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변혁을 위한 레닌주의적 원칙과 의회에 대한 태도 – 민중당을 중심으로

김규상(필자는 한국에서 야학을 하며 노동운동을 했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2018년 11월 29일

한국사회는 박근혜 정권이 퇴진하고 문재인 정권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종북몰이가 횡행하고 있으며 국가보안법과 국가정보원 같은 파쇼기구가 엄존하는 나라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치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권력에 대한 원칙적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의회주의에 빠지지 않고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특히 한국사회의 여러 진보정당 중 민중당은 박근혜 정권의 야만적 탄압으로 통합진보당이 강제 해산당한 뒤에 만들어진 당이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과거 활동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원칙적인 입장에 서서 새로운 활동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여기서 민중당을 비판하는 것이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안법이 생각하고 말하는 것까지도 통제하고, 제국주의 자본의 본거지 미국이 국내 경제, 정치, 문화를 쥐락펴락하는 마당에, 진보세력을 표방하는 민중당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긍지이자, 희망일 것이다. 이북의 핵무력 완성 이후 판문점, 싱가포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거치며 조성된 새로운 정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생각한다면 민중당은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점에서 그 어떤 비판에 앞서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진보정당으로서의 민중당의 역할과 관련해서 누구라도 기대하는 것은 의회 안팎에서의 합법활동을 통하여 전체 변혁운동의 발전에 일조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런 기대를 염두에 두고 제대로 된 비판을 시도하자면 우선 한국사회에서의 변혁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고, 그 속에서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후라야 민중당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의 변혁 전망

한국사회가 어떤지, 그것을 바꾸려면 어떤 목표를 세워야 하고, 어떤 전략과 방법을 내와야하는지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다만 그 목표와 전략이 어떻든지 간에 분명히 하는 것은, 체제로서의 한국사회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어떤 주장과 논리도 여기서는 제외한다는 것이다. 즉, 한국사회가 자본주의체제라면, 자본주의체제를 바꾼다는 것은 변혁을 뜻하고, 그런 변혁의 근본문제는 권력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서 이 글은 출발한다.

자본주의체제를 바꾸는 변혁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의 시야를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넓혀보면, 즉 이제까지 세계 각국에서 있었던 혁명활동에 대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이미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이론적, 실제적 경험이 쌓여있음을 알 수 있다. 멀게는 1870년 프랑스의 빠리꼬뮨에서부터 1917년 러시아의 10월혁명, 1945년 베트남혁명, 1949년 중국혁명에 이르기까지, 이후 쿠바와 칠레의 혁명 등 수없이 많다. 사회변혁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이 모든 혁명사들을 다 따라잡아도 모자라겠지만,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을 재조명하기 위해서 변혁의 근본문제를 다룬다면, 러시아 10월혁명을 목전에 두고 레닌이 작성한 <국가와 혁명> 만한 것도 없을 것이다.

<국가와 혁명>에 나타난 레닌의 문제의식은 스탈린의 <레닌주의의 기초>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다.

레닌은 “모든 혁명의 근본문제는 권력에 관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력을 잡으면 다 끝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한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지를 무너뜨린 혁명 이후에도 오랫동안 부르주아지는 여전히 프롤레타리아보다 더 강력한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권력을 결집시켜 단단히 유지해나가는 것이 관건인 바, 이를 위해서 최소한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혁명으로 무너져 착취당하는 지주와 자본가들의 저항을 분쇄하고 자본의 힘을 회복하려는 모든 시도들을 차단해야 한다. 둘째, 모든 근로대중들을 프롤레타리아의 주변에 결집시키는 사업을 조직하고 계급을 폐지하도록 준비하는 정책들을 수행해야 한다. 셋째, 외적과의 투쟁을 위하여 제국주의와의 투쟁을 위하여 혁명을 무장화하고, 혁명군대를 조직화해야 한다. 이런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

여기서 우리가 품을만한 의문은, 변혁을 통해 쟁취하고자 하는 국가권력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것을 획득한 후에도, 모든 게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인가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먼저 레닌은 엥겔스의 저작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 나온 다음 내용을 인용하며 국가의 역사적 역할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소개한다.

