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파시즘을 가르치는가?

– 동국대학교 맑스철학연구회 김도균

레닌은 『학생』지에 기고한 <<혁명적 청년의 임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학생은 전사회의 계급적 이해와 정치적 그룹화의 발전을 반영하고 표현한다.”

이 말은 사회 상태가 청년들에게 반영된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학생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사회 상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파시즘의 대격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이른바 “알트-라이트”라고 불리는 극우주의자들이 준동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극우주의자들의 세기말적 준동은 지금 대학사회 내부 깊은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월 4일 전체학생대표자대회 회의장(이하 전학대회)에서의 폭로였다. 전학대회가 있기 바로 전날, 동국대 내의 학생자치언론인 <동국교지>는 자신들의 페이스북페이지를 통해 총학생회장의 특혜장학 의혹을 폭로했다. 현재의 총학생회장이 학교 측으로부터 특혜성 장학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글이 발표된 직후 학생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모두가 암암리에 알고 있던 총학과 학교의 커넥션이 드러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동국교지>의 의혹성 보도가 나간 직후 개최된 하반기 전학대회가 의혹에 대한 진실공방으로 이어질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총학생회장이 <동국교지>와 <사회변혁노동자당>의 커넥션을 주장하며 <사회변혁노동자당> 동국대학교 분회의 회의록을 전학대회장에서 배포한 것이다.

총학생회장은 자신이 배포한 회의록을 근거로 <사회변혁노동자당>이 학생사회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으며 총장퇴진투쟁을 주도하던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이하 미동추)와 미상의 “학내 자치언론”이 변혁당에게 배후 조종당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 미상의 “학내 자치언론”으로는 자신들에게 의혹을 제기한 <동국교지>를 지목했다. 총학생회장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회의장에 모여 있던 수많은 학생들과 학생대표자들은 외부세력에 의해 자신들이 휘둘려진 것이 아니냐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동국교지>는 그 ‘순수성’을 의심받았다. 총학생회장에 대한 ‘어용’논란은 어느 ‘불온정당’의 학생사회 개입 논란에 뒤덮여버렸다.

전학대회가 끝난 이후, 학생사회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현재 한국의 학생사회가 어디까지 타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학생들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어떻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 학생사회 내부에 침투할 수 있냐며 자신들이 얼마나 투철한 반공투사인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사회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성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사회주의가 옳냐 그르냐’하는 소모적인 논쟁들 속에 고통 받아야 했다.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던 총여학생회는 졸지에 ‘운동권’으로 낙인 찍혀 남학생들의 ‘쇼비니즘적’ 공격 대상이 되기도 했다. 총학생회장에 대한 의혹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더라도 <동국교지>와 변혁당의 연관관계는 총학생회장의 어용시비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문제이며,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없는 사안이었다. 언론이 특정 당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될지언정 진상규명과 존폐의 문제로 거론된다는 것이 21세기에, 그것도 대학사회에서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과거 학생운동이 학생사회의 지배적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을 때에도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었을까? 87년 항쟁 전후 학생사회에서 터져 나온 민주화와 진보적 사회에 대한 열망은 학생사회 내에 수많은 당파들을 탄생시켰다. 각각의 그룹들은 조국통일과 노동해방의 문제 등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 되었던 담론에 도전하였고, 대학은 진보와 저항의 보루역할을 하였다. 학생이 자신의 노선을 선택하고 그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오늘날, 대학은 더 이상 진보적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파시즘은 더욱 고도화되어 많은 학생들에게 내면화되었다. 소부르주아화, 자유주의화 되어 계급성과 당파성을 기각한 과거의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파시즘을 막아낼 수 없었으며 이는 대학사회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 <사회변혁노동자당>과 <동국교지>가 동국대학교 사태의 모든 짐을 떠안고 외롭게 투쟁하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싸움을 방관하고 있을 수 없다. 이 문제를 일군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지금 동국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우리 사회 전체의 암울한 단면이고 이 시대가 직면한 문제이다.

우리는 동국대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본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연대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 얼마 전 <동국교지>의 기사에 따르면 학교는 그 무슨 ‘하모니’를 강조하면서 총학생회장을 비롯한 남학생들에게만 장학의 특혜를 주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총학생회장과 학교 사이의 더러운 커넥션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더 이상 총학생회장이 자신의 더러움을 덮기 위해 아무런 관련도 없는 학생운동을 이용하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또한 운동 세력은 이럴 때일수록 위축되지 말고 자신들의 사업을 사수해야 한다. 전학대대에서의 폭로전 이후로 학내에서 활동하던 많은 진보적 학생들은 커다란 좌절감을 맛보아야 했다. 서로를 운동권이라며 헐뜯는 학생사회의 험악한 분위기 속에 자신들의 실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제기되는 부당하고 소모적인 논쟁들은 우리가 상대해줄 필요조차 없는 것들이다. 오히려 우리가 진짜 싸워야할 것은 성주에, 팽목항에, 탄압과 억압이 있는 곳에 있다. 지치고 힘들더라도 투쟁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나의 실천이 옳음을 증명해야 한다. 현재 열심히 투쟁하고 있으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을 동국대학교의 진보적인 학생들에게 맑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힘내자.

“나는 과학적 비판에 근거한 의견이라면 무엇이든 환영한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양보한 일이 없는 이른바 여론이라는 편견에 대해서는 저 위대한 플로렌스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이 항상 변함없이 나의 좌우명이다.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칼 맑스, 자본론 1권 서문) /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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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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