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를 읽고
허유진(활동가)
이 책은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서 한국에 온 평양시민 김련희 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져있는데 1부는 김련희 씨가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으로 오기까지의 과정과 북으로 ‘송환’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과정이 담겨있고, 2부는 북에서 김련희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 대학생들과의 대담을 담고 있다.
김련희 씨는 2011년 탈북한 직후 자신이 대한민국 국민임을 거부하고, 자신의 조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자신을 ‘송환’시켜달라고 한국정부에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녀는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 한국에 왔다는 것을 깨닫고 국정원에서부터 조국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하지만, 국정원의 협박에 못 이겨 대한민국 국민이 되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만다.
그녀는 나중에 여권이 나오면 중국을 통해 몰래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졌지만 ‘신원특이자’로 분류되면서 여권이 나오지 않자 밀항, 위조여권 같은 방법을 시도하다 실패한다. 이로 인해 경찰의 감시가 더욱 심해지자 가족들에게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절망하여 두 번의 자살시도까지 했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다. 마침내 ‘간첩’이 되면 강제추방 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신이 ‘간첩’이라고 자진신고 한다.
김련희 씨의 담당이었던 성명호 국선변호사는 “김련희 씨는 브로커에게 속아서 본의 아니게 한국에 오게 되었다. 국정원에게 인도적인 차원에서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간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련희 씨는 탈북자정보를 수집했다지만 그 정보라는 것도 국가에 위해를 가할만한 국가기밀이라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마저도 김련희 씨가 자수한 점을 고려해서 형을 줄여 달라”고 변호했다.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김련희 씨의 사연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뉴스타파, 한겨레, 외신 등에 알려지면서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준비모임’이 결성된다.
구치소에서 조사, 감금, 폭력이 계속되는 지옥생활을 하면서도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김련희 씨에게 교도관은 묻는다.
당신에게 조국이라는 것이 대체 뭡니까. 왜 굳이 돌아가려고 합니까.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면 그들을 데리고 나올 수 있지 않나요? 저에게 누가 한국에서보다 더 잘 살게 해주겠으니 미국에 오라고 한다면 지금당장이라도 이 나라 국적을 버리고 미국으로 갈 거예요.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이 고생을 사서 합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한참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왜 ‘조국’에 가기 위해 징역형까지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
지금까지 나는 조국이란 참으로 성스럽고 위대하며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배워왔다. 또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조국을 버린다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다. 가족을 조국으로부터 데리고 온다는 것도 상상해본 적 없었다.
그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는 조국이란 어떤 사회일까. 그녀는 왜 이렇게 큰 고통을 당하면서도 조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걸까. 김련희 씨는 이 책 2부에서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북의 생활모습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북에서는 인간의 생존문제에 가장 기초적인 육아문제, 교육문제, 노후문제, 집 문제를 국가에서 다 해결해준다. 일하고 싶은데 일 못하는 실업자는 없다. 일을 하고 싶다고 하면 희망사항에 따라 국가에서 다 배치해준다. 어차피 배급을 다 줘야하는데 국가 차원에서는 일하는 노동자가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일은 안 해도 배급이 나온다. 또한 여성들이 자녀걱정 없이 직장에 다닐 수 있도록 모든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작업반 별로 탁아소,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다.
북에서 인민들은 자신의 제도가 착취구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바친 것만큼 내가 누리든 내 후대가 그것을 누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바쳐서 내 나라를 지키고 강한 나라,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 국가 발전을 위해서 인민들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북에서 말하는 ‘전투’란 건설현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직업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 자기 분야에서 ‘올해는 뭘하자, 내년에는 뭘해보자’ 이런 계획을 세우는 것이란다.
한국 대학생들은 북에서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는지 물었다. 김련희 씨는 일반적으로 정치인을 비난하는 경우는 국가가 인민들에게 잘못했을 때, 인민의 의사에 반하게 행동했을 때 데모를 하든, 욕을 하는데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답했다.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절대적으로 신뢰 받는 이유는 역사적인 것이다. 해방되었을 때 북 인민의 70%가 빈농, 머슴이었고, 사람들의 소원은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였는데, 북에서는 해방 직후 토지개혁을 단행했다고 한다. 소작을 주는 지주들의 땅을 무상몰수 해서 머슴, 빈농들에게 무상공급 해줬더니 몇 안 되는 지주들이 땅을 빼앗기고 남쪽으로 도망쳐갔다. 국가에서는 돈 한 푼 안 받고 몇 대를 걸쳐 머슴을 살던 사람들에게 땅을 주었던 것이다. 그 땅에 나가서 사람들은 막 울었고, 첫 농사 짓은 쌀을 최고지도자에게 보냈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은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던 시기였다. 전기가 끊겨서 엘리베이터가 끊어지고 물이 안 나왔다고 한다. 평양은 대체로 30~40층 건물이 많은데 30층, 40층을 등짐으로 물도 올리고 쌀, 김치도 올리고 했다고. 몇 번을 쉬었다 올라가서 세수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지만 단 한 번의 내란이나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믿었다는 것이다.
