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과 정신보건법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 이정하 (조현병 당사자)

물건이 되다

“도대체 왜 나를 여기 가두냐고요?”
“자해, 타해의 위협이 있어서 예요”
“누가 그렇다고 하던가요? 제 머릿속에 들어와 봤어요?”
“보호자가 위험하다고 그랬어요”

꽉 막힌 CR실(감금 독방)에 갇혀 창살 밖을 향해 못나가는 이유를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보호자가 그랬다는 것이다. 보호자라니, 나는 가족과 함께 살지도 않는다.
나는 인적이 드문 시골의 도로중앙선을 걷다가 경찰에 신고 되었다. 파출소에 가서 신원조회가 되었고 경찰은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경찰차에 태워졌고 응급실에 간다는 말을 들었다. 차는 한참을 달려 처음 보는 건물에 내리게 했다. 3명의 남자들이 곧 나를 포박하여 끌고서 CR실에 가두었다. 신체 억제대를 사용해 나를 강제 강박시키고 의사가 몇 마디 한다.

“여기 입원해야 되세요. 주사 놓겠습니다”
“묶지 말라고! 이건 인권침해야!”

나는 소리도 질러보고 반항을 해보지만 여지없이 주입되는 코끼리 주사를 맞고 기절한다. 이 주사는 코끼리도 기절시킬 정도로 강력하다고 해서 부르는 안정제이다. 몽롱한 상태로 깨어났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 수도 없었고, 묶여있는 팔다리의 피가 안 통해 고통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또 끌려왔다는 자괴감과 무신경하게 사인만 하고 가버린 가족에 대한 원망이 나를 더욱 좌절시킨다. 병원을 퇴원하려면 순종적으로 되어야 한다. 무슨 약을 투약하는지 숨이 막힌다. 부작용이 심해서 먹지 않겠다고 하니 보호사 두 명이 나의 팔을 뒤로 꺾고 입을 강제로 벌려 약들을 목구멍으로 집어넣는다. 나는 모멸감을 느낀다. 만약 또 거부하면 CR에 끌려가 사지강박을 당해야 한다. 환자들은 시키는 대로 다한다. 조금이라도 불만의 말을 하거나, 반항을 해도 징벌이 가해진다. 보호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막 대한다.
80여명이 감금되어 있는 여자병동에 보호사 2명과 간호사 2명이 순환으로 근무를 했다. 의사는 일주일에 한 번 면담을 했다. 의료보험 환자는 면담을 했지만 생계가 어려워 의료급여 대상이 되는 환자는 면담도 안 했다. 환자들은 원장을 무서워했고 원장에게 걸리면 절대 나갈 수 없다고 말하며 나의 담당의가 원장이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환자들과는 소곤소곤 대화하거나 종이에 써가며 대화를 한다. 보호사나 간호사가 들을까 조심한다. 전화도 며칠이 지나서야 하루 한번만 그것도 5분 이내로 할 수 있다. 보호사가 옆에서 다 듣고 있으니 자유롭게 말할 수가 없다.
장기입원환자들이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오랜 약물투약과 감금으로 신체가 전면적으로 손상된 경우가 많다. 말도 잘 하지 못하고, 걷는 것도 힘들다. 장기기능이 훼손이 되어 대소변을 줄줄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 상태가 좀 더 나은 착한 환자들이 이분들을 돌본다. 걷는 것도 부축해주고, 빨래도 해준다. 환자복이라고는 일주일에 한번 지급되는데 더러워진 옷들은 매번 직접 빨래를 해야 한다. 옆 병상의 치매노인이 또 대변을 흘렸다. 보호사들이 온갖 짜증을 내면서 소리 지르는 것이 싫어서 같이 있던 환자들과 같이 여기저기 튀어버린 대변을 닦고 노인의 몸을 닦아준다.
그 노인의 자식들은 외제차를 끌고 병원에 한 번 방문을 했었다고 한다. 그 노인은 25년을 정신병원에 갇혀있었다. 병원 환자들의 평균 입원기간은 무려 7년이 넘는다. 10년이 넘는 경우도 많았다. 나를 돕는 활동가 동지가 강제입원에 사인을 했던 나의 가족들에게 나를 퇴원시키라고 싸웠다. 결국 그렇게 해서 길지 않은 시간을 병원에 갇혀있다 퇴원할 수 있게 되었다. 퇴원하는 날 아침 병동은 술렁였다. 퇴원자체가 거의 없는 병동에서 어떻게 나갈 수가 있느냐고 동료환자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환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다시 들어오지 말라고 손을 꼭 잡는다. 편지를 써서 주기도 하고, 밖에 나가거든 제발 우리들 좀 꺼내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렇게 두껍게 닫힌 철문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그분들을 보고 밖으로 나와 처음 하늘을 보니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환멸이 덮쳐온다.

환청이 심해진 건 1999년부터였다. 2000년 직장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로 6개월간  하루 한 시간도 못 자는 불면증이 계속됐다. 그러다 환청‧환시‧환각발작으로 이어지며 정신이 폭발했다. 다 타버린 상태 이른바 ‘번아웃’이 되었다. 그 해 처음으로 나는 정신병원의 폐쇄병동에 강제입원 되었다. 나는 그 이후부터 2016년 지금까지 총 11번의 입원을 했다. 그 중 8번이 6곳의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것이다. 이 6개 병원 중 5군데의 병원들은 내가 앞서 말한 병원과 비슷한 상태였다.