국가는, 일정한 발전단계에 접어든 사회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국가가 생겨났다는 것은, 그 사회가 자기자신과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엉켜들었다는 것, 그 사회가 화해할 수 없는 적대감으로 나뉘어져서 이를 퇴치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충하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 적대세력, 이들 계급들이 무모한 싸움 속에서 자기자신들과 사회를 소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회는 권력, 즉 사회와는 독립된 듯 동떨어진 채로 존재하며 갈등을 완화시키고, 그 갈등으로 인해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권력을 가져야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권력, 즉, 사회로부터 생겨났지만 그 사회를 초월하여 사회로부터 더욱더 스스로를 독립시켜나간 권력이 바로 국가다.

레닌은, 국가란 화해할 수 없는 계급적 적대감들의 산물이자 발현이며, 국가는 계급 적대감이 객관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한 언제, 어디서고 생겨나며, 뒤집어 말하면, 국가의 존재는 곧 계급 적대감들이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말한다.

폐지되어야 할 국가

레닌은 앞서 말한 엥겔스 저작을 인용하며 국가권력이 주로 무엇으로 구성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두 번째 특징은 공권력의 수립인데, 이 공권력이 종전과 다른 것은 사회구성원들 스스로가 무장력으로 조직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특별한 공권력이 필요한 이유는, 계급으로 나뉘어진 이후부터 사회구성원들이 직접 스스로 행동하는 무장조직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는 이런 공권력은 무장한 인력뿐만 아니라 여러 물적자원, 감옥들, 모든 종류의 억압장치들로 구성되는데, 이런 것들은 과거 부족사회에서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레닌은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권력” 개념을 엥겔스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고 말하며, 감옥 등을 거느린 특별기구로서의 무장인력이 그런 국가의 주요 구성물이라고 요약한다.

계급적 적대감을 누그러뜨려야 할 필요에 따라 국가가 생겨났지만, 동시에 이들 계급 간의 갈등의 한가운데서 국가가 생겨났기 때문에, 통상 국가는 가장 힘세고, 경제적으로 지배적인 계급, 또한 국가라는 매개물을 통해 정치적으로 지배적으로 된 계급의 국가며, 그래서 피억압 계급을 억누르고 착취하는 새로운 수단을 획득한다….” 고대국가나 봉건국가는 노예나 농노를 착취하는 기구였고, 마찬가지로, “현대 대의제 국가는 자본에 의한 임노동 착취를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 싸우던 계급들 간의 세력관계가 균형상태에 이르러 명목상의 중재자로서 국가권력이 일시적이나마 양쪽으로부터 일정한 정도의 독립적 지위를 가지는 시기다….” 17, 18세기 프랑스에서의 절대왕정인 제1제정, 제2제정이 그러했고, 독일에서의 비스마르크체제가 그러한 경우다.

계속하여 엥겔스의 발언을 소개하는데, “재력은 간접적이긴 해도 가장 확실하게 그 힘을 행사한다” 첫째, “공무원들을 직접적으로 타락”시킴으로써 (미국 경우), 둘째, “정부와 증권거래소 간의 결탁”을 통해서(프랑스, 미국 경우)라고 말한다. 이어서 레닌은, 민주공화국에서 “재력”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확실히 행사할 수 있는 이유의 하나를 드는데, 그것은 재력이 정치적 장치들이 가진 결점, 즉 자본주의의 정치적 외피가 가진 결점과는 아무 상관없이 관철되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은 자본주의가 걸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정치적 외피다. 따라서 일단 자본이 그런 최고의 외피를 확보하는 순간, 자본은 그 권력을 확실히 틀어쥐게 된다. 그리하여, 부르주아민주주의 공화국 안에서는 아무리 사람, 제도, 정당이 바뀐다 해도 절대 그 틀어쥔 권력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레닌은, 모든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참정권 부여 역시 부르주아 지배도구에 불과함을 엥겔스가 명확히 지적한다고 말한다. 즉, 엥겔스가 말하기를, 참정권은 독일 진보운동의 오랜 경험을 설명해주며, “독일 노동자 계급이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바로 지금 그대로의 국가체제 안에서는 그 이상 아무것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레닌은 엥겔스가 남긴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다.

