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쏘베트 공간에서 가장 반제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지도자, 알렉싼드르 그리고리예비치 루까쉔꼬(Александр Григорьевич Лукашенко) 벨로루씨 대통령!
안토니 정(폴란드 거주ㆍ전국노동자정치협회 회원)
한국에서는 벨로루씨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는 경우에도 ‘유럽 최후의 독재자’라는 서방의 너절한 선전구호를 되뇌이며 좌우를 막론하고 무지성적으로 조롱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뜨로쯔끼즘을 숭배하는 일군의 조직들, 이른바 적녹보라로 상징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색깔혁명 숭배자들은 제국주의의 추잡하고 너절한 구호인 <<친러 독재>>를 운운하며 벨로루씨를 깎아내린다.
그들은 국내에서 내란청산에 소극적인 것도 모자라, 국제정세에서조차 제국주의를 추종하는 괴뢰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는 이들이 쏘련과 벨로루씨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며, 서방 황색언론이 <<독재정권>>이라고 외치니 따라서 <<독재 타령>>을 되풀이한다고 본다.
벨로루씨는 쏘련 붕괴 이후 1994년까지 로씨야와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공화국 공산당이 활동을 금지당한 채, 올리가르히 세력에 의한 조직적 매국 작업이 이루어졌던 나라이다. 그 과정에서 인민의 재산은 제국주의와 결탁한 과두재벌들에게 탈취되었고, 마피아와 극우주의자들이 창궐하였으며, 길거리 매춘이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디스토피아 직전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러한 국가적 비상사태 속에서, 꼴호즈 간부 출신이자 벨로루씨 SSR 최고쏘베트 대의원이었던 루까쉔꼬는 <<민주주의를 위한 공산주의자>>와 연대하여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고, 1994년 당당히 벨로루씨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였다.
그는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불법적으로 탈취된 인민의 재산을 다시 국유화하였다. 벨로루씨는 쏘련 시기 공작기계, 대형트럭 및 광산용 중장비를 생산하던 중심 공화국이였으며, 그는 그 탈취된 대형 제조업을 다시 인민의 재산으로 환원시켰다. 오늘날에도 벨로루씨 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벨라즈(광산트럭 업계 1위), 마즈(트럭), 엠떼제(뜨락또르) 등은 국유기업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석유 정제, 무기산업, 그리고 국가주도의 IT산업도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ㅡ벨로루씨 GDP의 70% 이상이 국영기업소에서 발생하고 있다!ㅡ
또한, 매국정권 시절 서방의 사주를 받아 도입된 나찌 부역자들의 상징인 국기인 소위 <<백적백기>>와 괴뢰 상징들을 폐기하고, 쏘베트 시기와 유사한 민주적 국기를 복원하였다. 이 백적백기는 나찌강점 당시 동방국가판무관부가 사용하던 깃발이며, 현재는 유럽으로 도망친 과두재벌들과 유럽연합 괴뢰주의자들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는 범죄조직과 극우주의자들을 철저히 단속하여, 벨로루씨가 우크라이나처럼 범죄와 부패, 전쟁과 나찌즘이 난무하는 <<포스트 쏘베트의 비극>>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냈다.

벨라루소의 동방국가판무관부 상징들

백적백기를 흔들어대는 유럽연합 추종자들과 아래에는 나찌 부역자들
국내에서 괴뢰적 파쑈화와 자본주의화를 성공적으로 저지한 것뿐 아니라, 루까쉔꼬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도 당당히 반제전선을 옹호하였다.
나토가 유고슬라비야를 난폭하게 무차별 폭격하던 위기의 시기, 그는 흐르바쯔까(크로아티아) 나찌정권과 나토의 침략에 맞서 베오그라드를 전격 방문하여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을 영접하였으며, 베오그라드 시내의 병원에서 폭격으로 다친 인민들을 직접 위로하였다. — 당시의 영상기록을 보면, 영접행사 중 폭음이 들릴 만큼 위험천만한 상황이였다.

유고 대통령 밀로셰비치와 함께

베오그라드의 폭격 피해자들을 방문한 루까쉔꼬 대통령
그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 시리야의 아사드 대통령, 꾸바의 피델 까스트로 위원장 등 반제국가의 지도자들과도 적극 협력하여, 국제 반제연대의 불길을 꺼뜨리지 않았다. 또한 반파쑈 포럼을 적극 개최하여 쏘련이 나찌로부터 영웅적으로 승리한 역사적 기억을 보존-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는 국내에서 인민들과 허물없이 만나 대화를 나누며, “지도자는 인민 속에서 나와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신념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꼴호즈 간부 출신답게 농업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며, 지금도 집단농장을 찾아 농민들과 함께 감자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그의 다차ㅡ쏘련 시절 인민에게 제공된 소형 시골 별장ㅡ에서 작은 농장을 직접 가꾸는 모습도 인민들에게 친숙하다.




루까쉔꼬 대통령과 그의 아들 니꼴라이, 맨발로 아버지를 돕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물론 벨로루씨도 한계는 존재한다. 내륙국가로서 무역이 제한되며, 쏘련 시기 우크라이나나 로씨야처럼 초대형 첨단산업을 유치하지 못했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100퍼센트 사회주의 체제를 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ㅡ우구라는 안또노브, 유즈마쉬, 이브쳰꼬 같은 대형 항공우주산업을 유치했었지만, 말아먹었고 서방에 기술을 탈취당했다. 전적으로 괴뢰정부의 책임이다ㅡ 그러나 그런 조건 속에서도 최대한 사회주의를 복원하려 노력했고, 쏘베트시절 작게나마 유치했던 대형중장비, 뜨락또르, 정유산업을 다시 국유화하여 포스트 쏘베트 공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으며, 지금도 의료·교육·주택 등 인민생활 전반을 국가가 무상으로 책임지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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