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주의 비판2 기업들을 “아무런 망설임없이 즉각 국가소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망설임 없는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란 말인가?

기업들을 “아무런 망설임없이 즉각 국가소유로 만들어야 한다”고?

망설임 없는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란 말인가?

– ‘연기금 사회주의에 대해

국가와 ()기업에 대한 끝없는 물신숭배적 태도

 

보론

자본주의 국유화의 의미와 한계

유럽의 국유화 사례, 특히 프랑스 미테랑 사민당 정부를 중심으로

 

* 이 글은 원래 김정호 북경대 박사가 민플러스에 기고한 “변혁의 시대, 노동운동과 변혁진영의 과제”라는 글의 근본 한계를 비판하기 위해 작성됐다. 그런데 공적자금을 투자한 파산기업이나 자본철수한 기업에서 국유화 요구를 내걸 필요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추가적으로 답변할 필요성이 생겨 이에 대해서 보론을 추가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특정한 상황과 조건에서 정치투쟁이라는 방식으로 국유화를 주장할 수 있고 진보적일 수 있는 요구라고 본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유화가 변혁을 통해 만들어지는 전면적인 사회주의 국유화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든가, 국유화가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의 수단이라는 등 국유화에 대한 무조건적 환상은 반대한다. 게다가 자본주의 국가가 계급중립적이라거나 계급초월적인 것으로 보는 것 역시 반대한다.

최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가 확정되기 이전, 조선일보 같은 자본가 언론에서도 아시아나 같이 공적자금을 투하한 기업에 대해서 국유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하고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우량기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가 국유화 논의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김정호 북경대 박사가 “변혁의 시대, 노동운동과 변혁진영의 과제1, 2”(민플러스, 2020.07.17, 2020.07.29.)에서 주장한, “합법적 수단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즉 계급투쟁을 도외시하고, 파산한 기업이나 공적자금을 받은 기업을 공기업으로 만들자는 주장은 변혁적이지도 않고 심지어 자본주의 공기업에 대해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동운동의 과제로 삼을 수 없다.

“경제위기의 활로는 공기업화 밖에 없다”(같은 글, (1))는 주장 역시 무정부성이나 무계획성을 본질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마치 공기업화로 공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비과학적이다. 이 글은 공기업화를 실시하는 주체인 국가가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인지 그 성격에 대해 의도적이든 무지해서든지 한사코 회피하고 있고, 기존 국가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변혁 과제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김정호 박사는 파산하거나 국가지원을 받는 “기업들에 대해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즉각 국가소유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무런 망설임이 없이 즉각 국가소유로 만들었을 때 그 국가는 과연 누구의 국가이고,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인가? 과연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재벌들은 물론이고 제국주의 해외 거대자본과 제국주의 국가의 이해를 물리치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기업 소유권을 박탈하고 국유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설사 국유화 조치를 취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노동자 계급을 위한 것이고, 더군다나 ‘변혁적’일 수 있을 것인가? 지난 7월 28일에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조차도 “(국유화 등) 모든 가능성을 감안해서 관계 기관과 협의하고 있다”고 한 것처럼, 국유화는 그 자체로 진보적이고 심지어 ‘변혁적’일 수는 없다.

심지어 김정호 박사는 “단순히 부도나는 몇몇 한계기업에 대해서 뿐 아니라, 앞으로 수익성이 좋은 기업에 대해서도 합법적 수단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인 공기업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합법적 수단이 허락하는 한”에서 보듯, 김정호 박사의 주장은 기존 자본가들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권력을 타파하고 국내외 독점자본을 몰수해서 기업이나 공장을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자는 주장이 아닌 걸 알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내에서라 할지라도 전면적 정치투쟁으로 노동자 계급의 고용과 생존권이 보장되는 국유화 투쟁을 하기 보다는 “합법적 수단” 내에 갇혀 국유화를 내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기금 사회주의에 대해

 

김정호 박사는 “합법적 수단”으로 어떻게 국유화를 하자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합법적 수단” 중 연기금으로 국유기업을 만들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특별히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이른바 ‘연기금 사회주의’이다.

연금 사회주의는 원래 피터 드러커가 1976년에 쓴 유명한 기고문에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만약 사회주의를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의 소유라고 정의한다면 미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사회주의화된 국가라고 했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위한 기업의 퇴직연기금이 그 당시 미국 상장기업 지분의 25%를 갖고 있고 자영업자나 공무원, 교사 등을 위한 연기금이 10%를 더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연금 사회주의는 이미 당시에도 미국 주식시장의 3분의 1을 노동자가 소유하고 있고, 향후 그 비중이 더 늘어나게 될 현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그가 만들어낸 용어이며 그는 이 현상을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지도 않았다.([주진형 칼럼] “연금 사회주의, 원조는 미국이다”, 한겨레, 2019-01-29)

위 글의 필자인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가 사회주의자가 아니듯, 퇴직연기금과 미국 상장기업 자영업자나 교사나 공무원의 연기금 35%를 가지고 있는 미국이 사회주의가 아닌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를 위한 기업의 퇴직연기금”에서 보듯 퇴직연기금은 노동자에게 지급되어야할 현재의 임금을 퇴직 이후 연금이라는 형태로 지불약속을 하는 일종의 지연된 임금이자 후불임금이다.

