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비정규운동에 대한 평가

천연옥 민주노총 부산본부 비정규위원장

* 이 글은 2017년 9월 6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87′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토론회 <노동세계의 변화와 민주노조운동의 미래> 제2부 토론회 민주노조운동 30주년: 현재와 미래에 제출된 문서입니다.

87년 6월 항쟁과 뒤이은 7·8·9 노동자대투쟁은 한국의 자본이 그동안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일방적으로 진행해오던 가혹한 착취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통해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였고, 80년대 후반의 경제호황은 대기업에서부터 자본의 부분적 양보를 가능하게 하였다.

노동자들은 전노협을 거쳐 민주노총을 결성하여 전국적이고 단일한 노동자계급의 대중조직을 만들었다. 87년 이후 10년의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특별히 등장하지 않았다. 성장한 노동자들의 힘에 눌려 이윤을 양보해야 했던 자본은 한편으로 신경영전략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을 무력화하기 위한 갖은 방법을 강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88년부터 산업연수생이란 이름으로 이주노동자를 도입하여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착취하기 시작하였다.

97년 외환위기가 덮치고 IMF구제금융이 실시되면서 자본의 위기는 노동자·민중에게 전가되었다. 구제금융의 댓가로 공공부문 사유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도입되었다. 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법이 도입되면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동전의 양면처럼 번져갔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반대투쟁,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세력화, 통합연맹과 산별노조 전환,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99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시작된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은 2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1999년이 되면서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되고 말았다. 2000년에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대표적으로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분출하였는데 90개의 비정규직 노조가 결성되었다.

특히 전노협 정신을 계승하고 중소․영세․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틀로서 활동가들에 의해 운동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지역노조인 부산일반노조가 4월 1일 출범하였다. 민주노총도 미조직특별위원회를 설치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조직 비정규사업을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2000년 12월 13일에서 2002년 5월 13일까지 517일간 진행된 도급전환에 반대한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도급전환, 고용보장을 받아들이면서 패배하였다. 한국통신계약직 노동자들의 장기투쟁은 한편으로는 수많은 연대단위들의 힘이었으나, 민주노총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조직과 투쟁에 공식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고, 이후 전략조직화 사업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가장 많은 역할을 한 단위는 2000년에 발족한 <파견․용역 노동자 노동권 쟁취와 간접고용 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였다. 여기에는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한 선진 활동가들이 모여 있었다. 2001년에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불안정 노동 철폐를 위한 전국연대 준비위원회>를 거쳐서 2002년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가 출범하였다. 철폐연대는 지금까지 수많은 비정규투쟁에 연대하면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은 민주노총이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였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화두로 떠오른 해였지만, 비정규직 운동사에서는 두 개의 의미 있는 지점이 있다. 민주노총이 50억 비정규기금을 결의하면서 1기 전략조직화사업을 본격화 했고, 10월 16일 출범 기자회견을 가지고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2년간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공식 출발했다. 지역과 업종, 산별을 떠나 투쟁하는 비정규직 단위가 모여 공동투쟁을 하는 전국적 구심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준비기간 중에 전비연은 비정규악법을 반대하고 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열린우리당사 점거농성, 국회 안 타워크레인 점거농성 등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민주노총의 공식적인 체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골간 조직체계와는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

2010년부터 시작된 민주노총 2기 전략조직화 사업(2010~2014)을 거쳐 3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200억 기금모금이 좌절되면서 2017년 3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의무금 150원 인상으로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진행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존의 3기 전략조직화 사업은 사실상 폐기되고 새로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초창기에 서울본부 직가입 노조였던 비정규노조들이 연맹으로 소속을 정리하면서 연맹별 조직과 투쟁이 강화되자 전비연의 역할도 점점 희미해졌다.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계기로 <비정규직없는 세상 네트워크>가 2010년 결성되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등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화물연대, 덤프연대, 학교비정규직, 사내하청, 지하철과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 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 등 연맹별, 업종별 대규모 조직화가 일정하게 성공하면서 현재 비정규직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가 17만에 이른다. 물론 노조 조직율은 3%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조직된 비정규노동자들의 숫자는 17만 명,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었다.

