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反)‘맑스 꼬뮤날레’와 창궐하는 무정부주의
“마르크스주의 대안사회론”: 혁명적 맑스주의의 폐기
제출된 모든 입장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2019년 5월 “전환기의 한국사회, 성장과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라는 주제로 열렸던 ‘맑스 꼬뮤날레’ 행사에는 대체로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이 없었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 대신에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맑스주의가 치열하게 대결해 왔던 프루동, 라쌀레, 바꾸닌의 소부르주아적 협동조합주의, 무정부주의였다. 이 중 무정부주의는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현실 사회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대한 부정이나 폄하로부터 기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그 중 특히 대표적으로 “199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사회사상 연구의 혁신”이라는 주제의 <세션1>에 발표됐던 경상대 정성진 교수의 “1990년대 후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 연구의 혁신”을 중심으로 무정부주의와 그 기원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주지하듯, 정성진 교수는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 토니 클리프의 《소련 국가자본주의》를 번역하여 트로츠키주의를 한국사회에 널리 알렸던 인물이다. 정성진 교수는 “기존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대안사회론과 결정적으로 다”른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 개념”을 소개하며 그것이 맑스주의의 핵심적인 사상이라고 주장한다.(인용이 길더라도 양해를 바란다.)
저자는 정성진(2017)에서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의 주요 요소들을 (1) 연속혁명, (2) 국가소멸, (3) 소외된 노동(물상화)의 폐지, (4) 가치 생산의 폐지, (5) 노동의 폐지, (6) 개인적 소유의 재건, (7)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 (8) 참여계획 경제, (9) 여성해방(젠더 평등), (10) 생태사회(자연과의 ‘소재전환’) 등으로 요약하고 레닌의 사회주의론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사회론은 이들과 정면으로 대립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대안사회론은 마르스크의 대안사회론의 주요 요소들의 반대물, 즉 (1) 단계혁명, (2) 국가 강화, (3) 노동 소외, (4) 가치 생산, (5) 노동 사회, (6) 개인적 소유의 부정, (7) 어소시에이션의 부정, (8) 관료적 명령경제, (9) 여성억압, (10) 반생태 사회로 특징 지워지며, ‘포스트’ 자본주의론이라기보다 모종의 자본주의론이다.
마르크스 이후 기존의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가 대안사회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언급했을 뿐이며 체계화된 이론은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나름대로 마르크스주의 대안사회론을 구성했다. 옛 소련의 『정치경제학 교과서: 사회주의』로 체계화된 스탈린의 ‘사회주의 정치경제학’은 그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Kozlov, ed., 1977). … 무엇보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마르크스의 대안사회가 ‘국가 사회주의’와 동일시된다. 또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부터 분리되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된다. 또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 대안사회의 핵심을 어소시에이션이 아니라 사적 소유의 폐지, 국유화, 중앙계획에서 찾는다.
예컨대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대안사회에서 국가의 폐지를 사고하지 못하고 생산수단의 국유화, 중앙집권적 국가를 중심으로 접근했다면, 중·후기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의 국가적 집중이나 중앙계획이 아니라, 협동조합 연합체를 중심으로 한 협의적 참여계획과 생산 당사자들의 자주적 경영관리를 구상했다(大籔龍介, 1997).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혁명론 혹은 대안사회론은 경제학비판과 달리 이미 청년기에 완성되었고, 그 핵심은 1848년 『공산당선언』에 전부 제시되어 있다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정성진, “1990년대 후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 연구의 혁신”)
위 인용문 전체에 집요하게 녹아들어 있는 ‘마르크스주의 대안사회론’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맑스주의 혁명 사상과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대한 부정이다. 정성진 교수는 《공산당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 이후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실천해 왔던 맑스주의의 혁명적 전통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적소유 철폐와 중앙집중적 계획, 그 중앙집중적 계획을 실현하는 집행기구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맑스주의에 대한 정치적 및 문헌적 왜곡
우리는 먼저 맑스(엥겔스)가 정성진 교수의 주장대로 초기 《공산당 선언》 이후인 “중·후기”부터 중앙집중적 계획과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라는 사상을 폐기했는지부터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중앙집중계획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부정하는 “자주적 경영관리”는 결국 자본주의 시장에 굴복하거나 시장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밝힐 것이다.
먼저 정성진 교수는 맑스의 혁명적 사상을 문헌적으로도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다. 과연 맑스가 “중·후기”부터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중앙집중 계획을 폐기했는가?
정성진 교수가 ‘마르스크스주의 대안사회론’의 본질로 들었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은《자본론》에서 맑스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했던 “자유인들의 연합체”인데 그것은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또 각종의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맑스, 《자본론》 Ⅰ〔상〕, 김수행 번역, 비봉출판사) 사회였다. 맑스가 자본주의 상품생산 사회와 비교하면서 예로 든 이 사회는 이처럼 “공동의 생산수단”을 사용하며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하는 사회”로 그것을 중앙집중계획의 부정으로 삼는 것은 맑스주의에 대한 철저한 왜곡이다. 전 사회적인, 전국적인, 또 다른 말로 하면 전 국가적인 수준에서의 중앙집중적 계획 없이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의식적으로 지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인들의 연합체”라는 비유적 표현에서 중앙집중 계획의 부정을 끌어내는 것은 맑스가 종종 사용하는 “자유의 왕국”에서 전제적인 왕정을 끌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맑스는 《자본론》 3권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에서는 “연합된 생산자들(associated producers)의 소유 또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소유”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정성진 교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를 “개인들의” 연합으로 강조하면서 중앙집중계획과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한사코 부정하려 하는데, 그 연합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소유”인 것이다.
