는 주장으로부터 기본적인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코민테른 여성해방론의 고전적, 정통적 출발은 엥겔스의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아침, 김대웅 옮김)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모권의 전복은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였다. 남자는 가정에서도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어 여자는 자기의 존귀한 지위를 상실하고 노비로, 남자의 정욕의 노예로, 순전한 산아도구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성별대립의 결과라기보다는 사적소유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계급지배 사회의 산물이라고 엥겔스는 인식합니다.

문명 시기에 최고의 발전을 본 노예제의 출현과 함께 처음으로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으로 사회가 크게 분열되었다. 이 분열은 문명의 전 기간 동안 존속했다. 노예제는 고대 세계에 고유한 최초의 착취 형태였으며, 그 뒤를 따른 것은 중세기의 농노제와 근세의 임금노동제이다. 이것은 예속의 3대 형태로서 문명의 3대 시기를 각각 특징짓는다. 공공연한, 그리고 최근에는 은폐된 노예제가 문명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문명이 시작되는 상품생산 단계는 다음과 같은 경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1) 금속화폐, 그와 함께 화폐자본(Geldkapitals), 이자(Zinses) 및 고리대금업(Wuchers)의 도입, (2) 생산자들을 중개하는 계급으로서의 상인들의 출현, (3) 토지의 사유 및 저당권의 발생, (4) 지배적인 생산형태로서의 노예노동의 출현이다. 문명에 상응하여 또 문명과 함께 자기의 지배를 종국적으로 확립하는 새로운 가족형태는 여자에 대한 남자의 지배, 즉 일부일처제이며, 사회의 경제적 단위로서의 개별 가족이다. 국가는 문명 사회를 총괄하는 힘으로서 모든 전형적인 시기에 예외없이 지배계급의 국가이며, 또 본질적으로 모든 경우에 압박받고 착취당하는 계급을 억압하는 기관이다.

그리하여 엥겔스는 사회적 분업이 가져온 모순과 사적소유의 철폐와 가사노동의 사회화에서 여성해방의 길을 찾았습니다.

최초의 거대한 사회적 분업은 노동생산성의 향상과 재부의 증대 및 생산활동 분야의 확대와 더불어 주어진 모든 역사적 조건 아래서 필연적으로 노예제대를 가져왔다. 최초의 거대한 사회적 분업의 결과 두 계급, 즉 주인과 노예, 착취자와 피착취자로서의 최초의 거대한 사회적 분열이 일어났다…

획득하는 것은 언제나 남자의 일이었다. 획득에 요구되는 수단은 남자가 만들었고, 또 그것은 남자의 소유였다. 가족 내의 분업은 남녀 간의 재산분배를 규정했다. 가족 내의 분업은 전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오직 가족 밖에서의 분업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족 내 분업이 종래의 가정 내 관계를 완전히 전복시켰다. 전에는 가정에서의 여자의 지배를 보장해주었던 바로 그 원인, 즉 여자가 가사노동에만 종사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가정에서의 남자의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여자의 가사노동은 이제 남자의 생활필수품 획득에 비해 그 의미를 상실했다. 남자의 노동이 전부였고, 여자의 가사노동은 보잘 것 없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여성의 해방, 남녀의 평등은 여자가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되어 사적인 가사노동에만 종사하고 있는 한 불가능하며, 또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이미 여기서 명백해진다. 여성의 해방은 그들이 사회적 규모의 생산에 광범위하게 참여하고, 또 그들이 돌보아야 할 가사가 아주 적을 때에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

엥겔스는 여성을 옭아매는 가사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그렇다고 해서 남과 여의 분업 형식 자체가 근본문제가 아니라 이 성별분업이 지배와 억압을 가져오게 한 사회적 조건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엥겔스는 부부 간, 남녀 간 법률적 평등은 여성해방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지난 시기의 사회관계로부터 물려받은 부부 간의 법률상 불평등은 여성에 대한 경제적 억압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이다….부부가 법률상 완전히 동등해졌을 때 비로소 현대 가정에서 아내에 대한 남편의 지배의 특성, 그리고 부부 간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을 수립할 필요성과 그 방법도 역시 완전히 해명될 것이다. 그때야말로 여성해방의 첫째 조건은 여성 전체가 사회적 노동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개별 가족이 사회의 경제적 단위로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질 것이다.