국가가 그 먼 옛날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국가 없이도 살던 사회들이 있었고, 국가나 국가권력에 대한 생각조차도 없던 사회들이 있었다. 경제적 발전이 일정 단계에 이르자 그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서 사회가 계급들로 나뉘게 되자, 국가는 필수적인 것으로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생산의 새로운 단계에 접근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계급의 존재는 그 필요성조차 없어질 뿐만 아니라, 또한 생산발전을 자극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계급은 그 이전단계에서 출현했듯이 사라질 것이다. 계급이 사라지면서 국가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을 기초로 생산을 재조직할 것이며, 국가장치 전체를 그것이 마땅히 가야할 곳, 즉 고대박물관 안 물레와 청동도끼 옆에 나란히 보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닌은 국가의 폐지와 사멸이란 개념과 관련하여,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폐지”하는 것은 부르주아국가이며, 국가의 사멸이란 사회주의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국가의 잔존물들이 없어져가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즉, 엥겔스가 말한 것은, 부르주아국가는 “사멸해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에 의해 “폐지”된다는 것이고, 그런 혁명 이후 사멸해가는 것은 프롤레타리아국가 또는 준프롤레타리아국가라는 것임을 명확히 구분해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을 위한 최고형태의 국가로는 민주공화국을 선호하지만,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공화국에서조차도 민중들의 운명은 여전히 임금노예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

빠리꼬뮨, 국가 폐지와 사멸의 실제사례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는 무엇으로 구성되고 있고,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설명에 이어서, 레닌은 국가를 폐지한 실제사례로서 1871년 빠리꼬뮨의 경험에 대한 맑스의 분석을 소개한다. 여기서 레닌은 빠리꼬뮨에 대한 맑스의 저작인 <프랑스내전>의 유명한 구절들을 연달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세시대에 기원을 두고 19세기에 나타나 발전한 “중앙집중화된 권력은 그 수중에 상비군, 경찰, 관료제, 성직자들, 사법체제 등” 여러 기관들을 두고 있었다.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 적대가 발전하면서 “국가권력은 노동자 계급을 억누르고자 조직화된 공권력으로서의 성격, 계급지배 장치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게 되었다.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계급투쟁의 진전이 이루어졌지만, 국가권력의 순전히 억압적인 성격이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848-49년 혁명 이후 국가권력은 “노동에 대항하여 싸우는 자본의 국가적 전쟁수단”이 되었다. 프랑스 제2제정은 이것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다.

제2제정에 대한 직접적 반테제가 빠리꼬뮨이었다.

빠리꼬뮨은 군주제 형태의 계급지배를 없애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계급지배 자체를 없애고자 한 공화국의 “특수한 형태”였다.

따라서, 빠리꼬뮨의 첫번째 포고문은 상비군을 폐지하고 그것을 무장한 민중들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빠리꼬뮨은 도시 안의 여러 선거구역에서 모든 성인이 참여하는 투표로 선출된 지역의원들로 구성되었고, 언제라도 즉각 소환가능했다. 빠리꼬뮨의 대다수는 일반 노동자들, 또는 노동계급의 명망있는 대표자들이었다…. 정부의 손발이었던 경찰은 즉시 그 정치적 색채가 벗겨졌고, 언제라도 즉각 소환가능한 빠리꼬뮨의 대리인으로 탈바꿈되었다. 행정부의 다른 모든 분야의 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빠리꼬뮨의 구성원들 이하 모든 공무원은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지급받았다. 국가의 고위공무원들이 가졌던 특권과 봉급은 고위공무원들이 함께 사라졌다…. 상비군, 경찰, 그리고 구정부가 휘두르던 모든 물리력 수단을 없앤 빠리꼬뮨은 즉시 모든 정신적 억압 도구, 성직자들의 권력을 분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사법공무원들은 이름뿐이던 가짜 독립성을 잃어버리고…, 그 이후론 선출직으로서 즉각 소환가능하도록 바뀌었다.

