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민주주의ㅡ⑦] 제2장 노동자 농민의 정권인가ㅡ국체와 정체 문제 3) 전인대의 주요 기능
김정호 북경대 박사/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자문위원
제2장 노동자 농민의 정권인가ㅡ국체와 정체 문제
1. 인민대표대회의 인적 구성
2. 인민대표대회의 위상과 기능
1)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위상
2) 전인대의 자체 강화- ‘상무위원회’ 및 부속 기구 설치 (지난 호)
3) 전인대의 주요 기능
이하에선 전인대가 실제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중국 현행 헌법 제62조는 전인대 권한에 관한 15가지 사항을 열거하고 있는데, 제63조 역시 5개 항의 전인대 권한과 관련된 사항이 들어있다. 이것들을 모두 종합할 경우 전인대의 기능은 입법권, 인사권(임명, 파면권), 중대 국사의 결정권, 감독권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입법권
중국공산당 11기 3중 전회는 인민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주의 법제를 강화해야 하며,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법제화해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의거할 수 있는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이 있으면 반드시 의지하며, 법 집행은 엄격하고, 위법자는 필히 추궁한다(有法可依,有法必依,执法必严,违法必究)”는 사회주의 법제정책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준다. 이에 따라 11기 3중 전회는 입법사업을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그 상무위원회의 중요 의사일정으로 배치할 것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 중앙 입법제도의 변천 과정
1982년 헌법은 전인대와 그 상무위원회가 입법권을 함께 누리도록 했다. 전인대는 헌법에 관한 수정, 형사‧민사‧국가기구 및 기타 기본 법률의 제정과 수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비해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전인대가 제정한 법률 이외의 기타 법률을 제정하고 수정할 수 있다. 또 전인대 폐회기간에 전인대가 제정한 법률에 대해서 부분적인 보충과 수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본래 법률의 기본원칙과 저촉되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고 있다.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입법권’을 부여한 것은 중국 입법제도에 있어 중대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1982년 헌법’ 이전에는 전인대만이 유일한 입법기관이었으며,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입법권을 갖지 못한 채 단지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 권한만을 가졌다. 그 경우 새로운 개혁개방 시기를 맞이하여 사회‧정치‧경제 발전의 요구에 걸맞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전인대 대표 정원은 3천 명에 가깝고 전국 각지에 분산되어 있다. 그 때문에 자주 회의를 소집할 수 없고, 적시에 법률초안을 토론하거나 심의 통과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에 비해 전인대 상무위원회 성원은 100여명 안팎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또 헌법에 따라 전인대 상무위원회 성원은 행정부•법원•검찰기관의 직무를 겸직할 수 없도록 하였기에 대다수는 실질적인 상근자에 속한다.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또한 최소한 2달에 한 번씩은 회의를 개최하도록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입법권을 부분적으로 공유하도록 한 것은 전인대 전반의 입법 업무를 현저하게 강화시킨 조처라고 평할 수 있다.
1982년 헌법은 이와 함께 국무원이 헌법과 법률에 의거 행정법규를 제정하고, 결정 및 명령을 발표할 수 있게끔 하였다. 국무원의 각부서 및 위원회는 법률, 국무원의 행정법규‧결정‧명령, 본 부문의 권한 내에서 명령‧지시‧규정을 제정 발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개혁개방의 부단한 심화와 확대에 따라 현실에서는 수많은 문제들이 출현하고, 새로운 상황은 긴급한 처리를 필요로 한다. 이런 문제들을 처리하는데 있어 법을 새로 제정하지 않으면 준거할 수 있는 규범이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서둘러 입법을 하게 되면, 실제 상황에 부적합한 법이 출현해 빈번한 개정으로 법률의 엄숙성을 해치게 된다. 이 같은 입법 상의 모순을 완화시키기 위해 중국은 다음 3종류의 ‘위임입법’ 형식을 도입하였다.
