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트로츠키주의 레닌 번역자의 레닌주의 사상 “왜곡·날조”

한국 노동계급 운동과 민중운동의 짧은 혁명적 전진의 시대가 저무는 1980년대 말에 <전진>출판사에 의해 <레닌 저작집> 출판이 시도되었으나 11권 출판이 되다가 중단되었다. 나머지 레닌의 주요 저서들은 개별적으로 소개되어 왔다. 우리는 이것이 “불의 시기”라고 하는 1980년대 혁명의 시대가 80년대 말 90년대 초 동유럽 사회주의와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로 마감하고 청산주의 운동이 지배하였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 레닌의 저서가 국가권력에 의해 “금서”로 취급되었다면, 혁명운동이 청산되는 1990년대 이후에는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취급되면서 자발적으로 내팽개친 책이 되었다.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도 레닌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분투해 온 일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만이 여전히 레닌주의가 혁명적 의의를 잃지 않고 있으며 제국주의 반동의 시대에 더욱 더 진리의 등불임을 강조하여 왔다.

그런데 최근 아고라(AGORA)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국내 최초로 레닌 저작 전체를 출간할 계획을 잡고 발행을 하고 있다. 레닌주의 사상이 “죽은 개” 취급당하거나 혹은 레닌을 부분적으로 언급, 인용하더라도 레닌 저작 전체가 번역, 소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왜곡하기도 하는 차에 방대한 레닌 전집이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환영할만한 일이다. 열악한 출판 환경과 여전히 레닌을 멀리 하는 상황에서 레닌 전집을 번역하고자 나선 아고라출판사와 번역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더욱 더 많은 노동자들이, 학생들이, 농민들이, 지식인들이 레닌 저작에 관심을 가지고 그리하여 한국의 혁명운동이 더욱 더 전진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우려되는 지점들이 있다. 레닌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번역자들 중에 트로츠키주의, 그것도 가장 분파주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하는 국가자본주의로 간주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트로츠키주의자들이라 할지라도 학문적 양심과 지적 엄밀함을 바탕으로 레닌을 번역하고 있다면 그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정치활동 전 기간 동안 레닌은 트로츠키주의에 맞서 투쟁해 왔기 때문에 그 번역자가 레닌 번역 자체에 충실하다보면 트로츠키의 정치적 과오를 스스로 발견하게 되고 레닌주의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더더욱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트로츠키가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 볼셰비키당에 가입을 했고 그 이후에는 레닌과 정치적으로 일치했다고 여기는데 사실 혁명 이후에도 레닌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조약, 노동조합 논쟁, 신경제정책 등을 둘러싸고 일관되게 트로츠키주의에 맞서 투쟁해 왔다.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여”(AGAINST TROTSKYISM) – 트로츠키주의에 반대하여 레닌과 쏘련 공산당의 투쟁에 대하여(THE STRUGGLE OF LENIN AND THE CPSU AGAINST TROTSKYISM, 모스크바, 프로그레스 출판사, 1972년)를 보면 레닌과 볼셰비키당이 전개했던 트로츠키에 대한 투쟁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참고로 말하면, 아고라출판사도 쏘련 모스크바 프로그레스 판을 가지고 레닌 전집을 번역하고 있다.

분리와 단절로 레닌주의 왜곡하고 트로츠키 구제 시도

이제 레닌 전집 번역에 참여하고 있는 양효식이 어떻게 레닌의 입장 또는 레닌이 글을 쓴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교묘하게 왜곡함으로써 트로츠키주의를 구제하고 더 나아가 맑스레닌주의 세력들을 노골적으로 비방하고 있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자!(양효식은 그 동안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북과 쿠바 같은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하는 반동 “국가자본주의”로 간주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북핵문제”에 대해 양비론과 중립론으로 제국주의에 봉사했다. 또한 “보라. 이것이 혁명이다! -중동 혁명은 우리에게 가르친다”면서 리비아에서 제국주의에 포섭된 반란군들을 혁명가로 찬양해 왔다. 그러나 정작 “한편 쿠바 정권과 베네주엘라 차베스 정권이 리비아 혁명에 반대하고 카다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현존 사회주의’, ‘21세기 사회주의’가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도 드러났다.”며 비난하는 제국주의적 “균형감각”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양효식의 전도된 사고에 대해서는 누차 비판했고 현실이 양효식의 주장을 속속들이 폭로했으므로 여기서는 환기하는 정도로 해서 넘어가겠다.)

앞으로 양효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주로 문헌적 내용을 근거로 반박해야 하기 때문에 인용문이 길더라도 독자 여러분들이 양해하길 바란다.

양효식은 아고라출판사 <마르크스>라는 제목을 달고 먼저 발행된 <레닌 전집>(058)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1914년 이전과 이후 레닌의 사유에는 분리와 단절이 존재한다고 한다. 1914년 이전의 레닌과 1917년 이후의 레닌이 다르다는 것은 두루 알려진 사실이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 단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견해가 분분하지만, 차이와 단절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제국주의 세계대전과 그 전쟁의 시험대를 통과하지 못한 기존 사회주의 운동의 파산과 인터내셔널의 붕괴라는 대재앙,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 대재앙이 열어젖힌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새로운 전망 앞에서 기존의 한계와 관성을 돌파하는 분리와 단절이란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14년-6년의 단절의 격통을 통과한 ‘새로운 레닌’,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1917년 4월 테제의 레닌, 10월 혁명의 레닌으로 표상되겠지만, 그것이 제시해준 영감과 그 의미는 무엇보다도 당시 세계 전체를 붕괴시킨 전쟁이라는 재앙을 배경으로 해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레닌을 다시 읽고 레닌을 재장전해야 한다고 할 때, 이 1914년 8월 이후의 글들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양효식, 옮긴이 후기, 2017년 5월).