부부 간, 남녀 간 법적 평등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법적, 형식적 평등만으로 진정한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법적평등이 보장되어야지만 부부 간, 남녀 간 불평등의 근원이 법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 것입니다.

사적소유도 없고 상속할 재산도 없는 프롤레타리아 가족 내에서 남과 여의 관계는 어떠할 것인가요?

이 계급에게서는 고전적 일부일처제의 기초도 역시 모두 제거되어 있다. 남성의 지배와 일부일처제는 다름아닌 재산의 보존과 그 상속을 위한 이룩된 것인데, 그들은 이러한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남성 지배의 확립을 위한 아무런 동기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단도 없다. 즉 남성 지배를 보호하는 부르주아 법은 오직 유산자들과 프롤레타리아 통제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의 아내에 대한 지위에는 아무런 효력도 갖지 못한다. 그의 경우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다른 개인적·사회적 관계이다. 또한 대공업으로 인해 여자가 가정에서 노동시장과 공장으로 나와 종종 가족의 부양자로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가정에서의 남편의 지배는 그 마지막 잔재마저 존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그런 일부일처제 아래 그칠 줄 모르는 아내에 대한 학대는 예외이다.

일부일처제 아래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학대,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가 존재하지만, 사적소유도 없고, 상속할 재산도 없는 프롤레타리아 가정 내에는 남성 지배의 물질적 조건이 사라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로써 엥겔스의 여성해방론은 “일부일처제 아래 그칠 줄 모르는 아내에 대한 학대” 같은 잔존하는 가부장제적 폭력과 억압, 후진적 의식, 행태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녀의 적대와 대립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계급적으로 단결해서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이 억압의 물질적 기초를 분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맑스주의 여성해방론을 계승한 코민테른 여성해방론의 주된 이론가는 독일의 혁명가인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이었습니다.

1.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2회 대회는 가장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여성대중의 계급의식을 일깨우고 공산주의사상을 고취시키며, 자신들의 목표를 명확하게 의식하고 실천적 결의로 가득차,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공산주의여성투사 및 협력자로서 여성들을 결집할 필요가 있다고 한 제1회 대회의 결정을 추인한다. 프롤레타리아여성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혁명투쟁에 가장 강력하게 참가하는 일은 필요불가결하다. 여성이 교육받거나, 직업활동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격을 발전시킬 수 있으려면 전사회적으로 강고한 연대 속에서 모든 여성에게 완전한 사회적 권리가 확보되는 것이 필요하다. 단결과 이 목적을 위한 사회적 조건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부르조아제도에 반대하는 혁명적 투쟁을 거쳐 그 위에 새로운 제도를 혁명적으로 건설할 수 있도록 프롤레타리아계급이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

2. 과거의 현재의 역사는 사적 소유야말로 여성에 대한 남성의 특권적·우월적 지위의 가장 근본적으로 최종적인 원인이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사적 소유가 성립되어 확립된 시기에 비로소 노예도, 또 여성과 아이들도 남성의 소유물로 되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기초로 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의 계급대립이 발생하였고, 또한 여성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남성에게 종속되고 그 밑에 예속되어 가족 안에서나 공공생활에서 권리없는 상태에 놓여지는 관계가 성립하였다.

