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 반권위 자치주의자들의 유행상품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진은 반쏘비에트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Emma Goldman)
1. “아래로부터” 길을 잃고 헤매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들’
우리는 “비속하기에 비속하게 보는, 반레닌주의 비평가들에 대하여 – 오발탄이 되어 버린 변혁재장전의 기회주의 재장전(노동자정치신문, 2015년 11월 27일)”과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에 대한 변질적 이해 – 전도(顚倒)된 인식이 낳은 사회주의 전도(前途)의 봉쇄(노동자정치신문, 2016년 8월 8일)”라는 글을 통해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의 번역 글과 전지윤의 글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전지윤은 최근에는 <노동자연대>를 비판하며 “길을 잃고 헤매던 레닌의 뒤를 그대로 쫓을 것인가(전지윤,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 2017.5.27.)” 등의 글을 통해 지난 맑스코뮤날레에 제출된 정성진 교수의 글을 비판하는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레닌주의를 확고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자본주의론’으로 악명 높은 반쏘반공 소부르주아 ‘맑스주의’ 세력인 <노동자연대>가 레닌과 레닌주의를 옹호하는 현실이 기묘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적 입장으로 레닌주의와 쏘련 사회주의를 비방하는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와 전지윤은 더욱 더 심각하게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물론 전지윤의 주장에서 유일하게 올바른 입장은 “‘일국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1915~17년 레닌에 의해 이미 정식화되었다’는 정성진 교수의 지적을 살펴보자. 스탈린이 주장한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몇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혹은 심지어 단 하나의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가능하다’는 말이 사실은 레닌이 이미 1915년에 한 말이라는 것이다.”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이들의 입장에 대해 “‘노동계급 스스로의 자기 해방’,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노선은 앞에서 말했듯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중앙집중제, 전위당 노선에 반대하여 자치, 분산적 계획, 평의회주의 노선을 옹호하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노선은 우리가 이미 “러시아 혁명 100주년, 반쏘반공주의적 역사 왜곡은 부르주아 이해에 봉사한다(노동자정치신문, 2017년 2월 22일)”라고 비판했던 장석준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장석준은 이 글에서 생디칼리스트들의 “공장위원회별 노동자통제”를 지지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전국적인 회계와 생산의 중앙집중적 통일을 주장하는 레닌과 혁명 러시아, 그리고 스탈린 시대의 쏘련을 ‘국가사회주의’라고 비방했다.
우리는 구체적인 역사적 문헌을 통해 장석준의 주장이 “아주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방식의 역사왜곡”임을 증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여기서 쟁점은 ‘노동자통제’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자 통제를 관리, 감독하는 전국적인 주체가 누구냐의 문제다. 개별 공장별로의 분산적이고 개별적인 생산과 분배에 내맡겨둘 수 없다. 그것은 무정부주의가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과 분배의 고유한 특성이 바로 무정부성과 무계획성인데 그것을 철폐한 사회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답습할 수는 없는 것이다(위의 글).
장석준의 주장이나 전지윤의 주장은 하나도 다를 게 없기에, 이에 대한 우리의 비판도 동일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전지윤의 글, “길을 잃고 헤매던 레닌의 뒤를 그대로 쫓을 것인가(전지윤,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 2017.5.27.)” 역시 기존에 우리가 비판해 왔던 입장과 동일한 글이다. 우리는 이제 레닌뿐만 아니라, 엥겔스와 맑스의 글을 통해 이 입장을 비판할 것이다.
