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에 맞서 알바니아 인민들은 어떻게 투쟁했는가?

파시스트 침략자에 맞서 가열차게 싸우는 유격대와 의용군 전사들과 함께 파시즘에 맞선 길로 나서다

 

출처: 엔베르 호자 선집 1권 1943년 1월
역자: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알바니아 산하에서 우리 선조들의 위대한 투쟁의 역사가 되풀이 되고 있고, 르네상스 부흥기 시절* 우리 알바니아의 위대한 애국자들의 노고가 재현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어깨에 총을 멘 소년과 노인들이고, 인민들의 병사들이며 이 저항군을 이루어 함께 뭉치고 있으며, 자유라는 이상에 영감을 받아 증오의 피가 들끓은 피에 굶주린 파시스트 침략자를 공격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농촌 곳곳에서 대문이 활짝 열렸고, 알바니아의 마을 곳곳이 자신들의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병사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습니다.
* 알바니아 르네상스는 5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서 있던 알바니아 민족이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걸쳐 알바니아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떨쳐 일어난 투쟁의 부흥기를 말한다.(역주)

1878년 알바니아 르네상스 시절 유격대

알바니아 농민들은 조국과 빵 그리고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숨겨놓았던 무기를 들고 유격대와 의용군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알바니아 인민들로 구성된 빨치산과 지원군 부대는 알바니아의 온 마을마다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고, 해방군이 가는 곳 마다 파시스트들은 패전하고 무장해제 되고 있으며, 파시스트들과 조국의 배신자들이 독점적으로 차지하던 우리 인민의 곡식은 광범위하게 농민들에게 분배되고 있습니다. 인민의 군대는 날이 갈수록 규모가 증가하고 있으며, 노동자, 농민, 교사, 학생 그리고 알바니 애국자들로 구성된 대열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유격대는 가는 곳 마다 자유를 되찾겠다고 약속하고 있고, 실제로 파시스트 침략자에 맞서 싸우려는 크나큰 열정이 있습니다.

엔베르 호자의 유격대 시절(오른쪽)과 유격대원들


이것이 바로 어깨에 총을 메고 자유의 대오를 이끌며 알바니아의 모든 지역과 행로를 아우르는 우리 인민군대를 알바니아인들이 환영하는 방식입니다. 알바니아 어디를 가든 인민들이 병사들에게 환대하는 일들로 넘쳐나서 이 모든 사건을 여기에 다 기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국을 노예화한 파시스트라는 적과 싸움에서 우리 인민들의 큰 열정을 보여주는 몇몇 사례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마르타네시(Martanesh, 알바니아 중부 지역)의 유격대는 작전을 개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격대는 항전을 준비하면서 혁명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총기를 가다듬으며, 탄약을, 그리고 배낭 속에 있는 빵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15살의 소년 유격대로 대원들 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무스타파를 빼고는 대원들의 웃는 얼굴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무스타파는 오두막 구석에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흐느꼈습니다. 행군길이 소년에게 험난할 것이라고 생각한 부대 사령관이 후방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무스타파는 싸우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며, 유격대 지휘관에게, 그리고 동료들에게 호소했지만, 동지들은 무스타파에게 이것이 곧 규율이라고 말했습니다. 유격대가 떠나자, 무스타파가 눈물이 맺힌 표정으로 오두막집 문 앞에 와서, 유격대 동지들이 행진하며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겨우 15살밖에 되지 않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작전이 수행될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유격대는 알바니아에 있는 마을 여러 곳을 지나갔습니다. 알바니아의 어떤 마을에선, 그 유격대의 한 동지가 마을 주변에 모인 농민들에게 왜 그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한 신성한 해방전쟁에서 파시스트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인민 여러분 이제 그 날이 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무기를 들고 파시스트 침략 세력에 맞서 싸웁시다.”
이걸 들은 농민들 사이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오게 되고, 25살 정도 되는 한 청년이 앞에 나서서 유격대 부대장에게 몸을 돌리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 또한 인민에 군대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저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죽을 것입니다.”