이제 민중들 다수가 그들의 압제자들을 억압하게 되자, 억압을 위한 ‘특별한 힘’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국가는 사멸해가기 시작했다. 특수공무원들이나 상비군의 책임자 등 소수 특권층의 특별기관 대신에 민중들 다수가 직접 그 모든 업무들을 수행할 수 있었고, 더욱더 많은 기능들을 민중들 스스로 수행했으며, 국가권력이 존재할 필요성 또한 더욱더 줄어들었다고 레닌은 설명한다.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폐지

레닌은, 부르주아 의회제도에 대한 맑스의 탁월한 비판으로서, 빠리꼬뮨 당시에 실시됐던 투표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3년 또는 6년에 한번씩 지배계급 중에서 누가 민중들을 대표하여 억압할 것인가를 의회에서 결정하는 대신에,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투표제도는 빠리 내의 각 지역구 구민들 전체를 위한 것이었다. 이런 투표제도는 마치 각 사업장에서 고용주가 자기 사업을 위해서 노동자, 작업반장, 회계사들을 뽑는 것과도 같았다.

이어서 레닌은, 맑스가 “돼지우리” 같은 부르주아 의회제도일지라도, 특히 혁명적 상황이 아닌 경우에, 의회제도를 이용하려 하지 않고 부르주아 의회참여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를 가차 없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부르주아 의회제도에 대하여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비판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몇 년에 한번 지배계급의 누가 의회를 통하여 민중들을 억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 바로 그것이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실제적 본질이며, 이는 단지 입헌군주제 하에서의 의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민주공화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레닌은, “우리가 국가문제를 다룬다면, 의회제도를 국가의 여러 제도들 중의 하나로 고려한다면, 의회제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인가, 의회제도 없이 어떻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이어서, 그는 “의회제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대의제와 선거원칙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를 그저 말뿐인 것에서 실제 업무를 실행하는 기관으로 바꾸는 것이다”라며, “빠리꼬뮨은, 의회제도로서의 기관이 아니라, 실무 행정 기관이자 동시에 입법기관일 것을 지향했다”고 말한다.

레닌은, “의회제도로서의 기관이 아닌 실무 기관,” 이것은 미국에서 스위스, 프랑스에서 영국, 노르웨이 등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의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직격탄을 날린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이들 나라에서 “국가”의 실제 업무는 막후에서 진행되고, 행정부서, 총리산하기관들, 총무부서들이 수행하며, 의회는 “일반인”들을 속이려는 특별한 목적이 있을 때 사용 된다”고 비판한다.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

혁명의 근본문제가 권력에 관한 문제라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계급이 계급적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서 국가라는 장치를 통해 그 권력을 행사나간다고 확인했다면, 이제 문제는 그런 사회체제를 어떻게 바꿔나가느냐일 것이다. 이는 곧 변혁의 전망에 대한 전면적 고민으로서 당과 계급, 대중에 대한 지도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검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선, 민중당은 혁명운동의 고양과 퇴조에 따라 비합법활동과 합법활동을 결합해가는 혁명활동조직으로서의 당이 아니다. 합법정당으로서 합법활동을 위주로 활동할 것을 표방한 대중정당이다. 이것은 물론 민중당의 행동반경을 제약하고 변혁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작아지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중당의 제약조건은 한국사회에서의 변혁의 특수한 사정에서 오는 것이지 민중당 스스로가 설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변혁운동의 일반적 이론을 동원하여 민중당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을 전체 변혁운동과 동떨어진 곳에서 찾아야하는 것도 아니다. 즉, 비합법 혁명적 조직으로서의 당이 수행하지 못하는 영역이라면 의회, 노동조합, 그리고 그 외 모든 계급, 계층, 부문을 망라한 대중조직 속으로 진출하여 ‘전체운동에 복무’하는 것이 민중당의 역할일 것이다. 즉, 비합법 혁명조직만이 수행할 수 있는 활동영역이 아니라면, 이론투쟁이든, 조직활동이든, 대중사업이든 어떤 영역에서든지 민중당이 진출하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것이고, 그런 활동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의 원칙과 방법에서 러시아의 비합법 혁명조직이나 민중당 같은 합법적 대중조직이나 크게 다를 수 없는 것이다.