3번의 입원은 다니던 종합병원이 정신과 병동이 없어서 내과병동에 입원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신과 병동이 없어서 입원한 일반내과 병동에서 감시와 통제 없이 신체질환 환자와 똑같은 케어를 받으며 쉬고 나오니 후유증 없이 안정이 되었다. 그러한 경험이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정신병원이 차단했다는 것을 깨달았고, 투병을 하면서도 몇 사람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능력치가 있던 내 자신이 장애인이 된 원인 역시 정신병원에서의 고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병이 발병한 초기에는 대학병원에 정신과 폐쇄병동에 강제입원 되었고, 그러나 이후에 병의 증상이 심해지는 급성기가 닥칠 때마다 돈이 없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병원으로 끌려가 갇혔다. 일반적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급성기는 길지 않다. 평균 3일 정도이며  길어야 7일 이내다. 물론 극소수의 환자들은 잘 가라앉지 않는 급성기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하룻밤 잠을 푹 자고 나면 심한 발작과 같은 상황이었어도 증상이 가라앉는다. 일반내과병동에 입원했을 때는 다니던 병원 응급실에서 수면안정제를 맞고 병동으로 올라갔거나, 지방에서 급성기가 닥쳐 연락을 받고 달려온 활동가 동지가 그 지역 병원의 응급실에 데려갔다. 정신과 의사가 당장 정신병동으로 입원시켜야 한다고 했는데  동지가 폐쇄병동에 입원 안 시킨다며 주치의가 있던 병원에 데려가서 일반병동에 입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경우 가족이 근처에 있어 강제입원에 동의했다면 나의 강제입원 횟수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깊은 고민 없이 귀찮아하는 가족이 사인을 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위급 시에 수면안정제를 맞고 잠을 자는 것이다. 그 이후는 안정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 한다.
매번 정신병원에서 깨어나면 제정신으로 감금을 버티려니 그 안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생각해보라. 멀쩡한 사람도 그러한 납치와 고문을 겪게 되면 없던 병도 생긴다. 하물며 건강이 안 좋아 보살핌이 필요하고 휴식해야하는 상태의 사람을 잡아다 그런 학대를 하면 어떻게 될까? 스트레스에 취약한 당사자들은 심한 스트레스와 잠을 못 자게 되면 급성기가 도래하는 재발을 겪게 된다. 그래서 수면이 핵심이라고 한다. 잠을 못자면 약을 먹어도 재발한다. 급성기 자체가 엄청난 고통이다.
강제 입원된 정신병원 그곳에서 너무나 많은 사연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적나라한 비인간성을 온몸으로 겪었다. 환자들은 자본주의의 상품이 되고 제약회사와 정신병원의 수입원과 생체실험용 마루타 또는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8번의 강제입원이 남긴 상흔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끌려가서 벌레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느니 차라리 자살을 하는 게 낫겠단 생각을 하고 산다.
강제입원 후 지독한 감금과 폭력, 성추행과 구분이 없는 폭력, 여러 남자들이 내 몸을 만지고 옷을 벗기고 끔찍하고도 견딜 수 없는 공포로 자다가도 이불을 물어뜯고 오열을 하고 살았다. 사지결박, 코끼리주사, 화장실 같은 공간 속에 묶인 채로 며칠이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극한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피가 통하지 않아 머리까지 굳어가 피떡이 되어가는 그 고통은 겪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반복될수록 심해지는 트라우마와 밀실공포가 공황장애로 발전을 해 나는 갑자기 호흡이 곤란해지고 특히 지하철 같이 막혀있는 공간에 들어서면 극도로 불안해진다. 한번은 시청역의 환승구간 한복판에서 공황이 밀려오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되고 몸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그 복잡한 곳에 움직일 수가 없어 서 있어야만 했다. 그러자 행인들이 나에게 비키라면서 툭 툭 치고 지나가며 욕까지 해댔다. 그 일을 겪은 이후로 더더욱 공포감이 생겨 외출할 때마다 누군가와 동행을 해야 한다. 혼자 참고 다니다 상태가 악화되어 길을 잃어버린 적도 숱하게 많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동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 정신장애인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20년이 되어가는 투병의 시간을 짧은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갇혀있는 분들에 대한 그리움과 설움, 내 자신의 주권을 회복하고 당사자에 대한 지극한 애정으로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인 ‘정신장애와 인권 파도손’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투쟁을 하고 있다.