2. 반혁명 분자들을 편드는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들’
그런데 맑스주의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켰던 레닌과 그의 사상인 레닌주의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아니면 일정한 혁명적 사상적 기치가 없이 휩쓸리며 동요하는, 그리하여 오직 무정부주의적 사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전지윤과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그런데 “권력에서 배제된 야당이기에, 당시 노동자들의 반대와 저항은 주로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에 의해 대변됐다. 그런데 볼셰비키는 1918년부터 소비에트에서 이들을 밀어내갔다.”(위의 글)라는 글에서 봤듯이, 1917년에는 임시 정부에서 자본가정부를 옹호하면서 ‘빵과 토지와 평화’라는 러시아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배신하고,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반혁명 세력으로 넘어간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가 “노동자들의 반대와 저항”을 대변하는 세력으로 볼 정도로 전지윤과 <다른 세상을 향한 연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리고 “도시 노동자에게 더 인기있는 볼셰비키가 더 많은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도시에서는 2만5천 명 당 1명, 농촌에서는 12만5천 명 당 1명의 대표자를 뽑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생산적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에게서 투표권과 참정권을 박탈했다.(위의 글)”며 부르주아와 짜리즘의 잔존 세력들, 반혁명 분자들에게 투표권과 참정권을 박탈하고 가장 선진적인 도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혁명적 조치들을 “볼셰비키에게 유리하게 설계됐다”고 비난할 정도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이들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만 주장할 줄 알았지, 혁명의 구체적인 현실, 불가피한 조치들을 부정하고 반혁명적 정치세력들에게조차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조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무정부주의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와 자본가들, 반혁명 분자들에게 투표권과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본질은 아니지만, 이러한 조치가 없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유지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위 조치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본질이 아니기에 쏘련 사회가 안정된 이후에는 이 제한은 사라지고 쏘련은 역사상 최초로 가장 민주적인 보통선거제를 실시했다.
전지윤 스스로가 무정부주의의 입장을 통해 자신의 근거를 정당화 하는 것을 볼 때도 그 주장이 무정부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전지윤은 볼셰비키에게 반대했던 아나키스트, 무정부주의자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주장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무정부주의적 입장의 정당화이지만.
러시아 혁명의 아래로부터 요소를 환영했지만, 볼셰비키의 집권을 직접 경험하고 커다란 실망을 하게 된 반전운동가이자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만은 이렇게 돌아본다.
“공산주의 정당은 정부 실권을 충분히 잡았다고 느끼자마자, 대중 운동의 범위들을 제한해가기 시작했다. … 새로운 독재 전(정)부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모든 정당과 모임은 사라져야 했다. 아나키스트들과 좌파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첫 번째 대상이었고, 그 다음은 멘셰비키와 우파에 속한 다른 정적들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만의 의견을 갖고자 갈망했던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되었다. 모든 독립적인 단체들의 운명도 비슷했다. 그들은 새로운 국가의 욕구에 복종하던지 아니면 다 같이 파괴되었다. 소비에트가 그랬고 노동조합들과 협동조합들이 그랬다. 이 세 가지는 혁명의 희망을 실현할 위대한 요소였다.”(<나의 러시아 2년>)
따라서 분명한 것은 그 길을 그대로 쫓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1917년 혁명에서 등장했던 아래로부터의 요인들을 더욱 강화·발전시키는 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피억압 대중을 혁명의 주체로 만들고, 그들 자신의 자치기구에 권력이 쥐어져야 한다. 생산과 사회의 민주적이고 자주적 관리는 어떤 이유로도 가로막히지 말아야 한다(전지윤, 같은 글).
엠마 골드만의 주장은 심각한 왜곡과 일방적인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조합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는 행정에의 참가라는 실제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또한 달성된 성공이나 정정된 오류에 엄밀히 입각하여 이 경험을 더욱 발전시키려 하지 않고, 경제관리의 기관들은 ‘선출하는 생산자대회들 혹은 생산자대회’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 그리고 우리는 소비에트 국가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경제형태들의 건설이라는 실제의 업무를 계속하고 시정해가는 것이 아니라, 이 업무에 대한 쁘띠부르조아적이고 무정부적인 파괴를 목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파괴행위는 부르조아 반혁명의 승리로 귀결될 뿐이다(V.I 레닌, “러시아공산당 제10차대회의 결의. 우리 당내의 생디칼리즘적, 무정부주의적 편향에 대하여의 최초의 초안”,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노동자의 사상> 제1호에서 재인용).
