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를 ‘미중, 미러 패권주의’ 반대로 내거는 인식상, 실천상 오류1 _ 중국이 과연 침략과 신식민지 자원약탈을 일삼고 있는가?

오늘날 제국주의 체제는 미제를 중심으로 하여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이스라엘 등이 폭력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며 각축하는 체제다. 여기에 더해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동맹국가들과,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등 위성국가들이 제국주의 체제에 복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러시아, 조선, 쿠바, 베네수엘라, 이란, 시리아 등 이른바 ‘반미자주’ 국가들이 미제 중심의 일극 체제에 대항, 대립하며 다극 체제를 형성해가고 있다.

미제가 군사적으로나 정치, 경제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 근본적으로 미제가 중심이 되는 일극 체제의 성격이 변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제국주의 반대는 그 정점에 있는 미제를 집중해서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특히 한반도(조선반도)와 동북아에서 제국주의 반대는 반미반제를 중심으로 군국주의 일본제국주의와 미일한 동맹을 반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진보진영 내에서도 중국을 자본주의, 더 나아가 제국주의로 규정하면서 제국주의 반대를 반미반제가 아니라 ‘미중 패권주의’ 반대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제국주의로 규정한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미중, 미러 대결에서 미제의 패배가 아니라 중립적 태도나 양비론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대다수 ‘좌파’정치세력뿐만 아니라 심지어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하는 세력 중에도 이러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심지어 ‘인권’ 운운하면서 ‘국제사회’, 즉 서방 제국주의의 편을 들기조차 한다. 결론적으로 이는 인식상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심각한 오류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가 생산력 발전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시장’을 중시하기 때문에 중국을 자본주의라 할 수 있는 수십, 수백 개의 현상들을 댈 수 있다. 반면에 중국이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근거를 그 이상으로 댈 수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국이 자본주의라는 근거를 대기 위해서는 신민주주의 혁명을 거쳐 사회주의로 전환한 중국에서 언제 자본주의로의 반혁명이 일어났는지, 해체된 동유럽과 쏘련 모든 나라에서 나타났던 자본주의 복고처럼, 기존 권력을 잡고 있던 공산당이 권력에서 내려오고 다당제라는 부르주아 독재정치체제로 권력의 성격이 변화한 근거를 대야 한다. 사회주의 내에 발생한 수정주의가 질적전환이라는 격변 없이 점진적 전환만으로 새로운 질로 바뀔 수 있는지 밝혀야 한다. 왜 중국공산당은 자본주의 체제를 이끌고 있으면서 자본가당으로 변신하지 않고 자신을 파멸시킬 공산당을 유지하고 있는가?

중국이 (시장)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논란은 여기서 다루려는 쟁점과는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여기서 논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독점자본주의라고 곧바로 제국주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잘못 이해해서 그렇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독점이 제국주의의 경제적 기초라고 했다. 그러나 레닌은 독점 자체를 제국주의라 하지는 않았다. 모든 제국주의 국가는 독점자본을 경제적 기초로 하지만, 독점자본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반드시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레닌은 독점을 경제적 기초로 해서 상부구조인 국가가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국가들의 자원을 약탈하고, 노동력과 시장, 정치를 지배하고 이를 위해 타국을 직간접적으로 침략, 지배하기까지 이르렀을 때 이를 제국주의라고 했다. 《제국주의론》의 서술 순서와 방법도 그러하다. 레닌의 제국주의 지표 중 개별지표만 따로 떼어내서 사회성격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일면성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자본주의 독점단계 혹은 독점자본주의단계라고 할 때의 ‘독점'이란 세계 자본주의 국제관계에서의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제국의 ‘독점적 지위’와 그의 실질적 기초가 되고 동시에 세계지배의 주체가 되는 ‘독점체'의 형성_소위 국내체제’와 ‘세계체제’-을 통일시켜 파악할 수 있는 총괄적인 단계 원리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독점자본주의는 제국주의의 ‘경제적 본질'이고, 새로운 단계의 ‘특수성'을 그의 기본적 경제적 측면에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국주의를 완전한 내용으로 규정할 경우에는 그 ‘정치적 특성’을 이루는 ‘금융과두제의 억압과 자유경쟁의 배제에 관련하는 모든 면에서의 반동과 민족적 억압’ 또한 경제과정의 국가적 총괄을 매개로 하여 전개되는 자본주의 열강간의 국제적 대항, 총괄하여 경제적 제모순과 그것의 ‘해결’이 ‘정치’를 매개로 전개되고 실현된다는 제 관계를 포함해야 한다.”(《제국주의론》, 本間要一郞, 한울)

