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이른바 ‘좌파’ 노선의 심대한 오류에 대하여

[이 글은 <레프트 대구> 9호 특집 길을 찾아서에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명의로 기고한 글이다.]

 

우리의 정치노선에 대해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는 노동자라면, 우리가 발행하는 <노동자정치신문>을 한번쯤 읽어본 동지들이라면, 왜 우리가 한국사회 좌파에 대해 ‘이른바’라는 전제를 붙였는지, ‘좌파’라는 간접 인용으로 묘사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좌파’ 노선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흔히 한국사회에서 ‘좌파’라고 하면 역사적으로는 NL(R)진영과 대비되는 PD(R)진영을 말한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좌파는 더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 좌파는 민중민주 ‘혁명’노선(일부 PTR노선을 포함하여)을 가진 특정한 정치세력을 통칭했다면, 최근에 좌파는 트로츠키주의 진영과 신좌파 노선 등 다양한 정치세력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PD진영이 가진 ‘일정한 역사적 한계’는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수십 년 동안의 파쇼적 억압과 변혁운동의 단절을 딛고 새롭게 출발했다는 점 때문에 비롯된 문제다. 이들은 전 세계 변혁운동과의 교류가 단절되고 고립된 상태에서 출발했다. 변혁운동 경험이 부족했다. 그 결과로 사상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점에서 우리가 현재 비판하는 이른바 ‘좌파’ 정치노선은 일정한 역사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변혁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던 PD진영과는 다르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좌파’는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를 전후해서 형성됐다. 쏘련 사회주의 해체 전후로 전통적인 PD파 다수는 청산주의 물결에 휩쓸렸다. 이들은 맑스주의 위기, 노동운동 위기 운운하며 변혁운동을 청산했다. 이로써 노동자 계급을 변혁의 중심에 두는 노동자 중심성을 버리고 부문운동으로 경도되기도 했다.

이들 중 일정하게 변혁노선을 견지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상당부분 트로츠키주의 입장을 수용하거나 깊게 영향을 받게 되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이들 중 대다수가 트로츠키주의 진영 중에서 가장 극악한 종파주의 세력인 토니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 노선을 수용했다.

 

유로꼬뮤니즘과 종북주의’, 이른바 좌파의 반쏘 반공주의의 기원

 

이른바 ‘좌파’세력의 일부는 신좌파처럼 개량주의 세력이고, 다른 일부는 여전히 명시적으로는 변혁노선을 견지하고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도 이들 노선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쏘 반북노선, 이것이 신좌파와 트로츠키주의 진영을 하나로 연결시켜주고 있는 고리다.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불신, 더 나아가 극단적 혐오는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인가? 물론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짓눌러온 반공주의, 최근에 와서는 종북주의 척결이라는 이데올로기, 물리적 공세가 이들에게 잠재돼 있는 반공 반북 의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 전반의 반북주의가 국가 폭력을 바탕으로 한 이데올로기 공세로 외부로부터 강요되고 주입된 것이었다면,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진보를 자처하고 있는 이른바 ‘좌파’들은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각종의 ‘진보적 현대 사상’이라는 수단을 통해 반공 반북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물론 이 수용이라는 것이 결코 주체적 수용이라고 할 수 없는데, 이러한 소부르주아 ‘진보적 현대 사상’이라는 것이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영향 하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제국주의의 직간접적인 물질적 후원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처럼 내면화된 반공의식은 자신들이 진보세력이라는 신념으로 무장돼 있기 때문에 교정되거나 치유되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이들이 진보 정치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반북 반공적 행위가 실제로 엄청난 폐해를 낳고 있다.

