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편지
– 이병진
(인도 정치학자-국가보안법 탄압으로 2009년부터 수감 중)
ooo동지께
답답하고 지루한 긴 추석이 지니자마자 ooo동지의 편지와 노·정·협 동지들의 투쟁의 성과물을 받아 무척 기쁘고 반갑습니다.
ooo동지가 문건 형태의 자료를 보내주어서 대략 내용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길을 찾아서”라는 책자로 발간되어서 좋았습니다.
자세하게 각주도 달아서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배려한 동지들의 노력에 아낌없는 찬사와 경의의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번에 ‘노동자의 책’ 대표가 보안수사대에 압수수색 당했고, 공안당국의 탄압과 감시가 심할 텐데,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과학적 사상과 이론으로 정면 돌파하는 동지들께 깊은 신뢰의 인사 올립니다.
나는 제도권의 정치학자라는 틀과 그런 조건에서 살아가면서 계급정치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거기에는 나의 신변을 보호하려는 이유도 있었구요. 그러나 더 이상 제도권 정치학에 미련도 없고 거기에 종속될 이유도 없습니다. 동지들 덕분에 다시 레닌을 공부하고 사회주의 이론을 하나씩 연구하며 배워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제출한 소책자는 노·정·협의 핵심적인 사상이 잘 녹아 있고 현 정세에 맞는 올바른 지도 방침이 제출되었습니다. 점점 역동적인 힘을 잃어가고 있는 노동계급에게 큰 그림을 그리게 하고 자신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국사회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급모순과 분단모순을 통일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41쪽)입니다.
바로 이점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현 시기 이남의 진보진영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의회주의의 편향을 넘어서 민주주의 투쟁 노선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당면 과제로 박근혜 정권과의 투쟁을 제시한 것은 옳은 방침입니다.
사실 진보진영은 어느 순간부터 정말 모든 것을 내걸고 절박하게 싸우기보다는 슬금슬금 타협하고 싸우는 시늉만 하고 있습니다. 우악스럽게 싸워 보지도 않고 싸우나 마나 질 텐데 뭘! 그러면서 무기력합니다.
나와 노·정·협 동지들은 소수이지만, 우리는 싸움의 최전선에 서 있고 우리마저 무너지면 진보를 갈망하는 대중들은 더욱 더 위축되고 좌파 가면을 쓴 기회주의자들의 준동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방침이 지금 당장에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과학적인 분석 때문에 필연적으로 우리의 예측과 흐름대로 정세가 발전할 것이고 지금은 선전구호처럼 들리는 이야기(정치방침)가 정세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면서 힘 있게 움직일 거라 확신합니다. 다만 그런 과정에서 모진 시련을 견디고 극복해야 하는 동지들의 초인간적인 노고와 희생이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전진시키는 일에는 대부분 쉽게 공감하면서도, 막상 그 일을 책임 있게 해나가면서 짊어져야 할 인간적인 고통과 희생 때문에 싸움을 주저하게 하고 변혁운동을 타협에 빠지게 합니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오늘 우리의 목소리는 더욱 가치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엄혹한 시대에 동지들의 가슴 뜨거운 투쟁을 성찰하고, 성숙시키고, 배우고 있습니다.
노동계급 동지들도 여러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결국은 계급의식으로 스스로 무장하고 단결하여 싸울 수밖에 없다는 확고한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노동계급을 올바르게 지도하고 이끄는 정치조직은 기본 가운데 기본입니다. 나는 그 일을 우리 노·정·협 동지들이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험과 알고 있는 게 많이 부족하여 지금 밖에서 요구되는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노·정·협 동지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올바른 노선을 제출하실 거라 믿습니다.
다만, 제 입장과 태도는 일부 맹목적으로 몰계급적인 통일운동 세력들에게 분명한 경고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과감하게 우리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셔도 됩니다. 다만 그런 노력이 어떤 불순한 정치적 입장에서 상대편을 깨려한다는 오해와 불신을 주지 않게끔 관용적인 자세(포용성)와 따뜻한 배려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ooo동지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북은 이미 사실상 핵무력으로 무장한 국가가 되었고, 그런 현실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계급적 이해 없이는 남북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6·15선언 그 이상의 담론을 넘어설 수가 없는 현실이지만, 내년에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한다하여도 지금의 현실과 별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정권 교체로 평화협정이 저절로 될 거라는 것은 환상입니다. 평화협정도 역시 투쟁하고 싸워서 쟁취하는 것이지 요구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ooo동지와 노·정·협 동지들이 지금처럼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 근본적인 원칙을 견지하면서 투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저의 페이스북과 카페에도 노·정·협 동지들의 글도 올려 활발하게 소통하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러시아 10월 혁명이 성공하고 쏘비에트 정권이 들어선 이후, 반동 세력들의 음모로 파시스트 정권이 나타난 점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곧 망할 거라고 믿어 왔던 북이 혼란은커녕 더욱 더 강위력하게 핵무장 속도를 높이자 독점 자본가들이 초조해합니다. 이것이 광폭한 공안탄압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불필요한 희생이 없도록 신변에 주의하세요.
최근에 메갈리아 논쟁과 ‘정의당 탈당’과 ‘시사인 절독’을 보고 한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성시대와 메갈리아 누리꾼들이 혐오스러운 극우 집단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유머’에 올라오는 댓글들은 동의 안 합니다. 나무위키에 서술된 메갈리아는 범죄 집단처럼 되어 있는데 그런 사이트가 있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부르주아의 썩어빠진 문화와 정신이 젊은 청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이 메갈리아를 편들었다고 탈당하는 게 한심해 보였지만, 저런 당을 진보세력의 중심에 놓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모습이 참 초라합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젊은 청년 세대를 올바르게 이끌지 못한 책임감도 무겁게 느낍니다.
저 또한 젊은 세대들을 일베 자식들로 생각해 무시하고 버린 자식 취급하였는데, 운동의 미래와 연속성을 위해서 젊은 세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겠습니다.
여러 정치세력의 입장 가운데 “노동전선”의 주장이 건강합니다. 그러나 계급모순과 분단모순을 “통일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한계가 있습니다.
민감한 시기에 악조건 속에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과학적 노선을 제출한 동지들을 깊이 신뢰하고 이것을 계기로 우리들의 분명한 입지점이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역사가 우리의 정당성을 증명할 것입니다.
ooo동지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며 또 편지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병진 올림, 2016년 9월 22일.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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