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대타협의 최대 반대자는 ‘강경파’나 ‘구좌파’가 아니야! 현실 자체야!

1. ‘강경파’들의 위원장 감금 사태? 80년대 언론보도통제인가?

2. “새빨간 거짓말, 통계” 그리고 한석호 식 현실의 미화, 분식

3.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왜 성행하는가?

4. 노동계급 내부 격차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1. ‘강경파들의 위원장 감금 사태? 80년대 언론보도통제인가?

“민노총 강경파, 새벽부터 위원장 막아… 협약식 15분전 불참 통보”(조선일보)

“강경파에 포위된 민노총, 22년만의 노사정 대타협 판깼다”(중앙일보)

“강경파에 발목 잡힌 김명환… 협약식 15분 남기고 취소”(동아일보)

“노사정 합의 저지 들어간 민주노총 강경파…위원장 사실상 감금”, 연합뉴스

“위원장까지 감금한 민주노총 강경파…대타협 서명 15분 前 판깨”, 한국경제,

“민주노총 강경파 ‘노사정 합의’ 반대…김명환 위원장 ‘사실상 감금’”(한겨레)

“‘울타리에 갇힌’ 민주노총 불참…노사정 협약 불발”(경향)

감금된 민주노총 위원장…노사정 합의 무산(MBC)

거의 모든 언론들이 노사정합의문의 협약식 무산에 대해 일제히 비난을 쏟아 붓고 있다. 이 비난의 행렬에는 극우파쇼 언론 조중동은 물론이거니와 ‘진보’적인 신문과 방송을 자처했던 한겨레, 경향과 MBC까지도 일제히 동참했다. 사실상 자본세계의 모든 언론들이 민주노총 내부 ‘강경파’를 비난하고 있다. 마치 과거 군사정권 시절 관계기관대책회의에서 언론보도통제 지침을 하달한 뒤 관제어용언론들이 똑같은 기조로, 똑같은 제목으로 일사불란하게 노동자투쟁을 비난했던 것과 같은 양상이다. 물론 과거와 같은 노골적인 보도통제지침은 없었겠지만, 자본세계 언론들의 노동자 투쟁과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일치했기 때문에 이심전심으로 저러한 악의적이고 비열한 언론보도가 나오게 됐던 것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김명환을 ‘강경파’가 감금했다는 기사 제목도 그렇거니와 “‘울타리에 갇힌’ 민주노총”이라는 경향신문 기사 제목도 보라! 마치 노사정합의문을 거부하는 것이 사회 전체의 이해나 관심사를 외면하고 이기주의에 빠진 일부 세력들의 준동 때문이라고 비열한 악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공산당선언 》이나 《독일이데올로기 》에서 “한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늘 지배계급의 사상이었다”라고 했는데, 우리 노동자들과 진보적인 인민들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배계급의 사상이 가만히 앉아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악의적이고 교묘하고 비열한 방식까지 동원하여 철저하게 조직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참에 확인하게 되었을 것이다.

‘강경파’니 ‘온건파’니 하며 노동운동 내부를 분열시키고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비열한 방식은 노동운동 내부 자본의 주구인 한석호 씨가 먼저 제기했다.

“돌팔매 맞더라도 목청껏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싶은데”라며 매일노동뉴스에 칼럼을 썼던 한석호 씨는 각종 통계수치를 인용하며 다시 임금양보론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나섰다. 한석호 씨는 이 칼럼에서 임금양보와 사회적 대타협 노선을 비판하고 나선 ‘구좌파’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구좌파는 기·승·전 투쟁을 통해, 기·승·전 정부와 재벌에 빼앗아서, 기·승·전 임금인상 노선을 고집스레 붙들고 있다.(한석호, 임금동결은 노동평등을 향한 출발이다, 매일노동뉴스, 2020.06.25)

‘강경파’를 ‘구좌파’가 대신했을 뿐 악의적인 인식이나 방식은 자본세계의 언론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한석호 씨는 ‘구좌파’가 자신들의 주장을 반대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논리대로라면 과연 ‘신좌파’는 임금동결과 노사협조주의 투항노선을 적극 찬성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자본과 권력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좌익 정치세력들이 배후에 있다”는 이른바 빨갱이 마녀사냥을 자행했는데, 한 때 민주노동당 분당 시절 날렸던 종북몰이 사도답게 한석호 씨는 이번 임금동결 논쟁에서도 음모적 방식을 구사한다.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은 누군가의 배후 선동 때문이 아니라 억압과 착취, 극단적 불평등 같은 모순적인 현실 그 자체 때문이다. 이 객관적 현실이 없다면 ‘강경파’니 ‘구좌파’니 하는 이들이 아무리 배후에서 선동을 하더라도 누가 투쟁에 나서겠는가? 설사 총칼로 협박한다 하더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다.

