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2 _ 달러 헤게모니와 금융제국주의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 이 글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의 연구보고서 《미중갈등과 한국경제》제2장에 수록돼 있다.(민주노동연구원은 이 연구보고서가 민주노총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다고 주를 달고 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소개하는 이 글은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다양한 쟁점과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현대제국주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다.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편집자 주)
Ⅳ. 달러 헤게모니와 금융제국주의
1. 경제적 균형의 변화
냉전 시대 자본주의 서방 세계에서는 미국을 정점으로 한 패권적 지배 체제가 유지되었고 열강들 간 통제 불가능한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경제적 균형의 큰 변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미국의 경제적 위상 하락을 수반했다. 미국의 산출량은 1945년에 세계 산출량의 절반에 달했는데 1980년대가 되면 그 수치가 1/4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림 2-] 세계 GDP 중 미국 비중
* 자료 : Patton (2016)
군비 지출은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중요한 수요처였다. 그런데 미국의 내수 경기가 군비 지출로 유지되면서 일본과 서독은 대미 수출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군비 지출은 자국뿐만 아니라 서방 세계 전체를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반면 일본과 서독은 미국의 군비 지출 덕에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릴 수 있었고 생산성 측면에서도 미국을 앞지를 수 있었다. 일본의 제조업 수출은 1960년대 초에 미국의 1/3에 그쳤지만 1980년대가 되면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늘었다.
해외 직접투자가 늘면서 초국적 기업의 중요성이 커졌다. 초국적 기업은 생산의 세계화를 상징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글로벌 가치사슬을 형성하면서 본격적으로 재편되었다. 해외 기업을 인수 합병하거나 전략적 제휴 관계를 맺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세계화는 가속 페달을 밟았다. 20세기의 마지막 20년 동안 과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세계화 흐름은 확대되었다. 세계 최대 기업들은 국경을 초월하면서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세계화로 인해 국민국가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자본축적의 국민경제적 차원이 미약해진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세계화 과정에서 초국적 기업들은 국민국가의 지원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었다. 대다수의 초국적 기업들은 여전히 “어느 한 나라의 자본가들이 확고하게 통제”(하먼, 2009: 84)하고 있었다. 독점자본이 자국의 제국주의 국가와 지속적인 상호연관을 맺으면서 거대 초국적 기업으로 무대에 재등장한 것이었다.
일본과 서독의 도전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균형의 변화는 미국의 절대 패권에 상처를 남겼다. 베트남전 패배와 이어진 데탕트 국면의 군비 축소도 같은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자국의 지배력 약화를 배경으로 당시만 해도 달러 헤게모니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브레튼 우즈 체제를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곧 변했다. 레이건 신자유주의 정부는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고 군비 지출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다른 서방 국가들에게 차세대 무기 도입을 강요하고 자국의 의제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신식민지 나라들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IMF를 동원해 고강도 긴축을 강제하기도 했다(초스도프스키, 1998).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에 들어선 뒤로도 군사 개입이나 군비 지출은 오히려 1980년대보다 더 늘었다. 1990년대 말이 되면 세계 군비 지출의 35%를 미국 한 나라가 차지하게 되었다. 나토의 동진도 거침없이 추진되었다. 사실상 미국의 군사적 보호령인 유럽의 통합 움직임에 대해 미국의 견제가 이면에서 이어졌다. 그러나 보스니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 미국이 개입한 것을 계기로 유럽 열강의 미국에 대한 군사적 종속은 더욱 분명해졌다.
미국에서 재정 적자와 무역수지 적자의 이른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는 골칫거리였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누적된 군비 지출에 있었다. 쌍둥이 적자는 미국의 경제적 지배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웠다. 미국의 무역 적자는 해외로부터의 자금 유입에 의해 메워졌다. 21세기의 첫 10년간 미국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약 40퍼센트는 아시아가 원천이었고 약 25퍼센트는 유럽이 원천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의 투자자들이 미국에 자금을 빌려주고 미국은 그 자금을 군비 지출과 상품 수입에 쓰는 패턴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와 같은 자금 흐름이 급격히 반전될 때 미국 경제가 궁지로 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것은 만약 미국에 투자하는 일부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달러가치가 하락할 것이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해외 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할 수도 있으리라는 비관적 시나리오였다. 미국으로서는 자국으로 유입되는 해외 자금에 의존하게 된 상태가 불안정한 균형임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와 같은 취약해 보이는 균형이 바로 달러체제의 논리였다. 그 균형의 안정성에 대한 판단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제국주의는 전체 지구가 실질적으로 자본주의에 의해 지배된 조건에서의 제국주의인 점에서 레닌이 분석했던 제국주의와는 엄연히 다르다. 모든 나라가 이미 사실상 자본주의 나라가 된 점에서 과거 ‘반제-반봉건’의 맥락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대신에 반제국주의의 과제는 본격적으로 반자본주의의 과제와 직결되게 되었다.
미국은 일극 체제의 정점에 선 제국주의 국가로서 군사적 해법과 시장적 해법을 동원해 세계경제를 자신의 이해에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 지배는 전통적인 군산복합체의 힘의 논리에 초국적 금융자본의 금융적 가치 및 시장원리주의가 중첩된 특징을 가진다. 단, 미국은 더 이상 특정 국가를 과거 식민지처럼 직접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세계경제 전체를 언제 어디서나 지배”(정성진, 2003: 114)한다.*
* 그러나 영토 지배가 자본의 순수한 축적 동기 덕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영토 지배를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다. 신식민주의는 영토 지배가 자본의 이익을 해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은 결코 아니었다.
유일 패권 국가로서 미국의 힘은 그 근원이 군사력이다. 미국은 군사력으로 부동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국제기구를 동원해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정책을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미국 독점자본은 국경을 넘어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다. 다시 1950년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미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근거로 틀림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경제적 지배력이 어느 때보다도 취약하다. 그런데 미국은 그럴수록 더욱더 맹렬히 전쟁을 추구하고 내전에 개입한다. 패권 유지를 위한 사실상 남은 유일한 수단이 군사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최근까지 미국 제국주의의 호전성과 군국주의적 성격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어 왔다. 탈냉전 이후 세계화 흐름 속에서도 미국이 개입한 군사적 충돌의 사례는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 그런 점에서 오늘날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세계적 보편화”로서만 파악하고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이미 그 방법론적·역사적 한계가 분명해”졌기에 폐기해야 한다는 일각의 시각에는 상당한 위험성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런 접근법으로는 이를테면 표지 5와 연관된 정치군사적 식민지배와 민족자결의 현실 문제에 대해 마치 그런 문제 자체가 없거나 사라진 것처럼 주관적으로 해소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본문 논의에서 이미 밝혔듯이 고전 제국주의론은 역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한 가장 명확한 시각을 제시한다고 보는 것이 공정한 해석일 것이다.