지난 20년, 이용석, 박일수, 염호석, 최근의 마사회 비정규직 박경근, 이현준 동지와 같은 열사들의 목숨값,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와 땀, 눈물과 한숨이 모여 만들어진 노동조합들이다. 그러나 이 노동조합들이 민주노조로서 올바르게 서 있는지,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2017년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를 위한 6·30 사회적 총파업”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파업대오를 형성했다. 그 중에서도 분홍색과 연두색으로 대비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오는 이제 민주노총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만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이 현실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20년에 이르는 민주노총의 비정규운동을 평가해 보면 현재의 문제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드러난다.

1. 대리주의와 시혜주의

초창기에 비정규 노동문제와 비정규노동자를 대하는 정규직 활동가들의 의식 속에는 정규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더욱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불쌍하니까 도와주자”라는 시혜주의, “불쌍하니까 대신 싸워주자”라는 대리주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과 투쟁의 주체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비정규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80년대 노동조합을 만든 노동자들처럼 교육하고 준비하고 주체를 세우고 간부를 꾸리는 과정이 되지 못했다. 어려운 교섭은 상근 간부가 도맡아 하고 현장은 동원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지침만 있고 평가와 토론은 없는 노조. 현재 많은 비정규노조들이 해결사 노조 비슷하게 되어가는 것도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합원이 주체가 되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가 되기 위해선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런 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비정규노조도 관료주의에 빠진다. 임금인상만 이야기하는 경제주의에도 빠진다. 단체협약에 조합원 교육시간을 반드시 넣고, 현행 노동법의 근무시간 배려를 활용해서 전체조합원 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비정규투쟁현장에서 성장한 비정규활동가를 양성해야 한다. 대리주의와 시혜주의는 그 한계가 명확하지만 주체가 제 발로 서기 전에 정규직 선진 활동가들의 헌신적 연대의 한 표현이기도 했다. 그들의 헌신적 연대를 일방적으로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2. 성과주의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 사업을 둘러싸고 여러 평가와 토론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논리가 ‘그렇게 돈을 썼는데 몇 명 조직했냐’라는 것이다. 특히 가장 비판적으로 평가되는 지점이 금속노조의 공단조직화 사업인데, 중소영세사업장이 밀집해 있는 공단지역에서 무료노동 반대, 근로기준법 지키기, 건강권 확보 등 여러 사업이 꾸준히 진행되었으나 대규모로 조직화되기는커녕 소규모 조직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어떤 공단의 경우에는 기존의 민주노총 사업장마저 사라지기조차 한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처해있는 객관적 상황이 얼마나 노동조합을 하기가 힘든 상황인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성과가 없었다고 그동안의 공단조직화 사업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공단조직화 사업에는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많은 연대단체들이 참여해서 재능을 기부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학교비정규직, 마트노동자, 지자체 비정규직 등 대규모 조직화에 성공한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공단사업, 이주노동자 사업, 일반노조 운동 등은 민주노총 내의 저성과자로 인식되고 있다. 왜 열심히 하는데 조직이 안 되냐 하고 묻는다.

3. 연맹별, 산별중심의 사고

조직화가 연맹별, 산별로 진행되다 보니 투쟁도 판단도 모두 연맹별, 산별 중심으로 흘러간다. 많은 비정규 투쟁단위들은 민주노총이 미조직비정규사업을 묶어서 진행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한다.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은 전략조직화 사업으로 민주노총이 사업단을 꾸리고 재정을 투여하고 회의를 하고 사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데 반하여, 조직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은 각 연맹과 산별이 알아서 진행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여 민주노총의 미조직비정규사업단위는 미조직사업단위라는 것이다.

지난 3월 17일 6․30 사회적 총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 열린 <전국 비정규사업장 대표자․간부 수련회>에 참여한 비정규노조 간부들은 이렇게 모인 것이 최초라며 감격스러워 했고, 기회를 잡아 공동투쟁을 논의하려는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사실 조직과 투쟁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먼저 조직된 단위가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남김으로써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는 더욱 성과가 있다는 것이 기본이다. 현재 투쟁하는 비정규단위들은 예전에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했던 역할을 민주노총이 해주길 바란다.

