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 신사 조국과 신사당이 과연 북극해를 뚫고 가는 쇄빙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조국과 조국혁신당이 “윤석열정권을 깨뜨리는 쇄빙선 될 것”이라며 윤석열 정권의 폭정에 신음하는 민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그런데 조국은 과연 진보적이고 혁신적일 수 있을 것인가?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주장하고 실제 권력기구 일부를 개혁하겠다는 요구에서 일부 진보적 요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국은 “검찰독재성”에 맞서 정치권력을 민주화하겠다고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검찰독재성”을 감시, 통제하겠다는 주체인 정치권력, 관료기구 자체의 본성이 반민중적이고 반동적이며 폭력적이다. 국가보안법을 먹고 자라는 국정원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다. 행정권력은 삼권분립으로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들어섰다고 하지만 국가권력의 중심에 있는 행정권력은 부르주아의 이해를 대변하는 집행위원회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권이 “검찰 독재성”의 면모를 보이고 있지만 그 독재성의 본질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본성이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이고 친자본적인 폭력의 집행위원회라는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검찰독재성”을 개혁, 통제하려고 했던 노무현, 문재인 정권과 그 권력기구 중심에 있던 조국의 권력이 노동악법을 개악하고 임금을 깍고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미제의 요구에 복종하여 파병을 하고 삼성의 대변자가 되어 한미FTA를 추진하는가하면 제 손으로 합의한 남북 간 합의를 파탄시키는 것을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검찰독재성의 약화가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순 없지만, 이것은 권력기구 내의 힘의 변동은 가져올 수는 있어도 권력의 총량, 권력의 근본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조국과 조국혁신당이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깨뜨리는 쇄빙선이 되겠다고 하는데, 이 폭정은 바로 국내외 독점자본(재벌)의 이해를 대변하는 반동적 성격으로부터 나온다.
조국이 과연 이 사회의 억압기구, 악법들을 없애고 (미)제국주의 지배를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요구들을 단 하나라도 내걸고 있는가?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같은 악법과 파업권을 봉쇄하는 민사상, 형사상의 악법들 철폐, 원하청 제도 철폐와 비정규직제도 반대, 사유화 반대, 핵심 기간 산업 국유화, 토지 국유화, 부채탕감과 은행국유화, 무상체제, 국가보안법 철폐, 미국에 종속된 외교 중단하고 자주외교 추진, 미군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 진보적이고 진짜 혁신적 요구들 중 어느 하나라도 내걸고 있는가?
미제의 전쟁책동을 중단시키고 북에 대한 제재책동에 반대하며 미제의 간섭을 뚫고 남북의 자주적 관계를 회복시키고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윤석열의 폭정은 바로 이러한 민중의 요구를 외면하고 국내외 재벌과 미제의 요구에 충실한 결과로 자행되는 것이다. 윤석열의 폭정을 끝장낸다는 것은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리고 이 정권의 반민중적 조치, 정책들을 분쇄하고 이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개조를 가져올 수 있는 진보적 요구를 과감하게 시행하는 것이다.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윤석열의 발언이 국민적 분노를 사는 것은 가중된 생활상의 고통 때문이다.
물가, 특히 생활필수품 가격은 폭증하는데 실질임금은 수년간 동결 내지 대폭 감소되면서 생산품을 소비할 수 없게 되고 생활수준이 대폭 후퇴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대파 발언을 부각시키고 비난하는 부르주아 정치권과 언론이 과연 민중의 생활상의 고통, 빈곤을 극복할 수 있나?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수용할 것인가? 바로 문재인 정권 하에서 최저임금을 올렸다 산입범위 확대로 도로 빼앗고 역대급 낮은 인상을 기록하고 이것이 윤석열정권까지 이어지고 있는 거 아닌가?
조국이 쇄빙선이니 검찰독재와의 투쟁을 강조하지만 이 선명성이 착시효과인 것은 약간 넓은 안목으로 보면 문재인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그 반민중적인 본질로 말미암아 허망하게 물거품이 되고 권력 내에서 문재인에게 맞섰던 윤석열이 정치적 대안으로 부각되고 다시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의 탄압을 당했던 조국이 집중 관심과 기대를 모으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부르주아 체제의 이 순환적 정치구조가 지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멀리는 한 때 김영삼 정권 하에서 “대쪽 총리” 이회창이 집중 조명되며 새로운 권력 대안으로 떠올랐던 기억도 있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신평 변호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가진 정치적 자산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가진 정치적 자산이 더 우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발언한 의도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이로써 한동훈 대망론에 이어 이재명, 조국 등 부르주아는 문재인, 윤석열로 이어지는 권력재편과 윤석열의 조기 권력 위기 속에서 부르주아 권력의 완충적 예비 대안자들, 정치적 보험자들을 다양하게 갖추게 되었다.
