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민주주의ㅡ⑤] 제2장 노동자 농민의 정권인가ㅡ국체와 정체 문제
김정호 북경대 박사/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자문위원
제1장 중국 ‘인민대표대회’의 역사
제2장 노동자 농민의 정권인가ㅡ국체와 정체 문제
1. 인민대표대회의 인적 구성(이번 호)
2. 인민대표대회의 위상과 기능
3. 지방 인민대표대회의 역할 강화
국가의 문제는 크게 국체(國體)와 정체(政體)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는 어떤 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는가와 관련한 문제이고, 후자는 이를 위해 현실에서 어떠한 정치제도를 채택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따라서 양자 관계에 있어 ‘국체’ 즉 어떤 계급의 국가인가의 문제가 보다 근본적이며, ‘정체’는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를 내건 중국의 경우 그 정치제도는 반드시 ‘노동자‧농민’ 등 다수 인민의 정권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민대표대회제도는 중국의 기본 정치제도로서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권력을 보장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이하에선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는 인민대표대회의 인적 구성이며, 둘째는 인민대표대회의 위상과 기능이다.
1. 인민대표대회의 인적 구성
1) 전인대의 인적구성
먼저 최고 권력기관인 전인대는 마땅히 직접적으로 노동자‧농민계급 출신이거나 혹은 그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점하여야 한다. 이중 본질적인 것은 후자이다. 왜냐하면 해당 계급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잠시 후에 논한다.)
그렇다면 전인대의 실제 인적구성은 어떠한가?
문화대혁명 직전 제3기 전인대 1차 회의가 1964.12.21 개최된 후 10년 만인 1975년 1월 13일 전인대 제4기 1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 참석한 전인대 대표 총 2885명의 성분구성을 보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 28.2%, 농민 22.9%로 이 두 기층계급 출신이 50.1%를 차지하였다. 나머지는 중앙국가기관의 간부 11.2%, 인민해방군 16.85%, 지식분자 11.99%, 귀국 화교 1.03% 등이다. 정치적 색체를 보면 중국공산당 당원이 76.3%를 차지하였으며, 민주당파와 무당파 인사는 8.3%였다.*
* [중]尹世洪 朱开杨 공저, 2002년,<인민대표대회제도 발전사>, 강서인민출판사, p188. 이하 전인대의 인적구성과 관련한 수치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주로 이 책에서 인용하였다.
이때는 아직 문혁기간이었기에 노동자‧농민 등 기층 대표의 비율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건국 초기부터 이 무렵까지 기층 대표의 비율은 대략 50% 이하였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제4기를 정점으로 이후 기층계급 출신 비율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노동자와 농민 대표는 제5기(1978~1982)에는 1655명으로 47.3%를 점하였으며, 제6기(1983~1987)는 791명으로 26.6%, 제7기(1988~1992)는 684명으로 23%, 제8기(1993~1997)는 612명으로 20.6%, 제9기(1998~2002)는 563명으로 18.8%였다.
가장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18년에 선출된 지금의 13기 전인대 인적 구성을 보면, 총원 2980명 중 노동자‧농민 대표는 468명으로 15.7%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지난 12기 때보다 2.28%포인트가 상승한 것인데, 이로부터 판단해 보건데 기층대표의 감소 추세는 일단 멈춘 것으로 보인다.
▲ 13기 전인대 노동자 대표 양걸(杨杰) |
또 전문기술요원 대표를 별도로 분류하고 있는데, 그 비중은 20.57%에 이른다. 이 비율은 전기에 비해 0.15%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중국사회의 전반적인 고학력화, 지식화, 전문화를 반영하는 계층으로, 이들 역시도 사실상 노동자계급에 속하기에 이들을 포함할 경우 기층계급 출신 대표는 35%가 넘는다.
