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새로운 시각
환단고기를 둘러싸고 위서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위 역사책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환빠”라고 거세게 몰아부치고 있다.
원래 이 논쟁은 지난 12월 12일 정부 부처 업무 보고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인 박지향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동북아 역사재단은 역사 문화 왜곡에 대응하는 조직이다. 일본, 중국의… 독도 주권 수호, 국제 학술교류 협력… 그… 이… 역사 교육 관련해서 무슨 환빠 논쟁 있죠?”라는 질문으로 촉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마지막에 “이거 결국은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 거냐, 에… 근본적인 입장들의 차이가 있는 거 같아요.”라고 물었다.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이를 두고 근본 입장들의 차이는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이 생겨나는 이유는 역사인식은 단순하게 과거사에 대한 인식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는 현재의 역사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역사가 단지 흘러간 과거사, 그것도 고대사 역사해석의 문제라면 오늘날 이를 두고 첨예한 논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발언 이 발언이후 “환빠”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이에 대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신랄하게 반박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환단고기 같은 판타지를 믿는 분이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이 마치 이게 의미 있는 논쟁인 것처럼, 그것도 동북아역사재단이라는 공적 기관에 대해서 면박 주듯이 그걸 얘기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역시 “(철 지난 환단고기 타령을 늘어놓았다. 정통 역사학자를 가르치려 드는 그 용감한 무식함에 얼굴이 화끈거린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12월 17일 한국고대사학회·한국역사연구회·한국고고학회 등 국내 역사·고고학 관련 48개 학회는 ‘이재명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사이비역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논점은 환단고기가 아니라 극우 역사관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논란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어떤 입장에서 볼 거냐”의 문제이고 이 질문이 동북아역사재단과 그 재단 이사장인 박지향을 향한 것이라면 고대사를 둘러싼 “환빠” 논란이 아니라 이들의 극우적ㆍ친일적 역사인식과 왜곡에 대한 비판이 주되게 이루어졌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로 동북아역사재단과 그 이사장은 나경원의 발언에서 보듯 “정통 역사학자”의 반열에 올랐고, 뉴라이트 역사왜곡의 산실 동북아역사재단은 “공적 기관”으로 숭배 대상이 되었다. 반대로 뉴라이트를 비난해 왔던 재야역사학계는 황당한 음모론적ㆍ외계적 역사인식을 유포하는 사이비 집단으로 내몰렸다.
주지하듯 박지향 이사장은 2023년 난해 4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23년 한국 국민 수준이 1940년대 영국 시민보다 못하다”고 비하하고, 2016년 ‘식민주의/포스트식민주의 연구의 현황과 과제’ 논문에서 “이광수, 윤치호와 같은 대표적인 친일파 지식인들이 강압에 굴복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굴절을 공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도 있다”, “저항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을 윤리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협력행위의 다양한 모습과 동기를 치밀하게 파헤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친일파들을 옹호하기조차 했다.
더욱이 박지향은 “50대 이상 기성세대는 살아온 길이 굉장히 험악했기 때문에 자기 연민, 한(恨)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있다”며 이러한 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며,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역사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지향의 이 발언은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강제징용 문제 등이 일제의 식민지배 현실이 아니라 기성세대의 ‘자기연민과 한’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 동북아역사재단은 뉴라이트 인사들의 친일 역사왜곡과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자들의 소굴이 돼버렸다.
“현재 우리 국민들 수준은 1940년대 영국 국민보다 못하다”는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출한 것”이라는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면서 “친일인명사전을 손보겠다”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한마디로 인사가 아니라 가장 부적격한 인물을 배치한 ‘망사’라 할 만했다.(몰락했던 뉴라이트의 부활, 어떻게 가능했나
[분석] 1994년 남북정상회담 반대로 집결한 후 점차 진화… 뿌리는 반공 수구세력, 방학진, 오마이뉴스, 2024.10.02.)
