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전체에서 다시 시작된 “칠레 전투”

안준호 (한신대 학생, 양산맑)

1. 중남미에서 다시 터져 나오는 항쟁의 목소리

(1) 다시 요동치는 중남미

2015년부터 시작된 핑크타이드(남미 좌파 블록)의 분열과 붕괴가 멈춘 것일까? 에콰도르와 칠레에서 시작된 전민항쟁이 남미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에콰도르의 민중은 에콰도르 수도 키토를 점거하여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는 레닌 모레노1) 대통령을 도망치게 만들었고 굴복시켰다. 모레노 정권이 유류 보조금을 폐지하겠다는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을 펼치자 그 동안 21세기 사회주의에 익숙해 있던 에콰도르 민중 입장에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주민 단체가 합류하면서 투쟁은 더욱 강화되었고, 에콰도르 민중의 위대한 투쟁은 레닌 모레노에게 보조금 폐지 철회를 하도록 압박하였고 레닌 모레노 정권은 항복하고 철회하였다.

칠레 민중 또한 자본의 권력을 위협하고 뒤흔들고 있다. 피노체트 정권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는 자본 천국 노동 지옥의 현장에서 살아가던 칠레민중이 그저 지하철 요금 30원 올랐다고 나라를 뒤집었겠는가? 그동안 쌓이고 쌓여온 불만과 분노가 그것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다. 지하철 개찰구를 점거하는 걸로 시작된 칠레 민중들의 저항은 더더욱 커져 갔다. 우파 피녜라 정권은 초기에는 잔혹하게 진압하였다. 초기 시위부터 실탄을 발포하면서 사태를 강제로 진압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우파 정권의 긴축정책에 분노하고 지친 민중들은 계속 항쟁하였고 결국 피녜라 정권은 지하철 요금인상을 철회할 뿐 아니라 최저임금 인상, 연금 인상, 부유세 신설, 의료비용 지원 등 긴축완화책을 제시하면서 시위대를 회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칠레 민중은 이미 피노체트 시절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현 체제에서 일시적인 임금 인상과 복지 개선으로는 지금의 빈곤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현재 헌법은 피노체트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지는 자본독재를 위한 헌법이었기 때문이다. 민중은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연금제도와 수도 서비스의 국유화,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 보건제도의 개혁, 공립교육을 강화, 무상 대중교통을 확립 그리고 그것들을 이루기 위한 정권 퇴진과 개헌이 그 요구사항들이다.

이는 칠레 민중이 개량투쟁으로 바꾸는 것의 한계를 직시하고 체제를 뒤집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혁명적인 관점의 전환이다. 당연히 이러한 관점의 전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아옌데의 죽음과 피노체트의 대학살 그리고 민주화 된 이후 칠레 중도좌파 정권들의 우유부단함과 자본과 미국의 하수인인 (극)우파들의 계속되는 득세를 보면서 역사적 교훈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각성의 과정에서 맑스-레닌주의 성향의 칠레 공산당과 신좌파 성향인 칠레 광역전선이라는 두 좌파 정당의 역할이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두 정당은 칠레 민중에게 “민주적 전위”의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지금 칠레 민중의 요구는 이 두 정당들의 공약이었다. 이 두 정당의 끊임없는 설득과 호소가  민중에게 가랑비처럼 젖어 민중적 요구로 폭발한 것이다.

계속되는 투쟁에 피네라정권은 결국 칠레 민중의 투쟁에 굴복하였고 개헌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칠레 국회는 제헌의회 소집을 위한 국민투표를 내년 4월에 열겠다고 합의하였다. 칠레 민중은 자신들의 힘으로 피노체트의 어두운 유산을 역사 속으로 영원히 보내 버렸다.

한편, 브라질에서도 파시스트이자 미국의 개인 보우소나루 정권에 대항하는 범좌파 연대의 재정비가 진행되고 있다. 사법공격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룰라가 풀려나면서 그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 2015~17년 기간의 패배를 딛고

2015년 원자재 시장의 가격이 폭락하고 원자재 의존 국가들이 하나 둘 불황에 빠지면서 그동안 원자재 가격에 크게 의존하던 남미 ‘핑크타이드’는 15년부터 17년 사이 동안 빠르게 붕괴되어 갔다. 10여 년간 고개 숙이던 우파들이 정계를 다시 장악하기 시작하였으며, 일부 좌파 인사들은 우파로 전향하여 배신의 정치를 휘두르기도 하였다. 현재 OAS(미주기구) 대표가 전형적인 배신의 정치를 하고 있는 인사다. 그러나 2018년부터 계속 심화되는 자본주의 장기불황의 여파에 우파정권들이 무슨 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할 줄 아는 건 그저 닥치는 대로 긴축하고 때려잡는 거 밖에 할 줄 몰랐고, 결국 우파 그들은 멕시코부터 차근차근 자멸하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에서 긴축정책과 부정부패에 지친 민중들은 부정부패와 양극화를 척결하고, 미국에게 할 말은 하겠다는 오브라도르 좌파정권을 선택하였고, 2018년에 파산하여 IMF에게 다시 나라를 팔아먹은 우파 마크리 정권은 올해 대선에서 대패하여 좌파 페론주의 진영에게 권력을 다시 넘겨주어야 했다.