최근의 어느 활동가들의 집담회 자료를 보니 민주노총이 비정규투쟁위원회 혹은 비정규투쟁본부 같은 것을 골간 조직체계안에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연맹별 산별 중심의 사고에 젖어있는 간부들은 비정규 단위들의 소통과 연대의 강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과 연대를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한가?

4.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비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

“상대적 과잉인구 중 정체적 과잉인구 : 그 취업이 매우 불규칙적인 현역 노동자집단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자본에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무진장한 저수지를 제공한다. 그들의 생활형편은 노동자계급의 정상적인 평균수준 이하로 떨어지며 , 바로 이 사실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특수부문들을 위한 광범한 토대로 된다. 그들의 특징은 최대한도의 노동시간과 최소한도의 임금이다”(맑스, 자본 1권 비봉출판사, 김수행 역, 877쪽)

1860년대 맑스가 쓴 자본론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 과잉인구는 자본주의 인구법칙이고 자본주의 생산의 일반법칙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존재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존재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제한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여 전체 자본가계급의 착취의 강화에 기여한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동전의 양면이다. 비정규직의 확대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압박을 강화한다. 너도 비정규직 되고 싶어? 라는 항상적인 불안.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우월감을 갖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자본이 만들어 놓은 분할 장치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므로 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심어놓은 우월감에 도취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드라마 <미생>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하고 괴롭히는 것은 자본가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이다. 그리고 자본의 나팔수 언론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인상 요구나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 투쟁 등을 귀족노조의 집단이기주의로 매도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가보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더욱 싫어한다.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능력 없고 게으르고 한심한 인간들이라서 차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총이 비정규투쟁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정규직과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연맹별, 산별이 부딪치면서 이제 조직이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간 분열과 대립도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무엇을 했느냐 이다.

민주노총은 1기 전략조직화 사업을 논의할 때부터 조직문화 혁신사업을 함께 이야기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자 계급의식으로 무장시켜 미조직 비정규직을 조직하게 한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으나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2000년 총연맹에 미조직특위가 설치되었으나 16개 가맹연맹, 16개 지역본부에 미조직특위가 다 설치되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위원회가 설치되어도 위원장을 맡아줄 담당자를 구할 수 없고, 기존의 조직 관리와 임․단협을 진행하기에도 부족한 상근역량에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전담할 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그러한 인력을 배치하기 위한 재정을 마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그런 활동가를 겨우 배치했더라도 총연맹, 각 산별연맹, 지역본부 등은 임원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임원이 당선될 때마다 새로운 사업계획이 수립되고 새로운 담당자가 배치되고 모든 일은 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일이 무수히 반복되었다.

또한 조합원의 계급의식의 향상,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정신으로 정규직, 비정규직 계급적 단결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교육담당자가 미조직비정규사업에 대한 마인드가 있든지, 미조직비정규사업 담당자가 교육 마인드가 있든지 해야 하는데, 민주노총의 상근 활동가들도 각기 자기가 맡은 기본 역할만 해내기에도 급급한 실정이었다.

2000년 이후 17년이 흐른 지금 민주노총의 16개 가맹 산별, 16개 산하 지역본부에 미조직․비정규 사업단위와 담당자가 대부분 존재하고, 모두 미조직 비정규직을 조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소송을 중심으로 한 10여년의 투쟁은 조합원의 신규채용 방식의 정규직화냐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냐라는 쟁점을 중심으로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간의 갈등이 점점 커져서 최근의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의 비정규직 노동자 축출사태로 이어졌다.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현재 민주노총의 한 모습이다. 또한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관련하여 전교조가 지난 8월 23일 중집에서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 교원의 일괄적이고 즉각적인 정규직 전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조직대상의 중복에 의한 조직간 갈등은 현재의 연맹, 산별구조에서 답이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조직끼리 빨리 뭉쳐야 된다. 일반노협과 민주연합노조의 통합연맹에 찬성한 이유이기도 하다. 대산별로 전환이 빨리 이루어지면 어떨까?