국민연금도 국가가 운용주체라는 점만 다를 뿐 그 성격은 마찬가지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 당시인 2015년 7월 노동자들의 퇴직연기금을 가지고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과 홍완선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자문 찬성표를 던졌다. 이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권 확보에 유리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이재용과 국민연금의 결탁을 보여주는 사기사건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최소 3천억에서 최대 7천억에 가까운 손실을 입었다.

최대주주(지분율 11.2%)였던 국민연금이 의결권 찬반 여부를 자체 투자위원회 단독 결의로 처리하는 돌발행동을 하면서 스스로 원칙과 투명성을 훼손했고, 이는 당시 의사결정 책임자이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법원(1·2심)의 실형 선고로 이어졌다.(박수익 기자, “‘연기금 사회주의’란 유령”, 비지니스워치, 2018.06.03.)

그리하여 이제 국민연금 개혁이라는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말한 것은 대기업 대주주의 명백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이 어떻게 경영권 침해인가?”(한겨레, 위 주진형 칼럼)

주주권의 행사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개별기업의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그 기업의 경영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기업경영이 더욱 원활해지도록 제언함으로써 주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주주권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에 충실한 연기금의 행위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하는 것, 그리고 아주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두고도 ‘기업 옥죄기’라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보수경제지 및 사용자단체의 주장은 말 그대로 연기금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기 위한 행위이다. 특히 언론보도 행태에서도 드러나듯이 기사 제목부터 선동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김정목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가 사회주의? 보수경제지의 침 뱉기, 오마이뉴스, 2020.02.19.)

결국 국민연금의 개혁은 “명백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그 기업의 경영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고, 기업경영이 더욱 원활해지도록 제언함으로써 주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에 충실한 연기금의 행위”이다. 이는 “경영권 침해”와는 전혀 상관없는 주주권의 확보인데, 이는 기업경영이 활성화되고 이윤이 많이 생김으로써 배당을 투명하게 많이 받을 수 있는 주주의 권리를 의미한다. 그 개별 주주들이 노동자이든 소상공인들이든 상관없이 그들은 하나의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소(小) 소유자로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이 이해는 대개는 서로 상충된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충실한 기업활동과 이윤추구를 하는데 있어서 방해물이다. 주주들은 정리해고에 맞서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서,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모든 투쟁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상적인 기업활동과 원활한 경영활동에 방해가 된다고 사고한다. 주주권은 노동권과 대립된다. 소액주주 운동이라는 것이 있지만 이 역시도 마찬가지 논리로 작동한다,

이른바 주식 소유를 ‘민주화’ ─부르조아 궤변가와 기회주의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자본의 민주화’를 기대한다(혹은 기대한다고 말한다) ─한다거나 소규모 생산의 역할과 의미를 강화한다는 따위는 사실 금융과두제의 권력을 증강시키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덧붙여 말하면, 보다 선진적인 혹은 보다 오랜 역사와 많은 ‘경험’을 가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소액면가 주식의 발행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레닌, 《제국주의론》, 백산서당, 남상일 옮김)

주식회사 제도 자체가 한 사회의 소액 화폐를 기업으로 집중시켜 자본을 조달하고, 또 자본으로 하여금 기업을 지배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사기제도, 자본주의 경제 제도이다. 이로써 전 계열사 주식 전체를 합쳐도 5%(심지어 1%) 남짓한 주식을 소유한 재벌과 그 일가들이 하나의 지배회사를 소유하고 이를 통해 재벌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 힘에 기초해서 ‘금융과두제’ 권력은 전 사회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바로 민주적 ‘헌법’과 국가의 폭력적인 물리력으로 생산수단에 대한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권을 비호하고 있다.(“‘경제민주화’ 열망은 실은 독점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노동자정치신문, 2016년 5월 15일)

국민연금은 그것이 개혁된다하더라도, 그 본연의 역할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감시하여 최대한의 이윤이 나도록 하여 주식소유자에게 복무하는 것이다.

게다가 연기금으로 재벌의 소유권을 대체해 국유기업으로 만든다는 것은 공상이다.

