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의 적대관계로의 전환과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강령에 대해(전문)
1. 적대관계 전환은 새로운 출발의 전환점
2023년 12월 30일 열린 제8기 9차 조선로동당 전원회의에서 조선이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며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이후 2년 반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 선언이 단순히 대북적대와 침략책동을 노골화 했던 윤석열 정권과의 관계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던 것은 “장구한 북남관계를 돌이켜보면서 우리 당이 내린 총적인 결론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조선의 통일전략 전반에 대한 총화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북남 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절박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는 발표에서도 표명되고 있다.
이재명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평화공존과 경제ㆍ인적교류 협력 재개 주장에 대해 2025년 7월 28일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 담화”에서도 조선은 “조한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싸늘하게 표현한 것도 이 결정이 일시적이고 전술적인 결정이 아니었음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조선의 이러한 발표는 통일운동 진영에도 영향을 미쳐 이후 3자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단체들이 기존 단체를 해산하고 새로운 단체를 띄우기도 하였고, 이와 관련한 무수한 평가를 내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이와 관련해서 입장이 분분하고 혼란스럽다.
특히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 통일의 한 축이 사실상 통일을 포기했기 때문에 진보진영도 통일을 포기하고 대신 두 국가관계로 전환해야 한다든가 통일관련 부서, 단체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제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 가장 큰 문제는 이 격변적 사태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며 한국사회의 변혁문제와 관련된 강령적 문제까지 논의가 전면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는 점이다. 사태에 대한 해석은 실천을 위한 것인바, 우리는 이 정세적 변화를 과학적ㆍ역사적 관점으로 인식하고 우리 운동의 지체를 파악하여 이 사회를 변화ㆍ변혁하는 전략ㆍ전망을 새롭게 모색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 이후 자주ㆍ민주ㆍ통일(자민통) 노선이 여전히 유효한 변혁전략인지, 폐기해야 하는 노선인지 다시 새로운 수준에서 제출해야 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2. 적대관계 전환 배경
ㅡ 조선의 적대관계 선언으로 남북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전환했는가?
여전히 남북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됐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김천식 전 통일연구원장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패한 북한이 남북 간에 문을 열어놓고 소통하면 김씨 정권이 위험하다고 생각한것같다”며 “그래서 문을 걸어 잠그고 북한 주민들에게 남조선은 이제 완전히 외국이고 남쪽 족속들은 같이 어울릴 수도 없는 이민족이니 관심을 끊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두 국가론 말하는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 아냐” 46개 단체 참여…두 국가론에 반대하는 ‘원코리아 범국민연대’ 출범, 조선일보, 2026.02.04.)
극우신문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언론도 사태를 이 점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비핵화를 원하는 남한과 상대하는 것은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흡수통일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노력으로도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남한에 대해서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며 “상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통일’과 멀어지는 남과 북···‘적대적 두 국가’라는 주장은 왜 나왔나?”, 경향신문, 2025.10.07.)
한반도 정세는 분단 80년 역사상 가장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점 위에 서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분기점은 북한이 주창한 ‘적대적 두 국가론’의 공식화입니다…이러한 북한의 행보는 과거 분단 시절 동독과 서독이 겪었던 분단 논리와 매우 유사하면서도 중대한 차이점을 지닙니다. 체제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동독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두 국가론’을 공식화했습니다. 민족을 혈통이 아닌 ‘계급’의 문제로 규정하며, 서독을 ‘자본주의 부르주아 민족’, 자신들을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민족’으로 분리·규정했습니다. 급기야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의 통일”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고 서독을 철저한 외국으로 취급했습니다. 이는 현재 북한이 통일 조항을 삭제하고 남한을 별개의 국가로 규정한 것과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현재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한의 영향력 차단과 적대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독보다 훨씬 극단적입니다.”(“실용적 평화체제 구축으로 넘어야 할 ‘적대적 두 국가'”,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2026.06.03)
진보진영 내부 일부에서도 이와 유사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정은과 북조선 지배엘리트 집단은 왜 80년 가까이 이어져온 민족과 통일 이데올로기를 폐기하고, 일관되게 이러한 조치를 하는 걸까? 우선은 기존의 대남전략이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사문화된 전략을 현실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북조선 현 체제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남한을 ‘동포’가 아닌 ‘완전한 타국’으로 규정함으로써,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는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 논리를 봉쇄하고, “우리 방식대로 살겠다”는 독자적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다.(홍명교 | 플랫폼c 활동가, “한반도 두 국가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2026년 5월 2일)
체제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을 했다는 것도 그렇고 조선이 적대국가로 전환 선언을 하여 적대적 두 국가로 전환했다는 분석도 사실과 정반대의 황당한 분석이고 원인과 결과, 현상과 본질을 뒤바꾸는 것이다.
조선의 적대관계로의 전환 선언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적대관계로 전환된 것이 아니다. “적대성 강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도 인과관계가 틀렸다. 강화된 적대성은 그것이 목적이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선언은 적대화된 남북관계의 현실을 엄중하게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체제경쟁에서 밀린 조선이 흡수통일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을 했다면, 해방 이후부터 분단을 반대하고 민족대단결 기치 하에 통일방안을 줄기차게 제창해온 조선은 그동안은 체제경쟁에서 승리할 자신감이 넘쳐서 그랬단 말인가? 이는 역으로 통일지향적 운동을 친북이라며 국가보안법으로 탄압하던 한국은 체제경쟁에서 자신감이 없어서 그랬다는 자기고백에 다름 아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통일논의를 외세에 의해 생긴 분단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체제경쟁에서 승리하고 상대방을 짓밟아 무너뜨려 흡수해야 하는 상대로 보기 때문에 이러한 진단이 나오는 것이다. 이들 언론들은 하나 같이 부르주아 체제의 흡수통일ㆍ정권교체 발상을 그대로 북에 투영해서 북의 그 동안의 통일논의를 상대방을 흡수할지 여부로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도 적대관계 선언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분단적 인식, 대결적 인식을 파악할 수 있다.
진보진영 내에서 “기존의 대남전략이 그리 현실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홍명교, 같은 글)에 조선이 기존의 통일전략을 폐기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비현실적으로 된 근본원인이 분단체제에 있으며 이와 연관된 미국과 한국의 대북적대 정책, 흡수통일 전략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게 된다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재구성”하고 “상시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비역사적인 태도이며 결국 동아시아의 평화 재구성과 상시적 평화체제를 구축(驅逐)하게 될 뿐이다.
더욱이 “‘적대적 두 국가론’과 그에 따른 ‘민족 지우기’는 기존의 민족 담론이 더 이상 한반도 평화의 실효적인 안전장치가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하면서 “남한 사회의 이주민 인구 비중이 점차 증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단일민족’ 서사는 유효하지도 지지할만하지도 않다. 그런 점에서 ‘두 국가론’에 맞서 ‘민족통일’ 담론을 옹호하는 것은 반전평화운동의 대응법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민족개념에 대한 과학적 인식이 없는 것이고 역사적으로 실존하고 더 깊어지는 민족문제 해결과 자주통일 운동에 기권하고 폐기하는 청산주의로 빠지게 될 뿐이다.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느냐”는 조선의 주장은 흡수통일을 경계, 반대하기 위해 나온 발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이 흡수통일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를 차단하고자 적대관계로 전환 선언했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조선이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방안은 상호체제를 존중하는 속에서 1민족, 1국가, 2제도에 기초한 형태를 지향한다. 조선은 어느 한 체제로 흡수통일을 하는 것이라면 전쟁이나 정권교체를 기도해서 하는 통일이라고 반대하는 것인데, 한국이 여전히 무력을 동원한 전쟁이나 정권교체를 노리며 흡수통일만을 고집하기에 민족적 특수성에 바탕을 둔 통일방안이 현실성이 없어졌다고 보아서 기존 통일방안을 포기하고 두 적대 국가 선언을 한 것이었다.
조선이 적대적 두 국가선언을 한 것은 “선제타격론”, “북한 주적론”, “참수작전”, “즉강끝”을 외치며 대북적대를 노골화하고 한미군사훈련 등 침략책동을 일삼는 윤석열 정권 하에서지만 이미 문재인 정권 하에서 판문점공동연락사무소 파괴로 이를 공개적으로 예고해왔다. 2020년 6월 16일 개성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소를 북이 폭파한 것은 적대관계로의 전환을 알리는 전조,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은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의 죄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격노한 민심에 부응해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들을 차단해버린 데 이어 개성공업지구에 있던 북남 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 파괴시키는 조치를 실행했다”(BBC 뉴스 코리아, “북한,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최근 남북 긴장고조 이유는?”, 2020년 6월 16일)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6월 13일 당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같은 기사)이라며 폭파를 경고한 바 있다.
