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서재》: 독서 편력으로 보는 정치인 스탈린의 지적 세계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강태영

 

스탈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어떨까. 청년층이 자주 보는 ‘나무위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은 ‘조지아의 인간 백정’이다. 그가 대숙청과 이른바 ‘홀로도모르’(우크라이나 대기근) 등을 통해 잔인한 학살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전형적인 냉전기 반공 선전에 가깝다. 그나마 가장 중립적이랍시고 쓰는 표현은 ‘강철의 대원수’이다. 이 역시 스탈린을 ‘냉혈한’으로 묘사하여 그도 사람이자, 정치인이라는 속성을 은근슬쩍 가린다.

최근 김용현 국방부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강선영이 “이재명의 평화혁명론은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유사한 사상을 내세우고 있다.”라는 망언을 내뱉었다.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가 1차대전에 반대하며 내걸었던 빵, 토지, 평화에서 평화만 가져다 억지로 붙인 것이었고 이러한 색깔론은 당연히 그 자리에서 바로 빗발치는 비난이 쏟아졌다. 심지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평화혁명론은 혁명이라는 수사만 썼을 뿐, 민주당이 2024년도 강령 개정에서 제시한 기본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본 사회는 당연히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당이 추구하는, 기본소득 등을 비롯한 기본 사회보장이 제도화된 복지국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태를 지켜본 혹자가 이재명 대표를 옹호한답시고 이렇게 비꼬았다.

“국힘 바보들. 이재명 대표 공격하고 싶으면 레닌이 아니고 스탈린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정말 무식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냉전이 ‘해체된 것처럼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 레닌은 어느 정도 복권이 되었다. 이제 독립운동사에서 레닌의 공적을 무시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김구에 대한 ‘신화’도 사학계의 연구를 통해 많이 객관화되었다. 물론, 독립유공자와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대한 역대 정부의 복권처럼 ‘죽은 권력에는 관대하다’는 냉소적 평가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스탈린에 대한 복권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집단 서방이 러시아의 다른 선택지를 제거해 버리면서 개전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피해자 이입 서사’는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를 유지,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에 ‘의도적’으로 기근을 일으켰거나, 심지어 ‘인종 학살’을 했다는 인식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대숙청’의 시대적 불가피성이라는 배경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인식의 불모지’에서 <스탈린의 서재>가 국역이 되어 소개된 것은 새로운 인식을 넓혀주는 틀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사실은 스탈린 전기에 가깝다. 한 사람의 삶을 그의 독서 편력을 통해 서술하는 것은 독특하지만, 정치인 특히 최고지도자에게 독서가 통치의 필수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크게 어색하지 않다. 당장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자신의 독서 목록을 대중적으로 공개하고, 퇴임 후에도 책방을 꾸리면서 살고 있듯이 말이다.

이 책은 스탈린에 대하여 알려진 ‘대중적’, 어쩌면 반공적인, 편견을 상당수 깨뜨린다. 그렇다고 해서 스탈린을 마냥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의 선택을 때로는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어떤 때는 ‘마키아벨리즘’을 비롯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치밀하게 분석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결단은 감성적 ‘광기’는커녕, 도리어 이성적 ‘냉철’함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스탈린이 자신의 정적을 악마화했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스탈린은 레닌 사후 집권 과정에서 자신의 정적을 반동 혐의로 제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것에 따르면 스탈린과 트로츠키 등을 비롯한 정적 간의 정책적 관점은 그다지 차이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스탈린이 그토록 공적으로 공격한 정적조차, 그의 서재에서는 ‘반면교사’로서의 참고 대상이었음을 보여준다. 러시아 내전 등으로 수습되지 못한 혼란, 이후 대숙청에서 볼 수 있듯이 오히려 한편으로는 커지고 있던 혼란을 정리하려면 정적의 ‘오류’를 제거하는 건 ‘정무적’으로는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옹호할 것인지 말지는 서로의 생각이겠지만.

본 서평에서 스탈린의 서재 목록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지면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스탈린은 역사에서 배우고, 적에게서도 배우며, 심지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과에서도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관점에 바탕을 두고, ‘편집자’로서의 역할을 했다.

반동주의의 대가였던 비스마르크, 손자병법 못지않게 서양의 군사학을 집대성한 클라우제비츠, 대조국전쟁(제2차세계대전 중 독소전쟁)에 앞선 조국전쟁(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의 영웅 쿠투조프, 게다가 전공(혁명가가 되기 이전 그는 전술했듯이 시인이었다)이 아닌 과학과 언어 분야의 논쟁 개입까지.