2. 종이 금의 시대: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 체제의 확립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 적자를 겪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미국에 별다르게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는 없다. 각국 중앙은행은 달러가 유입되어도 과거처럼 금으로 태환할 수 없다. 그래도 주요 미국 기업을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산유국은 없으며 미국에 해외 투자를 매각해 빚부터 갚을 것을 요구하는 아시아나 유럽의 대미 무역 흑자 나라도 없다. 미국은 과거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개전 초기까지만 해도 채권자로서의 지위를 십분 활용해 당시 영국에게 해외 투자를 매각하지 않으면 더 이상 빚을 못 구할 것이라고 윽박질렀지만 말이다.
1940년대 미국은 과거의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무역을 전면에 내걸고 하나된 세계경제를 창출하는 데 여념이 없었지만 영국에 대한 빚쟁이 역할만큼은 톡톡히 했다. 실제로 1941년 무기대여법(the Lend-Lease act)과 1946년 앵글로 아메리칸 조약에 따른 미국의 영국에 대한 대출에서 미국은 영국으로 하여금 제국의 지위를 포기하고 스털링 지역을 청산할 것을 종용했다. 당시 영국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에서는 미국에 굴복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랬던 미국이 이젠 채무국이 되고도 다시 한 번 세계경제를 윽박지르는 형국이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전체 체계가 미국의 누적된 무역 적자에 의존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적 지위가 무역 흑자를 보던 채권자로부터 무역 적자를 보는 채무자로 바뀌면서 전후 세계경제는 착취적인 성격의 이중 잣대로 특징지을 수 있는 체제 면모를 드러냈다. 1971년 미국이 금 태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국제통화체제는 사실상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제(the Treasury-bill standard)’로 바뀌었다. 이 통화체제에서 미국은 더 이상 채권자가 아니고 채무자다. 그러나 빚에 찌든 보통 나라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전 세계 다른 나라들이 보유한 자원을 얼마든지 가져다 쓰면서 패권을 구가하는 독특한 채무자다.
달라진 국제통화체제에서는 과거의 금을 대신해 미국 연방정부의 빚 증서가 준비자산의 역할을 한다. 대미 무역 흑자인 나라들은 수출로 유입된 달러를 그냥 방치하면 외환시장에서 달러와 비교한 자국 통화가치가 상승해 무역 흑자가 줄어들 수 있고 국내 통화량이 의도치 않게 늘어나면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음을 우려하게 된다. 그 경우 해당 나라의 중앙은행으로서는 달러를 매입해 중앙은행 내부에 준비자산으로 쌓아놓는 것이 가장 손쉬운 선택이었다. 다만 달러 자체는 화폐여서 수익이 없으므로 대신에 달러로 미국 국채인 재무성증권을 사 놓으면 이자수익을 벌 수 있었다. 꿩 먹고 알 먹는 결과가 될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미국 재무성증권은 점점 더 확실하게 현 국제금융체제의 기초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운영되는 국제통화체제가 공정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게 볼 수 없다.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 체제는 우선 국제금융의 고전적 규칙들을 미국한테만 유리하게 거꾸로 뒤집는 것이었다. 오늘의 이 체제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누구도 미국처럼 그 규칙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다고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채무국으로 지위가 전락한 나라라면 세계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때로는 경제적 자율성이 희생되는 수모도 감수해야 했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를 겪은 신흥국이라면 미국이 조종하는 국제기구 때문에 국내 정책이 발이 묶여 정책의 재량적인 운용이 제약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국내 공공 자산의 소유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실제로는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는 지금도 그런 규칙을 따르지 않을 방도가 없다.
미국은 채권자의 권리 보호를 위주로 해온 국제금융 규칙들을 과거 한 때 지지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철저히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편으로 미국은 제3세계나 구 공산권 국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채권국가로서의 권리를 앞세운다. 채무국을 상대할 때 미국은 가차 없다. 국제기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신자유주의적이고 친미적인 워싱턴 컨센서스를 따를 것을 강요한다. IMF가 동원된다. 긴축과 민영화가 단골 정책이다. 동아시아 나라들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희생양이었다.
2000 | 2005 | 2010 | 2015 | 2020 | |
세계 GDP 중 미국 비중 | 31% | 28% | 23% | 24% | 25% |
세계 준비금 중 달러 비중 | 71.1% | 66.5% | 62.2% | 65.7% | 58.9% |
미국 GDP 대비 달러 준비금 배수 | 2.29 | 2.38 | 2.70 | 2.74 | 2.40 |
국경을 넘는 은행 사무에서 달러표시 청구권(자산) 비중 | 57.2% | 55.8% | 56.4% | 62.1% | 60.8% |
미국 GDP 대비 달러 표시 은행 청구권(자산) 배수 | 1.85 | 1.99 | 2.45 | 2.59 | 2.43 |
국경을 넘는 은행 사무에서 달러표시 부채의 비중 | 53.9% | 53.0% | 54.2% | 63.9% | 57.0% |
미국 GDP 대비 달러 표시 은행 부채 배수 | 1.74 | 1.89 | 2.40 | 2.66 | 2.28 |
외화표시 채권발행 중 달러 비중 | 72.7% | 73.4% | 66.0% | 65.8% | 64.7% |
미국 GDP 대비 달러 표시 채권발행 배수 | 2.35 | 2.62 | 2.87 | 2.74 | 2.59 |
* 자료 : Palley (2022: 464).
그런데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 채권국을 상대할 때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기축통화국으로서의 금융 권력을 이용해 자신이 채무국임에도 불구하고 채권국의 양보를 얻어낸다. 더 나아가 그들한테서도 부를 수탈한다. 미국의 진보적인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은 이와 관련해 각국 중앙은행과 미국 사이의 관계를 금융제국주의(monetary imperialism)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미국 금융제국주의의 세계경제 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가 과거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와는 달리 민간 다국적기업이나 민간 금융자본이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인 점은 독특했다(Hudson, 2021: 430).
각국 중앙은행이 준비자산으로 달러를 사 모으자 미국은 달러를 넘치게 공급함으로써 해외 자원이나 기업을 얼마든지 제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해외 군사 기지도 제한 없이 설치할 수 있었고 원하는 만큼 해외 재화를 수입해 소비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국채, 즉 재무성증권을 발행해서 손에 쥐어주면 그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달러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 현실은 사실상 미국이 달러 발행의 독점적 권한을 이용해 전 세계경제로부터 세금을 걷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채무자로서의 지위는 약점이기보다는 세계 통화금융시스템의 기초가 되었다(Hudson, 2021: 430).”