양효식의 이 글만을 가지고는 1914년 이전과 이후 레닌의 사유에 어떻게 “분리와 단절”이 존재한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우리는 다만 이것이 수십 년 동안 멘셰비키 진영과 협조하면서 기회주의적으로 반볼셰비키 활동을 하다가 역사의 풍향계가 볼셰비키를 가리키자 1917년 10월 혁명 몇 달 전인 7월에야 볼셰비키에 가입한 트로츠키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볼셰비키 가입 이전의 트로츠키의 기회주의적 활동을 전면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대체로 인정하지만, 그것은 레닌이 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했던 “단계론자”에서 트로츠키가 주장했던 “영구혁명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볼셰비키에 가입하게 되었노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트로츠키의 수십 년 동안의 기회주의 활동을 마법처럼 구제하면서 이때부터 트로츠키가 진정한 볼셰비키주의자가 되었고 레닌의 정치적 후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트로츠키 구제를 위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1914년 이전의 레닌과 이후의 레닌의 사유에 “분리와 단절”이 있었다고 강조해야 한다. 1914년 이전의 레닌은 카우츠키주의의 영향을 받은 레닌이고 이후의 레닌은 이와 단절한 레닌인데, 자신의 과거와 단절한 레닌이 결국 1917년 2월 혁명 이후에 단계론을 부정하고 “모든 권력을 쏘비에트로”라는 입장으로 트로츠키와 같은 영구혁명론자가 되었다는 터무니없는 가상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초기 급진적 민주주의자로서 출발해 변증법적 유물론을 완성하며 맑스주의가 탄생했는데, 이는 초기 맑스, 엥겔스로부터 비약이자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변증법적 발전이다. 그런데 레닌은 초기 인민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인민주의자들과 투쟁을 하면서 혁명적 맑스주의자로서 출발했다. 레닌이 물론 <제국주의론>에서 보듯, 1914년-1916년 제국주의 전쟁이 계속되는 역사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레닌주의 사상을 더 정교화, 풍부화하면서 변증법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레닌이 자신의 사상과 “분리와 단절”을 했다는 주장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악의적인 왜곡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주장은 특히 1914년 이전 레닌과 볼셰비키의 이론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레닌과 그의 동료들은 실천적으로는 혁명적 조직과 전략의 혁신가였지만, 그들의 이론은 칼 카우츠키로 가장 잘 대표되는, 사회민주주의의 “정통 맑스주의” 경향 주류 내부에 머물렀다(‘레닌주의 논쟁 – 신화를 벗겨내고 남은 유산’, 찰리 포스트(Charlie Post), 변혁재장전, “비속하기에 비속하게 보는, 반레닌주의 비평가들에 대하여 – 오발탄이 되어 버린 변혁재장전의 기회주의 재장전”, 노동자정치신문, 2015년 11월 27일).

“분리와 단절” 대신에 “이론과 실천 사이에 괴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이 모든 입장들이 1914년을 기점으로 레닌주의가 새로운 것으로 변화했다고 보는 점에서는 유사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결론은 무엇인가?

1917년,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혁명은 스스로를 짜르 체제의 분쇄, 토지 개혁의 시행, 8시간 노동일, 혹은 자본주의적 민주공화국의 설립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대신 노동자들과 농민들은 자본주의 임시 정부를 전복하고 평의회(소비에트)에 근간을 둔 노동자 국가를 세웠으며 자본주의 사유재산권을 뿌리부터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러시아 혁명의 결과는 레닌과 볼셰비키의 이론과 전략이 아니라 한때 멘셰비키였던 반대자인 트로츠키의 이론과 전략을 확인시켜 주었다(찰리 포스트, 같은 글).

결국 “러시아 혁명의 결과는 레닌과 볼셰비키의 이론과 전략이 아니라 한때 멘셰비키였던 반대자인 트로츠키의 이론과 전략을 확인시켜 주었다”면서 “영구혁명론”의 트로츠키의 기회주의를 구제하고 트로츠키를 러시아 혁명의 영웅으로 부상시키는 것이다.

양효식은 “그 차이가 무엇인지, 그 단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견해가 분분하지만”이라면서 자신의 트로츠키 구제 시도가 폭로될까봐 말을 얼버무리지만, 위의 찰리 포스트의 글에서는 그 저의가 노골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단계론”의 폐기와 영구혁명론의 수용이라는 것이 “분리와 단절”이라고 하는데, 레닌은 실제로는 1917년 4월 테제에서 어떻게 이를 주장하고 있는가?

Ⅱ. 러시아에서의 현 시기 특성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불충분한 의식성과 조직화로 인해 부르주아지에게 권력을 넘겨준 혁명의 첫째 단계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손아귀에 권력을 넘겨줘야만 하는 그 혁명의 둘째 단계로의 이행상태에 있습니다(레닌, 1917년 4월 4(17)일 전러시아소비에뜨협의회 볼쉐비끼 참가자들의 회합에서의 보고, 노동자정치신문, 러시아어 번역 임채희, 2011-01-29).