제국주의 간 식민지 지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식민지 해방투쟁과 자국 인민의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는 필연적으로 군국주의를 필요로 한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미제국주의가 끊임없이 세계침략을 하고 분쟁을 야기하도록 하는 주범이다.

“제국주의의 정치적 상부구조에서 두드러진 현상으로 ‘군국주의’가 있다. 군국주의는 그 나라 지배층의 대외침략과 대내반동지배를 강행하기 위하여 거대한 상비군을 중심으로 하여, 국가기구 전체에 군부의 비중을 증대시키고, 호전적 이데올로기의 선전을 강화하고,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면에서 전 국민을 침략전쟁에 동원하는 체제이다 … 제국주의는 국내적으로 인민의 반항을 일정한 테두리 내에 제압하기 위해, 또 대외적으로는 타민족의 반제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조치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끊임없이 무력행동으로의 동원체제를 가져가는 것이 필요로 되기 때문이다 … 특히 그 직접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열렬하게 군국주의의 추진을 갈망하는 세력을 낳는다. 팽대한 해외투자이익을 가진 독점체 그룹과 또 군수생산에 관계하는 주로 중화학공업 부문의 독점체 그룹이 그것이다.”(《제국주의론》, 林直道·中川信義, 한울)

군국주의 미국의 세계지배, 특히 군사적 지배와 패권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다.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중남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동아시아), 유럽사령부(유럽), 중부사령부(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카)가 그것이다. 이들 6대 지역 사령부 외에 핵무기를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우주를 관할하는 우주사령부, 사이버공간에서 작전하는 사이버사령부까지 있다. 그야말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미군의 작전 구역이다 …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핵위협, 재래식 전쟁, 그리고 비밀공작을 통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켜 왔다. 이를 군사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패배와 최근 대중동전쟁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군사주의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전쟁, 또는 전쟁 준비가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가 그것이다. 냉전 이후 전쟁의 상업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 무기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전쟁 수행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국가 미국·1강-①] 미국의 군사주의와 동아시아, 프레시안, 2018.12.15.)

현대의 제국주의 지배 형태인 신식민지주의는 피억압 국가의 현지 권력을 내세워 형식적으로 정치적 자결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미제의 침략상과 폭력상에서 볼 때 구식민지 지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식민주의에 반대하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국제 질서를 추구한다고 천명해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쟁 또는 비밀공작을 통해 미국에 저항하는 정권을 전복하고 미국 입맛에 맞는 정권을 세워 왔다. 이란, 과테말라, 칠레 등 50개국이 넘는다. 영토 정복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무력에 의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점에서 미국의 행태는 19세기 서구 식민주의와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미국의 행태를 신식민주의라고 부른다. 또는 제국주의적 반식민주의라고 하기도 한다.”(같은 기사)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나토 제국주의의 전쟁, 파괴 책동과 군국주의 책동을 날로 강화하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의 반동성도 조금도 수그러지지 않았다. 미제 침략을 지원하고 팔레스타인들을 억압하고 학살하는 이스라엘 시오니스트들의 모습은 현대 제국주의 체제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구 식민지배 체제에 비해 신식민지 지배 체제의 억압성이 조금이라도 완화된 측면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러시아 혁명과 식민지해방투쟁의 덕분이다.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성은 이미 상당부분 알려졌으므로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과연 서방 제국주의의 모습에 비해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의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이라는 게 있는가?

