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첨예한 쟁점들4-1]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은 제국주의론이 아니라 부르주아 국제주의론》

자명하고 원론적 사실로 구체 쟁점을 회피하는 것은 기회주의의 특징

 

국제공산주의 운동 내에서는 ‘다극화’ 관련한 또 다른 첨예한 쟁점이 있다. 한 편에서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에 맞서 진행되고 있는 ‘다극화’는 진보적이라는 주장이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다극화’는 자본주의 세계 내에서의 변화에 불과하며 제국주의 간 세력 다툼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있다. 후자의 입장 역시 그리스공산당(KKE)이 대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앞서 살펴봤듯 그리스공산당은 국제적인 통일전선, 인민전선을 계급협조로 부정하고 러-우전은 서방 제국주의와 러시아 제국주의 간의 원료, 시장,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기에 그 양자 중 어느 편도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다극화 문제에서도 그러한 입장의 연장선에서 살펴보고 있다.

진실은 하나의 “극”을 가지고 있든 많은 “극”을 가지고 있든 간에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전쟁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공황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얽혀 있다…. 우리의 의견으로는 국제기구를 “청산”함으로써 미국 “제국”에 대한 균형추로 간주되는 “다극 세계”의 출현을 지원하는 입장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이는 현실과 무관한 위험한 환상이다.(“제3차 베네수엘라 공산당 국제 이데올로기 세미나에서 그리스공산당(KKE)의 서면 기고문”, 2022년 11월 16일)

레닌은 자명하고 원론적인 주장을 함으로써 구체적인 쟁점을 회피하는 것은 기회주의의 특징 중 하나라고 강조한 바가 있다. 일반론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모든 전쟁의 원흉이고 제국주의 체제를 철폐할 때만이 경제공황과 전쟁이 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은 틀림없이 맞는 명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자본주의 하에서 평화를 위한  투쟁은 의미가 없고 오직 자본주의가 철폐되고 국제적 수준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가 형성될 때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자본주의가 파생한 제반 문제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흔히 보이는 인식이다.
소위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자처하는 세력은 “항구적 평화는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의 종식을 통해서만 오직 가능하다…제국주의 국가 하에서 항구적인 평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부르주아들이 평화의 주체일 수도 있다는, 평화협정으로 평화가 올 것이라는 환상”(‘볼셰비키 그룹’(페이스북 페이지, 2017년 8월 10일) 운운하며 한(조선)반도에서 미군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는 우리의 입장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제국주의 체제에서 당연히 항구적 평화가 불가능하지요. 전쟁과 대결, 대립은 과잉자본을 수출하고 타국을 지배, 착취, 수탈하려는 독점자본의 발전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국주의 전쟁의 필연성은 그러한 의미에서이지 제국주의 하에서 노동자계급이,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가 전쟁에 맞서 싸우고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죠. 만약 제국주의 전쟁 필연성을 제국주의 전쟁은 막을 수 없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체념, 수동성, 패배주의, 기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혁명이 되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은 일반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은 역으로 혁명의 조건, 혁명을 위한 수단, 전술과 정세의 활용, 주체역량의 결집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기권주의가 되는 거죠….
평화협정 체결은 모든 것은 아니지만 그 점에서 현 시기 주요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자 핵심 고리 중 하나인 것이죠.
평화협정 체결의 역사적, 구체적 상황을 모르고 환상에 빠져 있다는 가상의 환상을 세워놓고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주의에 빠져 있는 거에요.(노동자정치신문(노정신) 페이스북, 2017년 8월 11일)

