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끼리’를 계급화해라 비난하는 노사과연의 ‘좌익적’ 인식에 대하여
민족문제는 분단과 통일, 제국주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당면투쟁 과제이자 궁극적 해방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초석이 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현 시기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중심적으로 제기되는 집약적 구호는 ‘우리민족끼리’다. 이는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전선의 요구다. 주지하듯 통일전선이란 일정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공통의 목표를 위해 결집하는 것이다. 물론 통일전선은 전술이자 새로운 사회로 이행하는 전략으로도 발전했다.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는 현 시기 민족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총요구이다. 그런데 ‘우리민족끼리’에 대해 계급화해이며 심지어 “범죄”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비난하는 경우조차 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는 지난 8.15 통일촉진대회에 배포한 선전물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온 민족이 하나 되어 반미자주의 목소리를 낸다”? ― 도대체 가능한 일입니까? 아주 벌거벗은 어투, 무식한 어투로 물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 고개를 들어 여기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십시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광란하고 있는 저 무리들은 “우리민족”입니까, 아닙니까? 예를 들어, 오늘날 조ㆍ중ㆍ동ㆍ문ㆍ매… 등등으로 열거되는 극우언론, 그 안의 언론인들, 극우지식인들, 어느 당, 어느 정권이랄 것도 없이, 당장 문재인 정권을 포함해서, 오늘날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세력들, 등등등, 그들은 “우리민족”입니까, 아닙니까? … 우리가 진정 조국통일을 촉진ㆍ달성하려면, 우리는, “우리민족”은 결코 하나가 아니라는 것, “우리민족”은 계급적 이해로 적대적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시 무식하게 지적하자면, 다시 한번 더 고개를 들고 이 광화문 광장을 둘러보십시오. 아예 태극기와 성조기를 한 몸으로 만들어 흔들어대며 광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온 민족이 하나되어 반미자주의 목소리를” 하고 외치는 것은 기만이고, 좀 독하게 표현하면, 범죄입니다.(노사과연 운영위원회, <‘2019 조국통일촉진대회’에 부쳐> 조국통일 운동, 이제 달라져야 한다)
한국에서 “반미자주” 운동은 진보적인 운동이다. 그런데 노사과연은 “공산주의자는 모든 곳에서 기존의 사회 · 정치적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는 맑스·엥겔스의 아량 있는 태도를 망각하고 지극히 분파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8.15통일촉진대회, 그리고 그 전의 통일선봉대 사업은 이른바 ‘자주파’들만의 사업이 돼버렸다. 이른바 대다수 ‘좌파’들이 이 투쟁에 결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전적으로 반제자주 사업에 결합해 오고 있는 자주파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여기에 기권하는 이른바 좌파들의 편협함을 비판하며 한국운동의 선진적 발전과 단결의 과제를 제시하고 당면의 남북, 조미관계의 변화 속에 한국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이 국면을 인식하고 대응해갈지 정치적 과제를 제시했어야 한다.
분파주의적 태도와 함께 내용의 문제를 제기하면, 우리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반비판할 수 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것은 사태를 일면적으로만 바라보며 총론적 인식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비판대로 ‘우리민족끼리’는 민족 내부의 화해가 불가능한 계급들과의 계급화해이고 ‘기만’이자 심지어 ‘범죄’로까지 취급받을 문제인가? 과연 이 비판대로 우리 민족 내부가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는 몰계급적 요구인가? 그런데 이러한 비난이야말로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우리민족끼리’라는 구호에 대해 천진난만하게 비난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자주파 일각의 정치적 문제를 비판한다고 하면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민족적 요구 전반을 부정하는 오류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다.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따로 없다.
“우리민족끼리”는 계급화해가 아니라 반제자주의 요구다
해방되지 않은 사회 내에는 같은 민족 내부에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급들이 서로 적대하고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맑스주의 초심자라도 알 수 있는 초보적인 상식이다. 자칭 맑스레닌주의자들이 이 초보적 상식을 심오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물이라도 되는 듯이 새삼 강조하며 ‘반미자주’의 기치를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악의적이거나 정치적 무지의 발로에 다름 아니다.