 

위 기사는 중국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 자국 주변에 대한 미국의 군사 패권을 견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고 있다.

중국이 노동자국제주의를 일관되게 견지하지 못하고 있고, 특히 한때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미제의 대북 고립말살책에 부분 동참하거나 대국주의적 태도를 취한 바 있지만,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대외관계와 미제의 침략, 패권정책을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만한 것이 있는가?

이라크, 리비아를 침공해서 초토화하고 시리아에 대해서 내전을 조장해 수백만의 난민들을 만들어낸 미국처럼, 중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내전을 조장한 적이 있는가?(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참전은 중국이나 이북의 관점으로 보면 조중 국제주의 연대, 반미반제 조중혈맹을 굳건하게 사수한 일이 된다.)

중국의 패권주의 운운하지만, 중국의 군사력 강화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미제의 포위전략, 침략 위협에 맞서 방어하는 성격을 띠고 있고 대외적으로 중국은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처럼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있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맹국들이 공공연하게 북의 해상 인근에서 침략전쟁 훈련을 전개해 왔는데, 과연 중국이 조선, 러시아와 함께 그와 같이 남쪽 해상 인근에서 침략적인 군사행동을 벌인 적이 있었는가?

미국이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혁명정부를 전복하려한 것처럼, 다른 나라 혁명정부를 전복하려고 기도한 적이 있었던가? 중국이 미국처럼 해외 전역에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는가?(중국이 가진 단 하나의 해외 군사기지는 소말리아 해적이 들끓는 지역인 아프리카 지부티 해군기지 한 군데에 불과하다. 지부티는 소말리아 해적이 창궐하는 지정학적 특수성을 내세워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군사기지를 유치해 임대료를 받거나 관련 산업을 육성해 이를 경제성장에 활용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이 다른 나라의 쿠데타를 직접 배후에서 지원하고 정치인 암살을 기도하기라도 했나? 중국이 관타나모처럼 원래 쿠바의 영토였던 지역을 강점하면서 수용소를 꾸려 놓고 악랄한 고문을 자행하기라도 했나? 미국이 조선, 쿠바, 베네수엘라, 이란 등을 제재하는 것처럼, 중국이 다른 나라를 제재해서 고통스럽게 한 적이 있었나? 한국의 사드 도입에 대해 중국이 취한 경제 ‘보복’은 제국주의적 행동이 아니라 군사적 위협에 맞서는 정당한 대응 조치였다.

중국은 오히려 베네수엘라, 이란, 시리아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를 반대하고 반미자주 국가들을 지지, 지원하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중국은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유엔에서도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권리 회복과 정치적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위해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미국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탄압하고 억압하고 살육하는 것을 용인해 인권을 가장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2017년 7월 안보리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1. 팔레스타인 주권 인정 2. 모든 폭력 행위 금지 3. 국제사회 참여를 통한 화해 촉진 4. 팔레스타인 발전을 통한 평화 추구 이 4가지 방침을 제시했다.(“미얀마엔 ‘침묵’, 팔레스타인엔 ‘적극’… 중국의 3가지 속셈”, 한국일보, 2021.05.17. 기사 참고)

위 한국일보 기사제목은 중국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서 미얀마 군부의 자국민 인권유린에는 침묵한다는 ‘위선’을 비난하는 것이지만, 미얀마에 대해 중국은 내정불간섭 입장이다. 이는 미영 제국주의자들이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인권’을 내세워 미얀마에 정치적 개입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진일보한 태도다.