2018년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과 조미 정상회담 개최로 정점에 달한 “선대선”의 관계가 2019년 2월 27일~28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며 결렬된 이후 파탄 상황으로 치달았다. 북미 정상회담 무산 이후인 2019년 3월 22일 북은 남북 간 연락과 상호민간교류를 위해 설치됐던 개성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하였다.
이에 대해 북은 “미국의 승인과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조선당국이 어떻게 무슨 힘으로 중재자 역할,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같은 기사)라고 비난을 가했다. 결국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는 직접적으로는 “쓰레기들과 이를 묵인한 자들”, 즉 지금도 그렇지만 탈북자들의 저열하고 도발적 내용의 대북 전단 살포와 이를 “표현의 자유”라며 방치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다. 그런데 폭파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북전단 살포와 이의 방조만이 아니다. 그것은 조미 정상회담의 파탄이라는 외부적 조건과 함께, 그러한 불리한 외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 선언의 정신에 맞게 민족자주, 민족자결의 관점에 입각해서 민족문제를 주체적으로 돌파해가려는 노력과 의지 없이 미국 눈치나 보며 중재자니 운전자니 얼빠진 소리나 해대며 이 파탄 국면을 수수방관하고 대처할 줄 모르는 외세 추종적인 문재인 정권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정세는 주어지기도 하지만, 만들어가기도 한다 ― “걸림돌”을 제거하고 주체적으로 정세를 개척해 나가자, 노동자정치신문, 2024년 6월 20일)
판문점 선언, 평양공동선언으로 민족통일 기운 최대로 높아졌다. 이 선언은 민족자결의 원칙 하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대북적대를 지속하려는 미국의 군부 군산복합체, 그리고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의해 서로 단계적으로 비핵화와 침략위협을 줄여나가기 보다는 리비아식 방식에 의해 북의 일방적인 양보와 항복을 바라는 세력들은 인민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민수산업에 대한 제한적 제재 완화와 단계적 비핵화를 교환하자는 북을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조미 간 하노이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조미 관계는 파탄을 맞게 되었다. 결국 북은 이제 더 이상 제재 완화 수준으로는 비핵화 논의는 없다며 핵무력 완성과 자력경제 완성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한미’동맹’의 틀에 철저하게 포박된 문재인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며그 동안 남북합의를 하나도 이행하지 못했다. “미국의 승인과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조선 당국”이라는 북의 평가는 임동현ㆍ정세현 등 민주당 역대 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들의 성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대북정책에 관해 긴밀히 협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거 한미 워킹그룹 방식으로 이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과거 한미 워킹그룹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산적인 협의가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제재의 문턱을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외교부 주도의 한미 워킹그룹 가동 계획을 중단하고, 통일부가 중심이 되어 남북관계 재개 방안을 마련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성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게 해야 합니다.(“제2의 한미 워킹그룹을 반대합니다”, 2025년 12월 15일)
한미 간 관계는 남북 간 합의를 진척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도리어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고 제재의 문턱을 높이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중재자, 운전자 역할을 자처했지만, 남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미국의 입장을 관철하는 통로인 한미워킹그룹이었다.
당시 한미워킹그룹은 남북관계의 속도와 범위를 ‘조율’한다는 명분 아래 남북협력 전반에 개입하며, 남북합의 이행을 제약하는 실질적인 통제기구로 작동했다. 참가자들은 대북정책 조율 협의체 역시 미국의 제재·압박 기조를 기준으로 한국의 대북정책을 관리·조정하는 구조로 설계될 경우, 제2의 한미워킹그룹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정부는 ‘제2의 한미워킹그룹’ 구상을 중단하라” – 한미 ‘대북정책 조율 협의체’ 반대 긴급 기자회견, 경실련 정치입법팀, 2025-12-17)
심지어 한미는 2019년 전반·후반기에 각각 ‘동맹 19-1’훈련과 후반기 한미연합지휘소훈련을, 4월엔 2주 동안 한미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하고 최첨단의 미국산 무기 수입을 통해 전쟁준비에 골몰함으로써 지상·해상·공중에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1조)하기로 한 9·19 군사합의를 정면으로 어겼다. 특히 문재인 정권은 임기 내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청와대는 국방 예산 확충을 통해 신형 무기 도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군은 이미 F-35A 스텔스전투기(40대·7조3400억 원)를 비롯해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4대·1조1000억 원)를 도입 중이다. 지난해에는 차기 해상초계기로 P-8 포세이돈(6대·1조9000억 원)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이 세 가지만 해도 10조 원이 넘는 물량이다.
여기에 향후 3년 동안 도입될 신형 무기로는 전차와 병력 등 적 지상 표적 600여 개를 250km 밖에서 동시 추적하는 지상감시정찰기(조인트스타스)가 최우선 순위로 거론된다. 군은 약 1조5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3년까지 지상감시정찰기 4대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이지스함 발사용 SM-3 요격미사일과 대잠수함 작전용 MH-60R 해상작전헬기, 적 레이더와 방공망을 무력화하는 EA-18G 전자전기 등도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이 밖에 F-35A 스텔스기와 아파치 공격헬기, 조기경보기의 추가 도입까지 추진될 경우 향후 한국이 구매할 미국 무기는 10조 원이 훌쩍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트럼프 “한국, 무기구입 큰 고객”… 文대통령 3개년 구매계획 밝혀, 동아일보, 2019-09-25)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남북 체제 보장과 평화를 논의하는 상황에서 무기 구매 3개년 계획을 밝힌 것은 북한에 비난의 빌미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북한은 8월 우리 군의 F-35 스텔스 전투기 등 최신 무기 도입과 관련해 ‘첨단살인장비의 지속적인 반입은 남북 공동선언과 남북 군사 분야 합의서를 정면 부정한 엄중한 도발’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같은 기사)
극우 신문 동아일보조차도 우려할 정도로 이러한 도발은 9.19군사합의를 체결하고 남북이 평화로운 관계를 모색한다는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문재인은 ‘자주국방’이라는 명목 하에 미국산 최첨단 무기를 수입했으나 전시작전권통제는 이재명 정권 들어와서도 여전히 환수는 오리무중이고 방위비 분담금은 2019년 1조 389억 원에 더해 1,350여 억원을 더하는 것으로 그 인상폭이 가히 역대급으로 결정됐다.
문재인 정권의 대미종속의 심화와 남북관계 파탄 위에서 윤석열은 미국의 대북전쟁 기도, 아시아판 나토의 돌격대를 자처하며 “선제타격론”, “북한주적론”, 대북전단 발송, 대북비방 방송, 역대급의 한미연합훈련에서 마침내 무인기 침투로 북으로 하여금 적대화된 남북관계 선언을 하게 했다.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는 북의 평가는 이러한 현실에서 나왔다.
3. 민족과 민족모순은 실존하는 것
현대사에서 민족모순은 45년 해방 이후 민중의 자주권력을 미군정이 파탄내면서 생겨났다. 미국은 이남에 친미 꼭두각시 정부를 세움으로써 신식민지배의 기초를 마련하고 반공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948년 제주4.3과 동포학살 반대를 내걸었던 여순의 항쟁을 필두로 일어난 단정ㆍ단선 반대, 외국군 철수, 자주통일 요구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전국적 민중항쟁을 무참하게 학살로 진압했다. 한국전쟁은 6.25전쟁이 아니라 이러한 요구와 외세의 식민지배 요구가 충돌해 가장 극단적 전쟁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1960년 4월 혁명은 단순하게 미국식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투쟁이 아니었다. 민중의 빈곤과 생존권 요구와 함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에서 보듯, 자주통일 요구와 학살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로 대구ㆍ경북, 제주 4.3, 여순 등 항쟁역사를 잇는 전국적인 민주항쟁이었다. 미국은 수백만 학살에도 꺼지지 않고 한국에서 다시 타오르는 자주통일과 변혁 열망을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짓밟고 반공 친미숭배 백색테러국가로 만들었다.
미국은 1980년 오월광주항쟁 이후 다시 이러한 역사적인 반미 통일ㆍ군사파쇼 반대 투쟁이 격렬해지자 직선제를 마지못해 수용하고 노태우로 군사정권을 연장하는 것으로 한국통치 형태를 전환했다. 3당 합당으로 군부통치는 막을 내렸으나 이는 친미정권의 연장이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과 두 차례의 정권퇴진투쟁 이후 들어선 문재인, 현재의 이재명 정권까지 양당체제 하에서 미국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친미숭배ㆍ흡수통일을 추구하는 양대 정권에서 미국 패권의 지속성, 영속성을 보장받으려 했다.
남북관계의 적대관계로의 전환과 두 국가론이 제기되는 현실은 민족모순이 사라졌다는 근거가 아니라 반대로 민족모순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급기야 최악의 형태로 폭발해버린 상황을 보여준다.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전환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민족모순을 부정ㆍ경시한다면 심화되는 민족모순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부정ㆍ경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 변혁전략도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다.