첫째, 전인대가 상무위원회에 입법권한을 위임.*
둘째,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국무원에 입법권한을 위임.**
셋째, 전인대 혹은 상무위원회가 지방 권력기관에 입법을 위임.***
* 이와 관련한 ‘위임입법’은 1982년 헌법 이전 모두 세 차례 출현하였다. 1955년 전인대가 상무위원회에 단행 법규를 위탁한 바 있다. 1959년에는 상무위원회에 권한을 부여하여 전인대가 제정한 법률을 수정토록 하였다. 1981년에도 상무위원회에 위임하여 민사소송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처들을 법적으로 제도화하지는 못했다.
** 예컨대 1983년 국무원에의 권한 위임을 통해서 ▲노인‧어린애‧병자‧장애인과 노간부의 안주를 위한 임시 조치 ▲노동자의 정년퇴직 임시 조치에 대한 수정을 하였다. 또 1984년에는 동일한 방식으로 ▲세수조례 시범조례를 제정하였으며, 1985년에도 ▲필요시 관련한 경제체제 개혁과 대외개방 사업 중 발생하는 문제들에 관한 잠정 규정 혹은 조례를 제정할 수 있도록 했다.
*** 1981년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광동성, 복건성 인민대표대회 및 그 상무위원회에 권한을 위임하여 ‘경제특구’에 관한 경제 법규를 제정토록 하였다. 전인대는 또한 1988년 해남도(海南島)성 인민대표대회 및 그 상무위원회에 법규를 제정토록 위임하고, 경제특구를 실시토록 하였다.
2000년 3월 15일 제9기 전인대 제3차 회의는 <중화인민공화국 입법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신중국 성립 이래 전국적인 입법 활동을 규범 하는 첫 번째 법률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입법권의 분할, 입법절차, 법률 해석 등 국가의 입법제도에 관한 기본규정을 하였다.
▲국무원 행정법규 집성(2011년) |
■ 입법권의 내용
①헌법 수정권
헌법은 법률의 일종이기에 입법권은 응당 헌법을 제정하고 수정할 권한을 포함한다. 그러나 헌법은 일종의 특수한 법률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의기관이 그것을 제정하고 수정할 권한을 어느 정도 갖는지는 그 나라 대의기관의 지위와 권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중화인민공화국 제62조 제1항과 2항은 전인대가 헌법을 수정하고 헌법의 실시를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헌법 수정의 구체적 절차를 보면 다음과 같다. 전인대 상무위원회 혹은 1/5 이상의 전인대 대표가 헌법 수정에 관한 제안을 할 수 있으며, 전인대 대표 2/3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헌법은 국가의 가장 근본적인 법률이기에 전인대를 제외한 다른 어떤 기관도 헌법 수정권을 갖지 못한다. 설령 전인대 상무위원회라 할지라도 이러한 권한은 없다. 이는 전인대의 최고 권력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자본주의 선진국에선 의회는 단지 헌법 수정 발의권이 있거나, 혹은 부분적인 결정권만 있을 뿐이다.*
* 현대 헌정국가에 있어 헌법은 최고 권위를 지니는 ‘법위의 법’이다. 전인대에 헌법 수정 권한과 헌법 실행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한 것은, 전인대가 국가와 정치생활에 있어 지극히 중요한 지위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점은 많은 자본주의국가 의회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연방의회는 연방헌법에 근거해서 나중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이 경우 국회의 헌법제정 권한은 자연히 말할 근거가 없게 된다. 또 미국 헌법이 규정한 헌법 수정 절차는 대단히 까다롭다. 국회 상하 양원 각각 2/3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헌법 수정안을 제출할 수 있으며, 동시에 반드시 3/4의 주의회 혹은 제헌회의가 비준해야만 비로소 새로운 헌법이 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미국 국회의 헌법 수정권은 대단히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경우는 ‘불문헌법’이기 때문에, 의회는 헌법적 성격을 지니는 법률을 보충하는 법률 규범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그 밖의 다른 자본주의국가도 대체로 미국과 대동소이하다. 예컨대 이탈리아 헌법은 헌법 및 헌법적 성격을 갖는 법률의 수정에 있어 상하 양원의 두 차례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두 번째 표결 시엔 반드시 상하 각 의원 2/3 이상의 찬성 또는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2/3 이상 찬성인 경우에만 국민투표에 붙일 필요가 없다.
