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그 ‘진보적’ 벗들(5) ‘진영논리’ 부정은 <노동자연대>가 제국주의 벗이 되는 정치적 기원이다
‘진영논리’를 부정하고 ‘중립논리’로 가장한 기회주의
필자의 “제국주의와 그 ‘진보적’ 벗들(3)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제국주의의 벗’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 <노동자연대>의 경우” 글에 대해서 <노동자 연대> 김인식 기자가 “백철현의 조잡한 진영논리와 흑백논리를 비판한다”는 제목으로 반박했다.
김인식은 이 글에서 필자의 입장을 비판하는 핵심 근거로 “진영 논리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철 지난 스탈린주의 옹호” 운운하며 필자의 ‘진영 논리’가 우크라이나 사태, “북한 핵에 대한 태도”, 시리아 ‘내전’에서 “‘진보적인’ 국가들”인 러시아, ‘북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것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김인식은 “진영논리”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고, 그 왜곡에 기초해서 진영논리와 그것에 기초한 정치적 판단들을 비판하고 있다.
‘진영논리’란 무엇인가?
‘진영’이란 원래 사전적으로 “군대가 진을 치고 주둔하고 있는 일정한 구역”을 의미한다. 이 의미가 확장되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세력의 어느 한쪽”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진영논리는 이른바 냉전시절에 쏘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진영과의 대립과 그 대립을 표현하는 정치적 논리를 의미한다.
진영은 이처럼 화해할 수 없는 대립을 하는 적대하는 양 진영을 의미하는 것이고, 진영논리는 이 대립을 이데올로기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영논리는 맑스주의에서 당파성, 당파적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그런데 맑스주의에서 당파성은 과학성과 진리를 배제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맑스는 자본론 서문의 유명한 문장에서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들이 편견없이 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던 것이다. 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부르주아 경제학은 계급투쟁의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오직 고립적이고 불규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쟁취했다. 이 순간부터 계급투쟁은 실천과 이론 모두에서 더욱더 공개적이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와 더불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조종을 울렸다. 그뒤부터는 벌써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문제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의 문제로 되었다. 객관적인 학자들 대신 고용된 앞잡이들이 나타났으며, 진정한 과학적 연구 대신 비양심적인 사악한 변호론이 나타났다.(맑스, 자본론)
자본주의 체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이 고조되자 부르주아 경제학은 과학적 진실을 추구하는 학문(고전경제학)에서 진리와는 상관없이 자본가들을 무조건적으로 대변하는 학문(속류경제학)으로 타락해버렸던 것이다. 맑스는 부르주아 변호론자들이 역사적으로 더 이상 진보적일 수 없는 자본주의 체제와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를 당파적으로 대변하기 때문에 과학성을 상실하고 반동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반면에 노동자 계급은 이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복무하는 중심 계급이기 때문에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철저하게 대변하는 입장은 과학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재벌들의 이해는 철저하게 반사회적이다. 한 줌도 안 되는 재벌과 재벌일가, 재벌분파들은 이윤추구라는 자신들의 협소한 이해를 추구하기 위해서 사회 절대 다수 근로인민들의 이해를 희생시킨다.
제국주의 역시 반동적이고 사악하다. 제국주의는 독점자본의 이해를 폭력적으로, 배타적으로 대변하기 위해 타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와 수탈을 서슴지 않는다. 부르주아와 제국주의의 이해를 대변하는 앞잡이(이데올로그)들은 “사악한 변호론”으로 자신들 체제의 반동성을 은폐하고 체제를 정당화 한다. 제국주의의 사악한 변호론자들은 제국주의에 저항하거나 제국주의 이해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 세력들은 악마화 시킨다.
“문화적 냉전”은 제국주의가 수행하는 “사악한” 프로파간다다. 오늘날 “인권과 인도주의”는 인류 전체를 위한 보편적 구호로 위장하고 미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진영의 반동적인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내거는 대표적인 구호가 되었다. “인권과 인도주의”의 수호라는 기치 뒤에서 제국주의는 반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한 정권교체(레짐 체인지)를 기도한다.