5. 계급의식의 부족

민주노조와 어용노조를 구별 짓는 민주노조의 여러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변혁(지향)성이다. 전노협의 기본 구호는 ‘노동해방’이었다. 노동해방은 민주노조가 임금인상을 통하여 단순히 임금제도라는 착취의 조건을 완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제도 자체를 철폐해야 함을 의미한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과 높은 임금을 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경제주의와 조합주의에 물들어 있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자본이 심어준 우월감에 젖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당연시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가?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과연 전체 노동자 계급운동의 관점에서 진행되어 왔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정규직 전환이다. 정규직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나면 그 노조는 활동이 정지된다.

한 예로 2003년 10월 비정규노동자대회에서 분신한 이용석 열사의 목숨 값으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들은 정규직이 되었고, 근로복지공단의 정규직 노조인 한국노총 조합원이 되었다. 그리고 2017년 근로복지공단에는 그 때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이 생겼다고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되거나 업체 자체가 폐업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바로 해고되고 장기투쟁을 진행하게 된다. 이때 대부분 투쟁의 성격은 생존권 사수 투쟁이다. 이 과정에서 뼈저린 각성에 도달한 활동가가 성장하는 것은 극소수이고, 대부분 복직이 되면 운동판을 떠난다.

비정규운동을 전체 노동자계급 운동의 일부로서 규정했을 때 비로소 비정규운동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올바른 계급적 태도를 결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10여년의 불법파견 투쟁은 소수의 당사자, 조합원의 선별적 정규직화가 아니라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가 정답이다. 제조업에서 사내하청을 통해 이윤을 확대하고 착취를 강화한 제조업 자본에 타격을 가하고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전체적인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열된 제조업 현장을 통일시키는 것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아차 비정규직 운동은 대공업 사내하청 투쟁의 역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노동조합 존립 자체가 힘들었던 시기에 정규직 선진활동가들의 연대와 소수의 비정규직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중파업을 통해 전체 공장을 멈추게 했다. 대공장 사내하청 투쟁이 불견파견 소송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동안에도 기아차 비정규직은 업체투쟁과 원청사용자의 사용자성 인정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연맹별, 산별로 조직되고 투쟁하는 비정규단위들이 전체 운동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개별사업장에서 손쉬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최근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경희대, 자회사 설립해 청소노동자 전원 첫 정규직 전환 140명 70세까지 정년 보장받아” (연합뉴스, 2017.7.26.)

“SK브로드밴드, 대리점 5,200명 정규직 전환”(인터넷뉴스 조선닷컴, 2017.5.22.)

“SKB비정규직, 자회사형 정규직 전환 ‘찬성’”(매일노동뉴스, 2017.6.2.)

경희대 청소용역노동자와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에 노동조합이 합의하였고, 언론들은 이것이 정규직 전환의 모범사례로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구호는 “진짜 사장이 나와라!” 였다. 자회사는 또 다른 간접고용의 한 형태일 뿐이다.

이는 2012년부터 서울시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자회사를 통한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운동사회 내부에 이미 많은 평가가 있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하는 정세 속에서 또 다시 자회사 대세론이 퍼지고 있음은 심각한 일이다. 수많은 대학 청소용역 노동자들, 수많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자회사가 모범사례로 둔갑하고 있다.

2012년 다산콜센터에 노동조합이 생기고, 2013년, 2014년 두 차례 파업투쟁 이후 위탁업체들과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2014년 12월 28일 서울시는 다산콜센터의 재단화를 통해 2016년부터 직접운영 하겠다고 발표했다. 2017년 5월 1일 다산콜센터 재단이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9월 10일 급여가 어떻게 책정되는지, 얼마가 나올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재단은 노조가 제시한 보수설계안을 가지고 서울시를 설득해야 한다고 한다. 위탁업체가 재단으로 바뀐 것 말고 달라진 것이 없다. 부산교통공사도 1,000여 명에 이르는 부산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자회사를 만들겠다고 한다. 선례가 있으니 망설일 게 없을 것이다. 그러니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워야 할 비정규단위의 험난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개별사업장의 결론이 아니라 전체 비정규운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아쉽다.

