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건당(建党) 100주년 기념: 최근 중국의 정치경제상황에 대하여

저자: 켄 해먼드(Ken Hammond)

출처: 미국사회주의해방당(PSL)

게시일: 2021년 7월 1일

번역: 김규상(캐나다 교포)

 

*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생하고 나서 몇 년 뒤인 1921년 설립된 중국공산당이 2021년 건당 100주년이 되었다. ‘진보진영’ 내에서도 중국사회에 대해 ‘국가자본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거나, 더 나아가 미제국주의와 똑같은 ‘제국주의’로 보기 때문에 중-미 대립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중국 특색의 시장사회주의’를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모범적 모델로 보는 경향도 있다. 우리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중국사회를 바라보고 있으며 위 양자의 극단적 입장에 반대한다. 중국사회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분석이 더 필요하지만, 우리는 중국사회에 대한 이 글의 기본적 접근방식에 동의한다.

제국주의자들이 부추기고, 우리사회에도 만연한 중국혐오와 적대는 기본적으로 반사회주의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가짜 ‘인권과 민주주의’를 내걸고 미제를 포함한 제국주의자들이 부추기는 홍콩 ‘민주화’ 사태와 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반대한다. 반대로 우리는 최근에는 누그러졌지만 중국 공산당의 대국주의적 태도와 ‘시장 사회주의’가 가져오는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할 것이다.(편집자)

 

2021년 7월 1일은 중국공산당 건당(建党)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중국공산당의 지도력과 놀라운 업적을 기념하는 행사가 중국은 물론 세계 전역에서 지금 펼쳐지고 있다. 이런 업적들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최근 정치경제상황을 살펴보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2013년 11월 9일 시진핑(習近平)은 중국공산당 제18차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 연설에서 “개혁개방” 20여년 이후의 중국경제의 특징적 모습들에 대해 거론했다. 중국공산당이 “사회주의시장경제 수립”을 위한 목표를 정하고, 거시적 국가통제 하에서 자원을 분배하는데 있어서 시장이 그 기본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1992년 제14차 중국공산당 전국회의의 결정을 회고했다. 그리고 2013년에 사회주의시장경제가 “기본적으로 수립”되었지만, “아직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이런 평가는, 지금의 중국에도 유효한 것으로, 1949년 해방 이후 중국역사의 복잡성을 반영하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의 정치경제가 사회주의적이지만 그 안에서 시장메커니즘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묘사한다. 이 같은 발전방도는,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과 대외개방” 정책을 이끌던 1970년대 말 처음 도입되었는데, 중국의 국내경제체제에서의 변화와 세계경제 및 자본주의적 생산과 교역에 참여하는 것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중국은 사회주의계획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번영의 물질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 생산경제발전을 위한 시장메커니즘을 사용하고자 했는데, 이는 수십 년, 또는 백여 년이 걸릴지도 모를 기나긴 과정일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장을 운영하려면 감시감독이 필요했다. 공산당과 나란히 국가가 지배력을 유지하고 정치경제의 모든 면에서 안내역할을 하고자했다. 시장 때문에 나타날 부작용을 당과 국가가 막겠다는 것이었지만, 이런 부작용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회주의로 향하는 경로에 대한 당내 논쟁

 

중국에서 생산력발전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무엇인지는, 맑스와 엥겔스가 <공산당선언>에서 검토했던 부르주아경제의 출현에 대한 언급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역사, 시장의 힘에 의한 새로운 생산능력의 창출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는데, 그러한 과정을 통해 부르주아계급은 “거대한 생산 및 교환수단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적 시장체제의 발전으로 인하여 생산력이 확장되고, 이는 장차 독자적으로 부르주아 사회정치관계가 성립할 기초를 닦고, 또한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건설사업에 착수하기 위한 선결조건들을 창출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부르주아 시장의 힘 때문에, 소수 착취계급의 손에 자본이 집중되었고, 자본가들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상대로 최대한의 잉여가치를 착취하려고 함에 따라 그들의 절대다수가 궁핍해지게 되었다. 시장 스스로 창조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냈고, 엄격한 감시와 통제가 없으면 작동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장메커니즘을 도구로 삼아 이용한 또 다른 사례로는, 좀 더 제한적인 형태지만, 1920년대 초 쏘련공산당의 <신경제정책>을 들 수 있다. 이 당시 레닌을 비롯한 쏘비에트연방의 지도자들은 시장 및 자본가들이 제1차 세계대전과 내전으로 황폐해진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는 부르주아세력들로 하여금 사업과 금융에 있어서 이익을 도모하게 하는 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장차 사회주의계획의 일부가 될 새로운 산업과 기업활동을 위한 토대와 이후 발전의 첫출발을 다지는데 기여하도록 했다. 자본가들은, 쏘비에트국가와 당의 세밀한 감시 하에 있었고, 정치발전에 영향을 주거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했다.

