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투쟁 2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이 글은 2017년 10월 21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주최로 개최된 ‘비정규직 투쟁 2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제출된 발제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정인탁(강원도 원주 중부지역일반노조)
1. 비정규직, 계급투쟁의 문제
올해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이 되는 해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기억하고 운동의 전망을 모색하는 토론회와 실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30년의 역사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은 특히 중요한 비중을 갖는다. 87년 투쟁으로 상승세를 달리던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96~97년 총파업으로 마지막 열정을 쏟아버린 후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힘을 잃어가는 속도에 발맞추어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갔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20년 전에는 비정규직이 예외적이고 특수한 경우였다면 지금은 정규직이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이 되었다. 비정규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까지 환산되었고 이 사회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특히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제 등을 도입하고 노동자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자본(과 정부 측)의 기도는 이른바 ‘유연생산체제’, ‘노동력의 유연화’라고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최근의 경향, 노동과정의 최근의 변화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으로서, 이는 과로사로 표현되는 일본의 노동과정의 가혹성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을 휩쓸고 있는 고율의 구조적·기술적 실업의 문제가 우리 앞에도 멀지 않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채만수, ‘신노사관계 구상’이 던진 문제, 1996년, 피억압의 정치학 (하)권, 190쪽).
김영삼 정권의 ‘유연생산체제’, ‘노동력의 유연화’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총공세였다. 이는 노·자간의 대립에서 자본에게는 우월적 지위, 노동자들에게는 철저한 굴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자본이 총노동에 대하여 계급전쟁을 선포하고 나선 것에 비하여 당시 노동자계급의 대응은 매우 안이했다. 노동자계급의 선봉부대인 조직노동자들은 사상적으로나 조직·실천적으로나 약점을 드러냈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이 말하는 ‘유연생산체제’, ‘노동력의 유연화’에 대하여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다. ‘비정규직’이란 말도 생소했을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 중에서 비중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당시 노동자들에게 ‘비정규직’이 더 확산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계급은 96~97년 총파업으로 맞섰으나 이어지는 공황시기 계급투쟁에서 전선은 후퇴를 거듭하게 된다. 마침내 ‘유연생산체제’, ‘노동력의 유연화’는 민주정부를 표방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철저하게 관철되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은 본질적으로 동일했다.
당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인 정세인식, 정치·사상적 무장 수준 및 조직적 단결의 정도가 계급투쟁의 승패를 갈랐다. 패배의 결과는 참혹했다. 그 때의 패배는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지난 8월 부산 연제구의 한 원룸에서 29세 A 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오랫동안 취업이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A 씨는 두 달 전부터 가족들과 연락이 끊어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버지가 A 씨의 집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시신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조차 밝히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중략)
청년실업률도 문제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8월 청년실업률은 9.4%로 1년 전보다 0.1%p 상승했습니다. 1999년 8월 10.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다수의 청년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사회적, 정신적으로 고립된 삶을 선택합니다. 최소한의 인간관계까지 포기하고도 취직이 되지 않는 등 불확실한 미래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는 겁니다(정윤식 기자, 취업 준비하다가 쓸쓸하게.. ‘청년 고독사’ 늘어나는 이유는?, 2017년10월17일, SBS리포트+).
수많은 청년들이 자신이 왜 취직이 안 되는지 알지 못한 채 ‘취준생’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 상당수의 청년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비참하게 삶을 포기당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실업이 일상화 된 사회, 그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죽음을 강요당해야만 하는 사회, 이는 철저히 20년 전 계급투쟁 패배의 결과이다.
2. 비정규직 투쟁 10년의 역사 속에서 축적된 고민들
사회적으로 소수였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났고 일부 산업에서는 비정규직이 정규직 수를 뛰어 넘기 시작했다.
올해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의 비정규직은 8만5458명으로 조합원수 대비 55.2%, 사원수 대비 39.3%를 차지. 비정규직 유형 중 사내하청이 6만4767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대비 75.8%를 차지하며, 촉탁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을 모두 합치면 전체 비정규직의 80.2%에 달한다.