레닌은 이처럼 1917년 2월 혁명으로 혁명의 첫 번째 단계가 부르주아지에 의해 완료되었고, 이제 “프롤레타리아트와 빈농의 손아귀에 권력을 넘겨줘야만 하는 그 혁명의 둘째 단계로의 이행”이라며 새로운 단계에 맞는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단계론”의 폐기가 아니라, “중단 없는 혁명” 노선을 새로운 역사발전의 단계에 맞게 일관되게 적용했던 것이다.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 즉 영구적 패배주의, 절망이론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자가당착의 왜곡·날조

양효식은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064, 레닌 전집, 아고라출판사, 1판 1쇄 2018년 1월 20일) “옮긴이 후기”에서 “스탈린주의” 비판 뒤에 숨어 레닌을 왜곡하고 있다. 양효식은 볼셰비키 내부의 ‘좌’익 유아적 경향의 대두, 특히 레닌이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이라고 부른 볼셰비키 당 내 부하린, 파타코프 등의 그룹을 어떻게 비판하는지 인용하고 있다.

“제국주의하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므로 민주주의적 권리(민족자결권을 포함하여)를 위한 투쟁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현 자본주의 하에서 민족 전쟁/민주주의적 전쟁은 가능하지 않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당(對當)’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주의뿐이다. ‘출구’는 부르주아지를 수탈하는 경제적 혁명, 즉 사회주의 혁명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소강령 속의 민주주의적 슬로건들을 내거는 것은, 즉 자본주의하에서 이 슬로건들을 내거는 것은 사기 또는 환상이거나, 사회주의 혁명 슬로건을 모호하게 하는, 또는 뒤로 미루는 것이다.”(양효식, 옮긴이 후기,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레닌 전집 064, 아고라출판사, 1판 1쇄).

양효식은 이러한 ‘좌’익 유아적 경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현재의 독점 자본주의, 쇠퇴하고 사멸하는 자본주의에서는 집회·시위·결사의 권리, 노동3권, 민족자결권(식민지·종속국과 관련해서는) 등은 실현 가능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것을 위한 투쟁(즉 민주주의의 침해에 대항하는 투쟁)은 의미가 없고, 출구는 오직 자본주의 철폐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적 제 권리와 개량을 위한 투쟁을 지시하고 있는 최소강령 요구들은 자본주의 철폐 투쟁과 모순되므로 모두 삭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민주주의적 권리를 위한 투쟁(및 개량 요구 투쟁)에 뗄 수 없이 연결시켜야 할 필요를 부정하는 것이다. 최대강령 요구 투쟁을 어떻게 최소강령 요구 투쟁에 결합시켜야 할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같은 글).

참으로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양효식의 자가당착의 비판이 과연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지 보자!

양효식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관계에 대한 레닌의 주장을 인용한 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악의 뿌리는 자본주의,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뿌리’로 환원시켜 그 ‘뿌리’와의 투쟁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논리(여기서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논리)로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투쟁, 즉 자본주의 철폐/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민주주의 침해에 대항하는 투쟁에 분리할 수 없이 연결시키라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권리 투쟁을 현 단계 자본주의하에서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방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를 투쟁을 뗄 수 없이 연결시켜 악의 뿌리를 제거하는 투쟁으로 끌어올려라! 제국주의 시대에, 쇠퇴·사멸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최소강령은 삭제할 것이 아니라 최대강령과 분리할 수 없이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같은 글).

쇠퇴하는 자본주의, 사멸하는 자본주의를 생산력 발전이 정지된 자본주의로 이해하지만 않는다면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양효식의 주장은 지금까지 맑스레닌주의자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이나 좌익 공산주의자들 같은 한국사회 이른바 ‘좌파’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던 비판들이다.

레닌이 비판했던 것처럼, “제국주의 전쟁에 ‘대당’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주의 뿐이다”라며 현 시기 전쟁반대 투쟁과 평화협정 체결 투쟁의 중요성을 부정한 것은 바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다.

양효식 자신도 이 비판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대상이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변혁정치》의 이 글에서는 민주주의가 후퇴되고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것이 곧 자유주의 · 개혁세력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민주주의 수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 그런데 “민주주의 수호”가 어떻게 자유주의 세력, 개혁세력의 주도권을 강화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변혁정치 주장의 요지가 그러하다면 응당 정치사상의 자유를 비롯한 민주주의적 권리의 전면적 획득, 공안기구 해체,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정치적 요구, 즉 자유주의 · 개혁세력은 결코 할 수 없는 요구이면서 오히려 자유주의 · 개혁세력의 한계와 기만성을 폭로할 수 있는 요구를 중심으로 반(反)박근혜 투쟁 전선을 구축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일 것이다(노동자정치신문, [100호 증보판(통합112호)]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 민주주의 투쟁과 한국판 경제주의, 2013-11-29).