평화협정 그 자체로 궁극적인 평화를 보장해줄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 국가들 간, 사회주의 국가들과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다양한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고 그 협정이 일시적이든, 조건적이든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평화협정은 단순한 문서 조각이 아니라 대립하는 두 주체 간의 투쟁과 결전을 통해 체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권리보장을 위해 자본가들과 단체협상을 체결하는 것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평화협정은 힘의 역관계에 따라 맺어지고 힘의 역관계가 변화할 때 언제든지 파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내일지라도 평화협정을 부정하고 단체협정을 부정할 수는 없다.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오직 언제 올지 모르는 궁극적 목표만을 주장하면서 각각의 국면에서 부각되는 현안들과 부딪쳐 싸우려고 하지 않으려 하는 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이다.
그리스공산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서방 제국주의자들 사이에 맺은 두 차례의 민스크 협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민스크 협정을 준수하지 않은 서방 제국주의자들과 우크라이나 신나찌에게 그 협정 파기의 책임을 묻고 규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자본주의 내에서의 협정 자체에 대해 부정할 요량이 아니다.
그리스공산당은 “‘사회주의를 향한 단계’라는 낡은 전략” 운운하며 단계를 부정한다. 역사발전에도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공산주의 같은 각각의 발전단계가 있고, 자본주의 단계 내에도 자유경쟁 단계가 있고 제국주의 단계가 있다. 공산주의 내에도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사회주의)와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공산주의)가 있으며 그 단계 사이에는 이행의 국면도 있다. 혁명에 있어서도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가 있고,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가 있다. 이는 사물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각되는 특수한 국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식 자체를 낡았다느니 ‘전략’이니 하며 인위적 고안물로 사고하며 부정할 수 없다. 단계를 부정하고 건너 띠면서 궁극목표만을 주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트로츠키주의의 특성이다.
마오쩌둥이 《모순론》에서 밝혔듯, 사물의 긴 발전 과정에는 각각의 발전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성에 유의하지 않으면 각각의 모순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러시아에서도 자본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봉건 황제체제라는 특수한 측면을 인식하지 못하였다면, 미완으로 그쳤지만 1905년 민주주의 혁명의 예행연습과 1917년 2월 민주주의 혁명을 거치지 않았다면 10월 혁명도 있을 수 없었다. 10월 혁명 이후 핵심 산업과 은행 국유화라는 사회주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농촌 집산화로 곧바로 전면적인 사회주의 조치로 성급하게 나아가지 않고 이행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농민과의 동맹에서 실패하고 그때 이미 러시아 사회주의는 전복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남에서 변혁의 문제도 객관적인 자본주의 발전 수준으로만 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단계지만, 혁명의 주체 조건, 이남에서 변혁을 위한 조건의 마련, 즉 국가보안법 철폐와 미군철수, 분단모순의 해결 같은 구체적이고 특수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궁극목표로 곧장 나아갈 수는 없다. 1948년 이남만의 단정단선(단독정부 단독선거) 전후에 자주적인 통일조국 수립이라는 민중의 열망이 분출되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통일문제를 변혁과정에서 해결하려는 시도 없이 러시아 쏘비에트형 혁명노선으로 이남에서만의 지역적 관점으로 변혁을 달성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스공산당의 입장을 이남에서 그대로 적용하면 그러한 교조주의가 된다.

 

제국주의를 사실상 부정하는 고답주의(高踏主義)적 ‘제국주의 피라미드론’

 

그리스공산당은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이라는 요지부동의 도그마적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독점이 형성돼 있는 나라들은 피라미드의 상중하에 각각 위치해 있기는 하나 모두 제국주의 국가라는 이론이다.