그 점과 관련해 역설적인 결과이지만 아시아와 유럽, 중동의 무역 흑자 나라들이 미국의 팽창주의적 군사 외교에 돈줄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수출로 달러를 벌어들인 다음 그 돈으로 미국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본의 아니게 미국의 군비 지출에 기여해 왔는데 그렇게 미국이 쓰는 군비가 중동 지역을 전쟁의 불구덩이로 만들어왔음을 그들이 알았을까.
이와 같이 강력한 금융 권력에 기초해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편파적 혜택을 누려왔다. 미국은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 나라들이 미국의 농산물 수출이나 자본 투자 필요에 맞춰 위성국가처럼 변할 것을 요구했다. 군사적 종속도 강제했다. 최근에도 가치동맹을 명분 삼아 종속적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한 궁핍화 전략에 치중하는 모습이다. 군사 관련 기술이나 첨단 기술 영역에서는 오직 자국만 독점적 지대를 향유하겠다고 국제적 분업의 재편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유무역 제국주의’라는 모순적인 표현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과거 자유 시장 이데올로기의 가장 열렬한 전파자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국은 제3세계 국가들이나 유럽, 일본 등을 대상으로 이념적인 자유 시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강제적 경제 조치들을 단행한 바 있다.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늘 중상주의적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우선해온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충복이자 마름으로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유력한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해온 ‘중소 제국주의’ 국가 일본은 미국의 금융제국주의가 강제하는 일방적 요구에 희생된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일본이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미국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자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강제로 엔화의 평가는 절상시키고 달러의 평가는 절하했다. 일본에 대한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미국이 정말 자유 시장을 신봉하는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지만 실제 역사가 그랬다.
그러나 플라자 합의로 달러가치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 적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전략을 바꿔야 했다. 달러가치가 더 떨어지면 미국 경제 입장에서도 불리했기에 중단했다. 그 대신에 1987년에는 서독과 일본을 불러 새로운 합의를 강제했다. 그것이 루브르 합의였다. 당시 억지로 합의된 내용은 서독과 일본이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리는 국내 경제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플라자 합의나 루브르 합의는 미국이 자신의 협력 국가인 중소 제국주의 나라들을 어떻게 강압적으로 통제해왔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창출된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일극 체제는 이와 같이 미국과 미국 아닌 나라 사이에 비대칭적인 질서를 강제했다. 미국과 미국 아닌 나라는 다르게 취급되었다. 미국은 유일 패권국가로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었다. 국제기구에 가입할 때에도 미국 자신만큼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억지 조건을 전제로 내걸고 가입했다. 미국이 아닌 어떤 다른 나라도 미국처럼 국내 정치를 핑계로 국제 협정을 자기 마음대로 파기할 수는 없었다. 오직 미국만 예외였다. 국제기구들은 명목상으로는 다자간 기구였지만,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관철시키는 도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나라도 없었다.
이와 같이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 체제는 미국이 구조적인 무역 적자를 통해 전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제한 없이 공짜 점심(free lunch)을 누리는 점에서 수탈적인 특징을 가진 것이었다. 아시아와 유럽, 산유국의 채권국가 중앙은행들은 무역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를 거의 반자동적으로 미국 국채를 사는 데 쓴다. 그렇게 미국에 끊임없이 돈을 가져다 바친다. 미국 국채 본위제 체제는 그렇게 작동된다.
과거 미국은 자본수출로 해외의 주요 산업을 매입해왔다. 하지만 오늘날 채권국들은 달러를 엄청나게 벌어들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요 산업의 인수 여부를 고민하지 않는다. 미국이 정치적으로 그와 같은 행위를 비우호적인 것이라고 명확히 해놓았기 때문에 무역 흑자 나라들의 미국에 대한 자본수출은 미국 재무성증권 투자라는 제한된 범위로만 이루어진다(Hudson, 2021: 429). 그런 식으로 미국은 과거 채권국 지위를 이용해 누릴 수 있었던 것보다도 오히려 더 많은 혜택을 채무국으로서 누린다.
3. 미국 금융제국주의의 특징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얼마간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었다. 각국은 달러 확보에 혈안이 되었다. 미국이 국제수지 흑자를 누리면서 세계경제는 달러 부족을 겪었다. 만일 미국이 계속해서 국제수지 흑자를 시현했더라면 닉슨이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는 미국이 유일 패권국이 되기 어려웠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국제수지 흑자를 봤다면 아마 세계 다른 나라들에는 금이나 달러 잔고가 점점 더 부족해졌을 터이다. 그렇게 되면 무역 규모가 줄어들게 되고 미국 산업의 영향력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는 교역이나 자본수출의 위축을 피할 길이 없다. 지속가능한 패권이 유지되기 힘든 구조였던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오늘까지 미국의 금융제국주의가 확립되고 강화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 폭이 확대되면서 세계적으로 달러 공급이 넘쳐나면서부터였다.
미국이 세계경제를 수탈하는 새로운 금융적 방식은 국제통화체제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금융제국주의가 그것이었다. 미국의 무역 적자가 더 심해져서 달러 외환이 더 많이 유입되면 그렇게 달러가 늘어나는 대로 각국은 준비금 보유를 늘렸다. 늘어난 달러는 재무성증권에 투자하는 데 쓰였다. 세계 각국의 저축은 미국이 무역 적자로 모자라게 된 자금을 대주는 역할을 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재무성증권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적자도 골치 아픈 문제가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미국은 원하는 만큼 해외 상품을 수입해 소비해도 괜찮았고 그렇게 빚이 늘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것은 금융제국주의에 기초한 미국의 무임승차였다.
요컨대 미국은 차용증을 얼마든지 써서 그 돈으로 세계 곳곳의 생산물을 원하는 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져다 쓰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은 아이러니였다. 미국이 제3세계에 재무성증권을 팔아 마련한 돈은 때로는 그 나라 민중들의 민주적 요구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데에 쓰였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패권이 금융제국주의에 기반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제국주의가 미국 패권의 새로운 물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미국이 냉전 기간을 거치면서 늘려온 전비 지출은 미국을 채권국이 아닌 채무국으로 전환시켰지만, 그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늘어난 달러 공급은 각국 중앙은행 준비금의 기초가 되었다. 그렇게 ‘달러 리사이클링(recycling)’ 구조가 안착되면서 오늘날 국제통화체제의 기초가 형성되기에 이른 것이었다.