희망제로의 세상

2015년 1년간 ‘2조8천억’원의 납세자들이 낸 세금이 정신의료집단의 강제입원과 장기입원에 쓰였다. 국민의 혈세가 정신의료집단의 배를 채우는데 쓰이지만 이중에서 10분의 1도 투병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지원이 되지 않고 있다. 아니 1000분의 1도 지원되지 않으며 액면 그대로 0이다. 정신질환 환자들은 정신의료 수익구조의 소비재이다. 사회적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 겹겹이 둘러싼 억압장치 안에서 당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올 수 없는 병원 안과 병원 밖에 둘러 처진 투명장막에 갇혀 살아간다.
이것은 마치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다. 눈에 안보이면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눈에 보여도 무시된다. 사회가 보여주는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태도는 인종주의적 파시즘이며 이런 감정은 전염이 되고 있다. 우리들이 직업을 가지는데 제약을 받는 것은 기본이요, 거주지에서 쫓겨나기는 일상사이며 최저임금마저도 부정된다. 법적으로 정신장애인에게는 임금을 차별하도록 규정화되어 있다. 장애인복지법에서 제외시켜 놓았고, 어떤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복지관도 정신장애인에겐 이용이 안 되도록 법제화되어 있으며,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활동보조인이 절실히 필요한데도 정신장애인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이런 불리한 처지는 환자들의 회복을 더욱 더디게 하거나 병이 악화되게 만든다. 병원과 센터와 소수의 사회복귀 시설만이 허락되어 있고, 공공기관에서는 병력기록과 신원정보가 공유가 되며 일상속의 작은 실수에도 징벌은 배가가 된다. 비장애인과 사소한 다툼이 일어도 정신장애인 당사자라는 이유로 대화나 교섭자체가 막히고, 정신병원행이 되어야 했다. 비장애인이 화를 낼 상황에 화를 내면 정상이지만. 정신장애인이 화를 내면 약 먹어야 하는 증상이 되고, 감정표현을 하면 분노조절 장애니 피해망상이니 하면서 회칠을 한다.
일상적인 인격살인에 직면하는 당사자는 점점 더 위축이 되고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데 아플 자유마저 박탈되어 버린 당사자들은 병원에 감금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질환과 아픔에 대해서 속이고 살아가는 이중의 굴레 속에서, 자아 정체감이 대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혼란은 사회복귀의 발목을 잡는다. 또한 정신장애인은 절대적 빈곤계층으로 전체 장애인 중 가장 하위에 속한다.
우리들의 권리를 빼앗고 짓밟으며 자신들의 직업을 유지하는 집단들이 있다. 그들이 정신 장애인들을 인격을 가진 인간으로 존중해주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들은 우리를 인권문제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의 사회적 명예를 높이는 수단을 삼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정신장애인에 관하여 아는 것도 없고 이해하려는 관심도 없다. 이것이 우리가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이다.
경제 체질이 바뀌어 제조업 일자리도 줄어들고 건강하게 노동을 해서 먹고 살 일들이 사라지니 그 대신 서비스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는 기술만 날로 늘어가고 있다. 정신병원과 관련 기관은 무법천지일 뿐이다. 우리들을 마구 짓밟아도 저 정신병자가 하는 말 들을 필요 없다고 하면 끝난다. 이것은 상식과 정의의 문제이다.        우리가 받는 이 처우는 한 사회의 윤리나 정신 수준을 나타내는 리트머스지이다.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보건데 현재 이 나라는 역사상 가장 미개한 수준이다.