어찌되었든 표면상의 기층계급 출신 대표들의 비율 감소를 메꾸고 있는 것이 중앙 당정기관 간부 비율의 증가이다. 이들 간부 대표는 제5기(1978~1982)에는 468명으로 13.38%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제6기 636명(21.4%), 제7기 733명(24.7%), 제8기 842명(28.3%), 제9기 988명(33.2%)으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현 13기 전인대의 중앙 당정기관 대표는 모두 1011명으로 비중에서 33.93%를 차지한다.
표2-1 제5기~13기 전인대 대표의 출신 구성 (단위: % )
기수(년도) | 노동자, 농민 | 당정 간부 | 지식인 | 인민해방군 | 기타 |
5기(78-82) | 47.33 | 13.38 | 14.96 | 14.38 | 9.95 |
6기(83-87) | 26.57 | 21.35 | 23.54 | 8.97 | 19.57 |
7기(88-92) | 23.03 | 24.68 | 23.47 | 8.99 | 19.83 |
8기(93-97) | 20.55 | 28.27 | 21.79 | 8.97 | 20.42 |
9기(98-02) | 15.04 | 54.78 | 21.18 | 9 | 0 |
10기(03-07) | 18.17 | 54.99 | 17.86 | 8.98 | 0 |
11기(08-12) | 20.59 | 52.93 | 17.51 | 8.97 | 0 |
12기(13-17) | 13.42 | 34.88 | |||
13기(18-22) | 15.70 | 33.93 |
출처: ①5기-11기는 史卫民 郭巍青 刘智 공저:<중국 선거 발전 보고>, 중국사회과학출판사 (2009년 판), pp421-422; ②12기-13기는 “간부 비율이 낮아졌다! 표 한 번 보면 이해할 수 있는 13기 전국인대대표 구성” (CCTV사이트, 2018.3.4) 참조함.
위 표2-1은 문혁이 공식 종식된 제5기 이후 최근 제13기까지 전인대 대표의 신분구성을 정리한 것이다. 다만 이 표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수치들을 필자가 모아 종합한 것이기에, 자료마다 ‘분류기준’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어 앞서 서술한 내용과는 일정 정도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이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위 표2-1에 입각할 때 현 제13기 전인대의 기층계급 출신 비율은 대략 15.7% 내외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전문기술요원 제외). 물론 이 수치도 일반 자본주의국가와 비교하면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기층 노동자‧농민 출신이 의회에서 10% 이상 차지하는 국가는 사실상 별로 많지 않다. 한국의 경우 민주노동당 시절 1~2명의 기층 출신 국회의원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 2008년 첫 당선된 농민공 출신 전인대 대표 |
일부 논자들은 중국 전인대에서 기층계급 출신의 비율이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중국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이 사회주의 내지는 인민정권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같은 비판은 별로 타당하지 않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대다수 자본주의 국가의 국회에서 자본가계급 출신 의원은 몇 명이나 될까? 그럴 경우 그들은 자본주의국가가 아니고 노동자‧농민의 국가란 말인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의 직접적인 출신성분 보다 그들이 속한 정치집단의 성향을 통해 국가권력의 계급적 성격을 판단하는 것이 올바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레닌 또한 한 정당의 계급적 성격을 판단하는 데 있어 당원들의 출신성분보다 그 당의 강령과 실제 행동을 더 중시하였다. 레닌은 당의 성격은 그 계급 출신 당원의 수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 당이 지향하는 목표, 강령과 규약, 실제 행동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영국 노동당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은 애초 노동자 당원이 절대 다수였지만, 지금까지 진정한 노동자계급정당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껏해야 영국 자본주의체제를 떠받드는 자본가계급정당의 훌륭한 파트너 내지는 개량주의 정당으로만 존재하였다.