우리는 미국이 전통적인 과거의 규칙을 깬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래 주류경제학 원리에 따르면 군비 지출 등으로 국제수지 적자를 본 나라는 자국이 보유한 해외 자산을 매각해 빚을 갚아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긴축 정책으로 자본 유출을 막는 편이 순리에 가깝다. 그러니까 정부지출을 줄이고 금리를 올려서 경제성장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국제수지 균형을 회복할 수 있어서다. 적어도 그것이 주류경제학의 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원리주의 주류경제학자들을 전 세계적으로 공급하는 책임을 맡은 미국만큼은 정작 그 교리를 무시했다.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무역 적자 폭이 아무리 커져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식이었다. 미국 경제학이 가르쳐온 조정 메커니즘이 미국한테만 통하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달러가 기축통화로 확고히 자리 잡은 이상, 무역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바로 그만큼 해외 중앙은행들이 자동적으로 자신에게 부족한 자금을 빌려주리라는 것이 파악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재정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해외 중앙은행들은 재무성증권을 사 준다. 그렇다면 골치 아프게 증세를 할 이유도 없고 자국 내 국채시장의 유동성을 걱정할 이유도 없다. 미국은 재정 적자를 무역에서 적자를 봄으로써 벌충하는 구조다. 재정에서 적자를 본 것 이상으로 무역에서 적자를 보면 된다는 뜻이다. 미국이 무역수지와 재정에서 적자를 보면 실제로는 그 적자 규모에 상응하는 만큼의 세금을 다른 나라에서 부담해서 메꿔주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제3세계에서 미국의 은밀하거나 때로는 노골적인 군사 개입이 끝을 모르고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어느 정도 규모까지 적자를 봐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미국은 어느 정도의 재정 적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적어도 경제적인 한계는 사실상 없다고 볼 일이다. 금융적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화폐이론(MMT)의 이단적인 상상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진리의 일면을 포착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현대화폐이론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액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전후 직후 달러 리사이클링은 해외 원조나 전비 지출로 유출된 달러가 수출을 통해 미국 내로 돌아와 ‘환류’가 일어나는 구조였다. 그러나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달러 리사이클링은 무역 적자로 유출된 달러가 해외 중앙은행의 미국 국채 매입으로 환류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한편 국제수지 조정 메커니즘의 미국식 변형은 금리에 대한 상이한 영향에서도 드러났다. 원래 주류경제학에서는 국제수지가 적자가 되면 정책금리 인상을 통해 외국자본의 유입을 촉진하는 조정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새로운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에서는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해외 각국의 미국 국채 매입 증가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시장 실세금리가 떨어졌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미국의 세계경제 지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첫 번째 방향은 제3세계 순 채무국인 신흥국들에 대한 수탈이다. 달러가 부족한 나라들에 대해서는 과거 채권국의 모습 그대로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를 활용해 워싱턴 컨센서스를 강요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그것이다. 그 경우 순 채무국들은 어쩔 수 없이 긴축을 선택하게 된다. 자국의 산업화는 방해받는다. 공공부문이 축소되고 민영화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구조조정과 매각이 자연스러운 수순이 되고 만다. 미국에 근거를 둔 초국적 자본이 금융 투자자로서 광물자원 개발권과 공공 기반시설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농업 자급화도 저지당한다. 긴축과 함께 미국에 대한 산업적 종속이 사실상 강제된다. 원자재 및 노동력의 저가 공급이 이들에게 주어진 역할로 남는다. 요컨대 자립적 발전의 전망이 가로막힌다.
두 번째 방향은 미국에 대해 순 채권국인 산업경제 강국들에 대해 그들이 저축해둔 금융 재원을 구조적으로 흡인하는 방식으로 자국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달러가 넘쳐나는 순 채권국과 전에 없던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대미 무역 흑자국인 동아시아나 유럽 일부 나라들, 그리고 산유국들은 달러 리사이클링 체제에 편입되어 구조화된 강제 저축을 수행하게 된다. 그 나라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달러로 표시된 미국 자산의 매입에 쓰지 않으면 안 되도록 얽매여 있다. 수출 늘린다고 임금 깎고 저임금 유지한다고 곡물가격 억누르는 식으로 국내적으로는 민중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번 돈을, 그렇게 저축한 재원을 홀라당 미국에 가져다 바치는 형국이다. 자칫 여러 나라들이 달러 자산 매입을 중단하기라도 하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준비자산의 가치가 영향을 받게 되므로 그로 인한 피해를 우려해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로부터 이탈하지도 못한다. 그런데 미국이 그렇게 빨아들인 다른 나라의 저축은 결과적으로 제국의 군비 지출을 돕고 금융 지배 자본주의의 상부구조를 공고히 해 자산 가격 거품을 곳곳에 만들어낸다.
이것은 레닌의 시대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제국주의의 모습이다. 본래 레닌의 제국주의가 자국 내 잉여의 처분을 위한 수요처를 해외에서 찾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면, 미국 단극체제의 세계경제 현실은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에 가깝다. 유일한 제국으로서 미국이 자국 스스로 상품의 수요처가 되면서 그 수요의 재원을 자체 신용 창출을 통해 무한정 장만할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된 점에서 그렇다.
제국주의의 장기적인 이해관계는 세계시장에서의 권력 강화에 있다고 볼 법하다. 그런데 그것은 단기주의 편향이 강해지는 독점자본의 사적 동기만으로는 보장되기 어렵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독점자본의 사적 이윤동기에 의해 추동된 현상만은 아니었고 세계 여러 나라를 미국의 위성국처럼 만들려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정치권력과 그 배후에 놓인 지배자들의 힘에 의해 정교하게 통제된 것이었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미국식 신자유주의는 미국 이외의 나라가 미국을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늘렸다. 초국적 자본과 지대 향유 계층에 봉사하는 금융 부문이 가져가는 몫이 커진 것이 그 한 요인이었다. 다양한 외관을 띄며 진행된 해외의 민영화는 미국 금융 부문이 해외에서 독점적 지대를 ‘뽑아먹는’ 것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해외 나라는 자국 경제 내에 고비용 구조가 고착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주택가격과 주거비용의 상승은 그 한 단면이었다.
미국 제국주의가 세계 각국에 이식한 고비용 구조는 산업 활동에 있어서도 지장을 초래했다. 미국 자본의 진출로 금융 부문이 팽창하면서 역으로 자국의 산업 부문이 짓눌리는 경향도 감지되었다. 미국계 주주의 이익 실현을 위한 단기주의와 고배당, 자기주식 매입에 따른 유보재원 소진이 문제였다. 그로 인해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국내 장기 혁신투자는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금융화가 초래한 금융 지배 자본주의에서는 경제 내 자원배분을 결정하는 새로운 계획 단위로서 소수 금융 센터의 역할이 부각되었다. 오래전 레닌이 제국주의의 다섯 가지 표지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던 금융과두제가 그렇게 부활했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계 금융자본이 주연을 맡았다.
