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대해

이범주

우리 세대는 한때 한국전쟁을 ‘625사변’이라 불렀다. 전쟁이 6월 25일 터졌고 북이 먼저 침략했으니 북은 용서받지 못할 침략자라는 함의를 625는 담고 있다. 이렇듯이 개전일로 전쟁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는 상대방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깔려있다.

625만 기억하니 이 나라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언제 끝났는지 모른다.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반도 전역을 잿더미로 만들고 약 500만 생명을 살해하고 나서 끝났다(사실은 7월 27일은 정전일로서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휴전도 전쟁의 한 국면이니 우리는 사실 그 이후 80년 가까이 전쟁 중에 있는 셈이다). 그리고 남쪽에서 북은 선공(先攻)했다는 이유로 이 나라 사람들에게 악마적 존재로 못 박혀져 있다(북에 대한 우리의 적대적 인식은 전쟁이 아직도 진행 중인 정황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대개 어떤 전쟁도 전쟁 발발일을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전쟁 발발일을 정확히 특정하기도 쉽지 않으려니와 무엇보다도 전쟁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양측 사이에 화해 곤란 적대적 모순이 깊어지며 파괴적 에너지가 쌓이는 과정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발발일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는 걸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도 그러했다. 1948년만 해도 주로 남측의 공격에 의한 수백 회의 무수한 (대대급까지 포함하는) 전투가 있었고 당시 이승만과 국방부 장관은 북진통일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혔다.

당시 통일은 반도의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시대적 사명이었다. 평화적 방식으로든 비평화적 방식으로든 통일은 반드시 성취해야만 할 시대적 과제였다. 이런 정황에서 누가 선공했는지의 여부가 핵심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전후 맥락을 무시하고 특정일을 잡아 그 날짜로 전쟁의 성격을 확정하고자 하는 데는 상대방을 선공자(先攻者)로 찍어 그 상대를 악마적 존재로 못 박아 버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해방 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조건에서 남북 불문 반도 전역 인민들이 모두 갈망했던 시대적 과제는 친일파 척결, 토지개혁, 통일된 자주적 민주주의 국가 건설이었다. 해방 이후 즉시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미군이 점령군으로 9월에 진주할 때쯤이면 이미 반도 남쪽 전역에서 행정과 치안기능을 장악하고 있었던 인민위원회가 그 시대적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미군정은 그 인민위원회를 자유당, 한민당 친일파 세력을 파트너 삼아 불법단체로 몰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이에 대해 인민들은 1946년 대구경북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어 나간 10월항쟁, 1948년 제주도의 4.3항쟁, 10월 14연대 여순항쟁 등의 일련의 투쟁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 인민들이 살해당했다. 한국전쟁은 이런 일련의 과정 끝에 가 닿게 된, 어쩌면 불가피한 도달점이었다. 이런 정황에서 선공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핵심사안이 될 수 있는가.

전쟁 발발일과 발발의 주체도 사실 애매하다. 전쟁이 느닷없이 1950년 6월 25일 갑자기 발발했는가. 누가 선공했는가. 해방 후 남쪽 전역에서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던 인민위원회를 미군정이 불법단체로 규정, 해산시키면서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탄압, 살해했던 것도 일종의 선공적(先攻的) 전쟁행위다. 실제로 브루스 커밍스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멀게는 일제 강점기 시절 만주에서 항일 무장독립항쟁에 헌신했던 민족자주 세력과 일본군, 관동군에 복무했던 친일세력 사이의 타협 불가능 갈등으로 소급하고 있으며 가깝게는 미군정이 해방 후 인민위원회를 공격한 것이 전쟁의 실제적 발단이었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미군정의 인민위원회 탄압, 그것이 한국전쟁을 부른 명확한 선공행위였다는 말이다. 이런 정황에서 보듯 선공자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은 정황에서 거두절미하고 맥락을 떼어놓은 채 한국전쟁의 발발일을 오로지 6월 25일로 단정하여 그날의 선공자를 북으로 단정, 북에게 전쟁의 책임을 묻는 데는 문제가 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북은 미국을 적으로 규정하여 제국주의 미국에 대한 경각심과 적개심을 제 나라 인민들에게 고취했던 데 비해 대한민국은 북이 적으로 보는 미국을 은인으로 여기면서 북을 주적으로 삼았다. 이를 법률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국가보안법과 헌법 3,4조다.

북은 최근 들어 통일을 포기하고 南을 적대적 국가로 명토박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당의 실정에 실망한 남쪽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잠실 올림픽 공원에서 태극기, 성조기, 심지어 일장기까지 휘날리며 ‘멸공의 횃불’을 불러대는 참상까지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였다. 이런 정황이 625라는 틀로 세상을 보는 것과 무관하겠는가. 세상을 625의 눈으로 보는 것으로 인해 국가보안법이 건재하고 북을 우리가 수복해야 할 영토, 자본주의 방식으로 흡수통일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헌법 3,4조가 온존한다. 그로 인해 경제 규모 세계 10위 국방력 6위에 이른다는 이 나라가 한미동맹의 이름으로 미군에게 매년 1조 수천억 원 엄청난 돈 줘가며 주둔을 간청하고 신성한 주권의 상징으로 되는 군작전 지휘권마저 미국에게 양도하고 있다. 그리고 제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부와 긍지로 충만해야 할 젊은이들이 성조기, 일장기를 흔들며 동족국 北에 대한 증오를 불태운다.

전쟁에 대한 625的 인식틀을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오랫동안 쌓여온 갈등과 시대적 요청으로 인해 당시로서는 전쟁이 불가피했거나 적어도 이해 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하여 궁극적으로는 같이 살아야만 할 동족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리고 작은 내전으로 끝내야 했을 민족 내부의 문제에 끼어들어 미증유 대학살극 국제전으로 비화시켜 버린 미국에게 그 주된 책임을 물어야 한다.

625的 인식이 지속되는 한 동족 적대에 기반한 분단은 영속될 것이므로 우리는 대를 이어 가면서 엄청난 분단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대륙으로 가는 출구를 봉쇄당한 채 반도의 남쪽에 갇혀 섬나라보다도 못한 옹색한 처지로 고립될 것이다. 그리고 이 분단구조를 활용하여 동아시아에서 저물어 가는 패권 유지하려는 미국에게 예속적 한미동맹으로 묶여 두고두고 수탈당할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어떤 노력도 이 땅에서 성공적 결실을 거둘 수 없다. 625的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밝은 미래는 없다고 확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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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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