조선, 쿠바 같은 사회주의 정권은 물론이고 리비아, 시리아, 베네수엘라 같은 진보적인 국가들, 혹은 제국주의 이해에 걸림돌이 되는 국가들에 대해 군사적 공세와 함께 경제봉쇄를 하고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취한다.
이러한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의 반동적인 프로파간다에 맞서 전투적으로 싸우는 것은 모든 진보세력의 당면한 임무가 되어야 한다. 이 투쟁에 있어서 진보적 인류의 양심과 지성을 자극하고 역사적인 태도와 진실에 입각한 과학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 당파성과 과학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은 종국적으로 제국주의의 벗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영 논리 비판은 항상 중립과 객관으로 가장한다. 그런데 소부르주아 진영은 진영논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동요와 기회주의를 은폐한다. <노동자연대>는 진영논리를 부정하고 ‘중립논리’로 대체한다. <노동자연대>는 우리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사태, “북한 핵에 대한 태도”, 시리아에서 “‘진보적인’ 국가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라는 인식은 선후가 잘못됐다.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맥락을 생략해버리고 특정한 종파적 목적을 위해 사태를 단순화 시켰다. 우리가 미제국주의를 철저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은 국제정치적 문제에서 맑스주의 당파성과 과학성에 충실하고 역사적 관점을 취한 결과였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경우
김인식이 진영논리를 반대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를 편들고”라며 우리를 비난하는데,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과연 “러시아를 편”드는 것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국내의 글 하나를 소개해 보겠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그 동안 많은 보도와 학문적 분석 작업이 이어져 온 바 있다. 동남부와 북서부, 친서구파와 친러시아파, 미국 및 서구와 러시아와의 대립 등등.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사태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특히 크림 병합과 동부에서의 충돌 등을 중심으로 한 보도 및 설명은 문제의 핵심을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한 주권 국가의 영토 일부를 분리시켜 합병한 러시아의 전격적인 크림 반도 합병은 폭거임이 분명하지만, 크림 합병과 이어지는 무력 충돌 자체에 가려져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논의는 사라져 버렸다. 크림 반도 합병 이후 동남부 지역 러시아계 주민들의 독립 및 러시아로의 합병을 요구하는 무장 투쟁이 이어지는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 …
금번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한 전 지구적인 정치적, 사회적 변동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 재편 전략의 구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중동과 중남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거의 세계의 비중심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들은 이러한 구도 하에서 파악하지 않을 경우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커다란 한계를 노정할 수밖에 없다 … 그러나 더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은 다른 데에 있었다. 무엇보다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 강요가 이러한 갈등의 근본적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한 1991년도에 이미 미국이 주도하는 IMF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은 체제전환국가들에게 경제개방과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요구했다 …
러시아의 가스 중단 사태 등도 우크라이나 경제 침체의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였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유셴코 정권의 국영기업의 사유화 과정에서의 외국인 투자자로의 개방정책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격화였다.(정재원(국민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올바른 시각’, [주례토론회] “체제전환기 주변부 국가 정치경제적 변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 참세상, 2015.09.01.)
이처럼 우크라이나 사태는 여러 측면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본질은 위 글이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미국과 서구가 주도하는 세계자본주의 재편 전략”, “무엇보다 서구의 신자유주의 정책 강요”, “더 중요한 원인은 유셴코 정권의 국영기업의 사유화 과정에서의 외국인 투자자로의 개방정책과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본격화” 등이다.
특히 쏘련 해체를 기점으로 미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는 우크라이나에서 정권교체(레짐 체인지)를 목표로 개입했는데, 우크라이나 내부의 파시스트 세력들을 지원하여 2014년에는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정권을 무너뜨리는 내정간섭을 자행하였다.