비정규직 현황을 업종별로 볼 때, 조선(177.2%)이 전체 평균보다 비정규직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비정규직 중 사내하청이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 볼 때 전체 평균은 91.3%이고, 자동차(94.3%), 조선(94.7%), 철강(92.1%)이 평균보다 높은 사내하청 비율을 보였다(윤성효 기자, 금속산업 비정규직 비율 80.2%에 달해, 오마이뉴스, 2007년 10월 3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자연발생적으로나 또는 의식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의 투쟁을 그 출발로 해서 수많은 비정규직 투쟁이 이어졌다. 비정규직 투쟁 10년을 전후하여 이 투쟁에 대한 치열한 고민들이 축적되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이 구조조정 분쇄투쟁과 분리되어 몇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시키는 투쟁이 되면 이 투쟁은 몇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신분을 바꾸는 투쟁, 정규직 노동자 몇 명을 늘리는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 자본 전체의 문제, 노동자 전체의 문제와 분리되어 몇 명의 노동자의 직접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조합주의 운동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럴 경우에 이 투쟁은 ‘전체’ 노동자의 투쟁이 아니라 ‘어떤’ 노동자의 투쟁이 되어 투쟁의 규모를 협소하게 만들고 투쟁의 지속성을 유지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단계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또는 선별적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앞에서 비정규직 내부의 분열이 나타날 수 있다(노동자정치신문,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원칙과 과제에 대한 스케치, 2006년 7월).
지난 비정규운동의 10년의 성과와 한계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지금까지의 비정규운동은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만 근거해있던 것이 한계이다. 비정규직 철폐운동이 비정규노동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사회적인 과제이고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과제인데 지금까지는 비정규노조에만 의존해서 투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비정규노조를 힘들게 하고, 투쟁의 성과가 확산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김혜진, 비정규운동 현황과 과제, 2010년).
김혜진(전국불안전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동지는 위 글에서 비정규운동 10년의 평가지점을 아래 4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요약해 보자.
① 여전히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를 가진 이들의 문제”로만 인식된다. 비정규직 문제가 전체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자 하는 문제라는 점, 비정규직 문제는 결국 모든 이들이 누려야 할 보편적인 노동권을 빼앗고 기업만의 세상을 만드는 문제라는 점,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서 모두가 빈곤해진다는 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② 대공장이나 공공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이나 생활이 보장되고 노조도 일부 인정되었다. 하지만 이 성과는 이미 조직되어 있는 일부 노동자들만의 성과이다. 전체적으로 노동권은 오히려 후퇴했다.
③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한국노총을 포함해도 3%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3%의 조직률도 대공장 사내하청이나 화물연대, 건설기계 등 업종 중심 노조의 조직률이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되어서 목소리를 내야 할 텐데 지금의 조직률은 너무 작다.
또 노조로 조직되어도 노조를 유지하기 위한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다보니 약간의 성과만 있어도 현실에 안주하기도 한다. 간부들이나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없다.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의 관성을 쉽게 따라가고 정규직 노조나 상급단체에 대한 의존도도 강하다.
④ 비정규운동의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대와 단결은 여전히 어렵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꾸준한 활동을 통해서 단결의 인식이 높아지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비정규직 조직을 확대하는 등의 활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것이 운동의 혁신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개별 사업장에서의 활동으로 국한된다. 이것은 단지 ‘모범사례’일 뿐이고 정규직노조의 대리주의적 경향과 비정규직노조의 정규직 활용론이 맞부딪치면서 단결로 나아가지 못할 때도 많다.
비정규직 10년의 투쟁이 남긴 과제들은 그 이후의 투쟁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3. 비정규직 투쟁 20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재
■ 비정규직은 양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다양해지고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6년 8월)를 분석한 결과 발견된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비정규직 수는 2015년 8월 868만 명에서 2016년 8월 874만 명으로 6만 명 증가했고, 비정규직 비율은 45.0%에서 44.5%로 0.5%p 감소했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영업자로 잘못 분류되고 있어, 실제 비정규직 비율은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6년 11월).
남성보다는 여성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그리고 청년층과 고령층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늘고 있다.
성별로는 여성 시간제 노동자가 23만 명이나 증가했다. 연령대별로는 20대와 60~70대에서, 기업규모별로는 5~29인 규모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통계로 본 한국의 비정규노동자-2016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분석, 한국 비정규노동센터, 2017년 2월).
최저임금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숫자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최저임금을 받는 ‘무늬만’ 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를 바 없거나 또는 특정 조건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더 열악하고 불안정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여섯째, 법정 최저임금 수혜자(영향률)는 182만 명(9.4%)에서 184만 명(9.4%)으로 2만 명(0.0%p) 증가했고,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미달률)는 222만 명(11.5%)에서 266만명(13.6%)으로 44만 명(2.1%p) 증가했다. 정부 부문인 공공행정에서 최저임금 미달자가 13만 명(12.6%)이나 되는 것은 정부가 선량한 사용자로서 민간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곱째, 시급제 노동자 가운데 법정 최저임금 미달자는 7만 명(5.2%)이고, 최저임금 받는 사람은 56만 명(40.2%)이며, 최저임금보다는 많지만 시급 7천 원 이하가 44만명(31.8%)이다. 이상은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결정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016년 11월).
