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인민전선인가? 트로츠키 공동전선인가?
조윤재 (서강대학교 인문학부 학생/노정협 회원)
윤석열 퇴진투쟁 국면에서 민주당에 대한 연대 여부를 둘러 싼 각 정파간의 인식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진보당, 촛불행동과 같은 세력은 민주당과 연대하고 있는 반면 이른바 노/녹/정이라 불리는 “독자적 진보 세력”은 민주당과 연대 불가를 내세운다. 나아가 (좌단위 성향의) 전선 조직 사이에서도 많은 조직들이 “지배계급의 이해 관계에 복무하는” 민주당에 협력할 수 없음을 내세우고 있다.
우선, 자주적인 관점에서 민주당과 연대하지 않는 태도가 자주적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자주적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을 구분했는데,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은 사물을 움직이지 않는 절대적 가치로 상정하고 능동적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관념론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절대 X는 안된다”라거나 “절대 X여야한다”라는 것 등은 모두 형이상학적인 태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민주당과 무조건 연합해야한다는 태도는 물론 민주당과 무조건 연합하지 않아야한다는 태도도 자주적이지 못한 것이다. 정세는 매우 유동적으로 변하는 것이고, 그마다 당면한 주요 모순도 변할 수 있다. 그때마다 연대 대상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투쟁 국면은 민주주의 혁명을 요구하고 있다. 국힘이 파쇼라는 것은 매우 명확한 사실이다. 일부 고매한 지식인들이나 민주당과 국민의힘 사이에서 어설픈 양비론을 펼치는 일부 좌단위 정파들은 국민의힘이 파쇼는 아니라는 둥, 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 의회에 총칼을 들이밀면서 파쇼라 불릴 수 없는 세력이 무엇이 있는가? 이 세상에 반정부 인사와 야당 의원, 언론인 등을 총살하거나 바다에 수장시키려고 했으면서 파쇼라 불릴 수 없는 세력이 무엇이 있는가? 윤석열은 파쇼이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파쇼를 몰아내는 민주혁명을 달성해야하는 것이다.
맑스레닌주의를 정립한 이론가이자 정치가 이오시프 스탈린은 <무정부주의냐 맑스주의냐?>에서 “민주주의가 봉건제도를 혁파하는 선에서는 좋은 것이고, 부르주아 제도를 공고히 하는 한에서는 나쁜 것이다. 이리하여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며 따라서 옳은 것임과 동시에 그른 것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역사의 특정 순간에서 민주혁명을 이뤄낸 이후,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해야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혁명을 달성하고, 이후 사회주의 혁명을 이행하는데 있어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방식은 게오르기 디미트로프가 제출하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승인한 <인민전선론>이다. 구체적으로, 반파쇼 인민전선이다. 파시즘은 자본주의의 결과이지만 모든 자본가가 파시즘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부르주아 계급의 세력인 일부 반공 자유주의자들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조직을 이끌기도 했다.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나 이탈리아의 알치데 데 가스페리 등을 예시로 들 수 있다. 당면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위협인 파시즘에 반대하기 위해 반파시즘을 기치로 한 계급간 동맹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나아가 신민주주의론을 통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반제, 반식민, 반자본 계급의 통일전선을 주장한다. 한편 조선의 경우 마오의 인민민주 인민전선 개념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소련을 제외하면,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민주혁명과 뒤이은 사회주의 혁명은 오로지 인민전선으로만 달성되었다. 동독은 독일공산당과 사민당을 중심으로 여러 조직이 합쳐 사회주의통일당(SED)을 결성해 혁명을 이뤄냈고,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파쇼의 잔재물을 분쇄하는 혁명이 전개되었다. 중국의 경우 공산당과 민주당파가 함께 반동 국민당을 몰아냈다. 비록 극심한 내부 분열과 부르주아들의 비협력적 태도로 인하여 실패하긴 했지만 스페인에서의 반파쇼 투쟁도 비슷하게 전개되었다. 반파쇼 인민전선은 민주혁명이 필요한 모든 국가에서 동일하게 시행되었다.
한국의 경우, 변혁적인 세력은 노정협 등 작은 단위에 국한되고 있다. 그러나 개혁적인 노급정당으로서 진보당이 존재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정당으로 민주당이 있다. 인민전선론은 혁명적 노급세력, 개혁적 노급세력, 그리고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의 광범위한 계급동맹이다. 이 관점에서 반윤투쟁을 위한 민주당과의 연대는 제한적으로나마 승인될 것이다. 스탈린의 말을 바꾸자면 “민주당이 윤석열 검찰독재를 무너트리는 선에서는 좋은 것이고, 대미종속과 자본주의를 공고히하는 선에서는 나쁜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든 논리적으로든 인민전선 방법론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었음에도, 많은 좌파 조직들은 이에 한사코 반대하며 민주당과 연대는 절대불가하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의 아집은 그 조상을 따져보면 레프 트로츠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이른바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좌파”라고 자부하기를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트로츠키의 노선에 영향을 받은 바가 많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많은 좌파 조직들은 반쏘 반공의 청산주의에 휩쓸렸고, 일부는 탈근대주의 신좌파에서 답을 찾은 한편 다른 일부는 트로츠키주의에서 답을 찾았다. 트로츠키는 과거 혁명에 지대한 공을 세웠지만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이후 극우 친제국주의로 변절하여 혁명에 해를 끼치고자 했다. 이때 트로츠키가 스탈린의 인민전선론에 흠집을 내기 위해 저술한 몇가지 문건을 토대로, 혁명적 좌파 조직들은 “트로츠키식 공동전선론” (이하 공동전선)을 내세우기도 한다.