6. 최저임금투쟁에 대하여

1894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도입된 이후 현재 150여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최저임금제도는 개별사업장에서 노․사간의 힘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임금을 국가가 개입하여 일정한 수준을 보장해 주는 제도이다. 모든 노동관계법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일반화 된 이후 최저임금법 또한 노동과 자본의 계급투쟁의 결과이면서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선택이다. 초창기에는 최저임금법이 아니라 최고임금법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도 헌법 32조에 최저임금제를 언급했으나 그 현실적 제정은 1986년에서야 가능했고, 시행은 1988년 1월부터 이루어졌다. 80년대 노동운동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1988년 출발한 최저임금은 10인 이상 제조업에 적용하여 시급이 1군은 462.5원, 2군이 487.5원에 불과하였으나, 1989년에는 29.7% 인상한 600원이 되었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투쟁은 2000년대 초기에 지하철과 대학 등에서 청소용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면서 투쟁의 주체가 형성되었고, 매년 6월 말 최저임금 위원회 앞에서 다음 해 최저임금이 결정될 때까지 집회와 농성을 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민주노총은 99년 합법노총이 되면서 2000년부터 최저임금 심의위원회에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2015년 한상균 집행부는 2013년부터 알바노조가 주장했던 ‘최저임금 1만원’을 민주노총의 공식 요구로 설정하고, 최저임금투쟁을 국민임투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017년 촛불항쟁이후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할 권리를 위한 6․30 사회적 총파업”울 조직하기 위해서 전국비정규사업장 대표자․간부수련회를 개최하고, 만원행동을 통해 광범위한 연대틀을 만들었다.

‘민주노총’ 하면 ‘최저임금 1만원’ 하고 대중이 반응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16개 지역본부에서 상반기에 차별철폐대행진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최저임금 1만원은 만병통치약이 되기도 하였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등. 최저임금 1만원이 되면 행복한 삶이 될 거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2017년 최저임금 투쟁은 수많은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에게 민주노총을 알리고 그 위상을 높이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최저임금 결정과정에서 최저임금 위원회에 참여한 민주노총 노동자위원들이 딱 문재인의 대선 공약만큼의 수정안을 냈고, 그것으로 결정됨으로써 지난 몇 년간의 민주노총의 투쟁의 성과가 문재인의 성과로 둔갑하고 말았다. 결론은 똑 같을 지라도 최저임금 1만원을 걸고 총파업을 하고 만원행동을 통해 연대한 민주노총이 꼭 수정안을 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7.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하여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가장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단기체류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도 없이 고용허가제로 저임금과 장시간노동에 방치되어 있다. 민주노총은 3기 전략조직화 사업의 5개 영역의 하나로 이주노동자 사업을 선정해서 집행하고 있다. 경기이주공대위, 부산울산경남이주공대위,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등과 같은 이주사업을 하는 단위들의 연대체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월 1회의 총연맹 이주사업담당자 회의를 통해 토론과 의결, 집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16개 지역본부에서 이 회의에 참여하는 본부의 숫자가 너무나 빈약하다. 이주사업은 늘 다른 사업에 밀리고 있다. 그런데도 전략조직화 사업이다.

이주사업과 관련해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2016년 11월 25일 전북지역 건설현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이 진행되어 5명의 이주노동자가 강제출국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북지역 건설노조는 단속추방을 행정기관에 촉구하고 적극적으로 조력하였다.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민주노조에 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배척은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나올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민주노총의 이주사업담당자들은 건설노조·연맹과 간담회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2017년 1월 22일, 건설노조 경기남부 타워크레인지부는 동탄2신도시 건설현장에서 ‘불법 외국인 체류자 근절 및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이란 이름으로 건설현장의 모든 정문을 봉쇄하고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현장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지하였다.