‘우리민족끼리’는 무엇으로부터의 ‘우리민족끼리’인가? 타 민족 일반을 멸시, 부정하는 애국주의, 국가주의로써의 ‘우리민족끼리’인가? ‘우리민족끼리’라는 압축적 구호 뒤에는 우리민족끼리 반제자주하자는 말이 따라온다. 쉽게 말하면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점령군으로 들어와 있는 미제국주의 군대를 철수시키고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자는 말이다. 과연 이 요구가 광화문의 우익들, 조ㆍ중ㆍ동ㆍ문ㆍ매 같은 극우 언론이나 극우 지식인들과 같은 극우언론 세력들하고도 같이 하자는 요구가 될 수 있는가?
이러한 식의 논리가 성립될 수 있다면, 가령 “전 노동자 계급이 하나 되어 반자본해방의 목소리를 내자!”는 주장에 대해, “도대체 가능한 일입니까? “광란하고 있는 노동자 계급 내부의 자본의 주구들, 어용들, 노동관료들은 하나의 ‘계급’입니까?, 아닙니까?”라며 따져 묻는 것도 가능하다. 또 가령 “온 동포가 하나 되어 일제 강도들을 몰아내자!”는 주장에 대해 “도대체 가능한 일입니까? 광란하고 있는 친일파들도 ‘우리동포’ 입니까? 아닙니까?”라고 윽박지르는 것 역시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를 들었을 때 노사과연의 비판은 정당한 비판이 아닌 억지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을 것이다.
“온 민족이 하나되어 국가경제를 부흥시키자”, “온 민족이 하나되어 자본을 성장시키자” 따위의 구호라면 충분하게 몰계급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온 민족이 하나되어”는 같은 민족이니 아무런 조건 없이, 전제 없이 무조건 하나로 결집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민족적 과제인 ‘반미자주’의 기치에 뜻을 같이하는 모든 사람, 세력들이 공통의 요구 앞에 총단결하자는 것이다.
주지하듯 광화문의 우익들은 집회장에서도 성조기를 숭상하며 노골적으로 외세(제국주의) 추종적이다. 조ㆍ중ㆍ동ㆍ문ㆍ매 역시 미제국주의에 기생하는 반공주의 언론들이다. 과연 이들이 외세를 척결하고 “우리민족끼리 반제자주하자”는 요구에 같이 할 수 있겠는가? 이들 우익들은 외세 추종적이고 반통일적인 민족적 염원의 배반자들일 뿐이다.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조국통일 촉진대회”에서는 “전민족적 반미공동남북공동투쟁기구 결성을 결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대중조직들이 여기에 적극 참여하여 모든 계급·계층·부문이 망라되어야 합니다”라고 결의하고 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계급들이 중심이 되어 반제자주에 동조하는 청년, 학생, 지식인, 단체 등이 총망라되는 것이다.
선진적 노동자계급이라면 이를 몰계급적이라고 비난하고 기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족적 과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더욱이 맑스레닌주의자라면 한(조선)반도에서 민족문제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우리민족끼리 반미자주”하자는 요구가 민족문제를 해결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토대가 될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
노사과연은 민족 내부도 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다고 하면서 ‘우리민족끼리’ 구호를 격렬하게 성토하는데, 이는 ‘민족끼리’ 라는 표현에 사로잡혀 계급모순이 역사적으로 민족문제라는 형식을 띠고, 또는 민족문제와 결합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 반제자주로 민족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계급문제 해결의 조건, 토대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계급화해라고 비난하는 것은 계급문제가 오로지 자본가 계급 대 노동자계급의 문제로만 단순하게 나타난다고 하는 일면적인 ‘계급주의’의 발로일 뿐이다. 계급모순은 민족 대 제국주의 간 모순으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등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자본가 계급과 그 주구들이 일제시대에는 친일파로, 그 이후에는 친미반공주의적, 반민족적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충족시켰던 것을 노사과연도 분명하게 인식할 텐데, 어떻게 ‘우리민족끼리’가 자본가 계급이나 그 주구들하고도 같이 하자는 구호라고 비난하게 되었는가?