다음 《자본론》의 문장에서는 “사회적인 노동”, “공동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개인적으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조화시키기 위해”, 그 구심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 또는 공동노동은, 개인들의 활동을 조화시키기 위해, 그리고 [생산유기체의 독립적인 기관들의 운동과는 구별되는 생산유기체 전체의 운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일반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 바이올린 독주자는 자신이 직접 지휘자가 되지만 교향악단은 독립적인 지휘자를 필요로 한다.(맑스, 《자본론》, 제13장 협업)
맑스는 여기서 “전쟁터에서의 장군의 지휘”라며 자본주의 생산 조직의 특성을 이야기하면서 이 문장을 끌어냈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대규모로 수행되는 모든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노동 또는 공동노동”에서 이 생산 유기체를 지휘할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발전 단계에서 생산의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개별 기업 차원에서 계획을 세우지만 전 사회적으로는 무정부성과 무계획성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한 사회주의 사회에서 중앙집중계획은 생산의 필수적인 수단이자 사회주의의 기본 원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성진 교수는 맑스가 협동조합의 의의를 강조했다고 하면서도,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 사회의 전반적 조건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사회의 조직된 힘, 즉 국가권력을 자본가와 지주의 손으로부터 생산자 자신의 손으로 이동시키는 방법 말고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인용한다. 그런데 인용은 하되 그 주장이 지금까지 정성진 교수의 주장과 전면 배치된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거나 모른 체하고 있다.
“협동조합이 국민적 규모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획득이 필수적”이라면 그 정치권력은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을 박탈한 프롤레타리아 국가일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가 기존의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을 박탈하고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그 정치권력을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화와 인민의 이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권력이고 이 권력의 본질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농민을 포함한 인민들과의) “계급동맹의 특수한 형태”라고 했다.
“정치권력을 획득”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정성진 교수의 주장대로 국유화와 중앙집중계획을 부정한다면 스스로 정치권력과 생산수단의 집중을 포기하는 것일진대, 그렇다면 그때 정치권력과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박탈당한 구체제의 자본가와 지주들이 그 권력과 생산수단을 되찾으려 들지 않겠는가? 정치권력의 포기는 결국 구체제의 부활, 즉 반혁명밖에 없는 것이다.
정성진 교수는 맑스가 “1848년 혁명을 분수령으로 해 중·후기 이후 마르크스의 대안사회론은 초기 『공산당선언』에서와 같은 국가 집권주의적 요소를 지양했을 뿐만 아니라, 1850년대 이후 경제학비판의 심화와 1860년대 국제노동자협회에서의 실천, 1871년 파리꼬뮌의 경험 등을 배경으로 해, 어소시에이션 개념을 이론적·실천적으로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했음을 확인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1848년 이후인 1850년에도 맑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프롤레타리아트의 연합(필자: 맑스는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연합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과연 맑스에게 국가 집권주의적 요소가 지양됐는가?)이 한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지배적인 나라들에서 충분히 발전하여 이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들 사이의 경쟁이 종식되고 적어도 결정적인 생산력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필자: 중앙집중을 말하고 있다.)될 때까지 혁명이 영속되도록 만드는 것이다”(“동맹에 보내는 중앙위원회의 호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 글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1793년에 프랑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 독일에서도 아주 엄격한 중앙집권화를 실현하는 것은 진정한 혁명적 당의 임무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후 1855년 엥겔스는 주를 달아 1793년 프랑스 혁명 상황에 대한 맑스의 언급이 이후 밝혀진 사실과 달리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지방적이고 지역적인 자치가 정치적이고 국민적인 중앙 집권과 모순되지 않듯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엥겔스가 주에서 밝혔듯이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 의해 맑스가 이해한 프랑스 상황과 달리 지방적이고 지역적 자치제에 의해 혁명의 지렛대가 되었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 독일에서 엄격한 중앙집권화 실현이 혁명적 당의 임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1864년에도 맑스는 협동조합의 부분적 의의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협소한 영역에 제한된다면, 기하 급수적으로 자라나는 독점의 성장을 억제할 수 없으며, 대중을 해방시킬 수도 없다”(맑스, “국제노동자협회 발기문”, 박종철 출판사)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맑스는 “근로 대중을 해방시키려면 협동 조합 제도는 국민적 규모에서의 발전과 국민적 수단에 의한 추진”(같은 글)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배계급에 의해 가로막힐 것이기 때문에 맑스는 결국 이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정치 권력을 전취하는 것은 따라서 이제 노동자 계급의 커다란 의무입니다”(같은 글)라고 강조했다.
1871년에도 “노동자 계급의 정치 운동은 당연히 자신을 위한 정치권력의 전취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으며”(맑스가 뉴욕의 프리드리히 볼테에게, 71년 11월 23일 런던, 박종철 출판사)에서 보듯 맑스의 궁극적 목표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 “정치권력”을 세우는 것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파리꼬뮌 이듬해인 1872년 엥겔스와 공동으로 서명한 《공산당선언》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우선 2월 혁명의 실천적 경험 및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처음으로 2개월간 정치 권력을 장악했던 빠리 꼬뮌의 실천적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강령은 몇몇 군데에서 오늘날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꼬뮌은 “노동자 계급이 기존의 국가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프랑스 내전, 국제 노동자 협회 총평의회 격문』, 독일어판, 19면을 보라. 거기서는 이 점이 보다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정성진 교수는 맑스의 이 주장이 《공산당선언》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정치적 우위를 이용해 점차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빼앗아, 국가,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국가의 수중에 모든 생산수단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달리 “『프랑스 내전』에서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자계급은 단순히 기성의 국가기구를 접수해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행사할 수 없다’(마르크스, 2003: 81)고 수정했다”고 주장한다.