민족 없이 민족모순이 생겨날 수는 없다. 적대화된 남북관계, 두 국가관계 선언으로 남과 북은 더 이상 같은 민족이 아니게 된 것인가? 앞에서도 실제 독일의 사례를 들어 사회주의 민족, 자본주의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하나의 민족 개념을 부정하는 경우가 있다.
동독의 울브리히트 제 1서기는 1970년 1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여전히 독일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주장은 허구이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 그리고 독점재벌과 노동자 사이에 하나의 민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응수하며 동독을 사회주의 독일 민족(sozialistischer deutscher Nationalstaat)이라고 주장하였다.
동독에서 민족문제에 대한 전격적인 방향 전환은 1970년으로 볼 수 있고, 이를 야기한 결정적 계기는 1969년 10월에 출범한 브란트(Willy Brandt) 서독 총리가 1969년 10월 28일 시정연설에서 주장한 “독일민족의 통합 유지(den Zusammenhalt der deutschen Nation zu wahren)” 노선 정책이었다. 동 연설에서 브란트 총리는 동독에 대한 국제법적인 승인을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비록 독일 영토 위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서로 외국은 아니다. 상호관계는 ‘단지 특별한 관계(besonderer Art)’이다”라고 하며 서독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할슈타인 독트린(Hallstein Doktrin)에 의한 단독대표권을 폐기하였다. 이는 “사실상”의 1민족 2국가를 인정하면서 동독의 주장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1970년 1월 14일 연방하원의 “민족 상황에 관한 보고(Bericht zur Lage der Nation)”에서도 민족의 단일성(Einheit der Nation) 유지를 재차 강조하였다. 브란트 총리는 “민족이라는 개념에는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의지가 통합되어 있다”라고 하면서 “동독 (1968년) 헌법에서조차 동독 자신을 독일 민족의 일부라고 하고 있다”라고 언급하였다.
이에 대한 동독의 대응은 1970년 초 2민족론(Zwei-Nationen-These)이었다. 울브리히트 제1 서기는 1970년 1월 19일의 국제기자회견에서 “여전히 독일 민족이 단일 민족이라는 주장은 허구이며,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 그리고 억만장자와 노동계급 사이에는 민족적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응수하면서 동독을 사회주의 독일민족국가(sozialistischer deutscher Nationalstaat)라고 주장하였다…
새로운 민족개념의 공식적 프로파간다는 그사이 울브리히트를 권력에서 밀어내고 새로운 당서기장(1971.5.)이 된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에 의해 1971년 6월의 제8차 당대회에서 시작되었다. 호네커는 당대회 경위보고서에서 “민족문제에 관해서는 역사가 결정할 것”이라고 짧게 언급하면서, “부르주아 민족이 존속하고 있고 민족문제가 부르주아와 노동자 대중 사이에 화해할 수 없는 계급모순을 통해 결정되는 서독과 달리 동독에서는 사회주의 독일국가, 사회주의 민족이 발전되었다”라고 주장하였다.(이봉기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 《현대북한연구》, 28권 1호(2025),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우리 분단과 통일 문제의 맥락에서 동서독의 두 국가 성립, 갈등 그리고 통일처럼 자주 논의되는 나라는 없다. 오스트리아,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진원지였던 독일의 주변부에 있는 나라로서 이혼과 재결합의 복잡한 과정을 겪었지만, 안정된 결말을 보았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됐지만, 강대국에 의한 분단으로 이어지면서 동족상잔의 비극까지 경험한 한반도의 운명을 나치 독일의 패망 후 독일 땅에 성립된 두 국가의 운명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동안 서독은 남한, 동독은 북한이라는 전제로부터 얼마나 많은 오류를 낳았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다. 동독이 1974년 헌법 개정을 통해 ‘독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털어내고 ‘사회주의 독일국가, 사회주의 민족’이라고 규정한 것에 빗대어 북도 이제 비슷한 논거로 민족 개념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다. 동서독을 막론하고 독일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안고 있는 원죄적인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민족 문제 공론화를 주저했다. 일제와 미제와의 투쟁을 자기 정체성의 뿌리로 보는 북이 하루아침에 민족 개념을 버리고 동독처럼 ‘두 국가, 두 민족’으로 돌아섰다는 성급한 주장은 동독과 북한 사회주의의 성립 배경의 차이를 무시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9월20~21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14기 13차 회의에서 “우리는 명백히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면서 “적대국과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완전한 집착과 집념의 표현일 뿐이며 그렇게 고집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 발언도 두 개 국가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두 민족에 관한 내용은 아니다.(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 사회학 교수, “적대적 두 국가론”, 경향신문, 2025.10.14)
독일과 남북의 민족문제는 그 출발과 역사성이 전연 다르다. 독일에서 민족형성은 봉건제의 몰락과 현대 자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시작되었다. 1871년 프로이센 중심으로 통일될 때까지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고 300개 이상의 공국과 개별 국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독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형성기에 진보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나찌에 의해 배타적이고 인종주의적으로 반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독일 파시즘이 무너지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개 연합이 독일을 분할 점령하면서 독일전체의 사회주의를 막는다는 속내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의 재무장과 나찌의 부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분단이 되었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안고 있는 원죄적인 무게 때문에 오랫동안 민족 문제 공론화를 주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우리 민족형성은 일찍이 단일한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부터 외부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더욱 오랜 역사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현대의 민족주의도 저항적 민족주의로 민족해방투쟁의 일환으로 형성되었다. 분단도 식민지배의 연장과 반공 전초기지를 형성하기 위해 제국주의에 의해 되었고 이에 맞서 싸우는 통일이념은 반제국주의적이고 진보적 민족주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민족은 각 나라마다 형성 시기와 역사적 배경이 다르지만 순수 개념의 산물이 아니다. 민족은 실존하는 것이다. 실존하는 민족을 바탕으로 민족개념이 나왔다. 민족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스탈린에 의해서 나왔다.
민족이란 언어, 지역, 경제생활 그리고 문화의 공통성에 표현되는 심리 상태 등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발생하였으며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람들의 공고한 공동체이다(《맑스주의와 민족문제》)
이 정의에 의하면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니고, 공동경제생활, 지역, 언어 등 역사와 분리되어 제기되는 신비적인 “운명의 공동체”도 아니다. 스탈린의 정의는 상당부분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만, 특수성을 가진 우리 민족과 민족문제에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일제의 식민지배가 우리민족을 형성시켰다는 식민이론으로 왜곡되고, 분단으로 “지역, 경제생활”이 인위적으로 나눠진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족, 조선민족 두 개의 민족이 되게 된다. 이러한 민족이론으로서는 단일한 지역적 통일성을 가지지 못한 수백만 해외동포는 민족 구성원이 아니고 통일운동의 한 주체도 될 수 없다.
조선이 스탈린의 정의를 인정하면서 “주체적으로” 내린 민족의 정의는 “한 민족의 민족의 형성 시기는 민족 마다 다르지만 매개 민족은 피줄과 언어지역과 문화생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공고화된 사회적 집단이며 여러 계급, 계층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민족주의에 관한 주체의 이론〉, 《김정일선집》 15권, 256쪽)이다.
여기서 동독의 사회주의 민족, 자본주의 민족으로 분류를 전면 평가할 수는 없지만, 같은 민족 안에도 여러 계급, 계층으로 나눠져 있는 것처럼, 민족과 계급은 서로 다른 범주인데 민족을 계급의 기준으로 분류한 것은 오류이다. 조선에서 언어적 통일성과 혈연적 통일성을 가장 중요한 민족의 요소로 강조한다.
피줄의 공통성은 동일한 조상을 가지고 력사적으로 오랜 기간 사회 생활을 함께 하여 온 것으로 하여 이루어진 민족 성원들의 공통적징표이다. 이것은 씨족, 종족의 징표와 달리 순수 혈연관계, 생물학적 요인만의 공통성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의 공통성이기도 하다. 민족은 인종과도 다른 사회적 집단이다. 인종은 피부색을 비롯한 유전적, 생물학적징표의 공통성에 기초한 사람들의 집단이다.(같은 글)
이 민족정의 중 피줄의 공통성은 인종을 기초로 출발한다 하더라도 사회적ㆍ역사적 요인의 공통성으로 확장된 개념이다. 어느 모로 보나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객관적으로 강력하게 실존하는 하나의 민족이 외세에 의해 갈라지면서 분단모순이 생겼다. 민족관계의 파탄 선언으로 실존하는 민족이 사라질 수는 없다. 앞서 말했듯 이 파탄선언은 오히려 하나의 민족이 분단되어 나타난 질곡과 모순이 더 깊어졌다는 것이지 민족과 민족모순이 사라졌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적대적 두 국가관계는 객관적으로 실존하는 민족의 부정이 아니라 민족‘관계’의 파탄이다. 가령 형제‘관계’의 파탄을 두고 이들은 애초부터 형제가 아니었다든가 이제 더 이상 형제가 아니란 주장이 성립될 수 있는가? 그러나 형제라는 실존이 형제애를 자동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형제애가 거세되고 유산상속을 가지고 골육상쟁이 벌어지면 피를 나눈 형제관계도 남보다도 못한 적대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다. 동족관계의 거세는 실존하는 동족ㆍ단일한 민족애, 민족성, 민족우애를 부정하는 민족’관계’의 파탄인 것이다.