노사과연은 일반론적으로는 제국주의 반대를 외치면서도 그 구체적인 수단, 경로, 순서 등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사과연은 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일전선적 구호를 극단적으로 비난함으로써 반제자주의 실현을 부정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사회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포함한 이른바 ‘좌파’들의 전형적인 인식이다. 이들 이른바 ‘좌파’들은 노동자 자본가 간의 계급모순을 강조하면서도 민족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을 계급협조주의라고 부정하고 기권해왔다. 맑스레닌주의를 표방하는 노사과연이 트로츠키주의와 좌파들의 이러한 정치적 특성에 빠지게 된 것은 지극히 유감이다.
분단과 통일의 특수한 성격
또 하나 우리민족끼리는 반제자주의 요구이면서 조선(북한)과 민족적 통일을 요구하는 구호이기도 하다. 한(조선)반도에서 민족문제 해결은 부르주아적 통일국가 수립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분단 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민족적 과제가 미완의 과제라는 것을 제기하는 것이다. 즉, 한국 사회가 미 제국주의를 극복하여 자주성을 회복하고 또 남과 북이 통일되는 민족 국가 수립을 과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과제는 레닌이 제기한 민족 자결권 테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민족 자결의 권리가 독립적인 민족 국가 수립의 문제였듯이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분단에서 비롯되는 민족적 과제 또한 부르주아적 성격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즉, 분단 체제가 제기하는 민족적 과제는 사회주의적 성격이 아니라 부르주아적 성격의 문제이다. 이 점을 혼돈하면 민족 통일의 과제를 한국에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미루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PD파 일부에서 이러한 혼란된 주장을 과거에 제기한 바 있는데 이는 민족적 과제의 계급적 성격을 혼동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자주성의 회복, 민족 통일, 통일된 민족 국가의 수립 자체는 한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승리하지 않은 상태,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가능한 것이며 그 자체로 사회주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는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보아도 명백하다.(“한국 사회에서 민족 문제의 성격”, 노사과연 정세와 노동 제153호(2019년 7/8월), 문영찬 연구위원장)
한국사회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누가 보아도 분명하다. 그 통일이 부르주아적 흡수통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치문제에서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글의 필자처럼 “민족적 과제는 부르주아적 성격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민족문제의 성격을 충분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조선)반도에서 통일국가의 수립이라는 민족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결코 부르주아적 성격에 머물 수는 없다.
통일국가의 수립이라는 민족문제의 궁극적 해결 전이라도 미군철수와 국가보안법 철폐가 달성된다면 그 자체로써 민족문제 해결의 전환기적인 돌파구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부르주아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반공 부르주아 체제에 중대한 타격이 된다.
한국 부르주아 체제의 무력적 담보물인 미제국주의가 물러가고 민중탄압 백색테러법인 국가보안법이 철폐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대대적인 계급적 각성과 정치적 활력이 고조되고 정치적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격변적인 상황이 이미 연출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 자체로 해방의 달성은 아니라 그렇다고 그것이 부르주아 성격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부르주아 체제를 방어하고 있던 방파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그 틈으로 상당부문 사회주의적 성격의 요구, 조치들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직장, 공장에서 절대적인 자본가 계급의 생산수단 소유권은 도전받고 부르주아 권력은 그 물리적 담보가 결정적으로 약화되는 한편 기존 정치적 결사체가 강화되거나 새로운 결사체들이 열린 공간 속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발전하게 될 것이다.
“민족 통일의 과제를 한국에서 사회주의 혁명 이후로 미루는” “PD파 일부”의 선변혁론은 남쪽에서 계급모순 해결과 해방의 과제에 집중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으나 반북반공주의적 사고와 단절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변혁 이후로 통일과제를 미루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한(조선)반도에서 통일의 특수한 성격이 변혁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민족문제 해결을 변혁 이후로 미뤄버리면서 기권하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이러한 태도로는 변혁도 달성할 수 없다.