아나키스트들은 레닌이 비판한 것처럼, “행정에의 참가라는 실제의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소비에트 국가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경제형태들의 건설”을 “계속하고 시정해가는 것이 아니라”, “쁘띠부르조아적이고 무정부적인 파괴를” 통해 “부르주아 반혁명” 세력들에게 복무하기 때문에 당에서 스스로 이탈하거나 축출 당했던 것이다.
“사라져야 했던”, “새로운 독재 전(정)부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모든 정당과 모임은” 주지하듯, 쏘비에트 권력에 반기를 들고 제국주의과 협력해 국내 반혁명 분자들과 함께 파괴 책동을 일삼았던 세력들이었다. 이들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쏘비에트 권력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한 반혁명 분자들에 의해 분쇄돼 버렸을 것이다.
“아나키스트들과 좌파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첫 번째 대상이었고, 그 다음은 멘셰비키와 우파에 속한 다른 정적”이 러시아 10월 혁명 이전에 반혁명 세력들이거나 이후 반혁명 세력들과 결탁했다는 점이 분명하기에 이들이 “사라져야 했”던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세계 진보적 인류의 희망이었던 10월 혁명 세력들이 사라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독립적인 단체들의 운명”은 어떠해야 했는가? 혁명을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 특히 내전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러시아 혁명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는 시점에서 혁명사수와 혁명 파괴도 아닌 중간의 “자신만의 의견”을 가진 “독립적인 단체”들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는가?
“혁명의 희망을 실현할 위대한 요소”, “소비에트가 그랬고 노동조합들과 협동조합들”은 새로운 대중국가의 기초로서, 거대하게 발전하지 않았는가? 오늘날 무정부주의자들이 자본주의 내에서의 ‘협동조합 운동’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전국적으로 협동조합이 조직됐던 쏘련을 반공주의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위선적 잣대가 아닌가?
3.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로부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끌어낸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들’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 가장 극심하기는 했지만, 최근에 와서도 다시 유행하는 각종 ‘신좌파’ 사상, 무정부주의 조류의 대표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쏘련이나 현실 사회주의의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실사구시적으로 살펴보려는 대신에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를 중상모략한다.
“노동계급 스스로의 자기 해방”,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노선을 내세워 ‘프롤레타리아 독재’,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제’, ‘전위당 노선’을 반대한다. 이들은 자치, 분산적 계획, 평의회주의 노선을 옹호한다. 이는 유고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났던 ‘시장 사회주의 노선’으로 귀결되며 자본주의에 굴복하는 노선이다. 지도자와 대중을 대립시키며 이는 더 나아가 전위정당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들이 자주 예로 들어 비난하는 것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의 이른바 ‘외부로부터 테제’이다.
첫째, “레닌이 노동자계급의 자기활동, 자기조직에 기초한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개념을 일관되게 견지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정성진 교수의 주장을 보자. 정성진 교수는 카우츠키의 영향력이 뚜렷한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의 관점이 명백히 ‘아래로부터 사회주의’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사회민주주의 의식은 노동자들 외부로부터만 도입될 수 있다. … 노동자계급은, 자신들의 노력만으로는, 단지 노동조합 의식만을 발전시킬 수 있다. … 사회주의의 이론은 … 교육받은 유산 계급의 대표자들, 지식인들이 정교화한 철학, 역사 및 경제이론으로부터 생겨났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전지윤, “길을 잃고 헤매던 레닌의 뒤를 그대로 쫓을 것인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의 위 문장을 ‘외부로부터의 테제’로 명명하고 이를 비난하는 입장들은 대개 전위정당 노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 그리고 여기에 기초해 만들어진 쏘련 사회주의를 부정하기 위한 근거로 삼는다. 대표적으로 ‘워너 본펠드’는 레닌의 저서와 같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당의 지도와 전위정당을 부정하는 근거로 이를 인용했다. 이 책을 국내에서는 소부르주아 무정부주의 사상인 ‘자율주의’ 전도사인 조정환이 번역, 출판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대단히 민주적인 주장 같지만 사회주의 생산과 계획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하여 발전시키고 새로운 사회를 운용하는데 도움이 되는 얘기는 없이 뜬 구름 잡는 얘기로 일관한다. 그럼에도 이 주장은 당의 지도를 반대한다. 올바른 지도와 그 지도의 조직적 사상적 총아인 혁명적 당을 반대 또는 폄하한다. 중앙집중화된 계획을 부정한다.
