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로프 테제와 인민전선 -7차 코민테른의 분석과 ‘한국형 인민전선’: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김영빈(전국노동자정치협회 회원)
* 이 글은 지난 3월 29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개 토론회 발표문입니다.

서론

 

오늘날 공산주의자도 옛날의 갈릴레이에 못지않은 단호함으로써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도 그것은 돌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돌고 있다― 소비에트유럽을 향하여, 세계소비에트공화국을 향하여! 그리고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지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으로 밀려 나온 이 수레바퀴는, 어떠한 절멸조치, 어떤 징역형이나 사형 판결로도 멈출 수는 없다. 그것은 돌고 있으며, 공산주의가 궁극적으로 승리할 때까지 계속 돌 것이다!

불가리아 공산당 서기장이자 ‘인민전선’의 제창자인 디미트로프가 1933년 파쇼 독일의 법정에서 한 최후진술의 한 대목이다. 그가 남긴 말처럼, 그는 ‘끊임없이 돌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노동자 해방의 편으로 굴리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인민전선 역시 그 중 하나였다. 7차 코민테른에서 그가 발표한 이 테제는 전간기와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으로 세계 공산당의 전략이 되었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우경투항주의’라거나, ‘혁명성의 퇴색’ 같은 과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비난은 디미트로프 테제 자체에 대한 부족한 이해에서 기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디미트로프의 관심사는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적으로 전개하는 데에 있었으며, 불가리아 혁명을 성사시키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끝까지 공산주의자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혁을 열망하는 맑스-레닌주의자로서, 또 파쇼 집단의 쿠데타 시도를 목도하고 그에 결연히 저항하는 민중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디미트로프 테제를 다시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파시즘의 계급적 본질

 

파시즘, 그것은 노동자 대중에 대한 자본의 잔학무도한 공세다.

파시즘, 그것은 방자한 배외주의와 침략전쟁이다.

파시즘, 그것은 광란하는 반동과 반혁명이다.

파시즘, 그것은 노동자계급과 모든 근로자의 가장 흉악한 적이다!

디미트로프에 따르면, “파시즘은 금융자본 중 가장 배외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부류에 의한 테러독재”이며, ‘야수적인 배외주의’, ‘정치적 강도질’, ‘혁명에 대한 도발과 고문’이자 ‘중세적 야만’이다. 파시즘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양 계급 위에 선’ 권력도 아니고, ‘금융자본에 대한 소부르주아지나 룸펜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도 아니다. 오히려, 금융자본 그 자체가 휘두르는 권력이다.

파시즘 그 자체가 펼치는 기만전술은 소부르주아지와 농민, 나아가서는 프롤레타리아까지도 현혹시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데에 그 위험성이 있다. 파시즘은 ‘금융자본과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혁명적 투사, 내지는 각 국가와 민족의 근본 정신을 수호하는 ‘돌격대’로 스스로를 포장하지만, 실은 그 발흥과 권력 장악은 부르주아독재가 깔아놓은 판, 그러니까 노동자의 자유 억압, 의회 기능의 축소와 위조, 혁명 탄압을 위한 각종 정책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바꿔 얘기하면, 파시즘의 계급적 본질을 통찰하고 이러한 반동적 기조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하고 실행한다면 애초에 파시즘의 등장 자체를 막아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와해되어 가는 부르주아독재의 구원투수 파시즘의 이러한 기만전술은 역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몰락을 더욱 앞당기게 된다. 디미트로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파시즘의 불안정성을 조망한다. 첫째, 계급독재와 그 모순의 유지 및 심화를 위해 나타난 파시즘은 격화되는 계급모순 위에서 결코 정치적 독점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둘째, 파시즘의 반자본주의적 위장 전술과 그들이 실제로 추진하는 독점부르주아 부양 정책 간의 모순은 파시즘의 계급적 본질이 쉽게 드러나도록 만든다. 셋째, 파시즘의 강력한 배외주의 정책, 심지어는 부르주아지 내에서 권력을 놓고 벌이는 투쟁은 인민들로 하여금 파시즘이 가지고 있으리라고 여겨졌던 ‘강고한 권력’의 환상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디미트로프는, 공산주의자와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세 가지 모순을 직시하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투쟁에 임해야 함을 재삼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의 승리를 우리는 왜 막지 못했는가? 물론 사회민주당의 부르주아 야합 노선과 노동자계급 탄압 정책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이 파시즘에 대하여 무장해제되고, 조직이 와해된 것에 그 원인이 있겠지만, 디미트로프는 이렇게 사분오열된 노동자들을 다시 조직화, 의식화할 만큼의 힘이 없었던 공산당 조직에서도 그 이유를 찾는다. 결국 공산당 하나로는 벅찼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민전선’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그는 말한다.