반면 선통일론은 분단문제 해결을 전면에 내걸면서도 남쪽 내부 자본가 계급과의 투쟁을 소홀히 하고 변혁의 목표를 상실하면서 몰계급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오늘날 자주파 일각에서 계급해방의 목표와 분리되는 통일지상주의는 부르주아적 통일과도 단호하게 분리하지 않고 ‘햇볕정책’을 추구하는 민주당파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면서 자주성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북에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성립되고 남에서는 물러간 일제를 대신해 미제국주의 군대가 진주하여 지금까지도 제국주의 군대는 철수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통일의 걸림돌인 외세를 척결하고 나서 달성되는 조선과의 통일을 “자본주의 틀 내”에서 “부르주아적 성격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조선의 사회성격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노사과연이 “우리민족끼리 반제자주”하자는 요구 자체를 계급화해이자 기만이자 심지어 범죄라고 비난하는 것은 ‘우리민족끼리’가 남과 북, 해외동포까지 포함하는 통일전선적 요구임을 보았을 때, 이 통일전선의 일 주체, 그것도 강력한 주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에 벌어졌던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알 수 없는 격렬하고 심지어는 잔혹했던 좌우익의 대립, 미군정과 민중의 대립, 남북의 대립은 해방된 조국을 누가 지배, 통치하느냐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계급투쟁이다. 이 격렬한 계급투쟁 과정 속에서 미군정과 이승만 도당은 이남만의 단독정부(단정) 수립을 획책하면서 민족 구성원 압도적 다수의 해방열망은 좌절되고 분단이 시작됐다. 민중의 대대적인 저항과 이를 잔혹하게 학살하는 와중에 터진 한국전쟁은 이 계급투쟁이 가장 격렬한 전쟁이라는 형태로 벌어졌던 것이다. 한국전쟁은 조선과 미제국주의 간의 전쟁이면서 남북 간의 내전이다. 더불어 쏘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과 미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와의 국제전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러한 역사적 격변을 통해 형성된 민족문제는 종국적으로 이남만의 단독정부 수립 이전 해방된 통일조국 건설이라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렇게 민족문제의 역사적 성격을 인식할 때, ‘우리민족끼리’ 반제자주하자는 요구는 계급문제와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그것도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정세 조성과 과제
한국전쟁은 정전체제를 낳고 지금까지 정전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미제국주의는 한국을 반공주의의 전진기지로 삼고 반쏘 반중 반북 책략을 지속해 왔다. 여전히 미제국주의는 한미군사동맹, 한미일 동맹으로 조선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포위 말살책을 펼쳐왔다. 미제는 사드 도입에서 보듯 한국을 중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는 전선으로 전략적으로 활용해 오기도 하고 있다. 조선은 핵무력과 사회주의 자력갱생으로 미제국주의의 고립말살책에 대항해 왔다.