레닌은 “지도자와 대중”, “당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분리하는 ‘좌익 공산주의’ 세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비판은 한국사회에서도 유행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경향, 신좌파적 경향, 트로츠키주의적 경향 등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당 독재인가 아니면 계급독재인가, 지도자들의 독재(당)인가 아니면 대중들의 독재(당)인가?”라는 하나의 문제 제기는 이미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끝없는 사고의 혼란을 증명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완전히 특별한 무엇인가를 발명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현명해지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 당 원칙과 당 규율의 거부―이것이 반대파가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부르조아지의 이익을 위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는 것과 똑같다. 이것은 바로 내버려두면 필연적으로 어떤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도 박살내 버릴, 저 쁘띠부르조아적 분열과 동요로 귀결되며, 또한 지속성, 통일 및 조직적 행동에 대한 저 쁘띠부르조아적 무능으로 귀결된다. …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 투쟁 속에서 단련된 철의 당 없이, 일정 계급의 모든 정직한 사람들의 신뢰를 누리는 당 없이, 대중의 분위기를 지켜보고 그것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당 없이, 그와 같은 투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레닌, 공산주의에서의 “좌익” 소아병, 김남섭 옮김, 돌베개, 39쪽-43쪽).
전지윤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주장은 “당 원칙과 당 규율의 거부”, “쁘띠부르조아적 분열과 동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레닌은 가장 저돌적으로 소비에트의 민주적 승인 없이 10월 봉기를 추진한 장본인이다.”라면서 레닌을 쿠데타의 주범으로 매도하여 러시아 혁명을 부정한다. 이는 결국 반볼셰비키 선전으로 말년을 마감한 카우츠키나 러시아 내의 반혁명 분자들과 제국주의 진영과 같은 입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레닌은 당시 노동자 계급은 역동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데 반해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당 내의 경제주의자들이 맑스주의를 부정하고 경제주의에 빠져 당건설을 방기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위 글을 썼다.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의 한 문장을 뽑아서 위와 아래, 당과 대중을 대립시키며 ‘외부로부터의 테제’라는 낙인을 찍는 방식 자체가 역사적으로 노동계급 운동의 혁명적 발전을 가로막는 의도로 사용됐다.
전지윤 정도로 반혁명 분자들을 편드는 노골적인 주장은 아니지만 <사회주의자>도 그러한 세태에 편승하고 있다.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의식(성두현, <사회주의자>, 2017년 7월 31일)”에서도 “노동자계급은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며, 사회민주주의에 의해 수행된 십여 년의 사업으로 이러한 자발성은 상당 부분 의식성으로 변화되었다.”라며 레닌의 입장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이론은 … 교육받은 유산 계급의 대표자들, 지식인들이 정교화한 철학, 역사 및 경제이론으로부터 생겨났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는 주장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
레닌은 《맑스주의의 세 가지 원천과 구성요소》에서도 맑스주의가 아담 스미스나, 리카도의 고전파 정치경제학, 헤겔과 포이어 바흐 등 독일 고전철학, 프랑스 공상적 사회주의를 발전시켜 성립된 과학의 총아라고 밝혔다. 과연 이 주장 어디에 오류가 있는가? 과연 평생을 중노동에 시달리고 과학적 사고를 끊임없이 차단당하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혼자서 맑스주의 과학적 사상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 이 점은 지식인들한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연 어느 지식인이 자발적으로 맑스주의 사상을 도입할 수 있겠는가?