허드슨의 금융제국주의론에는 지대를 향유하는 자산가들이 등장한다. 고전 제국주의론과 비슷한 지점이다. 일찍이 레닌은 금융과두제 하에서 자본수출로 이익을 남김으로써 식민지 노동자들 덕에 먹고 사는 기생적 계층의 존재를 지적했다. 그런데 오늘날 미 재무성증권 본위제의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에서 미국은 무역수지는 적자이고 자본수지는 흑자이다. 자본수지 흑자는 자본수출보다 자본도입이 더 큰 규모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자본수출의 정반대 현상이 지배적인 현실에서 금리생활자들의 지대 향유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달러 리사이클링에서 해외 중앙은행은 수익률이 낮은 미국 재무성증권에 투자하는 반면 미국의 자본수출은 해외 고수익성 자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에 가능하다. 비록 절대 규모에서는 해외 중앙은행에 의한 재무성증권 투자가 미국의 자본수출을 압도하지만 수익률 측면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미국은 자본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해외 순 투자에서 양(+)의 이익을 누린다. 더불어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 자체가 미국의 자본수출을 용이하게 하는 측면도 있다. 달러 자산 취득에 투자할 자금을 미국으로부터의 자본도입으로 쉽게 조달할 수 있어서다.*
* 정성진(2003: 114)은 “자본수출을 제국주의의 핵심 특징으로 설정하는 레닌의 제국주의론으로 오늘 세계 최대의 자본수입국인 미국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수지가 흑자이면서도 자본수출이 이루어질 수 있고 해외 투자로부터 순 이익도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4.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논란
허드슨이 제시한 이와 같은 국제통화체제 특성은 기존에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논의였기도 하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그와 같은 구조적 불균형을 근거로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것은 미국의 무역 적자가 구조화될수록 달러가치 하락 위험이 점점 더 커질 것이기에 유사시 채권국들이 미국 재무성증권을 매도하고 나선다면 체제 자체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리고 체제가 무너지면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패권 상실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달러 리사이클링의 현 체제는 정말로 위험 요인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무역 적자로 인해 세계적으로 넘쳐나게 된 달러는 금융시장과 상품시장에서 투기를 부추기고 자산 가격 버블을 키울 위험이 있다. 이는 실제로도 세계 도처에서 크고 작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 지배 자본주의의 파괴적 영향은 그 과정에서 증폭될 수 있다.
다만 미국이든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든 현 체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비용이 제법 드는 선택이기도 하다. 우선 미국으로서는 현 체제가 공짜 점심을 누릴 수 있는 구조이기에 불균형을 바로잡고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자진해서 옮겨갈 리는 없어 보인다. 균형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군비 지출부터 줄여야 한다. 미국의 무역 적자가 확대된 배경에는 막대한 해외 군비 지출이 도사리고 있다. 군비 지출로 수입 증가가 유발되면서 무역 적자가 커진 것이었다.
그런데 군비 지출이야말로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 유지를 가능케 하는 힘의 기반이다. 미국 내 군산복합체가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가져가기 때문에 군비 축소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더욱이 균형 회복을 위해서는 다시 미국 국내 제조업 기반을 강화해 수출을 회복해야 하는데 그 방향은 현 체제 하에서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충돌할 소지가 없지 않다. 최근 관측되는 재산업화 움직임도 첨단 전략 부문 중심으로 제한적으로만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도 불공정한 현 체제가 붕괴되면 치러야 하는 비용이 적지만은 않다. 그 점은 ‘트리핀의 딜레마(Triffin’s dilemma)’라는 경제학의 유명한 이야기와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다. 이 딜레마의 한 축은 준비자산인 달러를 공급하는 미국이 무역에서 흑자를 보면 준비자산의 세계적 공급이 줄어들기 때문에 세계경제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은 무역에서 적자를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딜레마에는 모순을 야기하는 다른 축도 함께 존재하는 법이다. 딜레마의 다른 축은 그렇다고 미국이 무역에서 계속 적자를 보면 달러가치가 하락해 세계경제가 이번에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은 가급적이면 무역 적자를 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한 축에서는 미국이 무역에서 적자를 봐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축에서는 미국이 무역 적자를 보면 안 된다고 말하니 딜레마가 맞다.
그런데 그 딜레마는 미국이 적자를 계속 보면서도 달러가치가 하락하지 않으면 더 이상 딜레마가 아니게 된다. 모순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달러가치가 하락하지 않도록 떠받치는 힘들이 있다. 첫 번째는 금융위기다. 금융위기는 설령 위기의 진원지가 미국 월가인 경우라도 발작처럼 달러가치를 높여왔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달러 표시 준비자산을 보험처럼 보유한다.
두 번째는 인플레이션이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물가가 너무 빨리 오른다는 이유로 금리를 급격히 인상했다.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달러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미국을 따라 금리를 같은 속도로 올리는 길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 경제가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그런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첫 번째 선택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에 비해 천천히 금리를 올리거나 금리를 올리지 않는 길이다. 그 경우 달러 값, 즉 환율이 오른다. 환율이 오르면서 수입 물가가 오르고 결국 국내 물가가 오른다. 상황이 악화되면 외국 자본이 갑자기 떠나갈 수도 있다. 달러 값이 너무 많이 올라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는 길이 두 번째 선택에 해당한다. 둘 다 가기 싫은 길이다.
달러가치 하락을 막는 세 번째 힘은 미국을 제외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외환시장 개입이다. 이들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 저하를 우려하기에 달러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노심초사한다. 달러가치를 미국이 아닌 해외 중앙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려고 드는 셈이다.
끝으로 미국 밖의 해외 경제가 성장하는 것도 달러가치를 떠받치는 요인이 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달러는 미국이 발행하지만 전 세계의 화폐다. 무역에서는 달러가 결제자산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제 미국 밖 해외 나라들의 경제성장은 교역의 증가를 수반하고 그 과정에서는 달러에 대한 수요가 반드시 늘어나게 되어 있다.
