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사] 3인의 공동정범: 전쟁광 트럼프와 군국주의자 아베, 그리고 전쟁 추종자 문재인

“늙다리”전쟁광, 제국주의 장사치 트럼프가 11월 7일 현재 한국을 방문 중이다. 11월 5일 한국 방문 직전에 도날드 트럼프와 아베신조 전쟁광 둘은 일본에서 만나 전쟁을 모의했다. 미제의 전쟁광 트럼프야 세상이 다 아는 전쟁광인데, 군국주의자 아베 역시도 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전쟁광이다.

아베 정권은 현재의 평화헌법 개정이 중의원·참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얻거나 국민투표에서 통과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헌법해석’ 변경으로 자위대가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려 한다.

아베는 2014년 7월 각료회의에서 ‘헌법 해석’을 변경해 “전쟁하는 국가”로 일본을 변모시키려 시도해 왔다. 또한 2017년 6월에는 일본판 국가보안법인 공모죄를 제정하여 “전쟁하는 국가”로 만들기 위한 국내적 민중억압책을 완비했다. 아베는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나서 다시 “전쟁하는 국가”로의 책동을 본격화 하고 있다.

서경식 도쿄 경제대 교수는 퇴진 위기에 내몰렸던 아베가 정치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된 배경과 그것이 일본 사회 내에서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악천후로 인한 낮은 투표율과 소선거구 제도의 결함 등의 영향도 있지만, 요컨대 결과적으로 다수의 일본 국민이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모리·가케 의혹’(학교법인 모리토모학원 부지 취득 경위 및 학교법인 가케학원 수의학부 신설에 아베 신조 총리가 관여했다는 의혹 사건)이나 ‘아베노믹스 비판’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북조선 위협’을 계속 외쳐온 아베 정권의 전략이 주효했다. 그 결과 일본 정계에 ‘리버럴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즉 ‘전체주의’ 상태다. ‘리버럴파의 퇴락’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일본 사회는 여기서 다시 일어나 민주주의를 재구축할 수 있을까? 전쟁과 파시즘의 위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맨 먼저 희생당하는 건 재일 조선인 등 소수자(‘내부의 타자’)다. 하지만 결국 ‘국민’ 다수도 희생을 면치 못할 것이다. ‘리버럴파의 퇴락’이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 향후 몇 년간 일본 정치는 ‘북조선의 위협’ ‘도쿄올림픽’ ‘천황의 양위’라는 토픽들을 중심으로 움직여 갈 것이다. 이들 ‘정치적 자원’을 여당과 지배층이 자기 권익 확장을 위해 철저히 이용해 먹을 것이다. 이의를 제기하면 ‘비국민’ 취급을 당하고 ‘배제’당하게 될 것이다. 필요할 경우 ‘공모죄’ 등을 활용해 탄압도 하겠지만, 폭력적으로 배제하기 이전에 국민 다수는 (리버럴파를 포함해서) ‘자숙’하고 ‘미루어 헤아려’서 자발적 예속을 점점 더 심화시켜 갈 것이다. 전체주의의 완성 형태로 가는 것이다([서경식 칼럼] ‘민주주의’의 폐허, 그 대량소비의 끝, 한겨레신문, 2017-11-02).

일본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와 봉건 정치체제의 잔재인 ‘천황제’가 기묘하게 동거하는 사회다. 일본 지배계급은 노동자와 인민 투쟁을 억압·통제하는데 성공하며 극우 파시즘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권과 한국 지배계급이 전통적으로 반공주의, 최근에는 종북몰이로 지배권력을 유지·강화했듯이, 일본에서도 역시 ‘북조선의 위협’, 특히 북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를 핑계로 삼아 일본 사회 내부의 저항을 봉쇄하고 지배계급의 권력을 강력하게 재생산해 왔다. 여기에 더해 ‘도쿄올림픽’과 ‘천왕의 양위’ 문제로 일본 내부의 국가적 단결을 구축하여 애국주의, 국가주의를 더욱 굳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본 지배계급은 앞으로도 자신들 머리 위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아 넘기는 적국인 ‘깡패국가’ 조선을 악마화 함으로써 일본 사회의 소수자이자 이방인인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합리화 하고, 일본 국민 다수를 자발적으로 복속시키려 할 것이다. ‘공모죄’는 일본 노동자 민중을 탄압하는 지배계급의 무기이지만, 극소수 투쟁하는 인민을 제외하고 그 공모죄를 적용할 대상 자체가 사실상 절멸된 보수적 일본 사회에서 국민 대다수는 자발적으로 권력과 자본에 머리를 조아리게 될 것이다. 물론 일본 인민은 아베 퇴진 투쟁을 다시 촉발시키면서 무기력을 떨쳐내고 역동성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일본 사회를 “전쟁하는 국가”로 변신시키고 일본 노동자 인민의 저항을 가로막는 배후에는 패전 이후에 일본에 진주하며 일본에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미제국주의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아베 신조는 이번 양국 정상 만남에서 “도널드와 신조, 동맹을 더욱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그 역사적 동맹국으로서의 관계를 금색 자수가 들어간 흰 모자에 새겨 나눠 썼다.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일본에 들려 그 반동적 동맹을 확인한 트럼프는 이어서 한국을 방문해서도 또 다시 그 동맹을 더욱 굳건하게 할 것이다. 이는 반북 신성동맹인 한미일 동맹을 굳건하게 하여 북을 고립말살하고 전쟁책동을 자행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경찰 차벽으로 자국민을 포위한 채 트럼프를 황제로 맞이하며 그 자의 전쟁책동에 동참하고 있다.