이 관계는 풍습과 편견 속에, 법 앞에서의 여성의 무권리 상태,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불평등한 권리, 그리고 가족, 국가 및 사회에서 여성의 차별적인 지위, 여성의 정신적인 종속상태와 후진성, 모성의 역할에 관한 사회적 의의의 과소평가로 소위 문화국민 속에조차 여전히 남아있다. 유럽문화권과 국민들 사이에서는 준푸트(Junft)수공업의 발전과 함께 여성이 생업으로서의 사회적 재화생산의 영역으로부터 구축되고 오로지 가사와 자기 가족을 위한 일로 활동이 한정됨에 따라 이러한 사태가 고정되고 촉진되었다. 만일 여성이 형식적으로 작성된 사문화된 법조문 위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남성과의 완전한 사회적 동등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전인격을 자유롭게 발전시키고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기본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즉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폐지하고 사회적 소유로 바꾸는 것, 착취없고 예속없는 제도하에서 여성의 활동이 사회적 재화생산에 편재되는 것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실현될 때 비로소 여성이 가족 내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된다거나 혹은 착취자와 피착취자 간의 계급대립의 결과로서 경영 내에서 프롤레타리아 여성, 직업여성으로서 자본가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고 착취당하는 일이 없어진다. 또한 그렇게 될 때만, 가사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이나 직업활동에서 일면적으로 과대한 요구 때문에 여성의 귀중한 능력과 자질이 위축되지 않고 이 두 가지 조건이 실현될 때만 비로소 여성이 의무와 권리가 동등한 일꾼과 근로자의 공동사회 안에서, 의무와 권리가 동등한 일꾼이자 근로자로서 능력과 역량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활동하고, 직업활동과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완전한 생명력의 발현으로 통일되는 것이 보장된다.

3. 부르조아적 여성운동의 요구들은 전체 여성의 완전한 권리와 완전한 인격을 보장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확실히 이 요구의 실현은 부르조아사회와 국가가 여성의 열등성이라는 낡은 편견을 공식적으로 말소하여 여성의 동등권을 승인하는 점에서, 여성들이 사회적인 가치평등을 승인하는 점에서 경시할 수 없는 원칙적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실천적 측면에서는 여권론자의 요구들이 실현되더라도 주로 유산계급의 아내와 딸들에게 유리하도록 자본주의제도를 개량하는 것으로 귀착되며, 한편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 여성, 근로인민 여성은 완전히 비자유인, 파착취자로서 위축되고 그 인격, 권리와 이익이 무시당한 상태에 방치된다…

이 선거권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지 않거니와 따라서 부르조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계급대립을 폐지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여성에게는 완전한 정치적 평등권도 결코 그들의 운동, 그들의 투쟁의 종국적 목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5. 그러나 여성의 위대한 해방자인 공산주의는 여권론자들의 요구들의 취향에 따라 부르조아제도의 개량을 위해, 즉 남성의 특권적인 사회적 지위에 반대하여 모든 계급의 여성이 공동투쟁한 결과로 실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공산주의는 남녀 유산·착취계급의 특권과 권력에 반대하는 남녀 피착취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동의 계급투쟁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A. 프롤레타리아가 이미 국가권력을 획득하여 소비에트제도의 형태도 자신의 지배를 구축한 나라들, 예를 들면 러시아에서는-

(6) 직업여성을 위해서 여성의 육체적 특성에 맞고 모성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도덕적 요구에 적합하며,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역할과 직업활동과의 조화로운 결합-최고의 능률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격으로서의 여성의 전역량과 가치를 발휘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결합-을 가능케 하는 노동조건을 창출할 것.

(7) 이제까지 가정에서의 가사노동-낡은 수공업적 방식의 가장 낙후된 형태이자, 가장 불구화되고 영세한 형태-을 일반적인 사회경제 내로 끌어들여 주부를 작은 개별경제의 노예로부터 커다란 사회경제의 자유로운 직업여성으로 전화할 것.

(8) 종래 가정에서 여성의 경제적 임무를 떠맡고,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줄이고 그것을 보충, 보완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회시설을 설립할 것.

(9) 모성과 청소년 보호를 위해 모범적인 사회복지시설을 만들 것.

(10) 병자, 허약자, 노인, 노동불구자를 원호하기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만들 것. 부르조아 제도의 유산인 매춘부를 룸펜프롤레타리아의 지위에서 근로자의 공동사회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한 경제적 및 교육적 방책을 강구할 것.