고대사 왜곡을 비난하면서 정작 식민지배사를 왜곡하는가?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환단고기》가 고대사를 왜곡했다며 극렬하게 반발하는 이들이 정작 “역사 문화 왜곡에 대응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이 취지와 정반대로 사료적 근거가 희박한 고대사도 아니라 넘쳐나는 현대사, 그것도 식민지배 역사와 이를 정당화 하기 위해 역사왜곡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고 지금도 그러한 자들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재단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환빠” 논란으로 논점을 흐리고 은폐하는 행태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독립운동 폄훼, 이승만 독재 찬양·미화, 반북 대결 의식 고취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한마디로 반 헌법적이다. 우리는 ‘국민 생활의 최고 도덕 규범이며 정치 생활의 가치 규범’인 현행 대한민국 헌법을 무기로 반 헌법 세력인 뉴라이트에 맞서야 한다. 이름에 ‘뉴’가 붙었다고 해서 그것이 새로운 사조일 수는 없다. ‘올드 라이트’든 ‘뉴라이트’든 혼종이든 친일·친독재, 외세 의존, 멸공 통일 등을 본령으로 하는 ‘초록은 동색’이다. 수구 세력의 기득권 지키기란 측면에서 이들은 모두 과거로의 회귀를 희구하는 반헌법 세력일 뿐이다.(방학진, 같은 기사)
뉴라이트의 역사왜곡의 당면ㆍ궁극 목표는 현대사 왜곡을 통해 반북 친미ㆍ친일, 독재를 정당화 하려는 것이다.
“우리 대법관들이 반일 종족주의에 사로잡혀 있다”(김영호 통일부장관)
“노근리 사건은 불법 희생아니다. 전쟁 중 부수적 피해다. 전시에는 재판없이 죽일 수 있다.”(김광동,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일제가 쌀을 수탈한 것이 아니라 수출한 것이다.”(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좌파는 사람을 죽이고 이용한다.”(김주성,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윤석열이 극우 인사들을 내각과 동북아역사재단에 임명하고 홍범도 동상 이전으로 역사왜곡에 혈안이 되었던 것도 이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최일선에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해 왔던 극우 사이비 언론집단이었음을 은폐하면서 환단고기 논란을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반북 분단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있다.
이것은 극우 세력의 꿈이었을까? 그렇지만도 않다. 2008년 ‘환단고기’의 새 번역본을 낸 인물은 범민련 남측 본부 의장이었던 친북 인사였다. 그는 “다른 력사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뚜렷한 주체 사관을 발견하고 홀로 기쁨에 잠겼다”고 했다. ‘국뽕’에는 좌우도 남북도 없었다.(유석재 역사문화전문기자 [전문기자의 窓] ‘낯뜨거운 국뽕’ 환단고기, 2025.12.16.)
환단고기 위서 논쟁에 대해 이른바 “환빠” 유사역사학자의 정점에 있는 이덕일 교수는 《공산당선언》에서의 유명한 구절, “하나의 유령이 전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구유럽의 모든 세력들, 즉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와 독일의 경찰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신성동맹을 맺었다.
반정부당 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자신의 적들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경우가 어디 있는가”를 인용하며 이를 빗대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979년 이후 하나의 유령이 아시아를 배회하고 있다. 환단고기라는 유령이. 반도사관의 모든 세력들, 즉 한국역사학계와 극우 세력들, 짝퉁 진보세력, 기레기 언론, 일본 극우파, 중국 동북공정 패권주의 세력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식민사관 동맹을 맺었다. 식민사관 비판 학자 및 시민들치고 자신의 적들로부터 ‘환빠’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이덕일 역사학자는 조선(북)역사학자 임광철이 《환단고기》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인용하고 있다.
실제한 역사적 내용들을 지나치게 과장 확대시켜 주관적인…서술된 것이다.