민중당에게 의회는 무엇인가?

변혁운동 진영에서 의회를 대하는 입장에서 잘못된 경향은 우편향과 좌편향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우편향은 기존의 낡은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더라도 변혁의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으로, 그런 사고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앞서 <국가와 혁명>을 통해 살펴봤듯이 국가란 무엇이고 왜 폐지되어야 하는가에 비춰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대표적인 우편향 사고, 즉 우익기회주의의 사례로 꼽히는 카우츠키의 경우 레닌은 물론 스탈린도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제2인터내셔널이 활동하던 때는 대체로 평화적인 시기로서 프롤레타리아를 결집시키고 정치적으로 훈련하는 데 주력했고, 계급투쟁의 주된 형태는 의회주의였으며, 계급갈등이나 혁명적 대치 시 프롤레타리아의 준비상태와 계급독재를 위한 수단 등의 문제들은 주요 현안이 되지 못했다. 주로 법적인 문제에 매달리고, 프롤레타리아가 처한 상태와 조건에 순응하는 의회주의의 활용, 야당으로서의 활동 등에 국한됐다. 체계적 전략이나 정교한 전술은 없고 파편적이고 단편적인 생각들뿐이었다.

의회주의 형태의 투쟁을 활용하는 전술을 추구한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제2인터내셔널은 의회전술을 과대평가하고 사실상 의회전술만을 유일한 투쟁형태로 고집했다. 그러다가 막상 혁명적 전투가 벌어지고 의회 바깥에서의 투쟁의 형태에 대한 문제가 대두하자, 모두 등을 돌리거나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회 투쟁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기본 형태라는 것은 아무 근거가 없다. 의회 투쟁이 프롤레타리아의 의회 바깥에서의 투쟁을 조직하는 학교이자 보조역량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운동의 근본문제는 물리력에 의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직접적 투쟁, 총파업, 봉기에 의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혁명운동 역사를 통해 증명되지 않았는가?

우편향이 이미 파산한 낡은 것에 집착하고 새로운 것들을 외면한다면, 좌편향은 그 폐해와 위험성이 우편향에 비해선 훨씬 작지만, 변혁운동을 잘못 이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좌편향은 낡은 것이라면 무조건적으로 타파해야할 것으로 보고, 새로운 것들이라도 기존의 낡고 하찮은 형식들을 통해서 그 실체가 드러난다는 것을 모르고 그때그때의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전술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에게 의회전술이란 것은 없으며 의회는 정세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으로 거부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올바른 변혁운동이라면, 즉, 변혁운동에 복무하기 위하여 의회를 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의회전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오로지 의회투쟁만을 변혁목표에 이르는 주된 전략전술로 삼고 그것과 결합되어야 할 다른 모든 문제들을 사실상 방치하는 우편향과, 의회를 타파해야 할 낡은 체제의 산물로서만 파악하고 의회전술이 변혁운동에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부정하는 좌편향 모두를 배격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저작이 레닌의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이다. 1920년에 쓴 이 책에서 레닌은 당시에 유럽 각국의 공산주의운동 흐름 속에서 일제히 드러나는 좌편향적 입장에 대해 비판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레닌의 비판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올바른 의회전술에 대한 입장이다.

러시아혁명에서의 의회전술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의 의회전술에 대한 레닌의 입장에 대하여 스탈린은 <레닌주의의 기초>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전술은 운동의 상승과 퇴조에 따라 변화한다. 혁명의 첫 번째 단계에서 전략적 계획은 변하지 않았지만, 전술은 여러 번 바뀌었다. 1903-05년 혁명의 상승기에 당은 공세를 취했고 전술도 그렇게 짜였으며, 투쟁형태도 혁명적이었다. 현장의 정치파업, 정치적 시위, 정치적 총파업, 듀마의회 보이콧, 혁명적 투쟁구호 등이 당시의 투쟁형태였다. 투쟁형태에 맞게 투쟁조직도 바뀌어, 공장위원회, 혁명적 농민위원회, 파업위원회 노동자대표 쏘비에트, 노동자들, 공개적 당 운영 등이 당시의 조직적 형태였다.