새로운 개혁개방정책에 착수하기 위한 결정은,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초창기 30여년이 지나고 난 뒤의 중국사회의 물질적 조건 속에서 생겨났다. 중국은 1949년부터 1979년 사이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놀라운 발전을 이룬 공중보건에서는 평균기대수명이 40세에서 80세로 증가하고, 신생아 사망률이 급속히 줄어들었다. 교육이 발전했고, 문맹률은 급속히 줄었다. 주택보급이 늘어났고, 사회간접자본이 대규모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은 평균 3%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 말 중국은 아직도 저소득국가로 머무는데 그쳤고, 이는 빈곤의 평준화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다.

사회주의건설 초창기에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츠언이(陳毅) 등도 그랬지만, 덩샤오핑(鄧小平)을 비롯한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이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를 달성하고 장차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면 고도의 물질적 번영이 중국에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풍요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로서, 그 안에서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를 먼저 노동에 따라 분배하고, 종국적으로는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적 부의 축적을 마련할 생산능력을 창출하는 것이 우선이고, 또한 자원의 균등한 분배를 감독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을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시장메커니즘을 이용하여 경제발전계획을 추구하기로 결단했는데, 이는 또한 국내경제를 개방하여 해외투자를 유치하도록 했고, 그래야만 현대적 생산기술과 조직운영기술을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과는 엄청난 성공이었다. 다만, 심각한 모순과 위험도 동반하는 것이었다.

 

중국 경제개혁 이후의 모순들

 

1980년 이후 여러 해 동안 중국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내총생산은 2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연10% 이상으로 증가했다. 중국 인민들의 물질적 생활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과학기술이 큰 폭으로 발전함에 따라, 14억 인구의 절반이상이 거주하는 중국 도시들은 세계적 수준으로 현대화되었다. 8억 이상의 인구가 유엔 기준 빈곤수준을 넘어섰다. 교육, 특히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는 갈수록 늘어났고,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이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이제 세계경제의 거대한 생산기지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당 정부가 거시경제를 운용하는데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제공할 엄청난 외환보유고를 쌓았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와 함께 사회적, 정치적 비용뿐만 아니라 엄청난 물질적 비용을 수반했다.

빠른 경제성장을 추구하고자 시장을 이용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겨났다. 대다수 중국인민이 누려야할 늘어난 소득을 소수의 부유한 자본가 특권층이 가져감으로써, 부의 불평등이 심화됐다. 국가와 당의 일부 관료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대중들을 희생시키고 자신의 부를 키우는 등 만연하는 부패가 문제됐다. 환경문제도 확산되었는데, 특히 개혁기간 초기 몇 십년간에는, 심각한 공기, 수질, 토양 오염이 보건문제를 일으켰고, 사망률을 심각하게 높였다. 시장체제에 내재된 이윤추구로 인해 편법과 안전수칙 무시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순들 때문에 자주 시위가 발생하고, 주민의 권리를 보장할 것, 당이 애초에 설정한 목표와 가치에 따를 것을 주장하는 주민운동을 촉발시켰다.

중국이 세계경제 및 세계자본주의체제에 편입한 것 역시 긍정적, 부정적 요소 모두가 혼합된 복잡한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이 대외무역과 투자를 늘리는 것을 열렬히 환영했다. 미국 및 서방의 정치지도자들, 그리고 학계에서는 중국이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편입됨으로써, 국내경제의 성장과 함께 정치적 변화를 중국에 가져오고, 종국에는 새 국제노동분업 체제의 일부로서 새로운 체제가 출현하기를 희망했다. 세계무역에 참여하면서, 그리고 합작투자 등 여러 외국인 투자가 생겨나면서, 중국은 미국의 국제적 이해관계를 위해 상당한 양보를 했고, 쿠바 등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의 연대를 종종 포기했으며, 세계 각국에서의 혁명운동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도 했다. 개혁시대의 첫 십년간 중국은 미국과의 조율을 바탕으로 하는 외교정책을 추구했다.