프랑스헌법은 우선 헌법수정 초안 혹은 제안에 있어 상하 양원이 똑 같은 문안을 작성해야 하며, 다시 국민투표를 통과한 후라야 비로소 최종 확정될 수 있다. 일본의 국회 역시 단지 헌법수정에 대한 발의권만 있을 뿐,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를 통해서 결정해야 한다.
한국의 국회는 헌법 수정과 그 실행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역할은 별도로 헌법재판소가 수행한다. 이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여야 추천인사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이렇듯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회이지만 여러 방면에서 견제 받기 때문에 그 권한이 제한된다.
②헌법 실시에 대한 감독권
현행 중국 헌법에 따르면 전인대는 유일하게 헌법 실시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기관이 된다. 국가의 근본 법률인 헌법은 통과 후 전체 인민, 국가기관, 각 정당, 군대, 기업 및 각종 사업단위 등이 모두 준수해야 한다. 이 같은 헌법의 실시 상황이 어떠한 지에 대해서 전인대는 최고의 감독권을 갖는다.
③기타 법률의 제정과 수정권
■ 입법 성과
1949년 9월부터 1978년까지 28년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전국인민대표대회 및 그 상무위원회가 제정하거나 인가한 법률, 민족자치 지역의 인민대표대회와 인민위원회가 조직한 조례는 모두 183건이었다. 이에 비해 개혁개방 이후인 1979년부터 2000년 12월까지 20년 간 전인대와 그 상무위원회가 심의 통과한 법률은 총 271건, 법률문제에 대한 결정과 법률해석은 113건으로 모두 384건이었다. 그밖에 이 시기 국무원이 제정한 행정법규는 800여건이며, 각 성‧자치구‧직할시가 제정 반포한 지방성 법규는 8000여 건에 달한다. 국무원 각 부문과 지방정부가 제정한 규칙과 규정은 3만 여건이었다.
입법 영역별로 보면, 우선 정치방면에 있어 국가기본 정치제도, 행정제도, 사법제도, 민족자치제도, 기층 자치제도, 공민권리 보호와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었다. 예컨대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의 선거법, 전인대 조직법, 국무원 조직법, 지방 각급 인민대표대회와 지방 각급 인민정부 조직법, 인민법원 조직법, 인민검찰원 조직법, 민족구역(區域)자치법, 촌민위원회 조직법, 전인대 상무위원회 의사규칙, 전인대 의사규칙, 도시주민위원회 조직법, 국기(國旗)법, 병역법, 현역군관복무조례, 군관계급조례, 홍콩특별행정구기본법 등이 있다.
둘째, 사회생활 방면의 입법을 보면 사회질서 수호를 위한 일련의 법률이 제정되었다. 형법, 형사소송법, 체포와 구류조례*, 민사소송법, 민법통칙, 치안관리처벌조례, 행정소송법, 집회시위법, 기밀보호법, 변호사 잠정조례, 주민신분증 조례 등을 들 수 있다.
* 중국에서 ‘미란다 원칙’은 어느 정도나 준수되고 있을까? ‘미란다 원칙’이란 경찰 또는 검찰이 용의자 또는 피고인을 체포하거나 심문하기에 앞서 그 권리를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즉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을 선임하지 못할 경우, 국선변호인이 선임될 것입니다.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습니까?”라는 내용이다. 만약 이를 고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구속이나 심문은 효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첫째, 현재 중국에서 피의자는 ‘묵비권’을 사용할 수 있다. 현행 중국 형사소송법 제52조는 “고문과 협박, 유인, 기만, 기타 불법적인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며, 누구에게도 자신의 유죄를 입증하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중국도 피의자에게 “자기 죄를 입증하지 않을 권리”를 부여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심문에 응하지 않거나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피의자가 답변하지 않아도 수사기관이 답변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문 및 강요 등의 방법으로 유죄 자백을 받은 경우 형사소송법 제56조의 규정에 따라 배제되며, 심지어는 형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수사관에게 형사책임을 묻게 된다.