환단고기에 믿기 어렵거나 과장확대된 사실, 근대시기의 개념들이 반영되어 있다고 하여 무턱대고 위작이라고 보는 것은 편협한 견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국관계비사에 대해 아주 엄밀한 사료적 검토를 진행하여 거짓을 벗겨내고 진짜 알맹이를 골라내는 것이라 본다.
이에 따르면 이덕일 같은 민족주의 사가들은 환단고기를 무조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과장된 부분이 있고 후대에 가필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도올 김용옥의 경우에도 구약성경이나 일본 위서처럼, “환단고기라는 게 그 내용의 진실성, 역사성 뭐 이런 게 위서냐 아니냐 이런 거를 떠나서 그 내용은 어떤 한 사람이 날조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옛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의 고대사를 인식했던 방식을 환단고기의 내용을 통해서 알 수 있다”(‘구약성경’과 ‘일본 서기’와 ‘환단고기’의 비슷한 역사적 환경, 2022년 7월 22일 유투브)며 열린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조선의 역사학자에게 환단고기의 긍정적 알맹이는 우리 민족사관을 옳게 정립하려고 한 부분인데 이는 고조선 역사와 고구려 역사를 서술한 부분이다.
민족 형성과 (저항적)민족주의
조선은 맑스(레닌주의)를 계승발전 시켰다고 하면서도 여기에 민족적 관점이라는 특수성을 더해 자주적 관점으로 역사를 보려한다. 게다가 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는 북의 영토를 중심으로 진행된 역사이기에 북의 역사분석을 참고하지 않고 분단적 관점으로는 역사를 온전하게 인식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북에서는 스탈린이 정의한 서구 맑스주의의 민족관점을 기본바탕으로 하면서도 민족형성을 부르주아 발전의 산물로 보는 것은 다민족 국가에 민족형성이 늦은 서구에는 맞을 수 있지만 우리 민족형성에는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스탈린은 민족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 생활 그리고 문화의 공통성에 표현되는 심리 상태 등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발생하였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공동체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니고, 공동경제생활, 지역, 언어 등 역사와 분리되어 제기하는 신비적인 “운명의 공통체”도 아니다.
그런데 스탈린의 민족 정의를 그대로 공식처럼 우리역사에 도입하면 우리 민족과 민족의식의 형성은 일제의 식민지배과 함께 시작한 것이 되고 분단으로 “공동경제생활”에서 분리된 남북은 더이상 같은 민족이 아니게 된다. 이른바 사회주의 민족, 자본주의 민족으로 서로 다른 민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주나 사할린, 일본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 역시 같은 지역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같은 민족이 아니게 된다. 이러한 정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민족형성의 견인차고 분단된 민족의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남북과 함께 민족문제의 한 축인 해외동포도 민족의 일원이 아니게 된다.
북에서는 스탈린의 기본 정의를 인정하면서 민족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으로 확장된) 혈연과 언어의 공통성이라고 본다.
북에서는 우리민족이 단일민족이며 민족은 고대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형성되었다고 본다.