조선에게 최대의 과제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발전이다. 전쟁위기와 내정간섭은 조선의 사회주의 전면 발전에 최대의 걸림돌이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조선으로서도 분단모순은 현존하는 심각한 질곡이자 사회발전의 걸림돌이다.
최근 한국주둔 미군사령관이 어느한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아시아심장부의 단검》이라고 묘사하여 국제적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주둔 미군사령관 브런슨은 《중국인들이 중국동해안에서 바라볼 때 첫눈에 보이는것은 아시아의 심장부에 꽂힌 단검인 한국이다. 일본은 일종의 방패막이역할을 하며 중국이 중국남해로 진출하려는 야망을 저지하고 남동쪽으로 필리핀까지 진출하려는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운운하였다…. 이 모든것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자기의 주요경쟁적수를 포위억제하는데 기본목적을 둔 미국의 새로운 국가방위전략에서 미한동맹이 핵심축으로 자리잡고있다는것을 명백히 실증해주고있다.
날로 더욱 대결지향적으로 진화하고있는 미한동맹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군사적긴장도수를 더욱 높이고 항시적인 불안정을 조성하는 근본요인으로 되고있으며 이는 평화와 안정을 지향하는 지역나라들과 국제사회의 응당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국제문제평론가 김명철, “《아시아심장부의 단검》발언은 미국의 패권추구와 랭전식사고방식의 집약적발현이다”, 조선중앙통신, 6월)
미국의 이러한 신패권주의는 “특히 한국내에서 한국이 미중경쟁관계속에서 전략적기로에 놓여있으며 종당에 제2의 우크라이나와 같은 처지에 놓일수 있다는” 문제를 낳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주둔 미군사령관의 이번 발언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을 진영대결과 신랭전의 기본전장으로 삼아온 미국이라는 평화파괴의 장본인, 세계최악의 전쟁제국의 흉상을 직관해주고있다.”
조선은 미국의 침략적 행태는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을 진영대결과 신랭전의 기본전장”으로 만든다고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의 우려가 단지 중국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이는 도리어 대조선 적대를 기본으로 하면서 대중적대로 확장되고 있다. 따라서 조선도 제국주의 침략책동과 여기에 돌격대 역할을 자처해 왔던 한국과 대결하게 되면서 자주적 사회주의 발전 추구에 장애가 생긴다.
조선에서 말한 적대적 두 국가론은 민족의 부정이 아니라 동족의식이 거세되고 사사건건 정권교체와 흡수통일을 노리는 동족성이 거세된 권력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동족의식을 가지고 자주성을 추구하고 흡수통일을 반대하면 다시 민족관계를 추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더욱이 조선이 통일론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과연 민족모순 해결 노력을 포기했는가?
조선으로서도 분단으로 인해 생긴 문제는 목구멍의 가시 같은 것이다. 적대관계 전환을 선언하고 통일을 포기했다고 해서 엄연히 존재하는 깊어지는 모순해결을 방치할 수는 없다.
조선의 대외관계에서 적대적 두 국가 관계만을 부각해 논란이 되고 있는데, 국제연대의 강화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는 중국, 쿠바 등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관계 발전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면서 사상과 제도를 초월하여 자주와 정의를 지향하는 반미자주 국가들과의 연대 강화가 있다. 이는 서방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다극화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행하지는 않겠”지만 미국을 등에 업고 “대한민국이 우리를 상대로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고 그리고 “그러한 기회가 온다면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리겠다”는 것은 유사시 무력에 의한 영토완정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북이 다 파괴되는 참혹한 전쟁을 의미하는바 북으로서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 할 것이다.
대신 미국과의 대결전을 통해 미국을 힘으로 굴복시켜서 미국의 침략책동을 분쇄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전략이다. 동족의식이 거세된 한국 양당 집권세력과의 평화적 통일추구는 파기했지만, 미국과의 대결전은 분단해결을 여전히 대외관계의 주요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이 적대관계를 철회하면 이러한 변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변화도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의 현실성
ㅡ [사람과 세상]의 노선전환을 중심으로
남북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기존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과의 위로부터의 민족통일 정책 추구도 전혀 기대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정권이 평화공존을 말하고 교류협력을 통한 남북관계 재개를 원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흡수통일 전망을 폐기하지 않았고 특히 한-EU 공동성명을 보면 여전히 외세에 의존하여 조선의 비핵화와 러시아와 조선의 군사협력을 불법적이라 규탄하며 적대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지도 없고 여전히 이재명 정권의 검찰은 무소불위로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휘둘러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면목표로서 민족대단결과 자주통일의 전망은 사라졌다. 그러나 장기목표로서의 통일전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는 분단모순을 해결한다는 전망과 노력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단모순을 해결하고 민족대단결에 입각한 통일의 전제조건을 갖추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자주·민주·통일(자민통) 강령은 적대화된 남북관계 현실에서 폐기해야만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정세 속에서 새로운 질로 제시되어야 하는가?
[사람과 세상]은 기존 자주·민주·통일이라는 노선을 내걸었던 정파들의 한국사회에 대한 인식 중 논란이 되고 재검토 되어야 하는 몇몇 개념의 문제를 가지고, 또한 외형적ㆍ형식적 변화를 본질적 변화로 간주하고 완곡하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자민통 노선의 사실상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람과 세상]이 “한국 사회 성격”과 “한국 진보운동의 정치노선”을 통해 자민통 강령을 “평등, 평화, 자주” 노선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드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우리 국민의 선택이지 미국의 낙점이 아니다. 역대 정부가 친미 정권일 순 있으나 그것이 식민지란 성격 규정의 기준은 될 수 없다.”는 주장에서 보듯, 민주주의 발전과 (신)식민지 규정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둘째, “삼성, 현대, SK, LG 등” 재벌의 거대한 성장으로 인한 “한국 자본주의의 급격한 변화”다.
셋째, “1948년 분단 이래 세월이 두 세대 넘게 흐른 결과” “분단과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남과 북에 ‘적대적 두 개 국가’가 실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는 한국 진보운동의 주요 정치 과제이다. 진보운동은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개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존 자민통 노선의 이름으로 한국사회 성격을 분석했던 과거의 논리를 다 살펴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더 발전하고 변화된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자주ㆍ민주ㆍ통일이 강령상으로 유효한 변혁전략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과 세상]은 “민주화 이후 역대 정부는 우리 국민의 선택이지 미국의 낙점이 아니다.”는 논리를 들어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주장한다. 미국이 군사쿠데타를 배후에서 조종하여 권력자를 직접 내세웠던 과거에 비해 한국 내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권력이 선출되기 때문에 “미국의 낙점”이라는 표현은 겉으로 보면 과도한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자민통 강령 중 자주의 과제가 더 이상 시대적 과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여전히 외국 사례를 보면 미국은 자신들의 이해와 맞지 않으면 정권교체를 기도하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인물로 교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직선제 이후에도 한국의 정권 중에는 누가 되든 미국의 의사를 공공연히 거스른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은 한국 내 저항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대신 미국은 한국민들에 의해 선출된 정부의 면면이 어떻게 바뀌든 내정간섭을 통해서든, 자발적 충성을 통해서든, 한미동맹이라는 힘을 통해서든 친미정권으로 만들어낸다.
과연 민주화 투쟁의 성과 이후에 선거로 권력자들이 선출된다고 해서 이 권력을 자주적 권력이라고 할 수 있나? 한국에 온전한 군사주권이 있는가?
과연 한국의 대내외 정책 가운데 미국의 의지, 의도에 반하여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자주적 권력이라면 미국의 간섭 없이 통일정책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한미워킹그룹을 통한 통일정책에 대한 미군의 내정간섭으로 인해 통일노력이 물거품이 된 사실을 보지 않았나?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은 윤석열의 내란과 외환을 낳았다. 미국의 대북적대 침략전쟁 책동은 보수를 표방하든 민주를 표방하든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좌우하는 근본 장벽이다. 미국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식민지 배상 외면 등으로 한미일 동맹이 균열될 것을 우려하여 일본에 대한 적극적인 항의를 가로막고 한일 협력을 내세운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의 군국주의 책동에 동참하게 하고 한일군사정보협정 연장케 한다.