물론 이른바 ‘좌파’들 다수는 북에 대한 적개심과 혐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쿠바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북에 대한 지배계급의 반북반공 물리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비해 쿠바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정보 접근과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편견과 왜곡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 PD파에게 보이지 않던 반쏘주의는 이미 유럽을 기점으로 전 세계의 수정주의화된 공산주의 운동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었다. 반스탈린주의를 기치로 쏘련으로부터의 “자율과 독립”을 외치며 나타난 유로꼬뮤니즘의 반쏘비에트주의는 결국은 레닌주의와 맑스주의의 혁명적 원칙마저 던져버리게 되었다. 유로꼬뮤니즘의 쏘련으로부터의 “자율과 독립”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찬사를 보내고 여기에 경도되면서 결국은 제국주의 체제로의 “투항과 복종”으로 귀결되었다. 서유럽뿐만 아니라 국제 공산주의 운동 전반의 타락과 해체는 바로 유로꼬뮤니즘 노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유로꼬뮤니즘 노선은 여전히 사회주의 운동을 목표로 한다고 했지만, “사회주의로 가는 각국의 길”이라는 명목으로 의회를 통한 점진적인 이행노선을 취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자본주의 구조개혁 노선인 사민주의와 맞닿는 노선이다.(이에 대해서는 「유로꼬뮤니즘의 배반과 타락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움켜쥘 정치적 결론은 무엇인가?」, 『노동자의사상』, 2011년 제2호를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에서는 유로꼬뮤니즘 노선이 맑스레닌주의 변혁 원칙으로부터 일탈일 뿐만 아니라, 국제공산당 즉 코민테른 제7차 당대회에서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제시됐던 인민전선, 일명 「디미트로프 테제」가 유로꼬뮤니즘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인민전선을 자본과의 협조노선으로 매도하는 것은 중대하고 악의적인 역사왜곡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쏘련 사회주의 해체 직후 한국사회에서도 유로꼬뮤니즘의 반쏘주의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구체화하고자 하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상은 마르크스나 레닌이 구상하고 있던 것과는 상당부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70년에 걸쳐 소련에서 진행된 실험을 통해 과거에는 관념적으로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재평가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서유럽의 유러꼬뮤니즘 정당들이나 사회민주당의 투쟁과 집권 경험이 주는 경험이 주는 교훈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사회의 변혁 경로를 찾는데서 이러한 여러 가지 경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적절한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들입니다.(백태웅, 「새로운 사회주의 탐구는 세계사적 과제」, 『갇힌 자의 열린 사상』, 1995년)

한편 과학적 확신 역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안 체제의 지위를 점해 왔던 현실 사회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연쇄 붕괴 사태를 연출했고, 나아가 공개된 이면 정보를 종합한 결과 현실 사회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과거의 사회주의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부둥켜안고 있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 의한 민주주의냐 민중에 의한 민주주의냐를 두고 첨예하게 맞붙던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던 사회주의 제도와 정책의 세부 사항들이 이제 주요한 현안으로 다루어져야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검토를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개혁공산주의(동유럽), 유러꼬뮤니즘(서유럽), 사민주의가 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해 제기한 비판적 논점들을 빠짐없이 섭렵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입니다.(백태웅, 「사회주의는 과학인가 윤리인가」, 『갇힌 자의 열린 사상』, 1995년)

 

이들에게 “우리사회를 변혁 경로를 찾는데서 … 적절한 대안”은 “70년에 걸쳐 소련에서 진행될 실험”을 ‘재평가’라는 이름으로 전면 부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마르크스와 레닌이 구상하고 있던 것과는 상당부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구상하고 있던”, 즉 자본주의 철폐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노선을 통한 사적 소유 철폐와 집단적 소유와는 “상당부분 다”른 수정주의 노선을 전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동유럽의 개혁 공산주의, 즉 자본주의 시장체제에 투항하고 굴복한 시장사회주의 노선과 서유럽의 유로꼬뮤니즘, 더 나아가 사민주의 노선으로 경도되는 것이었다.