둘째, 중국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 있어선 아직 불충분하다. 중국 형사소송법 제34조는 “피의자는 수사기관의 첫 심문 또는 강제조치를 받은 날부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수사기간 중에는 변호사만 변호인으로 선임할 수 있다. 수사기관은 범죄 용의자를 처음 심문하거나 강제 조치를 취할 때 범죄 용의자에게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도 피의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립하였다. 하지만 중국은 “피의자가 심문을 받을 때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변호사가 한 명이라도 출석할 때까지 신문을 중단해야 한다”는 규칙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는 ‘할인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라고 부를 수 있다. (https://baijiahao.baidu.com/s?id=1745547707721130827&wfr=spider&for=pc 참조)
셋째, 민사•경제•시장 주체와 질서•환경보호 등과 관련하여 통계법, 계량법, 회계법, 표준화법, 중외합자경영기업법, 외국기업소득세법, 개인소득세법, 기업파산법, 전인민소유제기업법, 수출입검사법, 산림법, 초원법, 어업법, 광산자원법, 토지관리법, 환경보호법, 해양환경보호법, 수자원오염방지법 등이 제정되었다.
넷째, 문화와 교육방면 법률은 교육법, 의무교육법, 직업교육법, 고등교육법, 교사법, 학위조례, 특허법, 기술합동법, 문물보호법, 저작권법, 직업병방지법, 모자보호법 등이 제정되었다.
2003년 3월 10일 전인대 상무위원장 리펑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0기 1차 회의에서 그간의 입법 성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헌법과 헌법관련법, 민법과 상법, 행정법, 경제법, 사회법, 형법, 소송과 비소송 절차법 등 7개 법률부문 모두 기본적이고 주요한 법률이 만들어졌으며 상응한 행정법규와 지방성 법규 및 부속 조례 등이 제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등 주요 영역에서 기본적으로 의거할 수 있는 법이 생겼으며, 헌법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법률 체계의 틀이 갖추어졌다.”*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1988년 3월 25일부터1998년 3월 17일까지 역임) |
* https://news.sina.com.cn/c/2003-03-10/105668357s.shtml.
(2) 인사권 (임명, 파면권)
인사 임명과 파면권은 국가 기관을 조직하는 권력이자 또한 그것을 감독하는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일찍이 ‘1954년 헌법’에서 전인대의 임면권(任免權)을 명시하였는데, 1979년 이래 전인대와 상무위원회는 일련의 국가 기관 조직법을 개정함을 통해 각급 인대와 그 상무위원회의 인사 임면권을 더욱 완성시켰다.
1982년 12월 제5기 전인대 제5차 회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조직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1954년 제정된 전인대 조직법의 기초 위에서 일부 수정한 것인데, 인사 임면권 방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 후보자에 대한 추천 방식을 개선했다. 전국인민대표대회 선거로 탄생하는 국가 기관의 지도자 등 후보자 인선에 있어, 개별 ‘대표’가 추천하는 것을 ‘주석단’이 추천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 이는 얼핏 보면 개별 전인대 대표가 추천하는 것이 더욱 민주적인 방식일 것 같지만, 3000명 가까운 대표들이 모이고 또 각 지방 별로 서로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 같은 방식은 오히려 객관적 인선을 방해할 수도 있다. 예컨대 모르는 후보에 대해 맹목적 지지 혹은 배타가 생길 수 있고, 선출과정이 분파적이고 지방적 색채를 띨 수도 있다. 그 보다는 전체 대표들의 상황을 좀 더 잘 아는 주석단이 후보자를 대회에 추천토록 하고, 그 대신 주석단의 후보추천 과정에서 사전에 각 대표단 간에 민주적 협상을 거치는 것이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인대의 경우 주석단이 제출하는 후보는 각 대표단 간 협의와 협상을 거치며, 주석단은 이 과정에서 대표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정식 후보자 명단을 작성한다. 참고로 전인대의 회의진행은 전체회의를 제외하고는 대표단 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단’은 각 성(자치구), 직할시, 특별구 등 자신의 선출단위 별로 구성된다.
