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침략전쟁의 선봉부대 그린베레(Green Beret)

김남기(학생)

 

실베스터 스텔론(Sylvester Stallone)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람보(Rambo)’는 전직 그린베레 출신의 병사가 미국을 위해 활약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영화 람보가 그린베레 부대원이라는 설정을 하고 있듯이, 그린베레는 미군 특수부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이런 그린베레의 활약은 로빈 무어의 소설 ‘그린베레(The Green Beret)’로도 만들어졌고, 1968년 영화 그린베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주로 적 후방으로 투입되어 비정규전이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고, 미국이 개입한 많은 전쟁에 참전했다.

그린베레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올라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은 CIA의 전신인 OSS(Office Strategic Service)라는 전략정보국을 운영하면서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서 활약했다. 이런 미군의 특수부대는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몬테카시노 전투와 1944년 안치오 상륙작전 등에서 독일군과 이탈리아군을 상대로 큰 활약을 했다. 또한 미군에서 창설한 제101 사단이나 82사단과 같은 공수부대들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여러 활약을 했고, 이런 활약은 이후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Band of Brothers)’로도 만들어진다.

미국의 OSS는 동남아시아의 버마와 중국 인도차이나반도에서도 반일 전선을 형성했고, 심지어 중경에 본부를 두고 있던 백범 김구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도 관계를 형성했다. 아무튼 OSS와 같은 그런 특수부대들은 적 후방에 침투하거나 후방에서 전선을 교란시키는 군사작전을 전개했고, 유럽과 아시아에서 큰 활약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특수부대를 활용하게 되는데,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부터다. 물론 미국은 냉전 초기부터 제국주의적인 개입을 해왔는데, 소수의 고문단 형식으로 참여했던, 그리스내전이 그러했다. 1946년에 영국 제국주의와 우익 왕당파들의 농간으로 일어났던 그리스 내전에서 미국은 소규모의 군사고문단을 보내 비정규전을 실행했고, 밴 플리트(Van Fleet)의 지휘아래 미군 고문단은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려 했던 혁명세력들을 효율적으로 학살하고 진압했다.

미군이 본격적으로 이 특수부대를 활용한 것은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에서였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하면서 북한 지역에 반공 유격대들이 생겨났는데, 미군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제8군 휘하에 8086부대를 편성했다. 이 부대가 이후 8240부대로 통합되면서 한반도의 모든 게릴라 작전을 지원했고, 1952년 6월 미국에서 창설된 제10 특수전단(Special Forces Group)은 미 육군 특수 부대의 시대를 열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이후 미소냉전이라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이 특전단의 규모는 점차 늘어났다. 이들은 우선적으로 서독에 배치됐고, 나머지 병력은 미국 포트 브래그(Fort Bragg)에 남아 제77특전단이 되었다. 그리고 이 특전단은 또 분견대로 분리되어 파견되면서 제1특전단이 일본에서 창설되기도 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미국의 그린베레가 탄생했다. 미국의 그린베레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에는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 1959년부터 미국은 남베트남에 이 특전단 소속의 군사고문단을 은밀히 파견했고, 그 숫자를 점진적으로 증가했다.

1960대 초 미국에서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특수부대는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고,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베레모 착용이 허용되면서 그 특수부대는 ‘그린베레’가 되었다.

(1961년 미군 특수부대가 주둔하고 있던 포트 브래그에 방문한 존 F. 케네디)

 

케네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창설된 미국의 그린베레는 냉전 시기 여러 곳에 배치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베트남이었다. 이들은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남베트남에 파견되었다. 베트남에 파견된 그린베레의 임무는 1960년에 창설된 베트콩(Viet Cong)을 대상으로 ‘대 게릴라전(Counter Insurgency)’을 펼치는 것이었다. 이들은 라오스 내전에서 파테트 라오(Pathet Lao)에 맞서기 위해 라오스와 베트남 북부에 사는 소수민족인 몽족(Hmong)을 포섭하여 최대 1만 명의 몽족 병력을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을 대상으로 한 게릴라전에 착수했다. 클린트 이스트 우드(Clint Eastwood) 감독이 2009년에 제작한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에 나오는 아시아인들이 바로 이 몽족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그린베레 대원과 산악부족)

 

또한 이들은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들어가 현지 소수민족들인 산안부족 즉 몽타냐르(산악부족, Montagnard)들을 모아 전략방어촌(로버트 맥나마라와 응오딘지엠 동생 응오딘누가 고안해냈던 전략촌(Strategic Hamlet)을 뜻한다.)을 형성하고, 1962년에는 CIDG(Civillian Irregular Denfense Group) 즉 민간 비정규방어대를 만들어 베트콩에 맞서 싸우도록 했다. 이렇게 창설된 부대들은 이후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면서 수만 명 규모로 확장됐고, 남베트남 소수민족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CIDG의 경우 최대 10만 명 이상까지 증가했었다. 그린베레는 이들 부대를 확장시켜 만든 ‘마이크 포스(Mike Strike Force)’는 베트콩에 대한 타격도 실시했다. 즉 그린베레는 이러한 활동들을 베트남 전쟁 초기와 전면적인 군사개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했다. 그러나 1969년 반전여론에 의해 닉슨 대통령이 ‘베트남화 정책(Vietnamazation)’을 발표하면서 철수하게 됐고, 1970년에는 그린베레 대다수가 베트남에서 철수하게 됐다.

