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배외주의, 서구 ‘좌파’ 그리고 반전 운동
맑스레닌주의 영국공산당(CPGB-ML)
2026년 10월 7일
전 영국 노동조합총연맹(TUC) 사무총장 프랜시스 오그레이디(Francis O’Grady, 위 사진)는 영국 제국주의에 바친 공로로 귀족 작위를 받은 세 명의 TUC 지도자와 약 100명의 노동조합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사회배외주의(쇼비니즘)의 본질은 말로는 사회주의, 행동으로는 배외주의이다. 그것은 ‘우리’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범죄가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제3세계의 ‘독재자’, ‘전제군주’, ‘폭군’보다 어쩐지 더 용서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서유럽인들은 선천적으로 우월한 민족이라는 암묵적 믿음에 기초한다.(원 글 편집자 주)
8월 20일, 가디언은 ‘이란의 정치범들에게: 가위 두 날 사이에 끼인’*이라는 제목의 이른바 ‘공개서한’을 게재했다.
* 진퇴양난이나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의미다.(역주)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정치범들에게 보내는 것이었지만, 이 서한은 영어로 쓰였고 영국 신문에 처음 실렸다.
약 24명의 서명이 덧붙은 이 ‘공개서한’의 메시지는, 미국/이스라엘이 이란 국민과 그 정부를 잔혹하게 공격하는 와중에 진보적 인류는 이란 편에 서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대신 계속 정권 교체 활동가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란 국민은 “가위 두 날” 사이에 끼어 있다. 즉, 미국 제국주의의 잔혹함과 자신들의 정부가 지닌 동등한 잔혹함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서한’의 내용을 상세히 분석할 의도가 없다. 단순히 우리가 전에도 천 번쯤 들어온 똑같은 지루한 헛소리를 재탕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범 무미아 아부 자말(Mumia Abu-Jamal)을 제외하면 이름을 언급할 가치가 있는 서명자는 없으며, 그가 실제로 이 문서에 이름을 올렸는지에 대해서도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서한이 개진하는 논증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좌파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흔히 표현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친제국주의적인 정치를 ‘사회주의’, ‘레닌주의’, ‘볼셰비키’ 등으로 규정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실제로 이 거짓 논증과 그것에 맞서 싸우는 데 실패한 것은 이란뿐 아니라 시리아, 리비아, 돈바스, 사회주의 조선, 그리고 제국주의의 군사적·경제적 공격에 맞서 수많은 나라를 방어하기 위한 연대 운동을 조직하려는 대부분의 시도를 치명적으로 무력화했다.
진정한 반제국주의자는 이 나라들에 대해 진실을 말하고, 그들이 공격받는 진짜 이유를 설명하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그들의 저항을 전면적으로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을 향해 던져질 온갖 반동적 비방(‘탱키’*, ‘스탈린주의자’, ‘이슬람-좌파주의’** 등)을 걱정하지 않고서 말이다.
* 1956년 헝가리 반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소련이 전차(Tank)를 투입했을 때, 이를 지지했던 영국 공산당원들을 다른 좌파들이 조롱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을 비롯해 상당수 (신)좌파는 미국을 비롯 서방자본주의의 레짐체인지(정권교체)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의 반혁명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들 나라들에서 시위는 사회주의를 해체하고 서방의 다원주의 정치체제를 지향하는 운동이었다.(역주)
** 이슬람-좌파주의(Islamo-gauchisme / Islamo-Leftism)는 서구의 세속적·사회주의 좌파 세력과 이슬람 운동 내에 형성된 지지와 공감의 감정을 말한다. 그런데 이는 이슬람 지역의 반미ㆍ민족해방 투쟁에 대한 지지로 이를 모순적이라고 비난하는 자들이야말로 서방적ㆍ제국주의적 시야에 갇혀 있는 것이다.(역주)
너희 둘 다에 재앙을?*
얼핏 보아도, ‘미국과 이란은 똑같은 두 악’이라는 관념을 여전히 누군가 주장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야만적 폭격 작전 첫날부터 의도적으로 학교를 표적으로 삼아 160명 넘는 여학생을 학살한 것이 바로 그 미국 제국주의다.