지금은 해산됐지만 과거 양효식은 노동자혁명정당추진모임의 발제자로 나서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명박 · 박근혜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후퇴/파괴’ 또한 오늘날 해체되고 있는 자본주의 아래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취하는 필연적인 모습으로 봐야지, 민주당이 말하는 ‘유신독재의 부활’이나 반파쇼 인민전선론자들이 말하는 지배계급 내 특정 분파(극우반동세력)의 파쇼적 공세와 같은 문제로 돌릴 문제가 아니다. 지배체제 전체의 문제이고, 위기에 휩싸인 지배계급 전체의 반동적 발악을 대표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다시 경제주의에 대하여 ―노동전선 토론회를 중심으로”에서 재인용, 노동자정치신문, 2014-04-30).

우리는 양효식의 이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점, 그것이 바로 노동자 민중이 피로써 쟁취한 자신들의 권리이고 여전히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교두보라는 점을 부정한다. 한 때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의 지도세력이었던 민주당(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권력을 잡아서는 반동적으로 노동자 민중을 억압했고, 현재는 부정선거 규탄 투쟁이나 내란사건에서 보듯, 정권의 민주주의 억압에 소극적으로 동조하거나 위선적이고 기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할 수 있는 계급은 노동자계급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바로 지금에 와서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세력들이 취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문제는 오늘날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적극적으로 민주주의 투쟁에 참여하는 촛불로 대변되는 광범위한 세력들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오늘날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을 부정함으로써 민주주의 투쟁전선에 대한 집중적인 대응을 막고 협소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민주주의 세력들을 민주당의 지도력 하에 방치하도록 만든다. 결국 민주주의 요구 투쟁 대신에 최대강령을 무매개적으로 들이미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실천적 결론은 당면한 민주주의 투쟁에 기권하는 것이다(같은 글).

우리는 이 글에서 당시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 양효식의 입장에 대해 “좌익주의, 최대강령주의”라고 비판했다. 양효식이 비판 대상으로 등장하는 우리의 다른 글을 보자.

사노련은 민주주의 요구가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요구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현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 체제이고 민주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요구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투쟁은 혁명적 노동자당의 강령에서 최소강령의 일부로써 표현된다 …

한국사회는 고도의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를 앞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요구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르주아의 반동성이 극에 달한 지금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유주의 부르주아나 반동적 부르주아나 할 것 없이 실현할 수 없는 민주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물론 사노련은 국가보안법의 탄압을 직접 당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에 나서기도 했으며 이명박정권의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 투쟁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노련은 현재의 민주주의 요구가 바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요구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투쟁에 있어서 최소강령으로 표현되는 민주주의 투쟁을 이행기 강령으로 대체함으로써 무시하고 있다(민주주의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노동자정치신문 55호, 2009-09-29).

주지하듯 한국사회에서 트로츠키의 이행강령을 신주단지처럼 들고 나와서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의 결합을 반대했던 중심인물은 바로 양효식 자신이었다. 우리는 이행강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대중행동강령은 ‘대중의 현재의 개량적 요구’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못하고 ‘현재의 대중의 의식과 투쟁력에 조응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한쪽 끝자락’을 걸치고 있어서 문제라면, 혁명적 요구에 있어서는 혁명의 시기에 국가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후진적인 것이다.

이행기 강령은 최소강령적 요소와 최대강령적 요소의 무분별한 절충이다. 노동자통제, 국유화 등 이행기 강령은 일상시기에는 대중의 구체적 요구 보다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최대강령적이어서 문제다. 또한 정세와 무관하게 제기되는 노동자 정부, 공장위원회 등의 요구는 대중으로부터 사회주의자들을 고립시킨다 …

사노련은 지금 정세가 “불만 당겨지면 터져 나올 인화물질”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본다. 누군가 불만 지르면 확 정세가 타오를 수 있는데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자본가 국가의 탄압 이전에 노동조합 관료와 개량주의 정당들의 계급협조/노사협조 노선”과 “노조관료/개량주의정당의 이 같은 노골적인 계급협조 노선에 의해 계급 대 계급 전선이 방기되고 억제 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노련의 정세관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마치 금방 흥분했다가 가라앉는 ‘다혈질적 정세관’이라 할 수 있다. 대중들은 언제나 급진적 투쟁에 나서려 하는데 관료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관료들을 제거하고 혁명세력이 장악하면 확 타오를 수 있다는 식으로 본다. 물론 공황의 시기에는 대중들의 생존권이 압살당하기 때문에 가연적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급진화의 가능성이지 급진화의 현실성이 아니다. 휘발적 정세라는 것은 쉽게 불타오를 수 있지만, 쉽게 꺼질 수도 있다는 말 아닌가?(최근 당건설 토론과 강령논의에 대한 비판과 입장2 사노준과 사노련의 강령논의를 중심으로, 노동자정치신문 52호, 2009-06-25)

이행강령뿐만 아니라 박근혜 퇴진 투쟁 당시에도 양효식의 주장처럼, “문제는 자본주의다. 악의 뿌리는 자본주의,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뿌리’로 환원시켜 그 ‘뿌리’와의 투쟁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근본주의적 입장을 주장하는 일련의 “‘좌’익 유아적 경향”이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외치면서도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이 변혁에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과 개인들은 혁명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단 한 번도 현실에서 사고해보지 않은 구제불능의 ‘좌익 몽상가’들이다. 이들은 ‘이행강령’을 신주단지처럼 모셔놓고 시도 때도 없이 외치면서도, 변혁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행과 접근의 형태”에 대해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도대체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현 박근혜 파쇼 정권을 반대하는 모든 계급과 세력을 결집시켜 파시즘을 분쇄하자는 주장이 왜 “노자협조”가 되고, 몰계급적이고 의회주의적인 야권연대가 되는 것인가? …