중국의 경우도 그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옳다. 전인대는 출신성분 외에도 지역, 직능, 민족, 성별 등 여러 가지 기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성된다. 그 때문에 직접적인 출신성분만으로는 전인대를 실제 어떤 계급이 주도하고 있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전인대의 계급성을 판단할 수 있는 보다 유효한 기준은 대표들의 ‘정치적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지표로서 우리는 전인대 대표들의 정당과의 관련성을 중시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국공산당 당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줄곧 절대 다수를 점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래 표2-2는 신중국 초기인 제1기, 제2기 전인대 대표의 정치적 성향을 보여준다. 당시 중공 당원은 54.5~57.7%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표2-2 제1기, 2기 전인대 대표 정치 성향 (단위: 명)
기수 | 제1기(1954~1958) | 제2기(1959~1963) |
대표 총 인원 | 1226 | 1226 |
중공당원 | 668(54.5%) | 708(57.7%) |
민주당파 | 274(22.3%) | 284(23.2%) |
무당파 | 284(23.2%) | 234(19.1%) |
자료: [바이두교육]
문혁 기간인 제4기 때 중공 당원 비율은 76.3%로 최고수준까지 올라갔다. 그 후 이 비중이 다소 내려가긴 했지만 크게 줄지는 않았다. 예컨대 제5기(1978년~1982년)에는 2545명(72.78%), 제6기 1861명(62.5%), 제7기 1986명(66.8%), 제8기 2037명(68.4%), 제9기(1998~2002년) 2130명(71.5%)이었다. 현 제13기 전인대의 중공 당원 수자는 2019명으로 전체의 72.9%를 차지한다.
중공 당원이 이렇듯 70%를 차지할 경우 나머지 30%는 비중공 당원으로 분류될 수 있으며, 그들은 ‘민주당파’ 혹은 ‘무당파’ 인사라 불려진다. 문혁기간 때인 제4기(1975년)에서 이들 민주당파와 무당파 인사는 8.3%에 불과하였다. 그 후 중앙 당정기관의 간부출신 대표 비중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비중 역시 꾸준히 상승하였다. 예컨대 제5기 495명(14.15%), 제6기 543명(18.2%), 제7기 540명(18.2%), 제8기 572명(19.2%), 제9기 460명(15.4%) 등이다.
현재 제13기에서 민주당파 대표는 331명(13,48%), 무당파 대표는 333명(13.56%)이며, 양자를 합칠 경우 대략 27%의 비중을 차지한다.
표2-3 1975년 이후 전인대 대표의 정치적 성향 분류 (단위: %)
제4기 | 제5기 | 제6기 | 제7기 | 제8기 | 제9기 | 제13기 | |
중국공산당 당원 | 76.3 | 72.9 | 62.5 | 66.8 | 68.4 | 71.5 | 72.9 |
민주/무당파 인사 | 8.3 | 14.2 | 18.2 | 18.2 | 19.2 | 15.4 | 27.0 |
출처: 제9기까지는 <인민대표대회제도 발전사>, 제13기는 필자가 인터넷 자료 검색함.
이렇게 볼 때 전인대의 계급적 성격을 진단함에 있어 중국공산당을 어떻게 볼지는 매우 관건적임을 알 수 있다. 중국공산당은 두말할 나위 없이 노동자‧농민 등 광범위한 인민을 대표하는 정치조직이다. 그것은 중국공산당의 강령, 그 실천을 위한 조직구성 및 운영원칙, 당원의 구성과 선발 과정, 당의 작풍 등 종합적인 근거에 따른 판단이다.
우선, 중국공산당은 당 강령에서 자신이 중국 노동자계급의 선봉부대이며 당의 목표는 ‘공산주의 건설’임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 중국공산당 강령, 규약 전문은 다음 사이트를 보면 알 수 있다.
https://www.12371.cn/special/zggcdzc/zggcdzcqw/
지도사상으로는 맑스레닌주의, 모택동 사상을 채택하고 있으며, 당의 계급적 기반으로 노동자‧농민 등 기층을 대단히 중시한다. 당원 가입 시 당 강령과 규약, 당 노선 및 방침에 대한 숙지 정도를 엄밀히 심사하는 등 당원 선발과정은 매우 엄격하다. 지속적인 학습을 강조하고 지도부는 이를 솔선하여 실천하며, 당원은 단순히 당비만 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특정 당 조직에 소속하여 활동하여야 한다. 중국공산당은 또한 대중 속에서 실천하고 검증받는 대중노선을 당의 오래된 작풍으로 간직하고 있다.
