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이범주
군대생활 빡씨게 했다. 지랄같은 군대가 애인이 면화와도 외출을 시켜주지 않았고 자유시간도 하루 1~2시간 정도만 허용했다. 20대 초중반 피 끓는 나이 청춘에게 군대생활은 고통이었다. 중대에 책도 없었다. 2년 정도 지나 중대 행정반에서 굴러다니는 소설 두 편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27개월 동안 내 독서의 전부. 그 중 하나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소설 속에 나오는 갖힌 정신병동 환자들의 일상이 내 군생활과 겹쳐 보여 심히 감정이입 됐었다.
자유롭고 건강한 영혼의 한 젊은 사내가 정신병동 수간호사의 권위적 억압에 저항, 일탈을 추구하다가 좌절되어 전두엽을 절제당한 채 무력하게 누워 있다가, 그의 저항을 보고 각성한 인디언에게 질식당해 안식을 얻고 그 인디언은 탈출한다는 줄거리. 병동의 창을 깨부수고 자유로운 세계 향해 달려 나가던, 그 사내의 선동이 없었다면 내내 정신병동에 갖혀있다 삶 마감했을 거대한 덩치의 인디언 뒷모습이 생각난다. 나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가고 싶었다.
어쨌거나 그 소설의 주제는 자유, 자유로운 개인성의 추구, 부당한 권위와 통제에 대한 혐오…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도 비슷한 류 소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류 소설에는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개인의 의미를 너무 강조하는 것이다. 한 개인이 직면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사회적 조건과 결부된 것들이어서 반드시 사람들의 조력을 얻어, 그들과 함께, 말하자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그런 소설들은 그저 고립된 개인에 대해서만 말하고 더 나아가 조직, 권위, (정의로울 수 있고 반드시 필요하기도 한) 권력 일반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뻐꾸기….’는 오로지 보편적인 자유, 개인성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영화 나왔던 시점이 1975년으로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진영 간의 체제이념 경쟁이 치열했던 때였음을 고려하면 꼭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영화는 소련과 경쟁하던 자본주의 체제의 최고 강자, (자본가들에게 자유를 최대한으로 허용하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따라서 그 영화는 당시의 소련…강철주먹으로 사람들 자유를 탄압하는, 스탈린적 이미지의 억압과 독재의 거대국가, 소련을 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소련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에 대한 인상을 정신병동의 수간호사로 치환시켜 소련을 인간의 자유 억압하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로 만들어 버리는 것, 이런 게 어쩌면 그런 류 소설의 궁극적인 의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게 아주 교묘한 거다. 언뜻 보면 인간세상 보편가치로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 같은데 실은 사회주의에 대한 거부와 냉소, 적대를 유포하니까 말이다.
‘뻐꾸기…’는 다소 상징적인 장치를 썼지만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적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니 (실은 미국 중심 서방의 공작에 선동된) 시민들 항쟁 진압했던 체코 사회주의 정부, 그 정부를 도운 소련, 소련의 도움을 받아 혁명에 성공한 벳남 등을 이 모조리 욕설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하여 지금 세상에는 결과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개인주의적 가치가 만연하게 되었다. 이제 급기야는 개인의 성(性)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얼마 전만 해도 성별 판단에서 엄격하고 명백한 판단기준으로 공유되었던 염색체 조합도 인정되지 않는다(LGBTQ). 바야흐로 인류 역사 이래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집단에 대해 개인이 완벽히 승리한 시대 되겠다.
이런 흐름의 끝에서 이젠 사회적 처지의 동일함에서 출발해 개인적 차이를 넘어 계급적 연대를 추구하고 그 단결된 계급의 힘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꿈꾸던 거대서사적 삶을 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한때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계급, 민족, 혁명, 연대….등의 가치가 냉소와 경멸의 대상이 된 세상인 것이다.
끝없는 경쟁, 경쟁에서 이탈된 약자들에 대한 냉소, 혼자만의 공간에 유폐된 젊은이들, 그리고 익명의 대상에게 가해지는 잔혹한 폭력, 역사적 비극에 대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비아냥, 하루 50명 내외의 자살, 세계 최고의 자살률…..대한민국에서 보이는 이런 현상들이 지금 보이는 극한의 개인주의 흐름과 무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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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건에서 민주당이든 국힘당이는 정권 잡은 자들을 그들만의 이익 추구에 바쁘고 절대 다수 대중들은 개별적으로 고립되어 그들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한다. 분명한 전망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직되어 투쟁하지 못한 대중들은 무력하다.
문학, 영화, 철학…등 사람들의 세계관, 가치관,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개인을 최고의 가치로 띄워 올린 자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목표로 했던 궁극의 세태가 바로 이런 세상 아니었을까. 그런데….이렇게 되니…..보기에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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