‘진영논리’, ‘흑백논리’라고 필자를 비난하는 김인식이야말로 단순논리로 사물과 사건의 핵심과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북한 핵”과 제국주의 본질을 외면하는 ‘중립논리’
<노동자연대>의 “북한 핵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
동아시아에서도 미∙중 간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한반도의 불안정성(북∙미/남∙북 정상회담도 불안정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이 상존∙심화하자, 진보∙좌파 운동 안에서도 진영 논리가 북한 핵에 대한 태도 논란으로 표현되고 있다.(김인식, 같은 글)
사전적 의미로 “지정학 (地政學, 영어: geopolitics )은 지리적인 위치 관계가 정치, 국제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는데,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으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분석하는 것은 아무런 정치적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공허한 논리에 불과하다. 더 나아가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한국전쟁’, 그 이후부터의 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침략적, 패권적 미일 제국주의 동맹과 한미일 반공주의 군사동맹의 본질을 외면하고 “미∙중 간”의 동시적 문제로 바라보는 것도 몰역사적인 ‘중립논리’이다. 제국주의 세력과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조선과 한중일 인민의 투쟁을 “불안정성”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것 역시도 중립논리인 것이다.
“북한 핵에 대한 태도”는 조선이라는 사회에 대한 태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조선이 만든 핵에 대해 취하는 입장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영논리’를 바탕으로 과연 우리는 “북한 핵”에 있어서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가?
그 동안 우리는 ‘북핵 문제’가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모략, 술책을 은폐, 전가하기 위한 순전한 조어(造語)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미제의 핵독점 전략이며 북에 대한 적대시 정책이 본질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인식 하에 투쟁해 왔다. ‘북핵 문제’의 역사적 본질이 그렇다면, ‘비핵화’ 역시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새로운 국면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의 모략, 술책에 맞춘 조어(造語)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침략적, 전쟁광적 본성을 가지고 있는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이야 의당 자신의 본질에 맞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제는 진보를 자처하고 심지어는 급진파를 자처하면서도 실제로는 제국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의 이해관계에 부화뇌동하는 정치세력들인데 이들의 사고, 행태는 준열하게 비판받아야 한다.(“남북, 조미 관계의 급변속에 드러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좌익”적 빈말과 우익적 일탈”, 2018년 7월 1일)
우리는 이러한 확고한 입장에 서서 구체적으로 “핵과 미사일은 결코 제국주의에 맞서거나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 북한 지배자들의 행태는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또 다른 착취·억압 체제임을 보여 주는 강력한 증거다”(김영익, “북한 지배자들의 호전적 대응이 보여 주는 것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본질과 모순”, 레프트21, 102호, 2013-04-13)라든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북한의 로켓발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인공위성 발사체와 미사일 발사체 사이에 본질적 차이는 거의 없다”(성명, “북한 로켓 발사를 핑계로 한 사드 배치는 한반도를 더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노동자연대, 2016년 2월 7일)든지 하는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우리는 이러한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에서 양비론과 중립론은 북을 압살하려고 하는 미제국주의의 이해에 복무할 수밖에 없다고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이것이 바로 ‘진영논리’인데, 바로 이러한 입장들이 <노동자연대>와 김인식의 혐오와 적개심을 불러왔던 것이다.
노동자연대가 북한 핵으로 미국 핵을 영구히 억제할 수 없으며 미국 제국주의에 저항할 진정한 수단(즉, 반제국주의적∙반자본주의적 국제 노동자 운동)이 필요함을 주장한 것을 두고, 백철현은 “중립론”, “양비론”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과잉단순화로는 레닌이 제1차세계대전 개전 때 러시아와 독일 모두에 반대해 혁명적 패전주의를 주장한 것도 중립론∙양비론으로 비칠 것이다.(김인식, 같은 글)
김인식은 “과잉단순화”를 넘어 논리적 오류와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독일 제국주의와 유럽 반동의 봉건적 보루이자 약소 민족을 병합하고 있는 러시아 황제체제와의 전쟁과 미제국주의와 북과의 군사적 대립이 같은 급으로 비교될 수 있는 문제인가? 조선의 인민들은 <노동자연대>의 권고대로 조선과 미국 “모두에 반대해 혁명적 패전주의”를 주장해야 하는가? 김인식은 북의 무장해제를 주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총부리를 ‘자국 지배계급’ 내부로 돌리는 반혁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를 열강이 군사적∙경제적으로 경쟁하는 세계 체제로 보며 ― 즉, 제국주의를 ‘미국의 세계 지배’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구조적 경쟁으로 보며 ― 원칙 있게 반대한다”(김인식, 같은 글)는 입장 역시 제국주의 본질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