IMF당시 구제금융을 빌미로 한 신자유주의 긴축과 정리해고, 노동유연화, 외국산업 규제완화 등은 한국의 경제정책이 자주적일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트럼프의 관세를 빌미로 한 강도 같은 통상압력에 굴종하여 한국정부는 25%에서 15% “관세 인하” 조건으로 연간 200억 달러 한도의 현금 투자와 총 3,500억 달러 (약 490조 원)의 대미 투자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15% 관세인하는 기존 0%로 유지되던 무관세가 오른 결과에 불과하고 철강·알루미늄 산업은 50% 고율 관세가 유지되어 수출길이 막혀 버렸다.
[사람과 세상]은 한국 “재벌의 거대한 성장”과 “한국 자본주의의 급격한 변화”를 주장하지만, 과연 이러한 성장과 변화가 경제주권을 가져왔는가?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의해 한국을 중국과의 대결장으로 만든 사드도입과 미국의 대리전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막대한 재정지원과 무기 수출 강요, 미국 정치권의 쿠팡을 비호하기 위한 전방위적 외압, 미국산 최첨단 무기 수입과 주둔비 인상, 불평등한 한미협정, 치외법권적인 특권을 바탕으로 저질러지는 주한미군 범죄자 문제, 군사작전권, 외국 거대 은행과 산업자본의 국내기업 소유 등 미국에 대한 한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주권상실은 한국자본주의의 외형전 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변하는 현실이다.
국회 내의 한국정치인들은 친미일색이다.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노예화는 한국의 정신적 노예화를 부추겨 미국식 사고, 제도, 가치를 숭배하고 미국이 만든 일방잣대를 따라 조선, 중국,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이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그런데 이 수다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지 못하면 한 사회의 근본모순과 주요모순은 변치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이다. [사람과 세상]은 성장한 재벌을 매판자본이라 할 수 있느냐고 하는데, 중국에서 외국 자본가와 자국 시장을 중개하는 무역상이나 외국 상사의 대리업자를 뜻하는 의미의 소규모 매판자본은 아니지만, 확장된 의미로서 외세의존적·외세추종적 의미의 매판성은 한국자본주의의 성장의 조건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미군철수가 미국의 겁박 수단이 되고 이 전가의 보도를 사용하면 화들짝 놀라 한국은 미국의 터무니없는 무슨 요구라도 다 수용하게 될 정도로 한국사회는 미국 없이 사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적 분리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주성이 아닌 정치ㆍ경제ㆍ군사ㆍ문화ㆍ정신적 매판성, 사대성, 굴종성은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심각한 질병이다.
[사람과 세상]은 “이탈리아 극우 정부가 친미라고 미국의 식민지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2026년 3월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양자 조약을 넘어선 미국의 이탈리아 군 기지 사용은 의회 승인 대상이라며 미국이 이란과 전쟁 중 시칠리아 공군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불허하고 이란 전쟁에 참가하는 미국 군용기의 스페인 영공 통과를 전면 불허했다. 마르가리타 로블레스 스페인 국방부 장관은 이란과의 전쟁을 “전적으로 불법적이고 불의한 전쟁”이라고 규정하며 미국을 규탄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탈리아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비판하며 이스라엘과의 국방 협정 연장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한국과 이탈리아 정권 중 누가 더 극우 정권인지 의문이 갈 정도다.
이탈리아 이러한 독자적 행보가 가능한 것은 불평등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비해 이탈리아와 미국의 군사협정은 주로 나토(NATO) 동맹을 기반으로 한 상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의 역대 정권 중 이렇게 강력하게 미국의 의사에 반대하고 미국을 강력하게 규탄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전후에 미국에 점령을 당하기도 했지만 파쇼 추축국으로 미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했던 이탈리아와 미군이 ‘점령군’으로 진주해 반공 전초기지로 삼은 한국을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 있는가? 이탈리아와 한국의 상황은 도리어 [사람과 세상]의 주장을 스스로 반박하는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과 세상]은 “사회 성격은 주권의 소재 여부로 규정된다.”고 하면서도 “식민지란 성격 규정”은 한사코 거부하는데, 주권의 소재 여부로 한 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면 한국이야말로 미국의 변치 않는 (신)식민 사회인 것이다.
[사람과 세상]은 “식민지란 성격 규정”을 부정하면서 한국사회 변화상을 주장하나 ‘신’식민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사람과 세상]은 한국에서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권력자를 직접 선출하는 예를 들어 식민성을 부정하는데, 현대 제국주의는 영토지배와 식민지 총독을 가지고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형태에 비해 신식민지는 식민지배의 일종이지만 고도의, 세련된 식민지배 형태로 변화했다.
물론 레닌은 《제국주의론 노트》에서 직접적인 식민지배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반(半)식민지 국가의 예도 들었다. 오늘날 현대제국주의 지배를 두고 신식민지적 지배형태를 간과하면 제국주의 성격 분석을 온전하게 할 수 없다.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적인 비동맹 기구에서도 신식민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다. 1960년 4월 서아프리카 가니 공화국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ㆍ아프리카 인민연대회의(코나클리 회의) 자료를 보면 신식민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그 민족이 전적으로 독립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1) 법령이 국민의 완전한 동의를 얻지 않았는데도 국민의 이름으로 제정되었을 때.
(2) 외국군대가 독립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의 영토에 주둔하거나 혹은 군사기지를 두고 있을 때.
(3) 어떤 나라가 식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의 일원이거나 혹은 제국주의 국가와의 군사동맹에 참가하고 있을 때.
(4) 어떤 국민이 정치ㆍ군사ㆍ경제사회의 모든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민족주권에 구비된 모든 기능을 스스로의 재량으로 완전히 행사하지 못할 때.
(5) 세계인권선언에서 정한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존중되고 있지 않을 때.(《신식민주의론》, 콜린 레이스 외 지음, 〈신식민주의에 관한 이론적 문제〉, 하부 하리호에土生張穗, 도서출판 한겨레)
방대한 외국군대와 불평등한 조약, 한미군사동맹을 바탕으로 하고 국가보안법이 인권을 말살하며 정치ㆍ경제ㆍ군사ㆍ정치ㆍ문화ㆍ정신적 주권이 없는 한국의 현실을 이는 마치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국사회를 콕 집어 규정을 내린 듯하다.
과연 자주ㆍ민주ㆍ통일 중 자주의 과제는 시대착오적이거나 비현실적 요구인가? 한국사회의 수다한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모순인가?
[사람과 세상]이 한국사회 변화를 주장하는 논리는 뉴라이트나 청산ㆍ변절자들의 논리로 넘어갈 우려가 있다.
뉴라이트 핵심 이론가 안병직, 이영훈이 일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게 된 논리적 배경을 따라가 보자.
안 교수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자신의 이론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경제는 파탄이 아니라 오히려 급속히 성장한 것이다. 식민지 사회에서는 경제발전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그는 당황했다. 그러던 중, <역사평론(歷史評論)>에 실린 나카무라 사토루(中村 哲)의 「중진자본주의론」을 접한다. 안 교수는 제3세계에서도 자립적인 자본주의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나카무라 교수의 주장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제3세계 경제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면서 안병직의 역사관은 뿌리부터 달라졌다. 전향한 안 교수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흔쾌히 동의하지 못했다. …이영훈 교수는 안 선생보다 먼저 사회주의운동가의 길을 벗어났다.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봉고차 안에서 이영훈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으로 명성을 얻었던 당대 대표적 좌파지식인 박현채 선생에게 ‘저 도시의 불빛을 보십시오. 저것이 어떻게 신식민지입니까.’라며 도발했다. 박현채 선생은 격렬하게 화를 냈다. 독서 모임에 나오지 않는 동료가 걱정되어 찾아갔을 때, ‘자본론’도 읽지 않은 사람과는 토론할 수 없다는 말에 이영훈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뉴데일리 2009. 5.4, 안병직과 이영훈의 깊고 폭넓은 대화)
한국재벌의 성장과 발전을 이유로 변절을 정당한 경우를 보자.
한국의 경우도 이런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와 같은 글로벌 대자본이 노동계 상층과 고학력층을 회유하고 중서민 대중에 실질적인 경제적인 혜택(또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하고 승리한다는 환상만으로도)을 주면 ‘진보-보수’를 둘러 싼 논쟁에서 진보진영은 소통ㆍ민주주의 등을 중심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전투적인 중간층으로 제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되 여기에 중서민 대중의 구체적이고 실물적인 이해관계를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민경우, “민주노동당의 ‘이명박 정부 퇴진론’ 비판, ‘이명박 정부 퇴진론’은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초점> 민주노동당의 ‘이명박 정부 퇴진론’에 대해, 통일뉴스, 2009.06.27.)