1989년 11월 12일 노동자대회에서 역사적 출범을 한 사노맹은 한국사회 변혁을 위해 “지옥훈련을 통해 무기징역과 사형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진짜 전위가 되고자 했”(백태웅, 「남한 사회주의자의 꿈」, 사노맹관련 구속자가족대책위 엮음, 1992년)다. 그리고 실제 안기부에 의해 조직이 침탈당하고 많은 혁명가들이 실제 극악한 고문을 버티며 투쟁을 계속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굴의 사노맹의 ‘전사’들은 감옥에서 쏘련 사회주의 해체라는 역사적 격변을 맞으면서 스스로 사상적 ‘전향’을 선언하며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극단적으로 고립되고 침체와 패배주의에 빠진 상태에서 이러한 감옥에서의 일련의 사상적 전향 흐름은 감옥 밖에서의 거대한 청산주의 물결의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

사노맹 뿐만 아니라 인민노련(인노련,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 출신 황광우 역시도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교조화를 토대로 한 스탈린주의와 일선을 긋는다”(황광우, 「다시 생각하는 사회주의」, 기획출판, 거름, 1993년)며 「민주주의와 함께 가는 사회주의」라는 명목으로 유로꼬뮤니즘 노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과거 인민노련의 주요 이론가였고 이후 진보정당추진위원회(진정추)를 거치면서 유로꼬뮤니즘 노선을 표방한 대표주자였던 주대환은 최근에는 그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사민주의를 노골적으로 설파하며 가장 극렬하게 종북주의 매카시즘에 앞장서 왔다. 최근 그는 「애국적 진보주의」를 기치로 반공반북 개량주의를 설파하고 있는 중이다.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에 「진보적 노동조합운동」을 내세워 전투적 노동운동을 공격해왔던 김형기(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역시 최근에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 이후 좁은 의미의 기존 진보는 파산했다”, “진보는 ‘애국’을 국가주의와 동일시하며 불편해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애국’을 포용해야 한다”, “북한 추종세력과 절연하고 북한 체제의 반인간성과 비민주성을 비판하며 인권억압에 대해 발언하는, 진보의 재생을 위한 새길을 모색해야 한다”(「“애국적 진보주의로 새길 열자”, “반애국적 수구 경계부터””」, 한겨레, 2015-03-31)며 주대환과 함께 「애국적 진보주의」 노선을 설파하고 있다.

3월 31일 「좋은정책포럼」 주최로 열린 ‘진보의 새로운 길을 찾아서-기획연속토론회’에서는 “종북주의와 선긋기,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은 정당하지만 애국주의를 섣불리 강조하는 것은 아직 진보진영이 시대착오에 빠져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같은 기사)며 극우인사인 홍진표 시대정신 상임이사도 발제했다. 뉴라이트 조직인 「시대정신」과 함께 진보의 새노선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실제 이들 ‘진보’인사들의 주장과 실천은 통합진보당 해체에 환영하고 종북 매카시즘 공세에 열을 올리는 극우 파쇼 진영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조승수 역시도 극악한 종북주의 매카시즘을 근거로 진보정당 운동의 우경화와 분열에 앞장섰다. 오늘날 정의당 심상정으로 대변되는 ‘진보 정치인’들의 행보도 진보를 표방하지만 이러한 반북주의 노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진보 논객’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진중권 역시 틈만 나면 반북 견해를 내세우고 있다. 손호철 교수와 더불어 최근에는 김세균 교수 역시도 「국민모임」에서 ‘종북주의 배제’를 기치로 반북 사민주의 국민정당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한겨레, 경향, 오마이 등의 소부르주아 언론과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반쏘 반북주의 경향이 팽배해 있다.

종북주의 용어의 창시자들이 바로 과거 사회당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좌파’세력이고, 종북 이데올로기를 무기로 ‘진보정당’ 내에서 당내 투쟁을 전개했던 세력들이 이들 ‘좌파’세력들 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아닌가?