정신장애인, 정신보건법 그리고 권력

다행히 나의 경우 입원기간이 길지 않았기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활동을 할 수가 있다. 장기입원 환자들은 두당 월 150~200만 원짜리 물건이다. 6개월의 타이머가 돌아가면 예정된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어 다시 6개월의 타이머가 돌아간다. 병원의 병상수를 채워주고 따박따박 정신병원에 돈을 벌어준다.
가족으로부터 어떤 이유든 제거해버리고 싶은 이들의 필요와 만나게 되어 정신병원 산업은 부흥에 부흥을 거듭했다. 부모를 가두고서 유산을 갈취하고자 하는 자식들이 있었고, 외도를 해서 배우자의 재산을 갈취하고자 하는 남편과 아내들이 있었으며,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자식을 가둬버린 사람들이 있었고, 형제자매에 의해 짐이 되니 치워버리고서 신경 안 쓰고 살아야지 하는, 그런 이유들이 모여서 날이 갈수록 감금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년간 갇혀 있던 같은 병실의 한 여자 분은 수급비를 친언니가 가져가기만 하고 절대 퇴원을 안 시켜 주는데 일 년에 한번 정도 외출을 했다고 한다. 짧게는 한두 달부터 길게는 30년 이상의 환자들이 있었다. 조현병 환자, 조울증, 알콜중독, 우울증, 불안한 정서가 특징인 경계성 인격장애,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도무지 왜 들어왔는지 조차 알 수도 없는 멀쩡한 사람들까지 협소하고 좁은 공간에 갇혀서 철저하게 정신병원의 룰에 따라 살아간다. 내가 겪고 본 바 그곳은 병원이 아니라 전쟁포로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나는 그곳에서 민주화 투쟁의 고문피해자, 통일운동가,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미친 자로 몰려 갇혀 있는 경우도 만났다.
정신과 의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가족들은 치료라는 굳은 확신으로 강제입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거나 설득된다. 가족은 이것이 환자인 가족구성원을 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반복이 되면서 당사자와 가족의 갈등은 깊어지며 심한 경우 완전히 단절된다. 감당할 수 없으면 정신병원에 갖다버리는 경우는 흔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약물강요는 물론이요, 강제입원을 당사자의 통제수단으로 겁박하는 일도 잦다. 강제입원의 협박 속에서 당사자는 더욱 위축되거나 무기력해진다. 진정한 치유와 당사자의 의견은 대부분 묵살되는 것이 정신장애인의 현실이다. 이러한 모순은 정신병원집단의 세뇌도 대단히 큰 몫을 하며, 지속적으로 언론에 노출된다.
여기서 잠시만 생각해보자.
병원에 입원을 하는 것은 병원에 이익과 직결되고 의사는 직접 이해관계자다. 강제입원은 한 사람의 신체자유를 박탈하고 자기결정권을 완전히 무시하며 죄의 유무와 상관없이 감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한 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도 안 생기게 하려고 사실상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에서, 중범죄자도 미란다 고지를 받고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가 있어야 하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재판을 받는다. 하물며 범법자도 이러한데 그만큼 인신의 구속은 중대한 인권박탈이다. 그러나 정신보건법 상의 강제입원 조항으로 말미암아 어떤 개인의 사적 이해관계로 개인의 인신을 구속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를 이용하려는 이해관계가 급증함에 따라 사회현상화 되었으며 관련 직업이 생겼고 응급이송단이나 사무장병원 등 우후죽순 관련한 주변부의 돈벌이수단으로 작용했고 날로 정신병원산업과 연계된 사업은 카르텔을 형성하며 견고해졌다.
이는 단지 정신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 문제이며 우리사회의 인간성을 파괴시켜온 보이지 않는 주범의 역할을 했다. 이런 감금을 유지하려니 끊임없이 위험한 존재로,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존재로, 사회의 쓸모없는 혐오의 존재로 그려낸다. 또한 그만큼 피해당사자를 둘러싼 가해 집단이 많다는 것이다.
2014년 서울시 정신건강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강제입원 피해자수는 103만 명 이상으로 집계되었다. 단순 수치상으로 백만 명의 직계가족과 주변인, 직업 종사자를 포함하면 소극적으로 잡아도 500-700만 명은 이 문제에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방관하였거나 가담자였고, 무관심했으며, 못 본 척 하거나 숨기기 급급했다. 이런 현상이 지독한 대감금을 이어오도록 했고 보이지 않는 학살이 곳곳에서 자행되게 하였다.

우리사회의 장애인 인권 박탈은 정신장애인 수용구조에 이르러 극치를 이룬다. 멀쩡한 부인이 남편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당했는데, 자신은 아무런 정신적 문제가 없다고 수차례 의료진들에게 진정했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정신병원에서 감금생활을 해야 했다. 병원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뒤에 의료라는 전문적 권력을 남용한 자들을 법원에 고소했지만 법원은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했다. 멀쩡한 사람을 수 십 일 감금했는데도 무죄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신장애를 실제 가진 사람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정신병원에 평생을 감금하고, 그 공간에서 고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본인의 동의 없이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정신장애가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우리사회가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라도 보장하고 있다고 하겠는가?
정신장애인 인권문제의 핵심은 합법적인 감금구조에 있다. 1995년에 정신질환의 합리적 관리와 지역사회에서의 정신장애인 재활 추진이라는 정책목표 아래 정부발의로 정신보건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법 시행 후 놀라운 속도로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정신장애인의 수가 증가했다. 형제복지원 이후 기도원이나 요양원 같은 시설을 양성화시킨 결과가 우리나라에는 원래 거의 없던 정신병상의 수가 늘어난 상황이 1996년이다.
아래 표에서 보듯 1980년 당시까지도 대다수의 정신장애인은 공동체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았다.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정신장애인을 잘 표현한 예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머리에 꽃을 꽂고 배시시 웃는 여일(강혜정 분)과 같은데, 그다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공존했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마을마다 다 있었다. 사소한 문제들이 있었어도 대체로 공존했다.
급변하는 산업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보살펴야하고 노동력이 떨어지거나, 경쟁에서 뒤처지는 정신장애인들을 지역사회에서 퇴출시킨 것이 정신보건법이다.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되었고 원래는 비인기학과였던 정신과가 지금은 최고의 돈 잘 버는 인기학과가 됐다. 정신보건법은 60년대의 일본법을 복사했다.

1996년 12월 정신보건법 시행 이후 정신병원 병상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년도 1980 1996 2011 2014
병상수 2,238 21,513 80,245 86,357