맑스와 엥겔스의 주장에 대해 정성진 교수는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다. 레닌은 이미 《국가와 혁명》에서 정성진 교수와 같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아주 특징적인 사실은 이 같은 주요한 수정이 기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으며, 그 수정의 의미를 「공산당선언」을 읽은 100명의 사람 중 아마도 99명까지는 안되더라도 90명까지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 조금 전에 인용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명제에 대한 현재의 천박한 ‘해설’이란 다름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여기서 강조한 것이(그들의 주장대로는) 권력장악과 반대로 완만한 발전 개념 따위였다는 것이다 … 그러나 실제로 진상은 그와 정반대이다. 마르크스의 생각은 노동계급은 ‘기존의 국가기구’를 파괴하고 타도해야 하며, 단순히 기존 국가를 장악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레닌, 《국가와 혁명》, 논장)
레닌은 여기서 맑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개념과 반대로 “기회주의자들”이 맑스의 주장을 “완만한 발전 개념 따위”로 왜곡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성진 교수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점진적인 작업”이라는 맑스의 문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이를 기존 “국가권력의 분쇄”가 빠진 “완만한 발전 개념 따위”로 왜곡했다. 정성진은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화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이후에 장구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지난한 작업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을 이처럼 혁명이 빠진 “점진적인 작업”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레닌은 맑스의 이 주장을 “노동계급이 모든 국가기구를 타도하고 부수고 박살(Sprengung, 폭발-엥겔스가 사용한 표현) 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대신에 “노동계급이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 과다한 혁명적 열광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이라며 “가장 왜곡되고 기회주의적 방식으로 해설”하고 있다고 하는데, 정성진 역시 파리꼬뮌 이후에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의 새로운 발전을 수정주의자 베른슈타인처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레닌은 맑스의 유명한 “쿠겔만에게 보내는 서한”을 문헌적 근거로 들어 맑스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다.
… 만약 귀하가 나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마지막 장을 읽어보면, 귀하는 내가 프랑스혁명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이란 이전처럼 관료 · 군사기구를 한 사람의 손에서 또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료 · 군사기구를 타파[고딕은 마르크스의 강조이며, 원어는 zerbrechen]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대륙에 있어 모든 진정한 인민혁명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을 단언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현재 파리에 있는 우리 당의 영웅적 동지들이 시도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레닌, 같은 책)
맑스는 “수탈자에 대한 수탈”이라는 혁명적 방식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파리꼬뮌의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그들은 꼬뮌이 모든 문명의 토대인 소유를 철폐하려 한다고 외친다! 그렇다, 여러분, 꼬뮌은 다수의 노동을 소수의 부로 전화시키는 저 계급 소유를 철폐하고자 하였다. 꼬뮌은 수탈자에 대한 수탈을 의도하였다. 꼬뮌은, 지금 무엇보다도 노동의 노예화와 착취의 수단인 토지와 자본이라는 생산 수단을 자유로운 연합된 노동의 단순한 도구로 전화시킴으로써 개인적 소유를 사실로 만들려고 하였다 … 협동 조합적 생산이 공허한 가상이나 사기로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를 대체한다면, 협동 조합들이 모두 공동 계획에 의거하여 국민적 생산을 조절하고 따라서 생산을 자기 자신의 지휘 아래 두어 자본주의적 생산의 운명인 지속적인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련을 끝장낸다면 ―여러분, 그것이야말로 공산주의, ‘가능한’ 공산주의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맑스, 《프랑스에서의 내전》, 박종철 출판사)
생산수단을 전 국민적으로 “집중”하여 중앙집중 계획을 실시하지 않고 어떻게 “자본주의 생산의 운명인 지속적인 무정부 상태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련”, 즉 과잉생산 공황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정성진은 맑스의 “토지 국민화론(1872년)”을 인용하며 맑스의 주장이 “생산수단의 국민으로의 집중”, 국민화(natioalization), 국민 소유이며, 토지의 “국가로의 집중”, “국가화(Verstaatlichung), 국가 소유(Staatseigentum)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토지 국유화는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들에 완전한 변화를 일으킬 것이며, 그리하여 결국 공업에서건 농촌에서건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를 제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급 차이와 특권은 자신들을 발생시킨 경제적 토대와 함께 사라질 것이며, 사회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으로 전화할 것이다. 타인의 노동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회 전체와 구별되는 어떠한 정부나 국가 권력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농업, 광업, 제조업, 한마디로 모든 생산 부문들은 점차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조직될 것이다. 생산수단의 국민적 집중은, 공동의 합리적인 계획에 따라 사회 업무를 수행하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들로 구성된 사회의 자연적 기초가 될 것이다. 이것이 19세기의 거대한 경제적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이다.(맑스, “토지 국유화에 관하여”, 1872년 3월에서 4월 사이에 씌어짐., 박종철 출판사)