실제로 국민연금이 개별기업을 소유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 피터 드러커의 ‘연기금 사회주의’에 관한 글에서도 지적되듯이 연기금은 사실상 소유주(owner)가 아닌 투자자(investor)이기 때문에 소유 및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연기금 사회주의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처럼 되려면 실제 국민연금기금이 개별기업을 소유, 직접 경영에 나서거나 CEO를 소위 ‘꽂아야’ 한다. 아쉽게도(?) 국민연금이 그만큼 지분을 갖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직접 경영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방법’도 없다.(김정목, 같은 글)

김정호 박사는 ‘총수지분의 축소문제’가 “한국의 재벌 소유”의 “고질적인 내적 모순”이라고 하는데, 총수지분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재벌들이 기업소유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소유제도의 모순 때문이다. 재벌들은 현대의 보편적 주식회사에서 주식공모를 통해 전 사회의 유휴화폐 자본을 끌어들이고 지주회사를 통해 한 줌의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한다. 전체 지분이 점점 더 축소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재벌과 일가들의 소유권은 점점 더 공고해진다.

이미 재벌들이 대부분의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재벌이 내놓은 매물은 또 다른 재벌에 의해 소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알토란같은 국내 제조 기업들을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 이 같은 한국사회의 딜레마는 ‘사적소유’를 지나치게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간주한 데서 생겨났다. 상식에 기초하여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을 소수 총수일가가 아닌 ‘사회의지’ 하에 두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재벌문제의 해결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총수일가에 의한 재벌식 점유는 사실 이 같은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성’과도 걸맞지 않는다. 이들은 채 1%에도 못 미치는 소유지분을 가지고 나머지 그룹자산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나머지 99% 자산 소유자에 대한 무시가 아닐 수 없다.(김정호 박사, 같은 글1)

“총수일가에 의한 재벌식 점유는”, “‘사적소유의 신성불가침성’과도 걸맞지 않는”것이 아니라 그것의 신성불가침 때문이다. 그것은 헌법이든 민법이든 자본주의 법률의 수많은 조항으로 보호되어 있다. 1804년 근대법의 시초가 된 나폴레옹 법전은 ‘프랑스 민법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총 2,281개의 조항이 있다. 여기에는 사유 재산권 존중,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주의 등 대다수 사적소유권을 보호하는 조항으로 가득 차 있다.

국가는 공권력(실은 자본가들을 위한 사적권력)으로 이 사적소유에 저항하는 인민들을 감옥에 집어넣거나 손배·가압류 등으로 탄압하고 있다.

“‘사적소유’를 지나치게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지 “상식”이나 “사회의지”, “결심” 같은 주관적 염원으로 노동자들이 기업을 소유할 수는 없다.

사회변혁으로 재벌을 몰수하거나 자본주의 내에서라 할지라도 계급투쟁이 없다면 기존 자본가를 위한 국가가 재벌을 몰수하여 공기업화를 추진할리도 없다. 연기금으로 공기업화를 실현한다는 주장도 그렇다. 기존 재벌들이 바보가 아니고서야 소유권을 순순히 내놓을 리도 없다. 더욱이 연기금이 재벌에 지원될 수는 있어도 파산한 기업을 연기금으로 인수하여 노동자를 권리를 보장하는 공기업으로 만들 리도 없다. 자본주의 국가는 파산한 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기업을 살리면 그 조건으로 노동자들을 대량정리해고하고 일시적으로 국유화를 했다가 다시 그 기업이 흑자가 나면 다시 국내외자본에게 넘기기 바빴다. 바로 자본을 위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에 대한 끝없는 물신숭배적 태도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다”라고 레닌이 주장했는데, 김정호 박사의 시야 내에는 혁명이든 변혁이든 하는 문제가 한사코 회피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성격이 무엇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김정호 박사의 기존 자본주의 국가와 (대)기업에 대한 물신숭배적 태도는 다음 글에서 정점에 달한다.

4차 산업혁명의 관점에서 볼 때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와 육성은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대기업은 자신의 이윤극대화 욕구를 상당기간 자제하면서 당장의 실리 때문에 해외 부품사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인내를 갖고 도와주는 자세가 요구된다.1)

이렇듯 기업이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 두 가지를 동시적으로 조화시키는 일은 오늘날처럼 격심한 지구적 경쟁 환경 하에서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점이야 말로 바로 공기업이 지닌 강점이라 할 수 있다. 국가는 공기업을 통해 원-하청 관계의 새로운 관행을 창조해 갈 수 있다. 공기업화를 통해서만 혁신의 풀뿌리인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지금의 수탈적 원-하청 관계를 바로잡으면서 진정한 상생 체계 구축이 가능하다.

다섯째, 현재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과 고용안정을 위해서도 공기업을 확대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코로나사태를 극복하고 한국경제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다면, 이는 노동자들의 고용문제 해결과 그동안 한국 재벌체제가 양산해낸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2) 작금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는 신자유주의 일반의 문제이기보다는,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의존하여 수출주도형 경제를 이끄는 재벌체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공기업화를 통한 재벌체제의 극복은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 방안이 된다.(같은 글 (2), 2020.07.29.)

국가에 대한 환상은 공기업과 ‘대기업’에 대한 끝없는 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을 보호하니,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이익’ 두 가지를 동시적으로 조화시키는 일은”, “바로 공기업이 지닌 강점이라”느니, “진정한 상생 체계 구축이”라느니,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과 고용안정을 위해서”라느니 도대체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대기업이 이러한 과제를 실현한다는 것이 꿈에서라도 가능한가?