 

시진핑의 지도력, 최근의 변화, 그리고 중국방식의 문제점들

 

최근 들어 시진핑이 당내 지도자로 나서면서 중국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조율하는 모습으로부터 탈피했다. 중국은 서방에서 바라던 대로의 정치적, 경제적 체제의 변화를 용인하지 않았다. 중국은 국제문제에 자신감과 적극성을 보였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지속되던 미국지배 하의 세계질서를 거부했으며, 일대일로 정책이라든가 서방으로부터 독립된 국제적 경제기구나 금융기구 설립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와 함께 공동번영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구축하고자 했다.

위대한 성과들과 심각한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상황에서 최근 중국의 정치경제를 두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진지한 사회주의자들이나 좌파 활동가들은 다양한 견해를 표명했다. 중국이 1970년대 말 이후로 “자본주의 길”에 들어섰다고 보고, 미국과 별 차이가 없는 미국식 자본주의라고 중국체제를 묘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한편에선, 중국이 이미 그 어떤 결점도 없는 진정한 사회주의체제를 이루어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 도식을 넘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좀 더 명확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더욱 세밀한 분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시진핑은 중국을 일컬어 시장사회주의경제라고 한다. 또한 중국을 일컬어, 사회주의의 이론적 모델을 중국의 물질적 현실에 적합하도록 적용했다는 뜻에서,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표현들 속에는 중국의 경제적, 정치적 질서의 특징들을 지금 실제 존재하는 대로 생각해보기 위한 단초가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중국공산당은 자본가들이 당원으로 지원하는 것을 허용하고, 그 이후,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던 전체당원에 비해서는 여전히 미미한 세력이었지만, 사업체 소유주들을 당에 받아들였다. 오늘날 중국에는 자본가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국가를 지배할 수 있는 자본가계급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선 중국 노동자계급의 상황도 마찬가지인데,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에게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부르주아 통치 하에서의 전통적 의미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처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회주의국가로서 중국은 모든 주민들에게 가구별등록부를 제공하는데 이를 통해 사람들은 거주공간, 그리고 교육 및 보건 등을 포함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와 달리, 중국의 노동자들은 그들이 생산하는 사회적 부를 공유할 권리를 가지며, 생존하기 위해서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의 노동자들이 더 좋은 고용기회를 찾지 않는다든가, 좋은 직장을 찾아 자신의 가구별등록부가 있는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실상, 중국은 아직 개발도상국으로서 일인당 소득이 비교적 낮은 까닭에, 농촌지역에서의 형편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르주아식 시장이 그들을 몰아내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중국에는 근로인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안전장치가 존재한다. 당과 국가에 의한 자본가계급에 대한 통제와 감시,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부여하는 기본적 사회주의 권리들이 있기 때문에, 중국을 자본주의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제 현실 속에서 몇 가지 예만 살펴보더라도 그 타당성을 증명할 수 있다.

중국체제의 전반적 성격과 지향이 무엇인지를 가장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14억 중국인민들의 물질적 생활조건이 꾸준하고도 광범위하게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빈곤을 경감하기 위한 프로그램들에 힘입어 8억5천만 명 이상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절대빈곤수준에서 벗어났다. 게다가, 중국인민 대다수의 소득이 매년 증가해왔고, 그들의 주거여건이 갈수록 좋아졌으며, 사회적, 문화적 자원들을 즐길 수 있는 여력이 늘어났으며, 자기계발을 위한 기회가 늘어나고 있다. 수천만 명의 중국인이 매년 학생으로서, 또는 관광을 위해 해외여행을 하고 있고, 국내여행은, 훌륭한 고속철도망 덕에, 훨씬 더 많다. 개혁개방정책이 이룬 경제발전의 결과 중국인민들의 삶의 질은 여러 모로 개선되었다.

 

성장과 세계위기로 생긴 문제들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대응

 