정성진은 국유화와 국민화를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위키 백과에서도 “Nationalization”은 사적 자산을 “national government or state.”(정부나 국가) 소유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는 정성진의 ‘프롤레타리아 국가’에 대한 결사 부정과 달리 맑스는 생산수단의 국민적 집중이나 자유인들의 연합이나 국유화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정성진의 주장대로 그것을 구별한다고 하더라도 맑스는 “생산수단의 국민적 집중”이라고 하고 있다. “국민적”이든 “국가적”이든 분명한 것은 생산수단의 전국적 규모로의 “집중”이다. 맑스는 “사회 전체와 구별되는 어떠한 정부나 국가 권력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국가 일반의 부정이 아니라 “토지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고 “배타적 계급에게 사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사회 전체와 구별되”지 않는 대중권력, 즉 프롤레타리아적, 인민적 권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국유화”, “국민화”에 대한 논란을 차치한다하더라도 맑스가 “사적 소유의 폐지, 중앙계획”의 개념을 수정했다고 주장하는 정성진 교수의 주장이 맑스주의에 대한 철저한 왜곡임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정성진 교수는 맑스의 “고타강령 비판”을 가지고도 “대안사회는 처음부터 어소시에이션 사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맑스는 이 글에서 정성진 류의 무정부주의자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에 대해 부정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반박하는 유명한 주장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는 전자에서 후자로의 혁명적 전환의 시기가 놓여 있다. 또한 이 시기에 상응하는 정치적 이행기가 있으니, 이 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강조는 맑스, 인용자) 이외에 다른 것일 수가 없다.(맑스, “고타강령 비판”, 박종철 출판사)
“‘사회주의’가 ‘공산주의’로부터 분리되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된다”며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를 비난하는 정성진은 자본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 사이에 “정치적 이행기”가 있고, “이 때의 국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독재”일 수밖에 없다는 맑스 자신의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 맑스는 여기서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를 말하는데, 그 국가는 과연 “연합체”인가, “연합체적 국가”인가, 소멸될 공동체인가?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의 사도들이 이처럼 분명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나타낸다면 노동자 계급이 오래 전에 그들을 지옥으로 쫓아냈으리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에게서 모든 실제적인 투쟁 수단을 빼앗으려 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천진난만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부르주아 공론가들과 몰락 귀족들로부터 모욕을 받았다고 느꼈을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투쟁의 무기는 현실 사회 속에서 취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투쟁의 숙명적 조건들은 불행히도 이 사회과학의 박사님들이 자유, 자치, 무정부의 이름으로 신격화된 관념적 환상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맑스,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 박종철출판사)
“자유, 자치, 무정부의 이름으로 신격화된 관념적 환상”을 가진 “사회과학의 박사님들”은 바로 오늘날 맑스주의로부터 혁명성을 박탈하고 현학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자본과 권력에 전혀 치명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는 한국의 강단 ‘맑스주의자’인 정성진 박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만 한국의 노동자 계급이 과학적,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무정부주의 “공론가”들이 강단에서 진보연하며 활개치고 다니게 할뿐이다.
파리코뮌 20주년 기념일인 1891년 3월 18일에 엥겔스는 맑스의 《프랑스 내전》에 대한 서문을 썼다. 맑스주의와 파리코뮌의 위대한 혁명적 경험과 교훈을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부정하는 것으로 삼으려는 정성진을 비롯한 일단의 현학적 무정부주의 강단 ‘맑스주의’ 신사 여러분들에게 엥겔스의 준엄한 일갈(一喝)을 들려주겠다.
최근 사회민주주의 속물들은 또 한 번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에 대해 건전한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좋다. 신사 여러분, 이런 독재가 어떤 모습인지 알고 싶은가? 파리코뮌을 보라, 이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다.(엥겔스, 맑스의 《프랑스 내전》에 대한 서문)
무정부주의자들의 공상성과 쏘련 및 현실사회주의 부정
정성진은 앞에서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대안사회에서 국가의 폐지를 사고하지 못하고 생산수단의 국유화, 중앙집권적 국가를 중심으로 접근했다”고 하는데,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혁명적 독재 대신에 “국가의 폐지”를 주장하고, 그 자리를 “국가적 집중이나 중앙계획이 아니라, 협동조합 연합체를 중심으로 한 협의적 참여계획과 생산 당사자들의 자주적 경영관리를 구상했다”고 하고 있다.
레닌은 무정부주의자들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반박을 통해 맑스주의와 무정부주의와의 결정적 차이를 구별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무정부주의자들을 논박하면서 싸웠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국가의 “폐지”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 그가 반대한 것은, 노동자들이 ‘부르조아지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하여 무력을, 즉 국가라는 조직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었다 … 우리는 목표로서의 국가의 폐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무정부주의자들과 결코 의견을 달리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여 피억압계급의 잠정적인 독재가 계급을 폐지하는 데 필수적인 듯이, 착취자에 대항하여 국가권력의 도구와 원천들과 수단들을 잠정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가장 날카롭고 명확한 방식으로 무정부주의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즉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란 멍에를 벗어던진 후에 ‘자신의 무기를 손에서 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하여 자본가에 대항하여 무기를 사용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만약 ‘잠정적인 형태’로서의 국가가 아니라면, 하나의 계급이 또다른 계급에 대항하여 무력을 체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라고 묻고 있다.(레닌, 같은 책)
한국의 대다수 ‘좌파’들은 쏘련 사회주의를 “국가 사회주의”로 보고, 국가권력의 강화와 중앙집중 계획이 쏘련 사회주의 해체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무정부주의를 정당화 하고 있다. 이 중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쏘련 사회주의 중앙집중계획에 대해 “지령경제”라고 비난하고, 당의 지도를 “관료주의”라고 비난하면서 “분산적 계획”을 대안으로 제출하여 범무정부주의적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이른바 ‘강단 맑스주의자’인 정성진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통 무정부주의자들이 기존 국가권력의 타도를 인정하나 타도된 기존 국가권력을 대신하여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부정하고 “국가소멸”을 주장하는데 한국의 대다수 ‘좌파’와 강단 맑스주의자들은 국가권력의 타도조차도 부정한다.
