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사]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들이여, 적을 향해 나가세, 굶주린 민중이여!

빠벨의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다.

빈곤과 굶주림, 그리고 질병, 이따위 것들이 바로 사람들이 죽어라 노동해서 받는 대가입니다. 모든 게 다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어서, 우리는 매일매일 노동과 진흙 구덩이, 그리고 사기 속에서 우리의 생명 전체를 죽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노동을 가지고 마음껏 즐기고 배불리 처먹으면서도 쇠사슬에 묶인 개처럼 우리를 무지 속에 묶어 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실 아는 것도 하나 없고, 언제나 벌벌 떨며 살아와 모든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밤이 바로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칠흑 같은 밤 말입니다!

러시아 빠벨의 어머니는 곧 전태일 열사 이소선 여사이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이기도 하다. 저들은 “쇠사슬에 묶인 개처럼 우리를 무지 속에 묶어 두”려 하지만, “자식의 삶과 죽음으로부터 세 어머니는 각성하여 철저하게 투쟁한다. 세 어머니를 보고 우리들 역시 각성하여 투쟁한다.

2019년 12월은 고 김용균 1주기이다. 김용균의 끔찍한 죽음 뒤로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난한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 위하여 자신들이 그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전쟁 같은 그 죽음의 일터로 또 다시 떠밀려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들 노동자들 중에서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작업장에서 자본가들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의 김용균들의 끔찍한 죽음은 죽지 말아야 할 안타까운 죽음들이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이 생명을 존중하여 안전시설에 투자를 하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죽지 않았을 소중한 생명들이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 국회에서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지만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조소를 들을 정도로 노동자들의 중대재해를 막을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은 없었다. 노동자 살인에 대해 자본가들의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은 집요하게 회피되고 있다. 작업중지권도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의 대부분을 하청 노동자가 차지하고 있는데 “죽음의 외주화”가 그 직접적인 책임으로 운운되고 있으면서도 실질적인 외주화 방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죽음의 외주화” 뒤에는 외주화 자체가, 외주화 뒤에는 비정규직제도 자체가, 비정규직 제도 자체 뒤에는 무한정 이윤을 추구하는 탐욕의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의 위협, 죽음의 공포를 매일 같이 겪으면서 어디에 자신들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이 있고, 어디를,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정작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 반면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탐욕, 돈밖에 없는 모르는 자본가들이 생산에 대한 절대적 통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에 의한 기업살인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위험에 대한 통제는 생산에 대한 통제로부터 시작된다. 생산에 대한 통제는 권력과 사회에 대한 통제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연이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목도하고는 “과연 이 노동자 살해체제에서 “평화적 해결”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그러한 정치적 진실을 온전하게 마주할 때가 왔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어나세, 깨어나세, 노동자들이여, 적을 향해 나가세, 굶주린 민중이여!”

빠벨의 어머니가, 러시아의 노동자들의 이렇게 외치며 러시아 황제체제를 타도하고 권력을 쟁취했던 것처럼 노동자들도, 굶주린 민중도 권력과 자본의 지배를 타도하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혁명과 러시아 혁명과 그 혁명을 위한 국제적 투쟁과 경험들에 대해 다룰 수밖에 없다.

2019년은 불꽃같은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19년 독일 혁명의 와중에 사망했다. 사망했다는 표현보다는 참살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붉은 로자’는 독일 공산당을 창건한 직후 혁명의 불길을 막아서고자 한 사회민주당의 권력자들에 의해 참살 당했다. 이로써 독일 사민당은 레닌이 규정했듯이,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실제로 수행했던 것이다.

로자는 “위대한 공산주의자”였고, “위대한 국제주의자”였다. 로자는 “수정주의에 맞서 싸운 맑스, 엥겔스의 계승자”였다. 로자는 베른슈타인 수정주의자에 맞서 투쟁했고, 전쟁 시기에 전쟁을 지지하는 사회민주당 내 기회주의 다수파에 맞서 끝까지 전쟁반대를 외치며 투쟁했다. 그러나 로자는 전위정당의 통일과 규율을 초중앙집중제로 부정하고, 특히 ‘민족자결권’을 부정했다. ‘민족자결권’을 국제주의와 대립시키는 것은 로자의 가장 큰 정치적 오류이다. 로자가 초중앙집중제로 비난한 현실사회주의는 “극좌파”들과 부르주아들에 의해 반공주의적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있다.

우리는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으로부터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에서 레닌주의적 관점으로 로자의 공과 과에 대해 분명하게 다루고 있다.

2019년은 또한 러시아 혁명 100주년인 동시에 코민테른(국제 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코민테른의 혁명적 전통에 대한 그리스공산당의 ‘좌익’ 분파주의적 견해 비판”, “제3 국제공산당이 주는 교훈 오늘날 노동자들은 코민테른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번역) 등 일련의 글로부터 공산주의 운동의 혁명적 전통은 무엇인지, 그것을 반대하는 부정적 흐름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가 점점 더 극심해지고 전쟁과 공황, 궁핍의 시대인 2020년이 다가오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를 자본주의 내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그것은 파시즘 같은 야만적 폭력에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야만의 자본주의의 대안은 오직 사회주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사회주의이고, 어떻게 건설하는 사회주의이며, 현실에서 존재했던 사회주의 체제와 여전히 사회주의를 천명하며 존재하고 있는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우리는 지난 12월 15일 <현실 사회주의 비교와 한국사회 미래 전망> 토론회에 발제문으로 실린 북경대 김정호 박사의 “중국 사회주의인가 국가자본주의인가”에 대한 비평을 실었다. 우리는 이 글을 비평하면서 중국사회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에 주목하면서도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중간강령”에 바탕을 두고 있는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현실의 사회주의 중 조선사회, 조선의 사회주의 건설의 경험 등은 우리와 같은 민족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고, 쏘비에트권의 해체 이후에도 제국주의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포위와 말살 공세 속에서 생존하고 있고, 또 최근에는 사회주의적으로 번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조선의 경험과 조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정치적 전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권 변호사로서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에 정면으로 맞서 투쟁하고 있는 장경욱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의 존재이유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버티고 있고 공안수사기관이 일상적 사찰을 하는 사회에서 민중의 저항력은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이다. 민중의 정치사상적 자유와 표현의 자유 그리고 결사의 자유가 있는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에 대해 공연히 학습해 보면 국가보안법의 위협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북의 사상과 이론, 정책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접하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은 당신을 덮칠 것이다. 소련과 동구에서 실패한 붕괴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학습하다니, 기아와 가난도 극복하지 못한 세습독재 북 사회주의에 대해 알아볼 것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이 주어진 답처럼 튀어나오는 사회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학습하며 이를 받아들여 노동운동을 하고 노동자를 위한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여 활동하는 것은 보편타당한 일이다.

그런데 한국사회 대다수 진보세력들, (급진)‘좌파’를 자처하는 대다수의 정치세력들은 반북주의에 빠져 있고 심지어 북을 타도해야 하는 체제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주관적으로는 “급진파”라고 자처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국가보안법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철저하게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보안법 제정 71주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공동 토론회에 부쳐 – 반북주의에 사로잡혀서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남북, 조미관계가 급변하고 있다. 최근의 급변은 전쟁 위기가 고조되고 대립이 전면화 됐던 부정적인 상황으로의 사태의 변화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대단히 낭만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 정치적 급변상황을 연출할 것이 분명한 선물이 언제, 어떤 식으로 배달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서 우리 노동자 민중이 중대한 정치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에는 평화의 적들, 분단의 영속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투쟁이 개시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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