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협조의 실상과 기원

지금 조합원들은 노조 간부들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 퇴직을 2년 앞둔 선배가 하는 말은, 자기가 회사를 35년 다녔는데 노조 조끼 입은 사람(노조 간부를 지칭-주)을 현장에서는 ‘거지새끼’라고 부른다고 했다. 노동자로서 현장 일은 하지 않고 노조 간부랍시고 어슬렁대며, 사측과는 싸울 생각은 않고 구걸만 하기 때문에 붙여준 별명이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얘기하고 있을 때 노조 간부가 오면 ‘거지새끼 온다’라고 말한다고 한다.(울산 함성)

한국 노동운동은 대체로 세 가지 해결과제가 있다

첫째, 경제주의, 조합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둘째, 노자협조, 노사(정)담합을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
셋째, 자본주의 착취, 억압체제를 철폐하고 변혁적 전망을 가져야 한다.
이 세 가지 과제는 하나로 통일돼 있다.
오늘은 이 가운데 노자협조주의의 문제다. 노자협조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서로 협조, 타협해서 공존하고 공통의 이익을 누릴 수 있다고 보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이는 사실 노동자의 사상이 아니라 자본가의 사상이다.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실상은 노자 적대와 대립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착취질서 속에서 자본가들의 지상의 목표는 최대한의 이윤추구이고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이해, 권리는 말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본가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회 전체의 이익과 관심사가 희생되더라도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과 탐욕에만 몰두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라 할지라도 오로지 노자 간의 이해는 적대적이고 대립적이기만 한가? 자본주의에서 노자적대는 절대적이지만 노자 간의 관계는 상호의존의 관계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이 없고, 가령 공장이나 회사가 없다면 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존재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자간의 이러한 상호관계의 측면이 노자협조주의 이데올로기와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도 있어야 한다는 측면은 실상은 자본이라는 것이 노동자의 과거 집단적 노동의 산물이고 노동자가 노동하지 않으면 자본이 성립, 유지, 확대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가 있어야 자본가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의 전도된 현상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 전도된 현상으로 오로지 자본의 존재가 노동자 존립의 절대적 조건, 전제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자본의 명령에 순종하고 착취에 순순히 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로써 노자 간 적대와 대립은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불손한 의도, 세력,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악선전 하면서 노자동반자 관계, 협조관계가 정상적이며 자연스런 관계라고 유포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상호 연관된 관계가 있다는 측면을 전연 무시할 수 없으나, 자본주의에서 노자대립은 절대적이고 항상적이고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노자관계가 적대적이고 대립적이라는 사실은 자본가의 노동자에 대한 지배와 착취, 적대성, 특히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적개심에서도 알 수 있다.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 정신적 및 물질적 노동이 기업과 자본형성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집단적으로 노동을 멈출 때 기업과 사회가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자본주의가 아닌 새로운 사회, 사회주의로 이행하게 되면, 자본가계급이 없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으로도 사회가 유지,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실을 입증한다.
자본가들의 착취에 대한 과학적 인식, 근로민중이 생산의 주역이었고 역사를 이끌어온 견인차였다는 사실에 대한 역사인식을 가질 때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으로 무장할 수 있다.
이로써 노자협조주의는 우선적으로 사상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자의 사상으로 무장하고 사회주의자로 새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할 때 노자협조, 타협, 담합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노조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투쟁기구가 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영원히 지속될 사회일 것이고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전망이 없으면 자본의 지배에 숙명적으로 복종할 것이고 오로지 자본이 있을 때에만 노동자도 존립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노자대립과 적대의 필연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대신 자본의 번영, 이 번영의 결과로서 노동자의 권리가 주어진다고 보고 노자협조, 담합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것이다.
노자협조주의는 자본가들의 매수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이 부분은 공공사업장 보다 재벌기업 내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안정적인 착취를 유지하고 노조의 투쟁을 봉쇄하기 위해 활동가들에 대한 악랄한 탄압과 함께 회유와 매수공작에 나선다.

이 매수는 직접적인 금전적 매수, 전임 협조주의 노조간부, 활동가들에 대한 업체 소유.운영권 부여(가족이나 친인척이 형식적 소유자로 나서기도 한다.), 해외자동차 공장 견학이라는 명목으로 전현직 노조간부들에 대한 해외여행 특혜 등 다양한 측면에서 매수를 자행한다.