(11) 교육적인 노동과제와 남녀공학에 기초하여 개성을 발전시킬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연대정신의 함양에 적합하고, 또한 여성을 위해 전면적인 인격발의 조건을 보장할 수 있는 교육·훈련제도를 창출할 것.

(12) 주부와 어머니의 부담을 줄일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사회복지, 특히 여성, 청소년의 복지에 유용한 방책들의 결정과 실시 및 그러한 시설의 설립, 형성과 운영에 여성을 광범위하게 협력시킬 것.

1.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획득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1)…모든 행동과 투쟁에 광범위한 여성대중을 참가시킬 것. 프롤레타리아여성의 계급의식을 강화하고, 그들의 혁명적 에너지와 투쟁능력을 높이는 데 적합한 모든 수단, 방책을 강구하고, 시설을 갖출 것.

(3) 사적 생활과 공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또한 법률상, 실제상 양성의 완전한 동등권.

(6) 여성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보통교육과 직업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

(7) 동일노동에 대한 남녀 동일임금.

(12) 낡은 형태의 가사노동의 후진적 성격과 그에 따른 시간, 인력, 금전의 낭비에 관해서, 또한 이 가사노동이 자본주의에 의해 주부의 부불노동으로 책정되어 남성의 저임금을 조장하고, 사회생활로부터 여성을 격리시킴으로서 정신적 및 정치적 후진상태에 가두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하여 여성을 계몽할 것.

(13) 호화주택과 여분의 주택에 대한 부르조아의 소유권 앞에서 공손하게 되로 물러설 것이 아니라 주택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

(14) 공공보건 제도를 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정비하고, 무엇보다도 도시와 농촌에 무료의료상담소를 설립할 것.

1. 자본주의 이전의 발전단계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1) 여성을 남성의 가내노예, 노동노예, 또는 성욕의 노예적 지위로 깍아내리는 편견, 풍습, 관습, 종교적인 계율 및 법적 규정을 극복할 것-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계몽할 뿐만 아니라 남성도 함께 계몽할 것을 전제로 한다.

(2) 교육과 가정생활 또는 공공생활에서 남녀의 완전한 법적 평등.

(공산주의여성운동을 위한 지침, 1920년 1월, 클라라 체트킨 집필, 이 글은 레닌과의 회견 이후 레닌의 권고를 반영하여 쓰였다고 한다.)

비록 혁명성이 약화됐지만,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3.8여성의 날 제창자는 클라라 체트킨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대중의 잔인한 운명은 그들이 운이 좋아 자본가 산업 거물, 상인, 투기꾼, 폭리업자, 고리대금업자의 부속물이 아닌 한 무거운데 특히 여성들에게 운명은 더욱 가혹합니다. 오늘날 이중의, 중첩된 격렬한 고통을 겪지 않는 여성들은 없습니다. 여성노동자, 여성공무원, 여성교사 등은 남성동료보다 해고당하기 쉬우며, 일을 하지 않을 때 더 적은 실업수당을 받기 때문에 남성 실업자보다 더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주부는 남편, 아들, 형제의 모든 근심을 떠안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들과 함께 고통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지키기 위하여 더 고통을 받습니다. 빵과 따뜻함, 소소한 삶의 기쁨, 약간의 지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자녀들의 절규를 채워줄 힘이 없을 때, 무자비한 질병, 낙담 및 죽음의 엄습으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할 힘이 없을 때 어머니는 골고다의 십자가 앞에 피 흘리는 심정으로 서 있습니다. 발육부진 아동, 영아 사망률, 방치되는 청소년 범죄의 증가, 이것들은 모든 자본주의 국가의 현 사회상태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고발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선 노동자, 주부,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그녀들을 괴롭히는 불행에 맞설 능력이 적고 형제들 보다 덜 훈련돼 있습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비참함을 절절하게 느끼지만 부딪쳐 싸우는 대신에 참고 견디며 자기 방어력이 취약합니다. 수세기 동안 인간에게 예속된 악한 유산, 네 개의 좁은 벽 안에 격리되어 그녀들의 시야가 둔감해지고 의지력이 파괴되었습니다. 여성은 남편의 명령에 순종적으로 복종했거나 가족의 뜻에 굴복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착취,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에 감히 맞서 싸우지 못했습니다.