당의 운영에 있어선 당내 민주적 토론과 함께 소수의 다수에 대한 복종 등 민주집중제 원리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배격한다. 이상의 제 측면을 고려할 때 중국공산당은 맑스레닌주의 전통에 입각해 조직되고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노동자계급 중심의 ‘대중적 전위정당’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산당 외에 나머지 30%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당파 혹은 무당파 인사란 도대체 누구일까?
먼저 민주당파의 경우를 보면, 2008년 중국 관영언론 보도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8개의 민주당파가 있고 모두 70만여 명의 당원 또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 통전부와 각 당 홈페이지 통계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中國國民黨革命委員會, 약칭 민혁) 8만2000명, 중국민주동맹(‘中国民主同盟, 약칭 민맹) 19만6000명, 중국민주건국회(中国民主建国会, 약칭 민건) 11만여 명, 중국민주촉진회(中国民主促进会, 약칭 민진) 10만8000여 명, 중국농공민주당(农工) 10만2000여 명, 중국치공당(致公) 3만3000여 명, 구삼학사(九三学社) 10만6000여 명, 대만민주자치동맹(台湾民主自治同盟, 약칭 대만연맹) 2100여 명의 당원 혹은 회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 당파들은 모두 과거 신민주주의혁명 시기 중국공산당을 도와 국민당에 맞서 싸운 경력이 있다. 따라서 대부분 중국공산당에 대해 우호적인 당파들이다. 이들은 주로 ‘정치협상회의’*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기능을 발휘한다. 예컨대 전국정치협상회의 제11기(2008년3월~2013년3월) 위원회 위원 명부에 따르면, 2008년 현재 민혁 65명, 민맹 65명, 민건 65명, 민진 45명, 농공 45명, 치공 30명, 구삼학사 45명, 대만연맹 20명이 등록되어 있으며, 이 외에 무당파 인사 65명이 있다.
표 2-4 중국 각 민주당파
명칭 | 성립시기 | 인원 |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 | 1948년1월1일 | 8만 여명 (2007년) |
중국민주동맹 | 1941년3월19일 | 20만 여명 (2009년) |
중국민주건국회 | 1945년12월16일 | 11만 여명 |
중국민주촉진회 | 1945년12월30일 | 10만 여명 |
중국농공민주당 | 1930년8월9일 | 10만 여명 |
중국치공당 | 1925년10월 | 3만 여명 (2007년) |
구삼학사 | 1946년5월 | 10만 여명 |
대만민주자치동맹 | 1947년11월12일 | 2300 여명 |
자료: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 중국의 정치협상회의는 단순히 형식적인 기구가 아니라 실제로 영국 상원 이상의 기능을 한다. 정협 위원들은 이들 민주당파 인사 외에 문화계, 스포츠계, 공상계, 언론계, 지식층 등 사실상 사회 각계 유명인사와 전문가층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 전문성과 여론 영향력이 지대하다. 매년 전인대와 거의 동시에 전국정협이 열리기 때문에 두 대회는 ‘양회’라 불려진다. 양회가 개최 될 때면 국내외 매체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이 기회를 빌려 전인대 대표나 정협 위원들은 충분히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다. 또 인민대표대회와 마찬가지로 지방조직이 구성되어 있어, 중국공산당이 어떤 정책을 건의하기에 앞서 반드시 ‘제도적으로’ 이들 민주당파와 정협조직에 보고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민주당파나 무당파인사들도 대부분 노동자, 농민 등 광대한 인민의 이익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사회에 공헌을 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물론 합법적 절차를 거쳐서 전인대 대표로 선출되게 되는데, 이 경우 그들은 전인대 대표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로 볼 수 있다. 비록 중국공산당과는 소속이 다르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그들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인민의 이익을 대변하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기여하고자 하는 친사회주의 혹은 애국주의 인사들인 것이다.
