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임금양보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까지! – 나는 자본의 앞잡이가 아니다! 자본 그 자체이다!
자본의 주구들이 얼마나 ‘담대’하고 ‘선제적’으로 노동자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지 보라!
얼마나 담대하고 선제적인가?
저런 반노동자적 합의안을 받아 온 것도 담대하고, 직권조인설이 나올 정도로 노사정 야합을 한 것도 담대하고, 민주노총 의결기구 내 반발을 알면서도 중집 안건 상정 1시간 반 뒤에 합의안 협약식을 잡아 놓은 것도 담대했다. 게다가 민주노총 내부, 특히 투쟁하는 비정규직 주체들의 격렬한 반발과 중집 압도적 다수의 반대를 확인하고도 두 번이나 회의를 개최하여 야합안 승인을 요구하는 것도 담대하다. 무엇보다 중집에서 불승인 되고 사퇴 요구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와중에도 기어이 직권으로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상정하는 것도 담대하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담대한 행위들은 운동의 원칙은 말할 것도 없고 합리적 상식도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절차적으로도 허를 찌르는 변칙과 편법을 사용하는 예측불가 방식으로 항상 선제적이었다.
한석호 씨는 김명환 집행부의 담대함과 선제성에 대해 더욱더 담대하고 선제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석호 식 담대함과 선제성은 김명환 식 야합과 노예적 후퇴와 양보와 같은 것인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더 그 파렴치한 반노동자적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한석호 씨는 처음에는 “임금인상 자제” 대가로 “코로나19 위기에서 노동측에 절박한 것은 총고용 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다. 반드시 따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규직 임금양보와 총고용 유지 및 사회안전망 강화를 맞교환하자는 한석호의 양보안은 당연하게도 자본가들의 반대로 노사정대화 안건에도 상정되지 않았다.
이제 한석호 씨는 다시 한 발을 양보하여 기업의 지불능력 운운하며 밑바닥 노동자들이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게 차라리 권고사직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 지불능력이 없는 데다, 투쟁한다고 해서 일거리가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서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19 휴직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게 호소한다” –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승인해야 한다, 매일노동뉴스, 2020.07.06.)
이번 노사정야합에서 노동시간 단축, 휴업·휴직 등 고용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에 대해 반발이 일자 김명환 위원장은 중집회의를 중단하고 심야에 부랴부랴 노동부장관을 찾아가 휴직조항을 삭제하는 수정안을 받아 왔다.
이 수정안조차도 휴업수당을 삭감하고 휴업조건 완화로 해고수순을 밟게 하여 해고를 정당화하는 독소조항이라고 반발이 심했다.
그런데 한석호 씨는 이도 모자라 휴직이나 휴업수당 대신 권고사직을 하는 게 낫다면서 정리해고를 수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참으로 담대하고 선제적인데 아직 그 담대함과 선제성은 끝나지 않았다.
한석호 씨는 정규직 임금양보분을 밑바닥 노동자들한테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제는 한석호 씨가 팔아먹는 저임금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조차 자본의 논리로 사실상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로 생산과 소비가 줄어든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밑바닥 일자리를 도리어 빠르게 많이 없앨 수 있다.(같은 글)
우리가 누차 강조했듯이 양보론자들의 주장은 1820년대 자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경제학자들이 노동자들의 격렬한 임금인상 투쟁을 막기 위해 ‘임금기금제’라는 논리를 고안했는데 이들은 전형적인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구사하고 있다.
이 논리는 임금은 기금처럼 제한돼 있어서 일각에서의 임금인상은 이른바 밑바닥 노동자들의 임금몫을 빼앗아가기 때문에 임금인상 투쟁은 무용하다는 주장이다.
한석호, 이남신 등은 이 자본의 논리를 밑바닥에 깔고 정규직의 임금양보를 주장했다.
그런데 이들 뻔뻔한 자본의 주구들은 이제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많이 빼앗아갈 수 있다고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자본은 그동안 노동귀족론을 구사하며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을 반대하면서도 정작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며 반대했다.
이들 자본의 앞잡이들은 결국 아주 담대하고도 허를 찌르는 깜짝 방식으로 자신들의 마지막 논리적 보루인 비정규직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조차도 팔아넘겨버렸다.
정규직 임금을 양보하고 총고용 보장도 양보하자까지!
노동귀족론에서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상실론까지!
이제 무엇이 남아 있는가?
”나는 자본의 앞잡이가 아니라 자본 자체이다!”
이렇게 담대하고 선제적으로 선언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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