둘째, 파면 안건을 제출하는 것에 대해서 비교적 엄격한 절차를 마련했다. 즉 3개 이상 대표단 혹은 1/10 이상의 대표(약 30명)가 전인대 상무위원회 성원, 국가주석과 부주석, 국무원과 중앙군사위 구성원, 최고인민법원장과 최고인민검찰원장에 대한 파면 안건을 제출할 수 있다. 파면안이 제출되면 전인대 주석단은 대회에 제출하여 심의를 요청하여야 하며, 전체 대표의 과반수 동의를 거쳐야 파면안이 통과될 수 있다.
인사 임명권과 관련해선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다음과 같은 권한을 지닌다. ▲전인대 위원장, 부위원장, 비서장과 위원,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부주석의 선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의 추천에 입각해서 국무원 총리 인선 결정 ▲국무원 총리의 추천에 입각해 국무원 부총리, 국무위원, 각부 부장(장관), 각 위원회 주임, 감사원장, 비서장 인선 결정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선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의 추천에 입각해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위원 결정 ▲최고인민법원 원장 선거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원장 선거.
(3) 중대 국사 결정권
중대한 국사에 대한 결정권은 헌법이 전인대 및 그 상무위원회에 부여한 중요한 직권이다.
이 직권에 속하는 사항은 ▲국민경제와 사회발전계획 및 그 계획의 집행 상황에 대한 심사‧비준 ▲국가예산과 그 집행 상황에 대한 심사‧비준 ▲성‧자치구‧직할시 설립에 대한 비준 ▲특별행정구 설립 및 그 제도에 대한 비준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한 결정 등을 포함한다.
전인대와 그 상무위원회는 1954년 인민대표대회제도의 수립 이래 이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왔다. 예컨대 국민경제개발 제1차 5개년계획에 관한 심의 결정, 황하 치수와 수리 개발 종합계획에 대한 결정, 전국 농업발전 요강 결정 등이 그것이다.
<헌법> 제62조에 따르면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행사할 수 있는 결정권의 범위는 다음 8개 항이다. ①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계획의 집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듣고 이를 심사 비준 ②국가 예산과 그 집행 상황에 대한 보고를 들은 후 심사 비준 ③전인대 상무위원회가 내린 부적절한 결정을 변경 또는 철회 시킬 수 있음 ④성‧자치구‧직할시 설치에 관한 비준 ⑤특별행정구의 설립 및 그 제도에 관한 결정 ⑥전쟁과 평화 문제에 관한 결정 ⑦국무원 각부서와 각 위원회의 설립•철회•합병에 관한 결정 ⑧최고국가권력기관으로서 행사하는 <헌법> 제62조가 규정한 14개항의 직권 이외의 국가 중대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기타 직권 등이다.
전인대와는 별도로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결정권 범위 역시 헌법은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67조는 다음 11개 항을 열거하고 있다. ①전인대 폐회기간에 국민경제와 사회발전계획, 국가예산의 집행과정에서 꼭 필요한 부분적인 조정 방안의 심사와 비준 ②외국과 체결한 조약과 중요 협정에 대한 비준과 폐지 ③군인과 외교관의 계급제도 및 기타 전문 계급제도의 설치 ④국가의 훈장과 명예 칭호 부여에 대한 결정 ⑤사면 결정 ⑥전인대 폐회기간에 만약 국가가 무장침략을 당하거나, 국가 간 침략을 공동 방지하는 조약을 이행해야 할 상황이 벌어졌을 시 전쟁상태의 선포 결정 ⑦전국적인 총동원 혹은 부분적 동원 결정 ⑧전국 혹은 개별 성, 자치구, 직할시의 계엄 결정 ⑨전인대 폐회기간에 국무원 각부, 각 위원회의 설립과 철회 혹은 합병에 대한 결정 ⑩최고인민검찰원장이 검찰위원회 다수 위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전인대 상무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한 중대 문제에 대한 결정 ⑪ <헌법> 제67조가 규정한 20개 항 이외의 전인대가 부여한 기타 국가 중대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 등이다.