“열강이 군사적∙경제적으로 경쟁하는 세계 체제”를 제국주의라고 보는 것은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현상 나열에 불과하다. 그것조차도 일면적이다. “자본주의 강대국”이라는 표현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제국주의가 독점자본에 기초하여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유착, 과잉자본을 수출하고 식민지, 반식민지(현재는 주로 신식민지)를 통해 시장을 개척하고 저임금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자원을 수탈하여 이를 위해 타국을 지배, 억압한다고 하는 레닌의 제국주의 정의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
“자본주의 강대국들 사이의 구조적 경쟁”은 식민지 및 반식민지를 억압, 지배하는 제국주의의 본질적 성격을 희석시킨다. 제국주의 중심에는 미제국주의가 있다. 미제를 중심으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제국주의와 일본 제국주의가 제국주의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제국주의 간 불균등발전에 의해 서로 대립하고 또는 협력하지만 그 중에서 제국주의 중심부에 있는 미제의 패권적 세계지배가 주로 관철되고 있다. 미제국주의 네오콘과 군산복합체가 자행하는 침략 행위와 강도적 및 약탈적 성격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를 자신의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다. 북부사령부(북미), 남부사령부(중남미), 인도태평양사령부(동아시아), 유럽사령부(유럽), 중부사령부(중동 및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사령부(아프리카)가 그것이다. 이들 6대 지역 사령부 외에 핵무기를 관장하는 전략사령부, 우주를 관할하는 우주사령부, 사이버공간에서 작전하는 사이버사령부까지 있다. 그야말로 인류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미군의 작전 구역이다 …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핵위협, 재래식 전쟁, 그리고 비밀공작을 통해 자국의 의지를 관철시켜 왔다. 이를 군사주의라고 한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의 패배와 최근 대중동전쟁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군사주의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전쟁, 또는 전쟁 준비가 미국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요소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가 그것이다. 냉전 이후 전쟁의 상업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 무기를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전쟁 수행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 “미국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국가 미국·1강-①] 미국의 군사주의와 동아시아, 프레시안, 2018.12.15.)
이 글에서 중국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기껏해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등 자국 주변에 대한 미국의 군사 패권을 견제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에서 전쟁과 침략, 특히 북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공세와 경제봉쇄는 거의 전적으로 미제국주의의 침략정책으로부터 비롯된다. 여기에 군국주의 일본과 한국이 동참하고 있다. ‘북핵’을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에 대해 대국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한다는 쌍중단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것을 뜻하는 쌍궤병행 입장은 미제의 침략 정책에 비해 훨씬 더 타당성을 가지고 있고 일정 정도의 진보성을 가진다.
이러한 역사적 문제를 두고 “특정 제국주의에 맞서 다른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는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역사적 태도와 구체적인 분석이 결여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이 역시도 ‘중립논리’의 일환으로 미제국주의의 침략 행위와 강도적 및 약탈적 성격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리아에서 제국주의 레짐 체인지 기도가 “민중혁명”?
시리아 문제에서 <노동자연대>가 취하는 ‘중립논리’는 또 어떠한가? 중동에서 시리아 문제는 리비아 문제의 연속이기도 하다. 리비아와 시리아 문제 역시 복합적인 문제지만 그 본질은 미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가 자행하는 정권교체(레짐 체인지) 문제이다. 제국주의 진영은 최근에는 ‘내전’이라는 형식으로, 또는 내전이라는 형식으로 위장하여 정권 교체를 시도한다. 리비아에서 미제국주의는 내전을 조장, 지원하여 카다피 정권을 붕괴시키고 여세를 몰아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붕괴시키려 했다. 리비아, 시리아에서 미제국주의와 나토제국주의를 규탄하고 카다피 정권과 시리아 정권을 옹호하는 것은 진보세력의 최우선적인 임무여야 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런데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것”을 ‘진영논리’로 규탄하는 <노동자연대>가 이 ‘사태’에서는 과연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 보자.
유럽을 향하는 난민들이 리비아에서 현지 무장세력에 의해 노예로 팔리고 있다. CNN이 입수한 영상에 따르면 성인 남성이 수십만 원에 거래된다.