그리고 계속해서 여러 다른 학교와 스포츠 클럽을 공격해 더 많은 아이들을 죽인 제국주의다.
* “A plague on both your houses!”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등장인물 머큐시오(Mercutio)가 죽어가면서 남긴 대사로 두 집안 모두에게 역병”을 이라는 의미이다.(역주)
이것은 2023년 10월 가자에서 붐비는 알아흘리 아랍 병원을 의도적으로 파괴해 500명 넘는 민간인을 살해한 동일한 제국주의/시오니스트 진영이다. 그 잔학 행위는 수십만 명,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를 학살한 2년간의 집단학살의 서막이었다.
이것은 가자 현지 의사들이 병원을 급습해 민간인의 고통과 죽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장비를 부수는 모습이 널리 보고된 동일한 제국주의/시오니스트 진영이다.
이것은 남부 레바논을 융단폭격하고 수십 개 도시와 마을을 지도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동일한 제국주의/시오니스트 진영이다. 현지인들은 여전히 자기 땅이나 집의 폐허로 돌아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돌아가려는 사람은 일상적으로 총격을 받거나 드론의 표적이 된다.
이것은 리비아, 시리아, 예멘과 지역 전역에서 저지른 끔찍한 범죄로, 다른 곳에서의 범죄는 말할 것도 없이, 앞으로 여러 세대 동안 역사의 페이지를 검게 물들일 동일한 영미 제국주의다.
이란 정부가 정확히 무엇을 했기에 그런 악랄한 전쟁범죄자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가? 여성에게만 과도하게 영향을 미친 공공 복장 규정을 시행한 것인가? 폭력적인 쿠르드 분리주의 세력을 진압한 것인가? 첩자로 잡은 사람들을 투옥하거나, 최악의 경우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에게 사형을 적용한 것인가? 이성적인 관찰자라면 이 중 어느 것이라도 지역에서 영미 제국주의/시오니즘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와 조금이라도 비교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러시아인들조차 우크라이나에서 4년 반의 군사 작전 동안 그런 잔혹함에 가까운 무엇으로도 비난받을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만약 러시아군이 500명이 안에 있는 병원을 폭격해 파괴했거나, 여학생들로 가득한 학교를 평평하게 만들었거나, 이 수준에 가까운 어떤 범죄라도 저질렀다면, 미국과 유럽연합(EU) 제국주의 매체가 요란하게 떠들어 댔을 것이다.
최악의 ‘러시아 전쟁범죄’라는 주장은 부차*에서 성인 남성 포로 몇 명을 처형한 것(전쟁 연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위장 공작일 가능성이 크다)과, 교전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을 ‘납치’했다는 주장(달리 말하면 민간인 대피/구출)이었다. 분명히 두려운 ‘러시아 제국주의’는, 러시아가 그렇게 불릴 경제적 기준을 전혀 충족하지 못한다는 불편한 사실을 제쳐두고도, 진짜 제국주의 강대국들,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만큼 살인적이지 않다.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부차 지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했다고 하는 사건이다. 그러나 3월 30일 러시아 군대가 부차와 키에프 지역 전체에서 철수한 직후에는 학살 얘기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4월 2일부터 민간인 학살 얘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4월 3일 러시아당국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이 사건을 조사하자고 제안했으나 당시 의장국인 영국이 반대했다.