일부 산업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정규직 비율이 정규직을 뛰어 넘었고 그 경향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아래 기사의 내용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조선 산업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기사이기도 하다.
조선하청노동자 대량해고저지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26일 낸 성명에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보다 숫자가 더 많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정규직노조의 문을 활짝 열었다. 2017년 조선소 역사상 처음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로 뭉치게 됐다”라고 밝혔다(현대중공업, 정규직·비정규직 통합 노조 결성한다, 오마이뉴스, 2017년 9월26일).
지난 2년 동안 1만9413명이 해고된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에게는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1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같은 글).
이제는 비정규직만으로 이루어진 공장이 늘고 있다.
현대모비스 아산 모듈공장은 생산직 전원이 비정규직인 ‘정규직 제로’ 공장이다. 지회에 따르면 원청과 하청이 최근 수년간 임금을 동결하면서 법정최저임금에 가까운 저임금을 받고 있다. 업체 변경, 업체와 1년 단위 재계약 등에 따른 고용불안도 겪고 있다(김경훈 편집부장, ‘정규직 제로’ 현대모비스 아산공장, 금속노조 깃발 올려, 금속노조 뉴스, 2017년 10월 17일,).
금속노조 법률원은 “정규직 노동자와 혼재 근무가 아닌 100% 비정규직으로 구성한 공정이라도 원청의 지휘·명령 아래 있다면 불법파견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힌 판정이다”라고 평가했다. 법률원은 “원청이 직접 고용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과태료 부과 등 후속 조치를 신속히 해야 한다”라며 “현장 곳곳에 자리 잡은 불법파견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해 노동현장의 대표 적폐인 불법파견을 없애라”라고 촉구했다(조영미 선전국장, 만도헬라 100% 비정규직 공정이라도 불법파견, 금속노조 뉴스, 2017년 9월23일).
자본은 멈추지 않았다. 전 산업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를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한겨레>가 15일 단독 입수한 ‘티비에스 프리랜서 노동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 7월31일 기준 전체 인원 469명 중에 450명(95.9%)이 비정규직이었다. 정규직 19명은 모두 1~2년 근무를 마치면 다시 서울시로 복귀하는 시 공무원들이어서 티비에스는 자체 정규직이 단 1명도 없는 ‘정규직 제로 회사’다. 피디, 기자, 아나운서, 카메라, 기술, 조연출 등 같은 방송제작 인력도 임기제, 프리랜서, 파견용역, 뉴딜(비공무원 기간제), 공무직 등 차별적으로 고용해왔다. 기자는 절반 넘는 23명이 프리랜서, 피디는 60명이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기제 공무원, 12명은 프리랜서이거나 인력회사를 통해 임시직으로 계약한 파견용역 직원이다(남은주 기자, 교통방송, 비정규직이 96%…정규직은 서울시 공무원뿐, 한겨레신문, 2017년 10월 15일).
전 사회적인 비정규직의 양적 확대와 더불어 비정규직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정규직노동자들이 자연감원, 정리해고, 폐업, 구조조정 등으로 감소되면서 그 자리는 아예 소멸하거나 더 적은 수의 기간제, 무기계약직, 하청, 용역, 도급 등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진다.
비정규직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해지고 그러한 조건 속에서 노동자계급 내의 이해관계는 층층이 갈라지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다가올지 모를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불안해하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심리적 위안을 삼는다.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자기보다 좋은 조건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보다 열악한 기간제 노동자들과 비교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 기간제 노동자들은 “무기계약직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업상태의 노동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그나마 기간제라도 고용되어 있으니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실업 중인 노동자들은 “제발 기간제로라도 일을 했으면 좋겠다.”며 절망에 빠진다.
이렇게 형성된 노동자계급 내의 이질감, 상이한 이해관계는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고 더 추락하지 않기 위해 자본에게 ‘굴종’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 비정규직 조직화의 부분적인 약진과 한계
살아남는 것조차 어려웠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일부 영역에서는 자생력을 갖춘 대규모적 조직화 사업이 성과를 남기고 있다. 제조업 대공장 사내하청에서 비정규직 대규모 조직화와 저항이 일정한 궤도에 올랐다. 화물, 건설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조직력을 갖고 대정부 투쟁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 특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 조직되고 대중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전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특정 영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요구의 수준은 ‘고용안정’과 ‘부분적인 처우개선’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특정한 영역에서의 조직화의 성과가 전체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연결되기에는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다.
■ 10년 전의 고민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숙제가 더 많아졌다.