아르헨티나는 2015년부터 살인적인 긴축정책으로 고통 받아왔고 민중은 더 이상 그러한 고통에서 살아갈 이유가 없다. 좌파 페론주의 진영은 IMF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긴축정책을 폐지하자는 구호로 승리하였다. 서구 미디어는 좌파 페론주의가 귀환하면 아르헨티나가 망할 것이라며 저주하지만 이미 우파가 나라를 말아먹은 것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이후 이야기는 위해서 말한 듯이 진행된다. 에콰도르에서 시작된 반(反)긴축 항쟁은 칠레에서 제헌/개헌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남미 우파들은 코너에 몰리게 된 것이다.

2. 자본과 우파들의 반격, 볼리비아 반(反)혁명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본과 남미우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들은 21세기 사회주의 중 주요한 축을 담당하던 베네수엘라를 고립시키고, 볼리비아에서 쿠데타를 조장하였다. 대선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명분을 들어 노동조합 조합원과 사회주의 대중당 당원, 전혀 상관없는 지자체 단체장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난동을 피웠다. 이미 대선 결과의 조작성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21세기 사회주의의 중요한 축인 에보 모랄레스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미주기구(OAS,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는 대선이 조작되었으니 재선거를 해야 한다고 감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 증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을 뿐이며, 마크 와이즈브롯 같은 미국 학자들조차 감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에보 모랄레스는 순진하게도, 감사 결과를 받아들였고 재선거를 하기로 하였다.

그 때를 기점으로 군과 경찰은 모랄레스에게 사퇴를 종용하였다. 무효가 된 것은 당선자를 뽑는 선거였지, 이미 대통령이었고 임기가 남아있던 모랄레스의 대통령 지위가 아니었다. 이것은 쿠데타다. 피노체트처럼 탱크를 끌고 오지 않았을 뿐 연성 쿠데타로서 그를 끌어내린 것이다. 결국 모랄레스는 사퇴하였으며 이렇게 21세기 사회주의의 한 축을 담당하던 볼리비아의 미래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서구 미디어와 서구 미디어의 추종자들인 한국 언론들은 모랄레스를 14년 장기 독재자로 묘사하고 있고 그의 명예를 흠집 내고 있다. 그의 14년 동안 극단적 빈곤층의 비율이 38%에서 15%로 내려앉은 것과 외세에 침탈당하던 볼리비아의 재산(천연자원 등)을 국유화 하여 볼리비아 민중에게 돌려주었던 것은 그들 머리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3. 남미 투쟁이 말하는 “의회”의 변증법

우리가 현재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칠레 전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남미좌파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의회제도에 아직까지 묶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거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가 했었던 그리고 현재 칠레 민중이 요구하는 제헌의회 소집은 큰 틀에서 절차를 중시하는 의회 민주주의에 입각한 요구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의회제도에 묶일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우리는 알 수 있다.

남미 우파와 자본은 단 한 번도 의회 제도를 존중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기본적 권리조차,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말하는 노동3권조차 중남미 민중이 싸워가면서 스스로 만들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 어떠한 노사정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협동조합 같은 걸로 만든 것도 아니다. 그러한 시도 속에서 남미 좌파는 기존 의회 제도를 방어하는 것에 온 힘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뛰어 넘고 싶어도, 이것을 방어하기에도 바쁜 상황을 누가 만들고 있는지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또 아이러니 하게도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노동자국가를 만들지 않고서야 이 악순환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남미 좌파들이 겪고 있는 의회의 변증법이자 의회 딜레마이다. 아옌데가 있었던 그 상황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은 계급투쟁이다. 노동자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민주주의 투쟁의 종착점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의 민주주의 투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것이 남미 좌파진영의 고민을 축약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의 현 투쟁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게 정리된다.

  1.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물질적인 당면요구 또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 요구를 걸고 싸울 때 투쟁은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사정합의 같은 행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2. 그것이 가능하려면 역사적 과정의 축적과 그것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며, 그것을 민중에게 전파하고 설득할 민주적 전위가 필요하다.
  3. 반(反)혁명 시도에 대한 대응은 매우 중요하다.
  4. “의회의 변증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여야 한다.

후주

1)  본래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한 라파엘 코레아와 같은 파이스 당의 인물이었으나 집권한 후 우경적인 정책을 피고 있다.

참고 링크

칠레 상황에 대한 민중의 소리 국제보도

https://www.vop.co.kr/A00001446088.html?fbclid=IwAR1fNVCJBAAXewUTzAX7idcO82DnRrHo_ZvxoIHgWdHa_OYHui8Dk76cFmY

OAS기구의 감사결과를 비판하는 해외 글

http://cepr.net/press-center/press-releases/no-evidence-that-bolivian-election-results-were-affected-by-irregularities-or-fraud-statistical-analysis-shows?fbclid=IwAR2wfn7OBRN8S9C7y8mFGCqAysVi8OQmegIue4FpLWgdmInOlAqnU2Wdw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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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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