정성진 교수는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론”을 소개한 인물답게 “연속혁명”이라는 개념을 대안사회의 주요 요소라고 강조하는데, 그럼에도 글 전체에서 어떻게 기존 자본주의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 계급의 독점적 소유를 철폐할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정성진은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에 대해 극단적 혐오를 보이면서 심지어 “모종의 자본주의론”이라고까지 중상하고 있다. 그런데 정성진은 현학적으로 맑스를 인용하면서도 단 한 번도 현실에서의 투쟁과 혁명을 고민해보았다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정성진은 어떻게 혁명을 할지는 물론이고 혁명 이후에 자본주의 생산을 대신하는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할 때, 타도된 자본가들과 반동세력들의 복고주의 반혁명을 어떻게 분쇄할지에 대해 단 한 번도 현실적으로 고민하지 않고 있다. 과연 무장한 프롤레타리아 “국가”가 아니고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에서 어떻게 반혁명 책동들을 분쇄하고 단 하루라도 혁명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국가권력이 그 사적소유를 물리력으로 비호하고 있는 착취와 억압 사회를 철폐하지 않고 어떻게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으로 나아갈 것인가? 맑스의 말대로 “수탈자들을 수탈”하지 않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사회로는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더욱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사회가 누리게 될 자유를 제국주의자들이 물리력으로 박탈하려들 때 그 “자유”와 “연합”은 누가, 어떻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혁명은 이상적인 것인 동시에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것이다. 공상으로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는 없다. 제국주의가 사회주의 조선과 쿠바에 대한 군사책동과 경제봉쇄 같은 고립말살책동을 펼치는 것을 보았을 때, 또한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제의 책동을 볼 때,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를 통해 제국주의와 싸우고 중앙집중적인 자력경제를 조직해 내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자주적인 성장은커녕 한시도 존속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것이다.
쏘련 사회주의에서도 국가 사멸에 대한 기회주의적, 무정부주의적 주장이 제기됐다. 스탈린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강력하고 위력 있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바로 이것이 사멸하여 가는 계급의 마지막 잔재를 청산하며 그들의 절취행위를 분쇄하기 위하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어떤 동지들은 계급의 철폐, 무계급 사회의 건설 및 국가 사멸에 대한 테제를 건달과 안일을 위한 변명거리로, 계급투쟁이 소멸되며 국가 권력이 약화된다는 반혁명적 이론을 위한 변명거리로 이해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들이 우리 당과 아무런 공통성이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변절자이거나 혹은 당으로부터 쫓아내야할 양면주의자들이다. 계급의 폐절은 계급투쟁의 소멸로써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쟁의 강화로서 달성되는 것이다. 국가의 소멸은 국가권력을 약화시켜서가 아니라 사멸하여 가는 계급들의 잔재를 박멸하여 아직 청산될 날이 멀었으며 또 가까운 시일 내로는 청산되지 않을 자본주의적 포위에 반대하여 국방을 조직하는 데 필요한 국가권력을 최대한으로 강화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스탈린, “제1차 5개년 계획의 총화”, 1933년 1월 7일)
엥겔스는 유명한 “권위에 관하여”라는 글에서도 “결합된 행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조직을 이야기 한다; 그러면 권위 없이도 조직이 가능한 것인가?”라며 중앙집중과 권위를 부정하고 자치 원리를 절대시 하는 정성진 류의 무정부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엥겔스는 현대의 대공업과 대규모 농업의 생산관리를 위해서도 권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엥겔스는 “혁명은 존재하는 가장 권위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엥겔스는 파리꼬뮌이 권위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단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며, 반대로 권위를 충분하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질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엥겔스의 서신에서도 정성진 교수 같은 무정부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권위’와 중앙 집권이라는 관용어가 매우 악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혁명 이상으로 권위적인 것을 알지 못하며, … 내가 보기에 그것은 권위를 행사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권위와 중앙집권을 가능한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저주받아 마땅한 두 개의 사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혁명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아니면 말로만 혁명가인 사람으로 보입니다.(“엥겔스가 또리노의 까를로 떼르자기에게”, 72년 1월 14일[-15일])
정성진은 쏘련 및 현실사회주의의 생산의 조직화를 비난하면서 실제적인 생산의 원리와 생산을 둘러싼 논쟁과 사례들을 인용하지 않는다. 정성진은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화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현실적으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정성진은 “협동조합 연합체를 중심으로 한 협의적 참여계획과 생산 당사자들의 자주적 경영관리를 구상”한다고 하여 프롤레타리아 국유화와 중앙집중 계획을 부정하고 있다. 맑스주의가 치열하게 대결했던 무정부주의의 대명사인 바꾸닌에 대해서 엥겔스가 신랄하게 비난한 내용은 바로 정성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가의 폐지는, 그에 앞선 사회 변혁이 없다면 난센스입니다―자본의 폐지가 바로 그 사회 변혁이며, 전체 생산 방식의 변화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꾸닌에게는 국가가 근본적인 악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의 생명을 … 존속시킬 수 있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모든 정치의 완전한 회피입니다 … 이러한 사회에는 무엇보다도 어떠한 권위도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권위=국가-절대적으로 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종국적인 결정의 의지가 없이, 통일적인 지도가 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공장을 운영하며 철도를 운행하며 선박을 운항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론 우리에게 아무 말도 없습니다.) 소수에 대한 다수의 권위도 중단됩니다. 각각의 개인과 각각의 공동체는 자치적인 것이 되지만, 다만 두 사람의 사회라도 각각이 자신의 자치에서 무언가를 포기함이 없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바꾸닌은 재차 입을 열지 않습니다.(“엥겔스가 밀라노의 테오도르 쿠노에게”, 72년 1월 24일)
정성진은 앞에서 현실 사회주의가 “가치 생산”이라면 “자유인들의 연합체”는 “가치 생산의 폐지”가 원리라고 하는데, 가치법칙은 자본주의의 무정부성과 무계획성 뒤에서 주기적인 과잉생산 공황이라는 파국을 거치며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규제하고 조절하기도 하는 법칙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치법칙은 상품생산, 시장과 관련이 있는 법칙이다. 쏘련에서 가치법칙은 사라졌는가? 과연 의식적 계획과 가치법칙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스탈린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한다.