1971년 달러의 금 태환이 중지된 이후 달러가치가 폭락했다.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도 미국의 무역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대개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하면 무역 적자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미국은 그 점에서도 예외적이었다. 오늘날 21세기에 들어서도 적자의 규모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막상 미국 재무성은 당장의 결정적인 위험 요인으로 여기지는 않는 듯하다. 그 배경에는 아마도 앞에서 이미 밝힌 것처럼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가 이미 지속가능한 구조처럼 되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역 적자가 늘어날수록 해외 중앙은행들에 의한 미국 국채 매입으로 달러가 ‘리사이클링’(미국 국내 경제로 돌아옴)되는 규모도 함께 늘어나고 있어서였다.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무역 적자는 재정 적자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그와 같은 쌍둥이 적자는 미국 국채가 금을 대신해 준비자산으로 확립된 현 국제통화체제의 내재적 작동 원리에 해당한다. 분명한 사실은, 쌍둥이 적자처럼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동시에 체제의 작동 원리가 되고 있는 점에서 현 체제는 진정 모순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그간에 체제의 외관상 안정적 재생산은 모순적인 그 체제가 결국 군산복합체와 월가 금융자본을 지원하는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에 궁극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패권이 유지되는 한에서는 쌍둥이 적자가 경제위기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패권을 지탱해온 요소들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재앙은 한꺼번에 터져 나올 수 있다.
미국 중심의 일방적인 국제관계가 과거에 때로는 균열을 불러오기도 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 단극 체제의 폭력에 맞서는 자기보호 성격의 지역 블록화 경향은 수면 아래에서 이어져왔다. 유럽의 경제통합이나 산유국간 협력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여지가 있다. 오늘날 미국과 그 하위 파트너인 일본 및 유럽 열강으로 구성된 제국주의 중심부는 상대적으로 강하게 통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미국이 강제로 질서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현 체제의 안정성이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5. 탈산업화와 재산업화
미국은 해외 군비 지출 부담이 초래하는 무역 적자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자본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추진했다. 외국 경제에서 가장 알짜인 고수익 부문을 쏙쏙 매입해서 본국인 미국으로의 송금을 늘린다는 의도였다. 그렇게 무역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꾸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주요 기업들은 다국적기업으로 변모했다. 멕시코와 같은 해외 생산 기지에서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미국 기업에 고용되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미국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했다. 미국이 중국을 세계경제에 편입시킨 이후 생산과 고용, 설비투자의 중심지는 자연스럽게 아시아로 옮겨갔다.
미국에서는 생산 기지의 해외 이전이 점점 더 뚜렷하게 하나의 추세로 자리 잡아갔다. 공동화된 국내 제조업 지역은 금융자본의 부동산 개발로 재탄생했다. 자본수출의 이면으로 국내에서는 금융화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미국은 군수산업을 제외하면 점점 더 많은 제조업 제품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국제통화체제가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제로 안정된 덕택으로 미국의 제조업 제품 수입도 큰 어려움 없이 유지될 수 있었다. 무역 흑자인 나라들은 말하자면 미국한테서 국채를 받고 그 대가로 제조업 제품을 미국에 넘겨주는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쯤 되면 질문이 자연히 떠오른다. 탈산업화를 겪고 있는 미국은 도대체 앞으로 얼마나 더 다른 나라들을 지금처럼 ‘등치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 말이다. 다만 미국이 순전히 자신들의 필요로 세계경제 무대에 끌어들였던 중국을 이제 ‘전략적 경쟁’ 관계로 일방적으로 재설정하고 공공연하게 협력 관계에서 배제하는 최근 흐름을 보면, 어쩌면 그 질문에 대한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힌트란 것은 다름 아니라 미국 내 지배세력 스스로도 변하지 않으면 더는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반도체를 위시한 전략 산업 영역에서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의 생산 기지를 다시 국내로 돌아오게 하고 종속적 동맹국들의 생산 거점 또한 미국 내로 이전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와 같은 변화는 기실 그간의 자본수출을 정확히 거꾸로 뒤집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제국주의 표지 가운데 하나인 자본수출이 아니라 그것의 정반대 현상이 지금 제국주의 나라 미국의 주도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스스로 가치사슬의 국내 집중과 리쇼어링을 통해 재산업화를 추진하는 최근 흐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와 같은 최근 흐름을 1960년대와 70년대 이후의 추세를 역전시킬만한, 다시 한 번 찾아온 큰 변화로 볼 것인지 여부부터가 문제다. 그것이 새로운 축적 양식의 한 단면인지, 아니면 미국의 과도기적인 세계경제 재편 전략의 일환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의 최근 정책 변화를 두고 제국주의 체제 성격에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오해할 일은 아니다. 실제로는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늘 가장 선진적인 생산 부문을 석권해 왔다. 유일무이한 경쟁자가 한때 소련이었다. 따라서 최근 들어 미국 정부가 다시 정치적 힘을 이용해 첨단 전략 부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는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소련 말고 중국이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한 것뿐이다. 미국은 차제에 세계경제의 지도를 재구획하고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설계함으로써 첨단 분야에 대한 지배력을 보다 확고히 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어디까지나 기존 미국 산업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예측 가능한 변화라는 뜻이다.
진짜 문제는 그와 같은 미국 산업정책이 가진 제국주의적 성격이다. 미국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자본수출 대신에 거꾸로 타국의 생산 기지를 자국 내로 집중시키려는 것도 변화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모습의 제국주의적 수탈이다. 그것이 가치동맹에 편입된 나라들의 국내 산업 기반을 공동화시키고 그 나라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미국이 자국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을 통해 무역 적자 폭을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줄일 수 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와 같은 최근 변화도 어디까지나 첨단 전략 분야에 국한된 것이기에 전반적인 국제수지와 자본 이동 패턴이 기존과 본격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미국 금융제국주의가 작동하는 구조적 틀인 국제통화체제의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제 특성이 흔들린다면 그런 변화에 대해서는 미국 지배세력부터 발 벗고 반대에 나설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점은 트럼프 정부와 바이든 정부를 거치면서 이어지는 현재의 제조업 부흥 전략 자체는 미국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미국 금융제국주의가 품고 있는 내적 모순이 더욱 격화되는 현실을 드러낼 뿐이다.* 미국의 보수 정치는 제조업 부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존의 축적 전략과 충돌하고 있다. 따라서 제조업 부흥은 기득권을 대표하는 금융자본 세력에 의해 제한된 규모로만 허용될 공산이 크다.