이러한 이주노동자 배척활동은 1월 22일 새벽부터 진행되다가 민주노총과 연대단체 등 건설노조 안팎의 비판과 문제제기로 3일 만에 중단되었다. 이주노조와 성서공단노조를 비롯한 지역의 공대위들이 성명서를 냈고, 서명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2월 2일 건설연맹과 민주노총은 간담회를 통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건설연맹, 건설노조의 입장을 확인하였다. 건설노조는 현재 1,500여명의 이주노동자 조합원이 있고 계속 가입을 조직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를 배척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에 발생한 일부 지역 조직들의 문제는 건설노조 밖의 문제제기에 충분히 공감하고 내부토론을 통해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진행 중에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돌발적인 상황이지 결코 건설노조가 방침이나 입장으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총연맹은 “외국인력 불법고용 근절”이란 요구의 내용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칼날이 아니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그렇게 읽힐 수 있는 표현임을 설명했다. 건설현장의 불법다단계 관행은 무권리 상태에 처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활용하고 있는 건설자본의 문제이다. 이주노동자, 정주노동자 단결로 건설자본과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원칙인데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

한국의 이주노동정책은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아 미등록을 양산하고 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강제단속과 추방은 폭력단속과 이주노동자의 부상으로 연결된다. 결국 한국의 법 제도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 늘 벌어진다. 근본적인 법 제도의 개선이 없이는 이런 일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발생될 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법무부 공무원의 태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여름휴가를 코앞에 두고 지난 7월 26일 울산출입국사무소 앞에서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를 진행하게 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로 민주노총의 5개 지역본부가 공동으로 영남권 결의대회를 개최한 것은 커다란 전진이었다. 그리고 8월 20일 서울 보신각 앞에서 전국이주노동자결의대회가 빗속에서 개최되었다. 전국에서 천여 명이 모였다.

8. ‘정규직 양보론’에 대하여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사람들은 정규직이 양보하면 비정규직 임금이 올라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초창기에 자본가들을 위해 일하는 변호론적 경제학자들은 임금기금설이란 것을 주장했는데, 임금의 전체 크기는 한정되어 있어 누군가가 임금이 인상되면 누군가는 임금이 저하된다는 논리로 임금인상운동이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도 소위 진보적인 학자들에 의해 유포되는 사회연대임금론 이란 것이 있다. 정규직 임금을 낮추어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자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정규직 양보론’이다.

문재인 정권이 7월 20일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계획에는 ‘정규직의 연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일부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노조들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망하는 길이다. 이것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정규직)노동과 (비정규직)노동의 대립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실 민주노총이 해마다 발표하는 표준생계비에 의하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잔업, 야근, 특근을 통해 더 많은 임금을 받는다. 정규직 노동자는 정말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하여 양보가 아니라 연대를 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너무 많고 국민연금은 너무 적으니 모든 연금을 통합해서 공무원연금은 낮추고 국민연금은 올리자고 한다. 이것을 비정규직 노동자가 수용하는 순간, 국민연금 제도개선과 복지의 확대를 요구하면서 정부와 싸워야 할 노동자들이 노노대립으로 내몰리게 된다. 노동자를 분할해서 효과적으로 지배하려는 것은 문재인 정권도 앞의 정권들과 본질적으로 똑 같다.

지난 6․30총파업을 보도하는 일부 언론들은 이번 파업이 이전의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의 이기적 파업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최저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의 역사 25년 동안 언제 정규직 노동귀족의 이기적 총파업이 있었단 말인가? 우리는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하나를 부정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된다. 노동해방은 정규직․비정규직, 이주․정주, 남성․여성, 대기업․중소영세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의 단결된 힘에 의해서만 쟁취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노동자는 하나다.

* * *

민주노총의 비정규운동은 전체 노동운동의 비정규운동과 분리해서 평가할 수 없다. 한국의 비정규운동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이 만들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조직된 다수는 정규직이지만 노동자계급의 전투성과 변혁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면서 자본의 분할전략에 포섭되어 있다. 전체 노동자 계급운동의 관점에서 민주노총을 혁신해야 할 주체인 비정규직 운동은 성과주의에 매몰되어 서로 자기 조직의 확대에 연연하면서 변혁적인 정치사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21세기 한국 노동운동을 전투적으로 재편하고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현재의 비정규직 운동이 안고 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존재를 자신의 인구법칙으로 하는 자본주의라는 착취제도를 철폐하는 운동을 비정규운동의 과제로 받아 안는 87년 30주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414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답글 남기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