현대자동차 사측 관계자들과 노조 전현직 간부들이 동유럽 자동차 공장을 같이 견학하고 있다.

이 매수는 이밖에도 노조운동이 의회주의와 정치세력과 만나면서 입신양명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도덕적 타락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사상의 타락에 수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혁명가들에게 자본의 금전적, 정치적 매수가 먹혀들어갈리 없기 때문이다.
대공장에서 상당부분 만연한 매수현상들을 현대자동차 사례로 살펴보자.

조합원들은 지난 20년 동안 교섭위원들이 사측과 해외연수를 가는 것에 대해 줄곧 문제제기를 했다. 올해도 해외연수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 제조직들은 해외여행은 교섭이 끝난 후에 가라고 만류했다. 그런데도 안현호 집행부는 5.1절 바로 그날에 해외연수를 떠났다. 메이데이가 갖는 의미에 대해 안현호 집행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봉진: 앞서 35년 된 선배 얘기하면서 “조끼 입은 거지새끼 온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말씀드렸는데, 실제 노조 간부들의 위신은 지금 땅에 떨어져 있다. 조합원들이 신차투입 때 맨아워(M/H) 협상*에 대해 말하면, 대의원들은 사측이 준 자료를 그대로 읽는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업조건 개선과 관련하여 대의원한테 노동강도 완화를 요청하면, 회사의 투자비가 얼마나 드는데 이것은 된다, 이것은 안 된다라며 대의원들이 사측과 협상도 하기 전에 미리 짜른다고 한다…
현장 순회하면서는 참담한 장면을 보았다. 현장에 촉탁 인원, 즉 계약직 인원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조합원들이 하는 얘기로는, 대의원들이 선배들이 퇴직하고 나면 단체협약에 규정된 대로 신규 충원을 받기 위해 싸워야 하는데, 그냥 회사가 하라는 대로 촉탁과 임시직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인터뷰]
현대차지부, 혁신의 새바람은 지속될 수 있을까?
10대 임원선거에서 ‘신선한 충격’ 준 강봉진 후보, 울산함성, 2023.12.06)

충격적인 사례들이다. 지부장이었던 안현호의 경우는 과거 현대정공(현 5공장) 시절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했던 순수한 활동가였는데, 오늘날 이렇게까지 타락했다. 이 정도면 변절이라고까지 할 수 있겠다. 현대자동차가 대의원들이나 전현직 간부들에게 해외공장을 견학한다는 명목으로 해외여행 은전을 베푸는 역사는 제법 오래됐다.

이상범은 노동자 입장이 아닌 “경영자 입장”에 서서 러시아 공장의 “무노조 경영”을 이상적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범은 노동자에서 최대 이윤 추구라는 탐욕을 앞장서 부추기는 자본의 화신이 되었다. 2015년 현대차 자본의 러시아, 중국, 독일 등 현대차 해외 공장 견학에는 이상범과 함께 윤성근 4대 노조위원장, 이상욱 9대 노조위원장, 이경훈 당시 위원장 등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헌구 위원장은 파업 철회 대가로 2억 원 뇌물 수뢰 혐의로 감옥에 가고 퇴사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동참하지 못했을 것이다.(껍데기는 가라! 설쳐대는 변절자 무리들을 청산하자!, 2017년 10월 30일, 노동자정치신문)
http://mlkorea.org/v3/?p=5114

업체운영권을 주어 매수하는 더 충격적 사례도 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전·현직 노조간부 친인척들의 업체운영 문제다. 전현직 노조 간부와 가족들이 사측의 특혜를 받아 업체를 경영하는 풍토가 어느덧 우리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리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베스틱이다. 베스틱은 현대글로비스 하청회사로서 현대자동차 울산 1,2,4 공장에 범퍼를 직서열 공급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현대차노조 위원장과 지부장을 역임한 이00의 친인척회사라고 알려지고 있다.
2020년 회계연도(2020.1.1.~2020.12.31.) 감사보고서를 보면 베스틱의 총매출액은 110억원이고 영업이익은 16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4.3%에 달한다. 요즘 하청부품사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2~3% 대에 불과한 것을 볼 때 베스틱의 영업이익률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스틱이 왜 일개 하청업체에 불과하면서도 이토록 영업이익률이 높은지는 자명하다. 바로 전직 노조위원장 출신이면서, 더욱 중요하게는 지금도 현대차 노조운동에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현대차재벌의 특별 ‘배려’를 받고 있는 것이다.(울산함성, 같은 기사)