반파쇼인민전선

‘노동자 통일전선’, 그러니까 변혁적 좌익 세력 내의 행동 통일에 관한 구상은 늘 있어 왔던 바이다. 디미트로프도 통일 전선에 대한 논의의 시작을 코민테른 계열의 공산주의 노동자들과 제2인터내셔널, 그러니까 사회민주주의 등 개량주의를 추구하는, 노동자들의 행동 통일로 열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당대 공산당은 독자적으로 혁명을 전개하기에는 힘이 약했고, 이는 제2인터내셔널 계열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편 파시즘은 독점 부르주아의 영속적 독재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기에, 그 이외의 모든 계급계층, 이를테면 도시 노동자와 농민, 빈민, 맑스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심지어는 가톨릭계와 소부르주아에게까지도 이빨을 드러내며 제거하고자 한다. 디미트로프는 이에 착안해, 노동자 통일전선을 중심으로 이렇게 파시즘의 표적이 되는 모든 민중을 ‘반전’, ‘반파쇼’, ‘반-부르주아’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형태의 인민전선을 구상한다. 이것이 바로 ‘반파쇼인민전선’이다.

앞서 말했듯이 디미트로프에게 통일전선의 근본적 목적은 파시즘과 자본의 공세 앞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과 권리를 옹호’하고,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자유를 방어’하며,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고, 공황으로 인한 피해를 민중에게 떠넘기려는 파시즘에 맞서 ‘공황의 결과를 자본가와 지주, 지배계급에게 떠넘기’는 데에 있다. 그렇게 하며 자본에 대한 방어를 공세로 바꿔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동조합들의 공동행동을 조직, 초당파-초계층적인 기관의 조직을 통해 독자적 행동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구축한 노동자 통일전선을 기초로 앞서 말한 파시즘의 표적 계급을 포섭하여 ‘반파쇼인민전선’을 꾸려야 하며, 지속적인 파시즘의 기만전술에 놓인 이들을 의식화하여 진짜 적이 무엇인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를 일깨워야 한다. 거기에서 나아가, 노동자 계급과 이들 계급이 하나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음을 공고히 해야 한다. 따라서, 디미트로프는 노동자 통일전선이 이들 계급의 민중이 요구하는 바를, 노동자의 이익에 반대되지 않는 것이라면, 적극 옹호하고 전면에 내걸어야 하며, 이들 계급이 소속된 정당과 단체에 대해서도 사뭇 진중한 태도로 접근하고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정당이나 단체의 지배권을 쥐고 있는 것은 대개 대실업가나 대지주 등 부르주아 계급이지만,  그 단체에 속한 농민과 소부르주아 등이 그러한 지배의 본질을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 단체들을 무시하거나 경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노동자계급과 다른 피억압-반파쇼 계급이 뭉쳐 자본의 공세에 대해 역공세를 취할 수 있는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일전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가) 한국형 파시즘 – 윤석열과 12.3내란

디미트로프에 의하면 파시즘은 반드시 ‘반체제적’인 수사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민족적 자존심’에 대한 요구의 극단적 형태로서 스스로를 포장하는 경우가 있는 한편, 미국 파시즘의 사례와 같이 ‘파시즘’을 배격하며 국가적 정체성을 수호하는 이념이라는 기만적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윤석열은 취임 초부터 ‘공산-전체주의’ 운운하며 스스로를 ‘전체주의와 반헌정 세력에 맞서는 투사’로 이미지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것은 미국에서 파시스트가 ‘외부의 적’에 맞서 ‘미국적 질서’를 지키는 투사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명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12.3 내란이라는 파시스트적 권력 장악 시도를 목격한 지금, 민주세력 중 윤석열의 그러한 기만적 전술에 속아주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내란 세력은 외부의 적으로서 ‘중국’과 ‘공산주의’, ‘반자유주의’를 들며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자유민주주의’에서 찾는다. 그러나 12.3 내란으로 드러난 이들의 근본적인 목표는, 여타의 파시스트 세력과 같이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그러니까 부르주아민주주의로부터 파시즘으로 부르주아독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에 있다. 우리는 반파쇼인민전선을 견고하게 조직, 정비함과 동시에 반파쇼투쟁의 진짜 승리가 ‘윤석열 시대’의 극복에서 끝나지 않음을 광장의 민중에게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나) 민주당의 계급적 성격​