이들은 ‘자본주의 철폐 투쟁’을 해야지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을 해봐야 또 다른 자본가 정부가 들어서면 끝이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면서 정권 퇴진 투쟁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이다. 노동자가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민주주의 수호,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을 “쌍팔년도 개뼉다구 같은 소리”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현실 정세가 ‘쌍팔년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을 종파주의 관념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는 경제의 집중적 표현이다”라는 말이 있다. 과연 독점자본을 위해 노동자 민중에 대한 테러 독재를 강화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을 분쇄하지 않고 어떻게 사회주의로 이행하고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자본을 위한 상부구조로서 고도로 조직된 폭력체인 국가권력을 내버려 둔 채 자본의 지배체제를 혁파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들은 원리주의적, 근본주의적 태도로 혁명을 관념적으로 희화화 하고 박근혜 정권에 반대하고 분노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회의주의와 패배주의를 심어 준다(박근혜 정권의 파쇼성을 한사코 부정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노동자정치신문, 2015년 12월 15일).

지금까지 수년 동안 펼쳐졌던 현실 투쟁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과연 누가 레닌주의의 원칙을 일관되게 사수하고 실천에서 올바르게 적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바로 위의 인용문 중에서 인용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민주주의 수호, 반파쇼 민주주의 투쟁”을 “쌍팔년도 개뼉다구 같은 소리”라고 했던 것은 양효식의 개인 페이스북 글을 인용한 것이었다. 이제야말로 민주주의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을 분리시키고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부정하면서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는 세력들이 누구인지 분명해졌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양효식이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한국사회 이른바 ‘좌파’들의 일반적 경향이다.

앞에서 양효식의 주장이 격세지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는데, 과연 그렇지 아니한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정확하게 비판하고 있는 레닌의 글을 번역하면서도 그것이 바로 자신의 그 동안의 ‘좌’익 유아적 경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양효식은 자가당착의 “왜곡·날조”를 일삼고 있었던 것이다.

“왜곡·날조”를 일삼으면서 그것을 맑스레닌주의자들한테 전가

양효식은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에서 레닌이 비판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를 언급하며 레닌의 입장을 왜곡한다고 하는 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그런데 레닌의 이 글을, 이후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은 반파쇼 민주주의 혁명/인민전선, 반독점 민주대연합 등 노동자 투쟁을 사회주의 혁명으로부터 유리시키고 계급협조로 유도하는 기회주의 노선을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로 삼고자 한다. 이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은, 예를 들어 이 글 가운데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구절을 마치 먼저 1단계로 민주주의 혁명을 완성하고 난 다음에야 ‘2단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인 것처럼 왜곡·날조하고, 그리하여 단계를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면 계급투쟁 전면화와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을 ‘극좌 모험주의’라고 노동자들을 협박, 기만하고 있다(양효식, 옮긴이 후기,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레닌 전집 064, 아고라출판사, 1판 1쇄).

그런데 아래에서 다시 인용하겠지만 트로츠키조차도 “‘영속혁명’이라는 이름을 받은 러시아 혁명 발전의 성격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바로 1905년 1월 9일부터 10월 파업까지의 기간에 형성되었다. 이 기묘한 이름은 러시아 혁명이 직접적으로는 부르주아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할지라도 그 부르주아적 목표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트로츠키, “1905년” 서문, 1922년, 스탈린,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에서 재인용)라고 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이 1차적으로 짜리즘을 타도하는 “부르주아적 목표”임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만 트로츠키는 이 혁명은 부르주아적 목표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러시아에서 1단계인 짜리즘 봉건체제를 타도하지 않고서 2단계 사회주의 혁명으로 진군할 수 있을 것인가?

레닌은 1917년 2월 혁명으로 짜리즘을 타도하고 나서 “모든 권력을 쏘비에트로”라고 외치는 “4월 테제”에서도 “일거에 사회주의 도입이 아니라 사회적 생산과 그 생산물 분배의 통제로 노동자대표 소비에뜨의 지체 없이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이행”(레닌, “4월 테제의 최초의 초안, 노동자정치신문, 2010-12-28, 임채희 러시아어 번역)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당시 일거에 사회주의를 도입할 수 없다는 레닌의 주장과 “노동 계급의 전위대는 바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정권을 잡자 곧 봉건적 소유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공격할 것이다.”, “이 경우에 노동계급의 전위대는 그 혁명 투쟁의 초기에 그를 지지한 온갖 부르주아 집단은 물론 그가 정권을 잡도록 도와 준 광범위한 농민 대중과의 적대적 충돌을 하게 될 것이다.”(트로츠키, “1905년”에 대한 1922년 서문)라는 트로츠키의 ‘좌’익 유아적 모험주의와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가?