이 글의 전반부에 나왔던 비정규직 투쟁 10년의 고민과 숙제들은 지금도 그대로 숙제이다. 최근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분열을 넘어 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분열,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분열, 또 노조 조직 간의 갈등이 새로운 문제로 일어나고 있다. 누구든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 짐이 된다면 분열을 넘어 상대방을 배척하는 현상까지 서슴없이 일어나고 있다.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조인 사내하청 분회의 분리 여부를 묻는 조합원 총회를 오는 27∼28일 열기로 했다.
총회 상정 안건은 지부운영규정을 개정하는 것으로, 조합원의 구성(7조)을 현행 ‘기아자동차 내에 근무하는 자’에서 ‘기아자동차㈜에 근무하는 노동자’로 변경하는 것이 골자다.
가결 시 사내하청, 식당, 물류사, 협력업체 파견근무자, 판매대리점 근무자 등은 노조 조합원 자격이 없어지게 된다(유성열기자, 기아차 노조, 27∼28일 비정규직 노조 분리 총회, 경기일보, 2017년 4월 20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기간제교사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에 동의하지 않기로 잠정 결정했다.
24일 전교조 관계자에 따르면 전교조 중앙집행위는 전날 기간제교사 문제 해결방향과 관련해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다만 전교조 중집위는 “상시·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기간제교원에 대해서는 정부가 책임지고 고용안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기간제교원 차별을 해소하고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규교원 증원방안을 조속히 마련해 예비교사와 기간제교원의 (정교사) 임용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교원 양성·임용제도 개선과 기간제교원 문제 해결을 위해 기간제교원, 교대·사대 등과 연대하겠다”고 덧붙였다(이재영기자, 전교조 “기간제교원 일괄·즉각적 정규직 전환 동의 안 해”, 연합뉴스, 2017년 8월 24일).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서 내부 조직원의 이익과 전체 계급의 이익이 충돌할 때 현재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되는가? 내부 조직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충돌할 때 전체 계급의 이익을 우선하도록 집행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우리 운동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동자들 내부의 이해관계의 충돌, 전체 계급의 이익과의 충돌, 그로 인한 노동 계급 내의 상호 배제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노동자 계급 자신을 공격하는 치명적 무기로 작동하게 된다. 이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독자적 행동을 취하려는 최초의 실험적 시도들의 시대에서부터 물려받은 노동자적 전통들 – 수많은 오랜 노동조합들에서는 정규적인 견습 기간을 마치지 않은 모든 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것; 이것은 그런 조합들안에 자기 자신의 파업 파괴자들을 키우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프리드리히 엥겔스, 유토피아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 서설[영어판], 1892년,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박종철 출판사) 5권 431쪽, 강조는 인용자).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적인 조직화 과정,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과정 등에서 민주노총 소속 산별노조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의 중앙집행위원회는 실제 사업에 대한 논의보다 조직 갈등에 대한 논의에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을 지경이다.
이러한 ‘조직갈등’은 여러 복합적 이유로 인하여 발생한다고 본다.
현행 노조법상에서 복수노조가 완전히 허용되지 못하면서(창구단일화 절차 의무화) 하나의 사업장 내에서 여러 노동조합 간의 주도권 경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 형성되었다. 이는 자본이 쳐놓은 덫이라 할 수 있다. 노동조합으로서 교섭에서 주도권을 발휘해야 한다는 강제가 ‘내 조직 우선 챙기기’로 노동조합 운영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활동가들의 협소한 노동조합주의적인 사고가 또 한 원인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많이 만들기’, ‘자기 소속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 늘리기’가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 버린 상당수의 활동가들이 ‘자기조직 우선주의’로 무장하고 노동자 계급 내부의 조직 갈등을 부채질 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소위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자신의 당원확보, 당의 영향력 확장을 위해 조합원과 당원 가입을 동시에 받아 버리고 노동자들을 특정 정당의 숙주로 삼으려는 활동양식도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왜곡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부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 조직되어야 한다. 그러나 숫자만 늘린다고 계급투쟁이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적으로 조직되었지만 그 투쟁이 현상유지를 위한 투쟁에 머문다면, 그 투쟁이 자본의 의도를 폭로하고 계급적 단결을 통한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숫자는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할 것이다. 전략조직화는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많은 노동조합원 수를 늘리는 전략’이 아니라 ‘자본의 의도를 폭로하고 계급적 단결을 공고히 하는 전략이고 조직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비정규직 투쟁의 미래
자본은 이윤의 극대화와 체제 유지를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어느덧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겼고 그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비정규직 운동은 처음에는 제 발로 서는 것이 목표였고 일부 정규직 선진 노동자, 노조의 지원과 응원, 다수의 배타성 속에 간신히 뿌리를 내리는 미약하고 미성숙한 상태였다면 점점 더 안정화 되고 운동의 양적 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직 다수자로서 전체 노동계급의 선봉부대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이 다시 한국의 계급투쟁에 새로운 양분을 공급하고 스스로 선봉부대로 서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비정규직, 계급투쟁의 문제
글의 서두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비정규직 문제는 계급투쟁의 문제이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특정한 노동자’들에 대하여 가중되는 착취의 문제가 아니다. 자본가계급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악마인 것이 아니다. 자본가 계급은 이윤의 극대화와 체제의 유지를 위해 전체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이것을 분명히 하자. 그리고 이것을 대중들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선전·선동해 나가자.
