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언제까지 ‘답정너’ 빈곤 강요.정당화 최저임금 기구에 들러리 서야 하는가?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올해 임금안이 결정된 오늘(19일) “결국 ‘답정너’로 끝난 2024년 적용 최저임금 9,860원. 끝내 저임금 노동자와 모든 노동자의 꿈을 짓밟다.”는 규탄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번 최임위가 ‘답정너’로 끝나 저임금과 빈곤을 고착화, 정당화 하는 기구로 끝나곤 했다면 이 답이 정해져 있는 기구에 들러리로 참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오히려 민주노총 참여로 사회적 합의 하에 최저임금이 결정됐다는 정당성만 부여하는 꼴 아닙니까?
민주노총은 12000원으로 인상안 제시, 사용자단체는 동결이나 고작 몇십원 인상안을 제시하면 공익위원이라는 작자들이 ‘공익’적 위치, 즉 중립적 중재자인 체하며 최저수준의 인상안을 제시하여 그걸로 결국 확정되는 구도입니다. 그런데 이 최저인상안은 실제로는 최저수준의 ‘인상’이 아니라 폭등하는 물가, 그것도 생활물가의 폭등 양상에 비춰볼 때 대대적인 실질임금의 삭감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기름값과 가스비 최대 폭등, 최근의 8월부터 버스비 300원 인상과 10월부터 지하철 요금 150원 인상만 보더라도 이번 명목 인상안은 실질적으로는 대폭 인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생활비 전반의 인상, 등록금 인상, 감당하기 힘든 의료비와 조족지혈의 국가국민건강보험 보장을 메우기 위한 사적보험가입의 증가, 고금리로 인한 주택채무의 폭등, 과중한 사교육비, 긴축을 내세운 복지의 전반적 후퇴 추세, 청년실업, 중장년 실업 등은 이번 최저임금 결정이 노동자들과 인민대중의 삶을 빈곤과 절망,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모는 야만적 폭거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계청에서는 지난 6월 2일, 5월 소비자물가가 3.3% 인상으로 19개월만에 최저치 인상이라는 통계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폭등했던 기름값 인하를 반영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게다가 전기료는 25.7%, 도시가스는 25.9%, 지역 난방비는 30.9%로 폭등가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통계로부터 일정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실제로는 중립과 과학으로 가장하여 자본과 권력의 이해에 복무합니다. 노동자 인민의 삶의 악화에 반해 자본가들을 위시로 건물, 토지주식 소유자들의 막대한 부의 증가로 인한 불평등 문제는 은폐하기 마련입니다. 중립과 과학을 가장하여 정권과 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은 여론조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라는 작자들도 전문성을 가장하여 지배계급의 이해에 봉사합니다.
전셋값 하락세는 석유값처럼 워낙 폭등했던 가격이 일부 하락한 수치가 반영된 것인데, 역전세난과 고금리로 민중의 가중되는 생활상의 고통은 빠져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시대는 노동자 민중의 전반적인 생활비를 폭등시켜 임금삭감 결과를 가져오고 연금생활자들의 실질연금을 감소시키게 됩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긴축과 복지후퇴를 가져옵니다.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인상이 물가인상을 가져온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달리 임금인상은 자본의 이윤을 감소시킬뿐 물가와는 상관없습니다. 최근 몇년 동안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전반의 최저수준의 인상 및 동결, 실질 임금의 삭감에도 불구하고 물가가 급등한 걸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 상공인들을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는다는 공세도, 실은 재벌의 골목상권 침투, 높은 임대료, 로얄티 지급, 허리가 휘는 은행부채 같은 이리떼들의 탐욕, 소상공인들의 경쟁 격화, 정리해고자, 실업 노동자들의 소상공인화, 저임금, 임금삭감, 복지후퇴로 인한 대중소비의 감소 같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저임금 노동자들한테 전가하여 빈자들끼리 물어 뜯어 자본지배를 은폐하기 위한 비열한 술책입니다.