이와 같은 추이는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정신장애인 수용구조가 정신병상의 증가에 의해 추동된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적어도 정신질환의 합리적 관리와 지역사회에서의 정신질환자 재활 추진이라는 정책목표로 제정된 법이 어떻게 정신장애인 감금을 제도화하는 역할로 전도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논쟁이다. 이 법의 제정에 의해 보호의무자의 동의에 의한 입원, 시도지사에 의한 입원과 같이 정신질환자를 자의에 반해 입원시킬 수 있는 다양한 제도적 절차가 만들어졌다. 즉 정신보건법은 정신질환자를 건강한 삶으로 되돌리는 제도로서 시행되었다기보다 정신질환자의 개인적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강제적으로 입원시키고 개인의 퇴원 의사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이다.
실제 이 제도 시행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에 따라 퇴원할 수 있는 자의 입원자는 최근 몇 년 전까지도 열 명 중 한명에도 못 미치고, 90%이상의 정신질환자는 자신 혹은 가족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마음대로 퇴원할 수 없는 보호의무자의 동의나 시도지사에 의한 입원의 형태로 입원함으로써 견고한 감금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병원은 왜 정신질환자들을 오래 입원시키려고 하는가? 이것은 병원산업의 자본축적 구조가 호텔업이나 여관업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호텔이나 여관이 객실 대여율이 높으면 돈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로 병원도 병실을 가득 채워야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으로는 퇴원을 원하는 본인이나 가족이 정신보건심판원위원회에 퇴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퇴원을 청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많지도 않겠지만 퇴원심판청구를 하더라도 실제 퇴원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것은 심판위원 구성이 병원산업자본의 이해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은 특정전문가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신보건제도의 극단적인 모순은 공공정신보건센터에 관한 규정에서 나타난다. 정부는 정신질환자를 지역사회에서 재활하겠다는 정책목표를 세우고 정신보건센터를 설치했고, 현재 전국적으로 200여 개가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지역사회 재활을 위한 막대한 재정투자에도 불구하고 정신질환자의 입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는 정신보건센터 대부분을 정신병원에 위탁운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지역사회 재활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정부가 정신보건센터를 설치하고 그것을 정신병원에 위탁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정신병원의 자본축적은 입원병상 가동률을 높임으로써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런데 정신보건센터의 사업은 입원병상에 있는 사람을 지역사회로 내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연 정신병원에서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인력이 지역사회 재활사업에 헌신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은 지역사회에 있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을 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정신보건센터 설치 확대에도 불구하고 급증한 정신병상은 적어도 이러한 추정에 상당한 개연성을 부여한다.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 수용구조를 보면 정신질환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실핏줄처럼 휘감고 있는 의료와 결부된 병원산업의 권력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일을 하면 작업요법이 되고, 여가와 놀이는 오락요법이 된다. 일하고 노는 행위도 요법이란 이름으로 누군가로부터 간섭받는 것이다. 결국 인권의 문제는 권력과의 투쟁이다. 인권의 확보는 이러한 권력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2007년 정신보건법 일부개정으로 강제 입원률이 줄었지만 환자 수는 늘어났고 실제 강제 입원되는 사람의 수는 그다지 줄지 않았다. 2012년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에서의 자료에 의하면 정신병원 강제입원 비율이 총 입원환자 8만569명 중 자의로 입원한 환자 수는 1만 9441명(24.1%)이고, 강제 입원한 환자 수는 6만 1128명(75.9%)으로 나타났다. 또한 평균 입원기간은 247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재원기간이 27.5일에 비하면 약 9배 정도 길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보고한 정신병원 입원환자 424명을 대상으로 격리, 강박 중 설문조사 결과 약 30.2%가 설명 없는 격리와 강박으로 인한 인권침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고, 20.6%가 기저귀 착용 등 환자의 존엄성 침해 경험, 16.3%가 욕설 등으로 인한 인격 훼손 경험, 15.9%가 과도한 신체폭력 경험, 9.1%가 격리와 강박 중 부당한 음식제공 거부 경험, 4.7%가 성희롱 및 성폭행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10년 기준 남자 77.6세 여자 84.4세

한국의 정신장애인의 평균수명 57세

국가

 연도  비자의 입원율(%)

국가

연도

  비자의 입원율(%)
 대한민국  2007 90.3
 스웨덴  1998  30.0  프랑스  1999  12.5
 핀란드  2000  21.6  이탈리아  –  12.1
 오스트리아  1999  18.0  아일랜드  1999  10.9
 독일  2000  17.7  벨기에  1998  5.8
 영국  1999  13.5  덴마크  2000  4.6
 네덜란드  1999  13.2  포르투갈  2000  3.2
 ▲ ※ 출처 : ‘정신장애인 인권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 보고서’

3∼30%에 지나지 않는 해외에 비해 한국의 비자의 입원율은 90%를 넘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신보건법은 서구사회에서 이미 탈원화를 완료하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정책들이 시행되는 시대적 흐름과 완전히 역행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강제 입원률과 정신의료기관의 폭력의 만연화를 나타내는 지표다. 그 이유는 정신보건법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198인의 정신장애인들이 집단진정을 내고 “문명의 이름으로 야만의 정신보건법 폐지를 선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신보건법폐지 공익소송단’이 출범한다.
수 십 명의 변호사들이 위헌소송에 참여하였고, 관련한 사회복귀시설과 인권단체들이 연대하여 투쟁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강제입원 피해자들이  정신보건법 제24조 강제입원 조항의 헌법소원을 냈고, 2014년 1월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제출하였다. 이를 주도한 변호사는 한국정신장애연대(KAMI) 권오용 사무총장님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는 각하결정을 내렸고 2014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헌법소원 청구인 중 한명의 사건으로 헌법재판소로 위헌제청을 하였다. 이후 2016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변론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9월 29일 헌법재판소에서 정신보건법 제24조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다. 완전한 판결문은 아니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결정이라는데 의미가 크며, 정신장애인들의 인권탄압의 핵심인 강제입원 조항삭제 투쟁에서의 첫 결실이었다. 정신장애인의 광복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한국의 정신장애인 운동의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정신보건법 개악