이들 모두를 ‘좌파’ 진보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반문이 가능하지만, 사실 이들의 대다수가 한 때 진지하고 치열하게 변혁운동에 종사해 왔던 인물들이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이른바 진보진영(특히 현재는 노동당을 중심으로)에 팽배한 반쏘 반북주의 노선도 사실상 이 측면에서는 저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반공주의의 일종’, 서유럽 소부르주아 맑스주의

 

한국사회 ‘(신)좌파’의 이러한 반쏘 반북 노선은 다른 한편으로는 알튀쎄르(Althusser), 발리바르(Balibar), 지젝(Zizek), 바디우(Badiou) 등의 지적, 정치적 경향처럼, 큰 틀에서 서유럽 맑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서유럽 맑스주의 역시 유로꼬뮤니즘 조류의 일환으로서 쏘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후르시초프가 개인숭배를 이유로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인 이래 출현한 반쏘비에트 사상에 중심을 두고 있다.

서유럽 ‘맑스주의’의 반쏘비에트 수정주의 사상의 전통은 마르쿠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에리히 프롬 등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서도 계승되고 있다. 물론 알튀쎄르는 이러한 흐름에 저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알튀쎄르 역시 프랑스공산당의 유로꼬뮤니즘적 우경화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

한국사회에서도 쏘련 해체 이후에 윤소영 교수의 「알뛰쎄르를 다시 읽으며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생각한다」는 저서를 주요 기점으로 알튀쎄르 노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쏘련 해체가 스탈린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하의 일당독재 노선에 있다고 보고, ‘일괴암(一塊巖)주의’ 운운하며 전위정당 운동을 부정하는 신 수정주의 노선은 오늘날 사회진보연대에게 계승되어 있다.

 우리가 “청년 맑스”라고 언급하는 현상은 소련에서의 수정주의의 승리와 함께, 20세기 중반까지는 실제로 드러나지 않았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 초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을 따르는 소련과 다양한 서구의 “맑스주의자” 지식인들이 “스탈린주의”(맑스-레닌주의)의 지적인 기초를 분해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진정한 맑스주의”를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 서구의 학계에서, 이 “청년 맑스”운동은 게오르그 루카치의 작품과 함께 시작한 헤겔좌파-맑스주의(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형태에서 마침 알맞은 상대를 발견하였다. 그러나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1923)은 소련에서 출판이 되자마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현실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관념적인 발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서, 데보린에 의해 마땅히 비판을 받았다. 이 신성하지 못한 결합은 지금 대학교정에서와 책의 겉표지 속에서 지배력을 발휘하는 유행을 쫓는 속류-맑스주의를 양산하였다”(「현대 수정주의 I: “청년 맑스”」, 출처 : http://theclassstruggle.wordpress.com 영국공산당(맑스레닌주의) CPGB(ML) 경향, 번역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일반노조 조합원 제일호, [노동자정치신문 81호], 2011-12-30)

서독의 맑스주의 비판자인 하인리히(D, Heinrich)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청년 맑스로 회귀하라는 것은 레닌주의에 반대하는 맑스주의 반대자들의 요구이다. 이것인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와 그 동료들 및 프랑스(공산)당 외부의 맑스주의자들 그리고 폴란드, 헝가리, 유고슬라비아의 다수 지식인들의 암호인 것이다.” 맑스의 초기 저작과 완숙한 맑스주의 저작을 대비시키는 것이 레닌에 대한 투쟁, 즉 ‘맑스로 돌아가라’는 수정주의적 슬로건의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드러내는 가치 있는 고백임을 보이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T.I. 오이저만,「맑스주의 철학성립사」 서론, 아침, 1988년)

1840년대에 맑스와 엥겔스가 투쟁하였던 철학적 ‧ 사회과학적 개념들이 오늘날 부르조아 및 쁘띠부르조아 이데올로기 속에서 재생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 청년 헤겔학파의 ‘비판적 비판’은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과 기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의해 계승되고 있으며, 그들의 이론적 구조물은 흔히 ‘네오맑스주의’라는 이름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 특히 그것의 독일판인 실존주의는 낭만적 반자본주의의 부활에 다름아니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반공주의의 일종(강조는 인용자)임을 곧 알 수 있다.(같은 글)