이하에서는 전인대가 ‘결정권’을 행사한 대표적 사례로서 ‘샨사댐 프로젝트(山峡工程)’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 프로젝트는 규모가 거대하고 영향이 심대하다. 건국 초 1950년대부터 모택동‧주은래 등 1세대 혁명가들이 이 사업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의 관심과 배려 속에 관련 부문의 수많은 과학기술 요원들이 동원돼 대량의 측량탐사, 과학연구 및 설계와 실험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더라도 제반의 기술적, 사회‧정치적 조건의 미비로 인해 샨사댐 사업은 아직은 추상적인 구상 단계에 머물렀다.
이 사업이 본격 추진된 것은 개혁개방 이후이다. 1984년 국무원은 전문가들을 조직하여 자체 심사를 거친 후 샨사댐 프로젝트에 대한 가능성 연구보고를 원칙상 승인하였다. 그 후 관련 부문 및 사회 각계 인사들이 각종 참고의견과 건의를 제출했다. 관련 부서인 수리전력부는 이들 의견들을 수렴하여 깊이 있는 연구 논증을 거친 끝에, 샨사댐 프로젝트의 가능성 연구보고를 다시 제출하였다. 이후의 진행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84년 수리전력부는 전국 각 방면 전문가 412명을 14개 전문 분야로 나누어 논증을 진행시켰다. 동시에 국가과학위원회는 이 논증 작업을 돕기 위해 별도로 전국에서 300여개 단위를 조직하고 3200여명 과학기술 인원을 동원하였다. 이들은 45개 테마에 관한 핵심적인 과학 연구를 진행하여 400여개의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3년여의 노력 끝에 위 14개 전문가 소조역시 마침내 전문 논증연구 작업을 완성하였다.
1989년 장강수리위원회는 이 같은 논증 성과에 기초하여 다시 한 번 ‘샨사댐 프로젝트 가능성 연구보고서’를 작성했다. 국무원은 1990년 7월 재논증과 관련한 상황 보고와 각계의 의견을 들은 후, 국무원 샨사댐 프로젝트 심사위원회의 성립을 결정하고 이 ‘가능성 연구보고서’에 대한 본격적 심사에 착수했다.
국무원 샨사댐 프로젝트 심사위원회는 10개 테마, 10개 예비심사조로 나뉘어 예비심사를 진행했다. 10개 예비심사조는 163명의 전문가를 초빙하였는데, 이중 기존 샨사댐 프로젝트 논증 업무에 참가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62%를 차지하였으며, 현재 각 관련 유관 부문의 행정‧기술 직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 73%를 점했다. 이 같은 대각선 교차 방식에 의한 다각도의 검증 방식은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예비심사조는 각자 실사를 진행하여 예비심사 회의를 개최한 후 1991년 5월 예비심사 의견을 제출하였다.