또 김련희 씨는 북의 조직생활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북에서는 단 한명도 조직에 망라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모든 공민이 조직에 소속돼 있고 모든 조직에는 주1회 생활총화라는 것이 있다. 당원들은 당 세포에서 생활총화를 한다고.
총화 방식은 10~12명이 모여서 서로간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직위에 상관없이 비판을 하고 그 내용들을 실생활에 반영한다고 한다. 김련희 씨는 남쪽에 와서 총화, 교육, 학습 이런 것이 전혀 없어서 이질적이었다고 했다. 사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학습도 중요하지만 총화도 중요하다고. 남쪽에서 사람들을 보면 행동 요소요소에서 개인주의, 공명주의(공을 세워 자기의 이름을 널리 드러내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튀어나오는 것이 보인다고.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총화가 없으니까 안 고쳐지는구나’라고 느낀단다.
김련희 씨는 조직생활이 일상적 억압이 아니냐고 묻는 한국 대학생들에게 말한다.
저는 남쪽에 와서 자유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어요. 뭐가 더 인간한테 ‘참 자유’일까. 조직에서 탁 풀어나서 자살해 죽어도 모르고, 왕따 당해도 모르고, 힘들어도 모르고. 그런 것이 정말 좋은 것이고 ‘참 자유’일까요? 이를 테면 엄마입장에서는 학교에서 자기 아이들이 주변 아이들과 함께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되어서 서로 보살펴주고, 선생님은 재능의 싹을 찾아서 우리 아이를 전문가로 키워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나요? 조직생활 자체가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억압적인 구조거나 책임자의 자질이 부족한 경우, 조직에 소속된 구성원들이 상처를 입는 거죠. 사람들이 억압을 느끼거나 상처를 받았다? 책임자 자질이 문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신소제도를 통해 처리할 수 있으니까 조직생활을 통해 상처를 입거나 억압을 느끼는 경우보다 재미있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신소제도란 인민들이 뭔가 문제가 있어서 건의하거나 제기할 것이 있다면 당국에 신소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보통 신소를 받으면 그 구역의 책임자, 공장이라면 지배인, 이런 사람들이 혁명화 당한다. 간부들이 노동현장에 가서 노동을 하면서 평범한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지 못했던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혁신하는 것이다.
김련희 씨 아버지도 텔레비전 공장에서 당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하는 과정에서 한번 부족함이 있으셔서 혁명화 1년을 당하셨다고 한다. 그 처벌로 아버지께서 고기 잡는 바다로 가서 어부가 되셨는데 아버지는 “바다에 나가서 고급 물고기 먹고 너무 좋다”는 말씀도 하셨단다.
또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소개하는데, 음악 소조활동이 인상적이었다. 체육수업에는 수영시간이 꼭 있다고 한다.
이 책 한권으로 북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솔직히 우리와 생활모습이 너무 달라서 비교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높은 스펙을 쌓고도 청년실업에 시달리고 최저임금을 받으며 힘들게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국의 청년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는 김련희 씨 같은 일을 겪으면 목숨 걸고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한국 사람들에게 과연 조국은 살고 싶은 곳일까?
1945년 해방 이후에 남쪽은 친일세력이 정부를 세웠고, 북은 항일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북에서는 고난의 행군이라는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인민들의 힘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여 지켜가고 있고, 남에서는 자본주의 발전 속에서 거대한 부를 창출하면서도 노동자 민중들은 생존에 허덕이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도 계급투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친일세력이고, 이들이 우리의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인간을 머릿속에 있는 사상만으로 감옥에 집어넣을 수 있고, ‘좋다, 나쁘다’ 표현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파쇼악법과 폭력기구인 국가보안법과 국정원이 지금까지 버젓이 존재하는 것도 이 사회의 지배자들 때문이다.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김련희 씨를 억류하고, 수많은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만들어내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무시무시한 악마 같다. 체제경쟁을 위해서는 ‘탈북자’들이 국정원의 독방에서 죽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것이 한국정부가 말하는 인권이고 민주주의인가?
김련희 씨가 하루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우리가 북에 대해 어떠한 편견이나 왜곡 없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된 자유와 해방을 위해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폐지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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