심지어 태생부터 자본주의의 총본산이던 미국은 러시아 혁명으로 건국된 소련과 그 지도자인 레닌, 스탈린 등을 주적으로 삼았지만-2차 대전기 제외-, 오히려 스탈린은 독소전쟁 중 미국의 무기대여법 등 협력을 통해 ‘소련의 혁명 정신과 미국의 (생산) 효율성’의 상승 효과를 꾀하겠노라고 할 정도였다. 이처럼 스탈린은 통념과 달리 선제적으로 냉전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소련 전역은 독소전쟁으로 황폐화되었고, 소련에게 시급한 건 대결이 아닌 복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이 소련의 의도를 ‘오해’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주제로 하는 노경덕 교수의 강연도 듣고 왔다. 노경덕 교수 역시 기존의 학계에서 보여주던 편협하고, 선험적인 관점을 벗어나서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을 보여줘서 마음에 들었다. 다만 노경덕 교수는 강연 중간에 자신이 밝혔듯이 (E.H. 카와 같은 역사적 ‘진보주의자’에 가깝지) ‘사회주의적’ 관점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사회주의나 진보운동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추천사를 써줬다.

강연 중에서 스탈린의 정치적 결정은, 이를테면 여전히 비난하는 독소 불가침 조약 등을 포함하여, 철저하게 현실적 결단이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노경덕 교수는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는데, 좀 더 최선의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마냥 옹호를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냉전의 기원 역시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당시 지도자끼리 동상이몽이었던 것이 맞물린 결과가 아니겠냐고 했다. 강연이 끝난 후 필자는 노경덕 교수에게 ‘이러한 악마화는 소련과 스탈린뿐만 아니라 중국과 마오쩌둥, 심지어 북과 김일성 등 냉전기의 사회주의 혁명가와 지도자라면 모두 만들어졌을 것이고, 본 책처럼 서재를 통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질문했고, 과도한 악마화에 동의한다고 했다. 다만 필자는 ‘최선의 방법’이란 현재로서의 ‘결과론적 관점’이 아닐까 싶다.

 

이 강연 직전에 노경덕 교수는 ‘알릴레오’ 강좌에도 출연했는데 패널들이 이 책을 이해하긴 한 건지 모를 정도였다고 토로했다. 일리야는 책도 안 본 것 같았고, 유시민조차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노경덕 교수는 기존 서방의 통념으로 스탈린을 해석하려고 하면 오류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도 기존의 통념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패널을 위해 매우 순화해서 설명했는데,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패널은 아예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사람들은 스탈린이 2차대전 직후 노벨평화상 후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놀라거나, 히틀러도 한때는 후보였다면서 일축해 버린다. 그러나 벵골 대기근 등으로 논란이 더 크면 컸지, 작지 않은 처칠이 끝내 노벨문학상이라도 받았다는 것을 볼 때, 당시 한림원은 반파시즘 전쟁의 공로자에게 어떻게든 수훈을 하긴 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그 때마다 유엔의 산파(1945년 코델 헐), 무엇보다도 간디(1948년, 그러나 발표 직전 암살당하면서 그 해 노벨평화상은 유일하게 ‘수상자 없음’으로 처리)한테 밀렸을 뿐이다. 이후에는 냉전이 본격화되었고, 스탈린도 죽으면서 결국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고인이 된 상황에서 남은 건 처칠 뿐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바꿔서 생각해 보면 적어도 당대에는 스탈린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냉전기에 악마화되었고, 탈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에 대한 격하, 전면 부정을 통해 악마화는 여전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크라이나 ‘학살’의 원조로 다시금 거론되고 있고.

하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그런 대중적 인식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될 것이다. 스탈린이 간부들과 주고받은 편지, 방대한 참고 자료 목록 등을 보면, 사실 필자는 저만큼이라도 읽기나 할 수는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지나친 띄워주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단기강좌 소련공산당사’ 편집 과정을 보면 그는 스스로에게 겸손했다. 한자 문화권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원칙과 비슷하게, 있는 그대로 쓰고, ‘악마의 편집’은 하지 말라는 것이 편집 지침이었다. 사실 스탈린의 겸손함은 보여주기가 아니다. 스탈린은 2차대전 승전사에서도 모든 공은 소련 인민에게 있다고 돌렸기 때문이다. 또한 혁명 이후 사회주의적 ‘검열’을 ‘선험적’으로 두려워하던 사람들에게도 역시 ‘있는 그대로’ 쓰라고 주문했다.

이런 솔직함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책에서도 ‘포멧키’(주석)를 통해 인간적이고 신랄한 평가를 남기기도 했으니 말이다. 간략함,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독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독자를 겨냥해서 쓰기 등은 스탈린의 편집 원칙이며, 동시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스탈린에 대한 악마화를 벗겨내면서도 신화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이 책을 여러분들께 추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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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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