주류 언론이 말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무수한 돈과 군함을 동원해 이런 야만을 잉태한 장본인이 바로 유럽연합이라는 것이다 …
현재 리비아는 서방이 2011년 혁명에 개입한 이래 제대로 정부도 구성하지 못하고 각종 무장세력들이 난립하고 있다.(김종환, “리비아에서 노예 시장이 생기다 서방 제국주의가 야기한 21세기 야만”, <노동자연대> 229호, 2017-11-19)
<노동자연대>는 제국주의의 개입에 의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고 최근에는 리비아에서 노예시장이 생기고 “정부도 구성하지 못하고 각종 무장세력들이 난립”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애초에는 그 성격을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려 하는 “민중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그 민중혁명이 서방의 개입에 의해 변질돼서 오늘날의 참담한 사태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사에서 진보적인 민중혁명이 단 한번이라도 외세의 개입을 요청한 적이 있었던가? 1871년 파리꼬뮌, 1894년 갑오농민전쟁, 1948년 제주4.3, 1980년 광주항쟁 등 인류의 모든 진보적 “민중항쟁”은 외세에 맞서 저항했고 지배계급은 외세와 결탁하여 민중항쟁을 진압했다. 그런데 <노동자연대>는 한편으로는 초기 “민중혁명” 세력들의 “순수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성격 규정을 연장하여 카다피 정권의 몰락 이후에도 “반란군”을 사실상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리비아 카다피의 42년 독재가 최후의 순간에 직면했다.
반란군은 수도 트리폴리로 행진하면서 카다피 정권을 상징하는 깃발을 내렸다. 언론 보도를 보면, 수도의 시민들은 반란군 대열을 환영했다.
카다피의 몰락은 축하할 일이다. 그는 올들어 세 번째 무너진 아랍 독재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 리비아 반정부 투쟁의 성격은 이 투쟁에 영감을 준 튀니지나 이집트 혁명과 비교해 상당히 다르다. 그것은 서구 열강들이 리비아 투쟁을 이용했기 때문이다.(주디스 오어, “카다피 몰락을 환영하자. 그러나 서방을 믿지는 말자”, 번역 김용욱, 레프트21 63호, 2011-08-23)
어떻게 이렇게 혼란스럽고 현실에서 모순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가? 카다피 정권 몰락과 카다피 사망은 미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의 내전 조장과 침략에 의해 자행된 것이었다. 카다피 정권이 제국주의 세력의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받는 ‘반란군’들에 의해 무너지면서 리비아는 제국주의의 사실상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수많은 난민이 창궐하고 리비아 인민들이 노예로까지 팔려가는 상황까지 처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연대>는 현실에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양자를 분리하여 카다피 몰락을 환영하면서 “서방을 믿지는 말자”고 주장하고 있다. 리비아 사태의 본질을 제국주의의 정권교체(레짐 체인지) 기도로 보지 않고 “민중혁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제국주의의 성공을 “환영”하고 “축하”하는 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자연대>는 실제로는 제국주의의 대변인 노릇을 하면서도 “서방을 믿지는 말자”며 주관적으로는 제국주의를 경계하는 입장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는 객관적으로는 제국주의의 이해에 동조하고 있으면서도 주관적으로는 자신들을 맑스주의로 자처하는 <노동자연대>가 늘상 범하는 정치적 희비극의 일종이다. 이는 반동적인 주관적 관념론의 일종이다.
<노동자연대>의 이러한 반동적인 정치적 본질이 우연이 아닌 것은 리비아 사태에서 보였던 태도를 시리아에서 고스란히 반복하고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근래 시리아의 세력 균형이 바사르 알-아사드와 그 정권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으로 서방 좌파의 한 주요 분파도 특정 세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결정적으로 기울어졌다.