오이저만은 여기서는 서유럽의 수정주의적 맑스주의의 철학적 사상적 흐름이 “레닌에 대한 투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은 수십 년 동안 쏘련 사회주의의 실질적 건설자였던 스탈린에 대한 투쟁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의 모든 문제가 쏘련 사회주의의 건설자인 스탈린에게서 유래하며, 이 스탈린주의에 대한 책임을 쏘련 사회주의의 기초자인 레닌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또한 레닌주의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엥겔스의 철학과 사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이 맑스주의와도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맑스 역시도 청년 맑스주의와 후기 맑스주의를 대비시켜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노선을 견지하지 않고 휴머니즘을 간직한 청년 맑스만이 맑스주의의 진정한 전통이라고 하여 맑스주의 자체도 파괴하고 있다.

이처럼 소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송두리째 해체하는 수법은 항상 스탈린주의 비판을 가장하여 현실 사회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방식으로 수행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고 있는 푸코, 데리다 등 구조주의 ‧ 해체주의와 네그리, 하트 같은 자율주의 같은 각종 소부르주아 세력들의 주장 역시 맑스주의의 재해석이라는 수정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들 전체는 “반공주의의 일종”이다.

 

반쏘 반공주의의 최고봉,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론

 

유로꼬뮤니즘과 서유럽의 각종 소부르주아 ‘맑스주의’가 반쏘비에트 반공주의 노선의 일종으로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쏘 반공주의의 최고봉은 트로츠키주의다. 트로츠키주의 노선은 그 내부에서도 수없이 많은 분열과 대립을 낳고 있는데, 한국사회에서는 쏘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는 제4인터내셔널 계열 보다는 ‘국가자본주의’로 보는 악명 높은 토니 클리프 노선이 지배적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80년대 중반 경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으나 1993년 「소련 국가자본주의」(토니클리프 저, 정성진 번역)가 발행되면서, 국제사회주의자들(IS) 그룹이 이 노선을 사실상 처음으로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보급하였다. 이들이 쏘련해체를 환영하고 나섰다는 것은 이제는 운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자본주의 노선은 청산주의에 빠진 과거의 변혁세력뿐만 아니라 쏘련 해체 이후에도 한국사회에서 변혁노선을 견지하고 대다수의 그룹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IS 그룹의 계승 그룹인 현재 「노동자연대」를 포함해, 얼마 전 공식 해산했지만 노동자혁명당추진위원회(노혁추), 혁명적노동자당건설현장투쟁위원회(노건투), 사회주의노동자신문(사노신)은 직접적으로 이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 세력과 공동으로 당강령을 마련하고 당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회(추진위)와 노동해방실천연대(해방연대) 역시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보는데 있어서 부정적이거나 적대적인 점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유로꼬뮤니즘으로 대변되는 전 세계의 반쏘주의자들도 노골적으로 쿠바와 조선(북한) 같은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좌익 공산주의 세력과 함께 트로츠키주의 정치세력, 특히 국가자본주의 세력은 노골적으로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를 비롯해서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하는 반동체제로 보고 있다.