“특히 재벌은 자신의 이윤극대화 욕구를 상당기간 자제하”고, “재벌은 당장의 실리 때문에 해외 부품사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인내를 갖고 도와주는 자세”라고 대기업 대신 재벌을 갖다 붙여보라! 김정호 박사가 그토록 비판해온 탐욕에 빠져 있는 한국의 재벌의 행태와는 너무 상반된다. 그러면 그 동안 재벌을 비판했던 자신의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에 악의 화신 재벌 대신 착한 대기업을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대기업”은 바로 독점자본이며, 그 독점자본의 최고형태는 콘체른(Konzern)으로서 바로 재벌이다.

김정호 씨는 독점자본의 최고의 발전형태인 재벌과 대기업이 마치 다른 가치와 원리로 작동하는 것처럼 간주하고 대기업에 무한한 기대와 환상을 부여해 놓았다. “중소 하청업체에 대한 수탈구조 위에 세워”지지 않은 독점자본은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는 “한국 재벌체제의 또 다른 약점”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성장의 근원이고 도덕적 판단을 제외하면 무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강점’이기도 하다.

기업이 점점 더 거대해지고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필연적이다. 김정호 박사는 공기업화가 상당 부분 진척이 된다 하더라도 “대기업”의 존재를 가정하는데, 그렇다면 그 대기업은 또다시 공기업의 “비효율성”이니 “철밥통”이니 주장하면서 그것을 자신들에게 넘기라며 사유화를 압박하게 될 것이다.

과연 ‘대기업’이 자신의 축적본성을 접고 “이윤극대화 욕구를 상당기간 자제”할 수 있겠는가? 상당기간은커녕 단 한 순간도 “자제”할 수 없을 것이다. “당장의 실리” 보다는 중소기업을 “인내를 갖고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인내를 가지고 이 황당한 주장을 지켜볼 수 없을 지경이다.

김정호 박사는 공기업 자체에 대해서도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과 고용안정을” 가져오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의존하여 수출주도형 경제를 이끄는 재벌체제와”는 근원적으로 그 목표를 달리하게 될 것인가?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전체 사회를 위한 ‘공공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 환상인 것처럼, 공기업 역시도 소유형태가 국가소유 형태라 할지라도 이윤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환상은 깨져야 하고 현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깨지기도 한다. 공상과 과학은 같은 자리에 설 수는 없다. “합법적 수단이 허락하는 한”, 그 한도 내에서 과연 어떻게 재벌의 지배와 그 권력, 제국주의 자본과 제국주의 권력의 지배를 제어하고 궁극적으로 분쇄할 수 있겠는가? 오직 허락되는 것은 공상적 사고와 혹세무민의 주장일 것이다.

 

보론

자본주의 국유화의 의미와 한계

 

우리는 자본주의 내에서 공기업화 또는 국유화 요구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국유화를 위한 전제가 분명하다면 특정한 상황에서 이 요구는 진보성을 가질 수 있고 노동자들의 구체적 요구로 내세울 수 있다.

자본주의 내 공기업이 존재하는 대표적인 이유와 사유화를 하는 이유가 있다.

첫째, ‘국가자본주의’라고 자본주의 초기 거대자본이 존재하지 않을 때 국가가 자본역할을 대행하는 국유화로 자본성장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가령 도로, 철도, 전력 등은 거대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이때 국가가 나서 철도를 놓고 도로를 개설하고 전력을 만들어서 값싼 물류비용과 전기혜택으로 자본이 성장하도록 돕는다. 이것이 바로 사회간접자본의 역할이다. 그럴 때 국가는 자본에게만 값싸게 물류와 전기를 공급할 수는 없기에 민중에게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교통비와 전기료를 같이 공급하게 된다. 국유기업은 개별자본에 비해 안정적이기에 고용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다. 이 점에서 국유기업은 상대적으로 진보성이 있다.

그러나 자본이 성장하면 국가는 거대자본에게 사유화로 소유권을 넘긴다. 국유기업의 첫 번째 존재이유가 자본을 위한 것인데, 그것이 충족되면 이제는 “비효율성”이니 “철밥통”이니 하며 사유화를 정당화하여 재벌들에게 넘긴다.

둘째, 파산한 기업을 공적자금을 투자할 때 국유화를 하기도 한다. 자본과 자본가 국가는 특히 기업의 파산이 속출하는 공황 시기에 공적자금을 투하해서 국유화 하고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으로 기업 이윤이 회복되어 이른바 우량기업으로 만든 뒤 다시 매각하여 사유화 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국유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민간기업과 똑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셋째, 군국주의 체제 하에서 전쟁을 효과적으로 치르기 위하여 일부 산업을 국유화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파시즘 같은 군국주의 체제에서 치르는 전쟁도 실은 독점자본의 이해에 최대한 복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국유화 역시 독점자본의 이해에 해에 철저하게 부합한다.