그 청년이 소총을 받으러 달려가자, 다른 농민들은 빵을 가져와서 유격대에게 나누어줍니다. 가난한 오두막집 옆에 있는 한 늙은 여인이 유격대를 멈춰 세우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보게 내 아들 같은 젊은이, 잠시만 기다려 보게. 내가 자네에게 빵을 줄 때까지 만이라도 말이네. 신이 자네의 목숨을 지켜주기를 바라네. 자네들이 아니었다면, 적들이 우리의 식량을 빼앗아 것이네.”

그녀는 오두막집으로 들어가 소량의 빵과 올리브를 가지고 다시 집 밖으로 나옵니다. 그 유격대원은 빵을 받고, 늙은 여인을 격렬히 포옹한 뒤에 갈 길을 갑니다. 하지만 그가 모퉁이를 돌아서 갈 길을 갈 때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를 부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까 본 농민 중 한 명인 늙은 여인이었습니다. 늙은 여인은 유격대가 먹을 빵을 위해 버터 한 숟가락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정말 멋진 인민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런 너그러움과 배려가 우리 인민군의 마음을 기쁨으로 가득 채우며, 인민군들이 조국과 알바니아 인민의 해방을 위해 노래하며 전투에 돌입하게 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전쟁의 포화 속으로 향할수록, 지로카스트라(Gjirokastra)에 주둔한 유격대 역시 격동 치게 됩니다. 그들은 양치기가 반파시스트 영웅들을 환영한 소프트(Sopt, 동알바니아의 어느 도시)로 건너가, 유격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산양치기들의 적들이 감히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하는, 산 깊숙한 협곡과 봉우리 사이에서 즐기는 자유라는 이상을 추구하는 진정한 혁명 투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쿠르벨레시(Kurvelesh, 남알바니아의 한 지역)의 유격대는 이 라베리아*의 한 마을을 지나갔다가, 이 용기와 전통을 가진 지역의 여러 마을에서 대표단이 모여 이 유격대 정치위원이 연설하기로 한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농민들 중에는 부대원들의 말에 묵묵히 동의하며 경청하고 있었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있었는데, 그 사람은 독수리의 눈을 가진 확실히 라베리아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용감한 사람들의 동지였습니다. 연설하던 위원장의 모자에는 유격대 배지와 쌍두독수리가 그려진 붉은 깃발 그리고 붉은 별을 달고 있었습니다.
* 라베리아Labëria는 알바니아 남부 지역(역주)

회합이 끝난 이후, 그 노인은 군중을 떠나 혁명 투사들을 껴안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보게 젊은이들, 나는 자네들의 이름을 일일이 알고 싶지는 않네. 그러나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네. 알바니아는 체르시스나 셀람인(체르시스는 토풀리를, 셀람은 튀르크에 대항하는 애국적인 악단의 지휘관이었던 셀람 무사이를, 그리고 셀람은 1920년 블로라 전쟁에서 의용군의 지휘관이 되었다.)들의 땅이기도 하고, 그들의 아들들과 함께 그의 어머니는 우리를 짓밟는 저 개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해방시킬 방법을 알고 싶다는 얘기네. 내가 자네들을 껴않게 해주고, 이 모자에 있는 혁명의 상징물을 내가 맡아두게 해주게나.”