주요 국가에서도 여성은 아직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갖지 못하고 있으며, 이 권리 없이는 자신의 이해와 사랑하는 사람의 이해를 위해 빛을 발할 수 없습니다.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에서 오늘날의 여성들은 입법의회에 대한 투표권이나 피선거권도 없이 어제나 그제나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처참한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한 후 수년 동안 여성 노동자들의 고민과 고통은 극도로 깊어졌습니다. 그녀들의 구제책에 대한 가장 간절한 희망은 잔인하게 짓밟혔고 고통의 짐은 점점 더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가난하고 약자의 비참함에서 올바른 정치적 결론을 이끌어 냈습니다. 인터내셔널은 세계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통일전선의 필요성을 주창합니다. 당신의 영혼이 너무 노예화 되어 감히 자유를 꿈꾸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당신은 배고픈 배의 소리는 들을 수 있습니다. 증가하는 착취와 극심한 궁핍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십시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삶과 죽음과 씨름하고 있는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보내는 우리의 호소이며, 정치적 또는 종교적 신념에 관계없이 모든 여성 노동자, 모든 주부 및 어머니에게 보내는 호소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불행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단결합시다! 고난을 견디는 도피처에서 나오십시오. 일시적인 승리에 취해 있는 자본주의 세계의 면전에서 고통을 드러내십시오. 당신들의 요구를 당당하게 선언하십시오. 이러한 요구 사항을 위해 싸울 의지를 강화하십시오. 이윤에 대한 맹렬한 탐욕과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다음과 같은 요구로 저항하십시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남녀 실업자를 위한 적절한 지원. 하루 8시간 노동, 토요일 오후 근무 중지, 일하는 여성, 성인 또는 청소년을 위한 법적 보호, 그리고 이러한 보호를 모든 임금 노동자에게 확대. 노동자 평의회와 소비자와 주부들로 구성된 통제위원회에 의한 폭등가격, 생산, 유통, 가격 통제에 반대하는 엄격한 조치. 산모, 유아 및 어린이를 위한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보호, 인간의 존엄성에 걸맞은 노약자, 병약자 또는 전쟁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보호, 생산 노동자에 대한 과세 면제, 부동산 몰수 및 강제 공채(compulsory loans)에 의한 자산계급에 대한 과세*. 모든 여성의 조직권과 파업, 완전한 정치적, 사회적 권리의 보장. 투옥된 모든 혁명투사들을 즉각 석방.

국제공산주의 여성조직은 이러한 요구와 이와 유사한 요구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선언하는 일에 함께하기를 모든 여성 노동자들께 호소합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착취하는 부르주아지와 그들 국가의 노예화 세력에 대항하는 전투에 용감하게 행진함으로써, 이 두 치명적인 적들이 언제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여성 노동자들을 맞닥트리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주아지의 전쟁 무기와 전쟁 수행, 루르의 점령에 맞서 단호한 전투를 벌이십시오! 테러와 파시즘에 맞서는 전투를! 직장위원회와 노동자 위원회의 권력 확대를 위한 투쟁. 부르주아지의 무장해제와 진정한 생산자인 노동자의 무장을 위한 투쟁! 노동자 정부를 위한 투쟁!(클라라 체트킨, 3.8여성운동: 1923년 국제공산주의 여성의날)

지금까지 맑스주의 여성해방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100여 년 전의 코민테른 여성해방론을 살 펴봤는데, 과연 이 운동이 앞에서 던졌던 문제의식들, 즉 “오늘날 첨예한 사회문제, 여성문제를 전혀 해명하지 못하는 옛날 고리타분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오늘날 유행하는 정체성 정치보다 수배, 수십 배 근본적이며 또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지 않습니까?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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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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