1907-12년 혁명의 퇴조기가 되어 혁명운동이 가라앉자 당은 퇴각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고, 투쟁형태나 조직형태도 바뀌었다. 듀마의회 보이콧 대신 듀마의회 참여, 듀마의회 바깥에서의 공개적이고 혁명적인 활동 대신에 의회 내에서의 활동, 정치적 총파업 대신에 부분적 경제파업이나 활동중지 등으로 바뀌었다. 당은 지하로 숨었고, 혁명적 대중조직 대신에 문화, 교육조직, 또는 기타 합법조직으로 바뀌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단계에서도 전략은 변하지 않으나 전술은 상황에 맞게 수차례 바뀌었다.

듀마의회에 참여해야 하는 때를 당이 결정하고, 듀마의회에서 사업을 어떻게 집중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투쟁을 발전시켜나갈지를 결정함으로써, 대중들이 듀마의회의 무용성과 입헌민주주의자들의 잘못과, 짜르와의 타협은 없다는 것과, 농민과 노동계급의 동맹이 불가피함을 경험을 통해 깨닫기 쉽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전위는 노동계급으로부터 분리되고, 노동계급은 대중과의 접점을 잃게 될 것이다. 러시아 혁명 시 듀마의회 기간 동안에 대중들이 얻은 경험이 없었더라면 입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폭로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의회활동을 전술적 문제로 본다는 것이다. 즉, 변혁과제 실현을 위한 전략에 맞춰서 정세변동에 따라 의회는 참여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대중들과의 연계 속에서 대중들의 투쟁경험을 발전시키는 것이 의회전술의 주된 관심사였다는 것이다.

의회전술 운용

1905년 러시아에서의 의회전술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짜르가 소집한 입법기능 없는 의회소집에 대해 볼셰비키는 거부의사를 표명했고, 다른 야당과 멘셰비키는 이를 반대했다. 그것은 올바른 것으로 드러났다. 반동적 의회를 거부해서라기보다는, 당시 객관적 상황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급속히 번지던 대중투쟁들이 정치파업으로 번지고, 혁명적 파업으로, 그리고 봉기로까지 확대되고 있었던 것이다.

볼셰비키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의회를 거부하도록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모든 선전선동의 초점을 무장봉기, 혁명군, 임시정부 문제들에 맞췄다. 즉, 의회거부투쟁을 통해 혁명세력을 결집시키고, 대중적 정치투쟁을 조직하고, 다가올 무장봉기를 준비했던 것이다.

합법활동과 비합법투쟁을 결합시키고, 의회투쟁과 의회바깥의 투쟁을 결합시킴으로써,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의회를 전면적으로 거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지켜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의회거부투쟁을 통해서 엄청나게 귀중한 정치적 경험을 얻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다른 조건, 다른 상황에 아무런 비판적 고려 없이 그대로 베껴내듯 적용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대중들과의 결합

레닌은 “노동조합은, 무기력하게 흩어져있던 노동자들을 초보적 계급조직으로 바꿔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 노동계급을 위한 엄청난 진전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최고형태의 조직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나면서 노동조합들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편협하고 무기력하며 비정치적인 반동적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동조합과 노동계급의 당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발전이란 전 세계 그 어디에서도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하며, 대중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의 반동적 성격에 주목하는 동시에, 노동조합과 결합하지 못하는 변혁운동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입장은 의회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즉, “부르주아의회 등 반동적인 제도들을 무너뜨릴 힘이 없다면, 그 안에 들어가 활동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의회든 노동조합이든 그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대중조직과 합법공간에서의 활동을 통한 대중들과의 결합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가장 예리하고, 무자비하고, 비타협적인 비판이 향해야 할 곳은 의회주의라든가 의회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의회선거와 의회의 연단을 혁명적이고 공산주의적인 방식으로 이용할 능력이 없거나 외면하는 사람들, 운동의 지도자들을 향해야한다. 그런 비판을 통해 무능력한 지도자들을 유능한 사람들로 교체하는 혁명적 작업을 통해서만이 모든 근로대중과 노동계급에 적합한 지도자들을 키워내고, 대중들은 정치적 상황 및 정치적 상황에서 파생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선거전술