예를 들어, 널리 알려진 타리크 알리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시리아에서의 투쟁은 “재식민지화를 위한 한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비록 타리크 알리를 매우 존경하고 애정을 갖고 있지만 이 주장은 허튼소리다 …
시리아에서 벌어지는 전투에서 즉자적이고 필사적인 무장 봉기의 모든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다. 반란세력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이렇게 빨리 군사화한 것이 정치적으로 현명한 것이었는지를 두고 우리가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
이집트 혁명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행동이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아쉬움을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리아에서의 저항이 이토록 빨리 내전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시리아 저항의 뿌리가 대중 반란이라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
시리아 혁명에 반대하며 천박한 “반제국주의”를 들먹이는 서방 좌파들 역시 자신들의 정치적 파산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알렉스 캘리니코스, “시리아 혁명은 민중에 뿌리박고 있다”, 레프트21 86호, 2012-08-02)
이처럼 리비아에서 범했던 <노동자연대>(혹은 그 모조직인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심각한 오류가 시리아에서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노동자연대>는 시리아 ‘반란군’들을 “시리아 혁명”으로 간주하며 “중동의 민중 반란의 일부”(차승일, “시리아 혁명에 대한 올바른 입장은 무엇인가”, 레프트21 90호, 2012-10-06)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거듭된 오류는 이들이 단순한 정치적 판단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의 이해에 결과적으로 동조하는 세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시리아 반란군들이 “전투에서 즉자적이고 필사적인 무장 봉기”를 벌이며 “이렇게 빨리 군사화한 것”은 바로 미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가 이들에게 무장력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캘리니코스는 시리아 사태를 “재식민지화를 위한 한 과정”이라고 간주하는 타리크 알리의 입장을 “허튼 소리”로 간주하고 있다. 캘리니코스는 시리아 내전의 본질이 “민중혁명” 따위가 아니라 제국주의 진영이 시리아 내에서 내전을 불러일으켜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려는 시도를 부정하고 이를 “시리아 혁명”으로 간주하여 지지함으로써 제국주의의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캘리니코스와 <노동자연대>는 이로써 “자신들 정치적 파산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캘리니코스와 정반대로 미셀 초스도프스키는 이 전쟁을 “시리아: 리비아에 이은 나토의 ‘인도주의’ 전쟁?, 글로벌 리서치, 2012년 2월 19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는 서방 언론들이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철저하게 왜곡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2011년 3월 중순 이래 서구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은밀한 지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그룹은 정부건물에 대해 방화행위 등의 테러공격을 자행했고, 용병을 포함하여 훈련된 사수와 저격수들이 무고한 시민은 물론 경찰과 무장병력을 겨냥했다. 아랍연맹 사찰단 보고서에서 요약되었듯이, 이 무장한 용병집단들이 시민들을 살해했다는 많은 증거가 있다.”(미셸 초스도프스키, 시리아: 리비아에 이은 나토의 ‘인도주의’ 전쟁?, 글로벌 리서치, 2012년 2월 19일, 미제국주의가 시리아 전복에 나섰다! – ‘살바도르 옵션’, 시리아 전복 작전명 – 노동자정치신문, 2012-07-30)며 반란군들이 학살을 자행하고 정부군에 전가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미셸 초스도프스키는 “시리아- 나토의 다음 “인도주의적” 전쟁?, – 글로벌리서치, 미셸 초스도프스키 글 서문, 2012년 2월)에서 시리아 반란군들이 즉각적으로 무장을 제공한 것이 미국CIA와 영국 특수부대라는 것을 영국 언론을 인용하여 밝히고 있다.
영국 특수부대는 자유시리아군 요원들을 만났다 … 이 첫 접촉의 분명한 목적은 반군을 강화하고 추가적인 훈련 작전의 길을 여는 것이었다 … 더 최근의 보도들은 영국과 프랑스 특수부대들이 터키에 있는 기지에서 자유시리아군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몇몇 보도는 훈련은 리비아와 북부 레바논 몇몇 곳에서도 실시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영국 M16 공작원들과 UKSF (SAS/SBS) 요원들은 도시 전투에서 반군들을 훈련시키고 무기와 장비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미국 CIA 공작원들과 특수부대는 반군들에게 통신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어진다.(Elite Forces UK, 2012년 1월 5일)
심지어 <노동자연대>는 제국주의 진영이 기획∙연출한 가짜 인권부대인 ‘화이트 헬멧’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시리아 혁명과 내전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는 또 다른 다큐멘터리 〈홈스는 불타고 있다〉(탈랄 데르키 감독, 2013년, 87분), 〈화이트 헬멧: 시리아 민방위대〉(올란도 폰 아인지델 감독, 2016년, 40분)도 추천한다(박이랑 노동자연대 회원, “다큐멘터리 〈시리아의 비가(悲歌) 들리지 않는 노래〉 시리아 혁명과 반혁명, 내전의 현실을 생생히 보여 준다”, <노동자연대>, 233호, 2017-12-21)
그러나 ‘화이트 헬멧’의 진실은 무엇인가?