북에서는 대동강 유역의 발전한 문명으로부터 고조선이 최초의 민족국가를 형성하게 되었고 단군은 신화가 아니라 실존 인물로 보고 심지어 유적 유물 연대 측정에 활용되는 전자상자성공명(EPR) 연대 측정 방식을 통해 단군릉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북에서는 고조선 문명에 대해 문헌적 근거와 고성, 집터, 무덤, 유물 등 방대한 실증적인 사료적 근거를 대고 있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고조선이 성립되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원시사회의 말기문화로서 청동기시대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조선 전기 문화 1기는 바로 이 청동기 시대문화에 줄을 달고 형성되었으며 따라서 국가성립 이전 청동기 시대문화와 고조선 전기문화 1기 사이에는 뚜렷한 계승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 전기문화의 발상지와 관련하여 결론부터 말하면 그곳은 다름아닌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중서부조선지역이다…
국가성립 이전 시기에 낮은 단계에 있었던 청동기 생산기술과 능력은 고조선 성립 초기에 벌써 비교적 높은 단계에 들어섰으며 그것은 후기로 가면서 점차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국가성립 초기에 이전시기와는 달리 청동기 생산이 훨씬 늘어났다는 것은 당시의 유적들에서 비파형단검과 청동끌, 청동방울과 청동교예 장식품을 비롯한 앞선 시기의 유적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청동기가 적지 않게 알려진 사실로서도 알 수 있다…
고조선 전기사회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착취계급과 피착취계급으로 갈라져 있었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하나는 무덤의 매장상태에 반영된 순장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무덤의 구조와 꺼묻거리에 반영된 부의 독점상태이다…
일찍이 평양지역에서 발생한 고조선전기문화는 조선반도 지역은 물론이고 중국 동북지방의 넓은 지역에로 급속히 확대되어 B.C 3000년 중엽경에는 조선반도 전 지역과 요동지역 및 길림, 장춘지역이 고조선 전기문화의 분포범위에 들게 되었다.(《동방의 문명을 불러온 고조선 전기문화》, 사회과학출판사, 주체108(2019))
북에게 민족은 5천년의 유구한 독자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우며 저항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의식이 형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북의 민족과 민족주의 의식은 제국주의와 싸우는 저항적인 민족주의로 분단문제 해결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적 내용에 민족적 형식을 통일적으로 보고 사회주의 건설이 민족적 특수성, 민족적 역사와 긴밀하게 결합되어야 한다고 한다는 사회주의 민족사관으로 발전했다.
이는 사실 사회주의 애국주의라는 레닌과 스탈린의 민족사관과도 깊게 연관돼 있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그들의 유해한, 골수까지 부르조아적인 견해를 국제주의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주의와 세계주의는 서로 어디까지나 적대하는 것이다. 세계주의는 민족성이 없는 것을 의미하고, 민족성의 외부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화라는 것이 생활의 현실적 기반 위에서 발생하고, 각각의 민족적 투쟁 속에서 발생하는 것인한, 세계주의는 반인민성을 의미한다. 세계주의란, 자유와 독립과 민족주권을 지향하는 여러 민족의 의지를 약하게 하려고 하는 부르조아·인텔리겐차의 발현형태이다.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는 민족을 인정하는 것, 민족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고, 인종이나 민족의 동등한 권리는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아지쟌, 제2장 스탈린의 노작 《마르크스와 민족문제》에 대하여)
민족적 긍지의 감정은 우리 대러시아인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에게 낯선 것인가? 확실히,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말과 우리나라를 사랑하며, 우리나라의 근로대중 (즉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9)을 민주주의적·사회주의적 의식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레닌, 대러시아인의 민족적 긍지에 대하여, 1914년 12월)
박노자는 국제주의와 진보적 민족주의를 대립적으로 본다. 민족주의는 무조건 배외주의이고 국가주의라고 본다.
고대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들이 일본 열도에 진출했다면 오늘날 국민국가와 같은 국경선과 비자 수속이 없었던 고대 세계에서는 일본 열도 주민들의 한반도로의 이주도 당연히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부단한 섞임으로 이루어져왔던 교류와 혼종화의 역사적 사실은, ‘단일민족’의 신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아주 불편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역사상이란 바로 ‘우리’와 ‘남들’이 완벽하게 서로 차단돼 있는, ‘우리’만의 배타적 역사다.(‘종족적 배타주의’는 새 정부의 미래가 아니다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겨레신문, 2025-06-03)
그래서 그들의 또 하나의 공격의 초점은 바로 한나라 낙랑군의 중심이 오늘날의 평양에 있었다는 등 한사군이 한때 한반도의 일부 영토에 있었다는 사실로 향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도 낙랑군이 평안·황해도라고 봤고, 수많은 출토품 등으로 봐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타자들이 ‘우리 땅’에 살았다는 것을 극단의 민족주의자들은 어디서나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박노자, 같은 글)
‘낙랑군 평양설’은 한반도가 고대부터 중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는 ‘타율성론’과 ‘반도사관’을 주입하여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총독부 학자들은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조작하기도 했다.