의회전술에 대한 레닌의 문제의식이 가장 자세하게 드러나는 대목은 당시 의회선거를 앞두고 있던 영국에서 선거에 참여하는 프롤레타리아 계열의 정당들이 취해야 할 전술에 대한 설명에서다. 당시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보수당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자유당과 연합하고 있었고, 역시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자유당세력은 처칠 등 몇 개의 세력으로 나뉜 상태에서 선거를 위해 단일세력으로의 규합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대중들은 정치상황의 변화를 열망하며 노동당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레닌은 선거에서 노동당이 승리하고 노동당정부가 들어설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노동당은 대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보수당과 자유당과의 차별성은 가졌지만 쁘띠부르주아정당이었다. 보수당과의 연합만으로는 집권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자유당 연합세력은, 한편으로는 노동당과의 연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노동당과 공산주의계열 정당 간의 연합을 제지하고자 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그냥 혁명단체가 아니라 혁명적 계급정당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대중들을 지도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선 노동당이 자유당을 누르고 승리하는 걸 도와야한다. 둘째, 우리는 노동계급의 대다수가 그들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우리가 옳다는 확신을 갖도록 도와야한다. 즉, 노동당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들은 쁘띠부르주아들이므로 조심해야하고, 얼마 못가서 파산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야한다. 셋째, 조만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노동당에 실망할 것이고, 이에 따라 노동당 정부를 즉각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러한 순간을 앞당기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다가올 선거전에서 어떤 전술로 임할 것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세하게 설명한다.

영국의 네 개의 공산주의 군소정당들은 선거참여를 전제로, 제3인터내셔널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단일정당으로 연합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음과 같이 노동당과의 선거협정을 맺어야한다: 노동자들이 노동당과 공산주의계열의 단일정당을 대상으로 투표하는 특별투표를 통해서 얻은 득표수에 비례하여 의석을 배분한다. 단, 선전선동, 정치활동을 위한 자유를 완전히 보장한다. 이러한 조건부 선거연합이 아니면 노동당에 대한 정치적 폭로가 불가능하므로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만약 노동당이 이러한 조건부 선거연합을 수락한다면, 우리에게 득이 된다. 왜냐하면, 의회 내 의석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의회 내 의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당이나 특히 자유당은 의석을 얻기 위해 안달이지만 우리는 이에 양보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분명히 득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당이 대중들을 구워삶는 것을 막고 대중들 속에서 선전선동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당이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단지 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당을 반대하는 우리의 유보 없는 선전선동 내용들을 대중들이 이해하도록 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당이 조건부 선거연합을 거절한다면, 우리에겐 더 많은 득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즉시 ‘노동당은 모든 노동자들의 연합체보다도 자본가들과 더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대중들에게 알릴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눈에 비친 우리는 얻는 게 더 많을 것이고 자유당과 보수당 간의 연합에 대항하여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해야한다는 우리의 생각에 더욱 공감을 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당은 자유당에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단독으로 집권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것, 그래서 자유당이 노동당에 대항하여 노골적으로 보수당에 손을 내밀고 있음에도 그들로부터 은밀한 지원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우리는 대중들에게 폭로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당과의 선거연합이 무산되더라도 우리는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몇 개의 의석을 잃더라도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노동당 후보의 낙선이 자유당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소수의 확실한 선거구에 후보를 낼 것이다. 선거전에 참여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는 전단지를 배포할 것이며, 우리가 후보를 내지 않은 모든 선거구에서 유권자들이 보수당이나 자유당이 아닌 노동당을 선택하도록 운동을 펼칠 것이다.