SK이노베이션, 대한항공, KT&G, 포스코, 두산중공업의 공통점은 뭘까?

20~3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가 지분을 가진 공기업이었다는 점이다. 1962년에 미국의 걸프 석유회사와 합작으로 만든 대한석유공사는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이 주식 50%와 경영권을 인수해 SK그룹의 계열회사가 됐다. 1980년의 일이었는데 향후 몇 번 이름을 바꿔 오늘날 SK이노베이션이 됐다.

국내외 항공 운송과 항공기 제조·판매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대한항공공사(1962년 6월)는 1969년에 민영화로 전환해 한진상사가 운영권을 이어받은 뒤 오늘날의 사기업 대한항공이 됐다. 담배 제조업체 KT&G의 역사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인 1883년에 국영 연초제조소 ‘순화국(順和局)’은 1952년에 전매청으로 개편됐고, 이후 한국담배인삼공사로 재개편(1989년)됐다. 2002년에 정부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고 이름을 KT&G로 바꿨다.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은 2000년 9월에 정부 지분을 팔아 민영화됐다. 발전설비와 산업설비를 만드는 공기업이던 한국중공업은 2000년에 두산그룹에 인수돼 이름을 두산중공업으로 바꿨다.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이유는 경쟁을 도입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주식을 분산해 자본주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함이다.(정혜연 기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국적기의 운명은?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국유화할 수 있어”, 월간조선 2020.08.22.)

이처럼 자본주의 SK이노베이션, 대한항공, KT&G, 포스코, 두산중공업은 처음에는 국유기업이었다가 사유화가 된 경우이다. 사적 자본이 성장함에 따라 애초 국유기업이 사유화가 되었다. 그런데 대한항공은 애초에는 사기업이었지만 1962년에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되자 정부가 투자해 국영 대한항공공사로 만들었다가 이것을 박정희의 요구로 1969년 조중훈 한진그룹대표가 인수해 대한항공으로 이름을 바꿨다.([출처] [항공도 국유화?] 대한항공, 아시아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띵똥 블로그 참고, 2020. 9. 8.)

그런데 외국에서도 항공업계가 위기에 처하자 국영화하는 사례가 있다.

2020년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항공업계도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며 이탈리아도 결국 알리탈리아항공을 국영화하기로 했는데요, 국영화가 된 알리탈리아는 비행기 댓수를 줄이고 구조조정을 대대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실리적으로는 절반이상을 줄이며 몸집도 함께 줄여야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같은 글)

국유화를 구조조정의 기회로 활용하여 다시 손상된 이윤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난 11월 산업은행이 8천억 원을 지원하여 대한항공이 아시아나 항공을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동걸 KDB 산업은행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국내 항공산업 국제경쟁력 확보에도 이바지하는 등 국민경제적 측면의 긍정적 효과도 기대됩니다”라고 하여 정부가 항공 산업 거대 독점자본의 창출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에 3조 원대의 공적자금이 지원됐는데, 대한항공 인수 결정 이전에는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국유화를 했다가 다시 사유화를 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사실상 정부 밑에 두고, 대우조선해양처럼 구조조정으로 부실 자산을 털어낸 뒤 재매각에 나서겠다는 의도”(“아시아나항공 국유화?… ‘모든 가능성 감안'”, 연합뉴스TV, 2020-07-28)를 가지고 있다는 것처럼, 이러한 방식의 국유화는 오히려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단협 후퇴 등 노동자들한테는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

산업은행이 1대 주주로 관리하고 있는 사실상의 공기업인 대우조선해양에서도 수년 동안 정리해고를 포함한 희망퇴직, 임금삭감 등 노동자에 대한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의 인수합병 계획이 나오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은 최대한의 사전 구조조정으로 대우조선해양을 우량기업으로 만들어서 재매각에 나서려 하는 것이다. 대우조선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현재 이러한 구조조정에 맞서 힘차게 투쟁하고 있다.

기업이 파산했을 때 노동자 민중의 ‘혈세’로 공적자금을 투자해서 기업을 살리면서도 노동자들을 구조조정 하는 상황에서 정리해고, 임금삭감 없는 국유화나 공기업화 요구를 내걸고 싸울 수 있다. 또한 이럴 때 외주하청화 없는 기업의 전면국유화 요구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이럴 때 자본주의 내에서의 국유화라고 하더라도 일정한 진보성을 가질 수 있다. 자본주의 권력은 노동자의 고용유지를 위해서 국유화를 하는 게 아니고 기업을 회생시켜 자본주의의 안정화를 도모하고 결국은 자본의 이해(개별 자본 또는 총자본의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유화 자체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고 노동자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 국유화를 하는 조건으로 노동자의 요구를 후퇴시킨다면 그것은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그런데 국유화 요구 자체가 언제나 내걸어야 하는 원칙의 문제는 아니다. 노동자의 국유화 요구와 상관없이 인수자가 나타나 기업 매각이 되는 경우에는 정리해고 반대, 하청 철폐 및 정규직 전환, 노조 단협 승계, 제반 권리 쟁취로 요구를 전환하여 투쟁할 수 있다. 국유화나 매각 투쟁에서는 모두 노동자의 요구를 확고하게 내걸고 개별 자본과의 투쟁을 넘어서는 전면적인 정치투쟁이 필요하다.