황제 트럼프는 한껏 거드름을 피며 “한국이 미국 무기 구입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일 것”이라며 숨김없이 한국 방문 의도를 밝히고 있다. 미제국주의는 자국 군산복합체의 무기구매를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위기를 고조시킴으로써 미국 독점자본의 전략적 이해를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파괴는 미제국주의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한다. 전쟁과 파괴를 필연적 본성으로 하는 미제국주의는 노동자 민중의 철천지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번 트럼프의 방문은 전쟁광 트럼프, 군국주의자 아베, 전쟁 추종자 문재인 3인은 전쟁을 모의, 집행하는 공동정범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가 방한하는 시기에 맞춰 발행되는 이번 <노동자정치신문>에는 최근 몇 달 동안 치열하게 써온 기사들을 담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설쳐대는 변절자 무리들을 청산하자!”라는 기사는 현대자동차 전 위원장인 이상범이 노동자를 배신한 변절자로써 현대차 자본에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되는지를 폭로했다. 그런데 이 기사는 이상범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주대환, 문성현 등 변절자들이 어떻게 자본과 권력에 의해 소비되는지를 같이 다루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대표적인 변절자는 문성현이다. 문재인 정권은 노동운동가 출신 문성현을 장관급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으로 앉혀 놓고 “사회적 대화”로 손짓하며 노동운동의 자주성을 말살하고 이를 통해 자본의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

민주노총 선거가 본격적으로 개시되고 있는데 그중 핵심 쟁점은 문재인 정권의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에 어떻게 대처하며 노동자의 자주성을 지켜내고 노동기본권을 강화하느냐이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내부의 현지인 변절자들을 내세워 지배권력을 강화했듯이, 자본과 권력도 운동 내부의 변절자들을 내세워서 운동을 분열시켜 지배를 강화하려 한다. 자주성과 투쟁성을 지켜내는 것, 그 힘의 원천인 노동자의 혁명적 사상성을 굳건히 하는 것이 우리 앞에 주어진 엄중한 과제이다.

이번 신문에는 현장기고가 어느 때보다도 많다.

우리는 2017년 10월 21일 ‘비정규직 투쟁 20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강원도 원주 중부지역일반노조 정인탁 동지가 이날 토론회에 제출된 발제문을 수정 보완하여 보내주셨다.

전 사회적인 비정규직의 양적 확대와 더불어 비정규직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정규직노동자들이 자연감원, 정리해고, 폐업, 구조조정 등으로 감소되면서 그 자리는 아예 소멸하거나 더 적은 수의 기간제, 무기계약직, 하청, 용역, 도급 등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진다 … 이렇게 형성된 노동자계급 내의 이질감, 상이한 이해관계는 계급적 단결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안정한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고 더 추락하지 않기 위해 자본에게 ‘굴종’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늘날 비정규직의 존재 형태와 이를 통해 나타나는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미래,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 계급이 나아갈 전망은 무엇인가? 직접 확인하고 그 전망에 동의한다면 같이 싸워나가자.

허유진 동지가 현재 한국에 강제 억류되어 있는 ‘조선 공민’인 김련희 씨의 저서《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를 읽은 소감을 보내왔다. 김련희 씨의 저서를 직접 읽어보면 그녀가 어떻게 한국에 강제 억류 되었고, 그녀에게 사회주의 체제인 조국은 어떤 존재이며, 왜 자신의 조국으로 돌려보내달라는 투쟁을 하게 됐는지 상세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서평으로도 김련희 씨의 삶과 요구가 처절하게 그려진다.

조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김련희 씨를 억류하고, 수많은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만들어내는 국정원과 국가보안법의 존재는 무시무시한 악마 같다. 체제경쟁을 위해서는 ‘탈북자’들이 국정원의 독방에서 죽어도 괜찮다는 것인가? 이것이 한국정부가 말하는 인권이고 민주주의인가?

김련희 씨가 하루 빨리 조국으로 돌아가고, 우리가 북에 대해 어떠한 편견이나 왜곡 없이 진실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참된 자유와 해방을 위해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폐지를 위해 함께 투쟁하자.

우리는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7년에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호도 발행하고 이와 관련한 토론회도 개최했다.

우리는 특별호 발행사에서 “쏘련 사회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앙드레 지드의 《소련 방문기》도 살펴보고 있다.”고 했는데 실제 글에서는 그 내용이 빠졌다. 그런데 앙드레 지드 글에는 스탈린 시대에 동성애를 억압하고 낙태를 불법화 했다는 것으로 쏘련을 비난하는 내용이 있다. 우리는 당시 쏘련에서 동성애와 낙태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룬 글을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 특별호에서 빠뜨렸던 부분은 이 번역글을 통해 채워질 것이라 본다.