그러나 문제는 지난 5월 19일 19대 국회 말미에 통과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법안 명칭이 바뀌었고 2017년 5월 30일부터 시행된다.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 추진 공동행동팀이 정부가 제시하는 안을 받아들여 4월 29일 보건복지부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때까지도 당사자 단체에서는 법안의 내용을 모르고 있었으며 5월 3일에서야 법안을 받아볼 수 있었다. 당사자 단체의 운동가들은 법안의 내용을 보고 경악하였고 극렬하게 반대하였다. 국회에서 공개 공청회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비롯한 공동행동은 이미 DPI(장애인연맹)를 비롯한 거의 모든 신체장애인 단체로부터 찬성서명을 받아 국회로 제출해버렸다. 개정 정신보건법 반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하여 연대요청을 하였지만 그 어떤 곳도 전화를 안 받고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만 고립되었다.
5월 11일 당사자 단체들은 국회 앞에서 개정 정신보건법의 결사반대 기자회견을 했고 국회에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5월 12일 이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보건복지부에서는 경찰의 요구조건을 넣어주지 않으면 법안자체가 통과될 수 없다고 이야기 했을 뿐이다. 기존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만 했다. 그 자리에서 당사자단체의 참석자들 모두 법안을 반대했고 이후로도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개정 정신보건법의 주요 문제점

1.‘정신질환자’의 정의 축소 (제3조 제1호) 

기존 정신보건법에서 정신질환자는 “정신병(기질적 정신병을 포함한다)·인격장애·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정신장애를 가진 자”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개정안에선 이러한 정신장애가 있으면서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됐다. 그 이유로 복지부는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과 병력이 한두 번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정신질환자가 되어 직업적 제한을 받는 것이 부당”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법적 정의 변경은 타법과의 관계와 실제 복지제도 이용에 영향을 미치기에 신중히 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의료적 모델을 중심에 둔 해석은 정신장애에 대한 국제적 추세와도 맞지 않다. WHO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정신질환(mental illness)보다는 정신장애(mental   disorder)라는 표현을 선호하며, 이를 ‘사회·심리적 장애’라고 칭하기도 한다. 정신장애를 ‘질환’이라는 의료적 관점에 기초해 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장애로 보는지에 대한 사회·문화적 맥락도 고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려 없이 중증의 정신질환이 있는 이들을 정신질환자로 규정하는 것은 현재 논란이 되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입원·장기입원을 오히려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

2. 강제입원의 또 다른 이름, ‘동의입원’ 조항 신설 (제42조) 

동의입원이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시 당사자의 ‘동의’를 얻는 것이다. 기존의 자의입원의 중간단계 조항의 신설 문제는 입원한 환자가 퇴원신청을 할 때다. 72시간 동안 의사는 퇴원을 거부하고 제43조(보호의무자입원) 제44조(행정입원)로 전환된다는 조항이다.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자의로 입원을 하고 동의를 하였는데 강제입원이 되는 것. 출발은 동의에서 결과는 강제입원, 장기입원화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다.

3. 개선되지 않은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43조)

보호의무자 2명, 정신과 의사 두 명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해진 강제입원의 경우 병원이 까다로워져서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건 병원입장이고 피해자 당사자입장에서 보자. 이제는 한명도 모자라서 두 명이 나를 판단하고 재단하여 감금하는 것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완전한 합리화에 정당성마저 부여가 되니 자기결정권이 없는 환자의 입장에선 더욱 심한 인권박탈일 수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한통속이다. 두 명이든 세 명이든 자신들의 이해관계인데 당사자에겐 수가 많을수록 더 안 좋다는 것이다.

4. 경찰관도 정신병원 입원 ‘신청’을 할 수 있다. (제44조)

①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하였을 때에는 특별자치시장·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진단과 보호를 신청할 수 있다.
② 경찰관은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그 사람에 대한 진단과 보호의 신청을 요청할 수 있다.
“의심”으로 경찰관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다는 획기적인 신설조항이다. 응급입원 조항도 아닌 시‧군‧구청입원에 경찰의 입원권이 가능한 강제입원 조항이 신설됐다. 단지 “의심”으로. 이것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반정부적운동을 하거나 이 나라의 기득권에 저항하는 세력 또한 공권력에 의해 개인을 합법적으로 인신 구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장애인이나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조항이다.

5. 강제입원 요건을 심사한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 신설 (제45조~제49조) 

‘국립정신병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에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설치하여,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과 행정입원을 한 경우 입원 사실을 3일 이내에 위원회에   신고하게 한 뒤 위원회가 1개월 이내에 입원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의 심사 대상은 한 해 17만 5000건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국립정신병원은 5개다. 국립정신병원 한 곳당 하루 140명을 심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세금낭비,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 국립정신병원에는 더욱 많은 세금과 권한이 주어지며 절차만 복잡하고, 당사자의 인권은 더욱 억압된다.