* 미국이 외견상 자본수출의 정반대인 종속국으로부터의 자본도입에 열중하는 것은 그만큼 미국 국내 경제의 활로를 찾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미국 금융자본과 지대 향유 계층의 이해를 중심에 놓고 보면 일종의 자해라고도 할 법하다. 달러 헤게모니를 스스로 위협하는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자본수출의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더 이상 제국주의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다. 고전 제국주의론을 애초부터 폐기의 대상으로 여겼거나 아니면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는 성서로 여겨왔다면 오늘의 이와 같은 현상을 노동자계급 관점에서 제대로 평가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논의했던 것처럼 자본수출이나 금융 지배의 특정한 양상 자체는 제국주의 체제의 특정 시기에 관측되는 역사적 특수성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고전 제국주의론의 다섯 지표가 항구적으로 타당한 절대불변의 금과옥조인 것만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고전 제국주의론의 기존 5표지에 대한 현대 제국주의론 관점에서의 재구성과 새로운 이론적 합의의 도출은 향후 진보정치의 진전을 위한 중요한 연구 과제로 제기된다고 하겠다.
6. 평가
이제 지금까지 살펴본 허드슨의 금융제국주의론에 대해 간략한 평가를 시도한다. 허드슨의 논의는 금융화로 상징되는 변화된 경제 환경과 금융 지배 자본주의의 체제 동역학을 제국주의 분석의 중심 주제로 설정한 점에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재무성증권 본위제라는 국제통화체제 성격 규정에도 탁월한 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허드슨의 연구는 진보진영 내에서는 브레튼 우즈 체제 붕괴 이후 금융자본의 운동을 중심으로 미국의 세계경제에 대한 헤게모니가 재구축되는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였다.
경제적 지대를 수탈하는 계층이 금융제국주의를 떠받치는 국가장치 배후의 지배세력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서 경제적 지대를 수탈하는 계층은 군산복합체와 월가의 초국적 금융자본으로 대표된다. 허드슨의 이와 같은 이해 방식은 기존의 자칫 고루해 보일 수 있는 계급 분석에 갇히지 않은 것으로서 그 덕분에 생동감 있는 현실의 포착이 가능해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허드슨 논의에서 강점은 또한 약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생산과정에서의 착취 문제가 논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자본주의는 분명히 제조업이 공동화되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여전히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지배하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이다. 상대적으로 탈산업화된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미국을 두고 산업자본과 노동자계급의 직접적 적대관계를 지우고 볼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허드슨은 미국 자본주의를 사회구성체 단위로 분석하지 않는다. 고전 제국주의론은 그와는 반대다. 그 점이 고전 제국주의론의 강점이자 허드슨의 논의에서는 누락된 약점이다. 허드슨 논의의 그와 같은 한계는 다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대립을 강조하면서 바람직한 발전 전략에 있어 전자를 옹호하고 후자를 부정하는 점에서도 발견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금융자본의 지배에 맞서는 산업자본과 노동자계급 간 연대연합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홉슨이나 카우츠키에게서 발견된 편향을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허드슨은 사회주의와 산업자본주의의 구분보다도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구분을 강조하는 경향마저 보인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적어도 노동자계급의 관점은 될 수 없다.*
*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금융자본이라는 용어의 정의가 고전 제국주의론과 허드슨 논의에서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본래 제국주의론에서 금융자본은 은행자본과 유착된 산업자본을 뜻하는 것이었으나, 허드슨 논의에서는 일상적인 용어 사용법을 따라 은행자본과 비은행자본을 포괄하는 개념으로서 금융산업에 투하된 자본이 금융자본으로 지칭된다.
레닌과 바란의 한 가지 공통점은 제국주의를 전복시키는 정치의 기획에 있어 (비록 그 내용은 달랐지만) 반자본주의의 관점을 명확히 한 데에 있었다. 그러나 허드슨은 그렇지 못했다. 그 결과는 산업자본주의의 회복이라는 복고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허드슨 논의에서 발견되는 계급적 관점의 부재는 분석 방법론에서도 확인된다. 특징적으로 허드슨은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주류경제학 담론을 미국 금융제국주의의 체제 원리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그 구조는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작동할 가능성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모순을 담지한 것임은 이미 앞에서 밝혔다. 그러나 설명 틀 자체는 방법론적으로 주류경제학의 그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일 뿐이다.
주류경제학 방법론을 차용하다보니 결과적으로 허드슨의 논의에서는 금융제국주의 체제가 항구적으로 작동 가능한 것처럼 이해되기 쉽다. 체제의 이행은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재무성증권 본위제의 이행 내지는 체제 전환이 가능할지 우리는 허드슨의 논의만으로는 파악하기 힘들다. 만약 허드슨의 의도가 이행의 동학을 산업자본주의의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승리에서 찾는다면 그런 점이야말로 대단히 실망스런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산업과 금융 간에 잘못된 대당을 설정한 탓에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관점이 체제 전환의 동학에 반영되기 어려운 점 또한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 사이에 대립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레닌의 관점과는 거리가 멀다. 레닌은 그 둘을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거꾸로 서로 유착하는 관계로 인식했다. 힐퍼딩에 따르면 그 둘은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하는 관계였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발전적 계기 속에서 융합되고 상호 작용하는 관계라고 보는 편이 변증법적 유물론 관점에서 타당하며 그 점이야말로 레닌이 카우츠키를 비판했던 논점 중 하나였다. 그러나 허드슨은 또 다시 홉슨이나 카우츠키의 한계에 갇혔고 그 둘 사이의 형식적 대립 관계를 일면적으로 가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Ⅴ. 소결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유럽의 제국주의는 독점자본이 세계의 경제 분할과 영토 분할을 위해 자신의 국가로부터 지원을 이끌어내면서 등장했다. 레닌은 열강들 간 경쟁이 극도로 첨예화된 역사적 국면을 분석하면서 고전 제국주의론을 완성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미국이 유일 패권 국가로 등장한 것을 배경으로 고전 제국주의론은 한쪽에서는 한 글자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 불변의 고정된 진리로 신성시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제국 없는 제국주의’,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이론적 파산이 선언되었다. 제국주의론의 발전은 그렇게 봉쇄되었다.
하지만 전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실천에서 제기되는 실제 과제는 고전 제국주의론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폐기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의 과제는 변화된 체제 환경에서 고전 제국주의론이 안고 있는 난제를 진단함으로써 현대 제국주의론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는 그동안 진전이 뚜렷하지 않았다.
여러 문헌에서 산발적으로 고전 제국주의론의 약점을 논의했지만 그런 논의가 제대로 평가되거나 종합된 시도는 별로 없었다. 따라서 그 약점이란 것도 극복되기 어려웠다. 특히 금융자본과 자본수출의 역할을 비롯한 제국주의 5표지의 문제는 해결 못한 고민거리처럼 남아있던 것이 사실이다.
