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에서 발생한 미군의 여대생 성폭행 사건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이 글은 김명호 교수의 저서 『중국인 이야기』 6권에 나오는 내옹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1. 들어가며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지만 생각보다 언론에서 은폐보도를 하는 주제는 무엇이 있을까? 그 중 하나가 바로 주한미군이 저지르는 범죄일 것이다. 1945년부터 2024년까지 대략 80년 동안이나 이 땅에 주둔한 주한미군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다. 대표적으로 1992년의 윤금이 사건이나 2002년의 효순이 미선이 사건 등이 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을 거치면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있었으며,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또한 미군정시기 미군이 적잖은 강간을 저질렀다고 자신의 저서에 썼다.
사실 미군에 의한 강간사건은 전 세계적인 일이며 해외 미군기지가 있는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

놀랍게도 중국 또한 이러한 사건을 겪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 말이다. 이번에 김명호 교수의 책 『중국인 이야기』 6을 읽었다.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내용 중 하나인 미군의 중국인 여성 강간사건에 대해 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제2차 세계대전은 종결됐다. 그로부터 18일 뒤 일본은 미국 전함 미주리호에서 공식적인 항복 조인식을 가졌다.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는 이들의 항복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을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미군은 전쟁이 끝나자 자신들의 점령지대를 넓혔다. 예를 들어,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획득한 사이판·괌·오키나와 등에 미군이 주둔했으며, 필리핀·대만·남한·대만·중국 등에도 미군이 주둔하게 됐다.

미국은 대략 5만 명의 미 해병대 병력을 중국 북부 해안 지방인 산둥 성과 허베이 성에 주둔했다. 미 해병대를 상륙시킨 이유는 표면상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돕기 위한 군사작전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민당을 도와 베이징과 톈진 같은 주요 도시를 점령함으로써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소련은 전쟁 막바지에 대일전에 참전하여 만주에 있던 일본관동군 부대를 궤멸했다. 중국에 상륙한 미군은 1949년 국공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날 때까지 지속된 것으로 확인된다.

 

2. 미군이 베이징 대학 여대생을 성폭행하다

 

제2차 국공내전이 한참이던 1946년 11월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미국과 우호통상항해조약을 체결했다. 이는 미국으로 하여금 중국에서 정치·군사·문화·경제 등 모든 면에서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만든 조치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1946년 12월 24일 북경 당국(당시는 국민당 치하에 있었다.)은 객지에서 성탄절을 맞는 미군들에게 푸짐한 선물을 안겼다. 덕분에 미군들은 중국산 술과 기름진 요리로 만찬을 즐겼다. 당시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던 중국인들 중에는 북경대학 선수반이던 여학생 선충도 있었다. 선충은 엄마가 보내준 멋진 코트를 입고 왕푸징의 사촌 언니 집을 나섰으며, 잠시 영화도 상영했다. 영화를 보고난 이후 다시 일어나 걷게 됐는데, 갑자기 미군 두 명이 양옆에 나타나 그녀를 납치했다. 미군 두 명은 그녀를 인근 숲으로 끌고가 강간하려 했다.

선충은 반항했으나 역부족이었던 걸로 보인다. 그녀의 비명을 들은 중국인 노동자 한 명이 도우려다 미군의 발길질에 나가 떨어졌는데, 그 노동자는 파출소로 달려가 경찰을 불렀다.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성폭행범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결국 베이징 경찰국장에게도 전달됐다. 경찰국장은 사건을 덮어버리고자 했다. 그러나 이를 가리지 못한 일부 언론들이 사건 발생 5일 후 중국의 몇몇 일간지들이 이에 대해 짤막하게 보도했다. 베이징 대학 500명이 집결해 정의연합회를 구성했으며, 미군의 여학생 모욕 사건에 항의하기로 합의했다. 소식은 중국 전역으로 확산됐고, 전국의 학생 50만 명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국민당 기관지도 “베이징 주둔 미군의 중국 여학생 강간” 소식을 큼지막하게 보도했다.
1946년 12월 31일 밤, 수도 난징의 여학생들은 미국 대사관으로 몰려가 스튜어트 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스튜어트는 장제스의 공관에서 열린 신년맞이 행사에 가느라 학생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직접 서명한 편지를 남겼다. 결국 이튿날, 학생들이 다시 한 번 면담을 요구했고, 학생들은 스튜어트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범인을 징벌해라!
중국인들에게 사과해라!
미군은 중국에서 철수해라!