가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사회주의 제도 하에서도 가치 법칙이 존재하며 작용하는지 묻는다.
그렇다. 존재하며 작용한다. 상품과 상품 생산이 있는 곳에는 가치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법칙의 작용 범위는 우리나라에서는 우선 상품 유통, 즉 매매를 통한 상품교환, 주로 개인 소비 상품 교환에 미치고 있다. 물론 이 분야에서는 가치법칙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조절자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가치법칙의 작용은 상품 유통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 작용은 생산에도 미친다. 물론 우리 사회주의적 생산에서는 가치법칙이 조절적 의의는 가지지 않지만 그러나 그것은 역시 생산에 영향을 주고 있으므로 생산을 지도함에서 있어서 그것을 고려하지 않으면 한 된다 … 그렇다고 하여 이 모든 것은 가치법칙의 작용범위가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주의 하에서와 같다거나 가치법칙이 우리나라에서도 생산의 조절자로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에 있어서 가치법칙의 작용범위는 우리 경제 제도 하에서는 엄격히 제한되어 있으며 국한되어 있다 … 도시에도 농촌에도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소유가 없고 생산수단이 사회화되었으니만큼 가치법칙의 작용범위와 생산에 대한 그 영향의 정도가 제한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스탈린, “쏘련에서의 사회주의의 경제 제 문제”)
정성진은 이와 같이 사적소유가 철폐되고 생산수단의 사회화의 진전으로 가치법칙이 제한되어 있고 계획생산이 지배적인 쏘련 사회주의를 “가치 생산”이라고 하여 하등 근거가 없는 비방을 일삼고 있다. 가치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고유한 실업과 공황이 사라진 쏘련 사회주의를 “가치 생산”이 지배하는 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쏘련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도, 경제학적 인식도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반면 정성진은 “대안사회론”을 “가치 생산의 폐지”라고 하는데, 이 역시 “대안사회”에 대한 공상적인 이해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쏘련의 사례에서 보듯, “상품과 상품 생산이 있는 곳에는 가치법칙도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이 발생한다면 보다 빠르게 달성될 수는 있겠지만 사회주의가 되어도 한날한시에 상품생산이 소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 생산물과의 거래, 특히 전 세계적 공산주의가 달성되지 않은 한 대외무역에서 자본주의 국가와 거래하는 생산물과 생산수단은 상품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협동조합에 제공하는 트랙터와 같은 생산수단은 상품이 아니지만(스탈린 이후 후르쇼프 때에는 상품이 되었다.), 국유기업 생산물과 협동조합 생산물 거래 역시 특수한 상품거래의 일종이다. 따라서 정성진이 “대안사회”를 “가치 생산의 폐지”가 이뤄진 사회라고 규정하는 것을 볼 때, 정성진이 공상적으로 “대안사회”를 사고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정성진은 “자유인들의 연합”에 대해 “어소시에이션은 사람들의 의식적 합의로 인간관계를 제어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처럼 공동결정체이지만, 공동체와는 달리 자립한 개인들의 개방적 관계이며, 이 점에서는 오히려 시장과 공통점이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집중을 거부하고 “시장과 공통점이 있는”, “자립한 개인들의 개방적 관계”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무정부성과 무계획성을 극복할 수 있는가? “개인들이 공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유 의지에 기초해 힘과 재화를 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생산하는 행위 및 그 행위에 의해 생산되는 사회”에서 “자유 의지”의 “개인적” 담지자들이 사회 전체의 “공동의 목적”과 일치시킬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공산주의 도덕인가? 개인적인 물질적 욕구의 양보인가? “힘과 재화를 통합”하는 것이 중앙계획기구 없이 어떻게 가능한가?
정성진은 “사람들의 의식적 합의로 인간관계를 제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적 합의”는 과연 어느 수준에서 합의되는 것인가? “사람들의 의식적 합의로 인간관계를 제어”하는 수단은 사람들의 의식 외에 어떠한 제도적 장치가 있는가? 개인들의 욕구와 공동체의 욕구가 대립될 때, 개인들이 애초에 맺었던 공동의 의식적 합의를 깨버릴 때는 누가 중심에서 개인 혹은 개별적 연합체들을 제어하고 조정하고 통제하는가? 사전에 맺었던 공동의 합의를 의식적, 의도적으로 깨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계획생산 과정에서 애초 계획을 수정하고 변경한다고 하면 누가 그것을 수행할 것인가? “자유인들의 연합”이 “의식적 합의”가 된다면 관계없겠지만 의식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정성진은 중앙집중 계획을 한사코 부정하니 의식적인 개인들이 연합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공장별로, 직장별로, 지역별로의 연합체일 것이다. “자유인들의 연합”은 집중되지 않을 것인가? 이 “연합”의 최고 수준에서의 “연합”은 어떻게 달성되는가?
쏘련에서 고스플란(Gosplan)이라고 하여 전국적인 계획기구가 있었다. 각 공화국 차원에서의 고스플란도 있었다. 이 고스플란에서의 계획에는 지역별, 공장별 참여가 있었다.