베트남 전쟁 이후 그린베레는 대규모의 군사력을 동원한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았지만, CIA가 주도하는 남미에서의 내정간섭은 주기적으로 참가했다. 사실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의 혁명 군대를 토벌하는 임무에 착수하는데 그린베레가 사용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미국의 남미 간섭 및 침략에 그린베레와 같은 특수부대가 이용되었다. 1983년 10월 25일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주도했던 그레나다 침공(Invasion of Grenada)에서 침략의 선봉대에 섰던 것도 그린베레였다. 그레나다 침공은 사회주의 쿠바의 지원을 받는 그레나다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목적이었고, 또한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전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그린베레의 임무는 공산게릴라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반공성향의 정부군을 양성하거나, 반대로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게릴라를 비밀리에 양성하는 것이었다.

(그레나다 침공 당시 미군이 인민혁명군으로 추정되는 이들을 체포하고 있다.)

 

그린베레가 다시 능력을 발휘한 것은 1989년 파나마 침공 때였다. 파나마 침공에 동원된 그린베레 A팀들은 파나마의 라디오 송신국을 파괴했고, 교량을 장악하는 임무를 완수하기도 했다. 그린베레가 동원된 파나마 침공은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Noriega) 대통령이 마약을 밀수하고 있다는 이유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명분이었다. 미국이 파나마를 침공한 진짜 목적은 중남미 우파 게릴라들을 돕기 위한 자금으로 마약을 사용했기 때문이며, 노리에가가 파나마 운하에서 미국의 입김을 배제하려고 했기에 정권을 전복시킨 것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91년 그린베레는 걸프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노먼 슈워츠코프(Norman Schwarzkopf)가 주도한 ‘사막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에서 적진 깊숙이 침투해 사담 후세인이 지휘하는 이라크군의 동향을 감시했고, 우선순위 표적이던 스커드 미사일을 탐지해 파괴하도록 도왔으며, 다국적군에 참여한 아랍 국가들을 준비시키는 일에도 착수했다. 걸프전쟁 이후 그린베레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이후에 발생한 보스니아 내전과 중남미의 아이티 내전에도 투입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침략전을 수행했던 그린베레)

 

미국의 그린베레가 다시 활약하게 되는 것은 2001년 오사마 빈라덴의 9.11 테러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였다. 미국의 그린베레 팀은 반 탈레반 단체이자 소수민족 연합체인 ‘북부연맹(Northern Alliance)’을 포섭하여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이용했다. 이런 활동으로 전쟁 초기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2년 뒤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재에서도 미군의 그린베레는 참전했다. 이들은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과 연합해 이라크군에 맞서 싸웠다. 그린베레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운용하는 ‘대테러 추적팀(Counterterrorism Pursuit Teams)’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인근 지역의 준자치지역들(tribal regions)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었고, 이에 따라 파키스탄인들이 미국의 영토주권 침해에 분개했었다.

미군은 현재 모두 7개(현역 5개, 예비역 2개)의 특전단을 운용하고 있다. 제1특전단은 태평양 및 동남아시아 지역, 제3특전단은 아프리카 지역, 제5특전단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제7특전단은 중남미 지역, 제10특전단은 유럽지역을 담당하는 식이다. 각 특전단마다 담당 지역이 있어 해당 국가의 언어에 능통한 사람이 A팀 내에 최소한 1명 이상은 반드시 존재한다. 현재 그린베레는 아프가니스탄 전선은 물론이고 이라크-시리아 전선에도 투입되어 알카에다(Al-Qaeda)나 다에시(ISIS)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이슬람 무장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지원 작전에 나섰다. 물론 그린베레는 제1특전단이 한반도를 관할하고 있어 한국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매년 한국군과 정기적으로 침략적인 한미연합 훈련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훈련 당시 미군 그린베레 대원과 한국군)

 

미국 그린베레의 특기는 지역 소수민족이나 반공주의자들 혹은 친미주의자들에 대한 포섭능력 활용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그린베레는 탈레반 세력에 적대적인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 군벌세력을 통해 주 전투전력을 확보하며, 부족한 전투능력은 특전단에 소속된 공군특수임무대가 강력한 미국 공군 전력을 유도하는 방법으로 보충하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전술은 현재 미군이나 영국군 특수전 부대가 대 ISIS(이라크ㆍ시리아 이슬람국가) 작전에도 사용하는 신전술의 시초였다. 그리고 이들은 활용활 땐 활용하다 전쟁이 불리해지면 버리는 것도 특기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라오스의 몽족과 베트남 중부고원지대에 있던 몽타냐르족들이 그러했으며, 현재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자신들이 포섭했던 북부동맹을 가차 없이 내버리고 있다.

그린베레가 개입한 전쟁 대부분은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일방적 침략으로 시작된 침략전쟁이거나 남의 나라 문제에 강제적으로 개입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남의 나라에서 침략전쟁과 내정간섭을 아주 교묘하게 하는 군대라는 말이다. 그린베레가 개입했던 베트남 전쟁만 보더라도 피닉스 작전으로 최소 2만 7000명에서 4만 1천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들이 체 게바라를 죽이기 위해 사용했던 수법은 볼리비아의 반공 세력을 이용한 토벌작전이었다. 1983년의 그레나다 침공은 명백히 미국의 침략행위였고, 1989년 파나마 침공도 마찬가지다. 1991년 걸프전쟁 또한 미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미국의 잔인성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전쟁이었다.

이후 그린베레가 개입한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나 아이티 내전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명백한 제국주의적 내정간섭행위였다. 2001년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침략행위였다. 즉 그린베레는 침략자이자 미제국주의의 하수인일 뿐이다. 또한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 중에 그린베레가 적에게 공포심을 심어 추가적인 공격을 예방한다는 미명 하에 과도한 잔학행위를 저지른 일들이 매우 많았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정리하자면 그린베레는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선봉대이자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다. 우리가 그린베레의 침략행위를 통해 알아야할 사실은 그들의 위대한 활약상이 아닌 그들의 제국주의적 잔인성과 폭력행위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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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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