정규직 임금양보를 통해 총고용보장과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전하자는 한석호 식 사회적 대타협 노선의 최대반대자는 이른바 ‘구좌파’나 민주노총 내 ‘강경파’가 아니다. 바로 객관적 현실 그 자체이다. 생활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 그 생활의 중심에 억압과 착취에 맞서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 있는 것뿐이다.

한석호 식 노사, 노사정 상생과 타협 노선의 실행자들 중에는 일부 대기업 노조 상층 관료들도 있고 그 중심에 바로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과 그 집행부들이 있는데, 이들의 노사정 합의문에는 노사, 노사정 상생, 협조주의 노선의 실체가 무엇인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석호 씨는 “돌팔매 맞더라도 목청껏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싶은데”라는 칼럼에서는 “코로나19 위기대응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에서 “임금인상 자제” 대가로 “코로나19 위기에서 노동측에 절박한 것은 총고용 유지와 사회안전망 강화다. 반드시 따내야 한다.”, “총고용 유지와 임금인상 자제를 합의하는 것은 사회의 흐름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 노사정 대타협에는 임금양보와 총고용 보장을 교환하자는 제안은 의제에도 올라가지 않았다. 반면에 도리어 기업이 “휴업수당 감액 승인을 신청할 경우 노사 의견을 고려하려 신속히 심사한다”라든가 “노동시간 단축, 휴업” 등(휴직은 나중에 빠졌다고 한다)에 노조나 노동자들이 협조할 것이 명시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는 합의문이 나왔을 뿐이다.

심지어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을 지지함으로써 당선되게 만들었던 ‘민주노동자전국회의’조차도 이번 합의에 대해 “해고 금지,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 상병수당 도입 등 민주노총의 핵심 요구는 관철되지 않은 반면 휴업수당 감액, 휴업조건 완화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만 포함됐다”며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실제로 벌써부터 자본가들은 매출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휴업수당 70% 이상 지급을 거부하고 감액 신청을 하고 있는데 지노위에서는 정부의 지침이라고 이를 승인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더욱이 한석호 씨가 정규직의 임금양보 대가로 “비정규직·하청노동·특수고용직 등 밑바닥 주변부 노동”에 대한 나눔을 강조하는데, 이들의 삶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본가들은 최저임금 동결도 성에 차지 않아 아예 최저임금 2.1%(8천410) 삭감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석호는 밑바닥 노동자에 대한 나눔을 주장하면서도 “더구나 앞으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쉽지 않다”면서 최저임금 삭감이나 동결 공세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임금동결 대가로 얻고자 하는 총고용 보장과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보전이라는 전제는 이미 현실에서 철저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이러한 문구상의 보장 여부와 상관없이 대우조선 해양에서는 대량실업 문제가 떠오르고 있고, 10여년 만에 복직을 완료한 쌍용자동차에서는 다시 대량해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와 아예 취업하지도 못하는 청년들의 만성적인 실업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적 대타협, 노사상생 따위의 비현실적인 망상은 대타협론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노자 간에, 노정간에 적대적인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다.

2. “새빨간 거짓말, 통계그리고 한석호 식 현실의 미화, 분식

한석호 씨는 자신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을 미화(美化), 분식(粉飾)하기 위해 통계 수치를 들이댄다. 그런데 통계 관련해서 《새빨간 거짓말, 통계》, 《통계의 거짓말》,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정부, 기업, 정치가는 통계로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있는가?)》 같은 책들이 연달아 출판되는 것을 볼 때도 자본이나 권력자들의 의도나, 해석자들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통계가 얼마든지 왜곡, 조작, 은폐, 과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새빨간 거짓말, 통계》(대럴 허프 저 박영훈 역 더불어책 2004.04.12.)를 보면 그래프를 이용해 착시효과를 일으켜 통계를 왜곡하거나, 평균임금 통계에 자본가들을 집어넣어 임금수준을 높이는 방법 등 통계가 특정한 정치적 목표에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흔히 말하는 “통계 마사지”인 것이다.(물론 그럼에도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부르주아 통계가 그렇다 하더라도 과학적 사상을 가지고 있고 진실을 추구한다면 통계의 추세나 추이를 통해 현상과 본질에 대해서도 탐구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의 통계를 가지고 한국노동연구원 같은 정부 산하기관에서 분석해 발표하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같은 통계를 가지고 자본가들은 “경제상황이나 노동생산성 개선 보다 임금인상 속도가 빠르다”며 생산성임금제를 주장하고 임금삭감을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한석호 식 논리는 ‘노동귀족론’ 악선전에 이용되고 있다.