대학 시절 ‘매판자본’으로 봤던 삼성전자가 소니 등을 다 합친 일본 전자업체보다 매출액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수십 년간 퇴영적 주체사상과 민족의식에 매몰돼 있는 동안, 세상에는 스마트폰과 드론, 인공지능이 개발돼 있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 투쟁이었고 역사를 후퇴시켰다. 우리가 해보려던 한국 사회의 재편 작업도 애초에 틀렸던 것이다.([최보식이 만난 사람] [간첩 혐의로 두 차례 수감됐던 운동권의 자기 비판… 민경우 前 범민련 사무처장] “그땐 ‘민주화운동’인 줄 알았지만, 퇴영적 이념 투쟁이고 歷史 후퇴시켜”, 조선일보, 2020.03.30.)
한국의 대자본은 2009년 현재 세계 굴지의 대자본으로 성장했고 반도체, LCD, 조선, 핸드폰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의 브랜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민경우, 《진보의 재구성》)
[사람과 세상]이 진보운동을 청산한 것은 아니지만 논리구사, 변화의 근거가 변절자들과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어서 청산주의로 나아갈 심각한 우려가 든다.
한 사회의 발전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기존 자민통 노선에서 한국사회를 “반(半)자본주의”로 보는 입장은 한국사회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특수성, 기형성, 왜곡성을 제기하는 의미가 있지만,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의 문제에 대해 온전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에 비해 신식민지는 종속적이지만 국내 자본의 발전 가능성이 열려 있다. 특히 한국자본주의는 미제의 반공주의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체제경쟁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 했다. 한국자본주의는 외형적으로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다. 한국자본주의의 생산력, 과학기술은 고도로 발전했다.
[사람과 세상]의 분석처럼, 한국은 외국에 자본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 이를 근거로 자본수출=제국주의니 [사람과 세상]은 한국을 제국주의로 보고 있다는 말인가? [사람과 세상]이 이를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를 두고 한국사회가 제국주의나 준제국주의, 아제국주의로 발전했다고 보는 경우가 진보진영에서는 제법 있다. 그러나 자본수출은 세계시장을 분할 지배할 정도로 양적ㆍ질적으로 국제적 규모로 성장했는지 보아야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본수출이 “세계의 대다수 나라와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과 착취의 토대”(레닌, 《제국주의론》) 역할을 하는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과잉자본 수출을 통해 막대한 이권과 특혜를 차지하고 더 나아가서 그 나라의 내정에 공공연히 간섭하고 심지어 정권교체를 시도하는 등 자주성을 말살하는 것이 자본수출이 제국주의적 면모를 갖게 하는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열강들이 수백 개 나머지 나라, 민족들, 수십억 식민지ㆍ반식민지를 억압하고 지배하며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체제를 제국주의 체제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자본주의와 국가가 과연 수백 개 나라와 민족을 억압, 지배하고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제국주의 체제로 발전했는가? 한국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것은 분명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국주의, 특히 미일제국주의에 군사, 정치, 금융적으로 종속돼 있다. 한국자본주의가 파병을 하고 우크라이나 등에 재정, 군사지원을 하는 것은 제국주의라는 반증이 아니라 도리어 미국에 자주성을 상실한 속국이라는 것의 반증이다.
맑스주의는 식민지의 “문명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을 따라 봉건적 관계를 파괴시키고 전 세계에 자본주의 시장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하고 있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 관계들을 파괴하였다… 자신의 생산물의 판로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전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고, 도처에서 정착하여야 하고, 도처에서 연계를 맺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을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 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넣는다….한 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맑스ㆍ엥겔스, 〈공산주의자당 선언〉, 《저작 선집 1권》, 402-404쪽)
레닌도 제국주의의 자본수출이 수입 국가에 저발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정체시키는 경향을 가지”나 자본주의 발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자본수출은 그것을 수입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며, 그 발전을 크게 가속화시킨다. 그러므로 자본수출이 자본수출국의 발전을 어느 정도 정체시키는 경향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동시에 전세계에 걸친 자본주의의 발전을 더욱 확대ㆍ심화하는 것이다.(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옮김, 96쪽)
그러면 맑스와 레닌의 이론은 남미와 다를 나라를 지배하고자 하는 ‘확산이론’, ‘세계화’ 이론 같은 제국주의 ‘근대화’ 이론과 같다는 말인가? 맑스와 레닌이 자본주의 발전의 측면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을 변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영국의 인도지배가 인도의 낡은 봉건적 관계를 파괴했지만 그것의 정치적, 계급적 의미는 무엇인가?
그들이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은 인민대중을 해방시키지도 못할 것이고 그들의 사회적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과 개선은 생산력의 발전 여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산력들이 인민의 것으로 되느냐 않느냐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들이 틀림없이 하게 될 일은 이 해방과 개선을 위한 물질적 전제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까지 부르주아지가 이 이상을 일을 한 적이 있는가? 부르주아지가 개인과 민족 전체를 몽땅 피와 진흙, 비참과 타락 속으로 끌고 가지 않고서 진보를 이룩한 적이 있는가?(맑스, 영국의 인도 지배의 결과, 선집2권, 박종철출판사, 424쪽)
맑스는 영국 자본주의의 인도에 대한 지배가 인도의 봉건제의 경제관계와 신분제적 전통, 관습을 무너뜨렸지만 그것은 오직 착취와 억압으로 인도 인민이 일방적으로 고통당하고 희생당한 결과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의 해방은 과거의 봉건제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인도 지배가 낳은 변화를 이용해서 인도 인민이 영국 지배자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수행하는 것밖에 없다. 영국의 인도 지배는 인도 인민으로 하여금 해방의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영국 자본가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단지 이 점에서만 진보적인 것이다.
한국에서 일제의 식민지배 역시 식민지 조선을 제국주의 시장으로 지배하고 원료를 수탈하고 인민을 도탄에 빠뜨렸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조선의 자주적 발전의 기회를 봉쇄하고 일제의 식민지배에 용이한 방식으로 기형적으로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박정희의 자본주의 발전 역시 외세의 수탈과 착취를 보장하면서 반공주의 백색테러 체제를 구축하여 저임금과 빈곤, 장시간 노동, 무권리 상태로 노동자들을 질식시키면서 진행되었다.
[사람과 세상]은 “한국 진보운동의 정치노선”을 통해 자민통 강령을 “평등, 평화, 자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과 세상]은 자주의 가치를 전면 폐기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 가치를 뒤로 후퇴시키고 그 자리를 평등의 가치로 채웠다.
과연 한국에서 외세로부터 자주성과 주권을 쟁취하고 하는 정치적 과제는 뒤로 물리고 다른 가치로 전환해야 할 가치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세월이 얼마나 흐르고 한국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든 자주성 쟁취의 과제는 온 역량과 힘을 다 쏟아 쟁취해야 할 과제다.
[사람과 세상]이 강조하는 평등의 가치는 자주성 쟁취와 전연 별개의 가치가 아니다. [사람과 세상]은 “자주파의 자주는 ‘반미자주’를 의미하며, 반미자주론은 한국 사회가 미국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이므로 자주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실현되었으며, ‘자주 없이 민주 없다’라는 명제는 진리가 아님이 현실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민통 강령의 자주는 민주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기존에 “자주화 없이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었다면, 그것이 자주의 가치를 집중 부각시켜 해결해야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1987년 이후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실현되었으며, ‘자주 없이 민주 없다’라는 명제는 진리가 아님이 현실로 입증되었다”면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는 것인데, 과연 한국사회 민주의 과제는 실현되었는가?
[사람과 세상]은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실현되었”다는 주장에서 보듯 민주의 과제, 민주주의를 직선제라는 형식적ㆍ절차적 민주주의로 제한적으로 보고 있다. [사람과 세상]은 민주주의를 협소하게 보고 이를 통해 민주화된 시기에는 의회 “집권전략”을 실현할 조건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정치활동의 자유,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자의 전면적 권리, 민중주권의 확보 등으로 새 사회로 가는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면 이적단체로 내몰고 조선에 대한 비핵화 요구가 시대착오적이고 전쟁위기를 고조시킨다는 주장을 친북세력이라고 매도하고 북의 인사를 만났다는 이유로, 자주적인 사상과 양심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간첩조작을 하고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는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전혀 성취하지 못했다. 전 세계에서 공산당이 없는 나라는 한국사회 말고 어디에 있는가? 노동악법이 노동자의 생존을 말살하고 노동자를 적대ㆍ혐오하며 파업권이 무력화 되고 원청과의 교섭권조차 부정되며 비정규직으로 불안정노동자층이 다수 노동자의 고용형태가 되고 심지어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쟁취됐는가?