이 부차학살 사건으로 인해 전쟁초기인 2023년 3월 타결직전까지 갔던 이스탄불 협정이 무산됐다.(역주)
이 낮과 밤 같은 차이가 이성적인 사람들에게 아무리 명백해 보여도, 자칭 ‘서구 좌파’ 사이에는 규모나 맥락에 대한 어떤 고려도 일축하고 추상적으로 “양쪽 모두 나쁘다”, “우리는 원칙적으로 모든 억압자에게 반대해야 한다” 같은 과시용 헛소리를 고집하는 기이한 경향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폭력적인 강간범과 그의 피해자가 “둘 다 나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녀는 재수 없고 고집스러운 여자(she is a cow)”이고” “나는 소신으로 그녀가 싫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견해를 표현하는 사람의 ‘소신적 입장’을 당신은 존중하겠는가? 분명히 아니다. 당신은 그들을 강간 옹호자라고 욕할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에 대해서뿐 아니라 전체 국가에 대해서도 같은 역겨운 거짓 등가성을 만드는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분명히, 제국주의 동맹의 공격적 폭력과 그 침략에 저항하는 국가의 방어적 폭력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도 그을 수 없다. 이성적인 관찰자라면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서구 좌파의 입장이 옳은가가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명백히 터무니없는 입장이 애초에 그렇게 많은 지지를 얻었는가이다.
서구 대중의 사회배외주의
답은 사회배외주의이다. 대부분의 서구인이 어린 시절부터 주입받아 온 암묵적 믿음, 즉 어느 수준에서 우리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초과착취당하는 대중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이다.
전형적으로 이 믿음은 무의식적으로, 우리가 완전히 자각하지 못한 채 유지되며, 무의식적 인종주의를 동반한다. 흰 피부를 ‘진보한 문명’과, 어두운 피부를 ‘후진적’, ‘야만적’, ‘유아적’ 민족과 연관짓는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에 사는 노동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인종주의적이고 사회배외주의적인 선전에 항상 젖어 있다. 그것은 대중 매체, 교육 체계, 책, 영화,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해 주입된다. 그것은 지배 부르주아지가 서구 노동자들과 피억압 신식민지 세계 노동자들 사이에 계급 연대가 결코 발전하지 않도록 하려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다.
제국주의 핵심부 노동자들이 누리는 더 높은 생활수준은, 제국주의자들이 해외 초과착취에서 긁어모은 거대한 초과이윤에서 지불된 뇌물이며, 유럽 민족이 더 높은 문명과 인간성을 가졌다는 증거로 내세워진다.
노동조합과 노동계급 운동 지도자들은 같은 초과이윤에서 더 후하게 뇌물을 받는다.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고 노동계급 사이에 이런 인종주의적이고 배외주의적 사고를 영속화하는 데 충성스럽게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부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좌파가 겉보기에는 수많은 ‘반인종주의’ 및 ‘반파시스트’ 캠페인에서 그렇게 목소리를 내고 활동적인데도 말이다. 답은 좌파의 사회배외주의, 즉 사회배외주의가 보통 우파의 노골적인 “P*kis out”* 우월주의처럼 노골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 “Pakis out”은 주로 “파키스탄인들은 나가라”라는 의미로 파키스탄을 비롯 남아시아계 이민자들을 혐오(제노포비아)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다.(역주)
오히려 사회배외주의는 주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전역의 피억압 민중이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이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노동자 권리를 위한 투쟁만큼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는 점으로 구별된다.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자국에 사는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진 흑인과 갈색 피부 사람들에게 특별히 초점을 맞춘 반인종주의 캠페인, 그리고 성차별, 동성애 혐오, 트랜스 혐오 등에 반대하는 캠페인에는 열렬히 참여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의 안락한 환경 이외의 어떤 것에도 거의 의미 있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콩고, 수단, 아이티 국민이 겪는 억압과 착취는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노동자의 처지보다 몇 자릿수나 더 심각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치유 불가능한 것, 자연적 빈곤에 기반한 것,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의 타고난 후진성과 불가피한 부패와 어떻게든 연결된 것으로 보도록 부추겨진다.