맑스나 엥겔스 같이 인류의 가장 위대하고 천재적인 혁명적 인텔리겐차가 있었기 때문에 혁명적 맑스주의가 창안될 수 있었다. 물론 맑스와 엥겔스 역시도 당시의 가장 발전한 사상들을 총체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비판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에 과학적 사회주의 사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레닌의 주장은 그러한 의미였다. 거기에는 노동자에 대한 폄하나 무시가 하나도 담겨져 있지 않다. 오직 레닌의 주장을 ‘외부로부터 테제’라고 꼬투리를 잡아 비난하려는 자들에게만 그 주장이 비난받을 요소가 있는 주장이다.
성두현은 1905년 이후에 레닌은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의식에 이를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며 입장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성두현은 레닌이 이 글을 쓴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글 일부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선택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1905년 1월 제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레닌은 그해 11월 노바야지즌(Novaya zhizn)이라는 신문에 “당의 재조직화”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썼다. 레닌은 이 글에서 혁명의 발발이라는 정치적 급변 상황 속에서 당의 비합법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합법, 반합법 기구를 확장하여 폭넓게 혁명사업을 전개하고 당을 더 대중적 성격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 내에 비사회주의적 노동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와서 당의 전위적 성격이 약화되고 종국에는 당이 해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레닌은 10년에 걸친 당의 적극적인 정치사업과 혁명적 상황의 도래로 당원이 되었고 당원이 되고자 하는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미 당 내에 혁명적인 당강령이 확립돼 있고, 당의 규율과 조직적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던 것이다.
일반 노동자 대중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총화인 혁명당에 의해 “수행된 십여 년의 사업으로” 의식적으로 변화하게 되어 이미 당에 가입하고 앞으로 가입하려고 하는 혁명적 노동자 중핵들이 과거에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었다는 것이다.(주: 위 부분은 성두현이 인용한 레닌의 “당의 재조직화”를 새롭게 검토하고 나서 8월 7일에 수정한 부분이다. 이를 통해서도 성두현이 얼마나 레닌을 왜곡하고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성두현은 “1905년도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주의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되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의식에 이를 수 있는 노동자계급이 보다 분명한 의식성을 갖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역할로 제한된다. 그리고 이에 연동되어 당의 역할 역시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과연 성두현에게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사회주의 의식”은 무엇인가? 레닌에게 그것은 초보적인 사회주의 의식일 것이며, 그것은 여전히 “노동조합 의식”의 범주를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1902년이나 1905년 이후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레닌은 평생을 당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이다.
성두현에게 노동자 계급의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사회주의 의식”은 과연 “교육받은 유산 계급의 대표자들, 지식인들이 정교화한 철학, 역사 및 경제이론”을 정립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성두현은 노동자 대중의 자발성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레닌이 비판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의식”을 “노동조합 의식”, 정도로 간주하여 경제주의적으로 사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성두현은 사회주의자와 당의 역할을 “결정적인 것이 아니며”, “제한”할 것을 주장한다. 심지어 성두현은 레닌의 ‘외부로부터의 테제’를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만약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자들의 도입에 의해서만 사회주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면 이는 온전한 의미에서 노동자계급을 혁명과 해방의 주체로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서 맑스주의의 기본명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두현은 이어서 “마치 사회주의 의식이 사회주의자, 당의 실천에 의해서만 노동자계급외부로부터 도입될 수 있다는 대리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 관념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맑스주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고 제2인터내셔널 시기에 형성된 잘못된 사회주의자의 역할, 당의 역할론이다.”라고 주장한다.
레닌은 그 글에서 “사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현재의 운동이 갖는 강점은 대중의(주요하게는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각성이고 약점은 지도자인 혁명가들의 창발성과 의식성의 부족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레닌, 《무엇을 할 것인가?》, 최호정 옮김, 박종철 출판사, 36쪽)라며 대중의 각성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당시 경제주의에 빠져 있는 혁명가들을 신랄하게 비난하기조차 한다.