[사람과 세상]이 핵심 요구로 내거는 “불평등 타파”, 평등의 요구는 바로 민주주의 요구이며 이는 자주를 뒤로 미루는 전략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자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쟁취해야할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사람과 세상]이 자주를 대신해 “기본 정치 과제”로 전면화 하는 가치는 진보진영 중 평등파로 대변되는 정파가 중심으로 내거는 가치다. 이는 과거에는 “계급해방을 선차적 해결과제”로 사고하는 피디파의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 노선은 노동자의 계급투쟁에 집중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계급해방의 실현조건, 계급해방의 교두보를 건너 띠고 있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계급해방을 위해 필수적인 분단문제 해결과 제국주의 축출의 과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 사회 변혁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소비에트식 혁명노선이라는 근본한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과 세상]은 과거 피디파의 “혁명노선”을 “집권노선”으로 전환시키며 자주의 과제와 “불평등 타파”라는 계급문제를 대치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세상]은 “민족해방 없이 계급해방 없다”는 슬로건이 계급해방으로 가는 조건을 실현하기 위한 요구를 넘어 계급투쟁, 계급문제를 주요모순 해결이라는 명목 하에 뒤로 미루고 경시하는 편향의 반대 편향으로 자주를 경시하고 자주와 민주를 분리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히 “자주는 ‘반미자주’와 동의어가 아니며 그 의미는 단지 반미에 제한되지 않는다. 진보운동은 미국만이 아니라 그 어떤 나라라도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자주는 진보운동의 대외정책 원칙이다.”는 주장은 오늘날 피디파들이 반미자주에 대한 투쟁을 경시하고 기권하는 논리를 닮아 있다. 오늘날 “자주는 ‘반미자주’와 동의어가 아”닌 것이 아니라 반미자주가 아닌 자주는 아무런 이론적, 실천적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온 힘을 다해 미제국주의 지배와 간섭을 뚫고 자주성을 쟁취해야 하는 시기에 자주가 “단지 반미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반미투쟁을 소홀히 하고 기권하게 될 심각한 우려가 있다. 더욱이 반제의 핵심이 반미인데 “진보운동은 미국만이 아니라 그 어떤 나라라도 우리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는 주장은 미국만 아니라 – [사람과 세상]이 자세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 러시아, 중국을 제국주의로 보고 반미만 아니라 이들 모든 나라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좌파’ 일각의 양비론 주장으로 비춰진다.
“1948년 분단 이래 세월이 두 세대 넘게 흐른 결과” “분단과 통일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와 이해관계는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는 점으로 노선전환의 근거로 삼는 [사람과 세상]의 주장은 대중추수주의로 흐를 수 있다. 1948년 분단 이래 분단모순이 오늘날 전쟁위기를 낳고 적대적 두 국가로 전환하여 민족의 염원인 통일전망이 희미해지고 이에 따라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분단문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떨어진 것은 분단문제에 기권할 근거가 아니라 분단문제가 점점 더 골이 깊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분단과 통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중립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미제에 대한 숭배감정은 점점 더 높아지는 반면에 대북적대, 더 나아가 대중적대감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단극복과 통일문제에 무관심해지는 것은 국가보안법 철폐, 한미동맹 문제에 점점 더 무관심해지고 적대감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단을 영속화 하는 것은 이 사회모순이 아무리 심각해도 이 사회를 극복할 정치적 대안을 포기하고 이 사회 착취, 지배질서를 그대로 수용하는 정치적 체념과 기권을 의미한다.
[사람과 세상]은 “남과 북에 ‘적대적 두 개 국가’가 실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는 한국 진보운동의 주요 정치 과제”고 “진보운동은 남북 관계를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개 국가 관계로 재정립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적대는 계속되고 이것이 대중적대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재명 정권의 평화공존론이 허구이고 말과 달리 대북적대를 고착화하는 것을 봤을 때, 적대적 두 국가관계를 깨고 어떻게 전쟁을 막고 평화는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분단혁파와 통일의 전망 없이 평화적 두 국가관계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쓸 수는 없는 법이다.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이 근본문제라는 장벽 앞에 무용지물이 되는 것을 우리는 역사적으로 흔히 봤다.
[사람과 세상]의 노선전환이 진보당 분파만의 주장이 아니라 오늘날 미군철수, 자주통일, 국가보안법 철수 투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신좌파” 인권 노선을 전면에 내건 진보당의 전반적 기류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우려가 된다.
물론 [사람과 세상]이 자신의 정치노선을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이에 대한 토론과 검토를 할 수 있게 한 점은 강령적 논의가 취약한 우리운동에서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그 의의에 맞게 남북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한 상황 속에 [사람과 세상]이 제출한 노선에 대해 동지적 방식으로 강령적 논의가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5. 강령적 수준의 토론, 전략적 수준의 논의로 우리운동을 전진시키고 새 사회를 만들자
진보운동의 최종 목표는 집권이 아니다. 집권은 해방의 수단이 될 때만 의미가 있다. 집권을 해방의 계기가 아니라 그 자체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의회주의다. 의회주의가 문제인 것은 자본주의 착취 체제, 제국주의 지배질서, 제도, 기구 등을 그대로 두고 그 속에서 집권을 통해 진보적 정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당, 노동당, 사회당을 표방했던 당들이 집권을 통해 사회주의 정책을 실현해보겠다고 했으나 집권 이후에는 체제의 부속물이 되어 우경화 되고 급기야는 자본주의 양당보수지배체제의 일환이 돼버렸던 경험들이 의회주의의 근본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1973년 미제와 미제의 주구 피노체트 군부 세력에게 권력을 찬탈 당했던 아옌데 정권이나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비극적 경험은 제국주의자들이나 그와 결탁한 국내 반동세력들을 제압해나가고 혁명적 권력을 세우지 못하면 혁명적ㆍ진보적 성과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보운동의 최종 목표는 계급해방, 인간해방이다. 한 나라를 넘어서 국제적으로 실현되는 계급해방, 인간해방이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종식시키고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억압,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철폐해야 한다. 그런데 계급해방 없이 인간해방을 선언한다든가, 일국 내에서의 혁명 없이 국제혁명을 선언하는 것이 공허하고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최소강령, 당면 요구를 무시하면서 최대강령을 선언하거나 계급해방이라는 목표도 그 조건을 실현하지 못하면 실현할 수 없다.
레닌은 엥겔스의 말을 빌려 최종목표만을 외칠 뿐 그 실현 경로, 조건 마련을 거부하는 세력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틀림없이 자신들을 맑스주의자라고 생각하고 또 맑스주의자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맑스주의의 기본 진리를 망각하는 것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이에 대해 엥겔스는—맑스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모든 기본 저작 속의 모든 문장이 현저히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가장 드문 저자 중 한 명인 그가—1874년에 서른 세 명의 블랑키주의 공동체주의자들의 선언문에 반대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공산주의자입니다” [블랑키주의 공동체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선언문에 썼다] “왜냐하면 우리는 중간 단계에 멈추지 않고, 승리의 날을 연기하고 노예 상태의 기간을 늘릴 뿐인 어떠한 타협도 없이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역사 발전의 과정이 만들어낸 모든 중간 단계와 모든 타협을 통해서도 최종 목표—계급의 소멸과 토지 및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창조—를 분명히 인식하고 끊임없이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서른세 명의 블랑키주의자들은 단지 자신들이 중간 단계와 타협을 건너뛰고자 한다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상상하고, 또한 며칠 안에 “시작”되리라는 것(그들은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과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모레는 “공산주의가 도입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공산주의자입니다. 만약 그것이 즉시 가능하지 않다면, 그들은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조바심을 이론적으로 설득력 있는 논증으로 내세우는 것이 얼마나 유치한 순진함인지!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랑키주의 공동체주의자들의 강령」[30], 독일 사회민주당 신문 『폴크스슈타트』 1874년 제73호, 러시아어 번역판 『논문들, 1871~1875』, 페트로그라드, 1919년, 52~53쪽에서 재인용)
레닌은 혁명의 특수한 경로를 인식하지 못하면 평생 가도 혁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혁명의 특수성이다. 혁명의 특수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 다른 역사적 조건에서 만들어진 상황을 공식처럼 대입하려는 교조주의에 빠지고 현실성과 구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마오쩌둥은 《모순론》에서 사물의 발전과정에는 긴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마다의 단계성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모순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물 발전과정의 단계성에 유의하지 않으면 조급함과 주관주의와 모험주의에 빠짐으로써 대중으로부터 고립되거나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로써 계획된 사업도 무산될 수밖에 없다.
정치사업에서도 “계급의 소멸과 토지 및 생산 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회의 창조”, 그것도 전 세계적 수준에서의 목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구체적인 실현 경로, 조건, 주체역량 타산, 대중들의 인식상태를 외면하는 것은 “역사 발전의 과정이 만들어낸 모든 중간 단계와 모든 타협을” 거부하는 좌익적 오류에 빠지게 된다.