한국지엠에서도 수년간 매각설이 나오면서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가 자행되어 왔고, 정규직에 대한 임금삭감과 단협개악 공세와 희망퇴직 공세가 자행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해 오며 일방적인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다. 자본철수설로 노동자를 공격하느니 “차라리 부도내고 떠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조차도 나오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국지엠 김성갑 집행부는 그 동안 지엠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던 사안에 대해 회복하자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한 결과 지난 12월 1일 잠정합의안에 대해 54.9%(3천965명)가 반대하였다. 지부 집행부가 임금동결에 잠정합의했고, 특히 부평2공장 폐쇄 우려 문제에 대한 대책을 합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쌍용차에서도 마힌드라가 인도에서 조립생산 판매하는 쌍용차 ‘G4 렉스턴'(현지명 앨투라스 G4)를 2020년 단종하고, 미국의 자동차 유통사인 HAAH 오토모티브 홀딩스와 지분매각을 위해 협상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마힌드라, ‘G4 렉스턴’ 인도서 단종…쌍용차 지분 매각 연장선”, GLOBAL NEWS THE GURU, 2020.12.10.) 이는 마힌드라의 쌍용차 지분 매각의 연장선인데, 이러한 상황을 앞두고 공적자금을 투하한 기업에 대해 국유화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들은 비록 자본주의 내에서의 국유화라고 할지라도 거대한 정치투쟁이 필요하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사적기업에 비해, 국유기업이 경쟁력이 있다는 논리나 국유화를 위한 정책대안으로 노동자가 임금과 퇴직금을 양보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는 위험한 주장이다. 노동자의 원칙상 위험할뿐더러, 이러한 태도로는 노동자의 요구도 쟁취할 수 없다.

한국지엠이나 쌍용차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강도적 자본철수 협박과 자본철수설에 대한 대안으로 국유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빈번하게 나오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유화든, 제3자 매각이든 일방적인 양보로 노동자들의 입지, 상태가 심각하게 후퇴하고 자신감, 조직력, 투쟁력이 훼손된 상황에서는 그 어떤 요구도 쟁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분열하고, 정규직 공장 간 분열을 안고서는 거대한 투쟁으로 일보도 내딛을 수 없다. 특히 국유화 요구는 산업은행을 비롯해 정부에 책임을 묻는 정치투쟁이기 때문에 더욱더 공세적이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으로 합병을 앞두고 정권과 자본에 맞서 하청 노동자들과 공동투쟁을 전개하고 공세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대우조선노조(신상기 지회장)의 사례는 모범적인 투쟁으로 참고할만하다. 왕도는 없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노동자 투쟁은 더더욱 그러하다.

 

유럽의 국유화 사례, 특히 프랑스 미테랑 사민당 정부를 중심으로

 

유럽에서도 사민주의 정부가 실제 자본주의에서 국유화 노선을 취한 사례도 있다. 국유화나 공기업화 노선에 대한 상당부분 환상이 지배하는 만큼 유럽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국유화 사례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1981년 5월 10일 프랑스에서는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공산당과 연합하여 집권했다. 집권 초기 미테랑 정부는 주요 산업에 대한 국유화 노선을 가지고 실제 주요 은행 및 주요산업 일부에 대해 국유화를 단행하고, 법정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과 사회복지를 확충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좌파 연합 정부의 경제 성적도 집권 2년차에 가까워지면서 난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인플레이션이 경제 생활을 혼란에 빠뜨렸다. 한동안 활력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던 국민-대중 경제가 다시 열병을 앓았다 … 이런 상황에서 좌파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었는가? “프랑스의 확장 정책이 작동하려면, 프랑스 경제를 국제 경제 질서로부터 격리시키든가 아니면 다른 선진국들과 동시에 확장 정책을 추진해야 헸다.” … 프랑스 미테랑 정부 내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이러한 절박한 선택의 문제였다 … 전투는 불가피했다, 하지만 ‘최후의 결전’은 좌파에게 익숙한 대중 정치 무대에서 펼쳐지지 않앗다. 그것은 1976년의 영국과 마찬가지로 좌파에게 가장 불리한 진지전, 즉 국제 금융 시장을 중심 거점으로 한 진지전으로 엄습했다. 이번에는 시티와 IMF가 아닐 서독연방은행과 EMS가 공격의 최전방 진지 역할을 했지만 말이다.(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책세상)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구조개혁 노선”을 취했기 때문에 자본주의 내의 구조적 압력과 모순을 돌파해나갈 수 없다. 미테랑 정부는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인 경제공황과 함께, 더 힘이 센 국가와 금융기구, 프랑스에게는 특히 서독연방은행과 독일에 중심이 된 유럽통화체제(EMS, the Europe Monetary System)의 공세 앞에 굴복했다. 결국 미테랑 정부는 긴축공세에 앞장서며 반노동자 정부로 전락했다.

