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사회 중요 자산” 삼성은 사회 전체의 것이어야 한다!
이재용은 삼성전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 안 하고 사회의 중요 자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중앙일보, 2019년 1월 30일) 이재용의 생각이 진심일리는 추호도 없겠지만 여기서 이재용의 진심 따위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이재용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상관없이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계열사는 이재용과 이재용 일가의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현실이 사실상 죽은 자와 다름없는 이건희와 함께 이재용과 그 일가의 소유를 확인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적소유권은 한 줌도 안 되는 재벌들이 단지 몇퍼센트의 주식소유로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게 하고 이를 통해 전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부여한다. 그 경제적 소유를 법적권리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사적소유권이다.
따라서 삼성을 실제로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것이라 생각 안 한다는 이재용은 실질적 소유를 정신으로 부정하는 술책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적 승리는 현실의 패배를 정신적으로 만회하는 자기최면으로 자기위로를 하는 것인데, 이재용은 이와는 정반대로 실질적 승리를 간교한 혀로 부정하는 체하여 현실을 호도, 대중을 기만하는 의도적인 정신패배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삼성의 세습을 위한 불법, 편법 상속, 불법 정치자금 제공 , 노조탄압 등 각종 범죄행위와 범죄적 행위로 인한 대중적 분노를 피해가려 한다.
이재용은 삼성전자가 “사회 중요 자산”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기만이다. 이재용은 삼성전자가 사회 중요 자산이라고 선언하지만 이 사회에서 삼성전자는 실제적으로는 이재용의 소유이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자산이 이재용과 그 일가의 손아귀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생산의 사회화에 비한 사적전유이다. 생산은 점점 더 사회화 되는데 생산의 결과물은 점점 더 개인화 된다.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기업을 일구고 발전시킨 것은 삼성의 노동자들이다. 특히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무노조, 무권리 상태의 노동자들이 삼성을 일군 실제 주역들이다. 삼성전자는 백혈병 사망 노동자들의 죽음의 대가 위에서 거대한 발전의 성채를 쌓았다.
삼성의 생산물을 소비한 소비자 대중들도 삼성의 발전에 복무헀다.
중소자본은 삼성의 하청화 속에 일부 삼성으로부터 수탈을 당함과 동시에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자이기도 하다.
삼성의 기술발전은 사회적인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했다.
결국 삼성은 사회 전체의 노고와 피눈물 위에서 거대기업이 되었고, 이재용 일가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이병철로부터 대대손손 삼성의 지배자가 되었다.
이병철의 시초 축적조차도 친일의 대가로 한 적산불하와 사카린 밀수 같은 범죄행위로 점철돼 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투쟁으로 잡아 가둔 적폐 주범 범죄자 이재용을 사실상 사면, 비호하는 공동정범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일자리 운운하며 자본주의 실업문제를 삼성 이재용에게 매달려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실업문제는 삼성의 자동화, 합리화가 진척될수록 점점 더 고용 없는 성장의 양상을 띠며 상대적 및 절대적으로 심화되었다.
이재용은 언제든지 경영상의 필요에 의해 노동자에 대한 대량의 구조조정을 자행함으로써 일자리를 감축할 것이다.
탄력근로제 확대에 앞장서는 삼성의 주구, 민주당 원내 대표 홍영표는 “공정경제는 기업 옥죄기가 아니다”라는 말로 삼성 이재용을 안심시키며 그 ‘공정성’이 바로 자본의 활로 찾아주기임을 고백하고 있다.
삼성의 3대 세습은 각종 편법 및 불법, 자본주의 법적 보장 하에 권력의 힘을 동원한, 혈족을 통한 독점자본가의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원리 등에 의한 독점의 강화와 이 강화된 자본의 독점적 소유자들의 세습이다. 이 세습은 사회 전체의 희생 하에 자행되는 부와 권력, 독점적 행복의 세습이고 폭력과 파괴와 억압과 착취와 수탈과 타락과 범죄의 영구적 대물림이다. 이는 다른 쪽에서의 빈곤과 고통, 소외와 상실, 노동의 고통, 무노조와 무권리의 대물림이기도 하다.
자본 간 경쟁으로 파산하지 않는 한, 자본주의 하에서 영구적 대물림은 계속된다. 정실 자본주의는 한국자본주의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일본의 재벌가를 포함해 미국의 재벌가문, 심지어 스웨덴 재벌가문의 대물림이라는 자본주의의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중립을 가장하고 양비를 가장한 공정의 사도들은 삼성의 세습과 북의 세습이 같다며 양자를 동일시 한다. 그러나 삼성의 세습체제는 독점자본의 세습체제이고 북의 권력승계는 북이라는 특수한 사회의 혁명적 계승이다. 이에따라 이러한 공정의 사도들은 양비와 중립의 미명 하에 정치적 불신을 조장하고 전망의 부재를 고착화 함으로써 자본의 영구화에 복무하는 자해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용이 말한 이 “사회 중요 자산” 삼성은 사회 전체의 것이다.
기업은 본래 피땀 흘려 기업을 일군 노동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노동자의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을 몰수해서 원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삼성의 주인 찾기를 방해하는 자본의 폭력적 집행기구를 박살내야 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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