한석호 씨는 두 개의 통계 수치를 인용,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근거로 한국경제연구원이 분석한 ‘연봉 분위별 노동자의 평균연봉 및 연봉하한액 추이’ 통계다. 이 표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2018년 기준으로 첫째, 양대 노총 조합원 상당수가 상위 10% 안에 들어 있다. 상위 10% 연봉하한액은 6천950만원이다. 둘째, 양대 노총 조합원 대다수는 최소 상위 50% 안에 든다. 기준선은 2천864만원이다. 셋째, 상위 10% 하한선과 하위 10% 상한선의 차이가 무려 5.96배다. 노동이 심하게 불평등하다.

2017년 총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은 50.65%였다. 나머지 90%를 모조리 합쳐도 절반이 안 됐다. 심각한 불평등이다. 구좌파 주장처럼 최상위 1%의 소득 비중이 너무 높아 그런 것은 아닐까 봤다. 최상위 1%의 비중은 15.26%였다. 많았다. 그런데 바로 아래, 상위 1% 미만 상위 5%까지의 비중도 19.32%였다. 많았다. 또 그 아래, 상위 5% 미만 상위 10%까지의 비중도 16.07%였다. 역시 많았다. 그래서 계산을 해 봤다. 상위 10%의 50.65%에서 최상위 1%의 15.26%를 빼니, 35.39%가 나왔다. 상위 9%가 차지하는 비중이고, 그 층의 다수는 노동자다.(한석호, 같은 글)

그런데 이와는 다른 통계를 볼 필요가 있다. 국세청의 ‘2018년 국세통계연보’(“상위10% 1인 1억7천만원 벌 때 하위10% 1인은 121만원”, 한겨레, 2018-12-31) 자료를 보면 종합소득 신고자 대상은 639만3891명이기 때문에 그 중 상위 10%는 약 63만9천명이다. 이들의 종합소득은 113조원으로 종합소득의 56.5%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들의 1인당 평균 종합소득은 1억7700만원이다.

2017년 “상위 10%의 1인당 평균 종합소득은 하위 10%에 견줘 146배가량 많았다”는 위 통계를 보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의 3.4%에 해당하는 4,515명이 전체 금융 소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 통계 역시 부동산 불평등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상위 10%가 순자산 42.1%를 소유할 정도로 자산 쏠림 현상이 심해, 소득 격차보다 부동산가격 상승이 경제적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내용의 국책연구기관 보고서가 나왔다. 이에 따라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선 부동산가격을 안정시키는 한편 부동산 소득 등에 대한 세금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상위 1%가 순자산의 11.3%, 상위 10%가 42.1%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자산 불평등이 심각하다.(이정훈 기자, “한국은 집값 오를수록 불평등 심화”, 한겨레신문, 2020-06-29)

연말정산 신고자(1800만5534명)를 대상으로 한 근로소득 분위별 점유율을 보면, 상위 10%의 근로소득이 전체의 32%를 차지하는데, 이들의 1인당 평균 근로소득은 1억1300만원이다. 약 180만 명 정도에 해당한다. 이들 1억 7천만 원 이상의 종합소득을 올리는 상위 10%나 1억 1300만원의 평균 근로소득을 올리는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은 중자본가 이상, 대기업의 중간 관리자 이상의 관리자들과 임원들, 토지나 건물 소유자들, 주식 소유자들, 교수, 판사, 의사, 회계사, 검사, 장성, 고위 관료, 변호사 상층 등이 포함될 것이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자본가들이거나 자본가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세력들이다.

과연 노동자들 중에 1억 1300만원에서 1억 7천만 원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한석호 씨는 이처럼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수치를 가지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양보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위 10%말고 상위 1%(혹은 0.1%) 최고 상위 대자본가들의 ‘소득’은 어떠할 것인가?

재벌닷컴의 2019년 “100억 이상 ‘슈퍼 고소득자’는 56명”의 자료를 보면, 이 중 뇌사상태에 빠져 있는 이건희는 삼성전자, 삼성생명 계열사 지분보유만으로 4천747억5천만 원의 배당금을 받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천426억2천백만 원의 배당을 받았다. 이건희 부인 홍라희는 삼성전자 지분 보유로 766억8천100만원을 받았다. 이건희, 이재용, 홍라희 3인의 재벌일가만 하더라도 6천9백4십억 원으로 7천억에 가깝다. 호텔신라 이부진은 313억 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은 281억 원만 삼성일가는 약 7천 6백억 원의 배당 및 보수를 받았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933억3천3백만 원의 배당금과 현대차 모비스에서 받은 임원보수 70억 4천만 원을 합쳐 총1천3억7천300만원을 받았다. 정몽준은 현대중공업 지주 지분 25.8% 보유로 배당금 777억4천2백만 원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최상위 0.1%의 재벌들의 실태이다. 그리고 이들 밑에 분포되어 있는 대자본가들과 그 일가들이 상위 1%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계조차도 재벌들이 가지고 있는 부를 정확하게 추산한 것이 아니다.