그런 ‘사회주의자들’은 신식민지에서의 제국주의 활동을 무시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만 그것을 논의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예컨대 난민들이 고향의 궁핍화 및/또는 물리적 파괴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려고 우리 해안으로 올 때, 또는 영국이 공개적으로 침략 전쟁을 시작하려는 직전일 때다. 이런 경우에도 사회배외주의자들의 반응은 가부장적이고 피상적이다.
예를 들어 난민은 오직 불쌍하고 무방비한 사람들, 우리가 돌보고 못된 파시스트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지역 동물보호소에서 학대받는 개와 고양이를 보호하려고 시간을 자원하는 것과 거의 같은 정신으로 수행되는 시혜 행위인 셈이다.
난민들이 왜 고향을 떠나는지, 또는 영국 제국주의 정권이 어떻게 그 나라들을 살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제국주의자들이 파괴 활동을 중단하도록 노동계급을 동원해 난민들이 실제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난민과 이주 노동자는 세계 반제국주의 투쟁의 핵심 동맹으로 보이지 않는다. 가부장적으로 대하고 보호해야 할 불쌍한 희생자로 보인다.
제국주의 군사 침략의 경우, 사회배외주의적 좌파의 전술은 다양할 수 있다. 일부는 “[여기에 폭군 이름 삽입]에게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침략을 목청껏 지지할 것이다(폭격으로!). 요제프 괴벨스도 자랑스러워했을 언어적·정신적으로 입장을 180도 바꾸면서 그런 입장을 어떻게든 ‘사회주의’와 일관되게 제시하려고 애쓸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배외주의자들은 명목상 전쟁에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순전히 소부르주아 평화주의적 기반에서다. “전쟁은 나쁘다”,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같은 상투어를 생각하라. 레닌이 아니라 레넌의 논증이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또한 제국주의 매체의 히스테리적인 악마화와 비인간화 선전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반복할 것이다. “카다피의 비아그라 병사들”, “아사드의 사린가스”, “푸틴의 암살자들” 등에 대한 공식 서사에 회의를 표하는 사람을 재빨리 비난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는 매우 약하지만 겉보기에는 ‘원칙적’이고 명목상 ‘좌익’인 정치다. “그래, 우리는 이러저러한 독재 정권이 매우 매우 나쁘고 악하며, 네 말대로 아이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도 너만큼 그들을 증오한다. 하지만 전쟁은 나쁘고 제국주의는 어쩌고저쩌고(봐라, 우리가 제국주의라는 단어를 언급했으니 우리는 맑스주의자다!)… 그래서 그 사악한 독재자가 얼마나 많은 아이를 죽이든 우리는 어떤 군사 행동도 지지할 수 없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제국주의 편견으로 가득 차 있고 객관적 분석을 할 수 없는 ‘반전 운동’을 만든다. 그 구성원들은 자기만족적 우월감에 젖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정보 없는) 판단을 내리도록 부추겨진다. 전쟁의 경제적 뿌리를 이해하고, 공격받는 사람들 속에서 공유된 계급 적에 맞서 연대와 공동 투쟁을 건설해야 할 동료 노동자 집단을 인식하는 대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혁명적 투쟁에서 배우는 대신, 그들은 리비아, 시리아,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쿠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의 애국적 대중을 비인간화하는 데 가담한다.
자신의 인지 부조화를 달래기 위해, 그들은 표적 국가에서 노동자에 대한 억압 행위라고 주장되는 아주 오래된 사건을 파헤친다. 흔히 허구적이고 항상 맥락이 잘려 나간 사건들이다. 그리고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원칙적으로 그런 정권을 지지할 수 없다”고 외친다.
