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버니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닌가 : 혁명적 사회주의를 옹호하며(WWP, 노동자세계당)
대니 하이팡(Danny Haiphong)
2015년 11월 9일
노동자세계당(Workers World Party)
만약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지명에 실패하면, 사회주의 역시 실패하는가? 198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를 방어하는 피델 카스트로 연설을 최근 읽으면 쿠바에서 진정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과 샌더스의 선거 운동 상황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주의”의 차이점에 대해 집중조명하고 있다.
1988년 “사회주의를 옹호하며”라는 제목의 책에서, 쿠바의 혁명적 지도자는 쏘비에트 후반 시기 쿠바도 그랬던 것처럼 사회주의를 방어하는 것에 대해 중대한 통찰을 주고 있다. 피델은 “제국주의는 오늘날 사회주의를 실질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여주려고 시도하고 있다. … 그리고 제국주의는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이른바 이점들에 최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다.”고 쿠바 인민들에게 설명하였다.
이는 1991년 쏘련 붕괴 직후에 더 심해졌다. 1970년대 세계 자본주의 공황은 생산을 전반적으로 감소하게 하고 미제국주의로 하여금 세계 도처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전쟁을 확대하도록 했다. 쏘비에트 시기 이후 태어났던 많은 청년들은 혁명적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을 시험할 기회가 더 적게 남았다. 이러한 상황은 올해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샌더스가 부상하도록 했다.
11월 5일 CNN 기사는 샌더스 선거운동이 힐러리 클린턴에게 밀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클린턴의 엄청난 기업 지원과 군산복합체에 복무한 오랜 이력은 결국 그녀를 민주당 지명에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샌더스가 클린턴에 대해 경합하고 있는 것은 그의 자칭 “사회주의자”로서의 칭호와 관련이 있다. 그는 그의 칭호를 뒷받침하기 위해 학생채무변제와 보편적인 건강 보험과 같은 정책들을 홍보했다. 그러나 샌더스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선거에서 잘못 알려진 속박에서 벗어나 옹호되어야만 한다.
샌더스 방식으로의 사회주의 옹호는 노동자와 피억압 인민이 미국 자본주의의 공황으로 인해 피폐해지게 된 현실에 기인한다. 잔인한 긴축, 무자비한 사유화와 배가된 착취는 전체 노동자, 특히 흑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상태를 후퇴시켰다. 동시에 미국 자본주의 사회는 쿠바와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은 최악의 독재와 최고의 비현실적인 상태로 타락했다고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샌더스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이 이에 대해 보상해주지 않는다 해도, 그들에게 쓸모가 있다. 그의 선거운동은 적절한 의료 보험의 결핍과 저임금 노동의 지배와 같은 이슈들에 대한 그의 설명으로 현실에 불만을 품고 있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을 민주당 안으로 되돌아오도록 유혹했다. 그는 그러한 이슈들을 미국 자본의 명령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그렇게 했다.
당면한 과제는 두 개가 결코 혼동되지 않게끔 혁명적 사회주의를 샌더스의 정치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근본 모순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자인 자본가들의 한 줌도 안 되는 집단과 그들이 착취하는 수십억 노동자들 사이에 있다. 자본가들은 그들에게 복무하는 군대, 경찰, 법원과 미디어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국내와 세계 곳곳에서 거대한 이윤을 위하여 노동자들과 피억압 인민들을 착취하도록 하는 사회적 관계다.
혁명적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와 피억압 인민들에게 복무하는 정부, 민병대와 그 밖의 물리력으로 사회화된 생산을 운영한다. 노동자들과 피억압 인민이 권력을 장악해서 은행들, 공장들과 유통 시설 같은 생산수단을 장악할 때까지 어떠한 혁명적 국가나 운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피억압 대중들에 의한 국가 권력 장악은 자본주의 하에서 고유한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 국가는 더 이상 사적 소유를 관리하지 않는 대신 여러 것을 관리하는 기구로 변화되어야 한다. 즉, 그 국가는 낡은 질서를 억압할 수 있는 대중기관과 새로운 필수적인 경제 기구와 정치 기구로 변화되어야 한다. 샌더스 방식의 사회주의는 낡은 질서를 그대로 둬서 결국 자본주의 체제가 지배하는 변형된 모습을 의미할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이러한 변형은 민주당의 환경에 편안하게 맞는다. 샌더스는 시리아에 대한 대리전쟁과 최근 사우디아라비아가 자행하고 있는 예멘에 대한 유혈 침략을 공공연하게 지지했다. 그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지지하는 것을 포함해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스라엘의 확장을 충실하게 변호한 행적이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샌더스의 지지는 사회주의의 부정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오직 새로운 시장으로 확장하고 과거의 것들에서 영향을 유지하기 위해 끝없는 전쟁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 지배 계급의 이익에 복무할 따름이다.
이는 1980년대 말 쿠바 인민에게 연설했을 때에 피델이 옹호했던 사회주의 유형이 아니다. 쿠바 인민은 1959년 이후 쿠바가 견지해왔던 사회 체제인 혁명적 사회주의를 방어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하에서, 쿠바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와 전체 인민을 위한 주택, 의료보험과 교육의 필요성을 둘러싼 경제 계획을 유지했다. 쿠바 사회주의는 절대 다수 쿠바 인민을 위한 이러한 필요성을 충족시켰다.
쿠바 사회주의는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국제 연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수십만 명의 쿠바인들은 남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 반대 세력들과 함께 싸웠고 (의료)무상공여, 질 좋은 의료 보험을 통해 세계 인민들을 꾸준히 지지했다. 쿠바 사회주의는 피억압자들을 위한 모델이다.
샌더스 선거 운동은 노동자들의 당이 지지할 수 있는 국내 이슈들을 제기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회주의 유형은 억압자들을 위한 모델이다. 단언컨대 그것은 우리가 옹호하는 쿠바 사회주의와 같지 않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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