경험적으로 자본가계급을 포함한 부유층의 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대부분 서베이 조사를 통하여 소득 불평등의 정도를 파악하고 있지만, 대자본가들은 이러한 서베이 조사 표본에 포함되기 힘들며, 포함되더라도 이들은 자신들의 소득을 정확하게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서베이 조사를 통하여 계급 불평등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신광영,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을유문화사, 2004, “계급적대 현실의 은폐와 조작1 한국개발연구원(KDI) 양극화 보고서 실체”, 노동자정치신문 85호, 2012-05-21 기사에서 재인용)

이들의 1년 배당이 이정도면 이들의 총자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일 것이다. 망자나 다름없는 이건희가 누워서 벌어들이는 4천747억5천만 원은 2020년 월급 179만 5310원을 받는 2만 여명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벌어들이는 연봉 보다 높다. 이건희와 부인 홍라희, 범죄자 이재용 3인의 1년 소득 6천9백4십억 원과 국세청 자료 하위 10% 종합소득 7766억 원(1인당 평균 121만원)은 크게 차이가 없다. 이것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거대한 계급불평등이다. 이것은 합법적인 착취의 결과물이자 편법·탈법, 부패로 얼룩진 자본범죄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한석호 씨는 계급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주장에 대해 ‘구좌파’ 운운하며, 최상위 1%가 가진 천문학적인 부와 이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불평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구좌파에게 묻는다. 최상위 1%의 소득 15.26%에만 문제가 있고, 상위 9%의 35.39%는 별문제 아니란 말인가. 최상위 1%의 15.26%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긴 채 언제까지 상위 9%의 35.39%를 옹호할 것인가.

한석호 씨가 자본의 앞잡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현실을 호도하고 자본가들의 착취와 현기증 나는 부와 소득에 대해서는 한사코 침묵할 수 있단 말인가?

3.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왜 성행하는가?

새벽까지 이어진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다행스럽게도 김명환 위원장이 받아 온 노사정 합의문이 동의를 얻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대타협을 모색하고, 왜 여전히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운동 내부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인가? “김명환 위원장의 독단적, 비민주적 조직운영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중집 성명에서도 표현하고 있듯이, “민주노총은 미증유의 코로나 정국에서 노동, 민중들의 고용과 생존권 보장을 위해 4.29중앙위원회를 통해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를 하기로 결정”하고, 여기서 “노사정교섭을 통하여 해고금지, 총고용보장, 사회안전망 확대 등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9시에 중집회의 잡아 놓고 10시 30분 협약식이라고? 코로나19가 죄인인가? 자본의 탐욕과 자본주의 때문인가?, 2020년 7월 1일)에서 주장했듯이, 노사정 선언에서 표현한 것처럼, “코로나19위기로 인한 경영악화”, “코로나 19위기로 인한 매출 급감”으로 “죄는 국제적인 전염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공황과 모순의 촉발이 문제인 것이다. 코로나19라는 국제적인 전염병은 자본주의 위기를 촉발시키고 노동자에 대한 공세를 더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대량 해고와 만성적 실업, 최저임금과 복지에 대한 공세와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이 있었다. 코로나19를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로 인식시킴으로써 노사정이 이 위기를 손잡고 해결해보자고 하는 것이 노사정선언에서 일관되게 관통되고 있는 자본의 철학이고 전략전술이었던 것이다. 마치 낯선 외계인의 침공 앞에서 지구인들이 하나 되어 위기를 돌파해보자는 공상 속 이야기가 코로나19라는 현실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자본가들과 중립을 가장하지만 자본의 편인 정부관료들,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정 대화 기구 속에서 노동자들의 사활이 걸린 당면 요구를 관철시키겠다며 참여한 것이 오늘날 이 사단을 낳은 원인이 되었다. 노사정 기구에서 노동자 한 쪽 요구만 의제로 올라갈 리도 만무하고, 여기서 “고통분담”없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사회적 합의주의 자체가 노동운동 내부 관료적 지도자들을 끌어들여 동의와 설득, 합의의 모양새를 갖춰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이고 노사정위원회는 명칭이 어떻게 변하든 이를 위한 기구라는 점을 또다시 망각했다.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과의 타협과 상생으로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고 요구를 관철해보자는 것이 바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낳았다. 21세기 베른슈타인주의는 노사상생과 나눔이라는 스웨덴 모델, “연대임금제”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사상이 부족하고 노동운동이 어디로 나아갈지 정치적 전망이 부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노사타협주의가 자신들의 정치적 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한석호 씨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면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지, 상상한 적이 있다 … 청년 시절에는 소련과 북조선이었다 … 전두환 일당을 때려잡는 방법은 사회주의 혁명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다. 소련과 북조선은 혁명의 기지로 느껴졌다.