▲ 중국민주동맹 강서성위원회 |
2) 지방 인대의 인적 구성
중국 인민대표대회에서 계급 혹은 출신성분의 문제는 지방 차원으로 내려갈수록 그 연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성 특히 현급 이하 인민대표대회에서 기층계급 출신 대표가 대폭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측면에서 볼 때도 자본주의국가 지방의회와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지방의회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자‧농민 등 기층 출신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그 지역 토호, 유지급 인사, 명망가 등 재력과 학벌‧명성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국 인대에서 이렇듯 지방 차원으로 내려갈수록 기층계급 출신이 많아지는 것은 인민대표대회의 선거 방식과 일정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중국은 현급까지는 선거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서 인대 대표를 뽑고, 시 및 성급 이상은 이들 대표들이 다시 상급의 인대 대표를 뽑는 간접선거에 의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제13기 전인대 2차 회의 산동성 대표단의 성립 |
그렇다면 실제 지역 인대의 역대 인적 구성은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하자.
문혁 종식 후 첫 지방선거가 1979년부터 1981년까지 전국 현과 향에서 진행됐다. 1979년부터는 인대 대표의 선출 방식에 있어 얼마간 변화가 있었는데, 기존에는 향‧진 단위까지만 직접선거를 실시하던 것에서 이때부터는 현(縣) 단위까지로 그 범위를 확대하였다.
당시 1925개 현급 단위에 등록된 인구는 총 7억4378만여 명이었으며, 모두 59만5345명의 대표가 선출되었다. 대표 중 노동자 출신은 10.56%, 농민 출신은 47.61%를 차지하였다. 그밖에 당정 간부 출신 25.53%, 지식인 8.44%, 군인‧애국지사‧귀국교포 등이 7.86%였다. 정치성향에 있어서는 비당원이 33.15%를 점하였다.
1983년 말~1984년 말에 전국 제2차 현과 향‧진 직접선거가 실시되었다. 이번 선거에선 ‘좌편향’적 사상의 영향이 상당정도 극복되었는데, 농촌의 전업농가, 향촌기업 등 경제연합체 성원이 인대 대표로 당선되었다.
1989년 9월부터 1991년 3월까지, 감숙성의 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6개 현급 단위와 123개 향급 단위 외에, 전국 30개 성(자치구, 직할시)의 2825개 현(구를 설치하지 않은 시, 시 산하의 구 포함)과 5만6318개 향‧진 모두 법에 따라 인대 대표 교체선거가 진행되었다. 이번 선거는 1989년 봄과 여름에 걸친 정치풍파를 겪은 직후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천안문사태를 겪은 탓인지 농촌과 도시에서 더욱 많은 선거민들이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가하였다.
이번 선거에서 현급 인대대표 63만4840명이 선출되었는데, 그중 노동자•농민 출신이 50.99%를 점하였다. 당정 간부는 40.45%, 귀국 화교는 0.41%를 점했다. 정치적 성향을 보자면 중공당원이 69.24%, 민주당파는 0.94%를 점했다. 참고로 여성은 21.61%, 소수민족 출신은 13.41%이었다.
현급보다 한 단계 아래인 향‧진 인대 대표로 선출된 사람은 모두 290만590명으로, 그중 노동자•농민 출신이 75.77%, 당정간부 출신 20.91%, 귀국 화교는 0.09%를 차지하였다. 여기서도 우리는 하급 행정단위로 갈수록 기층계급 출신 비율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선출된 향‧진 인대 대표의 정치적 성향을 보면, 중공당원 59.16%, 민주당파 0.09%이었다. 참고로 여성은 19.21%, 소수민족 출신은 12.77%를 점하였다. 소수민족은 인구수로 보면 전체적으로 5%에 불과하지만, 이렇듯 기층 대표 비율은 12%가 넘었다.