좌익공산주의 역시 트로츠키주의와의 상호 불신과 대립에도 불구하고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은 아귀가 잘 맞는다. 이 때문에 한국의 좌익 공산주의자인 오세철 교수가 2012년 1월 노동자혁명당추진위의 기관지였던 「혁명」(창간준비 5호)에 기고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제목은 「중국에서의 마오주의의 환상과 적색테러」이다. 오세철 교수는 이 글에서 중국 공산당의 지주에 대한 적색테러를 고발하는데, 그 전거를 「공산주의 흑서(Black Book of Communism)」에서 들고 있다. 그런데 이 흑서는 1997년 프랑스 극우진영이 발행한 것으로 공산주의자들이 1억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학살했는데, 이 피살자 수는 히틀러 나치 독재에 의한 피살자 수인 약 2500만 명의 네 배나 된다고 폭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교과서가 무시하는 ‘공산주의 黑書’의 학살 통계, 북한 소련 중국 등에서 1억 명이 학살당하다!」(趙甲濟, 뉴스파인더 2014.03.06)처럼, 극우 파쇼인 조갑제가 이 흑서를 인용해서 현실 사회주의를 비방중상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흑서의 공동저자이자 반북주의 선전과 공작에 앞장서고 있는 피에르 리굴로(Pierre Rigoulot)와 흑서를 사설에서 소개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이들에게 재정후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공산주의에 대한 중상비방은 파쇼진영과 제국주의의 범죄와 잔학한 인류학살을 은폐하고 이 범죄를 공산주의에 전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오세철 교수와 좌익 공산주의는 반쏘 반북 적대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진보적 이성을 상실하고 극우 파쇼 진영과 하나가 될 정도로 정치적으로 심각하게 타락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정통 트로츠키주의’를 자처하는 제4 인터내셔널 경향은 제국주의 공세에 맞서 현실 사회주의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유화, 계획화에 바탕을 둔 쏘련 및 현실 사회주의(노동자 국가)의 경제적 토대는 방어하되, 상부구조를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현실 사회주의의 상부구조는 당과 국가인데, 당과 국가가 전 사회에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경제적 토대를 일궈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의 방어노선이 현실에 적용된다면 국가자본주의 입장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실제 트로츠키는 1936년에 「배반당한 혁명」을 발표했는데, 이때는 1933년 히틀러 파쇼 도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 전쟁의 기운이 감지되어 쏘련 공산당과 전체 인민이 전쟁을 막고 대비하기 위해 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실제 1941년 히틀러 파쇼 도당이 쏘련을 침공했는데, 그 몇 년 전에 트로츠키는 쏘련 공산당과 쏘비에트 국가를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주장했던 것이다.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하는 반동체제로 보는 이들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 노선은 비단 역사 해석에서만 심각한 반동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운동에도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우리는 북핵 문제는 미제국주의가 만든 조어(造語)에 불과하고 실은 미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체제의 핵독점 전략이자 북에 대한 말살 정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에 있어서 이들 트로츠키주의 세력들은 대다수(제4 인터내셔널 계열은 북핵이 자위권의 일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노건투는 북핵 문제나 한반도에서의 한미일 동맹과 북의 대립에 대해 “작은 깡패 큰 깡패” 논리를 취하고 있다. 북이 작은 깡패라면 미국이 큰 깡패라는 것이다. 이러한 양비론적 인식은 노건투가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북에 만들어진 사회주의 체제와 이남에 진주하며 여전히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지대하게 발휘하고 있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결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다함께(현 노동자연대), 사노련 등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 세력들의 몰역사성과 중립적인 태도가 역사왜곡과 함께 결국은 미제국주의와 한국 지배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게 되는 반동적인 인식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전쟁이 미쏘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제국주의 대리전이므로 “어느 쪽도 편들 수 없다.”는 국가자본주의자들의 주장은 그 자체로 역사적 파산을 맞았으며 반동적인 것이다. 결국은 이를 통해 역사왜곡과 미제국주의의 문제에 대해 본질을 은폐하게 만든다. 또한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현존하는 사회주의 국가인 북과 쿠바를 타도해야할 국가자본주의 체제, 착취체제로 봄으로써 북과 쿠바에 대한 미제국주의의 봉쇄정책과 말살정책에 동조하게 되는 반동적인 이론인 것이다. 첨예한 계급투쟁의 결절점에서 어느 쪽도 아니라는 것은 결국 중립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어릿광대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내전 60주년을 맞아 좌익의 이름으로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국가자본주의자들을 규탄하는 이유이다.(「한국전쟁 60주년, 다함께 국가자본주의의 역사왜곡과 파산」, [노동자정치신문 제64호], 2010-06-30)

사노련은 “북한에 들어선 김일성 권력은 1917년 러시아의 소비에트나 1871년 프랑스의 파리꼬뮌 같은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이며 대중적인 권력이 아니라, 급진적 민족주의자의 권력에 지나지 않았다. 북한의 국유화 조치는 김일성 권력의 경제기반을 안정화하고,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말하는 ‘왜 사회주의인가?’)고 주장한다.