반미몰이, 종북몰이로 친미 반북 총선 일색으로 만든 일등공신 조선일보는 다시 “한미동맹은 가스라이팅” 조국당 비례 6번, 아들은 15세 때 美국적 선택(김상윤 기자, 조선일보, 2024.03.26.)이라며 조국당의 인사들의 “반미성”을 부각시키며 정치적 예비 세력이 가진 약간의 “위험성”마져도 봉쇄하며 사전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다.
조국은 수십억대 자산계급 출신 부르주아 정치인이다. 그러나 조국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부르주아는 아니기에 자녀에게 학벌을 재생산 해서 부와 사회적 지위를 물려주려 했다.
이른바 “조국비리”는 정치권력 간 투쟁 수단이 되어 과장되었고 정치적 의도로 악랄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이로써 조국이나 그 일가가 무죄라는 것은 아니다. 조국은 다만 그 정도 자산가들이 불법.탈법적으로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들을 해왔을 뿐이다. 조국자신도 무죄라고는 주장하지 않고 조국의 지지자들도 그렇다. 그러나 대중들의 분노는 조국범죄화가 검찰권력과 언론들을 동원하여 정치적 의도로 자행되었고 조국의 범죄를 속속 털거나 비난하는 권력자, 언론들이 자신들의 그 보다 훨씬 더 위중한 범죄에 대해서는 은폐하고 이중잣대를 적용하는 것때문이었다.
조국은 윤석열 정권에 맞서 싸우다 희생당한 열사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었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분노, 정권의 위선성, 파렴치함에 대한 분노가 조국서사를 만들고 조국은 이를 잘 활용해 정권에 맞서 가장 전면에서 싸우는 비극사를 가진 영웅서사의 주인공으로 재탄생했다.
새옹지마, 롤러코스터 같은 조국서사는 사실 전도된 현실이고 착시효과이다.
윤석열 정권에 가장 가혹하게 탄압당한 세력은 노동자, 노조, 민중들이었다.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서 투쟁한 중심세력은 언제나 진보적 기층 노동자 민중과 조직들이었다. 그러나 총선시기에 진보세력들이 분열되고 진보정당들의 우경화가 자산계급 출신 조국을 진보적 대안으로 여기게 하는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의당은 반북반공주의를 근간으로 다원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계급성을 상실한 사민주의 정당이다. 더욱이 정의당은 국회에서 민주당으로부터 독자성을 빌미로 국민의힘과 윤석열정권과 보조를 맞추기도 하면서 윤석열 정권에 반대하는 민중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진보당은 일부 시민운동가들과 함께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 들어가고 의석획득이라는 의회주의에 경도되고 반미몰이 종북몰이에 굴종하였다. 더불어민주연합에 참여하는 당들은 이 당에 대한 지지를 강조하지만 이 비례연합정당은 조국혁신당에 비해서도 선명성과 혁신성이 떨어져 보인다.
진보정당이라고 자처하는 정당들이 정권심판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쇄빙선을 자처하고 “검찰독재”와 맞서 싸우겠다며 선명성을 과시하는 조국과 조국혁신당에 비해 그다지 전투성이 보이지 않으니 정치적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부르주아 신사 조국이 과연 북극해를 뚫고가는 쇄빙선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진보적으로 변화, 개조하는 역사의 기관차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조국은 문재인의 정치적 계승자로 윤석열을 낳은 일등공신이다. 조국과 조국혁신당은 기층 노동자ㆍ민중에 기반하여 그 계급적 이해를 대변하는 투쟁정당이 아니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의 왼쪽 날개를 자처하지만 친미 친자본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민주당의 정치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는 정당이다. 더 파란민주당은 결국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윤석열 투쟁에서 조국과 조국혁신당은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일면 협조, 일면 견인, 일면폭로할 수 있는 대상이다.
조국과 조국혁신당이 정권퇴진 투쟁에 앞장서고 일부 진보적 요구를 내걸 때는 일면 협조와 공동투쟁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말과 달리 정권퇴진 투쟁에 소극적이거나 머뭇거릴 때, 체제옹호적 요구와 행보로 그 본색이 드러날 때는 일면 견인, 폭로와 투쟁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부르주아 신사와 신사당이 새 나라, 새 역사를 만들 수는 없다.
기층 노동자ㆍ민중에 계급적으로 의거하고 이 사회의 근본모순인 자본주의 착취사회의 모순과 미제국주의의 지배와 분단반공체제에 맞서 싸우는 전투세력, 대중적 전투정당만이 역사와 사회의 질곡을 분쇄하는 쇄빙선이 되어 조국을 진짜 혁신하고 개조할 수 있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329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