연간계획은 고스플란을 중심으로 작성되어 소련 정부에서 확정되던 각 부서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지방 및 각 개별기업에 생산지표로 하달된다. 다른 한편 지방과 기업의 사정에 따라 수정되고 독자적인 제안이 이루어지며 주어진 과제의 달성을 위한 설비나 투자의 계산이 보고되는 상향적 과정이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민주집중제 원칙의 관철을 기한다. 공업생산 단위의 기본은 국유 공업기업인데 이는 국가로부터 원자재 및 운영자금을 할당받아 상부로부터 지시된 계획지표(노르마)를 달성한다. 국유 공업기업의 운영방식은 기업장 단독책임제이고 기업장은 정부에 의해 임명되고 그 주요임무는 상부에서 지시된 생산계획을 달성하고 기업내 생산평의회, 노동조합, 당기관 등과 협조하여 기업을 원만히 운영하는 데 있다.(“사회주의 경제모델”, 노동자의책)
사회주의에서 계획에서도 역시 노동자들을 결속시키는 대중적인 노동자들의 조직이었던 노동조합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전국적인 수준에서의 계획과 지역별, 공장별 계획은 시시때때로 이해관계가 달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민주집중제”에서 민주와 집중이 분리되지 않듯, 중앙집중계획과 이 계획기구에의 전 인민적 참여는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각 나라마다 특수성을 가지고 운영되기도 했다. 조선(북한)의 계획기구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운영되고 작동된다고 한다.
1단계 – 각급 생산단위들에서 예비숫자(preliminary figure)를 작성하고, 그것을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2단계 – 국가계획위원회가 예비숫자에 기초하여 통제숫자를 작성하고, 그것을 각급 생산단위들에 내려보낸다.
3단계 – 각급 생산단위들에서 통제숫자를 놓고 군중토의를 진행하고, 군중토의 내용을 반영한 생산계획 초안을 만들어 국가계획위원회에 제출한다.
4단계 – 국가계획위원회가 생산계획초안을 검토하여 생산계획을 작성한다.
5단계 – 내각과 인민위원회가 생산계획을 검토한다.
6단계 – 최고인민회의 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생산계획을 승인한다.
7단계 – 승인, 확정된 생산계획을 각급 생산단위들에 내려보내 세부화, 구체화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중앙계획국이 알지 못한 예비숫자” 통일뉴스, 2011.04.25.)
특정한 어느 한 해, 또는 몇 년의 시기 동안 국가적, 전국적인 수준에서 집중해야 하는 계획은 중공업에 대한 우선적인 집중이 있을 수 있고, 중공업과 경공업의 병행발전이 있을 수도 있고, 제국주의의 군사적 공세에 의해 선군정책을 내세우거나 병진정책을 내세우거나 아니면 인민경제에 집중하는 계획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에 집중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또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주택이 대규모로 파괴되었을 때에는 주택건설에 집중할 수도 있고, 질병이 발생했을 때에는 의료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앙집중을 거부하는 “자유인들의 연합체”에서는 어떻게 이러한 수준의, 이러한 내용의 계획을 세울 수 있는가? 전국적 수준의 계획과 지역적, 공장 및 직장별 요구와 계획이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쏘련 사회주의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특히 개개 지역과 공장 및 직장에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두면서 전국적인 이해와 충돌하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 개개 단위에서는 개개단위의 이해를 중심에 요구하거나 한 해 노동의 사회적 성과물들을 더 많이 분배받으려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중앙계획이라는 전 사회의 목표와 개개 단위의 계획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 때로는 전체 사회의 목표에 비춰 자신들의 이해를 일정 정도 양보하도록 하고, 무엇보다 공산주의적 인간형, 공동체 지향적인 인간상에 대한 끊임없는 교양과 교육으로 새로운 인간상을 만드는 문화혁명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이러한 전국적이고 전 계획적인 국가계획을 앞장서서 집행하고 이 총과정을 지도할 수 있는 단위는 누구인가? 프롤레타리아 국가이다. 이 프롤레타리아 ‘대중’국가를 가장 의식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전위’는 누가 있는가? 프롤레타리아 국가에서 당은 대중의 가장 의식적이고 선진적인 일부로서 결사체이다. 이 결사체가 전국적이고 전국가적인 계획을 지도한다.
결국 선진적인 당이 공산주의적 사상과 도덕의 앙양, 물질적 자극과 도덕적 자극의 결합, 사회 전체적 계획과 지역적, 개별적 계획의 조화와 조정, 참여와 중앙집중의 결합, 계획과 시장의 관계 정리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정치적 지도”를 해야 한다. 당의 지도가 없이 개인의 의식이나 “자유인들의 연합”으로 이를 달성할 수는 없다.
레닌은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하는데 있어서 무정부적인 일탈에 대해서 심각하게 비판하였다.
조합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는 행정에의 참가라는 실제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또한 달성된 성공이나 정정된 오류에 엄밀히 입각하여 이 경험을 더욱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경제관리의 기관들은 ‘선출하는 생산자대회들 혹은 생산자대회’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 그리고 우리는 소비에트 국가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경제형태들의 건설이라는 실제의 업무를 계속하고 시정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업무에 대한 쁘띠부르조아적이고 무정부적인 파괴를 목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파괴행위는 부르조아 반혁명의 승리로 귀결될 뿐이다.(V.I 레닌, “러시아공산당 제10차대회의 결의. 우리 당내의 생디칼리즘적, 무정부주의적 편향에 대하여의 최초의 초안”,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노동자의 사상> 제1호에서 재인용)
공산주의 건설을 위해서는 노동을 전국적인 규모에서 가능한 최대로, 극히 엄격하게 집중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자본의 위력과 노동의 무력함의 근원의 하나인 노동자의 직업적 분산상태 및 지방적 분산 상태와 세분상태를 극복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V.I. 레닌, “러시아공산당(볼) 강령 초안”, 1919년 2월 23일, 노동자의 사상 제1호에서 재인용)
심지어 이러한 무정부주의는 “부르주아 반혁명의 승리로 귀결될 뿐이다”라고 경고하였다. 실제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에서는 레닌의 이와 같은 경고가 현실이 되었다.