힐퍼딩의 논의에서 비롯된 은행자본 주도 금융과두제(표지 2)는 이후 전개된 역사적 현실과는 차이가 있었다. 자본수출(표지 3)도 역사적 국면마다 그 양상이 상이하게 나타났다. 미국 일극 체제에서는 세계의 경제 분할(표지 4)도 면모가 과거와는 완전히 바뀌었다. 자주 역량의 결실로 구식민주의 체제(표지 5)가 붕괴된 변화도 있었다. 고전 제국주의론은 적어도 기존의 내용 그대로는 이와 같이 변화된 체제 환경을 담아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현대 제국주의 체제에서 발견되는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제국주의 5표지를 비롯한 고전 제국주의론 전반은 이와 같은 현대 제국주의의 특징을 반영해 적절히 정정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독점자본은 늘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국제 분업을 신식민지에 강요한다. 종속의 형태는 직접투자와 차관 제공, 포트폴리오 투자를 비롯한 자본수출의 다양한 방식과 연결된다. 그것이 곧 개별 신식민지 나라가 제국주의 체제에 편입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둘째, 제국주의는 열강들 사이의 자체 모순을 재생산한다. 미국이 유일 패권 국가인 단극 체제라고는 하지만, 미국의 중심 하위 파트너인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에서는 세력권의 재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물밑에서 이어지곤 한다. 심지어는 그들과 미국 사이에도 잠재적인 이해 충돌이 감지된다. 미국 제국주의는 군산복합체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결합에 기초해 있는데 군사적으로는 동맹국들을 압도하지만 경제적 지배력 측면에서는 한계를 노정하는 상태이다.
셋째, 미국은 ‘종이 금’을 만들어내는 특권에 기초해 재무성증권 본위제라는 전무후무한 국제통화체제를 확립했다. 그와 같은 금융제국주의 체제 하에서 미국은 예외적이고 비대칭적인 방식으로 세계경제를 대상으로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체제는 미국의 금융적 지대 향유 계층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되며, 자국 내 제조업 공동화를 배경으로 해외 산업자본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이다(허드슨, 2023: 299-328).
넷째, 오늘날 미국 제국주의는 군사적 지배력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패권주의를 강화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신냉전 기도에도 불구하고 약화된 경제적 영향력으로 인해 제국주의 체제는 바야흐로 전환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프라샤드, 2022). 미국의 패권이 점점 더 폭압적 수단에 의존하면서 신식민지 나라들에서는 광범위한 통일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신식민지 시민은 노동자계급이건 소생산자계급이건 격변기 쇠락하는 제국주의의 경제 침탈에 일차적인 희생양이 되기 쉽다. 더욱이 동북아시아는 국제정치적으로 대립이 첨예한 최전방이다. 정세적으로 평화를 지향하는 대중조직과의 연대연합 기반을 확대할 필요성이 크다. 노동자계급의 선진적인 전위 부대와 폭넓게 조직된 인민대중의 결집이야말로 기존 제국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주체 역량이 된다.
[보론]
이 장의 보론에서는 마이클 허드슨의 금융제국주의론 외에 대표적인 관련 연구로서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론, 그리고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론에 대해 간략한 개요 수준에서나마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1.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론
구 식민지 체제의 붕괴, 현실 사회주의권의 몰락, 그리고 그 후 밀어닥친 세계화를 배경으로 자본주의의 세계적 지배구조는 큰 변화를 겪었다. 네그리·하트 (2001)에 따르면 국민국가의 틀에 갇혀 있던 제국주의는 이제 국민국가의 틀에서 벗어난 ‘제국’으로 대체되었다. 네그리와 하트는 제국은 영토적인 권력 중심을 만들지 않으며 지구 전체가 하나의 제국이고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전 지구적 착취 체제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초국적 자본이 전 지구를 장악했다는 의미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네그리와 하트의 관점은 더 이상 제국은 국민국가의 팽창을 통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거 로마처럼 제국은 지구 전체를 네트워크로 조직하고 있으며 모든 곳에 존재하면서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신비로운 설명이었다.
고전 제국주의론의 시각에서 세계화는 미국 제국주의의 지배가 확장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는 그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심지어 미국을 제국의 중심으로 보지도 않는다. 제국에는 어떤 중심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한테는 미국 제국주의란 없다. 그들한테는 민족이나 민족국가도 진보정치에서 버려져야 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그들은 주권국가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인식(제르바우도, 2022)을 해로운 것으로 비난한다. 제국의 시대에 국가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네그리와 하트의 초현실적 인식은 지적 유희일 뿐이다. 제국주의의 역사 일체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국가 개념을 해체하고 미국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눈앞의 현실마저 부정하는 점에서 그들의 제국론은 실천적으로는 오히려 반동적이다. 그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거론하며 구름 위에서 탈자본주의와 탈근대를 논하고 노동자들의 투쟁을 구시대적인 것이라고 폄하할 때, 구름 밑 차가운 바닥에서는 오늘도 제3세계 노동자들이 소외된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내몰리며 제국주의의 착취에 희생물로 내던져지고 있다. 저자들은 ‘다중’이라는 정체 모를 변혁 주체가 끝없이 이주하고 출몰하면서 제국에 대항해 새로운 공간을 구성할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그것은 익명의 네티즌들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계급 분석이 불가능한 유령일 뿐이다.
2. 하비의 신제국주의론
하비 (2016)에 따르면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는 경제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이며 이 중 경제적 요소는 자본주의적 권력을 뜻하고 정치적 요소는 영토적 권력을 뜻한다. 하비는 그 두 요소 사이에 모순이 내재해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의 힘이 성장해온 역사를 고찰했다. 이와 같이 자본축적의 동학과 영토적 경쟁을 종합적으로 사고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하비의 논의에서는 ‘탈취(dispossession)에 의한 축적’ 개념이 중요하다. 그것은 민영화, 규제 완화, 복지 축소, 금융사기 등을 일컫는데, 하비는 신자유주의가 축적의 위기에 대해 탈취에 의한 축적으로 대응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마치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통해 축적 위기를 해소하듯이, 자본주의가 자신의 외부에 있는 비자본주의 부문 및 자신의 내부에서 자본 관계에 포섭되지 않은 부문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과잉축적을 해소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탈취에 의한 축적은 가치를 새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착취의 결과로 생산된 가치를 재분배하는 과정일 뿐이다. 문제의 근원은 탈취가 아닌 노동 착취에 따른 축적 자체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비가 탈취에 의한 축적을 강조한 것은 반자본주의 관점을 불분명하게 하는 효과마저 있다고 하겠다.
한편 하비는 뉴딜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가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정치적으로 미국 민주당의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더 나쁜 제국주의인가 아니면 덜 나쁜 제국주의인가가 아니다. 그와 같은 하비 논의의 약점은 그가 저항 운동의 주체로서 노동계급 중심성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게 되는 한계로 이어졌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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