사노련의 악의적 주장과 달리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남한과 달리 자율성을 인정받으면서 혁명적 조치를 빠르게 취해나갔다. 또한 소련의 기술과 지원 하에 파괴된 생산시설을 복구하여 국유화의 기초를 다진 뒤 산업 국유화 조치를 취하고 노동자보호 법률과 여성에 대한 진보적 법률과 인민위원회 참여 보장, 복지정책 등 진보적 조치를 취해나갔다. 특히 3.7제 소작료 인하 투쟁에서부터 시작해서 곧바로 토지 국유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토지에 대한 빈농들의 열화와 같은 열망을 반영하여 지주 토지의 무상 몰수와 무상분배라는 혁명적 조치를 취해 나갔다. 물론 미군정과 달리 소련군은 자신들이 원하는 체제를 북 인민들이 만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인민위원회의 자주성을 보장하고 지원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소련이 원하는 체제와 대다수의 인민들이 원하는 세상이 일치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북의 공산당은 인민 대중들의 절대적 지지를 획득하면서 노동자농민의 대중적인 권력을 구축해나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러한 과정이 ‘북한의 국유화 조치는 김일성 권력의 경제기반을 안정화하고,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고 간단하게 폄하할 수 있는가? 물론 이러한 국유화 조치가 김일성 권력, 즉 공산당의 경제기반을 안정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안정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미군정과 마찬가지로 억압과 학살, 총검으로 만들어졌는가? 인민의 광범위한 대중적 요구와 열망에 기초해서 만들어졌는가?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진보를 국가자본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 반동체제’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노동자 대중에 대한 착취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라고 왜곡한다.(「(특별기획)한국전쟁, 남북전쟁인가? 계급내전인가? -사노련 국가자본주의의 몰역사성과 몰계급성, 반동성」, [노동자정치신문 53호], 2009-06-25)

트로츠키주의 국가자본주의라는 극악한 종파주의에 사로잡혀 이들은 주관적으로 변혁세력임을 자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반동적인 입장을 견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우리는 이들로부터 단 한 번도 진지한 답변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바꿨다는 얘기도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대신에 직간접적으로 이들로부터 들려오는 얘기는 그저 “스탈린주의다”라는 천편일률적인 비난밖에 없었다.

 

맑스레닌주의 철학적 인식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보다도 몰역사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역사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여태까지 “스탈린주의=악”이라는 단 하나의 종파주의 도그마만 움켜잡고 독단과 편견에 사로잡혀 역사를 단순화 하고 있다.