위대한 10월 러시아 혁명은 양력으로는 지금 11월에 이뤄졌다. 지금 러시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과거 혁명 도시에서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리고 있다.

대다수 부르주아 계급은 러시아 혁명을 부정하지만, 소부르주아 진영에서는 러시아 혁명의 위대성을 차마 부정하지는 못하고 대신 혁명이 현실에서는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혁명을 회피하게 만들고 있다. 한겨레신문의 러시아혁명 특집 글들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혁명에는 딜레마가 있다. 대중은 권위주의의 혁파를 바라며 혁명을 일으키지만, 지도자들은 혁명이 생존하려면 권위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혁명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되살아나는 권위주의에 실망한 대중은 혁명에 등을 돌린다. 러시아혁명은 이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댔고, 그 궁극적 결과는 70년 뒤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였다. 딜레마는 필연이라며 변혁을 포기할지, 아니면 역사에서 딜레마를 비켜갈 지혜를 얻어 더 올바른 변혁을 시도할지는 세계와 인간을 보는 각자의 철학에 달려 있을 것이다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대중은 혁명을 일으켰지만 혁명은 딜레마를 낳았다”, 한겨레신문, 2017-11-05).

급진적 소부르주아 진영인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인식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는 이번 신문에서 “누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가? – 반권위 자치주의자들의 유행상품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글로 역사왜곡과 소부르주아적·무정부주의적 인식을 통해 혁명적 허무주의와 패배주의를 심어주고 있는 입장을 비판한바 있다. 그런데 우리는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글을 인용하여 비판하고 있는데, 한겨레는 우리의 비판의 대상인 엠마 골드만을 출연시켜 역으로 러시아 혁명을 비판하는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노동 인권을 높이려면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등 정부 기구에 참여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 정승일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정책연구소 소장은 … “경제민주주의 개념은 1920년 독일에서 처음 나왔는데, 당시 소비에트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며 “당시 독일 노동조합총연맹은 공산주의자들의 국유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했고, 동시에 노사 공동결정제 등 기업과 산업에서의 경제민주주의를 주창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한국도 1990년대 초 소련 현실사회주의 붕괴 후, 사회주의는 ‘구닥다리’ 취급을 받았으며, 노동운동은 대안 담론을 세우지 못한 채 경제민주주의 담론 또한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사회 공공성 운동의 핵심은 비자본주의적 관계를 만들자는 것인데, 사회주의 좌파는 패배했고, 사회주의 같은 큰 담론을 얘기하지 못했다”며 “복지하면 개량이라지만, 민주노총조차 복지 의제를 강조한다. 이제는 비전에 대한 실험을 북돋고 미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복지 의제로 (노동운동) 정체성과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김한주 기자, 노동계 일각 “사회적 대화로 복지국가 건설해야” 사회연대네트워크 토론회 “노사정위 참여, 노동회의소 도입” 주장, 참세상, 2017.10.31.).

사회연대네트워크는 대선 전에 문재인을 공식적으로 지지했고, 이들은 문재인 정권이 주장하는 노사정위원회 참가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 노선을 공공연하게 천명하며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을 이야기 하다 뜬금없이 이들의 주장을 소개하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을 텐데 이들의 이러한 사회적 합의주의 노선은 자본주의 내에서의 개혁노선으로 베른슈타인에서 카우츠키로 이어지는 반 소비에트 개량주의 노선에 그 역사성을 두고 있다. 과거 사회적 합의주의를 반대하는 주장에 대해 이들 개량주의자들이 “그럼 사회주의를 하자는 거냐?”라고 물었는데, 그들의 그러한 사회적 대타협 노선은 변절자적 기회주의 본성과 출세욕구 외에도 이러한 반쏘 반공의 유구한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혁명으로 만들어진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가 이들에게 “사회주의 좌파”의 패배를 선언하고 자본과 권력에 투항할 명분을 주었던 것이다.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이후 노동자들의 격렬한 반발이 있자 숨어들었던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이 이제 문재인 정권으로 권력이 교체되자 다시금 그것이 마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듯이 가장하며 준동하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 계급의 자주성을 권력에 통째로 넘겨주려고 하고 있다.

혁명적 목표를 상실한 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사회적 대타협 노선밖에 없는데, 그것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권력과 자본에게 넘겨주는 반노동자적 배신행위를 또 다시 저지르는 것이다.

2017년은 이미 여러 차례 말했듯, 러시아혁명 100주년이자 한국에서는 7, 8, 9월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노동자대투쟁의 분출을 통해 절정에 달했던 한국노동계급운동은 왜 하루아침에 급격하게 추락하고 오늘날에는 자본, 권력과의 협조를 주장하는 반노동자적 투항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게 될 정도로 타락했는가?

혁명적 전망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을 기념하고 노동해방의 염원을 안고 분출했던 한국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감격적 역사를 돌아보며 2017년을 잘 마무리하자. 맑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2018년을 혁명적 전망을 가지는 노동운동의 새로운 원년으로 만들어가자. <노/정/협>

이 기사를 총 301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답글 남기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