그런 다음 제국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부추겨 마지막의 상대적으로 작은 도약을 하게 만들기는 매우 쉽다. ‘원칙적 반전’의 마지막 얇은 겉치레를 버리고, 더 이상 추상적 교리 외에는 아무것에도 기반하지 않는 ‘반대’를 버리고, ‘권위주의와 싸우기’, ‘민주주의 보호’ 등의 이름으로 제국주의 전쟁의 공개적 지지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제국주의의 가장 뻔뻔한 군국주의 이데올로그 중 많은 수가 이른바 ‘반전 좌파’에서 나온 전 트로츠키주의자들인 이유를 설명한다. 물론 여전히 ‘반전 좌파’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인물들의 공개적 호전성을 큰 소리로 비난하고, 자신들의 ‘반전’ 정치와 대조된다고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칭 ‘반전 좌파’와 뻔뻔한 전쟁광 사이에 거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유럽 밖 세계에 대해 같은 비인간화되고 유아화된 시각을 표현한다. 서아시아, 아프리카, 인도 아대륙, 동아시아 민중에 대한 같은 완전한 무지, 경멸, 조롱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이상화된 ‘시리아 국민’ 또는 ‘이란 노동자’를 발명하여 그들을 대신해 ‘옹호’하면서, 해당 국가에 사는 실제 사람들의 실제 견해는 완전히 무시하는 같은 경향을 보인다.
이란을 비인간화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해방 운동을 조직하는 데 실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란으로 돌아가면, 사회배외주의적 서구 좌파의 대다수는 그 나라나 국민에 대해 이란 디아스포라의 자기 망명한 광신자들에게서 들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들은 제국주의 선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1980년대 제국주의 지원을 받은 이라크의 공격을 받을 때 이란 국민이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 한 영웅적 희생에 대해 전혀 무지하다.
그들은 2009년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지지하며 시위한 애국적 대중을 뻔뻔하게 비난했다. 서구 지원을 받은 정권 교체를 위한 ‘녹색 운동’에 맞서서 말이다. 그 운동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그의 수정주의자 무리가 소련을 파괴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종류의 화려한 수사에 가려 혁명 정부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들은 2026년 1월 이란 전역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CIA/모사드가 훈련한 파시스트 암살단에 맞선 수십만 명의 이란인을 무시했다. 그 암살단은 파괴와 혼란을 풀어놓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들이 “정권에 의해 무자비하게 총살당하는 평화적 시위자들”이라는 제국주의 선전 노선을 반복했다. 이 거짓 서사가 현지의 거의 모든 사람에 의해 반박되었음에도 말이다.
(제국주의 심리전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유용한 교훈으로, 이 ‘목격자 보고’의 발원자는 이란 내부와의 명백한 연결이나 출처가 없는 인도인 ‘패션 블로거’에서 ‘활동가’로 변신한 사람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들은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추악하게 살해된 그들의 혁명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마지막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모든 마을,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천만 명을 무시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영웅적 예멘인들이 제국주의에 맞서 벌이는 거대한 투쟁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레바논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관심을 보일 때에도 헤즈볼라가 이끄는 저항을 일축하고 대신 ‘진짜 혁명가’라고 주장하는 무관한 친서구 및 미국 지원 인사들을 기린다.
그들은 오늘날 환경에서 어떤 관련성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팔레스타인을 응원한다. 그러나 가능한 곳마다 하마스,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그리고 대중 속에서 유기적 지지를 가진 다른 조직을 비난하려 달려들고, 대신 모두가 상상 속의, 이념적으로 순수하지만 완전히 허구인 팔레스타인 볼셰비키 정당을 지지하라고 촉구한다.
원칙은 언제 원칙이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사회배외주의적 좌파가 원칙적으로 맥락이나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폭정에 똑같이 반대한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도 없다. 이것은 트로츠키주의자, 수정주의자, 더 넓은 자유주의 좌파와 관련된 어떤 웹사이트를 둘러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란, 러시아, 중국, 벨라루스 같은 표적 국가를 이른바 ‘노동계급’ 관점에서 공격하는 끝없는 글을 발견한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토후국들에서의 노동자 권리에 관한 글은 단 하나도 찾기 어렵다. 그 모두가 이주 노동에 대한 끔찍한 대우로 악명 높다.