오히려 중국과 가까웠던 스튜어트는 학생들의 애국심에 감탄했지만, 역으로 국민당 정부는 학생딜이 미군 철수를 요구했다는 것에 당황했다. 국민당 정부는 행정원 명의로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 여학생 추행사건은 미국 병사의 개인적 행위다. 범인은 법률의 준엄한 심판을 받으리라 기대한다. 중·미 양국의 우의가 개인의 행위로 손상되거나 우방국 국민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교육기관과 지방 행정기관은 이 점을 유의해 계도에 열중하기 바란다.”

 

3. 미군의 성폭행을 덮으려 했던 국민당과 이로 인한 역풍

 

사실 미군의 중국인 폭행은 선춘 사건 전에도 있었다. 1946년 9월 22일 밤, 상하이 황포탄에서 인력거꾼과 미군 사이에 싸움이 붙었으며, 코를 물어뜯긴 미군은 인력거꾼의 정수리를 후려 갈겼고, 인력거꾼이 죽을 때까지 주먹으로 때렸다. 국민당 정보기관은 선춘에 대한 악소문을 퍼뜨렸다. 당시 국민당 정보기관이 이 사건을 어떻게 말했는지 아래 내용을 보자.

“대학생이 아닌, 밤마다 미군부대 주변을 서성이던 거리의 여자다. 성폭행했다는 미군과는 원래부터 친구 사이다. 경찰이 달려갔을 때 미군이 ‘이 여자는 내 친구니 상관 말라’고 했다. 자칭 여대생이라는 여자도 미군의 말을 부인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거짓이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징 대학 여학생회가 진상파악아 나섰으며, 며칠 후 방문기를 각계에 배포했다. 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선충은 명문 집안의 딸이었고, 그녀의 할아버지는 양강총독과 대만 순무를 역임했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교통부 차장을 지냈다. 외가도 출중했는데, 그녀의 엄마는 청나라 말기 서구사상 전파에 힘쓴 린찬난의 딸이기도 했다. 당시 중국의 여성단체인 여성계는 시를 발표했는데, 그 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너는 2억 중국여인들의 수난을 대신했다. 아니다. 4억 중국인의 수난을 혼자 감당했다.”

놀랍게도 베이징 대학 교수들이 전전긍긍하며 한숨만 내쉬었다. 점잖다는 소리 듣던 철학과 교수가 총장 후스(胡適·호적)의 등을 떠밀었다. 기자들이 후스를 만났으며 후스의 대답은 기자들을 실망하게 만들었다. 미군의 여대생 성폭행 사건으로 나온 구호 중 하나였던 미군 철수 요구에 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정치 문제다. 이 사건과는 별개다. 이미 낡아빠진 구호라 별 의미가 없다. 미군이 주둔하는 한, 언제고 나올 수 있는 구호다.”

후스 총장의 주장은 마치 한국의 극우반공주의자들의 주장과 언론같지도 않은 조선일보의 주장을 연상시킨다. 놀라울 정도로 한국의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하는 주장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다. 미군의 여대생 성폭행 사건은 사건으로부터 60년 후 선충이 사망하자 사건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폭력 흔적이 없는 강간사건”이라는 요상한 결론이 났다고 한다.

 

4. 마치며

 

당시 여대생들이 요구했던 미군 철수는 1949년 국민당이 패하면서 이루어졌다. 이번에 『중국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흥미로운 사실이라 한번 글로 요약해보고 싶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은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미군이 더 이상 설 저리가 사라졌다. 반면에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에는 항상 이러한 강간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났으며, 특히나 남한만 하더라도 미군의 성폭행 사건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2023년 12월 11일 동아일보 기사에서는 “화장실 쓰게 해달라며 여성 집에 들어가 성폭행을 한 미군관련 이야기”가 있고, 2023년 10월 17일 한국경제 기사에는 “아프트 놀이터에서 4세 여아 성추행을 벌인 미군관련 이야기”도 있다. 이와 같은 기사들이 있지만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다못해, 판문점에서 무단월북을 한 트레비스 킹만 하더라도 주한미군 안에서 아동 포르노 소지와 민간인 폭행 혐의가 있는 문제 많은 인물이었다.
이제는 미군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이 글이 미군의 문제점과 미국에게 복종하는 국가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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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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