중국은 주지하듯 56개 민족들로 구성돼 있는 다민족 국가다. 중국은 조선족에 대한 태도처럼, 소수민족에 대한 자치권을 보장하고 있다.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는 사실상 미제를 비롯해 서방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낸 문제다.(이에 대해서는 “누가 ‘위구르 집단 학살’ 거짓말을 유포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_ 지배자들의 거짓선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영국 노동자들의 이해가 아니다”, 영국맑스레닌주의공산당, 2021년 4월 21일 번역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홍콩의 ‘인권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홍콩에서 벌어진 시위는 대만에서 살인을 저지른 홍콩인 범죄인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에서 직접 출발했고, 홍콩에서 벌어지는 시위의 역사적 기원은 두 차례의 파렴치한 아편전쟁으로 영국제국주의의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것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홍콩의 민주화와 분리운동은 사실 상당부분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개입하며, 홍콩 시대위들의 요구도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과 정치적 민주화 요구, 즉 다당제로 서방 자본주의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는 영국에 다시 식민 복속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서방 제국주의의 강도와 같은 면모와 비교해서 중국의 제국주의의 정치적 특성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가?

 

일대일로, 과연 신식민지 자원약탈인가?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and One Road)는 중국이 추진 중인 신(新) 실크로드 전략으로 일대란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 일로는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한다.

이는 2013년 11월 중국공산당 전체회의에서 채택한 국가 전략으로 60여개 국가를 경제권으로 포괄하는 거대한 중국의 대외관계 발전전략의 총화라 할 수 있다.

이 일대일로 전략에 대해 “실크로드 제국주의”니 “중화 패권주의”니 “유라시아 제국주의”‘ “채무 제국주의”니 하며 신제국주의의 부상에 대해 경고하고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들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주의 국가 언론들은 중국이 아프리카에서 “신식민지 자원약탈자”로 행세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부채함정에 빠졌다고 비난하고 있다.

16세기 초부터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된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1200만 명이 흑인노예가 되고 이 중 150만 명이 항해 도중 사망했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아프리카 식민지배가 ‘상업무역’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현대에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서방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를 침략해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자원을 약탈하고 민족해방운동을 압살하는 강도와 같은 범죄들을 자행했다. 아프리카를 분할지배하기 위해 아프리카 땅에서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전쟁을 벌였다.

지금도 미제를 위시로 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아프리카를 약탈하고 자주권을 압살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비난은 자신들의 아프리카 노예화를 은폐하고 중국에 전가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로 제기된 것이기 때문에 왜곡되거나 과장된 것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아프리카 국가와의 경제협력에서 5불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 5불 원칙은 첫째,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국에 맞는 발전 노선을 탐색하는데 간섭하지 않을 것; 둘째, 아프리카 내정에 간여하지 않을 것; 셋째, 자국 의사를 타국에 강요하지 않을 것; 넷째, 원조에 어떤 정치적 조건을 달지 않을 것; 다섯째, 아프리카 투·융자에서 정치적 사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을 포함한다. 아울러 각국에도 아프리카와의 관계에서 이 원칙을 따를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전문가 오피니언] 황규득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2018년 중국-아프리카 협력포럼(FOCAC)을 통해 살펴 본 중국의 대 아프리카 정책적 함의”, EMERiCS, 신흥지역정보 종합지식포탈, 2018/11/19)

‘인권’과 ‘인도주의’를 명목으로 내정간섭을 일삼는 서방 제국주의에 비해 중국은 경제협력을 하면서도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가령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이 “인권 상황을 문제 삼아 독재국가 후원을 방지”한다고 하는 사례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이다. 무가베는 교사로 있다가 영국 식민지 지배에 맞서 1963년 민족 독립운동에 참가한 뒤 체포돼 10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석방된 뒤에는 1974년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연맹(ZANU) 의장이 되어 무장투쟁을 전개해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다. 무가베는 해방된 짐바브웨의 초대 총리가 된 위대한 인물로 백인 지주들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무상몰수해 흑인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악랄한 식민통치를 하다 축출된 서방 제국주의가 진보적인 아프리카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독재국가’ 운운하면서 경제제재와 함께 내정개입을 하고,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독재국가를 후원한다는 명목으로 비난하는 후안무치한 작태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정부가 투자자가 되어 원가를 따지지 않고 크게 투입하고, 원조와 투자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약속한 600억 달러의 아프리카 원조 및 투자에는 150억 달러의 무상지원, 200억 달러의 무이자 우대 차관, 100억 달러의 중국-아프리카 개발기금 마련, 50억 달러의 대 아프리카 수입 융자기금 설립이 포함되는데, 이렇게 원조와 투자를 구분하지 않는 방식은 중국 정부의 전통이 되어가고 있다.”(같은 글)

“원가를 따지지 않고”, 사실상 무상 원조와 무이자 차관 등으로 원조에 가까운 중국의 투자는 차관 명목으로 돈을 빌려주고 이를 빌미로 내정에 개입하고 막대한 이권을 챙기는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와 사뭇 다르다.