과학적 입장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맑스레닌주의의 과학적인 관점을 취하여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 원인을 밝히려는 대신에 <자본론>에도 없는 규정으로 쏘련을 자본주의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쏘련 해체 직후 황망하기 그지없고, 제한된 정보와 지적, 정치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1990년대 초반 받아들인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태도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 악마화가 아니라 사적 유물론적 관점으로 쏘련 사회 해체 원인을 규명해나가야 한다. 쏘련을 전면 부정하는 비변증법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 쏘련 사회주의는 진공 속에서 만들어진 체제가 아니라, 짜리즘으로부터 물려받은 봉건적 유산과 낮은 생산력, 제국주의 침공과 내전에 맞서 싸우고, 제국주의와의 불가피한 군사경쟁과 사회주의 국가와 ‘제3세계’에 대한 원조 등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면서 건설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내외부적 조건으로 인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오류와 한계 속에서 건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쏘련 사회주의의 성과는 진보적 인류 전체의 성과였고,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는 진보적 인류 전체의 막대한 패배와 후퇴였다. 제국주의의 봉쇄와 포위라는 악전고투 속에서 이룬 현실 사회주의의 성과와 한계를 접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진보적 입장이라도 견지하려면 현실 사회주의가 제국주의의 개입 없이 자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제국주의 체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자주적 입장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편견 없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의 반공 이데올로기, 정보와 역사 왜곡으로부터 탈피하여 철저하게 자주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propaganda)로부터 독립하여 쏘련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 독립적인 저서들에 주목해서 봐야 한다. 최근 세움의 한형식 씨가 <문화적 냉전>을 번역 중에 있고 이를 부분적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독점자본의 후원으로 CIA를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공작기관에 의한 지식인들에 대한 포섭전략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당연하게도 문화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적 영역에서 포섭과 회유 역시 그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소유한 언론, 출판, 교육기구, 문화기구 등에서의 광범위한 반쏘 반공 이데올로기 공세는 부르주아 국가의 인민들에게 일상적으로 반쏘 반공의식을 주입시켰다. 과연 이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른바 ‘좌파’ 노선에 대해 몇 가지 비판을 더 하자면, 먼저 민족문제에 대해 경원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맑스레닌주의 관점으로 민족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여기에 더해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기권하거나 소홀히 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좌파’들이 민족문제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경시하는 태도는 협소한 경제주의를 낳고 있다.

이러한 ‘좌파’들의 인식은 세월호 투쟁과 부정선거, 내란음모 사건과 국정원 해체 투쟁, 그리고 최근의 총파업 투쟁 조직화 등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도록 했다. 여기서 이들의 문제를 다 언급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자정치신문>에서 다룬 바 있는 일련의 경제주의 비판과 「세월호 ‘참사’ 5개월, 그 평가와 전망 자본 ‘근본주의’는 어떻게 세월호 투쟁을 가로막는가?」([107호(통합119호)], 2014-09-29)를 비롯한 세월호 학살 관련한 글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마오쩌둥의 모순론은 한 사회 성격을 규명하고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철학적 방법론과 변혁을 위한 전략전술을 배우는 데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저서이다. 최근에는 ‘스탈린주의’라는 간단한 매도로 이 저서를 자발적 ‘금서’로 묶어두고 있는데, 마오는 여기서 근본모순과 주요모순의 관계, 사물의 특수성을 통해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인식상의 중요한 문제와 이를 통한 변혁 전략전술에 대해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오의 이 명저를 인용하면서 근본모순과 주요모순의 상호관계를 통해 자본주의 철폐와 정권 퇴진과의 관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혹은 파시즘과 민주주의 투쟁의 상호 관계를 다시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려 한다.

 

우리는 사물발전의 전반적인 과정에서의 모순운동에 대하여 그 상호관련 속에서, 그 각 측면의 상황에서 그 특성에 주의를 돌려야 할 뿐만 아니라 과정발전의 각 단계에서도 그 특성이 있는 만큼 거기에도 역시 주의를 돌려야 한다.

사물의 발전과정의 근본모순과 이 근본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과정의 본질은 과정이 완결되지 않으면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발전의 긴 과정의 각개 발전 단계에서의 상황은 흔히 서로 다르다. 왜냐하면 사물발전과정의 근본모순의 성격과 그 과정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으나 이 근본모순은 그 긴 과정에 있어서의 각개 발전단계에서 차츰 격화된 형태를 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본모순에 의하여 규정되는, 또는 그 영향을 받는 허다한 대소 모순 가운데는 격화되는 것도 있고 잠시 또는 국부적으로 해결되거나 완화되는 것도 있으며 새로 발생하는 것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과정에는 단계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사물의 발전과정에 있어서의 단계성에 유의하지 않으면 사물의 모순을 적절히 처리할 수 없게 된다.(마오쩌둥, 「모순론」, 『실천론 ‧ 모순론(외)』, 범우사, 김승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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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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