1991년 7월 9일~12일 심사위원회는 제2차 회의를 소집하고 10개 예비심사조의 의견을 들었다. 1991년 8월 3일 심사위원회의 마지막 전체회의가 소집되어 만장일치로 장강 샨사댐 프로젝트 가능성 연구보고에 관한 심사 의견을 통과시켰다. 즉 샨사댐 건설 프로젝트는 필요하며,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것이 최종 결론이었다. 1992년 1월 17일, 국무원 상무위원회 회의는 심사위원회의 샨사댐 프로젝트 가능성 연구 보고에 대한 심사 의견을 진지하게 심의한 후, 이 샨사댐 건설 프로젝트에 동의하고 전국인민대표대회에 그 심의를 요청했다. 전인대는 이 의안을 진지하게 토론한 후 최종적인 승인 결정을 내렸다.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 샨사댐 |
이처럼 샴사댐 프로젝트는 의안에 대한 조사연구 시간이 매우 길고 광범위했던 대표적 사례이다. 반복적인 연구논증은 국가적 대사업에 대한 신중함, 과학성, 민주적 절차가 함께 결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수많은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고 여러 차례의 서로 다른 단위 간의 검증 끝에 내려진 결론이기에, 이 사업은 1994년부터 건설에 착수해서 9년 만인 2003년 완공될 때까지 전 사회적 지지와 관심 속에 진행될 수 있었다. 이후 샨사댐 관련한 갖가지 ‘루머’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과학적 타당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할 때 ‘가덕도 신공항 건설’ 등 한국의 국가적 프로젝트가 선거를 앞두고 당파적 이익과 결합되어 졸속으로 이루어지는 모습과는 좋은 비교가 된다.
(4) 감독권
‘3권 분립’ 제도를 실시하는 서구 자본주의국가와는 달리, 중국은 일체의 권력이 전인대에 귀속되기에 그 권력은 무한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의 정무 일체를 전인대가 직접 관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구체적 정무는 다른 국가기관에 위탁하기 때문에 행정, 사법 등의 권력기관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 파생적 권력기관은 모두 전인대의 통일적 지도에 복종해야 하며, 그들과 전인대 사이에는 일종의 ‘직능적 분업’ 관계가 성립한다. 이는 서구 국가들과 같은 ‘권력분립’은 아니기 때문에, 권력기관 간의 상호 공격과 비방으로 인한 국정 마비 사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전인대는 이처럼 구체적 정무를 다른 국가기관에 위탁하는 대신, 그들에 대한 감독권을 보유한다. 인민대표대회의 감독권에 대해 중국 헌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전인대상무위원회는 전인대에 책임을 지고 사업을 보고해야 하며, 전인대는 그 상무위원회의 부적절한 결정을 변경하거나 철회시킬 권한을 갖는다. 그밖에도 국무원, 중앙군사위원회, 최고인민법원, 최고인민검찰원은 모두 전인대에 책임을 지고 사업 보고를 수행해야 한다. 이렇듯 전인대 상무위원회, 국무원,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의 사업보고를 듣고 그것을 심의하는 것은 전인대가 감찰권을 행사하는 기본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전인대 대표들이 수행하는 ‘질의’는 또 다른 중요한 감독 형식이다. 전인대 회의 기간 중 1개 대표단 혹은 30인 이상 대표의 연명으로 국무원과 국무원 산하 각 부서와 위원회에 ‘질의’를 서면으로 제출할 수 있다. 전인대는 또 필요하다고 간주할 경우 특정문제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결과에 기초한 상응한 결의를 할 수 있다. 이 역시 전인대의 ‘감독권’을 수행하는 형식 중 하나이다.
▲전인대 현장조사연구조의 활동 모습 |
개괄하면, 전인대가 감독권을 행사하는 형식은 다음 6가지다. ①‘1부 2원’의 사업보고를 듣고 심의하는 것 ②법 집행에 대한 감독과 전인대 대표의 시찰 ③업무 평의(评议)와 법 집행에 대한 평의 ④ 중대한 위법 사건에 대한 감독 ⑤법 집행의 책임제 실시에 대한 감독 및 오심 책임추궁제 실시 ⑥질의, 특정문제 조사, 파면 등이다.
(5) 기타 직권
헌법을 통해서 전인대의 직권을 모두 완전하게 나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헌법 제62조는 제15항에 “마땅히 최고국가권력기관이 행사하는 기타 직권”을 포함시켰다. 헌법의 이 조항에 입각해서 전인대는 국가의 어떤 중대사이든 개입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이는 전인대 권력의 무한성과 지고성을 보여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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