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맑스주의 고전읽기] 국제노동자계급의 영원한 국제적 강령 공산당 선언을 공부합니다
《공산당선언》은 노동자계급의 영원한 국제적 강령이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진리의 빛을 잃지 않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 고전읽기] 세미나는 지난 번 서문 읽기에 이어 이번에는 《공산당선언》 1장과 2장을 본격적으로 공부합니다.
여기서는 부르주아는 어떻게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고, 어떻게 자신들의 세계를 넘어 새 사회를 만들어 나갈 진보적인 노동자계급을 창출했는지 보여줍니다.
같이 공부하실 분은 아래 공지를 보고 참여하기 바랍니다.
일시: 2022년 4월 5일(화) 19시
장소: 노정협 사무실(서울시 용산구 갈월동 93-45 4층)
문의: 010 3398 0248
* 세미나는 격주 화요일에 합니다.
*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동지들을 위해 영상으로도 세미나를 같이 합니다. 영상으로 참여하실 분들은 위 전화나 페이스북(노동자정치신문, 노정신)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면 초대하도록 하겠습니다.
* 지속적 참여가 어려운 분들은 부분 참여도 환영합니다.
* 지방에 계신 분들은 2인 이상의 세미나 팀을 구성하면 직접 방문해서 세미나를 같이 진행합니다.
맑스주의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가 탄생한 이래 그 혁명적 성격으로 인해 지배계급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인데, 최근에는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를 낡은 것으로 취급하고, ‘새로운 것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맑스주의를 외친다 하더라도 맑스주의의 혁명적 원칙과 사상을 빠뜨린 채 양두구육 식으로 맑스주의 간판 아래서 실제로는 (범)무정부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과학적 인식과 혁명적 실천의 통일이라는 맑스주의 원칙 대신에 ‘밀교화’된 사변의 언어가 과학성을 흐리고 실천을 외면하게 하고 있습니다.
소수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대안으로 내세우되, 수억, 수십억 진보적 인류의 지적 유산, 진보적 인류가 피와 눈물로 만들어온 현실의 사회주의에 대해 왜곡하고, 편견과 독단에 사로잡혀 부정하고 적대시함으로써 대중들 사이에 뿌리 깊은 반공주의 인식을 더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자연과 사회와 인간을 총체적이며 뿌리 끝까지, 동시에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맑스주의의 방법 대신에 사물을 일면적, 표면적, 분리적, 현상적으로 바라보는 비과학과 소부르주아 사상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담론은 이 사회의 역사적 모순을 해결하고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는 집단주의 대신에 주관주의와 개인주의를 유포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은 비정치적인 것입니다. 여기에는 역사발전에 대한 낙관도, 새로운 사회 발전에 대한 전망도, 보편으로의 발전도, 진보적 계급에 대한 경외도, 피억압 계급의 단결도 발견하기 힘듭니다. 대신에 무기력과 절망, 회의, 패배주의, 고립과 분열 같은 불모의 담론만이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실업과 불평등, 파산, 빈곤, 소외, 자본 지배와 착취, 제국주의의 흉포함과 전쟁은 이 사회 모순을 날로 더 깊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이 사회 모순을 은폐하고 지배와 착취질서를 영속화하기 위한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자들, 그 변호인들이 유포하는 교묘한 프로파간다와 피억압 계급 및 민족 간, 세대 간, 남녀 간 분열전략도 점점 더 고도화 되고 있습니다. 자본과 제국주의 변호론은 이번 대선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서도 혹세무민으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국민여론으로 조장하며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지배계급의 위선과 기만을 여지없이 내리치는 철퇴입니다. 맑스주의는 고전일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더 밝게 빛나는 등불이자 모순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혁파하는 불패의 무기입니다.
[맑스주의 고전읽기]에서 우리는 맑스, 엥겔스, 레닌의 고전적 저작을 중심으로, 때때로 스탈린, 마오쩌둥의 고전적 저작들, 그리고 진보적 현대사상을 같이 공부하려 합니다.
이 사회의 진보적 발전과 진리를 위해 정진할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2022년 [맑스주의 고전읽기] 세미나 참가를 적극 환영합니다.
“사실 무엇인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학습과 풍부하고 전면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그 확고한 전제 속에서 자신들의 풍토 속에서 사상을 창조적으로 적용,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그런데 맑스주의는 독일고전철학과 영국의 정치경제학,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3대 요소로 하여 총체적인 맑스주의 사상을 세웠다. 맑스주의는 또한 혁명적 방법론이자 진보적 세계관이기도 하기 때문에 혁명운동의 풍부한 경험과 발전, 인식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점점 더 발전하는 열려 있는 사상체계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맑스의 《자본론》은 그 자체로 논리학의 보고이고, 자본주의의 착취와 작동원리에 대한 가장 과학적인 분석이자 비판이다. 엥겔스의 《반듀링론》은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총체적 인식의 보고이며, 레닌의 《제국주의론》은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고 하며, 《국가와 혁명》은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본질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맑스주의를 학습하지 않고 그 후대에 나온 사상과 체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 깊이 있는 뿌리를 알지 못하고 총체적 인식을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맑스주의를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적용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회에 창조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정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민족과 계급5-최종편] “조선(북)의 체제 특성과 변혁의 특수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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