박노자는 낙랑군 평양설을 “타자들이 ‘우리 땅’에 살았다는 것을 극단의 민족주의자들은 어디서나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외세 침략과 지배에 맞서는 민족주의를 배외주의로 비난하고 마치 이것이 국제주의적 교류의 사례라며 식민사관을 간접 옹호하고 있다. 박노자는 임나본부설을 근거가 없다고 부정하지만 사실관계가 아니라면 임나본부설이 낙랑군 평양설처럼, “타자들이 ‘우리 땅’에 살았다는 것”이기 때문에 부정할 이유가 없다. 일제의 식민지배도 “타자들이 ‘우리 땅’에 살았다는” 증거가 될 뿐이다.
박노자는 “일본서기 편찬자들의 황국사관이 일제 관학자들에 의해서 날조된 임나일본부설의 배경이 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서기가 가치 없는 책은 절대 아니다.”라며 일본서기가 황국사관의 도구가 되었다면서도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한다. 환단고기와 일본서기를 대하는 태도가 정반대다.
외세를 반대하는 민족주의는 외부와의 평화적 교류와 호혜적 협력을 부정하며 종족주의적 피의 순결성을 주장하는 이론이 아니다. 이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반대하는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의식이다. 그러나 박노자는 민족주의 전반을 히틀러의 인종주의와 다를바 없는 종족주의로 간주하고 이를 부정하고 있다.
박노자는 이 책(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들의 민족주의란 독재자에 의해 세뇌된 ‘하나로 뭉쳐 타민족 눌러 이기기’ 정신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서슴지 않고 광화문 앞에 서있는 이순신 동상과 야스쿠니 신사 앞에 서있는 일본의 오무라 마스지로 동상이 ‘어차피 속은 같은 것’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박노자의 논조를 보면 한국의 민족주의는 타민족을 지배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씨앗과 다르지 않다…
부정하는 박노자의 비판은 그의 민족사에 대한 몰이해를 탓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유와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와 지배와 착취를 위한 민족주의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박노자의 주장대로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강자의 헤게모니로 군림해왔었나? 오히려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독립과 통일을 위한 민초들의 힘을 엮어주는 정치이념이 아니었던가?…
독립과 해방을 위한 민족주의와 침략과 지배를 위한 민족주의를 혼동하는 박노자의 민족주의 비판은 그런 의미에서 설득력이 없다. 박노자의 폭력에 대한 무차별적 비판도 마찬가지다. 박노자가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사상의 자유는 억압에 대한 정당한 항거와 투쟁에 의해 쟁취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김범수, 박노자는 비판 대상을 혼동하고 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오마이뉴스, 2002.07.22.)
이로써 민족과 민족주의를 부정하는 박노자의 국제주의는 제국주의의 세계주의가 되어 침략적 이해에 복무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영훈과 같은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이 위안부, 강제징용 같은 식민지배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반일 종족주의》 논리를 펼치는데 이 논리는 외세를 반대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난으로 식민지배를 옹호하는 것이다.

“한국 민족주의에는 자유롭고 독립적 개인이란 범주가 없고, 이웃 일본을 세세의 원수로 감각하는 적대 감정인 반일 종족주의에 긴박돼 있다”는 이영훈의 주장이나 “타자들이 ‘우리 땅’에 살았다는 것”을 부정하는 배외주의로 보는 박노자나 민족주의에 대한 적대감은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일제 식민지배 학설과 같은 박노자의 낙랑군 평양설은 문헌적으로도 반박되고 있다.
기존 대동강설에 대한 반론이 <한단고기> 같은 중국·일본은 물론 국내 학계가 인정하지 않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다면, 심 원장의 주장이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 청나라 조정에서 편찬한 공식 사서 모음인 <사고전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사고전서>는 18세기 중후반 건륭제 때 수십년에 걸쳐 청 이전의 중국 사료·사서 3400여종, 7만9000여권을 집대성한 책이다.