6. 정작 ‘복지지원’은 어디?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인 개정안  

개정안 전체적으로 보면 입·퇴원 요건이 전보다 강화됐을 뿐만 아니라, 정작 복지서비스에 대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법 명칭에 ‘복지서비스 지원’이라는 단어가 들어갔음에도 말이다. 물론 개정안 ‘제4장 복지서비스의 제공’은 기존 정신보건법엔 없던 내용이다. 이 장에선 정신장애인의 고용 및 직업재활 지원, 평생교육 지원, 문화·예술·여가·체육활동 등 지원, 지역사회 거주·치료·재활 등 통합에 대한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장애인복지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내용이 아닌가? 그러나 장애인복지법 제15조는 복지 적용 대상에서 정신장애인을 제외하도록 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장애인복지법이 아닌 정신보건법 적용을 받도록 한 것이다. 즉, 장애인복지법 15조를 삭제하면 정신장애인도 장애인복지법 적용을 받아 다른 유형의 장애인과 동일하게 장애인복지법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이제껏 요구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복지부는 여전히 ‘분리 적용’을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개정법에는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들이 있다. 기존의 정신의료집단에 더욱 많은 천문학적인 세금이 투입되며 조기치료라는 미명하에 전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한다며 사업을 확장하고 정신건강의 영역을 비즈니스화 했다. 또한 각종 이해관계 집단들이 정신보건법에 개입하여 개정법에서는 공권력, 사회복지와 최근에 추가된 심리상담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카르텔이 확장되고 있다. 당사자들 표현으로 일명 당사자들 피 빨아 먹는 빨대 꼽기 신공의 확장법이라 할 수 있다.
탁상행정으로 그것도 졸속으로 긴급히 만들었다는 것은 그것을 이용해 기득권이 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입법과정의 문제로도 드러난다. 물론 복지라는 쟁점이 포함된 긍정적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은 모호한 복지보다 사회적 구성원의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부분이기에 함부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정신보건법을 폐지하고 자유를 찾고 자기결정권을 갖고자 하는 피해 당사자들을 절망으로 빠뜨렸다.
법안 통과이전에 이미 정신장애인들의 피해가 속출했다. 내용을 알게 된 당사자들의 스트레스가 급격해져 건강이 악화되었고. 생명이 위독해진 당사자들도 있었다. 우리가 우려하고 예상했던 그 모든 일들이 현실에서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을 추진했던 정부나 공동행동은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를 하고 흡사 기계와도 같은 일관된, 법안의 긍정성만 강조하는 양상에서 당사자들은 더욱 더 절망을 느끼게 됐다.
개정 정신보건법은 강제입원 조항을 중점으로 봐야한다. 기존의 정신보건법의 3개 조항이 5개 조항으로 늘어났으며 조항이 의미하는 것은 처음부터 법안 자체가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강남역 살인사건과 연결되며, 경찰의 마녀사냥에 빌미를 주는 조항이 되었다. 이 부분은 국회 속기록에서 법안심사소위원회의 회의내용 중 경찰의 명백한 의도가 드러난다. 이런 중차대한 문제는 축소하고 모호한 복지와 시행령만을 강조하며 현실적으로 경찰에 끌려가느니 자살하겠다는 당사자들은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하나? 당사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현실은 못 본 체 못들은 체 하고 있다.
개정 정신보건법의 파급효과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마녀사냥까지 확대 재생산 했다. 바로 그러한 부분들이 통과 전 법안을 받아든 당사자 단체의 활동가들에게 빠르게 읽혀졌고 강력하게 반대를 했던 핵심적 이유다. 이는 기본적인 인권 없이는 복지도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기본권 박탈을 근저로 깐 복지가 복지인가?
19대 국회 말미에 통과됨과 동시에 경찰청의 작전이 개시되었다. 언론에는 더욱 더 많은 사건이 매일 뉴스로 올라왔고 ‘강력사건은 모두 정신장애인 탓이다’라고 하면 끝났다. 이 문제는 완전히 분리시킨 채 개정 정신보건법의 효용성, 실효성, 사업성 논의와 시행령만 강조되고 있다. 직접 적용대상인 당사자는 쏟아지는 혐오와 증오의 각종 언론의 댓글과 일상생활 속에서 박해는 수위가 더욱 높아졌다.
이는 정신의료집단도 부족해서 사회복지계, 인권단체그룹까지 정신장애인을 억누르는 형태로, 과거보다 주인노릇과 갑질을 하는 대상이 더욱 많아진 것의 연장선상에서 필연일 수밖에 없다. 정신장애인 인권이란 미명하에 현실의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인권은 더욱 추락했다. 이 문제는 법안의 키워드를 쥔 주체가 당사자를 배제한데 따른 문제에서 비롯된다. 법안 통과 과정에서의 폭력양상은 사회적 대규모 폭력양상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정 정신보건법이 일으킬 문제의 예고편이다. 혐오가 대세인 시대, 금기와 낙인의 보편화 시대, 증오의 확산 그 끄트머리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있다.