레닌은 바로 앞(같은 책, 35쪽)에서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가 될 것이다.”라며 노동자 계급의 거대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레닌의 주장이 “대리주의”이고 ‘엘리트주의”인가? “사회주의자, 당의 실천에 의해서만” “외부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이 도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중과 대중투쟁을 무시하는 주장인가?
성두현은 사회주의 사상의 이론적 뿌리를 주장하는 문제를 대중과 대중투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문제로 교묘하게 뒤섞어서 레닌의 사상을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레닌의 사상은 “맑스주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까지 중상모략한다. 그런데 맑스와 엥겔스는 대중과 공산주의 전위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실천적으로는 모든 나라의 노동자 정당들 중에서 가장 단호한 부분, 언제나 운동을 추동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부분이다.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조건들, 진행 및 일반적 결과들에 대한 통찰을 여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앞서서 가진다(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주의당 선언>, 박종철 출판사).
대중들을 “이끌어 나가는”, “통찰을 프롤레타리아 대중에 앞서서 가”지는 것이 공산주의 정당이라는 맑스와 엥겔스의 주장에 대해서도 “맑스주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중상모략을 일삼아 보라!
그런데 성두현은 “맑스는 물신성과 자본주의적 현상형태의 분석을 통해 이것들이 노동자계급의 의식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것을 폭로하였다. 사회주의자들과 당은 이러한 방해물을 제거하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실천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의식은 불완전하고 불철저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의식이 보다 분명하고 철저한 의식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사회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이 필요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과학, 과학적 사회주의이다. 과학적 사회주의의 도움으로 노동자계급은 보다 명확한 형태의 사회주의 의식에 이를 수 있게 된다.”고까지 주장한다.
참 이상하다! 성두현의 위 주장은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강조하고 실천했던 내용들 아닌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물신성의 과학적 폭로는 바로 “교육받은 유산 계급의 대표자들, 지식인들이 정교화한 철학, 역사 및 경제이론으로부터 생겨”난 것이 아닌가? 과연 잉여가치, 화폐, 자본, 자본을 만들어 낸 노동자의 노동 성과로부터의 소외와 노동을 하지 않는 자들의 지배. 이러한 자본주의 물신성에 대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의식에 이를 수 있”는가? 성두현은 왜 지금까지 레닌의 주장을 터무니없이 비방해 왔던 것인가?
성두현은 자신의 글의 결론 부분에서 “레닌의 1905년 이후의 견해는 경험주의적인 현상 수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1905년 이전의 견해와 철저히 단절하지 못하였다. 당과 수령을 우상화하는 스탈린주의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발생 악화된 것이다.”라며 비약에 비약을 거듭한다. 성두현에 의하면 “당과 수령을 우상화하는 스탈린주의”는 바로 레닌의 사상적 “토대 위에서 발생 악화된 것이다.”
결론에 가서는 레닌을 근거 없이 모략하는 의도가 스탈린과 스탈린 시대의 쏘련 사회주의, 현실 사회주의를 비난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실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좌파’들의 “반공반쏘주의적” 수법, 레닌을 터무니없는 근거로 비난하고 그 비난 대상의 정점에 스탈린이 있고 스탈린에 의해 사회주의가 왜곡됐다며 쏘련 사회주의를 중상하는 상투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물신성을 비판하면서도 레닌과 사회주의에 대한 비난을 통해 자본주의의 반공주의 물신성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4. 자치와 반권위로 무장한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들’
‘무정부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권위와 중앙집중을 부정하고 자치와 자율, 분산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레닌의 예로 들어 이들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들이 레닌과 레닌주의, 볼셰비키를 부정 또는 폄하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는 엥겔스의 “권위”를 빌리려고 한다. 엥겔스는 1872년 이탈리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반권위주의 자치의 신봉자들인 무정부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 이것이 유명한 엥겔스의 “권위에 관하여”라는 글이다. 엥겔스가 무정부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글을 통해 엥겔스의 거대한 정치적 권위를 확인해보자!