15일 만난 심 원장은 “<사고전서>에는 낙랑이 중국의 요서 지역에 있었다고 말하는 대목이 20군데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강단사학계가 사료 부족을 내세워 ‘낙랑군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다’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논리를 근 70년 가까이 되풀이해왔다”고 주장했다.(“낙랑은 중국 요서지역 남쪽에 있었다”, 한겨레신문, 2019-10-19)
그런데 환단고기 지지 역사학자들이 고대사를 왜곡한다고 비난하는데 정작 이들은 식민지배 역사왜곡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조선총독부 사관이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는 「한겨레 21(2017. 6. 26)」에서 단군을 사이비 역사학으로 매도하고 조선총독부 사관을 비판하는 역사학자를 유사사학자로 모는 특집을 기획했는데 역시 박노자가 등장했다.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지금 논란이 된 역사사실 중 낙랑=평양설만 검토해보자. 늘 이병도를 칭송하고, 늘 신채호를 비난하는 박노자 류의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추종론자들은 낙랑=평양설을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고 우긴다. 지지난 정권에서 한국학 중앙사업단장으로 연간 300억 정도의 예산을 집행했던 극우파 역사학자가 공개 학술대회 석상에서 단재 신채호는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라고 비난했다. 이 극우파와 박노자 류의 역사관은 신채호에 대한 무조건적 증오에서 서로 일치하고 동지가 된다…
필자는 페북을 통해 중국 1차 사료로 보는 고조선과 낙랑군의 위치에서 낙랑군=고대 요동=하북성을 말하는 중국 고대 사료를 여럿 제시했다. 더 많은 사료 중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그중 하나만 다시 제시하면 낙랑군 산하 25개 속현 중에 열구(列口)현이 있는데, 열수(列水)라는 강의 하구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그 열수의 위치에 대해 『후한서』 「군국지」는 “열수는 강이름이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列, 水名, 列水在遼東)”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요동에 있는 열수 하구에 있는 열구현도 요동에 있고, 낙랑군도 당연히 요동에 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는 열수를 느닷없이 대동강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가 그대로 따랐고, 국내 매국사학이 이를 그대로 따라서 하나뿐인 정설, 통설이라고 우기고 있다.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추종하는 박노자도 마찬가지다…
이마니시 류의 「단군고」는 단군이 12세기부터 13세기에 창작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박노자의 『거꾸로 보는 고대사』는 『조선총독부의 눈으로 본 고대사』라고 하면 역시 명실이 상부한다. 박노자 역시 조선총독부의 정치선전원에 불과하다.(사이비·유사 사학?
매국·식민 사학의 거품 문 카르텔!
<특별기고>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여러분 의견은 어떠신지요”
노론·친일파의 흑역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에 맞서는 촛불이 움직인다, 온투데이, 2017-06-27)
민족주의를 비판할 수 있는 경우는 ‘우리 민족’의 이름으로 다른 민족을 억압하거나 ‘민족’의 이름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때일 것이다. 이 세 분으로 대표되는 한국 민족주의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역사적인 실례로는 일본 제국주의와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의 나치즘을 들고 있다. 여기에 한국 민족주의가 낄 자리가 있나? 낄 시간이나 있었나?
…짝퉁 우파라고 해야 할 뉴라이트의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라고 단정한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은 “민족이란 20세기 들어 구래의 조선인이 일제의 식민지 억압을 받으면서 발견한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라고 한민족 자체를 부정한다. 민족 자체가 20세기 들어 생겨났다는 희한한 주장이다.
짝퉁 우파는 물론 짝퉁 좌파들이 민족을 부정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이덕일칼럼] 한국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 한문화타임즈, 2017.12.13.)