내가 만약 공산주의자로서 그들을 방문해서 자유당에 투표하지 말고 노동당에 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나는 대중적인 방식으로 왜 쏘비에트가 의회보다 더 나은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독재가 윈스턴 처칠의 독재보다 왜 나은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당을 돕는 것이 왜 그들의 파산을 촉진시킬 것인지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장차 노동당 정부가 수립되면 내가 옳다는 것이 증명되고, 이로 인해 대중들을 내편으로 끌어들이게 되고, 노동당의 정치적 사망을 재촉할 것이다.

이러한 전술들이 너무 복잡해서 대중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반대한다면,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당신이 가진 교조적인 생각들이 가진 문제를 대중들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더구나, 러시아의 대중들은 영국의 대중들보다 교육수준이 낮으면 낮았지 결코 높지 않았다.

공산주의의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원칙들을 특정한 상황에서의 특정한 문제에 적용하는 것은 각 나라마다 다르고 이에 대해 우리는 각자 스스로 연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영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공산주의의 발전에 관한 일반적 결론들과의 연결 속에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다.

민중당 비판에 대신하는 말

모든 비판이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점에서, 민중당에 대한 섣부른 비판은 민중당 내부의 구성원들에게도, 변혁운동의 진로를 위해서도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맑스레닌주의의 고전적 저작들이 변혁운동의 과제설정과 그 실현을 위해서 가지는 중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그것들을 소개하고 몇 가지 원칙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것으로 현재 민중당의 어떤 모습에 대한 비판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민중당이 창당되기까지 겪어야했던 수많은 우여곡절들, 그리고 사상의 자유를 완벽하게 차단하는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비판이란,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사태를 더 좋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공허한 비난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원칙을 들이대는 비판이란 게 말은 쉽지만 실제 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가 되기 쉬운 이유들이다.

그렇게 때문에 개인이든 조직이든 가장 좋은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스스로 비판할 것을 찾아보고, 더 나아가서는, 외부와의 실질적인 의사소통 창구를 열어두면서, 내부적으로는 학습과 토론을 활성화시켜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인용하면,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레닌은, “스스로의 잘못에 대하여 정당이 취하는 태도를 보면 그 정당이 얼마나 성실히, 그리고 실제적으로 자기 계급과 근로대중들에게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솔직히 실수를 시인하고, 그 이유를 규명하고, 그것이 발생한 배경을 분석하고, 그 해결방법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당의 모습이고, 당이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는 방법이고, 노동계급과 대중들을 교육, 훈련시키는 방법이다.”라고 한다.

<국가와 혁명>에 나타난 문제의식에 비춰보면, 자본주의체제에서 권력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하지 않고, 국가장치의 일부에 불과한 의회제도에 참여할 때 생기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한편, 기존체제에 대한 변혁적 문제의식과는 상관없이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의식적으로 대변하는 보수정당들의 의회 내 활동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도 확연히 드러난다. 민중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 지점이다. 그런 차별성은 기존의 다른 정당과의 비교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비교는, 변혁적 전망 속에서 기존체제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사라져야 할 국가장치의 일부로서 의회제도를 바라보지 않더라도, 의회제도 틀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중당이 가져야할 진정한 차별성은 한국사회 변혁의 전망 속에서 찾아야 한다.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 나타난 레닌의 의회전술을 다시 검토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고, 대중들을 조직하는 것이 단순히 그들의 지지를 받는데서 그치는 것이라면, 민중당은 보수정당들과 비교해서도 별다른 차별성이 없을 것이다. 조직화된 대중들의 지지 속에서, 그들과 변혁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고, 그 올바른 실현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서로 부딪히며 발전해가는 것이라야 진정한 차별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컨대, 크고 작은 선거에서 득표수와 의석수로 나타난 대중들의 반응을 주된 기준으로 삼아 조직의 구성과 활동방식, 정책들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치로 계량화할 수 없는 대중들의 의식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 전체 변혁운동의 흐름을 진전시키려는 노력, 그러한 노력이라야 민중당의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차별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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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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