“아시아의 경우 과도한 중국 차관으로 인한 채무를 지불하지 못한 스리랑카가 결국 1999년에 항구 운영권을 중국에 양도했던 것과 같이 과도한 경제 의존이 계속될 경우 아프리카에서도 경제 종속의 심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의 차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지부티, 콩고(브라자빌), 잠비아는 이로 인한 잠재적 위협을 안고 있다…

이에 대한 중국 국내 반응 역시 만만치 않다. 시 주석이 아프리카에 600억 달러를 지원하고, 이와 동시에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아프리카의 빈국 및 최빈국에 2018년 만기인 정부 간 무이자 차관 채무도 면제하겠다고 밝히자, 중국 인터넷 여론은 일제히 ‘돈뿌리기’라며 비난했다. 외국에 과다한 대외원조를 하면서 날로 힘들어지는 중국 서민층의 생활은 왜 방치하냐는 데 대한 불만이다.”(같은 글)

이처럼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자국 내에서 반발을 살만큼 원조에 가깝다. 이러한 원조에 대해 중국 인민들 상당수가 비난하고 있다면, 이는 중국 인민들의 국제주의적 사상이 많이 약화되었고, 이 점은 중국 공산당이 비판받을 지점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의 “날로 힘들어지는 중국 서민층의 생활” 운운은 인민들의 전반적인 빈곤퇴치와 생활향상, 특히 시진핑 정권 들어서 ‘공동부유’를 내걸고 인민들의 복지와 생활수준이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음을 보았을 때,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이 서방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아프리카 국가와의 교역이 급증하고 있는 이유는 강압에 의한 신식민지 착취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다. 서방에 비해 상호 호혜적 측면으로 인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인한 것으로 일각에서는 이를 줄탁동시(啐啄同时)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중국의 대 아프리카 접근 강화는 중국의 경제 및 정치적 이익 추구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의 ‘아프리카 경제영토화’로 비판되는 중국의 신식민주의론에 대해 아프리카의 일부 입장은 이러한 ‘신식민지적’ 관계를 아프리카가 오히려 일정 부분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의 적극적 관여를 통해 자국에 필요한 기반 시설 확충 등 단기적 경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2018 FOCAC 정상회의에서도 남아공의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 회의가 남-남 협력의 효과적 기반이 되고 있다고 언급하며, 중국이 믿을만한 협력 동반자이며 아프리카에 대한 ‘신식민주의’를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을 반박하기도 했다.

그동안 중국은 소프트파워 외교로 아프리카에 친중국화 현상을 지속시켜 왔다. 일본의 한 중국연구 학자는 중국이 ‘죽의 장막’을 치고 있던 1960년대에도 천안문 광장을 지나는 외국인의 10명 중 9명은 아프리카 학생들이었다며, 아프리카 유학생 수용은 1971년 중국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하이난 항공과 통런(同仁) 병원은 짐바브웨와 모잠비크 등지의 가난한 백내장 환자에게 시력을 되찾아주는 ‘광명행’ 사업을 15년째 시행하며 1,800명에게 무료 수술을 해 주었는데, 이는 무수한 사례 중 한 가지 예에 불과하다.”(같은 글)