더욱이 미제국주의를 위시한 서방제국주의가 촉발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과 대러 제재 등 공급망 위기는 원료, 곡물가 인상과 곡물을 원료로 하는 각종 소비재, 축산비 등을 급등시킴으로써 물가를 대폭 올렸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실제 가치를 가지지 않은 불환지폐를 무차별 찍어댐으로써 보통 화폐가치가 명목적으로 오르는 자본주의 현상을 말합니다. 이 증가발행된 화폐는 보통 전쟁비용, 천문학적 무기구입을 비롯해 자본가들을 지원하는데 사용됩니다.
이 자본주의의 문제를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탓으로 돌려 자본가들은 이윤을 더 확대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최임위 결정안 240원 인상, 2.49% 시간당 9860원 정도라면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아도 결정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명목적 동결은 지배계급 자신들도 최임동결로 빈곤책임을 뒤집어쓰게 될테니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구요.
민주노총은 최임위에 참여하면서 최저임금인상 투쟁을 적극 전개해 왔습니다. 민주노총은 이 실질 최저임금 삭감안에 대해 규탄하며 “오늘의 미진한 부분은” 반드시 채워내겠다는 약속”으로 또다시 반복될 최임위를 기약하며 허망한 결과를 승인하고 맙니다.
최임위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기구입니다. 노사간, 노정간 직접 교섭기구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부가 임명하는 공익위원이라는 작자들이 공익성, 중립성을 가장하여 자본과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만적 역할을 수행합니다. 9명의 공익위원 수 때문에 교섭위원 구성도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일각에서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 중 경찰에 연행되어 구속되어 해촉된 김준영 금속노련 부재로 “노동자 위원 1명이 공석으로 수적 열수인 상태이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박정연 기자, 친정부 인사, 가이드라인 논란…최임위 중립성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프레시안, 2023-07-14)이라고 하지만
이는 공익위원의 친사용자성을 감안할 때 적절치 않은 주장입니다.
최임위는 노동자위원 9, 사용자위원9, 공익위원9가 아니라 실제로는 한국노총의 노동자계급성을 차치한다 하더라도, 9대 18의 일방적 구도입니다.
이 구도 속에서는 아무리 최임위 바깥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대중투쟁을 해도 이 투쟁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은 사라져야 합니다. 절로 사라지지 않으면 소멸시켜야 합니다.
친자본적인 권력의 성격이 바뀌거나 최임위구성과 운영이 바뀌지 않는한 이 기구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는 어려울듯 싶습니다.
이럴거면 이 저임금의 굴레를 합리화하는 ‘답정너’ 빈곤 악순환 기구 근본 전환투쟁을 하든지 이게 수용되지 않으면 차라리 불참하여 빈곤이 명백하게 정권과 자본의 탐욕과 이윤추구에 있음을 폭로하여 대중들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반자본 의식을 높이는 게 나을듯 합니다.
최임위 참여 대신 기구 밖에서 최저임금 임금삭감 기구를 박살내는 대대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낫습니다.
반노동 압살에 나서는 정권의 작태를 대대적으로 폭로하고 공세적인 인상투쟁을 전개하는 것이 더 낫다고 봅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포함 전 노조가 양보교섭 수세적 임금투쟁이 아닌 공세적인 생활임금 쟁취투쟁을 전개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구빈제도가 그렇고, 최저임금제 자체도 빈곤과 굶주림으로 민중이 체제에 저항하는 폭동(저항)을 일으켜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 두려워 만들어 졌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복지도 개량의 산물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실은 혁명의 산물이자 지배계급의 공포의 산물입니다.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의 전투성, 혁명성 상실이 지배계급의 공포를 잠재우고 일방적이고 파렴치한 공세를 낳았습니다.
대중운동과 정치운동 전반의 전투성과 혁명성의 고양이 절실합니다.

* 사진은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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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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