한 트로츠키주의 조직의 글을 인용하자면, “(트로츠키식) 공동전선은 노동자 계급 정당들의 부분적 행동 통일을 위한 전술인 반면, 인민전선은 부르주아 정당까지도 포함하는 종합적인 계급 협력 전략”이다. 공동전선론을 주장한 트로츠키는 개혁적 노동자 세력과 혁명적 노동자 세력의 연합을 내세웠고, 인민전선론을 주장한 스탈린은 보다 폭넓게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과와도 계급적 동맹을 내세웠다. 오늘날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영국의 제러미 코빈, 미국의 버니 샌더스 등을 대표적인 개혁주의자로 꼽으며, 이들과 단결한 공동전선을 통하여 극우 세력에 대항해나가야한다고 본다. 또한, 대중에게 혁명적 세력과 개혁적 세력의 명확한 차이를 알리면 혁명이 개혁에 종속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유사하게, 현재의 좌파 세력은 부르주아 세력이라 볼 수 있는 민주당과의 연대를 부정하는 대신 개혁적 좌파라고도 볼 수 있는 정의당, 녹색당과의 연대를 우선시한다. (자신들이 생각하기에는) 혁명적인 노동당/좌단위와 개혁적인 녹색당, 정의당의 연합으로서 공동전선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노/녹/정의 연대는 노급 내에서 개혁 세력과 혁명 세력의 연대이고 민주당과의 “계급간 연대”는 불필요하며 타파되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적 좌파는 이러한 “요설”을 거부해야함이 당연하다. 한국에서 좌파가 차지하는 낮은 위상을 보아, 혁명 세력을 스스로 고립시키는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 노동당이 얻은 득표는 0.09%였다. 그정도라면 수준 낮은 극우정당보다도 낮은 득표이다. 이른바 “독자적 진보”를 내세우는 세력은 다 합쳐서 3%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는데, 이런 상황에서의 공동전선이라면 필시 고립되기 마련이다. 현재로서 대중적인 세력은 민주당이다. 부르주아적 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주혁명을 완수하고, 혁명적인 생각을 대중적 층위로 끌어올리는 것이 더 필요하지, 민주당과는 상관 없다면서 혼자서 2%, 3%짜리 시위해봐야 아무런 소득이 없으며 러시아 혁명 기 범무정부주의자들의 과격 맹동주의 활동이나 다를바가 없다. 이것은 좌파를 통째로 이끌고 돈키호테처럼 풍차에 돌진하는 것과 같다.
트로츠키주의의 공동전선론은 무척이나 비변증법적이기도 한데, 어떤 정당의 계급적 성격을 고정해두고 무작정 지지 대상과 배제 대상을 정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에게 일반 인민의 의지가 개입될 수 있으며 반대로 정의당에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정의당의 전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추혜선이 LG U+의 이사로 부임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데, 이는 정의당이나 녹색당이 언제든 부르주아 계급을 위한 이해관계를 띌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정의당은 환경을 위한다는 명목에서 전기세 문제에서 기업에 유리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당은 부르주아 정당이지만, 현 시점에서는 또한 개혁적인 입장에 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검찰청 해체 같은 주장은 혁명적 좌파와 더불어민주당이 공유하는 것이다. 민주당이든, 정의당이든, 녹색당이든 언제든 부르주아적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이 개혁적인 주장도 할 수 있음을 주지해야한다. 한국의 일부 운동가들은 이 점을 무시하고 민주당과 정의당, 녹색당을 매우 모호한 구분점으로 분간한다. 이것은 물론 전혀 맑스주의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자주적이지도 않은 관점이다.
이런 오류 투성이 관점을 견지하면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는 둥 “좌파”라는 둥 자연하는 것은 중단해야한다. 제대로 된 혁명적 좌파라면 하루 빨리 호전광 파쇼 윤석열을 퇴진시키는 탄핵의 인민전선에 동참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일부 활동가들에게 긴급히 호소한다.
그러나 이것은 혁명적 세력이 민주당에 입당해야한다거나, 혁명을 포기하고 개혁 세력에 동참해야한다는 등의 주장이 아니다. 분명하게도 혁명적 세력은 민주당과 연대할 수 있을 지언정 민주당과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자주적이게 된다는 것은 다른 세력과 연대를 지향하되, 종속되지는 않음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진보당과 혁명적 운동을 동일시해서도 안된다. 특히 진보당의 당권파는 최근 변혁적 이념 학습이나 선언을 하기는 커녕 개혁적인 수사를 사용하며 반자본의 전선에서 멀어지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인 민주당, 개혁적 노동자 세력인 진보당, 그리고 혁명적 세력의 연대로서 인민전선이 성립되지만, 혁명적 세력은 독자적인 조직을 갖추어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야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현장에서의 실천과 자주적인 사상의 학습이 무엇보다 요구될 것이다.
* 사진출처: [노동과세계] 사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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