자주ㆍ민주ㆍ통일과 계급해방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한국에서 계급해방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개 소비에트 혁명을 했던 러시아혁명을 모델로 삼고 있다. 다른 일부는 진보집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혁명의 보편적 의미를 인식해야 하나 그렇다고 소비에트식 무장봉기 모델을 한국사회의 특수한 조건에 무조건 대입할 수는 없다.
방대한 외국 무력이 지배하고 민족이 분단되어 있으며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반공주의 한국사회에서 계급해방과 진보집권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진보진영의 집권을 위해서도 그 기반과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2023년 12월 30일 적대하는 두 교전국가로의 전환 선언 발표 이후 2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정세는 빠르게 변했다. 러우전에서 우크라이나는 패전을 앞두고 있으며 미국은 대리전에서 발을 빼려고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에 이어 이란침략전쟁에서 미국이 사실상 패전에 가까운 상황을 맞이함으로써 미국의 패권의 쇠퇴일로 가속화 되고 있다.
“이번 전쟁의 결과,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 동안 이어져온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는 사실상 종언을 맞은 듯 보인다.”(“미 패권 내리막 보여준 미-이란 종전”, 한겨레 사설, 2026년 6월 16일)는 언론기사가 나오는 것도 전혀 생소하지 않다.
미국 일극 패권에 맞서는 다극화는 세계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러우전의 지속과 종전을 중심으로, 미국의 강도 같은 패권적 통상압력을 중심으로, 일방적인 이란전쟁의 개시로 미국과 유럽 간의 불신과 대립이 격해지고 있다. 이란전에서의 사실상 패전과 후퇴로 미국이 더 이상 서아시아 친미국가들의 보호국이 될 수 없다는 불신과 균열도 커졌다.
반면 과거 사회주의 당시에도 중소분쟁에서 보듯 분열과 갈등이 심각했음을 볼 때, 현재 미국 주도 패권 질서를 반대하고 주권존중을 중심으로 하는 조중러 결속은 그 어느 때보다도 수준이 높다.
조선은 핵무장과 자력갱생에 박차를 가하고 헌법에 핵무장을 명시하였다. 조선은 농촌발전전략에 박차를 가하여 “ 촌의 세기적 낙후성”을 극복하고 도농복합체 건설로 사회주의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조러 간은 포괄적 전략적동맹을 맺고 조선은 쿠르스크에 파병을 함으로써 양 나라의 우의는 한층 더 깊어지게 되었다.
승전기념일에 조선은 중국, 러시아 지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함으로써 달라진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하였다. 조중 정상회담이 열려 사회주의 나라 간의 전략적 결속을 다지고 조중 간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이 예고되고 있다. 이로써 서방의 주관적 기대와 다르게 중국은 조선의 핵무장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내란 이후에 권력에서 쫓겨나고 이재명 정권이 들어섰다.
지난날의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을 변화된 지금 시점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이 강령을 대중화해야 한다.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은 분리된 강령이 아니라 통일된 강령의 각각의 측면이다.
현재 적대관계 전환이라는 상황을 반영한 재구성된 21세기 자주ㆍ민주ㆍ통일 강령을 중심으로 분열된 진보진영의 단결을 확립해야 한다. 진보정당들은 집권을 목표로 의석을 확보해 들어가되 이 강령을 대중적 언어로 풀어서 대중들의 지지를 확보해 들어가야 한다. 민족주의자든 민주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자는 국가주권 회복운동에 폭넓은 국민대중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자주의 대중화이다.
민주는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권리확보와 민중복리, 국가보안법 철폐,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반민주기구 철폐와 제반 노동악법ㆍ반민주 악법 철폐, 인권과 생존의 보장, 국민소환권, 판사ㆍ검사, 검찰총장 등의 직접 선출과 소환, 반민주 언론의 해체 등 폭넓은 민중의 요구가 되어야 한다.
과거 선변혁 후통일론이 분단극복과 통일을 변혁의 매개로 부각시키지 않고 사실상 통일사업에서 기권하였던 편향이 나타났던 것처럼, 자주ㆍ민주ㆍ통일을 이야기 하면서 노동자계급의 권리확보를 뒤로 미루거나 소홀한 양자의 편향이 있었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진보진영을 분열시키고 협소하고 배타적인 정파질서를 낳아 아직까지 그 폐해를 남기고 있다.
자주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노동3권과 생존권 투쟁을 경시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착취질서에 대한 다방면적인 폭로는 더욱더 강화되어야 한다.
분단모순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노조파괴, 저임금ㆍ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분쇄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을 적대화하고 악마화 하여 노동자들의 정치적 전망을 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보안법을 내세운 정치적ㆍ계급적 노동운동에 종북몰이 공세를 가하여 경제주의, 조합주의로 몰아갔다.
분단과 외세의 지배를 혁파하는 자주와 민주는 이 같은 하나의 통일체다. 통일이라는 장기적 목표가 없이는 일관된 자주와 민주사업을 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자주와 민주뿐만 아니라 통일도 하나의 통일체다. 자주ㆍ민주ㆍ통일 사업에서도 중심은 노동자계급이고 기층 민중이다. 노동자들이 정치적ㆍ경제적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더 높은 정치적 요구를 내걸 수도 없다.
통일은 남북의 적대관계 전환으로 당분간 당면 요구로 삼기는 어려워졌다. 남북관계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분단극복과 통일이 우리의 확고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전해야 한다. 다시 민족관계로 복원할 수 있는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교류ㆍ협력 중심의 사업을 내거는 시대는 끝났다. 근본적인 대북적대관계가 철폐되지 않으면 교류협력도 있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평화공존 역시 주관적 바람일 뿐 말로는 평화공존을 외치며 그 평화와 공존을 깨는 이율배반식 평화공존론을 혁파해야 한다.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는 대북적대 정책을 분쇄하고 당면으로는 한미대북침략전쟁연습을 중단시켜야 한다.
이른바 “북한 비핵화”는 과거의 낡은 요구가 되었다. 쌍중단(조선이 핵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는 것과 동시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되는 것)과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평화체제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끝났다. 조미 하노이 정상회담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 회담 당시의 요구도 물건너 갔다. 조선은 핵무력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비핵화를 이야기하면 주권을 훼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선은 지난 3월 연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 조항을 개정했다. 헌법 2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는 내용을 신설했다. 그런데 육·해상 경계선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3조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한다는 헌법 제3조는 조선의 주권을 전면 부정하여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침략적이고 적대적인 헌법조항임이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다.
적대적 두 국가선언을 한 조선은 헌법에 적대성을 드러내지 않고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는 반면에 이 선언을 비난하는 한국은 도리어 적대성을 규정한 헌법조항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있다.
다시 민족관계 복원의 조건은 당면하게는 한미침략전쟁 훈련을 중단하고 흡수통일 영토조항을 폐기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한-EU 공동성명에서도 다시금 천명한 “북한 비핵화” 요구는 지금 지극히 주관적이고 비현실적 요구로 전락했다. 조미 간 관계도, 한조 간 관계의 새로운 정립도 이 낡은 정식을 폐기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시론] 시진핑 방북과 ‘한반도 비핵화’의 불편한 진실”, 김정호 전 Univ. of St Andrews 방문 교수, 대한경제신문, 2026-06-15)이나 “’비핵화 종언’은 불편한 진실…핵보유 북한과 평화공존 모색을”,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신문, 2026년 6월 15일) 기사 등이 나오는 것도 현실인식이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이며 통일 지향적인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정치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한 대중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미제국주의 군대를 축출하고 자주적인 국가를 만천하에 천명해야 한다. 대북적대 정책을 철폐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국가보안법과 반민주악법, 노동악법을 철폐해야 한다.
제국주의 패권주의ㆍ침략주의를 반대하고 평화와 친선, 주권을 존중하는 외교관계의 원칙을 선언해야 한다. 한미군사동맹, 한미일 군사동맹 대신 평화와 주권존중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국제관계의 원칙은 피억압 국가ㆍ민족의 해방,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해방 지지 대의에 입각해야 한다. 노동3권과 민중복지를 철저하게 보장하고 분단척결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통일은 노동자권리의 대폭 확장 계기다. 조선의 농촌발전전략, 대규모 생산의 경험을 통해 농촌 집산화를 추진하고 도시와 농촌의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노동시간 7시간 노동, 야간노동 4시간 단축으로 안정된 노동을 영위하고 실업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간산업 국유화와 무상체제 수립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남북관계의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의 전환을 두고 강령적 수준에서의 우리의 제안이자 계획이다. 미흡하지만 이러한 강령적 수준의 토론, 전략적 수준의 논의로 우리운동을 전진시키고 새 사회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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