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절망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 승리의 새시대로!
맑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신좌파 다원주의 이데올로기 비판
세상은 변화하는가? 변화한다. 변화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아서는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그 이면에서 변화하지 않은 불변의 현실이 있다. 그것은 이 사회의 근본모순이다. 이 세상의 본질적 모순과 질곡은 변화하지 않는다. 혁명이라는 격변에 의해 다른 사회로 이행하지 않는 한 모순과 질곡은 그대로 유지된다. 비록 겉모습은 변화한다 하더라도 본질은 더 고도화되거나 세련된 모양을 취하기도 하면서 그대로 유지된다.
포스트구조주의(탈구조주의), 포스트맑스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신의 주의에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를 붙임으로써 이들은 세상의 본질적 모순과 질곡들이 변화했다고 주장한다. 후기, 이후, ‘탈(脫)은 무엇으로부터의 후기이고 탈출인가?
계급과 계급투쟁, 착취와 불평등, 분단과 민족, 제국주의와 민족억압, 노동과 노동자중심성, 계급동맹과 통일전선, 집단과 집단주의…
이러한 ‘거대담론’들은 현실의 모순과 질곡들을 반영하여 나온 개념들이 아니라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개념들이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이러한 ‘거대’담론들을 거대하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 차별들을 부각시키고 해결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해외에서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담론들은 후르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 이후에 시작되어 1968년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부각되었다가 197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만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담론들은 초기에는 미국의 베트남 침공을 규탄하는 반전운동과 여성 투표권 운동과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는 진보적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이러한 담론들이 현존했던, 현존하는 사회주의에 대해 비판적일 뿐더러 진보세력 내부를 분열시키고 자본주의 착취질서와 제국주의 억압구조를 철폐하는 운동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이를 적극 수용하고 제국주의에 유리한 이데올로기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각종 포스트 담론에 영향을 받은 신좌파 다원주의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착취, 억압질서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은 현실 사회주의가 다시 새로운 억압질서를 만들고 관료지배를 창출했다고 인식한다.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생산수단을 국유화하고 중앙집중계획은 사회주의 건설의 현실적 경로가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구좌파의 인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인민대중의 독재가 아니라 당중앙 독재에서 그 중심에 있는 지도자 독재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로부터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인민대중 독재로 나아가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당독재, 지도자 독재로 변모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본주의 정치권력을 타도하고 몰수와 국유화로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무정부주의의 특성이 그러하듯, 생산수단 국유화는 아래로부터의 “자유인들의 연합체”가 아니라 관료적인 생산질서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모든 국가권력 자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짐으로써 사회주의 국유화가 근로인민대중의 자발적이고, 아래로부터의 의지를 억압하는 생산방식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공공적 소유와 국가의 복지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서도 정작 전 사회적 차원에서 국유화와 협동조합적 소유를 마련하고 무상주택,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무상 복지체제를 만든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이중적 인식을 보이고 있다.
이들 신좌파 다원주의 이데올로기는 현실 사회주의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화가 아니라 인민대중 독재가 약화, 무너지고 다당제를 도입하고 대대적인 사유화와 복지체제를 붕괴시킴으로써 해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꾸로 인식하고 그럼으로써 진보성을 상실했다.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의 약화가 “해빙”을 낳고 당을 분열, 약화시키고 인민대중과의 결속력을 약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맑스주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한국에서는 서구와는 다른 시기에 이러한 포스트 모더니즘 이데올로기가 유포되었다. 한국에서는 1980년 5월 광주 이후에 혁명적 운동이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동유럽과 소련 사회주의의 해체, 조선의 “고난의 행군”과 쿠바의 “특별한 시기”를 거치면서 청산주의가 급격하게 대두됐다. 이때부터 맑스주의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 전망의 상실 운운하면서 혁명적 운동을 청산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 됐다.
1980년대 한국사회와 모순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사회성격 논쟁, 사회 구성체 논쟁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 혁명적 전망과 낙관 대신에 낙담과 절망, 회의와 동요가 넘쳐났다. 자신의 삶을 다 바쳐 투쟁했던 투사들 내에서는 자기 삶과 진보적 세계관을 부정하는 ‘고백’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혁명 세력들은 합법주의로 경도되거나 운동을 청산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문예 사조들 역시 이러한 영향 속에 후일담 소설이 넘쳐나고 인민대중의 진실한 삶을 반영하는 사실주의, 민중예술이 후퇴하기 시작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사상적 동요, 혼돈으로 방황하고 있던 많은 지식인들, 청년들을 사로잡았다. 노동운동과 진보운동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상이 무너지고 조직이 무너지고 운동이 분열됐다. 전망 없는 운동은 갈 길을 모르고 항해하다 좌초하는 배와 같다. 전망 없는 운동은 이 사회가 아무리 억압적이라 하더라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이 체제에 순응하라고 강요한다.
다원주의 사상은 하나의 객관적 진리, 통일된 인식을 부정한다. 다원주의는 사회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부정한다. 이성과 합리성을 부정하기에 과학적 사고를 부정한다. 생태, 여성, 노동, 장애, 인권 등 다양한 모순들을 나열하고 개별적으로 나눠져서 모순을 해결하려 한다. “특권 계급” 운운하며 노동이 이 사회의 주된 모순이고 그 모순을 해결할 중심 계급으로서의 노동자 중심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 개별화된 모순들은 따로 나눠져서 분단이나 해방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식도 동의하지 않는다. 개별적 사고는 운동을 분열시킨다.