정성진이 주장하는 대안사회론에서 말하는 “자주적 경영관리”는 일찍이 1940년대 말에 유고(정식 명칭은 유고공산주의동맹)의 “시장사회주의”에서 실험되었다. 유고에서는 쏘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전위정당 노선, 사회주의 중앙집중 계획을 반대하는 “사회주의로 가는 유고의 길”을 발표하고 시장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다. 유고 사회주의는 결국 이 실험을 지속한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첫 번째는, 지역격차의 확대와 민족대립의 재현이다. … 두 번째는, 사회적 투자의 약체화이다. 자금이 정치조직의 수중에서 기업으로 대폭 이전된 결과, 원료개발, 농업개발 등 채산성이 나쁜 산업부문과 교통, 수리, 교육, 보건 등의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문의 자금확보가 쉽지 않게 되어 신문 등에서도 그 폐해가 빈번히 취급되어졌다. 세 번째는, 생산의 무정부성이라 불리는 제 현상의 심각화이다. 디노메이션이 인플레를 가속화시켜 데이날의 가치저하가 한층 빈번하게 매스컴에 실리는 만화의 소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기업은 자주적 결정권을 얻었지만, 동시에 경쟁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경제에 정통한 경영전문가층의 역할이 높아지고 노동자에 의한 자주관리는 오히려 형해화하는 경향이 눈에 띠게 되었다.
기업별 ‘민주성’, ‘독립성’, ‘분산성’, ‘자치’의 강화는 지역별 민주성, 독립성, 분산성, 자치를 강화하도록 하고, 이는 민족별 민주성, 독립성, 분산성, 자치를 강화하도록 하면서 유고 시장사회주의 사회 내부의 모순이 확대 심화되는 계기가 됐다. 이 모순의 심화는 무정부성으로 나타나면서 결국 기업 간 지역 간, 민족 간, 노동자 간 빈부격차와 불평등,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민족 갈등과 대립을 고조시켰다. 이 때문에 “알바니아인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코소보 메트비아 자치구와 크로아티아 공화국 등에서 민족대립이 더 극심하게 나타났다.(전국노동자정치협회, “수정주의의 전위, 유고 시장사회주의”, <노동자의 사상 1호>)
결국 1980년대를 전후로 해서 유고 내에서는 대량 실업과 일련의 기업파산과 인플레이션과 외채 증대와 제국주의 국가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등 자본주의 모순이 극심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1980년대 중반에 <사회주의 자치정치체제 운행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라는 입장을 채택하였으나 이미 각 공화국과 기업단위에 자본주의 생산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당의 전위성과 지도성이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주의 강화 시도는 실패했다. 1992년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최종적으로 자본주의로 복귀했다. 유고연방의 해체 이후에 제국주의가 조장한 민족분쟁으로 유고는 수십만이 학살당하는 살육의 전장터가 되었다.
유고를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와 쏘련사회주의 해체원인을 연구해보면, 맑스레닌주의와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약화시키고 전위당의 약화와 당과 인민의 결합의 약화, 자본주의적 시장요소의 점차적인 강화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닌은 자본주의 소생산이 자본주의 부활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실제 쏘련에서는 암시장을 포함한 2차 경제가 확장되면서 관료주의와 사회주의 생산의 기반을 약화시켰다.(이 점에 대해서는 Roger Keeran · Thomas Kenny의 “Socialism Betrayed: Behind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에 잘나와 있다.)
국가가 소멸이 되지 않은 낮은 수준의 공산주의, 즉 사회주의에서 국유화는 가장 높은 수준의 사회화이다. 전반적인 토지와 생산수단은 국유화되었지만 협동조합은 여전히 참여자들의 개인적 소유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개별 협동조합 수준에서의 집단적 소유로 국유화 보다 낮은 수준의 사회화된 소유 형태이다. 쏘련에서는 부농과 투기업자들, 고위 성직자들, 구시대의 모든 반혁명 정치세력들과의 격렬한 계급투쟁으로 역사상 최초로 농촌 협동조합(콜호즈) 체제를 수립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대다수 파산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근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협동조합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이들이 콜호즈라는 전국적인 협동조합 체계를 조직했던 쏘련을 비난하는 이율배반은 무엇인가?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사회에도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버리고 무지와 혼돈, 패배주의와 전망의 상실로 상징되는 청산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청산주의 조류 속에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트로츠키주의와 소부르주아 잡사상과 그 일단인 무정부주의적 조류가 횡행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진보적 인류가 수많은 오류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피땀으로 건설했던 위대한 성취들을 전면 부정하는 반동적 조류가 지배하였다.
이들 각종 소부르주아 조류는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사상으로 사회주의 패배의 교훈을 총괄하는 대신에 지켜야 할 것은 버리고, 버려야 할 것은 지키는 전도된 상황을 연출하였다.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와 반공주의를 자신의 깃발로 내거는 폭거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진보를 자처하는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운운하며 맑스주의의 과학적, 혁명적 사상을 폐기하였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혁명적 실천 대신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인정한 가운데 체제 내에서의 부문적 요구가 판을 치게 되었다.
“맑스 코뮤날레”는 맑스주의를 내건 비맑스주의/반맑스주의자들의 현학의 장이 되어 버렸다. “맑스 코뮤날레”에는 맑스가 없다. 맑스에 대한 호명은 넘쳐나나 무성한 말잔치 속에 맑스주의의 혁명성은 사장되어 버렸다.
한국의 노동자 계급과 인민들은 사회와 역사를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무기이자 투쟁과 현실변혁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맑스주의를 자신의 깃발로 다시 움켜줘야 한다. 그것이 반맑스주의 행사인 “맑스 꼬뮤날레”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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