왜 그 정부들의 범죄에 대한 관심이 없는가? 그들이 모두 제국주의와 동맹이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을 표적으로 삼는 데 아무런 보상이 없기 때문일까?
마지막으로, 사회배외주의자들의 이른바 ‘원칙적 입장’은 세계 반대편의 분쟁에 관해서는 유지하기 매우 쉽다. 그 결과가 영국 노동계급의 일상적 관심사와 동떨어진 것으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국 문제를 다룰 때는, 같은 사람들이 그런 신성한 ‘원칙’을 모두 버리고 ‘더 작은 악’을 선택한다는 명목으로 가장 악랄한 악마와 전쟁범죄자들을 지지한다.
우익 반이민 정당과 후보의 부상에 대한 그들의 히스테리적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주당/노동당/사회민주당(SPD) 등을 찍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히틀러를 집권시키는 거다!”라고 그들은 외친다. 이 문제에 대한 문화 전쟁 프레이밍에 잘 맞아떨어지면서, 그들이 ‘진보적’ 선택이라고 지지하라고 요구하는 정당들의 매우 실제적인 범죄를 매끄럽게 얼버무린다.
시리아가 제국주의 용병 침략에 맞서 싸운 13년 동안 시리아를 황폐화한 타크피르 갱단은 어떤 마가MAGA*, Restore**, AfD***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었다.
* 마가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트럼프 지지 세력들
**리스토어(Restore)는 “과거의 영광, 전통적 가치, 국가적 주권, 혹은 잃어버린 경제적 활력을 되찾겠다”는 주장을 하는 극우세력들
*** 독일을 위한 대안(AfD, Alternative für Deutschland)(역주)
민주당과 노동당의 사악하고 살인적인 전쟁범죄자들은 끝없는 세계화된 약탈의 향락으로 인해 전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손에 묻혔다. 후자의 소위 잔학 행위에 대한 가장 터무니없는 추정을 받아들인다 해도 말이다. 그런데도 배외주의자들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고용 살인자들을 지지하고, 아사드 대통령 정부가 최소한 ISIS*/알카에다 통치보다는 나을 수 있다는 어떤 제안에도 맹렬히 공격했다.
* 이라크·시리아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들로 극우 이슬람테러주의 세력들(역주)
오늘날도 같은 방식으로, ‘원칙에 따라’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이슬람 공화국의 사회·정치 체제가 그것을 대체하려는 CIA/모사드가 훈련한 군주-파시스트 갱단보다 나을 수 있다는 어떤 제안도 공격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45일 동안 가자에서 이슬람 공화국이 가장 터무니없는 추정으로 45년 동안 처형했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젊은 여성의 살해를 감독한 민주당/노동당 전쟁범죄자들을 기꺼이 지지한다.
이것이 말로는 사회주의, 행동으로는 배외주의라는 사회배외주의의 본질이다. 그것은 ‘우리’ 제국주의자들이 아무리 거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제3세계의 ‘독재자’, ‘전제군주’, ‘폭군’보다 어떻게든 더 구제 가능하다는 암묵적 믿음에 기초한다. 서구인이 본질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라, 이 썩은 인종주의가 이슬람 공화국에 대한 무조건적 연대와 지지의 대중 운동을 건설하는 데 반대하는 껍데기 ‘사회주의적’ 반대의 핵심에 있다.
그들이 자국에서 자본주의-제국주의 과두재벌에 의한 자신들의 착취 사슬을 끊으려면, 서구 대중은 이 사회배외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제시가 아무리 ‘맑스주의적’이거나 ‘좌익’으로 보여도 말이다.
반전 운동에 걸맞게 우리는 영국 노동계급이 이란 이슬람 공화국, 안사르 알라가 이끄는 예멘,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실제로 싸우는 저항 세력과 무조건적 연대를 할 수 있게 하는 진짜 반전 운동을 조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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