거대담론은 역사적 구조적 모순을 반영한다. 인간은 사회적 인간이고 정치적 인간이다. 이 사회의 역사적 구조적 모순 한 시대의 지배적 생산양식 지배형식과 분리되거나 초연한 개인은 어디에도 없다. 제국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된 개인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 제국주의 질서에 맞서 정면으로 싸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이 사회의 진보에 기여하거나 진보적 운동을 단결시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다종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유사한 이 노선의 역사적 뿌리, 정치적 배경을 파헤치며 그것과 정면으로 대결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제국주의 패권 질서,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쓰여 졌다.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 다원주의적 사고를 극복하고 운동을 단결시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쓰여 졌다. 우리는 혼란과 동요, 낙담과 절망을 넘어 승리의 새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신좌파 다원주의 노선”의 역사적 배경, 한국에서 이러한 사조의 탄생과 이 사조의 문제점을 다룬다.
2부는 번역 글이다. 2부에서는 미국 정보기관(CIA)가 <미국 민주주의 국가기금(NED), 미국 국제 개발처(USAID),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와 조지 소로스의 열린사회재단 등의 자금 지원으로 문화자유회의(CCF)를 창설하고 이를 통해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 매수하고 다원주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제국주의의 세련된 반공 프로파간다로 “문화냉전”을 기획하였는지 상세하게 폭로하고 있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정체성 정치나 워크이즘(wokeism, 정치적 올바름을 의미하는 PC주의라고 한다)이 피지배계급 내부의 분열주의 이데올로기로 본질적으로 ‘부르주아지 정치“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공동의 적에 대한 계급 연대 대신에, 정체성 정치는 노동하고 억압받는 인민들에게 그들이 특정한 성별, 성적 지향, 인종, 민족, 민족성, 종교 집단 등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먼저 정체화하도록 장려함으로써 그들을 분열시키고 정복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체성 정치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하나의 계급정치이다. 그것은 세계의 노동하고 억압받는 인민들을 분열시켜 더 쉽게 지배하기 위한 부르주아지 정치이다.(제국주의 선전과 서방 좌파 지식인의 이데올로기: 반공주의와 정체성 정치에서 민주주의 환상과 파시즘까지)
특히 여기서는 심지어 이러한 정치가 이들의 분열정치에 반발을 불러옴으로써 우파들을 양산하는 계기를 주기조차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워크이즘(wokeism)은 또한 일부 사람들을 우파의 품으로 내모는 효과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만약 지배적인 정치문화가 경쟁적 개인주의와 결합된 배타적 써클 정신을 장려한다면, 백인들과 남성들 또한 —다양성 산업에 의해 그들이 박탈당했다고 인식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대응으로— 그들의 특정 의제들을 시스템의 “희생자”로서 내세운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계급분석이 결여된 정체성 정치는 절대적으로 우익 그리고 심지어 파시스트적 변형에 적합하다.(같은 글)
이는 한국의 10대, 20, 30대 내부의 여성과 남성의 성별 대립과 갈등, 청년 남성들 상당수의 극우파로의 전락을 설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여성해방의 위대한 공산주의 투사 클라라 체트킨은 부르주아 여성운동을 비판하며 “남성의 특권적 사회적 지위에 반대하여 모든 계급의 여성이 공동투쟁한 결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여성억압과 차별은 부르주아 착취제도의 결과다. 여성의 임금차별은 전반적 저임금의 결과다. 청년 남성들의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 실업은 여성을 적으로 해서 해결할 수 없다. 이는 도리어 프롤레타리아 청년층 내부의 분열을 가져오고 청년 남성들 다수가 가진 극우적 이데올로기는 청년의 고통을 더 깊게 할 뿐이다. 진보적 사상으로 청년들이 단결해야 한다. “남녀 유산·착취계급의 특권과 권력에 반대하는 남녀 피착취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공동의 계급투쟁에 의해서만” 여성해방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며 남성 청년들의 삶도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3부는 <민족과 계급>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민족과 계급을 거대담론이라고 경시하고 부정한다. 민족의 이념은 낡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족과 계급은 실존하는 것이다. 실존하는 민족과 계급에 맞춰 민족주의와 계급 이데올로기가 생겨난다. 계급이 착취 계급과 피착취 계급으로 구성되어 각각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노동자 민중의 이데올로기도 나눠져 날카롭게 대립하듯이, 민족 역시 배타적,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와 저항적 이데올로기로 나눠진다. 자본의 세계화 이념은 민족을 경시하며 부르주아 세계주의를 유포하는 반면에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주의는 사회주의 애국주의에 따라 민족의 자주와 자결을 주장한다. 전자의 민족 이데올로기는 파시즘이나 군국주의로 나타나고 후자의 이데올로기는 민족해방투쟁, 자주권으로 나타난다. 3부에서는 외세에 의해 분단되고, 미국과 그 추종자들의 대북적대 정책에 의해 전쟁위기가 조장되고 남북이 분단되어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민족대립이 격화된 상황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맑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신좌파 다원주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출간되기 까지 오늘날 다원주의 사상이 유포되어 운동을 분열, 후퇴시키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분들과 직접 후원을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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