프랑스 은행이 30억 프랑 상당의 외환 보유액을 쏟아 부었는데도 프랑-마르크 환율은 다시금 ERM(편집자 주: Exchange Rate Mechanism, 환율조정제도)이 규정한 변동 한계치까지 추락했다. 미테랑은 들로르 장관을 다시 전권 대표로 임명해서 서독측과 프랑화 평가 절하를 협상하게 했다.

6월 12일, 협상이 타결됐다… 미테랑 대통령은 일단 협상 결과를 받아들였다. … 이른바 ‘단절la rupture’이 시작되었다. 새 정부 출범 후 1년 동안 지속된 확장 정책은 중단됐다. 긴축 재정 기조로 완전히 돌아서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재정 지출은 전반적으로 동결되었다. 완전 고용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억제가 최우선 정책 목표로 등극했다. 연정 파트너인 공산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10월까지의 임금 동결을 선포했고 임금과 물가의 연동도 폐지했다. 반면 부가 가치세는 1% 인상했다. 공공 지출을 삭감하는 바람에 복지 수당도 감소했다. 노동자의 사회 보장 제도 기여금을 인상했고, 입원비를 의료 보험 급여 대상에서 제외했다.(장석준, 같은 책)

노동자 정부의 이러한 반노동자적 공세를 바람과 달리 잠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환율위기와 무역적자가 계속되자 프랑스 정부는 미국과 일본은행, OECD국가들로부터 외채를 빌려오는 바람에 프랑스는 외채위기에까지 빠져버렸다. 1983년에 프랑스 정부는 서독 정부와 또다시 환율협상을 했다.

3월 21일 최종 협상 결과가 나왔다…서독은 전년도 6월의 협상 때보다도 더 완강하게 프랑스 정부의 경제 정책 변화에 대해 ‘추가 보장’을 요구했다. 이번에는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었다. 서독 협상단은 프랑스 정부가 노동자의 사회 보장 제도 기여금을 더욱 인상하고 재정 지출을 200프랑 줄일 것을 요구했다. … 이제 더 이상 재정 절감 따위의 완곡어법을 쓰지 않았다. 이것은 명실상부한 긴축 재정의 실시, 즉 케인즈주의적 수요 확대 정책의 포기엿다. 이른바 미테랑 정부의 ‘유턴’이었다. ‘110가지 제안’의 핵심 약속이었던 완전고용과 복지 확대는 통화 가치 안정이라는 새로운 정책 목표에 자리를 내주었다. 조세는 400억 프랑 인상한 반면 재정 지출은 240억 프랑 감축했다. 2,200만 명의 소득세 납부자 중에서 1,500만 명에 대해서는 1퍼센트의 부가세를 추가 부과했고, 800만 명에 대해서는 소득세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의 3년 만기 국채를 강제로 떠안겼다. 공기업 제품 가격은 평균 8퍼센트 인상했다. 또한 1984년까지 2년 동안 임금 및 물가인상이 8퍼센트를 넘지 못하게 했다.(장석준, 같은 책)

그리고 무엇이 남았는가?

칠레, 영국과 마찬가지로 좌파의 구조개혁이 멈춘 그곳에서 곧바로 우파의 구조 개혁이 시작되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좌파 스스로 패배를 합리화하고 우파의 구조 개혁을 새로운 신념으로 추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최후의 저항자들이 앞다퉈 전향하는 순간, 새로운 지구 정치 경제 질서의 헤게모니는 완성되었다.(장석준, 같은 책)

그래도 국유기업은 남지 않았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프랑스에서 일부 은행과 기업에서 국유화가 가능했던 것은 “프랑스 정부는 이미 다수의 저축 은행들을 소유하고 있었”고, “국유화된 기업들 중 상당수는 이미 사실상 공기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부 기업에 대한 국유화를 하기에 손 쉬었다. 미테랑 정부는 일부 기업에 대해 국유화 방침을 집행했는데, 그 방식은 “15년에 걸쳐 기존 소유주에게 300억 프랑을 보상하고 그 기간 중에 470억 프랑의 이자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리하여 “1982년 초의 국유화 조치로 프랑스는 서유럽 국가들 중 가장 거대한 공공 부문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장석준, 같은 책)는데, 프랑스 공공 부문 고용 비중은 11퍼센트에서 22.2퍼센트로 늘어났고, 산업 매출액 중 공기업은 29.4%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내에 공기업 비중이 높다고 해서 이것이 사적부문의 비중을 넘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것이 노동자들의 집단적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기업 역시 반노동자적 논리 하에 “수익성을 중심으로 운용”되며, 다만 소유형태가 국가인 자본주의 기업이었을 뿐이다.