레닌이 일거에 사회주의 도입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특히 농업 부문에 있어서의 집산화 조치를 염두에 둔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이 집산화는 혁명 이후 10년이 더 지나서 수행되었다. 그런데 트로츠키는 이를 “정권을 잡자 곧”, “광범위한 농민과의 적대적 충돌”을 주장하며 ‘극’좌적 편향을 보이고 있다. 실제 트로츠키와 트로츠키주의자들인 프레오브라젠스키는 사회주의 원시적 축적 운운하며 집산화 조건이 되지 않은 때 이른 시점에서 거기다가 농민을 희생으로 하여 사회주의 축적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서 독점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한국사회 혁명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과연 1단계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2단계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갈 것인가? 양효식은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러시아 상황에서의 단계 적용을 마치 한국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으로 취급하며 레닌의 주장을 “왜곡·날조”하고 있다고 극렬 비난하고 있다. 위에서도 인용했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한국사회는 고도의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를 앞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요구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르주아의 반동성이 극에 달한 지금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은 자유주의 부르주아나 반동적 부르주아나 할 것 없이 실현할 수 없는 민주주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민주주의 투쟁과 사회주의 투쟁은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노동자정치신문 55호, 2009-09-29).

한국사회는 궁극적으로 반자본주의 투쟁을 통해서 근본변혁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반자본 투쟁은 대중 의식의 미발전, 혁명정당의 부재, 변혁에 대한 정치적 전망의 부재 등으로 말미암아 아직 당면 대중 투쟁과제로 되지 않고 있다 … 현재 자본과 노동의 대립은 파쇼 권력 대 민주주의 투쟁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당면 과제로 남아 있는 정권 퇴진 투쟁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민주주의 요구와 노동자 투쟁의 요구를 병행해서 제기해야 한다. 특히 자본가 야당은 독점자본의 한 분파로 민주주의 요구도 실현시킬 수 없다. 오늘날 민주주의 투쟁은 노동자 계급과 민중의 몫이다. 민주주의 투쟁의 심화 발전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의식을 드높이고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광범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민주주의 투쟁은 반자본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한 대중을 반자본으로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이자 경로이다. “민주주의 투쟁을 넘어 반자본”이 아니라, 민주주의 투쟁을 통해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이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하면서 경제주의를 넘어서 전체 민중의 지도자가 될 때 새로운 혁명적 주체가 형성될 것이다(전국노동자정치협회, 박근혜 퇴진 투쟁과 그 이후 세상을 전망한다!, 2016. 12.).

과연 이 주장이 “프롤레타리아트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사회주의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는 레닌의 주장과 조금이라도 다른 것이 있는가? 그런데 민주주의 투쟁 요구를 전면화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 선전을 부정하는가? 그렇지 않다. 매 시기 투쟁에서 사회주의를 선전, 조직화 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사회주의가 궁극목표임을 숨기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궁극목표를 끊임없이 알려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이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하면서 경제주의를 넘어서 전체 민중의 지도자가” 되자고 하는 주장이 “극좌 모험주의”이며 “노동자들을 협박, 기만”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 협박과 기만은 누가 하고 있고, 그것을 당하는 것은 누구인가?

양효식이 단 한 번도 제대로 인용하지 않으면서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의 “계급협조”로까지 일방 매도하는 인민전선은 과연 혁명을 회피하는 주장인가?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수립에 있어 기본적인 것, 가장 결정적인 것, 그것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들 층, 특히 근로농민의 요구들 -프롤레타리아트의 근본적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요구들-을 옹호하여 단호히 행동함으로써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요구들과 이들의 요구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 분명 통일전선 정부는 일련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행형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좌익’ 공론가는 레닌의 이 지시를 언제나 회피해 왔다. 시야가 좁은 선전가인 그들은 단지 ‘목적’에 관해 말할 뿐, ‘이행의 형태’ 등에는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익 기회주의자는 노동자 사이에 부르조아지의 독재로부터 프롤레타리아독재로 가는, 의회를 통한 평화로운 산보라는 환상을 퍼드리기 위해 이 두 개의 독재 사이에 특수한 민주주의적 중간단계를 설정하려 했다. 이 가공의 ‘중간단계를 그들은  ‘이행형태’라고도 부르면서 레닌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 속임수를 폭로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혁명’에의 즉 부르조아독재 타도에의 이행과 접근의 형태에 관해 말했던 것이지 부르조아 독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이의 이행형태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디미트로프, “파시즘의 공세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임무”).

양효식은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왜곡·날조” 비난하는 수법을 그만 사용하고, 이러한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여 비판해보라!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와 국제혁명의 관계

쏘련 사회주의와 그 지도자 스탈린에 대한 적개심이 양효식을 지탱하는 힘이자 정치적 기초라면, “왜곡·날조”는 그 힘과 정치적 기초를 전파하는 방법이자 수단이다.

민주주의 혁명 단계론자/반파쇼 인민전선주의자들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을 비롯한 ‘좌’익 유아적 경향에 의해 희화화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노선과 마르크스주의를 먹잇감으로 삼아 자신들의 기회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고자 이 시기에 ‘좌’익 유아적 경향들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계 동시혁명론을 공격하는 것으로 ‘일국 사회주의’론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이들은 레닌이 이 시기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하고, 대신 ‘일국 사회주의’론을 제창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양효식, 옮긴이 후기,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레닌 전집 064, 아고라출판사, 1판 1쇄).