사회 혁명이 일어나, 오늘날 자신의 권위로 생산과 부의 유통을 관리하고 있는 자본가들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고 가정해 보자. 전적으로 반권위주의자의 관점에 서서, 토지와 노동 도구가 그것을 사용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부가 된다고도 가정해 보자. 권위가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그 형태만 바뀔 것인가? 보기로 하자. …
대공장의 기계 자동화는, 노동자를 고용하는 소자본가들도 이제까지 결코 그렇게 하지 못했을 정도로 훨씬 더 전제적이다. 적어도 노동시간과 관련해서는, 이제 이런 공장들의 대문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을 수도 있다; 들어가는 사람은 자치를 모두 놔둘지어다! 인간이 지식과 창조적인 재능으로 자연의 힘을 굴복시키기는 했지만,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한, 자연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사회 조직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전제주의에 놓이게 만듦으로써 인간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대공업에게 권위를 폐지하기를 바라는 것은 산업 자체를 폐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레로 되돌아가려고 증기 방직기를 부수고자 하는 짓이다.
철도를 다른 예로 들어보자.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으려면 협업은 아주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서도 조업의 첫째 조건은 모든 부차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지배의지이며, 이 의지가 한 대표자에 의해서 나타나건 관련 당사자 다수의 결정을 집행할 책임을 지는 위원회에 의해서 나타나건 마찬가지이다. 어떤 경우에도 아주 분명한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
더욱이 우리는, 생산 및 유통의 물질적인 조건이 대공업과 대규모 농업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증대되며 또한 점점 더 이 권위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보았다. 따라서, 권위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나쁜 원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치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좋은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위와 자치는 서로 다른 사회 발전 양상에 따라 그 범위가 서로 상대적인 것들이다. …
그들은 사회 혁명의 첫 번째 행위가 권위의 폐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양반들은 혁명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인가? 분명히 혁명은 존재하는 가장 권위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구의 일부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권위적인 수단인 소총, 총검, 대포로 또 다른 일부에게 자신들의 의지를 강요하는 행위이다; 승리한 당파는, 싸운 것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자신들의 무기가 반동배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 이 지배를 지속시켜야 한다. 빠리 꼬뮌이 무장 인민들의 이러한 권위를 부르주아지에 맞서 이용하지 않았더라면, 단 하루라도 버틸 수 있었겠는가? 반대로 빠리 꼬뮌에 대해서는 권위를 충분히 광범위하게 사용하지 않았다고 질책해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반권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이 경우 그들은 혼란을 유포시킬 뿐이다;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경우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배반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그들은 반동을 이롭게 하고 있다(엥겔스, “권위에 대하여”, 이경일 번역,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박종철 출판사, 4권 276쪽-278쪽).
혁명은 가장 권위적인 정치 행위이다. 한 계급이 다른 한 계급으로부터 정치권력을 빼앗아 배타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정치행위이다. 마오쩌둥은 이를 두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노동자 계급이 혁명을 통해 자본가들이 장악한 생산수단을 빼앗아 집단적으로 생산을 운영하는 행위도 가장 권위적이다. 쏘련에서 1929년에 대대적으로 행해진 농업 집산화를 통해 농촌에서 전국적으로 새로운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만들 때에도 당의 지도하에 빈농이 중심이 되어 가장 권위적인 행동이 필요했다. 부농은 그 권위에 맞서 수백만 마리의 가축을 도살하고 집단농장(콜호즈)을 위해 파견된 활동가들을 학살하면서까지 역사상 최초로 전개된 농촌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권위, 생산적 권위의 수립에 맞서 극렬하게 저항했다.