국영은행들도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민간 은행들과 마찬가지로 수익성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국유화된 르노 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르노 자동차도 민간 거대 자본과 마찬가지로 인건비를 절감해야 한다며 국내 투자를 기피하고 해외로 생산 설비를 이전하는 형편이었다. 이제껏 이런 운영 방식이 오히려 바람직한 공기업 경영 모델로 인정받았다. 이른바 ‘르노 모델’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처음에 피에르 드레퓌스Pierre Dreyfus를 산업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는 르노 자동차 CEO를 역임하면서 르노 모델을 창시한 장본인이었다. 그를 산업부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부의 공기업 운영 방향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실제로 공기업 ‘자율’ 경영이 원칙이 되었다 … 또한 국영 기업의 이사진도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랑제콜grandes écoles(프랑스 특유의 엘리트 양성기관) 출신들로 구성됐다. 자주 관리라는 거창한 이상은 왜소화되었다. 공기업 이사회 일부를 노동자와 소비자 대표에게 개방하기는 했지만(‘공공부문민주화법’, 1983년 7월), 이 정도만으로는 서독의 노사 공동 결정제와 큰 차이가 없었다.(장석준, 같은 책)

프랑스 사회당을 필두로 집권한 영국 노동당, 그리스 사회당, 독일 사민당 등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모두 할 것 없이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전락하여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고 노동자를 공격하는 반노동자 정부로 전락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블레어 정부도 악명 높은 제3의 길 노선으로 노동자 착취에 앞장서며 자본가들의 정당으로 변모한지 오래되었다. 이 점은 북유럽 복지모델로 알려진 사민주의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2015년 1월 집권했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치프라스 정부는 미테랑 정부처럼 1년여를 버티면서 갈등하지도 않았다. 치프라스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국내 은행자본가들의 뱅크런(예금인출) 공세와 함께 유럽 연합(European Union), 세계은행 (World Bank)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구성된 트로이카 (Troika)의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한 긴축요구에 굴복해 노동자 인민들에 대한 긴축공세에 나섰다. 이로 인해 내부가 극심하게 분열되면서 장관일부가 이에 항의해 사퇴하기도 했다. 그리스노동자들은 말뿐인 급진좌파연합에 항의해 투쟁하였다. 결국 치프라스 총리는 집권한지 4년 반 만인 2019년 7월 실각했다.

이처럼 사민주의 정부들의 자본주의 구조개혁 노선이나 그 일환의 취해지는 국유화는 상대적 진보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경제위기나 국내외 자본의 공세로 인해 스스로 이 정책을 폐기해 버렸다.

자본이 성장하면 할수록 자동화 기계화 되면서 노동력 고용 비중을 줄이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으로 된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는 만성적 실업사회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이 실업을 복지병의 결과니 철밥통의 결과니 하면서 도리어 사유화와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정당화 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노동자 정당이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나 사회당을 표방하든 보수당이든 할 것 없이 사유화와 복지정책의 폐기, 임금삭감 정책 등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나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 국유기업의 사유화 노선은 자본주의 내 모든 정치세력들이 취하는 보편적 노선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 내 국유화도 이를 시행하기 위한 사민주의 권력이 필요했고, 이 사민주의 권력은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이 노선도 폐기해버렸다는 점을 위에서 지적했다.

문제는 국가다. 국가권력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이 점은 자본주의 국유화에서도 그렇고 사회주의 국유화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 국유화는 국가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성격을 유지, 강화, 노동자들의 공산주의적 의식을 높이고 생산에서의 참여를 고양시키며, 전 사회적 목표를 향해 생산관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이미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거대해지고 이 거대기업은 사회적 기술발전의 성과 위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으로 발전해 왔다. 자본주의의 보편적 기업형태인 주식회사만 보더라도 자본가들은 한 줌밖에 안 되는 주식소유권으로 전체 기업을 소유, 지배해 오고 각종 편법과 불법을 동원하고 국가권력을 등에 업고 사법기관의 비호 속에, 2대, 3대, 4대 대대손손 기업을 대물림하여 기업과 사회의 지배자고 되고 있다. 기업은 점점 더 사회적 형태로 변모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점점 더 극소수 자본가들한테로 집중되고 있다.

기업은 특정 자본가들의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공동 소유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탐욕에 빠진 자본가들의 소유를 철저하게 보호해주고 있는 체제다. 자본주의 국유화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고 노동자들이 집단적 소유체제로 가는 걸림돌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를 분쇄하고 자본가들이 독점적으로 소유한 기업을 몰수하여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답이다. 자본주의 대기업과 은행을 몰수하여 노동자 인민의 집단적 소유, 사회적 소유체제로 만들어야 한다. 노/정협

* 사진 출처는 대우조선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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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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