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주의 비판1 사회주의는 헌법개정의 산물이 아니라 혁명의 산물이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노동당이 제헌절 72주년을 맞아 다음과 같은 아주 파격적인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주의 체제의 이념과 구조를 담은 헌법개정안을 마련하여, 노동자·민중을 비롯한 시민사회와 공유하고 토론해 가겠습니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로 인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사회의 청사진을 구체화하고 실천을 모아가겠습니다.
(사회주의 헌법을 제안합니다. – 72주년 제헌절 기념 노동당 특별 성명서)
이 특별성명은 두 가지 점에서 파격적이다. 첫째는 무엇보다 비록 원외정당이기는 하지만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등록정당이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사회주의를 헌법개정으로 달성하려 한다는 점이다.
첫째가 진보정당의 진보가 상대적 의미로 쓰여서 정치적 지향이 불분명한데 비해 사회주의를 분명하게 선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의미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부정적 의미로 파격인데 공상적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헌법개정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산물이다. 혁명으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고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소유한 생산수단을 몰수하여 집단적 소유(사회주의 국유화 및 협동조합 등)로 전환하고 나서 그 권력의 성격과 이념과 경제적 변화에 맞는 헌법이 마련되는 것이다.
노동당이 말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총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사회의 청사진”은 헌법이 아니라 강령에 명시된다.
스탈린이 ‘쏘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맹 헌법초안’에서 언급했듯이 “강령에는 아직 없는 것, 앞으로 획득하고 전취해야 할 것이 지적되지만 헌법에는 그와 반대로 이미 있는 것, 현재 이미 획득했거나 전취한 것을 규정하여야 한다. 강령에서는 주로 장래가 취급되지만 헌법에서는 현재가 취급된다.”
이에 비춰볼때 노동당은 앞으로 획득하고 전취해야할 미래를 현재의 것으로 간주하거나 아니면 미래에 쟁취해야 하는 권력의 변화나 경제적 변화라는 과정을 회피하기 위해 헌법에 사회주의를 담으려는 것이다.
설사 그러한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헌법에 사회주의를 담겠다는 태도는 자본주의 국가나 법률에 대한 환상을 조장함으로써 그렇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다음 노동당의 성명을 보아도 이들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맹신하고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당장 친일파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을 취소하여 위헌상태를 해소하고,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실시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한 헌법정신을 충실히 이행하라.(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을 취소하라
– 헌법정신은 ‘임시정부 법통 계승’에 있다.)
이 성명이 백선엽의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하려는 좋은 의도로 발표되었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역사적 이해에 대한 부족과 함께 대한민국 헌법정신 운운하며 국가와 법에 대한 진하디 진한 환상이 담겨 있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은 1948년 제주 4.3항쟁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타오르던 민중의 해방열망과 통일의지를 미군정과 그 주구 이승만 도당이 대량학살로 짓밟고 그 피바다 위에 단독선거 단독정부로 수립된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 학살만행 위에서, 학살만행을 예고하면서 새로운 권력 하에서 새로운 제헌헌법이 만들어졌다.
노동당은 “사회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현재의 개헌안은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에도 미치지 못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헌법입니다”라고 제헌절 기념 성명에서 주장하는데, 제헌헌법이 상대적으로 전진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은 반동적 권력의 성격을 은폐할 필요가 있었고, 이북에서 단행됐던 진보적인 사회주의 권력의 정책을 무시할 수 없었고, 아직 꺼지지 않은 민중의 투쟁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한민국 탄생사와 헌법제정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헌절은 기념해야할 역사적인 날이 아니라 그 반민중성과 반역사성 앞에 통탄하며 규탄, 폭로하여야 하는 날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을 천명한 헌법정신” 역시도 48년의 백색테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임시정부 주석이라는 김구는 미군 방첩대인 CIC를 배후로 하는 백색테러 조직인 백의사를 통해 여운형을 암살하는가 하면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였다.
일제의 주구로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민중학살에 앞장섰던 일제 만주국 간도특설대의 괴뢰로 출발하여 평생을 악마와 같은 삶을 살아온 백선엽이라는 엽기적인 인물이 영웅으로 숭배되고 100살까지 천수를 누리고 국립묘지에까지 묻히는 것은 바로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을 대량학살한 뒤 제정된 그 반역사의 헌법정신에 충실한 것이다.
김원봉이야 말로 1938년 임시정부 산하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독입(립)운동가로 우리가 예우해야 할 사람이다. 김원봉이 남침에 가담했고 조선의용군이 북한 인민군의 뿌리라는 주장이 있으나, 월북 이후 북한에서 김원봉의 행적은 사실관계도 명확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이 대부분이고 김원봉에 대한 역사적 견해도 엇갈린다.(위 성명)
이 주장이야말로 공산주의자가 아닌 독립운동가, 북과는 관계없는 독립적인 독립운동가를 강조하며 노동당이 반북반공주의 틀에 철저하게 갇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노동당의 두번째의 부정적인 의미의 파격은 사회주의를 표방한 첫번째 의미마저도 삼켜버림으로써 모든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게다가 사회주의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면서도 “혁명의 근본문제는 국가권력의 문제다”는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숱한 오류와 한계 속에서도 진보적 인류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성과인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와 제국주의의 고립말살책 속에서도 분투하고 있는 현실사회주의를 부정하거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백날 사회주의를 표방한들 사회주의로는 단 한 발도 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은 노동당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주의 대중화를 외치는 ‘변혁당’이든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공개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자’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정치적 교훈이다.
이 기사를 총 437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