화이트 헬멧이 시리아 반군을 위해 조작한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바로 폭격으로 인해 피범벅이 된 채 먼지를 덮어 쓴 알레포 꼬마 다크니쉬였다. 2017년 6월 ‘알레포 꼬마 다크니쉬’ 아버지가 우리 아들이 시리아 반군에서 이용당해서 사진 찍혔다고 직접 인터뷰를 했고 자신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 UN조사단도 화이트 헬멧과 국제 엠네스티가 계속 해오던 거짓말과 달리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 관련된 증거가 없다고 보고서를 발표했다.(“시리아 반군의 편에 선 화이트 헬멧, 화이트 헬멧의 보고를 그대로 전달하는 국제 엠네스티 등은 서구 제국주의와 중동 독재 국가들의 전쟁 도구들이다”, 정호영, 출판노동자, 감옥인권운동 <해방세상>, 2018년 6월 제22호)
저명한 독립적인 언론인인 에바 바틀렛(Eva Bartlett) 역시도 시리아에서 제국주의 진영과 언론들이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프로파간다를 수행하고 있고, 테러리스트들과 연관된 사기꾼들인 화이트 헬멧이 고아인 아이들을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연출된 사진들을 찍고 있다고 폭로했다.(Eva Bartlett on the White Helmets Hoax & the Information War against Syria)
시리아 ‘내전’의 실체는 위키 리크스가 폭로했던 것처럼, 미국 대선에서 논란이 되었던 힐러리 대통령 후보의 국무장관 시절 이메일 유출 사건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오바마 정권 당시 클린턴 국무부장관은 2009년-2013년 사이에 자신의 집에서 개인 이메일 서버를 운영하여 보관해오다가 해킹으로 이 자료가 유출되었는데 힐러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시리나 내전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메일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스라엘이 이란의 증가하는 핵 능력에 대처하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은 시리아 국민들이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힐러리는 계속해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중동에서 이스라엘의 핵 독점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란이 핵 무기를 얻게 되는 순간, 시리아 또한 핵 무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메일은 다음 문장들로 끝을 맺고 있다. “정리하면, 백악관은 이란으로 인해 이스라엘에 증가하고 있는 긴장을 덜기 위해 시리아에 옳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협박과 무력의 사용으로 아사드와 그의 가족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 해야만 시리아 독재자는 마음을 바꿀 것입니다.(컨스피러시 뉴스, “힐러리의 유출된 이메일은 이스라엘을 위해 시리아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적고 있다”, 2016년 3월 22일)
최근 미국 정부에게 불리한 기밀 문건을 공개한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안 아산지가 2,487일의 망명 생활 만에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됐는데, 미제국주의는 어산지가 미국 국익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그에게 ‘간첩법’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유명한 내부 폭로자 어산지가 폭로한 비밀자료에는 미제국주의의 추악한 실체가 수십만 건이 들어있다.
시리아 개입 관련하여 폭로된 힐러리 이메일은 미제의 시리아 개입의 목표가 최종적으로는 이란을 향하고 있으며, “시리아 국민들이 바샤르 아사드 정권을 전복하”는 내전을 조장하는 것이며, “협박과 무력의 사용으로 아사드와 그의 가족의 생명을 위험에 처하게”하는 것이다. 리비아 카다피 정권 전복 방식과 똑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미제국주의와 유럽연합 제국주의의 리비아, 시리아에 대한 자주권 말살을 “민중혁명”으로 간주하고 환호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는 <노동자연대>가 얼마나 제국주의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지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부딪치는 사안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 결국 <노동자연대>의 진영논리 부정은 중립과 양비론으로 위장하여 제국주의의 편에 서는 것이다. (다음에 계속) 노/정협
이 기사를 총 1009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