“중국은 이번 2018 FOCAC 정상회의에 밝힌 8개 협력 분야 중에서 비광물 상품 등 아프리카의 대중국 수출을 장려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2017년 700억 달러 상당의 아프리카 상품을 수입하는 대 아프리카 최대 무역 협력국이지만, 수입품의 95%가 광물, 연료 및 기타 1차 생산품임에 주목하고 아프리카의 비광물 상품의 대중국 수출을 독려하여 아프리카 수출 구조의 다각화를 돕겠다는 정책적 방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엄청난 기술 격차에 직면해 있는 아프리카에 기술 훈련을 도입하는 등 현실적인 방안으로 아프리카와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더욱이, 대 아프리카 개발협력에 있어서 지식과 전문성 교환 및 상호 이익적 무역을 위해 우위를 점한 농업 분야에서 농업 현대화 실현을 약속하였다 … 천연자원 다음으로 아프리카가 중국에 가장 많이 수출하는 임업 상품에 대해서도, 그동안 아프리카가 안고 있는 환경적 대가를 인식하고 녹색 성장에 대해 투자하겠다는 정책적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같은 글)

“중국은 아프리카 원조 및 투자에 대해 상기된 바와 같이 ‘아프리카 국가 내정 불간섭’ 원칙과 ‘원조에 대한 정치적 조종 금지’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경제학적인 이유와 사실 인식의 이유로 항상 융통성 있게 운용되고 있다. 또한 개발협력을 통해 창출된 경제적 이익은 아프리카에서 중국이 고유한 정치적 평화 구축자 역할을 담당하도록 이끌고 있다. 중국은 남수단에서 남부 반란군에 의해 중국인이 인질로 잡히고 2012년에 정유 생산이 중단된데 있어 수단 남북 중재 토론에 참여한 바 있다. 수단에서도 알바시르 정권과 다르푸르 분쟁에 대해 초기의 입장을 바꾸어 중립적 입장으로 선회하기도 했다.”(같은 글)

물론 일대일로 사업은 파키스탄처럼 일부 국가들에게 채무위기를 안기기도 했으나, 대체로 이러한 나라의 채무는 재조정되기도 했고, 참여 국가들의 부를 신장시키고 경제 불평등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일부에서는 일대일로 프로젝트가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침몰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기본적으로 참여국에 부를 분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9월 11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버지니아주 윌리엄메리대 연구기관 에이드데이터는 중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철도로 연결하려는 일대일로의 야망이 세계적으로 경제 불평등을 줄이고 있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138개국에서 벌어진 3485개의 프로젝트를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타국에 대한 투자는 일자리와 시장에 대한 접근을 개선함으로써 경제 활동의 더 평등한 분배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김영채 기자, [세계는 지금] “일대일로, 풍랑에도 침몰 않는 이유는?”, 한국무역신문, 2018. 9. 13.)

중국의 대외관계는 마오쩌둥 시절에는 식민지해방투쟁 지원과 1955년 반둥회의 이후 아프리카에 대한 무상원조,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주권회복을 위한 무조건적 원조, 베트남 반미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막대한 지원, 전통적인 혈맹적 조중친선 관계처럼 사회주의 우애관에 기초한 숭고한 국제주의 원칙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덩샤오핑 시절 달라진 중국의 국제관계는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실용주의로 타락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아프리카에서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약탈상에 비할 바가 아니고, 여전히 ‘상호이익’이라는 호혜평등에 기초하고 있고 진보적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경제적 이권, 차관 등을 미끼로 내정에 간섭하고 심지어 정권교체(레짐 체인지)를 일삼는 서방 제국주의에 비해 부채함정 등 여러 논란과 일부 폐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제관계에서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은 대체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시장의 확대 같은 부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고, 시진핑 정권 들어 사회주의 원칙을 더 강조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들이다.

중국이 신제국주의라는 악선전은 대개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악행을 은폐, 전가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됐다. 악의 제국, 미국에 대한 맹목적 숭배감정에 비해 진보적인 중국에 대해 가지는 비합리적 혐오감정은 그것이 아니면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중국이 제국주의라는 ‘진보단체’들의 분석은 레닌 《제국주의론》의 관점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또한 대중들 사이에 만연한 중국 혐오증에 압도되어 굴복하고 제국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에 복무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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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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