이 기사에서 “이00″은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노동운동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자다. 이상욱의 타락과 친인척 업체 운영 문제는 이러한 자들, 세력들이 어떻게 우리 노동운동을 타락시키고 자본에 종속된 운동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개인의 도덕성과 기회주의적 인성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지만, 안현호나 이상욱도 그렇고 문성현이나 조건준, 최근 한석호의 사례에서도 그렇고 이들이 과거에는 전투적 노동운동에 복무한 자들이었음을 볼 때, 혁명적 전망을 상실한 사상적 타락으로부터 자본의 다양한 매수공작에 넘어가 너절한 변절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노동운동사에서도 노동운동 타락의 원인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들이 있었다.
엥겔스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노동귀족론으로 이를 설명하려 했다. 특히 영국 같이 광범한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이들 나라에서 거둬들이는 초과이윤의 일부를 가지고 자국 노동자들을 매수함으로 노동귀족이 발생하여 노동운동이 타락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실제 당시 영국의 상층 노동자들(가령 금속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임금을 받고 여기에 안주하여 보수화 된 것에 대해 엥겔스는 개탄했다. 그러나 이를 가지고 엥겔스가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타락의 원인이니 오직 빈곤을 유지할 때만 혁명성을 유지한다고 본 게 아니었다. 엥겔스는 당시 영국 노동운동의 보수화와 타락의 물질적 원인을 규명하려 한 것이었고, 맑스주의에서는 노동자의 개량이 노동자들에게 계급적 자신감을 주고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이 지적으로 사고할 여유를 줌으로써 혁명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혁명적 사상이 있다면 개량은 혁명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엥겔스 노동귀족론을 잘못 왜곡하여 고임금과 노동자의 번성이 노동운동 타락의 원인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레닌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였다. 레닌은 개량을 혁명의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만 아니라, 엥겔스가 말한 노동귀족이 당시 상층 노동자들 일부에 한정돼 있을 뿐만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 자본 간, 제국주의 국가 간 경쟁과 대결이 더욱 첨예해지기 때문에, 자본은 식민지 초과이윤으로 일부 상층 노동자들에게 안정적 임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 내부 노동자들을 전반적인 빈곤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고 주장했다. 대신 자본가들은 상층의 타락한 정치 분자들과 관료들을 매수하여 이들이 대중들의 이해를 배신하게 하여 이들과 대중들의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운동을 전투적, 혁명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는 (신)식민지 착취와 억압, 금융교살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나라 노동자들에게 전반적 빈곤과 복지후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저임금 자본주의”는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나라 노동자들의 실상을 잘보여준다. “부자 나라, 가난한 민중”이라는 도식은 미국, 일본이 처한 모순을 드러내는 구호가 되었다. 이는 복지국가 대명사였던 북유럽뿐만 아니라 유럽전반의 실상이 되고 있다.
저임금 자본주의, 복지의 붕괴는 이민자들과 그 후예들에게 더욱 가혹한 빈곤을 강요한다. 만성적 실업은 청년들 상당수를 빈곤층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공산주의 운동이 혁명성을 상실하고 노동운동이 보수화 된데다가 동유럽과 쏘련사회주의의 해체 이후 더 가속화 되었다. 자본가들은 사회주의권 해체 이후 노동운동이 전망을 상실하고 후퇴하자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공세를 퍼부었다.
한국 노동운동의 타락 역시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 혁명적 전망의 상실과 청산주의, 패배주의, 관료화 등으로 약화되었다. 비정규직 투쟁이 가지는 투쟁성이 이러한 흐름을 제어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더욱이 사회주의권의 해체와 운동의 분열과 후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자본의 매수공작에 흔들리지 않은채 1980년대와 전노협의 투쟁적 경험을 가지고 자본에 매수당하지 않고 운동을 이끌어온 세대가 정년을 맞으면서 운동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은 어려운 여건 내에서도 운동을 지켜온 선배세대의 혁명적, 전투적 경험으로부터 배워 이를 계승발전 시켜야 한다.
또한 일각의 부패와 타락한 사례들로부터도 반면교사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혁명적 전망의 상실에서 비롯됐다는 자각을 가지고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관련 기사 소개
http://www.ulham.net/local/11959

 ※ 사진은 <노동자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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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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