유사역사학자로 고대사를 날조한다고 비난 받는 역사학자들은 도리어 일제의 식민사관과 관련되어 있는 역사왜곡, 즉 한사군이나 임나일본설 등에 대해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박노자는 단군을 민족주의 산물로 만들어진 신화적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단군보다는 소서노가 어떤가
정치적 의도에 따라, 시대마다 달라지는 단군…수염 긴 할아버지에 대한 흠모를 강요할 필요 있나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한겨레21, 2007.11.01.)
박노자는 단군이 시대에 따라 정치적 필요에 따라 선전되는 허구이기 때문에 그럴거면 차라리 여성인 소서노를 내세우자고 한다. 박노자의 예민한 젠더의식에 따라 고조선 역사 전반이 사라지고 우리역사는 고구려부터 갑자기 시작되게 된다.
박노자는 ‘거꾸로 보는 고대사’(2010, 한겨레출판)에서 한국에 팽배한 민족주의 사관을 깼다. 단군신화는 어느 특정 시대가 만든 창작물이며, 고조선은 만주를 지배하지 않았고, 고구려는 제국이 아니었으며, 일본은 고대 한반도의 주요 세력이었다는 것이다.(박차영 기자, 위대한 민족 고대사에서 벗어나라는 박노자, 아틀라스, 2024.11.15.)
단군은 창작물인데 반해 일본은 고대 한반도의 주요 세력이라면 일본의 식민사관과 무엇이 다른가? 박노자에게 국제주의는 바로 민족을 거부하는 부르주아 세계주의이며 그것도 역사왜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환단고기 논쟁의 현재성
앞에서 북에서 환단고기가 “실제한 역사적 내용들을 지나치게 과장 확대시켜 주관적인…서술된 것이다.
환단고기에 믿기 어렵거나 과장확대된 사실”이라고 하는데 이는 환단고기에서 강조하는 남북이 5만 리, 동서가 2만여 리였다고 광대한 영토와 환인과 환웅이 다스린 환국의 존속기간이 3,301년, 혹은 63,182년이라는 주장에 대해서이다.
도대체 “고조선이 성립되기 이전에” 형성된 “원시사회의 말기문화로서 청동기시대의 문화”가 수천년 동안 국가로 성립ㆍ발전하고 방대한 영토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북의 역사적 주장이 사실이라면 고조선 이전의 사회는 원시 사회가 해체되어 가는 부족국가로 성립되었을 것이다.
환단고기 논쟁을 현재적 역사적 관점으로 본다면 민족과 민족의식의 정립의 문제다.
앞에서 자주 출현했던 한겨레신문이 창간정신을 잃어버렸던 것은 민족과 민족의식, 분단체제를 반대하는 정신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민주화는 남북간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특히 동족의 군사대결을 지양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치부를 위해 광분하는 자일수록 남북간의 군사대결을 필요로 하고, 그럴수록 안보를 강조하고, 정보를 독점하여 독재를 자행하는 것이 이제까지 이 나라의 독재정권의 특징이기도 했다.(1988년 4월 25일 창간사)
북에서 민족ㆍ동족관계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 당분간 남북의 분단극복과 통일 전망이 사라졌지만, 이는 민족에 대한 거부일 수는 없다. 고조선의 형성을 민족국가의 형성 출발로 보는 북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통해서 볼 때도 민족은 사라지는 것일 수 없다. 비록 외세 제국주의에 의해 민족관계ㆍ동족관계가 적대관계로 전환되었지만 이는 민족의 부정과 통일의 부정이 될 수 없다. 민족은 실존하는 것이고 민족분단 역시 우리 사회의 질곡과 모순으로 실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관계”ㆍ동족”관계”가 외세와 외세 추종 세력, 분단ㆍ반통일 세력들의 대북적대 정책에 의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환단고기 논쟁은 “우리의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하자”는 따위의 비현실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현재화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민족과 민족성을 부정하며 세계주의에 빠지는 것으로 현재화 되어서도 안 된다.
분단에 기생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을 극복하여 자주적 통일을 도모하는 것이 환단고기 논쟁을 통해 우리가 도달해야할 현재의 역사적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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