그러나 전쟁일보 직전까지 갔던 상황에서 조선은 핵무력을 완성했다. 2018년에는 남북 간 4.27선언과 조미 간 6.12싱가포르 선언, 남북 간 9.19평양공동선언으로 남북, 조미관계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남북, 조미관계라는 것이 적대적 관계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여곡절의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베트남 하노이 회담의 결렬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조미관계의 전환의 궁극적인 원천이 북의 핵무력 완성과 제재에도 굴하지 않는 자력갱생 사회주의 경제에 있기 때문에 우여곡절 속에서도 그 전환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하기 어렵지만 2019년 말까지 조선이 요구하는 “새로운 계산법”에 의해 조미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북, 조미 관계의 중대한 변화는 노동자 계급에게도 중대한 정세적 영향을 미친다. 남북, 조미관계의 전환은 전쟁 가능성을 줄이고 평화애호적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며,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와 한미 군사동맹 해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조선으로서는 자주적인 사회주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노사과연은 남북 조미관계 가장 중대한 전환점인 평화협정 문제에 대해서도 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금 교착 상태에 있는 조선과 미국 간의 협상은, 최근 조-러 정상회담에서 이야기 나온 대로, 그것이 6자회담으로 전개된다면, 그 결과를 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예단할 수 없으나,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하여도, 그 역시 한(조선)반도 정세의 근본적인 성격이 변화하지 않는 한, 발전된 특수한 국면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즉, 지금의 국면은 소리장도(笑裏藏刀), 즉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형세이며, 언젠가 종전선언, 평화협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결코 그 칼이 거두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종전선언, 평화협정 체결이, 한국노동자계급에게 있어 보다 유리한 국면으로의 정세의 발전인 것은, 당연지사지만, 이 역시 또 다른 형태로 계급투쟁이 계속되는 것이며,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라는 한(조선)반도 정세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김해인 편집출판위원장, 현 정세와 한국노동자계급의 당면과제, 2019년 5월 6일)
“조선과 미국의 협상은 … 종전선언,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하여도”라는 내용에서 보이듯, 노사과연은 한국전쟁 이후 66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역사적 과제를 소홀하게 취급한다. 노사과연은 당면한 정세의 걸림돌을 돌파하는 가장 중대한 전환점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에서 마치 그것이 이미 달성된 것처럼 인식한다. 위 글의 제목이 “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당면과제”인데 제목과 달리 당면과제를 회피하고, 그것의 달성에 대해서조차도 “정세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며 마땅찮아 한다. 이는 “당면과제”를 말하면서도 궁극목표로 공허하게 비월(飛越)해버리는 것이다.
당면요구들을 해결하며 변혁의 기초와 조건을 다지는 일련의 단계 없이 근본변혁을 달성한다고 보는 것이 바로 근본주의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항상 단계를 부정하며 근본주의로 비월한다. 여기서 노사과연의 자칭 맑스레닌주의는 구체성을 상실하며 사물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무기력하게 되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전쟁과 평화’의 시대, ‘평화협정’ 체결 투쟁의 의의, 그 의의를 부정하는 트로츠키주의 편향”(2017년 8월 13일), “남북, 조미 관계의 급변속에 드러나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좌익’적 빈말과 우익적 일탈”(2018년 7월 1일)이라는 우리의 글을 보라!)
조국통일 촉진대회는 현 정세변화 속에서 다음과 같은 핵심구호를 내걸었다.
6.12조미공동성명 이행!
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
남북선언 이행 방해 내정간섭 중단!
대북적대정책 폐기! 대북제재 해제!
미군철수! 한미상호방위조약 파기! 한미동맹 해체!
한미합동군사연습 완전 중단! 전쟁무기 강매 중단!
우리민족끼리 남북선언 이행!
한미공조 대신 민족공조로!
분단적폐 청산!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석방!
우리민족끼리 전민족적 반미공동투쟁 실현!
친일친미 자유한국당 해체! 일본 군국주의 부활 저지!
이 요구는 ‘대체적으로’ 당면 정세의 핵심적인 정치적 요구를 잘 집약하여 표현하고 있다. 위의 통일촉진대회의 요구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총요구 하에서 나오는 당면 요구들이다. ‘우리민족끼리’라는 요구 실현을 미제가 반대하기 때문에 미군철수 요구와 한미동맹 해체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것이며, 남북 대결을 이유로 정치적 자유를 봉쇄하고 ‘우리민족끼리’의 대단결을 가로막기 때문에 분단적폐와 국가보안법 철폐 요구가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촉진대회에서의 ‘우리민족끼리’라는 요구를 계급화해로 부정한다면 그 총요구 하에서 나오는 핵심 요구들을 부정하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대로 핵심 요구들은 인정하면서 ‘우리민족끼리’를 부정한다면 총요구를 부정함으로써 핵심 요구들의 근간을 무너뜨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 중에서 친일친미 자유한국당 해체! 요구가 현 문재인 정권과의 전면적인 정치투쟁을 회피하고 노동자의 정치적 독자성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 투쟁, 국정원 해체 투쟁, 사드 철거 투쟁, 한미동맹 해체와 자주적인 남북관계 개선 요구는 정치권력을 잡은 문재인 정권과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이에 대해서는 우리의 “자한당 재집권이 두려워 민주당을 비판적, 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 세력들에게”, 2019년 10월 4일 글을 보라!)