일국, 즉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노선은 바로 볼셰비키당 내부에서 다수파와 소수파인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등 ‘좌’익 유아적 경향과의 투쟁이었다. 스탈린은 트로츠키의 특허 상품인 “영속혁명”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영속혁명’이라는 이름을 받은 러시아 혁명 발전의 성격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바로 1905년 1월 9일부터 10월 파업까지의 기간에 형성되었다. 이 기묘한 이름은 러시아 혁명이 직접적으로는 부르주아적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할지라도 그 부르주아적 목표에만 머무를 수 없다는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혁명은 노동 계급이 정권을 잡지 않고서는 자기의 당면한 부르주아적 과업을 해결하지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자기의 수중에 정권을 잡은 이 노동 계급은 혁명에서 부르주아적 한계에만 국한할 수 없을 것이다. 도리어 노동 계급의 전위대는 바로 승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정권을 잡자 곧 봉건적 소유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공격할 것이다. 이 경우에 노동계급의 전위대는 그 혁명 투쟁의 초기에 그를 지지한 온갖 부르주아 집단은 물론 그가 정권을 잡도록 도와 준 광범위한 농민 대중과의 적대적 충돌을 하게 될 것이다. 농민이 압도적 다수인 낙후한 나라에서의 노동자 정부의 지위 상의 모순은 오직 국제적 규모에서만,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트로츠키, “1905년” 서문, 1922년, 스탈린,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에서 재인용, 조선로동당출판사, 1966년 2월 20일 ).

스탈린은 트로츠키 “영속혁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트와 근로 농민층과의 동맹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기초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트로츠키에게 있어서는 “프롤레타리아 전위대”와 “광범한 농민 대중”과의 “적대적 충돌”이다 …

레닌에 의하면 혁명은 그 자체의 역량을 무엇보다도 러시아 자체의 노동자와 농민들 속에서 얻게 된다. 그러나 트로츠키에게 있어서는 그 필요한 역량을 다만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국제 혁명이 늦게 도래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혁명에는 어떠한 희망이 있는가? 트로츠키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자 정부가 부닥치게 되는 모순은 오직…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계획에 의하면 우리 혁명에는 자체의 모순 속에서 시들어 가며 세계 혁명을 기다리느라고 썩어 없어질 오직 하나의 전망만이 남아 있다 … 영속혁명은 농민 운동의 혁명적 가능성에 대한 단순한 과소 평가가 아니다. “영속혁명”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레닌의 이론을 부정하게 하는, 농민 운동에 대한 그런 과소 평가이다(스탈린, “10월 혁명과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의 전술”, 1924년 12월 17일).

이처럼 1920년대 중반 볼셰비키 당 내에서 전개된 거대한 논쟁의 본질은 노농동맹을 굳건히 하고 쏘비에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강화하느냐 “광범위한 농민 대중과의 적대적 충돌”을 야기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근간인 노농동맹을 파괴하느냐와 세계혁명, 특히 당시에는 독일혁명이 패배한 상황에서 일국에서 사회주의의 성공적 건설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느냐, 사회주의의 성공은 “오직 국제적 규모에서만, 세계적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무대에서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공허한 국제혁명을 주장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런데 양효식은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고자”,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레닌이 이 시기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하고, 대신 ‘일국 사회주의’론을 제창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며 “왜곡·날조”를 일삼고 있다. 트로츠키가 악의적인 분파주의에 사로잡혀 그러했던 것처럼, 양효식은 일국사회주의냐 세계혁명이냐는 가상의 논란을 제기하면서 “일국에서 성공적인 사회주의의 건설을 위한 투쟁”을 마치 국제혁명을 포기한 고립적 민족주의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당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우리의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며, 10월 혁명은 서구라파 사회주의 혁명의 신호, 충격 및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은 첫째로 세계 혁명 운동의 장래 발전의 기초이며 둘째로 쏘련에서의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열어주는 것인데 이 과도기 기간에 노동계급은 농민에 대한 올바른 정책으로 완전한 사회주의 사회를 성과적으로 건설할 수 있으며 또 건설할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 편으로는 국제 혁명 운동의 위력과 다른 편으로는 쏘련의 노동계급의 위력이 제국주의의 무력 간섭으로부터 쏘련을 방위할 만큼 충분히 강해지는 경우이다(스탈린, 보고 “우리 당내의 사회민주주의적 편향에 관하여” 결론, 스탈린 선집2, 1926년 11월 3일).

스탈린이 인용한 당시 논쟁에 대한 볼셰비키 14차 당 대표자회의 공식 입장이다. 여기 어디에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건설”론이 세계혁명을 포기한 것이 있는가? 오히려 러시아 혁명은 “세계 혁명 운동의 장래 발전의 기초”인데, 프롤레타리아 독재 기간 동안 사회주의의 성공적 건설과 그 장래 발전을 긴밀하게 관련짓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노동자 계급이 중심이 되어 농민에 대한 올바른 정책, 즉 노농동맹의 확고한 기초 위에서 사회주의 생산과 경제를 성공적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쏘련에서 사회주의의 성공적 건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공은 국제 혁명 운동이 위력을 발휘하고 제국주의의 무력간섭으로부터 쏘련을 방위할 만큼 강력해져야지만 공고한 승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국제혁명의 대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의 관계를 비변증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실제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전 세계적 대공황으로 자본주의 파국이 고조되는 시점에서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전 세계 노동자들은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쏘련을 전망으로 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투쟁을 강화했다. 만약 쏘련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반대로 전 세계 운동은 대안 없는 운동, 절망적 패배주의에 빠졌을 것이다.