지금은 북유럽을 선호한다. 북유럽은 지난 100여 년, 노동·여성·소수자·동물·환경·평화 등의 측면에서 가장 선진적인 사회다. 경영과 경제 측면에서도 매우 효율적이다.(전태일재단 기획실장 한석호, “다시 태어나고 싶은 나라, 대한민국”, 현자지부신문, 2020년 6월 11일)

어제의 혁명가가 오늘날 타협과 상생, 나눔과 양보를 설파하는 자본의 주구로 변절했다. 이제 한석호 씨는 이러한 정치적 전망에 따라 쏘련 사회주의의 진보적 역사 전체를 부정하고 극단적 반북 혐오주의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스웨덴의 타협모델이 가능하게 했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인식이 없다. 스웨덴의 복지국가 모델은 쏘련 사회주의의 역사적 성과와 스웨덴 노동자들의 투쟁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 스웨덴 자본주의의 성장과 ‘올로프 팔메(Olof Palme)’ 사민당 총리의 집권이라는 정치상황 속에서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은 자본주의 위기 속에 무너지고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를 취한지 오래 되었다. 게다가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이 노동자들의 착취를 근절하고 자본주의 공황과 실업, 제국주의 전쟁과 노동소외를 극복하며 무상복지 체제를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은 ‘현실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저임금과 과로사와 만성적 실업과 처참한 죽음의 행렬로 고통 받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삶과 권리를 누리는 복지국가로 나아갈지에 대한 방도가 전혀 없다. 이번 김명환의 노사정 합의에서 다시금 확인되듯이,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기만적인 사회적 대타협 노선에만 기대고 있을 뿐이다.

4. 노동계급 내부 격차는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가?

이제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한석호 씨가 말하는 노동계급 내부의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쉬운 길이 있는가? 왕도는 없다!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의 행보에서 봤듯이, 오늘날 사회적 대타협론자들이야말로 한국노동운동 내에 팽배한 협소한 조합주의와 관료주의, 계급타협주의의 온상을 제공하고 노동자 계급의 분열을 야기하는 세력들이다. 이들은 자본과의 굴종과 타협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권력은 중립적인 존재인 것으로 가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말살하고 자주적 노동운동을 말살한다.

사회적 대타협, 노사상생 같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와 노사정위원회 같은 자본의 기구들을 분쇄하고 노동자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면한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힘차게 전개해 나간다. 노동자들의 삶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임금양보 대신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투쟁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단결정신으로 싸워 나간다.

임금양보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이 생활임금 쟁취 투쟁을 힘차게 전개하고 이 속에서 전노협 식 하후상박으로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를 줄여나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진전과 권리증진은 가당치도 않은 시혜와 동정이 아니라 이들을 당당한 투쟁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사회 빈곤과 차별의 상당 부분 원인은 비정규직 제도에 있다. 비정규직제도가 자본에게는 최대한의 이윤과 노동자에 대한 분할 통치를 가능하게 하고, 노동자들에게는 차이와 차별, 저임금을 온존시키게 하는 주범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중대재해로 피해를 당하지만, 외주, 하청화는 더욱 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의 행렬로 몰아넣는다. 전체 노동자들이 조합주의를 넘어 노동자적 단결로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주체화에 적극 나선다.

정리해고제 및 기간제법, 파견제 등 비정규직 악법 철폐에 나선다.

전체 노동자들의 사회복지 향상을 위해 투쟁을 강화해 나간다.

노동자들과 전체 인민들이 누리게 될 무상보육,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주택이 보장되는 사회를 위해 투쟁해 나간다. 노/정/협

* 신간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인터파크, 예스24 등을 통해 구매할 수 있습니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후원계좌: 110-324-080316 신한은행 박지연

📱 노동자정치신문 텔레그램 채널 가입하기
https://t.me/mlkorea1917

이 기사를 총 696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