제국주의는 독점 자본주의다. 현 제국주의 체제에서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여기에 통합되어 있으며 불평등한 상호의존, 경쟁, 협력의 관계로 특징지어진다. 이것은 확실히 그들이 같은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모든 부르주아 계급이 전리품의 공유,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공유에 각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을 기반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른바 세계반제국주의 플랫폼과 그 파괴적이고 혼란스러운 입장에 대하여”, 그리스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관계부, 2023년 4월 10일)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제국주의 체제에 통합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제국주의 지위를 가지고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관계는 그리스공산당의 주장대로 “불평등한 상호의존, 경쟁, 협력”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이 어느 정도 수평적인 상호관계가 본질적인 관계가 아니다. 제국주의 체제 내에는 제국주의 국가와 (신)식민지 국가, 억압 하고 지배하는 국가와 지배 받는 국가, 종속하는 국가와 종속 된 국가로 나눠져 있다. 전자는 소수고 후자는 압도적 다수다. 그러나 그리스공산당은 독점이 형성된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제국주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점하는 위치는 달라도 모두 제국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불평등”하기는 해도 상호의존, 경쟁, 협력을 본질로 보고 있다.
심지어 그리스공산당은 “모든 부르주아 계급이 전리품의 공유”에 참여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자본주의 각국이 각 나라의 착취자들의 국가이기 때문에 각 나라 노동자의 총합으로서 “전 세계 노동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공유에 각국의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을 기반으로 참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리스공산당이 말하는 “전리품의 공유”는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주장한 한 줌도 안 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 세계 피억압 민족, 국가, 노동자 계급을 착취와 억압, 수탈하며 세계를 분할하고 재분할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각축전을 벌이는 것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
세계적 규모로 성장한 독점체들이 제국주의 국가의 군사적, 정치적 심지어 문화적 힘을 빌려 지구를 분할하고 지배하고 승리자로서 식민지, 반식민지의 전리품을 힘에 비례하여 약탈적으로 공유,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공산당의 어처구니없는 주장대로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전리품의 공유에 동참한다면 그건 서로 협력하거나 서로 뺏고 뺏기고, 서로 물고 뜯기며 전리품을 배분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제국주의 독점체와 국가의 세계 지배와 분할이 빠져 있다. 그건 때에 따라서 서로 협력하고 대립하기도 하는 약탈자 동맹이지 제국주의와 (신)식민지 관계가 아니다. 신하가 없이 임금이 있을 수 없듯이, (신)식민지가 없이 어찌 제국주의가 있을 수 있는가?
레닌은 자본주의 경제분석을 통해 그 경제구조의 상부에 위치한 제국주의의 정치적 구조, “폭력과 반동”이라는 그 구조의 본질, 성격을 밝히려고 했다. 레닌은 독점이 제국주의의 기초라고 했지 독점이 곧 제국주의라고는 하지는 않았다. 모든 제국주의 국가가 독점을 경제적 기초로 하고 있지만, 독점이 형성돼 있다고 모두 제국주의 국가는 아니다. 독점을 기초로 해서 전 세계적 수준에서 독점체 자본가들 간 세계분할을 하고 열강 간 세계분할을 할 때 비로소 제국주의가 된다. 세계분할과 재분할은 침략과 지배, 전쟁 없이 가능하지 않다. 자본수출도 마찬가지다. 과잉자본 수출을 통해 막대한 이권과 특혜를 차지하고 더 나아가서 그 나라의 내정에 공공연히 간섭하고 심지어 정권교체를 시도하는 등 자주성을 말살하는 것이 자본수출이 제국주의적 면모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공산당의 이런 황당한 이론체계는 제국주의 체제가 “한 줌의 ‘선진’국이 지구상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식민지적으로 억압하고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하나의 세계체제로 성장”했고 “이 ‘전리품’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무장한 2∼3명의 강력한 세계적 강도들(미국, 영국, 일본) 사이에서 분배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신들의 전쟁 속으로 전 세계를 끌어들이고 있다.”는 레닌의 제국주의 인식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 된다.
다시 강조하건데, 그렇게 되면 제국주의는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나라와 민족이 수백 개의 나라와 수십 억 인류를 지배하고 압살하는 종속 체제가 아니라, 피라미드 속의 위치는 다를지라도 태반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고 태반이 서로를 침략하고 지배하고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체제가 된다. 서로가 제국주의라면 어디에도 일방적으로 지배당하고 약탈당하는 (신)식민지는 없게 된다. 이는 결국 제국주의를 부정하는 처사다. 이는 제국주의론이 아니라 상호주의적이고 수평적인 부르주아 국제주의론, 국제관계론이다.
그리스공산당은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에 의하여 러시아와 중국, 인도와 브라질, 멕시코,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등을 모두 제국주의로 본다. 그러니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 중심의 일극 체제에 대항하여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조선, 쿠바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남미의 좌파정부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나라들, 이란 등의 나라가 이 일극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역사적 발전과 진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직 제국주의 피라미드 내에서 위치 변화에 불과한 것이다.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동요되어 미국이 쇠퇴하는 것은 영국제국주의를 대신해 미제국주의가 세계 패권을 차지했던 것과 같은 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제국주의 피라미드론’은 인식상의 심각한 오류인 동시에 실천적으로는 근본주의, 기권주의, 대기주의를 낳는다. 기존 세계질서의 극적인 변화에 대해 어떠한 의미도 발견할 수 없고 그 변화과정에서 우리의 실천적 과제를 잡을 수도 없으며 그저 현 피라미드 체계 내의 나라에서 혁명이 벌어질 때만이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정치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고답주의(高踏主義 속세에 초연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것을 고상하게 여기는 사상이나 태도)로 과연 혁명은 고사하고 눈앞의 현실의 변화라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기라도 할까?
이 고답주의에 많은 국제적 공산당들이 영향을 받고 미제와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진보적 인류의 단합된 결전을 가로막고 혼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이 고답이 가로막은 답답한 현실을 돌파해야 한다. 인식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고루하면 현실을 봐야 한다. 이제 변화무쌍한 다극화의 현실을 보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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