유격대 대장은 기쁜 마음으로 유격대 배지를 떼서 80이 넘은 노인에게 수여했습니다. 그 노인은 받은 배지에 입을 맞추고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습니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 울타리 옆에 쪼그리고 않아 있던 노인은 젊은 전사가 그에게 준 배지를 꺼내 흰 펠트 모자에 꿰맨 후, 당당하게 마을로 들어가 마을 사람들에게 청년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로카스트라의 유격대는 차례차례 곡물상점을 열고, 농민들에게 십일조로 집급된 곡물을 분배했습니다. 그 와중에, 인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본진에서 온 메를리카(Merlika)의 대리인 타히르 콜지니(지로카스트라의 파시스트 행정관)는 산에서 유격대의 화약 냄새가 났기 때문에, 기가 꺾여 그들 본부로 달아났습니다.
지로카스트라 지역의 마을들에선 유격대 활동 이외에 그 어떤 움직임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리보호바의 농민들은 무장한 민간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농민들은 “이 사람들은 틀림없이 부패한 정부의 관료들을 몰아내고 빼앗긴 곡식을 나누어줄 유격대들일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농부들은 지체 없이 그들의 자루를 준비한 채 유격대를 반겼습니다.
무장한 일행이 가까이 왔을 때, 농민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경례를 하며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파시스트들에게 죽음을!”
그러나 평소 미소로 인민군 병사들에게 대답하던 “인민에게 자유를!”이라는 말 대신에, 무장한 민간인들의 대답은 저주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유격대가 아닌 타락한 악의 무리 메르케스 알리(Merqes Ali)가 이끄는 용병과 배신자들을 둔 민병대로, 그들은 우리 민족주의 해방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적들이 끌어 모은 날강도들이었습니다. 지로카스트라 지역의 인민들은 확신을 품고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린 저 도둑놈들로부터 구출됐소. 지역 관리가 저들에게 민병대 제복을 입혔고, 도시에 줄곧 주둔시켰기 때문이었지.”

블로러의 유격대는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유격대는 작전 도중 염소 때와 함께 모인 염소치기를 만납니다.

“이보시게 빨치산 전사들”

그 염소치기가 말합니다.

“어디로 가는 건가? 자네들에게 할 말이 있다네.”

유격대는 잠시 가던 길을 멈췄고, 유격대는 유격대 사령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난 자네들이 저 간악한 적들의 상점에 불을 지르러 간다는 것을 알고 있네, 내가 염소를 오두막으로 대려다 준 다음 즉시 나도 함께 데려가주게나.”

유격대 사령관은 기꺼이 그 염소치기를 데려갈 것이라고 대답했으나, 유격대에겐 염소치기가 염소들을 오두막으로 대려다 놓을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특정한 시간에 목표한 목적지에 도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유격대가 이동하자 그들은 말합니다.

“파시즘에게 죽음을, 인민에게 진정한 자유를!”

30분도 채 되지 않아, 부대는 놀랍게도 소총을 어깨에 메고 그들 앞에 나타난 염소치기를 보게 됐습니다. 염소치기는 염소들을 급히 오두막에 넣고 왔으며, 파시스트 점령자들과의 투쟁에서 유격대에 합류하기 위해 바람과도 같은 속도로 달려온 것입니다.
영웅적인 스크라파 부대는 메를리카의 민병대 1,500명을 격파하는 성공작인 군사작전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Th.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스크라파 부대의 정치위원은 어느 한 농부가 숨이 찬 상태로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정치 위원은 그 농부를 두 팔 벌려 환영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묻습니다.
농부는 “동지들, 현재 동지들은 적군에게 포위되어 있소”라고 말하며, 민병대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알렸습니다. 정치위원은 농부를 포옹하며 무엇을 하기로 했는지, 마을로 돌아갈 것인지, 유격대와 함께 하기를 원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농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동지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유격대가 적군의 포위망을 뚫고 파시스트 민병대를 궤멸시킨 이후, 동물의 왕 사자처럼 용맹하게 싸웠던 농부는 치위원에게 다가가 그를 포옹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동지, 저를 알바니아 공산당에 입당시키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간청 드립니다.”

코르차 지역의 유격대는 오파르, 데볼, 콜론자, 모크라를 비롯한 산악지대에서 카라비니에리* 및 민병대의 초소들을 모조리 섬멸했습니다. 해방을 향한 유격대의 발걸음이 그 지역들에 메아리치기 시작했습니다.
*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는 이탈리아 헌병대. 군사경찰과 민간경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조직이다.(역주)

모크라 지역의 체즈마(Çezma)에서 어느 유격대가 전투를 전개하여 적들을 격파하고 마을을 해방시켰지만, 마을에 사는 한 노인이 부상당했습니다. 유격대 지휘관이 직접 가서 부상당한 늙은 노인을 포옹했습니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아들아 나는 행복하다. 내 삶에 남은 며칠이 유격대에 더 속해있기를 바랄 뿐이다.”