오늘날 반권위 자치주의 무정부주의자들은 엥겔스가 오늘날 살아서 저러한 주장을 한다면 엥겔스를 두고 ‘스탈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을 것이 분명하다. 엥겔스는 당시의 생산력 발전 수준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권위적인 수단”으로 “소총, 총검, 대포”를 언급한다. “승리한 당파는, 싸운 것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그러한 물리적인 수단, 정치적 수단으로 “반동배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 이 지배를 지속시켜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엥겔스가 살아서 저러한 주장을 한다면 엥겔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언급했을 것이다. 오늘날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정복당하여 “싸운 것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미제국주의 “반동배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통해 이 지배를 지속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엥겔스의 말처럼, 오늘날 “반권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며, 이 경우 그들은 혼란을 유포시킬 뿐이다; 아니면 그들은 자신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며, 이 경우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배반하고 있다. 두 경우 모두 그들은 반동을 이롭게 하고 있다.” 혼란스러워서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거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경우나 어느 것이든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배반하”거나 “반동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쏘련 및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중상, 고도로 중앙집중화된 생산과 계획, 당의 지도를 부정하고 자치성, 분산성, 민주화된 계획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무정부주의의 일종으로, ‘시장 사회주의’ 수정주의 노선으로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배반”하고 그리하여 제국주의와 지배계급 “반동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반권위주의자들은 맑스와 분리하여 엥겔스조차도 비난하고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무정부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맑스의 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맑스는 먼저 “노동자 계급의 정치 투쟁이 폭력적인 형태를 띠고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계급 독재를 자신들의 혁명적 독재로 대체한다면, 이는 원리 침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일 것이다.”라며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이 이렇게 반혁명적 입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맑스는 이들 무정부주의자들을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의 사도들이 이처럼 분명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나타낸다면 노동자 계급이 오래 전에 그들을 지옥으로 쫓아냈으리라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자신들에게서 모든 실제적인 투쟁 수단을 빼앗으려 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천진난만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부르주아 공론가들과 몰락 귀족들로부터 모욕을 받았다고 느꼈을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투쟁의 무기는 현실 사회 속에서 취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투쟁의 숙명적 조건들은 불행히도 이 사회과학의 박사님들이 자유, 자치, 무정부의 이름으로 신격화된 관념적 환상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맑스,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 같은 책, 269쪽-270쪽).
맑스도 부정해 보라!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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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성두현은 1905년 이후에 레닌은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의식에 이를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며 입장이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성두현은 레닌이 이 글을 쓴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글 일부를 전체 맥락과 상관없이 선택적으로 인용함으로써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
1905년 1월 제1차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다. 레닌은 그해 11월 노바야지즌(Novaya zhizn)이라는 신문에 “당의 재조직화”라는 제목으로 이 글을 썼다. 레닌은 이 글에서 혁명의 발발이라는 정치적 급변 상황 속에서 당의 비합법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합법, 반합법 기구를 확장하여 폭넓게 혁명사업을 전개하고 당을 더 대중적 성격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 내에 비사회주의적 노동자들이 무차별적으로 들어와서 당의 전위적 성격이 약화되고 종국에는 당이 해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레닌은 10년에 걸친 당의 적극적인 정치사업과 혁명적 상황의 도래로 당원이 되었고 당원이 되고자 하는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이미 당 내에 혁명적인 당강령이 확립돼 있고, 당의 규율과 조직적 경험도 풍부하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던 것이다.
일반 노동자 대중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맑스주의의 총화인 혁명당에 의해 “수행된 십여 년의 사업으로” 의식적으로 변화하게 되어 이미 당에 가입하고 앞으로 가입하려고 하는 혁명적 노동자 중핵들이 과거에 본능적으로, 자발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이었다는 것이다.(주: 위 부분은 성두현이 인용한 레닌의 “당의 재조직화”를 새롭게 검토하고 나서 8월 7일에 수정한 부분이다. 이를 통해서도 성두현이 얼마나 레닌을 왜곡하고 있는지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아마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이마저도 부정한다면 이론적으로 완전한 파산을 노정한 것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