■ 노동조합은 주요한 매개이다. 하지만 그 선을 뛰어 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신분을 정규직으로 바꾸려고 투쟁하는 것, 경제적 요구를 갖고 투쟁하는 것은 중요한 매개이다. 그러나 그 선을 뛰어 넘어야 한다. 노동조합 일상 활동의 틀을 넘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실 노동조합 투쟁의 성과에 안주하고 해마다 반복되는 임·단협 투쟁만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쳐나간다면 결국 지금 노동운동이 겪고 있는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게 될 것이다.
■ 시야를 넓히자! 자기 이익만을 위한 투쟁은 알량한 자기 이익조차 지키지 못한다. 억압받는 모든 이들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자!
비정규직과 실업이 일상이 된 현실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또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비정규직 근로자 5명 중 1명은 60세 이상 고령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와 이들의 빈곤 문제가 겹치면서 질 낮은 일자리라도 붙잡으려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60세 이상 비정규직은 146만8000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644만4000명)의 22.8%를 차지해 비중이 가장 컸다. 10년 전인 2006년 8월(61만1000명)과 비교하면 비정규직 노인 근로자 수가 2.4배로 증가한 것이다. 60대 다음으로는 50대 비정규직이 138만2000명(21.5%)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신민기 기자,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어르신들, 동아일보, 2016년 11월 7일).
이 기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을 외면하면 결국 자기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지금의 현실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는 사업장도 경기가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에서조차 감원을 추진하고 희망퇴직을 강요한다. 줄어든 일자리는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그러다가 경기가 악화되면 상대적인 안정성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정리해고에 직면하게 된다.
어제의 정규직이 오늘의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러한 처지를 극복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하나 되어 싸우는 수밖에 없다. 외주화, 하청화를 반대하고 정규직 채용을 위해 부단하게 싸워야 한다. 공공부문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투쟁을 강력하게 전개해야 한다. 비정규직 투쟁을 옹호하고 연대해 나가야 한다. 오늘의 이웃 비정규직이 자신의 미래이자 자신의 후손들의 미래이기 때문에 오늘날 비정규직이 강력한 연대로 승리한다면 미래에는 그 성과를 자신이 전취하게 될 것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 속에서 자신의 경로를 결정해 나가야 한다.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이 꿈꾸는 ‘억압과 착취 넘치는 세상’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듯이 노동자계급은 ‘억압과 착취 없는 세상’을 꿈꾸며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자본은 생산 현장만을 개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위하여 전 사회의 구조를 개조해 왔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억압이 넘쳐나고 삶이 파괴되고 있다. 그 모순이 폭발하는 곳곳의 투쟁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해야 한다. 모순이 폭발하는 그곳이 바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게 만든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치정세의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이며 대중들의 분노에 빠르게 응답해야 한다. 그날그날 눈앞의 투쟁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전망 속에서의 투쟁 기획과 실천의 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자본의 의도를 분쇄하고 비정규직 투쟁이 노동해방의 길을 닦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선배 혁명가들이 후배들에게 남긴 글을 끝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억압받는 모든 이들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자!!
본래의 목적은 물론이고, 노동조합들은 이제 완전한 해방이라는 폭 넓은 이해 관계에 있는 노동자 계급의 조직화의 중심으로서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노동조합들은 이러한 방향을 향하는 모든 사회적 및 정치적 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 전체의 전사이자 대표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한다면, 노동조합들은 결사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들의 대열에 끌어들여야 한다. 노동조합들은, 예를 들면 예외적인 환경 때문에 무력화되어 있는 농업 노동자들처럼 매우 적은 대가를 지불받고 있는 업계의 이해를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노동조합들은, 자신들의 노력들이 편협하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짓밟힌 수백만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것임을 세계 일반에 납득시켜야 한다(칼 맑스, 노동조합 그 과거, 현재, 미래, 1866년, 강조는 인용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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