부대가 다시 다른 길을 향해 출발했을 때, 그 노인은 지휘관에게 다음과 같은 작별 인사를 합니다.

“두체*가 가시덤불 속에서 죽기를 염원한다.”
* 이탈리아어 두체(Duce)는 무쏠리니를 가르키는 표현이다.(역주)

데볼 지역의 유격대는 카러바나에리가 주둔한 곳을 우회한 후 그들의 초소 중 하나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난 초소에서 목숨을 건진 이탈리아 병사가 있었는데, 그 이탈리아 병사는 떠나기 전에 상관에게 이탈리아어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동지, 불타는 기지의 사진을 찍게 해주십시오. 당신과 우리 모두를 노예로 삼았던 파시스트 권력의 사무실과 서류가 불타오르는 것을 기쁘게 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데볼(Devoll)의 한 마을에서 유격대원들은 가난한 농부의 벽난로 주변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문이 갑작스럽게 열렸고, 어떤 노인이 들어와서는, “병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치켜들었습니다. 그는 “보스포루스의 병자(18세기 말 오스만 제국에게 붙여진 명칭)”와 싸웠던 르네상스 시대의 영웅적 유격부대를 본 노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지금 그는 역사가 재현되는 것을 직시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점령자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노인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접점을 만들며, 침략에 맞서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유격대는 코르차*에서 시작된 여정으로 피곤했기 때문에 그 노인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새로운 소식을 물어봤습니다. 그 노인은 담배를 피우며 만족스럽게 말합니다. “그들이 태워 버렸어!”라고 노인이 말하니,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태웠나요?”라고 유격대원들이 놀라서 묻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불태웠습니다. 그 썩고 사악한 장소, 그러니까 악마가 가져가고, 우리에게 소금을 주지 않는 장소.”라고 노인은 대답합니다. 그 사악한 장소는 유격대에 의해 불태워진 코르차의 파시스트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유격대원들은 웃습니다. 유격대가 도시의 파시스트 본부에 불을 지르자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곳곳에서 유격대원들의 용기와 결단력 외에는 아무 얘기도 없을 정도였지요.
* 코르차(Korça)는 15세기 중반에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인 스칸데르베그가 반(反) 오스만 투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알바니아어 ç는 “ㅊ” 발음으로 해야 옳다.(역주)

한 집에서 손님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여주인이 화로에 쓸 연탄 몇 개를 들고 오던 도중, 그 중 하나가 카펫에 떨어졌습니다. 주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석탄을 집어 들고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오? 우리 집을 파시스트 본부로 삼으려 하는 거요?”

유격대가 모크라 지역의 크레쇼바에 의기양양하게 입성했을 때, 농민들은 모두 인민군대를 만나러 마을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떨리는 손으로 옛 국기를 부여잡던 어떤 노인이 있었습니다.
사령관은 농민들에게 연설하며, 파시스트 점령자들에 의해, 알바니아 인민들한테 전가된 고통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연설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 깃발을 든 노인이 사령관에게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깃발을 드시오. 당신은 충분히 깃발을 들 가치가 있소. 이 깃발은 30년 된 깃발이요, 알바니아의 옛 무장부대의 깃발이지.”

사령관은 깃발을 들고, 노인을 포옹하며 말했습니다.
“우리는 귀하의 선물을 소중히 아끼고, 언제나 제 자리에서 휘날리도록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겠습니다.”

“스피로 벨라카미와 미할 그라메노(터키의 지배와 그리스 국수주의자들에게 맞서 투쟁을 전개한 20세기 초반 알바니아 무장 봉기대의 지도자들)의 영웅적 부대들의 깃발은 우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의 승리가 기록되어 있는 붉은 깃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피로 알바니아의 진정한 해방을 위한 인민들의 한사코 꺼지지 않는 열망을 대를 이어 수놓을 것입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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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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