흥미로운 것은 천안문사태 직후 치러졌던 직접선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가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마도 천안문사태에 대한 민의가 상당 정도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한국과 서구 언론의 보도대로였다고 한다면 공산당 집권에는 매우 불리한 선거였을 것이고, 심지어는 선거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이렇듯 ‘천안문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정치 일정이 멈추지 않은 점은 인민대표대회제도가 이미 상당정도 안착되었음을 보여준다.
1992년 말 제5차 현과 향‧진 교체선거가 실시되었다. 전국 2897개 현, 구가 없는 시, 시 산하 구와 4만8172개 향‧진에서 선거가 실시되었다. 7억5512만 명의 선거민이 등록 하였으며, 그중 7억1172만 명이 투표에 참여해 94.25%의 투표율을 보였다. 여기서 현급 인대 대표 65만1311명과 향급 인대 대표 274만3478명이 선출되었다.
현급 인대대표 중 노동자‧농민 출신은 33만2758명으로 51.09%, 당정 간부출신은 27만4208명으로 42.1%를 점하였다. 정치적 성향을 보자면, 중공당원 45만8496명으로 70.4%, 민주당파 6181명으로 0.94%, 일반 대중 18만6666명으로 28.66%를 차지했다.
▲ 후베이성 사양현 제5기 인민대표대회 제3차 회의 |
향‧진 인대대표 중 노동자‧농민 출신은 205만6617명으로 74.97%, 당정 간부출신은 59만9288명으로 21.84%를 점했다. 정치적 성향을 보자면, 중공당원은 165만1571명으로 60.2%, 일반 대중(비당원)은 109만1807명으로 39.8%를 차지했다.*
* 그밖에, 여성 대표는 60만1101명으로 21.91%, 소수민족 대표는 36만1229명으로 13.17%였다. 학력으로 보면 전문대 이상 15만8172명으로 5.77%, 중등전문대와 고졸이 35만8292명으로 13.06%, 중학교 이하가 222만6914명으로 81.17%를 점했다. 연령별로는 35세 이하가 71만1272명으로 25.93%, 36세-55세가 184만2666명으로 67.17%를 차지했다.
1995년 하반기~1997년 3월 제6차 전국 현 및 향‧진 인대 선거가 치러졌다. 1993년 헌법 수정안은 현급 인민대표대회 대표 임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이에 따라 이때부터는 현과 향‧진 인대의 교체선거가 다르게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제6차 향‧진 인대 교체선거는 1979년 이래 첫 번째 단독으로 진행된 인대 선거가 되었다.
전국 4만5229개 향‧진의 6억764만7401명의 선거민이 투표에 참가하여 투표참가율은 94.17%이었다. 향‧진 인대대표 245만1808명이 선출되었는데, 그중 노동자‧농민 출신은 185만2205명으로 75.55%이며, 당정간부 출신은 49만3346명으로 20.12%였다. 정치성향으로 분류할 경우, 선출된 인대 대표 중 중공당원은 151만1159명으로 61.63%이었으며, 일반 대중(비당원)은 94만649명으로 38.37%를 차지하였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진행된 제6차 현급 인대 교체선거 역시 현의 선거가 향‧진과 별도로 진행된 후 맞게 된 첫 번째 교체선거였다. 전국 2836개 현, 구가 없는 시, 시 소속 구 등에서 교체선거를 했는데, 7억4669만 여명의 선거민이 참가하여 투표율은 94.16%이었다.
이 선거에서 현급 인대 대표 57만9840명이 선출되었다. 노동자‧농민 출신 대표는 27만3146명으로 47.11%, 당정 간부출신은 20만3013명으로 35%였으며, 지식인은 7만3508명으로 12.68%를 차지하였다.
정치성향에 따라 분류하면, 중공당원은 41만8415명으로 72.16%이었으며, 민주당파와 무당파 애국인사가 2만4012명으로 4.14%를 차지하였다. 일반대중 출신은 13만7403명으로 23.7%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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