중국정부와 공산당은 또한 성장으로 인해 생겨나 지속되고 있는 문제들과 최근 들어 생긴 대형 위기들에 대처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들어서 경제가 부흥하면서 심각한 환경문제가 생겨났다. 서방에서도 19세기, 20세기 산업발전 초기에 엄청난 오염문제가 있었으나, 중국에서는 사회적 부를 축적하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더욱더 많은 자원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이는 서방의 자본주의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것이었다. 중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대체에너지를 생산하고 있고, 태양에너지, 풍력발전, 그리고 기타 다른 형태의 청정동력생산에 대한 연구개발에 있어서 선두주자다. 계획경제와 공산당의 지도하에서, 중국은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투자를 하기로 선택할 수 있었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대다수 국가들에서는, 자본주의시장의 무정부성, 그리고 부르주아계급이 지배하는 까닭에,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중국은 또한 국가와 경제가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패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또한 시장이 작동하는 과정에 내재된 독점이나 품질관리문제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을 통제관리하고자 했다. 2012년 이후 부패한 관리들과 사업체간부들을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광범위한 조사와 처벌이 있었다. 이는 체제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과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현재도 진행 중인 캠페인이다. 초거대 자본가인 마윈(馬雲)과 그의 기업들이 연루된 최근 사태들은, 서방에서는 말만 많았지 실제 규제는 거의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첨단분야에서의 감독에 대한 당과 국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중국이 직면했던 최근 두 가지 위기상황들도 단호하게 처리되었는데, 이는 중국의 사회, 경제, 정치체제가 가진 집단주의적 성격에 힘입은 것이다. 2008년 자본주의 금융위기의 경우, 중국은 은행시스템과 화폐제도가 국유화된 까닭에 그 영향이 차단됐지만, 국내에서 생산되어 수출되던 많은 상품들에 대한 수요가 실종되면서 경제에 치명타를 입혔다. 2천만 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해고됐다. 자본주의국가들 같았으면, 예상치 못한 시장상황으로 인해 이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방치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이들 노동자들은 가구별등록부가 있기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주택이나 기타 보건 및 교육 등 기본 사회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일인당 가용한 자원이 아직 낮기 때문에 이들 복지수준은 초보적 수준이었지만, 엄청난 수의 실업자들이 위기를 극복하도록 돕기엔 충분했다. 이후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중국이 국내소비를 더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키면서, 이들 해고노동자들은 복직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다른 곳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거론할 가장 극적인 일로서는, 중국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현한 2020년 초 당과 국가가 공중보건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방대한 사회적, 경제적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공중보건이, 사기업체와 그 소유주 또는 경영진이 이윤을 창출하도록 하는 원천이 아닌, 인권의 하나로 여겨진다. 당원, 비당원 할 것 없이, 의사, 간호사, 종합병원, 진료소, 연구자, 기술자, 그리고 수백만의 일반주민 등이 자원하거나 직장에서 파견되어,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난관을 뚫어가며 싸웠다. 또한 중국 인민들은 자기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우려하면서도 사회의 건강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당과 국가가 제시한 정책과 지도를 받아들였고, 지역사회와 국가를 보호하고자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 두 달 반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에 성공했고, 14억 인구 중 사망자는 5천명 미만이었다. 자본주의적 보건체제를 가진 부르주아국가가 바이러스 확산을 막지 못해서 인구 3억3천만 중에서 6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미국과의 차이가 이보다 더 명확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의 진보 및 좌파세력이 해야 할 일들

 

이렇듯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도전에 맞서 중국의 국가, 당, 인민이 합심하여 극복해나간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본가들이 존재한다 해도 중국은 자본주의국가가 아니라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잉여가치를 쥐어짜내고자 그 모든 것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중국경제 발전을 안내하고, 정책입안을 통하여, 그리고 이론과 실천 간의 끊임없는 변증법을 통하여, 경제발전과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정치적 힘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사회전반에 대한 행정기능과 함께 중국의 대외관계를 조정한다. 중국은 아직 완전하게 사회주의국가가 되진 못했다. 사회주의 미래를 향한 길을 따라 큰 난관들에 직면해있다. 하지만 중국은, 완벽한 곳은 아니지만, 강점과 약점을 함께 가진,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는, 인간적인 사회다. 당의 지도와 인민정부의 산하기관들을 통해, 중국인민들은 자기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 속에서 길을 개척해가고 있다. 다만 이 길은, 맑스가 얘기했던, “자기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고, 과거의 유산으로서 물려받아 주어졌기에 직면해야하는 상황”이 아닌, 자기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 파괴된 나라, 일본의 침략과 내전으로 갈가리 찢긴 나라였지만 그 폐허 더미를 뚫고 다시 일어난 중국인민들은 자신과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미완성 상태로서 지금도 진행 중이며, 장차 또 다른 위험과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다른 나라의 인민들, 특히, 정의, 평등, 평화의 세상을 바라며 자기네 인민들을 위해 사회주의 미래를 건설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라면,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로의 길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지지하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가기 위해) 강을 조심스럽게 건너는”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문제점이나 실수를 발견한다면 비판적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의 사회주의발전 사업을 지지해야 한다. 편법과 시행착오를 막기 위한 중국공산당의 지도와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 중국인민들이 품은 희망과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새롭게 부상하는 신냉전으로부터, 그리고 그칠 줄 모르고 펼쳐지는 중국에 대한 악마화로부터 중국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455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