현재 반파쇼 진영에서 가장 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다. 지속적인 우경화로 인해 변혁 세력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지만, 민주 진영이 반파쇼 전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부르주아 정당으로서 보이는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는, 아마 그 계급적 성격을 살펴봄으로써 면밀히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디미트로프는 반파쇼인민전선의 구상을 전개하면서, 소부르주아와 농민 계급이 속해 있는 단체의 성격을 우선 분석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디미트로프의 통찰에 따르면 이들 집단은 ‘지배권을 독점하는 대부르주아지와 당에 가담한 소부르주아지와 농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급동맹’도 아니고, 오히려 철저히 부르주아독점 체제에 의해 굴러가는 집단인 셈이다. 이런 성격에 따라 디미트로프는 이들 단체의 수괴까지도 진심으로 반파쇼-변혁운동에 나설 것을 기대하지 말되, 이들 단체를 무시하거나 경멸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 파고들어 평당원격인 민중을 의식화, 변혁에 대한 갈망을 일깨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민주당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도 이와 비슷한 듯 보인다. 민주당은 독점적 금융자본과 토호, 그리고 도시 영세상공인과 노동자, 농민, 빈민의 연합, 그러니까 ‘계급동맹 정당’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정체화하나, 실상 당의 지배권은 오롯이 독점자본에게 있다.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우경화하는 이유도, 반미-반제-자주통일, 사회변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정당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민주당의 지배권이 부르주아계급에게 있는 한, 그 당의 향방 역시 이들의 이해에 따라 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시스트 집단인 국민의힘보다 온건할 뿐 민주당 역시 본질적으로 부르주아 정당인 것이다. 우리는 민주당의 이러한 측면을 주지하고 때로는 적극적으로 폭로하되, 그 당의 주축이 되는 노동자 민중을 변혁운동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에 대한 관심과 비판적 연대를 끊어 버릴 수는 없다.

다) 광장: ‘오월동주’에서 ‘인민전선’으로​

 

‘12.3 내란’으로 인해 조성된 광장은 체제 변혁의 목소리와 체제 수호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윤석열의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한 초정파적 단결이라는, 반파쇼인민전선의 현실적인 반영인 셈이다. 광장의 이러한 성격은 12.3 내란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이 지속, 심화됨에 따라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반파쇼인민전선’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반파쇼인민전선의 중심에는 견고하게 조직된 민중-통일전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광장에 나서는 변혁적 세력의 목소리는 조직되지도, 통일되지도 못했으며, 변혁을 통해 무엇을 얻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사실상 디미트로프가 ‘對파시즘 투쟁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한, 노동자들의 무장해제 상태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전위조직의 부재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변혁 세력은 오히려 민주당이라는 거대한 야당이 뒤를 받치고 있는 체제 수호 세력에게 조직력과 통일성의 측면에서 밀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디미트로프가 반파쇼인민전선의 필요조건으로 내건 ‘초당파적 컨트롤타워’ 역시 존재하고 있지 않다. 비상행동 등 각 단위들의 연합체로 구성된 단체에서 집회를 주최, 총괄하고 있지만, 이들이 광장의 구성원들에 대해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비상행동 내의 정파 갈등이 문제로 드러나기도 한다.

향후 광장에서의 반파쇼 투쟁 승리와, 변혁적 요구의 현실정치로의 반영은 우선 변혁 세력, 특히 그것을 주도할 능력이 있는 ‘조직 노동자’와, 한국 사회 변혁에 대한 명백한 구상이 존재하는 이들이 얼마나 단단히 무장하고 단결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이들이 우선 하나의 세력으로서 단결한 후에야 비상행동 내에서 주도적인 집단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며, 광장의 산발적인 변혁 요구를 압도하며 반파시즘 투쟁의 선두에서, 윤석열 정권 종식 이후에도 체제 수호 세력에 맞서 사회 변혁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지금까지 코민테른 제7차 대회가 표방한 ‘인민전선’의 근본적 의의와 한국 정세에의 창조적 적용 방안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앞서 말했듯 인민전선의 핵심은 ‘노동자계급과 지도 조직의 진두지휘를 바탕으로 파시즘에 반대하는 모든 민중의 단결과 공동 투쟁’에 있으며, 단순한 반파시즘 연합이 아니라 계급 철폐와 사회주의 이행으로의 토대가 된다. 반인민전선 세력은 인민전선이 계급협조를 부추기며, 소부르주아 계급과의 야합을 추구하게끔 한다고 비난하지만, 우리가 읽은 바와 같이 이러한 비난은 사실이 아니라 왜곡에 가깝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파시즘 책동에 맞서, 우리는 우선 노동자 민중의 단결에서 시작하여 강력한 조직력과 지도에 기반한 반파쇼인민전선을 건설함과 동시에, 부르주아의 지도 아래 놓인 민중에게 윤석열 파시즘의 계급적 본질, 반파쇼투쟁의 목적을 일깨우고 사회변혁에 대한 열망을 키워나가는 데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혼란해지는 정세 속에서, 우리의 발목을 친친 감아 전진을 방해하는 반동과 대오 내의 적들에 맞서 승리를 쟁취할 길은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은 반파쇼세력의 굳건한 단결과, 그 중심에 서게 될, 잘 조직된 변혁세력이 전선의 지도력을 낚아채는 데에 있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사회 변혁의 의지를 굳세게 틀어쥐고, 최후의 최후까지 담대하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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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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