정신보건법과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제15조 (다른 법률과의 관계) 제2조에 따른 장애인 중 「정신보건법」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다른 법률을 적용 받는 장애인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적용을 제한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법상 정신장애인 차별조항으로 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정신장애인에게만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해놓은 조항이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복지조항은 앞서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선언적이며 모호하다. 그 모든 내용은 장애인복지법에 있는 내용이며 장애인복지법에서 훨씬 체계적이며, 현실적이다. 장애인복지법 15조의 차별조항을 삭제하고, 법률안 개정을 하는 것이 여타의 신체장애인과 신체질환자들과의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한 복지서비스를 받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분리적용 고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탈원화를 넘어 탈시설로

용인정신병원의 경우 갈 곳이 없는 환자는 퇴원과 동시에 다른 병원으로 수백 명이 이송 되었다. 강제퇴원이란 정신병원에 맞지 않는 용어다. 강제이송 되었다. 그러나 환자인권을 운운하는 노동조합에서 조차도 퇴원하는 환자들에게 그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
용인정신병원에 방문하여 대화를 해봐도 진정으로 정신장애인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일자리 유지가 먼저다. 당사자들과 대화도 꺼려하였다. 국회에서 토론회 할 때도 당사자는 배제되었으며, 환자본인 의사를 존중한다는 생각은 아예 없다. 그 오랜 세월 용인정신병원의 엄청난 인권유린 상황은 당사자 사회에서 유명했다. 그럼에도 그동안 누구하나 환자들의 상황을 이야기 한적 없고 본인의 정리해고 앞에서 환자인권 운운하는 것은 충분한 반성이 있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두 번째는 환자의료수가를 올려서 보호라는 이름의 감금을 한다는 용인정신병원에 입원했던 당사자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장기입원 혜택주겠다는 건가?”

의사들의 의료수가 인상요구를 복지부는 들어주었고, 파업을 했던 용인정신병원 노동조합의 해고노동자도 전원 복직되었다. 그 어떤 해고투쟁현장에서도 보기 드물게 전원 복직된 사례로 남을만하다.
앞으로 닥칠 정신보건체계 대개혁에 병원의 종사자들은 고용보장 투쟁으로 맞설 것인가? 또한 당사자들은 병원의 담장에서 시설의 울타리로 옮겨지는 탈원화를 원하지 않는다. 당사자들이 원하는 것을 환자를 감금하는 대가로 병원에 지불되는 국민의 혈세를 장기입원 피해자들에게 직접 혜택이 가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장기입원 피해자들이 생활비를 받아 원하는 곳에서 거주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동안의 잘못을 조금이나마 바로잡는 것이다.  복지라는 미명하에 피해자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식의 시설의 논리나 사회복지의 논리는 지독히도 비인간적인 것이다. 제도와 법을 만든 국가와 정부에 책임이 있으며.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써 예우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를 위한 길이다.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으므로 이 지점에서 당사자의 주장을 싣는 것이다.

결론

물론 개정 정신보건법을 추진했던 공동행동이나 보건복지부 등 그간의 노력과 헌신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물론 아니며, 좋은 취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이상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보다, 정신보건법 폐지로 사고를 전환하고 미래를 모색하며 다 같이 함께 살자는 것이 당사자들의 간절한 마음이다.
당사자 운동가들은 더 이상 우리의 문제를 타인에 의해, 기득권 집단에 맡겨두지 않을 것이다. 생명유린을 강요하는 사회를 거부하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전국의 당사자들에게 알리고, 전면적인 정신보건법 폐지투쟁에 돌입했다. 피해당사자들은 절대 정부와 타협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당사자단체들은 지난 7월 서울시의회 대회의실, 8월에는 대구 문화예술회관 달구벌홀에서 개정 정신보건법 대토론회를 직접 개최하였고,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정신보건법 폐지 집회를 3차례 진행을 했고 계속 확대할 것이다.
상식이 안 통하는 정신장애인판, 사람의 생명을 유린하는 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직업인과 종사자들 모두 각성을 해야 할 것이며, 감금을 치료라고 억지 부리는 뻔뻔함의 극치와 살인과 고문을 그토록 반복하고도 처벌도 되지 않았던 고문 정신과 의사들과 병원을 언제까지 의료라는 이름으로 방치할 것인가? 약물이 발달하여 충분히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제반 조건들을 무시하고 개혁하지 않았던 비극의 역사를 반성하고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정신의료는 의료의 길을 가기 바라며 다른 질병과 차별 없이 환자 돌봄 서비스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바꾸지 못한다고 해서 더한 독소조항을 허용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이 당사자 단체의 입장이며, 전국에 사는 당사자들의 바람이다.
자유를 달라!
헌법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복지도 본래의 의미의 복지를 실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이 가족도 당사자도 사회도 함께 건강해지는 길이다.

정신보건법 강제입원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

헌법재판소 결정에 위배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 폐기하고 즉각 재개정하라!

장애에 대한 차별인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완전 폐지되어야 한다!
강제입원 피해자 구제와 배상을 촉구한다!
강제입원환자 탈원화, 지역사회 자립생활의 권리 보장하라!
정신보건법 폐지하고 정신건강차별금지와 권리보장법 제정하라!
UN 장애인권리협약 전부 이행하라!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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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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