스탈린과 볼셰비키당은 당시 모순을 “국내적인 모순과 국외적인 모순” 두 가지로 나눠서 살펴보고 있다. 전자는 “사회주의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요소와의 투쟁”인데, 이 내적모순의 해결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으며 우리 나라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를 타승하고 농민의 기본 대중을 사회주의 건설에 인입하여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자는 “국외적인 모순”인데, 이 외적 모순의 해결은 “사회주의가 적어도 여러 나라에서 승리하여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며 도구”(같은 글)라고 하는 것이다.

당이 언제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종국적인 승리가 가능하며 한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어디서 언제 그렇게 말하였는가를 우리에게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 …

당은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것은 사회주의가 그 나라에서 건설될 수 있다는 가능성 문제이며 또 이 과업은 한 나라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라는 것은 무력 간섭과 자본주의의 복구로부터의 보장이며 또 이 과업은 오직 혁명이 몇 개 나라에서 승리하는 조건 하에서만 해결될 있다는 것에서 항상 출발하였다. 이런데도 어떻게 이 두 개의 과업을 염치없이 서로 혼동할 수 있는가?(같은 글)

이처럼 스탈린이나 볼셰비키당은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분리해서 보지 않았다. 반면에 이를 분리하여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학문적 몰양심과 정치적 저열함으로 이러한 이 두 개의 과업을 염치없이 혼동하는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 중에는 스탈린이 1920년대 중반에는 일국혁명과 세계혁명을 같이 주장했으나 이후에는 세계혁명을 포기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니 스탈린이 이른바 권력을 확고하게 장악했다고 하는 1931년에는 뭐라고 했는지 보자!

우리의 우월성은, 우리가 과잉생산 공황을 모르며 우리에게는 수백만의 실업자들이 없으며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우리가 계획경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생산의 무정부성을 모른다는데 있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보다 더 무겁고 중요한 다른 의무가 있다. 그것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 앞에 부여 받은 임무이다 … 쏘련의 노동계급은 세계 노동계급의 한 부분이다. 우리는 쏘련 노동계급의 노력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세계 노동계급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에 승리하였다 … 우리는 자본가들에 맞서 그들을 지지하며 세계 혁명의 위업을 확대 발전시키자고 말하도록 전진하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계 노동계급의 기대를 실현하며 그들 앞에 부여 받은 우리의 임무를 실행하여야 할 것인가? 그렇다(스탈린, 경제일꾼들의 과업에 대하여, 1931년 2월 4일).

이는 양효식 자신의 머리와 손으로 번역한 레닌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세계합중국(유럽만의 합중국이 아니라)은-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를 최종적으로 소멸시킬 때까지는-우리가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국가형태, 즉 민족들의 연합과 자유의 국가 형태다. 그러나 독립된 슬로건으로서는 세계합중국 슬로건은 올바른 슬로건이라고 하기 힘든데, 첫째는 그것이 사회주의와 합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국과 타국들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이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 개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심지어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 세계의 나머지-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나 타국의 피억압 계급을 자신의 대의로 끌어들이고, 그 나라들에서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봉기를 선동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착취 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대한 무력 사용도 불사할 것이다(레닌, “유럽합중국 슬로건에 대하여”, 양효식 옮김, 아고라출판사).

이처럼 레닌은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못박았다. 제국주의 발전의 불균등성으로 생겨난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끊고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 즉 러시아에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실제 혁명을 성공시켰다. 레닌은 또한 “그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이라며, 일국에서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하고 난 뒤에, “세계의 나머지-즉 자본주의 세계-에 대항”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일국에서의 사회주의 건설과 세계혁명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고 성공적으로 사회주의 생산을 조직하지 않고 어떻게 세계혁명이 가능한가? 그리고 국제혁명 없이 일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처럼 레닌의 이 주장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터무니없이 왜곡한 “일국사회주의론”의 명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데도 양효식은 레닌의 이 주장을 인용하면서, “세계 혁명 노선에 대립하는 바로서의 스탈린주의적 ‘일국 사회주의’론”(양효식, 레닌 전집064, 옮긴이 주, 아고라출판사)이라는 가상의 대립으로 맑스레닌주의를 “왜곡·날조”하고 있다. 양효식은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언제, 어디서 “레닌이 이 시기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부정하고, 대신 ‘일국 사회주의’론을 제창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지 단 한 마디의 분명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레닌의 저작을 번역한다고 하는 노고와 숭고한 작업이 “옮긴이 후기”에서 트로츠키주의자 양효식의 “왜곡, 날조”에 의해 그 의미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양효식은 분파주의에서 벗어나 레닌 번역자로서의 학문적 엄밀함과 양심을 지키기를 바란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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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한 트로츠키주의 레닌 번역자의 레닌주의 사상 “왜곡·날조””의 1개의 생각

  • 2018년 4월 8일 9:52 오후
    Permalink

    자신들의 제국주의 경제주의는 생각하지도 않는 상황인데 도서를 번역하고 보니 도로 자신들에게 해당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알려드린대로 지난번에 노건투의 결별과 종료 사실을 확인했습니다만 다른 결사체를 구성해도 이런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와 결별하지 못한다면 역시 희망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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