통일전선의 주체인 노동자 계급이 강화되어야 한다. 사회 다수자이자 진보적인 과제를 끝까지 밀고 갈수 있는 노동자 계급이 반제투쟁의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민족끼리’라는 반제자주를 위해 싸우면서도 민족 내부의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과의 화해할 수 없는 계급적대를 한시도 잊지 말고 투쟁해야 한다. 따라서 위의 정치적 요구와 함께 노동악법 철폐와 노동3권 쟁취, 비정규직 철폐, 실업반대 요구 같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는 투쟁이 힘차게 같이 전개되어야 한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사회적 권리의 신장 속에서 노동자들의 정치적 인식도 높아질 것이며 그렇게 될 때만이 노동자들의 자주성을 위한 반제자주 투쟁의 주도성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북, 조미관계의 전환과 통일의 시대를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정치적 삶의 대폭적인 진전, 사회대개혁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반제투쟁은 형식적으로는 국가 대 국가의 투쟁이지만 실제로는 한미 독점자본과 한미 독점자본의 이해를 폭력적으로 대변하는 한미 국가권력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미제국주의는 대외적으로는 타국 인민들의 착취와 수탈에 의존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자국 인민에 대한 착취와 억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미제국주의는 한국을 반공의 전초기지로 삼아 왔다. 한국 자본주의는 반공주의를 내세워 백색테러 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극렬한 노동자 착취와 억압, 민중 수탈 구조로 성장해 왔다. 따라서 참된 역사적, 과학적 인식을 할 때 ‘우리민족끼리’는 한미 노동자 계급 및 민중 상호 간의 국제적 단결의 과제와도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
노사과연은 “미제로부터의 우리의 해방도 분명 국제적 연대투쟁에 힘입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로 노동자 국제연대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노사과연 운영위원회, <‘2019 조국통일촉진대회’에 부쳐> 조국통일 운동, 이제 달라져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하게 오류다. “미제로부터의 우리의 해방”의 주역량은 “국제적 연대투쟁”이 아니라 남북의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이 주요 역량을 중심에 굳건하게 설 때 “국제적 연대투쟁”도 빛을 발할 수 있다.
노사과연이 민족문제 해결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취하다보니 이처럼 내외 역량의 관계를 혼동하고 국제주의를 공허하게 취급하게 된 것이다.
맑스주의 통일전선론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진보적 발전의 시기에 노동자 계급의 자주성을 유지하면서 부르주아와의 일시적인 통일전선을 주장한 맑스의 주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 등에서 통일전선을 거부하는 “좌익”적 경향 비판에서 발전하고 코민테른 7차 대회에서 “디미트로프 테제”라는 반파쇼 인민전선에서 더 풍부해졌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통일전선 요구는 인민전선 정부라는 이행 전략으로 발전했다. 제국주의 식민지 시절부터 통일전선은 민족해방 투쟁을 위한 것이었다. 이는 해방 달성 이후에는 인민정부라는 현실 권력으로 구체화되었다.
‘우리민족끼리’는 당면한 민족문제를 해결하는 요구이면서도 여기에 참여한 계급 및 계층, 정치세력들이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권력기구로도 발전할 수 있다. 통일문제, 계급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분리하는 협소한 태도가 한국운동의 분열을 낳았다. 이 양자의 분열은 양자에게 일면적이고 상호배타주의적 태도를 강화시켰다. 우리는 이 양자의 분열을 혁명적으로 통일시켜야 한다. 한국 운동 내부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통일된 전투정당 건설로 투쟁할 때만이 변혁적 전망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 계급이 민족문제 해결이라는 중대한 당면과제를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각성될 때 노동자들은 경제적 해방을 넘어 정치적 해방으로 진군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민족문제 해결이라는 역사적, 당면 과제를 앞으로의 정세변화 속에 좀 더 구체화하며 정치적 해방의 길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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